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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변호사
존 그리샴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인천 8세 여아 살인 사건 같은 범죄 보도를 접할 때마다 변호사는 어떻게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변호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모든 사람에게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다고 해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 범죄자를 변호하는 건 뭔가 께름칙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인간쓰레기를 변호할 수가 있습니까?" 존 그리샴의 신작 <불량 변호사>의 주인공 서배스천 러드는 이 질문을 달고 산다. 러드는 변호사라면 누구나 꺼리는 소송만 담당하는 '불량 변호사'다. 아동 성추행 전과가 있는 악마 숭배 집단의 일원, 교도소 철창 안에서 사업을 하다가 유죄판결을 받자 판사를 살해한 무법자, 이종 격투기 경기에서 판정패하자 심판을 두들겨 팬 선수 등 누가 보아도 범죄자가 분명한,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한 피고인이 러드의 담당이다.
러드가 중죄로 기소된 피고인만 골라서 변호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요." 러드는 법이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인, 자리보전을 해야 하는 관료, 승률을 올려야 하는 검사와 변호사가 합심해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찍고 거짓 증거를 만들고 실제 범죄를 은폐하는 현실을 잘 안다. 미디어가 진실을 가리거나 거짓을 부풀리고, 순진한 대중이 권력과 미디어를 믿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 역시 질리도록 봤다.
러드는 선량한 척하는 불량배의 편에 서느니 대놓고 불량 변호사가 되는 편을 택한다. 불량배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운 나쁘게 불량배들의 먹잇감이 된 사람을 구하는 것이 그가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의다. "나 같은 변호사는 그림자 속에서 일하는 수밖에 없다. 내 적수들은 경찰 배지와 제복, 국가 권력이 준 무수한 장치로 보호받는다. 그들은 법을 준수하겠다고 맹세했으며 그럴 의무가 있지만, 빌어먹을 속임수를 엄청나게 써대므로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더 심한 속임수를 써야만 한다." (183쪽)
불량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불량한 방법으로 응수하는 러드의 모습은 통쾌하기도 하지만 안쓰럽기도 하다. 옳은 일을 하고도 불량 변호사라는 딱지를 달고 살고,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 거의 확실했던 피고인을 구하고도 마땅한 대가를 받지 못하니 안타깝다. 사생활에선 전처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나뿐인 아들의 면접 교섭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등 불운이 잇따라 짠하기까지 하다.
한국에도 러드처럼 겉보기에만 불량한 변호사가 많으면 좋으련만, 어쩐지 내 눈에는 무고한 어린아이를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한 사람도, 국민들이 낸 연금을 맘대로 사용한 사람도 돈이 있고 힘이 있으면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주는, 진정한 의미의 불량 변호사들이 더 많이 보인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 모두에게 공정한 재판을 실현하는 것보다, 밥벌이에 급급하고 부귀영화와 양심을 바꾸는 법률가들이 더 눈에 띈다.
법률가뿐 아니라, 선량한 얼굴로 불량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과 불량한 얼굴로 선량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지혜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선량함의 가면을 쓰고 불량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