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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사용법 - 진정한 나를 마주하기 위한 꿈 인문학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1월
평점 :
요즘 학생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 "넌 꿈이 뭐니?" 라고 한다. 난 싫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 교수, 아나운서, 기자, 외교관 등등 시원시원하게 잘만 대답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런 질문이 듣기 싫어진 건 어른이 되고나서였다. 언제부터인가 어른들은 "넌 꿈이 뭐니?" 대신 "넌 뭐 할 거니?", "뭐 될 거니?", "어디 취직할 거니?" 같은 질문을 퍼부었고, 그럴 때마다 내 꿈은 더 이상 대학 교수나 아나운서 같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대답하기 민망하고, 그런 꿈조차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내 자신이 한심하고 비참해 대답을 점점 얼버무리게 되었다. 그 때부터였을까. 밤마다 꾸는 꿈마저 무서워지고 두려워진 게.
나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꿈과 대화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애쓴다. 꿈 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한, 삶의 중심에서 벗어나 표류하지 않을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꿈은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도록 이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교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편향된 사고에 빠질 때면 반대편 이미지를 등장시켜 재고하도록 해주고, 보고 싶지 않은 나의 취약함과 열등함도 대면하게 해 용기를 북돋워준다.
정직할 수 있도록 나를 비추어주는 거울이자 나를 이끌어가는 가장 믿을 만한 길라잡이도 꿈이다. 얼마나 든든한가. 내 안에는 이미 거울도 나침반도 모두 들어 있다. 이 풍성하고 기발한 꿈의 작용은 밤마다 놀라운 삶의 신비를 선물해준다.
p.27
이제부터는 "넌 꿈이 뭐니?" 라는 질문 대신 "너 어젯밤 무슨 꿈 꿨니?" 라고 물어보는 건 어떨까? 신화학 박사이자 꿈 분석가인 고혜경의 <나의 꿈 사용법>은 우리 개인의 삶에 적용되는 꿈의 다양한 층위와 꿈의 표면 아래 감춰진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꿈은 '무의식 세계가 의식 세계로 말을 거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깨어있을 때 인간은 주로 의식에 의해 사고하고 행동하고, 잠이 들면 깨어있는 동안 의식에 가려져 있던 무의식이 발현되면서 의식이 놓치거나 무시한 것들이 꿈의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의미에서 꿈은 의식보다도 더 큰 세계인 무의식을 볼 수 있는 창구이자, 그 사람이 진정으로 되고 싶고 원하는 것을 비추어주는 거울인 셈이다.
꿈에 등장하는 요소는 모두 꿈꾼 이의 심리를 반영한다. ("내 안에 없는 것은 꿈이라는 스크린에 등장하지 않는다" p.55) 꿈에 평소 싫어하는 사람이 나오면, 꿈에 무지한 사람은 악몽을 꿨다고 여기며 찝찝해하고 끝이지만, 꿈을 알고 꿈 분석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내 안에 그 사람과 닮은 요소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고칠 기회가 생긴다. 자기 안의 내면의 파트너를 보살피는 기회이기도 하다. 융은 남성의 무의식에는 아니마라는 여성이, 여성의 무의식에는 아니무스라는 남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즉 자기 내면의 파트너를 잘 돌보지 않는 경우 남성은 주로 감정 조절, 여성은 결정 장애를 가지게 된다. 꿈에 남성이나 여성 이미지가 보이는 경우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꿈 분석을 자기계발에 활용할 수도 있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단, 지나친 긍정과 낙관을 주입하는 오늘날의 자기계발과는 의미가 좀 다르다. 저자는 오늘날의 자기계발이 긍정과 희망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긍정과 희망에 뒤따르는 부정과 실망을 억압하고 무시한다고 지적한다. ("어두움과 그림자가 간과될 때 온전함은 점점 멀어질 뿐이다." p.147) 저자는 나만 잘되면 그만인 자기계발, 나만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계발 말고, 내 안의 어두움과 그림자를 직시하는 꿈의 세계에 눈을 뜨라고 조언한다. "그림자가 열쇠다."라고까지 말한다. 피하고 싶었던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만나고 보듬을 때 비로소 인간은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꿈 일기를 써보라는 저자의 조언을 따라 요즘 나는 꿈 일기를 쓰다. 쓴 지는 이제 겨우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비록 아침에 일어나면 꿈을 거의 다 잊어버려서 많이 쓰지는 못하지만, 날이 갈수록 기억하는 양이 늘고 꿈의 내용도 좋아지고 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좋은 꿈을 많이 꿨는데, 요즘은 멋진 남자 배우들이 나오는 꿈을 연달아 꾸고 있다. 내 안의 요소 중에서도 아니무스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무의식이 편안하니 의식에도 좋은 영향을 주는지 요즘들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꿈이 뭐니?" 대신 "무슨 꿈 꿨니?"라고 물어주는 어른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내 인생이 요즘처럼 수월했을까? 뭐 이런 생각, 지금 해봐야 소용없지. 나라도 "꿈이 뭐니?" 대신 "무슨 꿈 꿨니?"라고 묻는 어른이 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