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반격 - 디지털, 그 바깥의 세계를 발견하다
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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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의 반격이 공존하는 시대에 유의미한 분석을 담고 있다. 사례가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고 문장도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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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컬트한 일상 : 봄.여름 편 나의 오컬트한 일상
박현주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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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가장 즐겨 읽는다. 요즘 관심 있는 장르는 이른바 '일상 미스터리'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처럼, 복잡한 트릭이나 끔찍한 살인 사건이 나오지 않아도, 일상에 숨겨진 크고 작은 수수께끼를 해결하면서 무시했거나 감춰져 있던 진실에 다가가고 이를 통해 인물들이 성장해가는 이야기에 끌린다. 


박현주의 <나의 오컬트한 일상>은 '한국형 일상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할 만하다. 주인공 도재인은 프리랜서 작가이자 번역가로,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애인도 없고 몸담은 직장도 없이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지만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아서 지루할 틈이 없는 (나 같은) 여자다. 재인은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치는 바람에 1년 동안 일을 쉬게 되고,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친구가 소개한 신생 잡지사에서 오컬트 기사를 쓰는 일을 맡는다. 


'한국에 웬 오컬트?' 싶지만 의외로 많다. 번화가에 나가면 눈길을 돌리는 곳마다 하나씩은 꼭 있는 사주카페, 타로 카페를 비롯해, 점, 풍수, 일본에서 유래된 파워 스폿, 부적, 흉가, 기 클리닝 등 누구나 들어봤음직하지만 넓게 보면 오컬트라는 것은 인식하지 못했을 소재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재인은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일본 교토까지 누비며 오컬트에 관한 조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에 말려든다. 


"전통적인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을 후더닛(Whodunnit)이라고 한다. 누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누가 무엇을 훔치고, 죽이고, 노렸는가? 나는 이런 소설을 읽으며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거나 혹은 비평하는 독자로서 살았다. 하지만 막상 내가 책을 쓰려고 할 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가'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 후기 중에서) 


재인은 오컬트에 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남자를 알게 되고 그중 두 남자와 '썸'을 타게 된다.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재인이지만, 연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 많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모순이랄지, 순진한 면이 재미있다. 마지막 연애가 가물가물한 내가 할 말은 아닌가? 그럼 그런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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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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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는 정치인에서 지식 소매상으로 변신한 작가 유시민이 20대 시절에 읽은 열네 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이다. 2009년 초판이 나왔을 때 분명히 읽었는데, 8년이 지난 지금 신장판이 나와 다시 읽으니 새 책을 읽은 것처럼 내용이 새롭다. 커버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하니 새로운 건 내용이 아니라 나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소개된 책은 <죄와 벌>,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인구론>, <대위의 딸>, <맹자>, <광장>, <사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역사란 무엇인가> 등이다. 저자는 이 책 모두를 '필독 도서'로 추천하진 않는다. 한때는 열심히 읽었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보니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한 책도 있고, 젊어선 멋모르고 읽었는데 나이가 들어 다시 읽어보니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을 울린 책도 있다는 '감상(感想)'을 전하는 데 집중한다. 


저자의 감상이 8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는 내 마음에 와 닿았던 이유는 내가 바뀌기도 했지만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전환시대의 논리>에 실린 에세이의 한 대목 - '가장 어리석은 소년에 의해서 온 사회의 허위가 벗겨지기까지 그 임금과 재상들과 어른들과 학자들과 백성들은 타락과 자기부정 속에서 산 셈이다.' - 은 지난해 말 드러난 박근혜 -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권력을 쥔 적대 세력에게 공산당 같다고 비난받지 않은 야당이 어디 있으며"라는 문장은 한국의 보수 정당이 진보 정당에게 허구한 날 들이대는 칼날을 닮았다. 이를 깨달은 건 내가 (부끄럽게도) 지난해 말에야 한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박근혜가 탄핵되고 새 정권이 출범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이지, 그전엔 깨닫지도 못했고 깨달았다 한들 현실 정치와 연결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책의 전체적인 맥락이나 주제와 상관없이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목은 이것이다. "하 걸왕과 은 주왕, 주 유왕의 폭정 책임을 말희, 달기, 포사라는 여인들의 책임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여인들이 없었더라도 세 폭군은 다른 여자를 그 자리에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랏일을 팽개치고 환락에 빠진 책임은 왕에게 있지 여자에게 있는 게 아니다. 중국 고대 역사 기록을 담당한 것이 남자들이었던 만큼 이런 기록은 당대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120쪽) 


초판에도 위 대목이 나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초판에도 있었다면 다행이고, 신장판에만 추가된 대목이라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니 반갑다. 특이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은 "그 여인들이 없었더라도 세 폭군은 다른 여자를 그 자리에 놓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포함해 여러 역사서를 읽었음에도 이를 눈치채지 못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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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변호사
존 그리샴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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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8세 여아 살인 사건 같은 범죄 보도를 접할 때마다 변호사는 어떻게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변호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모든 사람에게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 범죄자를 변호하는 건 뭔가 께름칙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인간쓰레기를 변호할 수가 있습니까?" 존 그리샴의 신작 <불량 변호사>의 주인공 서배스천 러드는 이 질문을 달고 산다. 러드는 변호사라면 누구나 꺼리는 소송만 담당하는 '불량 변호사'다. 아동 성추행 전과가 있는 악마 숭배 집단의 일원, 교도소 철창 안에서 사업을 하다가 유죄판결을 받자 판사를 살해한 무법자, 이종 격투기 경기에서 판정패하자 심판을 두들겨 팬 선수 등 누가 보아도 범죄자가 분명한,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한 피고인이 러드의 담당이다. 


러드가 중죄로 기소된 피고인만 골라서 변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러드는 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 자리보전을 해야 하는 관료, 승률을 올려야 하는 검사와 변호사가 합심해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찍고 거짓 증거를 만들고 실제 범죄를 은폐하는 현실을 잘 안다. 미디어가 진실을 가리거나 거짓을 부풀리고, 순진한 대중이 권력과 미디어를 믿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 역시 질리도록 봤다. 


러드는 선량한 척하는 불량배의 편에 서느니 대놓고 불량 변호사가 되는 편을 택한다. 불량배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운 나쁘게 불량배들의 먹잇감이 된 사람을 구하는 것이 그가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의다. "나 같은 변호사는 그림자 속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 내 적수들은 경찰 배지와 제복, 국가 권력이 준 무수한 장치로 보호받는다. 그들은 법을 준수하겠다고 맹세했으며 그럴 의무가 있지만, 빌어먹을 속임수를 엄청나게 써대므로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더 심한 속임수를 써야만 한다." (183쪽) 


불량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불량한 방법으로 응수하는 러드의 모습은 통쾌하기도 하지만 안쓰럽기도 하다. 옳은 일을 하고도 불량 변호사라는 딱지를 달고 살고,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했던 피고인을 구하고도 마땅한 대가를 받지 못하니 안타깝다. 사생활에선 전처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나뿐인 아들의 면접 교섭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등 불운이 잇따라 짠하기까지 하다. 


한국에도 러드처럼 겉보기에만 불량한 변호사가 많으면 좋으련만, 어쩐지 내 눈에는 무고한 어린아이를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한 사람도, 국민들이 낸 연금을 맘대로 사용한 사람도 돈이 있고 힘이 있으면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주는, 진정한 의미의 불량 변호사들이 더 많이 보인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 모두에게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는 것보다, 밥벌이에 급급하고 부귀영화와 양심을 바꾸는 법률가들이 더 눈에 띈다. 


법률가뿐 아니라, 선량한 얼굴로 불량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과 불량한 얼굴로 선량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지혜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선량함의 가면을 쓰고 불량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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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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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 읽기 좋은 계절은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낮에는 더워서 책 읽을 여력이 없고, 밤에는 지쳐서 자기 바쁘니 웬만큼 재미있지 않으면 책 읽기가 꺼려진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하루에 책을 두세 권씩 읽던 나 역시 요즘은 사나흘에 한 권 읽기도 벅차다. 이 와중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위험한 비너스>는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으니 재미있기는 했나 보다. 


동물병원 수의사 데시마 하쿠로는 어느 날 낯선 여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하쿠로의 이부 동생 야가미 아키토의 아내라고 밝힌 여자는 아키토가 현재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함께 찾아달라고 매달린다. 하쿠로는 아키토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몇 년째 왕래가 없었던 아키토가 가족들 몰래 결혼한 사실과 아키토의 아내가 하필이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사실에 놀란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결국 여자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여자와 함께 아키토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때마침 아키토의 친아버지 야가미 야스하루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하쿠로는 아키토의 아내 가에데와 함께 오랜만에 야가미가(家)를 찾는다. 유산 분배를 기대하던 야가미가 사람들은 몇 년째 왕래가 없던 하쿠로가 등장하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가에데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긴다. 


불편한 분위기를 견디며 야스하루의 유산을 살펴보던 하쿠로는 자신의 친아버지이자 33년 전에 요절한 무명화가 데시마 가즈키요의 그림과 똑같은 그림을 야스하루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아버지가 생전에 양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다는 걸 알게 된 하쿠로는 양아버지가 친아버지의 죽음은 물론, 16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에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어쩌면 아키토가 행방불명이 된 것도 이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지도...? 


하쿠로는 복잡한 가족사 탓에 집안일에 무심했다. 친아버지는 요절해 기억도 잘 안 나고, 어머니는 명문가 출신 의사와 재가해 동생을 낳았으니 등돌리고 싶을 만도 하다. 그랬던 하쿠로가 동생의 실종을 계기로 친척들을 만나고 가족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왠지 모르게 친아버지가 준 성(姓)을 버리기 싫었던 것도, 야가미 가의 주요 사업인 의료 분야 대신 수의사의 길을 택한 것도 어릴 때 겪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보다 가족을 싫어했지만 누구보다 가족적인 남자였다. 하쿠로는. 


소설의 제목 <위험한 비너스>는 무엇을 뜻할까. 적어도 둘은 알겠다.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하쿠로의 마음을 휘저은 여자 '가에데'. 다른 하나는 고도로 발전해 누구든 비너스(천재)로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한 '의학 기술'이다. 재미와 감동, 교훈까지 모두 잡은 이 소설. 하쿠로가 만나는 여자마다 얼평, 몸평을 해대는 시대착오적인 남자라는 점만 빼면 제법 괜찮은 대중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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