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
위르겐 슈미더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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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저널리스트 위르겐 슈미더는 어느 날 앞으로 40일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고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언했다. 거짓말 안 하고 사는 게 뭐가 그리 어렵냐고? 저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한 죄로 친구와 싸우고 부모님을 화나게 했으며 아내와는 이혼 위기에까지 몰리고 급기야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대참사를 겪기도 했다. 대체 거짓말 안 하고 사는 게 얼마나 어렵길래?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길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겠다면 그의 책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를 읽어볼 것을 권한다.



나도 처음엔 거짓말 안 하고 사는 게 뭐 그리 큰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거짓말을 안 한다는 게 비단 남을 속이기 위한 말을 안 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일을 대충대충 처리하는 역무원이나 점원에게 억지로 매너있게 굴지 않고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는 것, 아내나 친구, 가족, 심지어는 회사 동료나 상사에게 불평불만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도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속이거나 감추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것이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라면, 평소 나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일까?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 기분 나쁜데 안 나쁜 척 하는 게 거짓말이라면 나도 저자 못지 않은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을 안 하고 오직 진실만을 말하다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의외의 수확도 있었다. 예전에는 아내와 친구들한테 칭찬을 해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는데, 거짓말을 안 한다고 선언한 다음부터는 칭찬을 하면 모두들 기뻐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형과는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화를 하며 우애가 돈독해졌고, 말만 했다 하면 싸움이 되는 바람에 대화를 피했던 아버지와의 사이도 훨씬 원만해졌다. 절정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대목이다. 저자는 그동안 온갖 스트레스의 원인이 직장이나 친구, 가족 등 외부에 있다고 불평했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하자고 마음먹고 나서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 자기 자신임을 인정했다. 좌충우돌 사건이 끊이지 않는 저자의 40일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만 교훈과 감동도 그 못지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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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손영미 옮김 / 이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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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융 심리분석 전문가 클라리사 에스테스가 쓴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은 세계 각국의 신화와 민담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여성의 잠재된 본능을 설명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 선생님이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언급하고 추천하셔서 알게 되었는데, 읽어보니 역시 좋았다. 오래 전부터 설화나 민담 연구라든지 신화학, 문화인류학 등에 관심이 있었고, 여성학에도 관심이 있고, 최근 몇 년 동안 심리학, 정신분석학 책도 열심히 읽었는데, 그 모든 독서와 공부와 배움이 이 책 한 권으로 정리가 되는 듯 했다. 결코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빨간 구두>, <미운 오리 새끼> 등 잘 알려진 동화들을 여성학,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부분만 읽어도 참 재미있다. 물론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미도 깊다.



나는 오랫동안 여성을 뜻하는 영단어 'woman'이 자궁을 뜻하는 영단어 'womb'과 'man'의 합성어인 줄 알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womb'이 아니라 'woe', 즉 늑대(wolf)의 옛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는 원초적인 여성성의 기저에는 야성의 늑대가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실제로 세계 각국의 민담이나 신화, 전설 등을 찾아보면 늑대가 등장하는 것이 많고 대부분이 여성을 상징한다고 한다(책에 나오는 사례는 아니지만 로마 건국신화의 주인공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암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 또한 여성과 늑대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향과 가부장제, 근대화 등으로 인해 늑대 같은 야성적 자아는 제거되고 여성은 오로지 어머니, 성모, 천사 같은 포장된 이미지를 강요받게 되었다. 그 결과 여성은 내면의 야성적인 자아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압하며 심리적인 압박과 공황 상태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이를 깨닫고 자신의 늑대, 즉 야성적 자아를 회복한다면 여성은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늑대가 상징하는 야성적 자아를 심리학에서는 '아니무스'라고 표현한다. 심리학, 정신분석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남성적인 면을 상징하는 아니무스와 여성적인 면을 상징하는 아니마가 공존하며, 두 가지를 균형있게 발전시킬 때 비로소 성숙한 자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동화나 민담에서는 아니무스를 늑대, 아버지, 오빠, 왕자 등 다양한 동물이나 남성 캐릭터로 표현한다. 계모와 언니들에게 천대받던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다든지, 심부름 가던 빨간모자가 숲속에서 늑대를 만나 위험에 빠졌다는 등의 이야기도 원래 여성 내면의 다양한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는 단군신화나 삼국유사의 일화들이 사실은 고도의 상징과 은유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야성성을 개발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저자는 야성성과 직결되는 창의성과 예술성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면서 내면의 늑대에게 삶을 불어넣으라고 충고한다. 삶의 반대말인 죽음은 단지 신체의 기능이 정지하고 목숨이 꺼지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꿈이나 일상 속에서 실천하려고 마음먹었던 계획을 이루지 않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 또한 죽음이다(그렇다면 나는 이제까지 몇 천 번은 죽었다 깨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꿈과 계획이라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산다면 내면의 늑대는 삶을 이어갈 생명력을 얻어 활발히 움직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오프라 윈프리, 힐러리 클린턴, 레이디 가가 등처럼 전통적인 여성상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한 여걸들처럼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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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멈추는 시간 - 삶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때, 나를 위로하는 성서
이나미 지음 / 민음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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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기독교 관련 서적을 연이어 두 권 읽었는데 신자가 아닌지라 이런 책을 읽으면 즐거운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든다. 하지만 이 책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성서 내용을 잘 몰라도 읽을 만했다. 저자 이나미는 융 연구로 유명한 정신과 의사. 저자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라고 한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예수님과 부처님, 공자님, 마호메트와 힌두의 신들을 모두 인정하는 다신교도(나랑 똑같다).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는 절대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지만, 몇 년 전 어떤 이들에게는 과학이나 의학적인 심리 상담보다도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런 생각으로부터 태어난 이 책은 이별로 인한 고통, 가족으로부터 입은 상처, 분노와 미움, 허무 등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심리문제의 해답을 성서에서 찾는 '성서 치유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들 중에는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서 복을 주는 것이라고 믿고, 나쁜 일이 있으면 벌을 주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길가나 지하철에서도 자주 '예수 믿고 천국 가라', '예수 믿고 복 받으라'는 식의 말을 들을 수 있는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다 지옥 가라는 것인가, 복 받지 말라는 것인가, 그런 자세로 종교를 믿는 사람을 과연 좋은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역시 이런 인과응보, 기복신앙 적인 종교적 태도는 지양한다. 좋은 일이 생기면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나쁜 일이 생기면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건강한 종교적 태도라고 설명한다. 이는 가족이나 연인 등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별이나 불화 등 좋지 않은 상황을 내 탓 또는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한 종교적 태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운명이나 팔자려니 하고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옳지 않다. 저자는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성서속 인물과 구절을 인용해가며 설명한다. 신자가 아닌지라 모든 사례를 알고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신자라면 새로운 발견이 될 것 같다.



비단 성서의 내용만을 담고 있는 에세이는 아니다. 정신분석, 심리치료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나는 특히 예수의 삶을 통해서 '나는 이러이러해서 어려운 일은 못해', '내가 어떻게 그런 위험한 일을 해'라며 끊임없이 '나'만 강조하는 자아를 버리고, 더 큰 무언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참 자기'를 실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p.45). 자아, 초자아, 자기 같은 용어들을 이제껏 심리학 책에서 여러번 봐왔지만, 이렇게 예수의 삶에 빗대어 설명을 들으니 느낌이 달랐다. 신자 중에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겠다고 기도하는 이는 많아도, 예수처럼 자기를 희생하고 극복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이는 드물지 않을까? 기독교를 믿는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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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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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 친척들 모두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이며 한때는 어머니도 교회에 나가셨고,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 잠깐 교회에 다닌 적도 있으며 심지어는 미션계 대학을 나왔지만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잠깐 교회에 다닐 때 지금까지도 극복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얻은 탓인데, 그 때 이후 남에게 전도를 받아서 교회에 잠깐 나가보기도 하고 힘들 때 위안이 될까 해서 제 발로 찾아가 본 적도 있지만 꾸준히 다니기가 어려웠다. 전능하다는 신조차도 이십여 년 전 사람한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젤롯>의 저자 레자 아슬란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을까? 이란 출신인 저자는 어려서는 이슬람교를 믿었지만 1979년 이란 혁명 때 미국으로 건너간 다음에는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했다가 본격적으로 기독교를 공부하면서 다시 이슬람교도로 돌아간 복잡한(!) 이력의 소유자다. 저자는 불신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성서를 열심히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모순 투성이었고 신앙 자체에 대한 의문과 의심이 커졌다고 고백한다. 이런 파격적인 주장 때문인지 이 책은 종교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아마존 전체 베스트셀러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신자인 사람도, 나처럼 신자가 아닌 사람도 읽어볼 만한 주제이기 때문이라.



신자도 아니거니와 성서 내용에 밝지 않아 종교학자인 저자의 학술적인 설명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나병 환자를 고치는 기적을 일으켰다든가,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했다든가 하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성서 속 이야기들이 어떻게 가능했으며 기록되고 전승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읽을 만 했다. 저자는 기독교 신자들이 모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역사속 인물인 나사렛 예수를 구분하여 볼 것과, 나사렛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이들은 모두 예수 사후의 인물들로 당시로서는 이방인, 반항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염두할 것을 주장하는데, 이런 식으로 예수를 종교가 아닌 정치의 관점에서, 성서의 메시아가 아닌 정치적 이단아로 보는 점 역시 의의가 있다.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는 저자의 주장이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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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 당당한 나를 위한 관계의 심리학
크리스토프 앙드레 & 파트릭 레제롱 지음, 유정애 옮김 / 민음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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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발표나 면접을 앞두고, 형편없는 서비스나 대우에 불평하려고 할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려고 하기 직전에 극도의 긴장 상태를 느껴본 일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긴장은 생활에 필요하다고도 하지만, 너무 심한 경우에는 얼굴이 빨개지거나, 땀을 흘리거나, 말을 제대로 못하거나,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기도 하며, 이로 인해 생활에 지장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신과 전문의 크리스포트 앙드레, 파트릭 레제롱의 대표작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를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저자는 사람들이나 대중 앞에 나서기 전에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심리 상태를 '사회 불안' 또는 '사회 공포증' 으로 정의하고 이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기주장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관찰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 중 가장 낮은 층위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고 가장 높은 층위는 관찰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데, 높은 층위의 두려움일수록 불안의 정도가 심하고 극복하기가 어렵다. 사회 공포증은 무대 공포증, 일시적인 불안, 수줍음, 회피성 인격장애 등과 구분되는데, 만약 의심되는 증상이 있다면 정확히 어디에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원인을 알아야 치료도 할 수 있을 터. 사회 공포증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이를 두고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데, 부모의 유전 또는 타고난 기질을 탓하는 이도 있고, 양육 환경이나 트라우마 등 후천적인 영향에 주목하는 이도 있다. 나는 부모의 양육 환경 탓이 큰 것 같다. 병으로 분류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내성적이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책에 나온 사례처럼 수줍은 아버지와 강압적인 성격을 지닌 어머니 밑에서 자기 표현을 많이 하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발표나 면접에서 심하게 떨어본 일은 없고 오히려 너무 여유를 부려서 망친 적은 여러 번 있으니 책에서 말하는 사회 불안, 사회 공포증 증세는 나와 거리가 멀다. 이런 걸 보면 양육 환경보다도 다른 환경적 요인이나 선천적인 기질이 더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사람들 앞에 설 때마다 작아지는' 현상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생활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남 앞에 설 때마다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위험하다. 발표나 면접을 앞두고 긴장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철저히 준비할 것이며, 남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면 그 누가 사람에게 친절과 배려를 베풀까? 사랑을 고백할 때도 특유의 떨림이 없다면 간절한 마음이 잘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 심하면 몰라도 적절한 긴장과 불안은 생활에 약이 될 수 있다. 사회 불안이 병리적으로 다뤄질만큼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스트레스나 긴장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사회 불안, 사회 공포증도 옅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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