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옷장의 비밀 - 美친 존재감의 심리
임윤선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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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에 행거를 설치했다. 그 전에는 5단짜리 수납장에 옷이며 양말, 속옷을 모두 넣고 코트나 점퍼, 자켓은 부모님 방에 딸린 드레스룸에 보관했는데, 옷 한 벌 찾으러 왔다갔다 하는 게 불편해 옷장을 사는 대신 공간을 덜 차지하고 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행거를 설치한 것이다. 그런데 행거에 코트며 점퍼, 자켓, 셔츠, 블라우스, 원피스 등을 가지런히 걸어놓으니 내 옷 취향이 고스란히 보여 놀랐다. 코트와 점퍼, 자켓 색상은 절반 이상이 검은색. 나머지도 그레이, 네이비, 카키 같은 차분한 색 일색이다. 셔츠와 블라우스는 화이트 아니면 블루 계열이고, 원피스는 죄다 페이즐리 무늬. 나의 옷 취향은 대체 어떤 심리를 반영한 것일까?

 

 

나의 옷 취향이 반영하는 심리적 특성을 알아보기 위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옷장의 비밀>이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 임윤선은 한양대 교육대학원 예술치료교육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치료교육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는 예술치료 전문가. 자타공인 패션광인 저자는 패션을 사람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매체로 활용할 수 있으며, 옷장 속의 옷을 훑어보고 인생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함으로써 심리를 치유하는 이른바 패션 테라피 또한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나처럼 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 위주로 입는 사람은 집단소속감이 강하고 무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내세우는 것을 회피한다고 한다. 이제보니 안에는 주로 내가 좋아하는 색상이나 무늬의 셔츠나 원피스 등을 입어도 겉은 검은색, 회색 같은 무채색 옷을 입어 가린 것이 내면의 열정을 숨겨온 나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독립적인 자아를 키우기 위해 겉도 속도 내 취향의 옷, 나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야겠다. 

 

  

무채색을 선호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성향이 아니라 한국인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성향이기도 하다. 개인보다 가족, 학교, 회사 등 집단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문화는 기왕이면 튀지 않고 집단에 묻힐 수 있는 무채색 의상을 선호하는 성향을 낳았다. 거리에 나가 보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은색, 회색 등 무채색 옷을 입고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가방, 구두 같은 소품과 자동차, 휴대폰 등 패션 외의 제품마저도 무채색을 선호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이는 조직의 규칙이라든가 다른 의상과 매치하기 쉽고 날씬해 보인다는 등의 장점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지나친 경우 화와 한을 억누르며 사는 우울증의 발현으로도 볼 수 있다. 다양한 색상과 스타일로 마음을 돌보는 것이 우울증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참고해보면 어떨까.

 

 

책에는 패션 심리, 쇼핑 중독, 자존감, 패션 아트 테라피 등에 대한 설명 외에도 독자가 직접 해볼 수 있는 테스트가 다수 제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셀프 테라피 팁도 여러 개 나와 있는데, 그 중에서도 37~8쪽에 나와 있는 '패션 테라피'가 유용했다. 방법은 이렇다. 



'일단 옷장 문을 활짝 열고 옷장 속의 옷들을 쭉 훑어보도록 한다. 구체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약간의 재료가 필요하다. 도화지와 패션잡지, 그리고 펜과 풀, 가위 정도면 된다. 만약 지금 당장 시도하고 싶다면 임시방편으로 종이와 펜만 가지고도 할 수 있다. 옷장의 옷들을 보고 난 후 도화지나 종이를 반으로 접어 왼쪽에는 과거에 입은 옷을, 오른쪽에는 현재 입는 옷 스타일을 잡지에서 비슷한 것들로 골라 붙여본다. 잡지에서 골라 붙일 수 없는 상황이면 펜으로 청바지, 실크 블라우스, 꽃무늬 원피스 등으로 상세히 써보도록 한다. 양쪽 면이 모두 완성되면 서로 비교해서 과거와 현재 삶을, 입었던 옷을 통해 알아보고 생각하며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다. (p.38)



이밖에 쇼핑 팁, 헤어와 메이크업 노하우 등 패션에 관한 정보도 실려 있고, 별자리와 혈액형에 따른 추천 패션도 나와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참고로 A형 사수자리인 나에게는 모던하면서도 여성스러운 스타일과 블랙, 다크브라운, 베이지, 카키 등의 색상이 어울린다고. A형은 페미닌한데 사수자리는 보이시하다고 하니 어느쪽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양한 매력을 가진 것으로 믿고(^^) 쇼핑에 참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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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명로진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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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경제학을 복수전공한 나는 취업할 때 이과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의약대나 공대 나온, 이른바 '기술' 있는 이과 친구들이 학부 졸업 전에 척척 취업에 ​성공하는 게 어찌나 좋아 보이던지.​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왜 ​이과 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문과생도 기술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과생의 기술은 책 읽기와 글쓰기다. 이과생 중에 책 읽고 글쓰는 친구들이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문과생처럼 압도적으로 많지 않고 깊이나 섬세함도 다르다. 


문제는 문과생들 스스로 이를 기술이라고 여기고 전문적으로 연습하거나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처럼 사회대를 나오든, 경영대나 법대, 인문대를 나오든 간에 문과 출신이 사회에서 하는 일은 대개 문서를 읽고 글을 쓰는 것인데, 막상 현실에서 만나는 문과 출신 중에는 맞춤법도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물론 나도 부족함이 많다). 하루에 한 줄이라도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글쓰기에 남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물며 나처럼 앞으로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취미가 아닌 업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배우에서 작가로 변신한 명로진의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은 최근에 읽은 글쓰기 책 중에 가장 좋았다.​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실천하는 글쓰기 기술을 담고 있는 점이 좋고, 심산, 이철환, 한비야, 정혜윤 등 저자가 엄선한 작가들의 글을 베껴쓰기의 모범으로 제시한 점도 좋다. 저자가 소개하는 글쓰기 기술은 총 30개인데, 소설이나 시가 아닌 편지, 일기, 에세이, 블로그 포스팅 등 실용문을 쓸 때 필요한 팁 위주라서 실용적이고 어렵지 않아 누구나 지금 당장 글쓰기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든다. 여러 번 읽고 베껴쓰다보면 글쓰기 실력이 쑥쑥 향상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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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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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 그는 일본의 오카야마라는 지방 도시에서도 역에서 전철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산 속에서 '다루마리'라는 이름의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빵집은 인공적으로 배양한 균대신 천연균으로 만들어 발효시킨 빵만 판다. 값도 비싸고 천연균 특유의 시큼한 맛도 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일주일에 사흘은 휴무, 매년 한 달은 장기 휴가로 문을 닫는데도 말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가 시골빵집을 연 계기는 다름아닌 마르크스의 대표 저작 <자본론>이다. 대학 농학부 졸업 후 농산물 도매회사에 취직한 그는 온갖 부정과 비리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자본론>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자본론>을 읽으면서 그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의 원인을 파악했고, 자본가에게 잠식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산수단을 소유해 노동자가 되지 않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으로 그는 빵을 택했고, 몇 년에 걸친 노력끝에 노동자와 자본가, 소비자, 환경이 공생할 수 있는 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처음엔 부패니 효모니 하는 이야기도 어렵고, <자본론>이라는 소재도 시대착오적인 것 같아 읽기를 주저하기도 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설명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고, 전부 저자의 체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라서 생동감 있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부패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현대 사회는 썩거나 부패한 것을 경멸한다. '정치가 썩었다' 라든가 '부패 경찰', '부패 조직' 같은 말의 뉘앙스가 좋지 않은 것만 봐도 그렇다. 반면 저자는 썩거나 부패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현상이며, 오히려 썩지 않고 부패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유통기한이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썩지 않는 식빵, 제조일로부터 1,2년이 지나도 멀쩡한 라면이나 과자따위를 먹는 현대인에게는 충격적인 주장이다.

 

 

이제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는 <자본론>의 내용을 이데올로기가 아닌 삶의 원칙 내지는 철학으로 받아들인 점도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 자본가, 생산수단같은 개념을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 스스로 노동자에서 자본가로 변신하고 생산수단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은 오늘날의 노동자 및 프리랜서, 1인 기업가들에게도 의미있는 사례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2011년 대지진 이후 기존의 사회 시스템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의 철학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 모멘텀이 있어야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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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 - 전문가 46인이 뽑은 이 시대의 숨은 명저들 아까운 책 시리즈 1
강수돌.강신익.강신주 등저 / 부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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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세속적 성공에만 집착하는 얼치기들은 값싼 성공보다도 위대한 실패가 더 아름답고 인간적이라는 점을 인정하기가 아마도 힘들 것이다." <지난 10년,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에 실린 작가 최성각의 글 중 한 대목이다. 이 문장은 이 책 전체를 묘사하는 데 써도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은 당대의 세속적 성공, 즉 베스트셀러가 되어 출판사의 매출을 올리고 저자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 아닌, 시대의 변화에도 퇴색하지 않을 지혜와 가르침을 담고 있는 책들을 각 분야 전문가 46인의 글을 빌어 소개한다. 

 

 

이제껏 온갖 서평집과 책에 대한 책, 독서에 관한 책을 읽었지만, 나는 이 책만큼 좋은 책을 소개하고 지금보다 나은 독서를 하고 싶다는 자극을 주는 책을 보지 못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난 10년 간 출간된 책 중에서 놓치기 아까운 책 단 한 권을 엄선했기 때문에 선정된 책의 수준이 높을 뿐더러, 지난 10년으로 기간의 제한을 두어 진부한 느낌도 없다. 읽고 싶어진 책이 수십 권. 새로 알게 된 저자가 여러 명이라 앞으로 다 읽으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듯. 후속 시리즈가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찾기로는 없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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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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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업다이크는 28세에 낸 소설 <달려라, 토끼야>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자연에게 몸값을 지불할 때, 우리가 자연을 위해 아이를 낳아줄 때, 우리의 풍만함은 끝이 난다. 자연은 이제 우리에게 용무가 없다. 우리는 먼저 내적으로, 다음에는 외적으로 쓰레기가 된다. 꽃줄기가 된다. (p.195)"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 소개되어 샀는데 이대로 있다가는 영영 안 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서야 읽었다. 제목만 봐서는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인문학 서적 정도로 보이는데 읽어보니 아들과 아버지의 평생에 걸친 경쟁을 다룬 에세이집에 가까웠다. 문장도 어렵지 않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이런 좋은 책을 왜 이제까지 안 읽었을까? 



저자 데이비드 실즈는 스포츠광에 아흔이 넘도록 에너지가 넘치고 정력까지 넘치는 아버지와 생애 내내 보이지 않는 다툼을 했다. 어려서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운동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커서는 성인이 된 아들에게 팔씨름조차 지지 않는 아버지를 견제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좌절된 꿈과 여기저기 아픈 몸, 그리고 아버지도 나도 결국은 죽는다, 즉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깨달음이 전부였다. 세 살 짜리 어린아이도 알고 있는 진리 말이다.



인체의 생로병사에 대한 지식과 유명 인사들이 남긴 죽음에 대한 명언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점도 매력이지만, 이 책의 핵심은 스포츠라는 승부의 세계를 생과 사에 비유한 것이다. 인생이라는 스포츠에서 승자는 언제나 죽음이며 패자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이 승부를 영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휘슬이 울려도 어디선가 게임은 계속되듯이 누군가 유명을 달리해도 다른 누군가는 태어나는 것이 만고의 법칙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그 건강하던 아버지도 결국엔 병이 들고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이며 그 뒤를 좇던 아들도 같은 길을 걷겠지만, 세상은 변함 없이 잘만 돌아갈 것이다. 그런 먼지같은 인생을 살면서 때로는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예쁜 옷도 입고, 좋은 책도 읽고, 소중한 사람도 만나니, 이만 하면 괜찮은 것 아닐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시니컬한 문장 속에는 사실 이런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도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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