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알라까트 - 사막의 시인들이 남긴 7편의 위대한 노래 문명텍스트 11
이무룰 까이스 외 지음, 김능우 옮김 / 한길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말로 번역된 아랍 문학은 영어판 중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보기 드문 아랍어 직역인데다, 고대 아랍의 시인들의 시라니 호기심이 들어 책을 읽었다 난감함을 느꼈다. 온통 전쟁, 사랑, 낙타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유와 하이포가 '봄, 사랑, 벚꽃 말고'를 불렀다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 사랑, 낙타 말고'를 외치고 싶었다. 그만큼 이슬람이 등장하기 이전인 5세기에서 7세기 초(이 시대를 아랍인들은 '자힐리야(무지라는 뜻)' 시대라고 부른다.)를 살아간 일곱 시인들의 삶과 시에서 전쟁, 사랑, 낙타는 빼 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었다. 그래서 전쟁, 사랑, 낙타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이 책을 살펴보려고 한다.  


전쟁


  고대 아랍의 유목민족들에게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소한 원한이나 자존심 싸움 때문에 수십 년 동안이나 전쟁이 계속되기도 했다. 이 시에서도 전쟁에서 용맹하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이 보호하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한 것이 유목민족의 미덕이라고 노래한다.

 시인마다 자기 부족이 가장 강하고 용감하며 패하는 일이 없었다고 하는데 모든 부족이 항상 이기기만 했을 리는 없을 테니 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것이다. 타글립 부족의 시인 아므르 이븐 쿨숨이 쓴 시와 그의 적대 부족인 바크르 족의 변호인 알하리스 이븐 힐리자가 쓴 시를 비교하면, 같은 사건도 양쪽에서 전혀 다르게 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글립 족과 바크르 족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웃나라의 왕인 아므르 이븐 힌드 왕이 바크르 족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아므르 이븐 쿨숨은 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시를 썼고, 알하리스 이븐 힐리자는 타클립 족의 무례함과 난폭함을 비난하며 왕의 현명함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 유목 민족의 남자로서의 자부심과 자기 부족에 대한 애족심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사랑 


  사랑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문학의 소재로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인데, '무알라까트'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소재이다. '무알라까트'의 시들은 항상 시인이 옛 사랑이 살던 집터 근처를 지나면서  옛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워할 옛 사랑이 없다면 가상으로라도 만들어내야 했을까 싶을 정도다. 여기에서 말하는 집터는 정착민들이 사는 오래되고 단단한 집의 터가 아닌 유목민들이 머물다 간 천막집이 있었던 흔적이다. 한 곳에 몇 년에서 수십 년까지 머무르며 사는 정착민들과 달리, 머무르는 곳의 풀이 다 떨어지거나 물이 마르면 떠나가는 유목민들에게 이별은 더 잦은 일이었다. 잦은 이별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그것이 슬프지 않았을 리는 없을 것이다. '무알라까트'의 시들에는 옛 사랑을 그리며 눈물짓는 시인과 그를 위로하는 친구들이 항상 등장한다.

 또한 시인들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했던 여인의 미모 묘사에 집중된다. 연인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은 아프다, 괴롭다, 슬프다 정도로 단순하게 표현하면서 연인의 미모 묘사에는 온갖 비유를 동원하는 모습에서는 고대 유목민 특유의 단순하고 솔직한 성정이 느껴진다. '그녀의 치켜든 목은 흰 영양의 목을 닮아 길고 희며', '다리는 물이 올라 가지를 드리운 야자수 그늘 속 파피루스 줄기 같다', '그녀는 새끼 딸린 암컷 영양의 애정 어린 눈길로 나를 대한다'는 비유 자체에서 시인들에게 가축과 자연물이 아주 익숙하고 가까운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그녀가 보여주는 살찐 엉덩이에 문은 좁을 지경이고 그 예쁜 옆구리에 나는 미치고 말았다'는 구절은 연인의 'big booty(큰 엉덩이)'를 찬양하던 박진영의 '어머님이 누구니'를 연상시키면서, 13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낙타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는 주인공 드미트리가 애타게 구하는 '3천 루블'이 191번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무알라까트'에서 낙타가 몇 번 나오는지 세어보고 싶어졌다. 옛 사랑이 살던 집터를 지나갈 때 낙타를 타고 있었고, 옛 사랑과 낙타 가마를 함께 타고 놀았으며, 전쟁 보상금으로 낙타를 지불한다. 그뿐만 아니라 '단단하기가 모루 같은 낙타의 두개골 / 그 접합 부위의 강철 줄칼 같은 뼈들의 가장자리는 서로 맞닿아 있다', '낙타는 꼬리를 흔들며 뽐내면서 걸어갔다. 마치 여종이 여흥 자리에서 보란 듯이 주인 앞에서 춤을 추며 옷자락을 내보이는 것 같이' 등등 낙타의 생김새와 생태가 자연 다큐멘터리 수준으로 상세하게 묘사된다. 교통수단에서부터 식량, 재산, 친구까지 되어주는 낙타이니 작품 내내 낙타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낙타뿐만 아니라 말, 영양, 타조 같은 사막의 동물들의 생태는 작품 속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때로는 낙타탈트가 올 것 같지만 그만큼 고대 아랍 유목민들의 일상이 충실히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수없이 반복되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아랍어 원문을 모르니 어떤 운율인지도 느낄 수 없다. 시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유목민 특유의 직설적이고 투박한 표현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유목민들의 진솔한 표현이고 , 유목민들의 삶이 충실히 반영되어 있어 고대 아랍 지역에 여행을 떠난 기분으로 읽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세사르 바예호 지음, 고혜선 역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페르난도 보테로, <우는 여인>, 1949.


  내가 세사르 바예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페르난도 보테로에 대한 논문을 쓸 때의 일이었다. 보테로는 뚱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 그림으로 유명하지만, 이 그림 <우는 여인>(1949)처럼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이 겪는 고난과 폭력, 슬픔을 다룬 그림들도 경력 내내 그려 왔다. 보테로가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혼란, 폭력, 빈곤에 지친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슬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데 페루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César Vallejo, 1892.-1938)의 시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보테로의 그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슬픔이 가득한 이 그림에 정서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시는 어떤 시일까 궁금해졌다. 논문을 쓰는 내내 궁금해했지만, 논문을 다 마친 뒤에야 세사르 바예호의 시집『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를 읽을 여유가 생겼다. 


  표제작「희망에 대해 말씀드리지요」부터 희망을 이야기할 거라는 기대는 무참히 부서진다. 제목이 반어법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 시는 오직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오늘 이 고통을 세사르 바예호로 겪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첫 구절부터 "어쨌든지간에 오늘 나는 괴롭습니다. / 오늘은 그저 괴로울 뿐입니다."라는 마지막 구절까지 이 시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시인은 자신의 아픔이 "너무나 깊은 것이어서 원인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가난한 메스티소(라틴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혼혈 인종)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바예호는 평생 동안 인종차별과 가난, 사회주의적 정치 성향으로 인한 정치적 탄압에 시달렸다. 그 모든 것이 그가 겪는 고통의 원인이었겠지만, 그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자신의 고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고 / 모두에게 갓 구운 빵 조각을 주고 싶다.

한 줄기 강렬한 빛이 / 십자가에 박힌 못을 빼내어 / 거룩한 두 손이

부자들의 포도밭에서 먹을 것을 꺼내오면 좋으련만.

...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 대신 다른 가난한 이가 이 커피를 마시련만.

나는 못된 도둑......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일용할 양식-알레한드로 감보아에게 바침」

 자신이 살아 있어 다른 사람이 먹고 마실 것을 먹고 마시는 것마저 죄책감을 가질 정도로, 바예호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겼다. 그는 이렇게 인간들이 고통스러워 함에도 침묵하는 신에게 "항상 안온했던 당신은 /  그러나, 인간의 고통에 대해 관심조차 없습니다. / 당신은 멀리 계십니다."(「영원한 주사위 」)라고 원망한다. 그는 신의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대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담담하게 노래할 뿐이다. 시인은 "커버린 어금니에도 암울한 그림자에도 / 달콤한 사랑을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께 "세상은 아무에게서도 뭘 빼앗을 수 없는 어린 나이였던 우리에게서 값을 받아냈다."고 털어놓는다. (「트릴세 23 」)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에게 이야기한다. "너희들은 죽었다./ 그 전에도 결코 살아본 적이 없었지./ ...항상 죽어 있었던 존재의 운명. 초록빛 시절은 있어본 적도 없는데 / 마른 잎이 되어버린 운명. / 고아 중의 고아."(「트릴세 75 」) 그럼에도 어둡고 쓸쓸하고 비관적인 그의 시에서는 온기가 느껴진다. 자신처럼 고통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연민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에서 파시스트 세력에 저항하다 죽어가는 노동자를 영웅으로 기리고(「3 」) 파시스트 세력과 맞서 싸우는 병사에게 "신의 아들인 자네는 살아야 하네! 죽이고 편지하게!"(「7 」) 라고 응원을 보낸다.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에게 한 사람, 두 사람, 스무 명, 백 명, 천 명 더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다 마침내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그를 에워싸자 그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그린 시「12-대중 」에서는 시인이 사람들 사이의 유대가 갖는 힘을 믿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시집의 시들이 위로와 희망이 되거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절망과 고통이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시들 안에는 자신과 다른 이들의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와 강인함이 살아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고통스러운 자들에게 내미는 손처럼 느껴진다.

* 이 시에는 그가 사람들에 대한 연민뿐 아니라 자신의 사랑과 성적인 욕망에 대해 노골적으로 노래하는 시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미지들을 나열한 것 같은 난해한 시들도 함께 실려 있다. 사회주의자로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으며, 문학적인 실험을 시도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면모들을 살펴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기독교 신자 분에게 기독교의 여호와와 이슬람의 알라는 같은 신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그랬더니 그분은 화를 내며 저를 이단 취급 하시더군요그리고 제가 사는 지역에 이슬람 사원이 들어온다고 하자지역 교회들이 연합해서 이슬람의 포교 음모에 맞서는’ 릴레이 기도회를 열기도 했습니다이렇게 당장 주위만 둘러봐도 기독교의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적대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더 넓게 살펴보면 세계 곳곳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이슬람교가 서로 갈등하면서 유혈사태를 빚어내기까지 합니다이런 현실 속에서 세 종교의 역사를 총 정리한 책 세 종교 이야기는 세 종교가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줍니다서로에 대한 이해는 갈등을 푸는 첫 걸음이니까요.


  저자는 세 종교 중 어느 한 쪽이 우월하다거나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저자는 세 종교 중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세 종교의 역사와 기본 교리를 설명한 뒤세 종교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졌는지세 종교가 어떻게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갈등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폭넓게 살펴보고 있습니다고대의 수메르 문명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현대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까지 저자는 다양한 시간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세 종교의 역사를 풀어나갑니다덕분에 독자들은 더 폭넓은 시각으로 세 종교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그리고 세 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 교리들과 세 종교의 역사 속 결정적인 순간들을 정리해서세 종교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쌓을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저자가 쉽고 간결한 문체로 설명하는 덕분에다소 많은 분량임에도 술술 읽히고 쉽게 이해됩니다.


  하지만 세 종교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과 분석을 기대하신 분들은 아쉬울 수 있습니다세 종교의 역사와 교리갈등을 400여 페이지의 책 한 권에 담아내다 보니 아주 깊이 있게 분석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사실 각 꼭지의 주제들이 자세히 풀어내면 단행본 한 권심지어 여러 권 분량이 될 만큼 할 이야기가 많은 주제들이니까요그리고 고대의 블레셋 사람들과 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혈연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대의 블레셋 사람들의 후손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아랍인들입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이 블레셋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카타콤은 주로 지하묘지로 사용되고 로마시대 기독교인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카타콤이 비밀 예배당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하는 등의 오류들도 눈에 보입니다그리고 저자가 유대인 전문가이다 보니 세 종교의 분량이 서로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기보다는유대교 쪽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종교 이야기는 세 종교에 대한 심화분석이라기보다는 세 종교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쌓는 입문서의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참고문헌들도 각주와 부록으로 정리되어 있어독자들이 각각의 주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더 깊이 있게 탐색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세 종교 중 한 종교의 신자이든셋 중 어느 종교의 신자도 아닌 사람이든이 책을 읽으면서 세 종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것이 세 종교 사이의 화해와 상호존중을 이루는 데 첫걸음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성된 미래 - 무한 경쟁 시대 이후의 한국 사회
참여연대 기획, 김균 엮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6년 말 드러난 국정 농단 사태는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다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느끼고 있었지만이토록 뿌리까지 썩어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 못했기 때문이다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이권력자와 그 일가측근들은 막대한 부를 누렸다대선 공약이었던 복지 정책들은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폐기되었다참여연대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3년 전에 발간한 책반성된 미래는 우리가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지 방향을 제시한다.


 제목처럼 이 책은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할지 논의하고 있다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분배정의노동 인권환경안전 등을 넘어서는 유일한 가치가 경제였다고 지적한다그러나 몇몇 대기업의 경쟁력에 의존한 경제 성장이 한계에 이르고 무한경쟁에 국민들이 지치게 된 오늘날사람들은 경제만이 유일한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이 책은 경제 때문에 가려져 있던 민주주의평화차이와 공존다양성공공성 등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가치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참여연대에 직접 참여하거나 참여연대와 뜻을 같이 하는 전문가들 18명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글을 한 편씩 썼다이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중립적일 수 없고진영 논리들이 팽팽히 맞서는 오늘날에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주장에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이들은 진보 진영에 속해 있지만 보수와 진보 각 진영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아집만 부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저자들부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진영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기에저자들과 반대 진영에 속한 독자라도 이들의 의견이 편향적이라고 일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미래는 경제 가치에 억압되어 있는 가치들을 지향함으로써 좋은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정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차이와 관용연대 등의 민주적 가치가 사람들의 삶에 뿌리내리는 것안보 위협을 체제 유지에 이용하는 현실을 넘어 분단 체제 극복과 평화 운동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우리 문제도 급한데 외국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사고방식을 넘어 국제적인 시민 연대를 실천하는 것복지 재원의 양적 확대를 넘어 어떤 조세 체계를 구축하고 어떤 복지국가를 이룰 것인지 고민하는 것 등이들은 독자들이 현실을 넘어 더 나은 미래상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이 발간된 2014년 이후에도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었다그리고 지금도 국정 농단 사태를 일으킨 권력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이러한 현실 앞에서반성된 미래에 제시된 가치들이 실현되는 미래가 너무나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그러나 이 책에 제시된 가치들은 현실을 넘어 더 나은 삶더 나은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다. 2014년 이후 일어난 정치경제사회적 변화들을 되짚어 보면서 이 책에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다시 검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 - 톨스토이와 안나 카레니나, 그리고 인생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스포일러 포함


  재작년부터 뒤늦게 톨스토이에 빠져들어서 톨스토이의 작품뿐 아니라 톨스토이 작품에 대한 해설들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한동안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매일 검색해 볼 정도로 열심히 관련 자료들을 찾아 봤는데, 그러면서 러시아 문학 연구자 석영중 교수님의 글들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석영중 교수님이 『안나 카레니나』를 중심으로 톨스토이의 문학과 철학을 해설한 이 책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톨스토이의 삶은 그의 작품과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대로 톨스토이는 도덕에 강박적일 정도로 집착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톨스토이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추구하던 삶은 톨스토이가 추구하던 삶과 같았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친구 안드레이에게 열변을 토하던 『전쟁과 평화』의 피에르도, 삶의 이치는 이미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니 그 이치에 따라 착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도 톨스토이의 이러한 면모를 그대로 담은 인물들이다. 육체의 욕망이 너무 강해 방탕하게 살다 회개했다는 것, 열심히 살아가려다가도 다시 유혹에 빠지는 것까지 피에르와 레빈은 톨스토이와 닮아 있다. 시대를 초월한 근본적인 가치인 선을 실천하며 살아가려는 톨스토이의 노력은 존경할 만하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문제는 자신이 믿는 부분적인 진실을 진리 그 자체로 단정했던 것이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그는 자신이 죄악으로 믿는 것을 가차없이 단죄했다.  육체의 욕망과 쾌락을 죄악으로 생각했던 톨스토이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도 육체의 쾌락을 따라 살았던 인물들(ex) 『전쟁과 평화』 의 엘렌과 아나톨리,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와 브론스키)에게 지나치리만큼 가혹한 결말을 안겨준다. 도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외의 예술은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쓸모없고 해로운 것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인생 후반기에 들어서는 작가로서 부와 명성만 추구했던 것을 반성한다며 이전의 걸작들인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마저 쓸모없는 작품이었다고 부정했다. 열세 명이나 되는 아이를 키워야 하는 아내의 사정은 돌아보지도 않고 귀족 작위와 영지, 재산마저 다 내려놓겠다고 해서 아내와 갈등을 빚었다. 저자는 이런 톨스토이와 그의 저작들에 '편집증적이다', '짜증스러운 대목도 있다'는 말도 서슴없이 한다.


  또한 톨스토이의 이상적인 삶, 이상적인 결혼은 지극히 가부장적이라는 것도 이 책에서 지적된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레빈과 키티는 각 단어의 첫 글자만 나열한 문장을 맞추는 놀이를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사랑을 이루게 된다. 그들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변질되어 가는 사랑과는 대비되는 이상적인 부부로 나온다. 하지만 레빈은 결혼 뒤에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키티를 바라보고, 키티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둘은 끊임없이 다투고 부딪치면서도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면서 성장해 간다. 그러나, 이 또한 레빈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을 뿐이지 키티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한다. 『안나 카레니나』의 키티도,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도 결국에는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하는 현모양처로 살아갈 뿐이다. 반면 미모를 잃지 않으려 더 이상 아이를 낳는 것을 거부하는 안나는 타락한 인물로 나오고 몰락한다. 현실의 톨스토이 또한 자신의 인생관과 도덕을 아내에게 강요하기만 했지, 아내를 이해하고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마침내 결혼에 완전히 회의를 느끼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좋다고까지 주장하게 된다.


  자신은 방탕한 성생활 끝에 사생아까지 두었으면서 금욕을 주장했고, 사교계를 타락의 소굴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사교계의 화려함을 동경했으며, 자신의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방황했던 톨스토이. 그의 도덕관은 지나치게 이분법적이고 독선적이었다. 말년으로 갈수록 그는 점점 더 독선적이고 과격한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피에르와 레빈에게서 보이는 순수한 선의, 선하게 살려는 의지는 선하게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여전히 감동을 준다. 과격한 면, 독선적인 면, 가부장적인 면을 걷어낸 뒤에 남는 그 선함은 여전히 우리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또한 피에르나 레빈, 톨스토이처럼 방황하고 타락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선하게 살아가는 것, 선하게 살아가려는 마음은 우리 자신을 지키는 힘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