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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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죽은 한 살짜리 아이의 시신을 들고 울부짖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아버지.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런 사진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알게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미지를 보고 연민을 느끼는 데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고 수전 손택은 말한다.


  2천여 년 전에 쓰인 책인 플라톤의 국가론』에는, 처형된 범죄자들의 시신을 보고 싶어하는 욕망과 시신에 대한 혐오감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시신을 보고 마는 아테네 시민이 등장한다. 또한 기독교 미술은 수백 년 동안 수난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이나 지옥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켰다. 이렇게 고통 받는 육체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욕망이었다. 사진 기술의 발달로 훨씬 더 쉽게 이미지를 대량생산하고 널리 유포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는, 폭력적이고 잔혹한 이미지, 타인의 고통을 담고 있는 이미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가 일종의 스펙터클(볼거리)로 소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미국의 미술 비평가 수전 손택은 이 책 『타인의 고통』에서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런 우리의 반응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지구의 다른 한 쪽에서는 전쟁과 테러 같은 고통을 이미지가 아니라 현실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우리는 사진 이미지로만 접하게 된다. 전쟁, 빈곤, 대량 학살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의 배경은 보통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가난한 나라들이다. 이런 사진들은 전쟁, 테러, 빈곤 같은 비극은 우리와는 먼 가난한 나라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우리는 자신이 그런 비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한 곳에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무관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손택은 지적한다. 

  물론 이런 이미지들이 없으면 우리는 그런 비극이 일어난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다. 그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연민을 자아내고 그들을 기억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지는 우리에게 최초의 자극을 줄 뿐이고, 연민과 기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손택은 말한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는 것 자체는 선한 의도에서 나온 행동이다. 하지만 연민은 변하기 쉬운 감정이고,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금방 시들해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연민만을 베푸는 데 그치지 말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연민의 감정을 일으킨다. 하지만 타인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지 밖에 있다. 이미지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을 합리화하는 권력자들에게 눈길을 돌려보자고, 그 합리화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깨닫고 꼼꼼히 검토해 보자고 권유하는 것 이상을 해낼 수는 없다고 손택은 말한다. 이미지는 그것을 본 이후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행동할지는 우리의 몫이다. 손택은 우리가 지켜가야 할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이미지 밖의 현실이라고, 현실을 지키기 위한 실천은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손택이 이 책을 쓴 지 10년도 더 넘은 지금도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너무 많은 이미지들을 봐서 앞서 본 이미지는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세상 속에서, 이미지에서 배제된 현실, 이미지로는 다 알 수 없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그 현실을 지켜야 한다는 손택의 주장은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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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마리나 네이멧 지음, 박미경 옮김 / 예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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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1970년대 이란을 다스리던 팔레비 왕조는 부패해 있었고, 비밀경찰을 이용해 국민들을 철저히 통제했다.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운동이 일어났고, 여기에 이슬람 세력이 합세했다. 결국 1978년 반정부 운동은 전국으로 확대되어 이듬해 국왕이 이집트로 도피했고, 팔레비 왕조는 무너졌다. 그러나 왕정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이슬람 세력은 이란을 더 민주적인 국가로 변혁시킬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엄격한 종교 근본주의와 독재로 국민들을 통제했다. 이란 출신의 만화가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런 이란의 상황을 자신의 만화 '페르세폴리스'로 기록했다. 그리고 이 책 '마리나'도 이란 출신의 작가 마리나 네이멧이 겪은 1970, 80년대 이란의 독재 정권 시기에 대한 기록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평범한 여고생 마리나가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수업 진도는 안 나가고 이슬람 정부에 대한 찬양만 늘어놓는 수학 선생에게 수업 진도 좀 나가자고 이야기했던 것. 선생은 마리나를 교실에서 쫓아냈고, 다른 학생들도 마리나를 따라 나가 수업 거부를 했다. 수업 거부를 하는 학생들은 점점 늘어나 전교생의 90퍼센트에 이르렀고, 마리나는 교장이 뽑아 놓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정부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던 주변 친구들이 한두 명씩 끌려가더니, 얼마 안 있어 마리나도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 에빈에 끌려가게 된다.


 마리나가 에빈으로 끌려가는 장면에서 시작된 이 소설에서는 비인간적이고 혹독한 감옥 생활과 에빈으로 끌려가기 전 행복했던 성장기가 교차된다. 


그는 봄이 되면 신맛이 도는 자두를 팔았고, 여름이면 복숭아와 살구를, 가을이면 삶은 사탕무를 팔았으며 겨울에는 온갖 종류의 쿠키를 팔았다. 나는 삶은 사탕무를 무척 좋아했다. 휴대용 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사탕무를 뭉근하게 삶으면, 끈적끈적한 사탕무 즙이 거품을 내며 끓었다. 그럴 때면 사탕무 삶는 달콤한 냄새가 코 끝에 맴돌았다.(p. 79.)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마리나가 묘사하는 7,80년대 이란의 풍경은 이국적이면서도 감각적이다. 마리나의 어린 시절은 생리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자 죄수들에게 생리를 억제하는 약재가 든 차를 먹이고, 언제 동료 죄수가 끌려나가 죽을지 모르는 공포스럽고 비인간적인 감옥 생활과 대비되어 더 따뜻하고 동화처럼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은 마리나에게 용기를 잃지 않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마리나는 원래 재판도 없이 즉결처형당할 운명이었지만, 자신에게 사랑을 느낀 간수 알리의 청원으로 종신형으로 감형된다. 그리고 그의 제안으로 어쩔 수 없이 그와 결혼한다. 그의 뜻을 따른 덕분에 마리나는 목숨을 건지고 당분간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리나가 다른 사람들보다 덜 상처를 받았다고 할 수없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살기 위해 타협했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부모님과 연인에게는 차마 알리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억지로 결혼해야 했고,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을 해야 했으며, 남편인 알리가 원할 때마다 억지로 성관계를 가져야 했으니. 결혼 생활은 또 다른 감옥이었지만 마리나는 집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알리와의 결혼과 개종 덕분에 종신형은 3년형으로 감형되었고, 집행유예 대상이 되어 마리나는 에빈에서 출소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리가 정적들에게 암살되면서 결혼이라는 또 다른 족쇄에서도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받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잊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잊으려고 할수록 상처는 곪아들어갔다. 그런데도 마치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도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았던 것은 마리나를 오히려 더 슬프게 했다. 마리나는 망각이 아닌 기억이야말로 진정한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닫고, 2년 동안 에빈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 그 고백이 이 책이다. 마리나가 에빈에 수감되어 있던 2년 동안 마리나를 기다려 주었고, 그 이후 평생을 함께 해 왔던 두번째 남편 안드레는 마리나의 고백을 읽고 그녀의 과거를 이해하고 감싸준다.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고 고백한 마리나 자신의 용기와 그 상처를 감싸 안아준 사람의 사랑이 있었기에 진정한 치유는 이루어질 수 있었다. 


 '테헤란의 죄수'라는 원제에서 여주인공의 이름 마리나로 제목을 바꾼 것, 로맨스 소설 같은 예쁘장한 표지, 그리고 첫사랑, 남편과의 로맨스 때문에 로맨스 소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로맨스가 이 책의 의미를 희석시키지는 않는다. 첫사랑은 왕정의 독재에 항의 시위를 하다 사살당하고, 두번째 사랑인 남편과는 이슬람 정부의 억압 때문에 헤어져 있어야 했다. 역사의 격랑 때문에 사랑을 잃었고, 새로운 사랑마저 잃을 위기에 놓였지만 마리나는 자신의 사랑을 지켜냈다.


"미국에게 죽음을!" "이스라엘에게 죽음을!" "공산주의자와 이슬람의 모든 적에게 죽음을!" "반혁명분자에게 죽음을!"

 벽이면 벽마다 이런 거칠고 자극적인 낙서와 표어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목재로 된 육중한 출입문을 여는데 코끝에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눈이 내리고 나면 순백의 곡선을 이룬 테헤란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법의 도시처럼 보였다. 이슬람 정권은 아름다운 것을 대부분 금지시켰지만 내리는 눈까지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p.20-21.)

  이슬람 정부는 아름다운 것들을 금지해도 내리는 눈까지 멈추게 하지 못했듯이, 인간적인 것과 자유를 억압해도 인간적인 것과 자유를 향한 열망은 막지 못했다. 그런 열망은 누구도 가두거나 길들이지 못한다. 이 책은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독재 정치는 늘 존재했지만, 거기에 맞서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도 늘 존재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슬람 정권은 아름다운 것을 대부분 금지시켰지만 내리는 눈까지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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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페르세폴리스 1~2 세트 - 전2권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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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스포일러 포함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위용을 보여주는 유적 페르세폴리스에서 볼 수 있듯이,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이라는 화려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륙의 길목에 위치한 탓에 숱한 침략과 전쟁을 겪었고, 현대에 들어서는 강대국들의 간섭과 국왕의 독재에 시달렸다. 1979년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의 혁명으로 독재 왕정은 물러났지만, 이듬해 이란의 혁명에 위기감을 느낀 이라크가 침략해 8년 동안이나 전쟁이 계속되었다. 혁명을 주도했던 이슬람 세력은 독재와 이슬람 근본주의로 사람들을 억압했다. 이란 출신의 만화가 마르잔 사트라피는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만화로 그린 그녀의 성장기가 이 책 『페르세폴리스』이다.


마르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신과 마르크스


  지식인 부모님을 둔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마르크스의 책을 읽어온 마르잔은 마르크스의 열렬한 신봉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무함마드의 뒤를 잇는 신의 마지막 예언자라고 믿고, "모든 사람들이 좋은 태도를 갖고, 고운 말을 쓰고, 좋은 행동을 하며, 가난한 사람도 매일 통닭 한 마리씩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는다. 어린 나이에 자신을 빛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는 꿈을 가진 마르잔이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사람들도 매일 통닭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어느 할머니도 절대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소망은 어린아이다워서 귀여웠다. 

아누쉬 삼촌의 감방으로 면회를 온 마르잔.


  그러나 순수했던 마르잔의 삶도 이란의 현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르잔을 유난히 예뻐했던 혁명가 아누쉬 삼촌은 반정부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다. 아누쉬 삼촌이 처형된 뒤로 마르잔은 신에 대한 믿음도, 신의 마지막 예언자가 되겠다는 포부도 버린다. 이렇게 마르잔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은 지나가 버린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복장이 이슬람 규율에 맞는지 검사하는 종교위원회. 그들에게 걸린 마르잔.


현실에서 억압당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펑크 음악으로 푸는 마르잔.


 독재 왕정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줄 알았던 이슬람 세력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독재로 사람들을 숨막히게 억압한다. 특히 여성은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이 조금만 삐져 나와도 제재를 받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억압을 받는다. 저항 정신이 강한 마르잔으로서는 더더욱 견디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마르잔은 외국의 펑크 음악을 통해 답답한 마음을 푼다. 사우디아라비아 영화 '와즈다'에서도 주인공 소녀 와즈다는 빡빡한 이슬람 규율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외국의 팝 음악을 들으면서 푼다. 까만 히잡과 차도르로도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망은 가릴 수 없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펑크 족 친구들과 어울리는 마르잔


  1권은 이렇게 마르잔이 14살 때까지 독재와 억압으로 가득한 이란의 현실 속에서 자라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2권에서 14살이 된 마르잔은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독재도 이슬람 근본주의도 없는 유럽에서 마르잔은 펑크족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마르잔은 이방인일 뿐이었다. 마르잔은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소외감에 시달리며 방황한다. 어딜 가도 마르잔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자유롭되 외로운 곳에 남겠는가, 자유롭지 않되 외롭지 않은 곳으로 돌아가겠는가. 마르잔은 후자를 선택한다.



  몇 년만에 돌아온 고국은 여전히 이슬람 정권의 억압 아래 있었다.  미대 실습 시간에도 이슬람 율법 때문에 누드모델을 쓰지 못하고 차도르를 뒤집어쓴 모델을 그려야 했다.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을 조금만 보이는 것도, 검고 긴 옷소매 밖으로 팔목이 보이는 것도. 외국 음악 테이프를 갖고 다니는 것도 잡아갈 구실이 되었다. 마르잔은 깨닫는다. 일상생활의 작은 곳까지 파고드는 억압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두려움은 사람을 마비시킨다는 것을. 그래서 두려움은 모든 독재 체제에서 억압의 원동력이 되고, 머리카락을 보이거나 화장을 하는 것 같은 작은 행동도 두려움에 맞서는 저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런 작은 저항으로 마르잔은 이슬람 정부와 사회의 억압에 맞선다.

마르잔과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


  마르잔이 이런 어두운 시기를 견뎌낼 수 있게 한 버팀목은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과 지지였다. 가족들 중에서도 특히 마르잔의 할머니는 어떤 상황에서도 용기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마르잔을 격려해 준다. 마르잔이 첫 결혼에 실패하고 이혼할지 말지 고민하자, 자신도 이혼 경력이 있는 할머니는 "첫번째 결혼을 해 봤으니 두번째 결혼은 더 잘 할 수 있다"며 마르잔을 다독여 준다. 1980년대 이슬람권에서 이혼 경력이 남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여성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할머니가 있었기에 마르잔도 자신을 둘러싼 억압에 당당하게 맞서며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폭력과 억압이 가득한 혼란스러운 이란의 역사 속 마르잔의 성장기는 씁쓸하다. 하지만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서는 마르잔의 용기와 신랄한 유머감각은 독자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한다. 또한 마르잔을 둘러싼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는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화려하게 꾸며지지 않고 흑백의 색채와 단순한 선만으로 이루어진 담백하고 날카로운 그림체만으로도, 작가는 신랄한 유머와 날카로운 비판, 따뜻한 인간애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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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슬람문화 체험기
최영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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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전문가 최영길 교수가 사우디아라비아 유학 시절부터 틈틈이 써 오던 일기와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이 36년 동안 직접 보고 듣고 겪은 이슬람에 대해 정리했다. 나름대로 이슬람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어봤더니 몰랐던 것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역시 그곳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작자 미상의 19세기 페르시아 세밀화. 막 창조된 아담에게 절하는 천사들. 이슬람교에서 아담은 천사들의 절을 받을 정도로 고귀한 존재였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죄인이 아니라 신에게 지상을 다스릴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이다.


  특히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이나 성경 해석은 그가 고대 사람인 것을 감안했을 때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이 흥미로웠다. 아내를 네 명까지 둘 수 있다는 이슬람 법은 아내를 재산 취급한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들과 아버지를 잃은 고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여러 아내를 두었을 때 아내들을 모두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물론 지금의 이슬람권의 일부다처제가 이런 선한 의도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보기 어렵긴 하다.) 무함마드는 아담은 원죄를 지은 벌로 천국에서 쫓겨났다는 기독교의 주장과 달리, 신에게서 지상을 다스릴 권한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을 원죄를 지고 사는 죄인에서 신에게 지상을 다스릴 권한을 받은 신의 상속자로 높인 것이다. 또한 자기 생각 없이 책 속의 지식을 그저 주입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책을 지고 가는 당나귀나 다름없다"고 하는 이슬람의 속담 등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도 곱씹어볼 만한 가르침들도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영화 '와즈다'의 한 장면. 여성은 운전을 할 수도 없어 운전사를 따로 고용해야 하고, 자전거를 탈 수도 없는 등(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후에서야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허용되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억압 받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쿠란의 한 구절 한 구절을 그대로 실정법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의 권리에 있어서 그렇다. 무함마드가 코란을 쓴 당시는 여권이 지금보다 매우 낮은 때였기 때문에 코란으로 규정된 이슬람 법이 오히려 여성을 배려하는 편이었지만, 천 년하고도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여성을 옥죄고 있다. 그리고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서구와 달리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독실한 무슬림 여성은 노년에 세상을 떠나도 천국에 가면 생리도 하지 않는 아름답고 순결한, 젊은 아가씨로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생리를 불결한 것으로 여기고 아름답고 젊고 '순결한' 여성을 선호하는 무슬림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알라와 무함마드도 아름다움을 좋아하니 그 뜻을 따른 거라고 하지만 어쩐지 변명처럼 들린다. 그리고 생리를 불결하게 여긴다는 것 자체도 문화상대주의를 감안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보인다. 저자의 이슬람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은 알겠지만, 이슬람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전혀 없는 점은 아쉬웠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최초의 이슬람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는데, 그 이야기가 더 자세히 나왔으면 했다. 부산 남도여중의  학생들과 최초의 이슬람 고등학교 알리고 학생들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이슬람교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장학금 혜택이 있다고 해도 술도 마실 수 없고 돼지고기도 먹을 수 없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지켜야 할 규칙들이 많은데 학생들이 선뜻 이슬람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계기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 궁금했다. 그리고 무슬림이 되고 나서도 자신의 원래 생활습관과 교리 사이의 충돌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은 없었을지 궁금하다. 그저 우리나라에도 이런 이슬람 학교가 있었다는 정도의 설명으로 끝난 것이 아쉽다.


 또한 사진 자료들이 모두 흑백 사진이어서 시각적인 면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 어려운 점이 아쉽다. 내용은 정말 알찬데 내용으로 진입하는 통로인 시각적인 부분이 아쉽다. 그래서 한길사 편집자가 꼽은 "많이 알려지지 못해서 아쉬운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것 같다. 시각적인 면과 이슬람에 대한 좀 더 냉철하고 균형 잡힌 시각이 보완되어 개정보완판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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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파시즘 - 선(禪)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지음, 박광순 옮김 / 교양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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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의 뜻을 따른다는 명분으로 종교가 폭력을 부추길 때가 있다기독교의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이슬람교의 일부 근본주의자들의 테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그런데 자비를 강조하는 종교인 불교마저도 부처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폭력을 부추긴 적이 있었다이 책은 일본 군국주의에 영합해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하고 부추겼던 일본 선불교의 어두운 역사를 폭로한다.


자비를 강조하고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와 살생을 할 수밖에 없는 군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저자는 중세시대에 일본의 무사와 병사들이 선불교의 금욕적이고 극기심을 키우는 수행 방법이 의지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선불교를 가까이 하면서 둘이 깊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군국주의가 일본을 지배하기 이전인 17세기에 이미 선사 다쿠안 소호가 "치켜든 칼에도칼을 휘두르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의지는 없고 텅 비어 있다"선불교의 교리를 교묘히 이용해 무사들의 살생을 정당화했었다.


저자는 이어서 일본 선불교가 세계대전 기간 동안 어떻게 일본 군국주의에 영합해 전쟁과 폭력을 정당화해 왔는지를 낱낱이 폭로한다. 자원입대해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적군들을 죽인 제자와, "부처님께서 사회의 화합을 깨뜨리는 자를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며 제자의 입대를 말리기는커녕 격려한 스승 선사도 있었다세계대전 당시 선불교의 지도자들은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불교의 교리를 천황과 국가를 위해서는 기꺼이 자아를 버릴 수 있다는 방식으로 해석해일본의 수많은 군인들과 민간인들을 전쟁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도록 몰아갔다. 교리를 교묘하게 해석하며 살생과 폭력을 정당화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선사들의 모습은 독자들의 치를 떨리게 한다.


후기에서 저자는 뒤늦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본 선불교 지도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것이 선불교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첫 단계라고 말한다일본 선불교 승려로서 일본 선불교의 지도자들의 과오들을 폭로하고 고쳐나가길 바라는 저자의 용기와 객관성은 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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