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시의 나라 - 중국 땅 12,500Km를 누빈 대장정, '당시'라는 보물을 찾아 떠나다
김준연 지음 / 궁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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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보보경심>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 현대 중국 여성이 우연한 사고로 타임 슬립해 청나라 황실 시녀가 된다는 황당한 설정인 데다가,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중국어는 더더욱 잘 모르는데도 재미있게 본 건 주옥같은 대사 덕분이다. 그야 의상도 예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한 편의 시같기도 하고 노래같기도 한 대사가 요즘 드라마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언어 자체에 매력을 느껴야 외국어 공부도 할 수 있는 법. 어쩌면 그 때부터 중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는지도 모르겠다.


<중국, 당시의 나라>는 저자가 직접 중국 땅 12,500km를 누비며 당시의 자취를 찾아다닌 기행문이다. 비유하자면 <나의 '중국 당시' 문화유산답사기>라고나 할까. 당시라고는 학창시절 고전문학 시간에 잠깐 배운 이백, 두보가 고작이라서 읽기 전부터 어려우면 어쩌나 겁을 집어먹었지만(게다가 두께마저 상당하다), 읽어보니 중국 고전시가 전문가다운 상세한 해설에 해당 지역에 대한 소개, 저자의 감상 등이 골고루 더해진 구성이라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당시든, 중국 역사든 문화든, 문외한인 내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저자가 기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직접 걸어서 당시에 관련된 문화유적을 찾아다니며 생각하고 느낀 바는 내 마음에 충분히 전해졌다.


당시에 관련된 문화유적이 대부분이지만 다른 시대의 유적도 없지 않다. 당시라고 해서 시와 시를 쓴 문인에 대해서만 소개한 것이 아니라, 시의 소재가 되고 문인들이 존경하고 흠모한 인물에도 주의를 기울인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무후사를 비롯한 삼국지 관련 유적들이다. 무후사는 제갈양을 기리는 사당인데, 비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중국 전역에 2천 개가 있고 심지어는 우리나라 전남 곡성에도 있다고 한다. 두보의 <촉나라 승상>, <옛 자취에 기대어 마음을 읊다>, 이상은의 <제갈양 사당의 옛 측백나무> 등을 알고 가면 좋은 곳이라고.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옛 고전시가를 알고 가면 더 좋은 문화유적이 많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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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4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도 가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문화유산이 많은데 중국에 대한 편견(시민의식 수준) 때문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나마 아는 거라고 만리장성, 시황제 무덤 정도뿐일 겁니다.

키치 2015-01-18 08:4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중국에 가 보았는데 스케일이 엄청나더라구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책읽기에서 글쓰기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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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어렵다. 지난 5년 동안 블로그에 서평을 천 편 이상 썼지만 쉽게 쓴 적은 한 번도 없다.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쳐도 마음에 드는 글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도움이 될까 싶어 글쓰기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읽고, 연습도 하고, 필사도 하고, 수업까지 받아보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혹시 나만의 '스타일'이 없기 때문일까? 시인, 비평가, 에세이스트 등 전방위로 활동하는 30년 경력의 문장 노동자 장석주의 신간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 따르면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여기서 스타일이란 '재료를 다루는 기교와 기술'이며, '어휘에 대한 편애, 문장을 쓰는 방식, 영감의 원천이 다른' 차이이며, '작품 요소들의 독특한 배열이고 구조이며 그것을 전체로 포괄하는 형식'이다. 헌데 그 스타일을 만드는 게 어디 쉬운가. 동서고금을 통틀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고 여겨지는 작가가 드문 것만 봐도 스타일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우리에겐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길을 안내해줄 책이 있다. 저자는 '밀실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글쓰기라는 지난한 길의 지도를 이 책 한 권에 담았다. 우선 '밀실'은 책읽기다. "작가란 쓰는 자이기 이전에 먼저 읽는 자"이다. 누에가 쉬지 않고 뽕잎을 먹듯이, 글을 쓰려면 먼저 남의 글부터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다음은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준비 단계인 '입구'. 입구를 거치면 글 쓰면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형성된 '미로'가 나온다. 미로를 통과하면 마침내 문학청년 또는 작가지망생이라는 껍질을 벗고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출구'가 나온다. 출구로 나온다고 끝이 아니다. 밖에는 김연수, 김훈, 피천득, 최인호, 박경리 등 국내 작가들부터 헤밍웨이, 무라카미 하루키, 허먼 멜빌, 샐린저, 카뮈, 헤세 등 외국 작가, 타계한 작가까지 수많은 '스타일리스트'들이 들어찬 '광장'이 있다. 여기서 내 색깔을 찾을 수 있다면 그는 성공한, 아니 위대한 글쟁이일 터. 승부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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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 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
헨리 뢰디거 외 지음, 김아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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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학생 한 명이 보는 시험을 대략적으로 세어보니 중간, 기말고사, 수행평가, 쪽지시험, 여기에 각종 입학, 졸업 시험, 학원 시험, 자격증 시험, 외국어 시험, 취업 시험 등등을 더하니 수십 여 개에 이른다. 시험만 보다가 학창 시절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시험. 그런데 이게 가장 효과적인 공부법이란다. 125년의 학습 연구, 40년의 인지심리학 연구, 11인의 학자가 공동 수행한 연구를 통해 도출된 하버드 대학교가 인증한 공부법을 담은 신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 따르면, 책을 반복해서 읽고 암기하는 전통적인 공부법보다 학습한 지식을 꺼내는 '인출 연습'이 효과적이며 시험은 인출 연습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시험을 보면 이전에 공부한 내용을 다시 기억해내는 작용, 즉 '반추'를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되는 지식을 다시 되살리게 되고, 이를 반복하면 뇌 속에 확실한 지식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영어학원에서 매번 영단어 100개씩 쪽지 시험을 보면서 영어 성적이 많이 올랐는데, 이제 보니 단어를 한번에 많이 외워서가 아니라 쪽지 시험을 통해 이전에 외운 단어를 반복해서 인출하는 연습을 한 게 효과가 있었나 보다. 



어렵게 배우면 오래 남는 것도 반추의 원리다. 미국에서는 '학습을 위한 글쓰기'라고 해서 수업에서 배운 주제에 대해 반추하며 짧은 글쓰기를 하는 과제가 있는데, 남이 쓴 글을 베껴 쓴 글과 달리 자신이 직접 손으로 쓴 글은 기억한 양이 월등히 많았다. 직접 노트 필기를 하거나 과제물이나 레포트로 작성한 내용은 기억에 오래 남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 같다. 일에 착수하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진짜 지식이며 노하우라는 대목도 주의 깊게 볼 만하다. 일에 필요한 지식이라고 해서 경영이나 회계 등 취업에 필요한 지식, 법률이나 의학 등 전문 직업적 지식만은 아니며, 인문, 사회,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두루두루 알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는 김정운의 <에디톨로지>라는 책에 나온 '편집'이라는 개념과도 맥락이 일치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지식, 새로운 공부가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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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4-12-28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쓸 줄 아는 리터러시 능력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암기만 하면 며칠 지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반복해서 쓰거나 다시 새롭게 쓰다보면 기억이 오래 가더군요. 저도 이 책에 관심이 있었는데 키치님의 서평을 읽어보니까 공부 잘 할 수 있는 새롭고 특별한 비결은 없는 것 같군요. ^^
 
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 -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 고전 속 심리여행
신동흔.고전과출판연구모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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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개봉한 정우성, 이솜 주연 영화 <마담 뺑덕>은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심청전>을 심청이 아닌 뺑덕어미의 시각에서 재해석했다는 설정만큼은 좋았다. 옛 이야기 속에서 뺑덕은 효녀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간 사이 아버지 심봉사의 옆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은 악녀이지만 영화에선 다르다. 뺑덕은 심봉사 때문에 어머니와 뱃속의 아이를 잃은 피해자. 심청은 그런 과거를 모른 채 뺑덕을 무너뜨리는, 마냥 효녀로만은 볼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건국대 신동흔 교수와 고전과출판연구모임이 공저한 <프로이트, 심청을 만나다>도 비슷한 관점을 취한다. 책에 따르면 심청은 눈에 안 보이는 아버지에 대해 과도한 책임감을 지닌 '강박적 배려'의 희생양으로,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아버지 곁을 떠남으로써 오히려 독립된 인간으로 거듭났고 새 삶을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심청전의 '진짜' 주제는 '효(孝)'가 아니라, 부모를 위해 나의 욕망을 포기하면서 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책에는 <심청전> 외에도 <장화홍련전>, <옹고집전>, <변강쇠가>, <심청가>, <흥보가> 같은 민담과 판소리,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한중록>, <만복사저포기> 같은 고전문학 작품 속 인물들의 내면을 심리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결과가 담겨 있다. 잘 알려진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홍계월전>, <적성의전>, <상사뱀설화> 등 덜 유명한 작품들도 소개되어 있어 그동안 몰랐던 옛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서사, 즉 이야기를 통해 독자가 가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시도다. 서사문학의 구조와 줄거리, 인물 심리를 분석하여 정신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시도는 이미 문학과 심리학을 결합한 문학치료라는 학문 분야로 정립되어 있다고 한다. 문학과 심리학 모두 관심 있고 좋아하니 한 번 공부해볼까? 익히 아는 고전을 다른 관점, 다른 방식으로 읽어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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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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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새 책 <에디톨로지>를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이다. 이제까지 공부라고 하면 책상 앞에 앉아서 책 읽고 문제 푸는 게 전부였지만, 오늘날의 공부는 다르다. 학교 밖에서, 책 이외의 매체를 통해 공부할 수 있고, 문제 풀고 시험 보면 공부 끝, 이 아니라 공부한 내용을 현실에서 활용하는 방법까지 체득해야 공부가 완성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늘고 있다.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학자들의 활동이 학계 내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TV, 신문, 책, 잡지는 물론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활동하는 학자들이 많다. 어느 대학 교수 또는 강사라는 '간판' 없이 활동하는 학자들도 자주 본다. 그러니 이제 공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책 읽고 시험 보는 공부라면 몰라도 내 이름 걸고 상품으로서 팔 수 있는 경지의 공부는 웬만한 노력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에디톨로지>의 메시지도 같은 맥락이다. 에디톨로지의 뜻을 찾아봤더니 세상 모든 것들을 구성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편집의 방법론, 즉 '편집학'이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 발명이랍시고 나오는 것들도 뜯어보고 파헤쳐 보면 원래 있던 것들을 접붙이거나 조금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 지식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세상에 필요한 지식 또한 기존 지식을 편집해서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지식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을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저자도 책에 짧게 언급하지만,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예다. 살아있는 동안 그가 편집한 것은 기존 제품, 타인의 기술, 경영학, 인문학, 디자인, 캘리그라피, 프레젠테이션, 검은 목폴라티 등등 수없이 많다. 물론 다른 CEO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기존 제품을 개량하고 타인의 기술을 이용하고 여러 학문을 접목하는 등의 활동을 해왔고 하고 있을 것이다. 허나 그는 그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훌륭하게 편집했고, 디자인, 캘리그라피, 프레젠테이션 등 전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과 접목하거나 재창조하는 일을 탁월하게 해냈다. 
 

저자 김정운 역시 모범이 되는 사례다. 그는 전공인 심리학을 문화와 접목한 문화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인 동시에 미술, 음악, 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조예를 책으로 풀어쓰고, 한국과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 나라의 문화를 비교하는 글을 쓰는 작가다. 최고는 삶과 학문을 접목한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학자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을 구분하고 섞지 않는 데 반해, 김정운은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같은 파격적인 제목의 책도 서슴지 않고 쓰고, TV 프로그램에 초대되면 2:8 가르마 머리와 양복 대신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파마머리와 가쿠란 패션을 선보이며, 유머러스하고 때론 선정적인 토크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의 저자답게 열심히 놀다가 아예 교수를 그만두고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화를 배우고 있다는 근황도 저자답다. 저만치 따로 놀던 공부와 놀이, 일과 생활, 학문과 취미를 섞으니 이렇게 재미있는 인생이 되고 훌륭한 책이 나온다. 책에 나온 말 중에 '텍스트는 콘텍스트에서 생성된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저자의 콘텍스트가 재미있으니 이런 재미있는 책이 나온다. 한때 연구실에 쳐박혀 공부나 할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고,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앞으로 나의 콘텍스트는 무엇일까,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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