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031 | 1032 | 1033 | 10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작년 여름 일본에 갔을 때 한창 화제를 모으던 애니메이션이 두 편 있었다. 하나는 한국에서도 크게 흥행한 <너의 이름은>이었고, 다른 하나는 최근 개봉한 <목소리의 형태>였다. <목소리의 형태>는 일본 방송에서 신작 영화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즉시 흥미를 가졌다. 아무도 모르게 자살을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생 이시다 쇼야.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니시미야 쇼코라는 아이를 괴롭혔다는 이유로 현재까지 따돌림을 당하며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 하나 없이 고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쇼야와 쇼코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쇼코에게는 청각장애가 있었다. 쇼코가 전학온 날, 쇼야네 반 아이들은 청각장애가 있는 쇼코를 따뜻하게 맞았다. 하지만 반 아이들은 점점 쇼코를 불편하게 여기고 따돌리기 시작했다. 가장 짓궂은 아이가 쇼야였다. 쇼야는 쇼코를 밀치거나 보청기를 억지로 떼내어 던지는 등 크고 작은 '장난'을 일삼았지만 당하는 쇼코에겐 '괴롭힘'이었을 터. 그러나 쇼코는 울거나 화내는 대신 미소로 화답하거나 도리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때마다 쇼야는 당황했고 쇼코를 더욱 짓궂게 괴롭혔다. 결국 쇼코가 전학가기로 결정하자 학교측은 가해자를 찾아 나섰고 담임 교사와 반 아이들은 일제히 쇼야를 지목했다.


담임 교사가 쇼코를 괴롭힌 가해자로 쇼야를 지목한 것은 반 아이들에게 쇼야를 괴롭혀도 좋다는 허가를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날부터 쇼야가 새로운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 아이들 누구도 쇼야 곁으로 오거나 쇼야에게 말 걸지 않았다. 어제까지 쇼야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누구보다 가혹하게 쇼야를 괴롭혔다. 작은 동네이다 보니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쇼야가 초등학교 시절 장애가 있는 아이를 괴롭힌 가해자라는 소문이 금방 퍼져서 쇼야는 새로운 친구를 한 명도 사귈 수 없었다. 쇼야로선 이대로라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리하여 쇼야는 자살하기로 마음 먹지만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결국 쇼야는 다시 한번 쇼코를 만나 사과하기로 한다. 쇼코에게 사과하기 위해 수화까지 배운 쇼야는 긴 망설임 끝에 쇼코를 만나러 간다. 쇼야는 쇼코가 자신을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쇼코의 동생에게 위선자라는 말까지 듣지만, 정작 쇼코는 쇼야가 자신을 위해 수화를 배운 것에 감탄하며 헤어질 때에는 "또 보자"라는 수화까지 한다. 과연 쇼코는 쇼야를 용서한 것일까? 쇼코와 쇼야는 이대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쇼야와 쇼코가 다시 만나도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우선 쇼코의 가족인 쇼코의 어머니와 쇼코의 여동생 유즈루는 쇼야를 용서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시절 쇼야와 함께 쇼코를 괴롭힌 우에노 나오키와 카와이 미키는 쇼야에 비하면 자신들이 쇼코를 괴롭힌 죄는 가볍다고 변명하지만, 쇼야에게 있어 이들은 같이 쇼코를 괴롭혔고 나중에는 자신까지 괴롭힌 이중 가해자이다. 쇼코의 유일한 친구였지만 끝까지 쇼코를 지켜주지 못하고 도망친 사하라 미요코의 심정도 편하지 않다. 쇼야와 쇼코는 그들의 재회가 오랫동안 덮여 있었던 문제를 들춘 것 같아 또 다시 괴롭다.


청각장애인에 대한 집단 따돌림이라는 소재 탓에 이 영화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함을 느낀 지점은 청각장애인에 대한 집단 따돌림이 아니라 어느 사회나 집단마다 존재하는 배척과 무시, 불통의 기억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교실 풍경은 내게도 익숙했다. 조금 튀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사정 없이 공격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꾸짖기는커녕 방관하는 교사. 어릴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어느 집단에나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런 리더가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직접적으로 배척하지도, 배척하는 사람들을 비판하지도 않고 수수방관했다. 그러나 배척당하는 사람에게 과연 나의 태도가 '수수방관'하는 것으로 보였을까. 그에겐 배척하는 것이나 나처럼 수수방관하는 것이나 자신의 고통을 몰라준다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배척 당한 사람의 고통을 이해한 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배척당하고 무시받는 일을 몇 번인가 겪고나서야 그들이 느꼈을 고통을 짐작했다. 쇼야는 보다 빠르게, 분명하게 쇼코의 고통을 느꼈다. 쇼코의 자리가 비워지고 그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 따돌림을 당하는 입장이 되자 그동안 쇼코가 느꼈을 고통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쇼코가 언젠가 자신에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고, 이제는 자신이 쇼코에게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어야 할 차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쇼코를 찾아가 사과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쇼야는 쇼코의 언어인 수화를 배우기로 한다. 마침내 고등학생이 되어 쇼코를 찾아갔을 때, 쇼코가 의외로 너무 쉽게 쇼야의 사과를 받아들인 것은 쇼야가 쇼야의 언어가 아닌 쇼코의 언어로 사과했기 때문이다. 가족 이외의 사람과는 제대로 소통해본 적이 없는 쇼코가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렸던, 자신에게 말 걸어주고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줄 친구. 바로 그 사람이 쇼야라는 사실에 어쩌면 쇼코는 두려움보다 고마움을 더 느끼지 않았을까. 나는 왜 이제서야 배척 당하는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보다 힘든 사람에게 손내밀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기억이 나를 찔렀다.


이 영화에는 쇼야와 쇼코 외에도 제대로 소통해본 적이 없거나 소통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쇼야처럼 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다가 쇼야와 친구가 되는 나가츠카 토모히로, 청각장애가 있는 언니를 챙기느라 정작 자기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쇼코의 여동생 유즈루, 초등학교 시절 쇼코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았던 사하라 미요코 같은 인물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다른 인물들은 영화를 보다가 '이런 XX'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싫은 구석이 없지 않지만,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영화를 끝까지 보면 알 수 있다(그렇다고 용서할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쇼야와 쇼코의 5학년 때 담임 교사는 보는 내내 욕이 나왔다. 원작에선 더 심하다는데 과연 눈 뜨고 볼 수 있을지).


나는 그동안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케이온>, <빙과>, <타마코 마켓>, <FREE!>, <울려라! 유포니엄> 등 다수의 쿄애니 작품들을 봐왔고, 재작년에는 교토에 있는 쿄애니 본사에도 가보았을 만큼(내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만 자체 견학 ^^) 쿄애니 작품을 좋아하는 팬이다. 쿄애니 팬으로서 <목소리의 형태>는 이제까지 본 쿄애니 작품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작화나 연출, 내용 면에서 훌륭했다. 영화도 좋았는데 원작 만화는 더 좋았다고 하니 어서 구입해 읽어봐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애니비평 2017-06-0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와 만화 모두 보니
영화의 특성이 제대로 보여주기는 좋으나
원작 만화가 더 내용이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쇼타의 어머니역을 맡은
성우분 목소리를 들어서 좋았습니다..우히히

키치 2017-06-10 13:03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를 먼저 보고나서 원작 만화를 보니
원작 만화가 내용 면에서 훨씬 충실하고 풍부해서 좋았습니다.
말씀하신 분은 쇼야의 어머니 역을 맡은 유키노 사츠키 성우분 맞나요?
이력을 찾아보니 제가 본 만화에도 많이 나오셨네요!
덕분에 좋은 성우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월화수목육아일 - 육아 퇴근을 꿈꾸는 엄마들을 위한 힐링북
썬비 지음 / 허밍버드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집단을 꼽으라면 육아맘들이 아닐까. 낮에는 맞벌이하랴, 밤에는 아이 보고 살림하랴, 휴일은커녕 잠깐 휴식할 짬도 없이 24시간을 48시간처럼 보내는 주변의 육아맘들을 보면 나까지 마음이 안쓰럽다. 그런 육아맘들을 위한 생활밀착형 육아 그림일기가 책으로 나왔다. 네이버 맘키즈, 인스타그램 인기 육아툰을 엮은 썬비의 <월화수목육아일>이다. 


저자 썬비는 애니메이션과 졸업 후 웹툰, 캐릭터 디자인,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모바일 콘텐츠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남편 '조엘'과 결혼해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만끽하던 저자는 어느 날 기적처럼 '마요'를 임신했고, 임신 사실을 안 그날부터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남편은 물론 가족과 지인 모두 기뻐했지만 엄마인 저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이 낳을 때 많이 아프겠지? 살도 많이 찌겠지? 내 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등등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분'이 오신 뒤부터 시원한 맥주도 마시면 안 되고, 맛있는 회도 먹으면 안 됐다. 수영장도 바다도 갈 수 없고, 염색도 파마도 해선 안 됐다. 


평소처럼 일을 해도 평소보다 두 배 이상 피곤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들었다. 잘 때는 복부 팽창으로 인한 혈액순환 장애로 손발이 저려서 깨기 일쑤이고, 몸이 불어나 임신 전에 입었던 옷은 물론 남편 옷조차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상보다 기나긴 열 달을 보내면서 저자가 좌절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곧 있으면 만나게 될 아기 '마요' 덕분이었다. 


아기를 낳고 나면 편할 줄 알았던 건 착각이었다. 날마다 그저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울 뿐인데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하루 종일 아기 보느라 대화를 못해서 퇴근한 남편 붙잡고 수다 떠느라 밤새우고,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고, 출산 전의 몸매로 돌아가지 않아서 속상하고 답답했다. 그런데도 어쩌다 잠시 '육(아) 퇴(근)'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새 아기가 부쩍 자란 것 같아서 대견하고 아기 얼굴 들여다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화려하게 연말을 보내는 SNS 속 사람들과 집에서 아기 돌보느라 정신없는 자신의 연말을 비교하며 속상해하는 저자를 보면서 나도 같이 속상했는데, 그런 저자가 '나는 잘 하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뭉클했다. 육아맘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무한 공감'을 넘어 '무한 힐링' 받을 듯. 주변의 육아맘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월화수목육아일 - 육아 퇴근을 꿈꾸는 엄마들을 위한 힐링북
썬비 지음 / 허밍버드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집단을 꼽으라면 육아맘들이 아닐까. 낮에는 맞벌이하랴, 밤에는 아이 보고 살림하랴, 휴일은커녕 잠깐 휴식할 짬도 없이 24시간을 48시간처럼 보내는 주변의 육아맘들을 보면 나까지 마음이 안쓰럽다. 그런 육아맘들을 위한 생활밀착형 육아 그림일기가 책으로 나왔다. 네이버 맘키즈, 인스타그램 인기 육아툰을 엮은 썬비의 <월화수목육아일>이다. 


저자 썬비는 애니메이션과 졸업 후 웹툰, 캐릭터 디자인,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현재는 모바일 콘텐츠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남편 '조엘'과 결혼해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만끽하던 저자는 어느 날 기적처럼 '마요'를 임신했고, 임신 사실을 안 그날부터 엄마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남편은 물론 가족과 지인 모두 기뻐했지만 엄마인 저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이 낳을 때 많이 아프겠지? 살도 많이 찌겠지? 내 몸은 어떻게 되는 걸까?' 등등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분'이 오신 뒤부터 시원한 맥주도 마시면 안 되고, 맛있는 회도 먹으면 안 됐다. 수영장도 바다도 갈 수 없고, 염색도 파마도 해선 안 됐다. 


평소처럼 일을 해도 평소보다 두 배 이상 피곤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들었다. 잘 때는 복부 팽창으로 인한 혈액순환 장애로 손발이 저려서 깨기 일쑤이고, 몸이 불어나 임신 전에 입었던 옷은 물론 남편 옷조차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상보다 기나긴 열 달을 보내면서 저자가 좌절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곧 있으면 만나게 될 아기 '마요' 덕분이었다. 


아기를 낳고 나면 편할 줄 알았던 건 착각이었다. 날마다 그저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울 뿐인데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하루 종일 아기 보느라 대화를 못해서 퇴근한 남편 붙잡고 수다 떠느라 밤새우고, 마지막으로 영화를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고, 출산 전의 몸매로 돌아가지 않아서 속상하고 답답했다. 그런데도 어쩌다 잠시 '육(아) 퇴(근)'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새 아기가 부쩍 자란 것 같아서 대견하고 아기 얼굴 들여다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화려하게 연말을 보내는 SNS 속 사람들과 집에서 아기 돌보느라 정신없는 자신의 연말을 비교하며 속상해하는 저자를 보면서 나도 같이 속상했는데, 그런 저자가 '나는 잘 하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뭉클했다. 육아맘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무한 공감'을 넘어 '무한 힐링' 받을 듯. 주변의 육아맘들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력 - 사람을 얻는 힘
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성악설을 믿는다. 인간은 본디 악한 존재이고, 공부와 경험과 수양을 통해 선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력>의 저자 다사카 히로시 역시 인간은 원래 미숙한 존재이며 죽는 그 순간까지 수양을 통해 인격을 완성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으로서의 역량을 키우고 인격을 수양하는 능력, 즉 '인간력'을 갖추는 것이 성공의 척도라고 본다. "인간력이 높은 사람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뛰어난 대인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방과의 이해와 대립을 훌륭히 조절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자신의 욕구보다 우선할 수 있다." 


인간력을 높이기 위해 사람들은 주로 고전을 읽는다. 저자에 따르면 고전 읽기는 인간력을 높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첫째, 과정을 생략하고 갑자기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고전에 나오는 인물들이 훌륭한 인격을 갖추게 된 데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 좌절과 극복이 뒤따랐다. 둘째, 내면의 사욕과 사심을 버리기 어렵다. 흔히 사리사욕은 버리거나 감춰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인간인 이상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개인적인 욕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리사욕을 애써 부정하거나 긍정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러기가 어렵다. 셋째,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 고전에 나오는 인물들이 부모에게는 어떤 자식이었고, 자식에게는 어떤 부모였으며, 배우자나 친구에게는 어떤 얼굴을 보였는지 현대의 독자는 알기 힘들다. 


저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완벽해지길 포기하라고 조언한다. 단단하기보다는 부드러워지고, 자기 안의 작은 자아를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라고 충고한다. 싫은 사람이 있으면 대놓고 비난하거나 뒤에서 험담하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은 없는지, 자기가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고 한다. 저자는 "싫어하는 사람은 사실 자신과 닮았다"라며,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사람이나 혐오스러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가진 결점이나 혐오스러운 면이 자기 안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라고 한다. 


저자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반박할 점도 있다. 예를 들어 지난 대선 때 모 후보가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을 일삼고 젊은 시절 강간 모의를 했던 일과 장인에게 패륜을 저지른 일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분노하고 혐오감을 느낀 것은 모 후보에게 자신을 투사했기 때문이 아니라 모 후보가 옳지 않은 발언과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사람이나 혐오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자기혐오가 투영된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무조건 참고 이해하기보다는 좋아지지 않는 이유를 분석하고 혐오스러운 사람에게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인간력'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이저 세컨드 1
미쯔다 타쿠야 지음, 오경화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츠다 타쿠야의 <메이저 세컨드>는 1994년부터 2010년까지 연재된 인기 야구 만화 <메이저>의 후속작이다. 주인공은 <메이저>의 주인공 시게노 고로의 아들 시게노 다이고. 아버지가 미국 메이저 리그에도 진출한 야구 천재이니 자랑스러워할 만도 한데, 정작 다이고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기는커녕 버거워 한다. 한때는 다이고도 "아버지 같은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할 만큼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고 야구도 좋아했다. 하지만 막상 야구를 해보니 실력이 금방 늘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아버지와 비교당하는 소리를 듣자 아버지의 명성이 부담스러워지고 야구도 전처럼 재미있지 않았다. 


오랫동안 사랑받은 인기 작품의 후속작인 데다가 주인공이 전작 주인공의 아들이고 '2세 콤플렉스'를 설정이라.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지난해 출간된 '해리 포터' 시리즈 제8권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의 설정과 꼭 닮았다.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의 주인공은 해리 포터의 둘째 아들 알버스 포터. 알버스 역시 아버지 해리가 마법 세계의 전설적인 영웅이라는 사실이 부담스럽고 자신의 실력이 아버지의 명성에 미치지 못해 실망스럽다. 설상가상 마법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치르게 된 기숙사 배정에서 아버지가 속해 있던 그리핀도르 기숙사가 아닌 슬리데린 기숙사에 배정되어 아버지와의 거리가 한 뼘 더 멀어지게 된다. 시게노 고로의 아들 다이고도 알버스와 같은 마음일까. 


같은 것이 하나 더 있다.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에서 해리 포터의 알버스가 말포이의 아들 스코피어스와 친구가 되는 것처럼, <메이저 세컨드>에서는 시게노 고로의 아들 다이고가 고로의 절친이자 라이벌인 사토 토시야의 아들 히카루와 가까워진다. <메이저>에서 사토 토시야는 원래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우등생이었는데 고로의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해 고로와 함께 메이저 리그에 진출하는 인물이라고. <메이저>를 안 봐서 토시야가 어떤 성격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들 히카루만큼 유쾌 발랄한 성격은 아니었을 듯.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 사춘기라서 그런지 살짝 비뚤어진 다이고의 성격을 히카루가 앞으로 어떻게 바꿀지 기대된다. 다이고가 아버지 고로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메이저 세컨드>가 전작 <메이저>의 인기를 앞지를 수 있을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031 | 1032 | 1033 | 103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