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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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정말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것은 모두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일단 선택하면 그에 최선을 다하고,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을 과감히 엎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앤드리아처럼 말이다. 괜히 시대를 탓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탓하고, 애매한 사람에게 그 선택의 책임을 전가할 일이 아닌 것이다. (p.46)

  

완벽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만족의 기쁨을 누릴 줄 알게 되면, 당신은 분명 그 전보다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그러면 성공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니까. (p.167)

  

권태의 시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당신이 권태로워하고 있는 동안 마음속에서는 오히려 많은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제까지 쌓아 온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분석하고 통합하며 소화해 내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불안해하지 말고, 권태로운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시간을 즐겨라. 너무 오래가지만 않는다면 나중에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당신이 있음을 말이다. (p.181)

 

  

내 나이 스물아홉. 솔직히 암담하다. 밥벌이는 마음에 안 드는데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다. 결혼은커녕 연애도 잘 되지 않고, 심리적으로도 요동을 친다. 이십대 동안 수십 권의 심리학 책을 독파하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은 결국 과거에 의해 움직여지는 존재라는 사실. 과거에 받지 못한 사랑, 하지 못한 일,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이 내 발목을 붙잡지, 과거의 성공이나 불확실한 미래가 나를 움직이지는 못한다. 어쩌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콤플렉스, 트라우마, 결핍 같은 용어들이 내가 얻은 결론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는 것은, 암담한 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도 과거에 대한 정리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더듬어보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음... 이게 또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읽게 된 (수십권에 이어 또 한 권 더 읽게 된) 심리학 책이 바로 정신건강전문의 김혜남 박사가 쓴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이다. 책 소개를 보니 무려 159쇄나 찍었다고 한다. 출판계의 오랜 불황 속에서 이렇게 많은 부수를 찍었다는 건 우선 이 책이 그만큼 내용이 좋고 잘 만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서른 즈음에' 있는 사람들 중에 심리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낄 만큼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 혹은 미칠 것 같은 -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싶다(물론 나도 그 중 하나...).

 

 

이 책의 특징은 <상실의 시대>, <키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유명한 영화나 소설을 예로 든다는 것이다. 심리학 책을 여러 권 읽다보면 내용이 뻔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책은 그 '뻔함'을 문학과 영화 등 예술 작품과의 만남을 통해 해소했다. 예술이 무엇인가? 작가가 자신의 심리적인 상태를 작품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 작품을 통해 공감과 위로 등 현실에서 애써 처리하지 못한 감정들을 처리하며 기쁨과 슬픔, 감동 등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서른 살이 겪을 법한 심리적인 혼란과 그 원인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결책까지 제시해준다는 점이 좋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야말로 직장동료와 애인, 친구, 가족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닌가. 코 앞으로 다가온 삼십대에도 지난 이십대처럼 좋은 책들과의 만남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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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차이나
고희영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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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의 화두는 중국이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웠고, 대학교 때는 중국 현대정치에 대해 배웠지만, 학교에서 하라고 하니 의무로 했을 뿐 내가 좋아서 배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중국에 확실히 '꽂혔다'. 계기는 일 때문이지만, 요즘은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중화권 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보고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중국 관련 기사를 찾아보는 게 하루 중 가장 큰 즐거움일 정도다. 그런데 내가 아는 중국인들이 헉 소리가 날 만큼 고학력에 부유해서 중국인들 대부분이 이제는 먹고 살만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보다. 중국 전문 다큐멘터리 방송작가 및 영화감독 고희영이 쓴 <다큐멘터리 차이나>에서 보니 내가 아는 부유한 중국인은 전체 인구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서북 지역이나 지방에는 아직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빈부차를 확인하는 것은 단지 벌이뿐만이 아니라 의, 식, 주, 결혼, 진학, 직업 선택 등 다방면에서 가능한 일.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생생한 사진과 실제 사례를 통해서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먼저 한 사람만 성공하면 돼! 형이 출세하면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질 수 있어!" (p.17)

오직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어머니와 동생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을 아프게 채찍질하고,
웃자라는 욕망을 자르며 살아오면서, 그는 아내의 꿈까지 잘라냈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p.28)

 

"우리는 고기를 먹지 못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고기를 소화할 수 없는 내장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작업반장의 신호였다.
농민공들은 미처 다 먹지 못한 만토우를 입이 찢어져라 쑤셔 넣으며 흩어졌다. (p.78)

 



 
"이제 곧 마흔인데 누가 나 같은 여자를 좋아하겠어. 특히 난 중국남자는 질색이야. 모두들 꿍꿍이속이 있다니까."
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베이징 호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바로 이거! 이것 때문에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 남자들뿐이야."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부터 그녀가 자주 한국남자가 좋다고 얘기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109)

 

 


지방과 도시의 빈부 격차, 농민공 문제, 현대판 신분제도인 호구 문제, 문화대혁명, 천안문 사태 등에 대해 전부터 듣고 배워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어떤지는 몰랐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농민공의 수가 2013년 2억 6천만 명을 돌파했다는 사실이나, 호구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꼽히는 베이징 호구 때문에 각종 차별과 암거래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베이징 출신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딩즈후는 또 어떤가. 딩즈후는 국가이익, 공공이익을 앞세워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 정부에 항거해 철거를 거부하는 주택을 이르는 말인데, 먼 나라 일 같지만 사실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용산 참사를 비롯해 빈번히 일어났고 현재도 진행중이다. 문화대혁명, 천안문사태도 마찬가지다. 두 사건 모두 중국인들에게 있어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과거이며 현재까지도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과오다. 그런데 이게 어디 중국만의 일인가.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독재 정권이 있었으며,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이 이들의 반성과 사과를 원하고 있지만 이뤄질 날은 요원해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국의 현재를 다큐멘터리로 담았지만, 내 눈에는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보이는 듯 했다. 극심한 빈부 격차는 얼마 안 있어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고, 크고 작은 정치적 소요를 낳을 것이며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겪을 우리나라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 이를 예측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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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독서 - 감성좌파 목수정의 길들지 않은 질문, 철들지 않은 세상 읽기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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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서평을 쓰기 시작한 지 어언 4년째. 처음엔 그저 블로그를 운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읽은 책의 감상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불온한' 서평 블로그였지만, 이제는 이십대의 절반을 꼬박 바친 소중한 취미이자 내 방보다 편안한 '자기만의 방'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앞으로의 바람은 그저 나의 감상을 쏟아내지 않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고 삶을 뒤흔들 수 있는 서평을 쓰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읽는 책의 양보다도 질을 따져야겠고 글에도 더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내가 삼십대에 할 일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

 

 

삼십대가 될지 그 이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이름으로 서평집을 내보고 싶은 소망도 있다. 읽은 책을 마구잡이식으로 소개하는 서평집말고, 나란 사람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는, 책과 사람이 똑같이 빛나는 서평집 말이다. 그런 책을 쓸 기회가 온다면 나는 편집자에게 목수정의 <월경독서>를 건네리라. 어떻게 이런 책을 쓰고 만들었을까.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읽을 때도 문장이 한줄 한줄 마음에 쏙쏙 박히고 책의 만듦새까지 좋아 읽는 내내 황홀했는데, 이번에 읽은 <월경독서>도 그랬다. 책 한권 한권이 씨줄과 날줄처럼 저자의 삶과 촘촘히 연관되어 있는 것도 신기한데, 책을 소개하는 저자의 시선 또한 어떤 책에서는 따뜻하고 푸근한데 어떤 책에서는 칼날처럼 예리해, 서평이 꼭 마치 예술과 정치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저자의 삶 같았다. 책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책을 만든다는 어느 서점의 광고 카피가 새삼 떠올랐다면 무리일까.

 

 

저자가 소개한 책은 모두 열일곱 권이다. 서평을 쓰기 위해 최근에 다시 읽기는 했지만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읽어온 책들 중에 인상 깊은 것만 고르고 또 고른 것들이라고 한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십대 시절 처음으로 한국사회의 모순에 눈을 뜨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날들에 관한 추억이 담겨 있고, <이사도라 던컨>에는 무용수의 춤 동작 하나에도 영혼이 뒤흔들리는 듯한 경험을 했던 청춘의 기억들이 담겨 있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대학 신입생 때 한 번, 이십대 후반 파리에 와서 한 번, 마흔 넘어 한 번, 이렇게 총 세 번을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처음엔 오로지 테레자와 토마스의 불같은 사랑만 눈에 들어왔는데, 이제는 그들의 인생과 다른 이들의 사랑까지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고. 내가 얼마 전에 읽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도 저자는 프랑스어판으로 진작에 읽었다고 한다. 여성의 삶에 회의를 느낄 때마다 찾게 되는 책인데, 언젠가는 딸에게도 읽혀줄 생각이라고 한다. 멋지다. 나도 언젠가 딸을 낳으면 꼭 이 책을 소개해줘야지. 

 

 

저자가 소개한 책들 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읽어보고 싶은 책은 <페르세폴리스>와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 두 권이다. 이슬람 혁명기에 보수적인 이란 사회에서 분투한 소녀의 실화를 담은 만화책 <페르세폴리스>는 많은 나라에서 반향을 얻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한다. <황금 물고기>는 르 클레지오의 소설치고는 드물게 밝고 건강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두 권 다 여성이 씩씩하게 살아나가는 내용이다. 나도 모르게이제 곧 이십대에서 삼십대의 삶으로 '월경(越境)'하는 내가 지금보다 더 씩씩하고 꿋꿋해지기를 바랐던 것일까. 월경한 그곳에서 언젠가 꼭 이런 서평집을 쓰는 기적같은 일이 생기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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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감각 기르기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거침없는 대화 지식여행자 1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옥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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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클론 기술을 응용하는 것에 대해 모두들 걱정하고 있지만, 클론 기술 같은 걸 사용하지 않더라도, 다들 유니클로를 입고,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편의점 음식을 먹고 하니까, 말투도 비슷해지고, 그러다보면 머릿속도 서로 닮아가지 않을까? (p.56)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 자꾸 미국이나 일본 스타일에 경도되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야 자본주의를 다루는 경제학과 세계 패권이나 제국주의 등을 배우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으니 미국과 일본 스타일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안경제학이라는 것도 배웠고 세력균형이나 복지국가에 대해서도 배웠으니 생각의 균형이 잡혀야 하지 않을까?



요네하라 마리의 책을 읽을 때면 유난히 이런 반성을 자주 하게 된다. 아홉살 때부터 5년 동안 체코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 다녔으며, 도쿄 외국어대에서 러시아어를 전공, 훗날 러시아어 통역가이자 작가로 성공한 요네하라 마리. 그녀는 소련 붕괴 전후 일본 최고의 러시아통(通) 중 한 명으로 손꼽히며 일본 내에 러시아의 언어와 문화, 예술 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러시아 통신>을 비롯해 그녀가 쓴 책들을 보면 내가 그동안 러시아를 비롯해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비록 이들의 이상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들이 전통적으로 지키고 가꿔온 문화와 예술 중에는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것이 많은가. 볼쇼이 발레단이라든가, 톨스토이라든가, 보드카라든가......^^ 



<언어 감각 기르기>는 요네하라 마리가 러시아에 대해 다룬 책은 아니고, 그녀의 전공인 언어와 통역, 문화 등에 대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요네하라 마리가 요로 다케시, 하야시 마리코, 이토이 시게사토, 다마루 구미코 등 모두 11명의 명사들과 여러 매체에서 나눈 대화를 모은 대담집이다. 과학자, 문학 교수, 정치가, 카피라이터, 작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대담을 한다는 것 자체도 대단한 일인데, 생전에 매일 일곱 권씩 책을 읽었다는 그녀답게 화제마다 맹렬하게 달려들어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었는지 모른다. 러시아어 통역사는 러시아 사람처럼 대개 이상주의적이고 수수하다는 것이 그녀의 평인데, 그 안에는 보드카처럼 뜨겁고 화끈한 열정이 담겨 있는 것까지도 닮았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언어는 문화를, 문화는 언어를 닮는 것일까.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의 언어와 문화를 알리는 데에는 앞장섰지만, 모든 나라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미국화되는 것에는 반대했다. 아니, 세계 패권을 미국이 쥐고 있기에 미국화되는 것을 반대할 뿐, 지구촌의 수많은 나라의 다양성이 무시되고 오로지 한 나라를 기준으로 획일화되는 것에 반대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는 실용성이나 편리함을 앞세운 제국주의, 파시즘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나. 일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똑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똑같은 기업에서 만들어진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것은 당장 쉽고 편한 일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수많은 대안들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균질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끔찍한 일이다. 



대중의 '같음'에 휩쓸리지 않고 나의 '다름'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다른 언어를 배우고 다른 문화를 알아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요네하라 마리가 비록 몸은 일본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러시아의 언어와 역사, 문화 등을 연구하며 끝까지 남과 다르게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아직도 그녀에게 배우고 싶고 그녀를 닮고 싶은 것이 많은데, 출간된 책은 거의 다 읽고 이제 세 권 정도만을 남겨두고 있다. 아쉽다. 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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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 - 이별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는 법
안 앙설렝 슈창베르제 &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 지음, 허봉금 옮김 / 민음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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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대한민국은 세월호 사고라는 참사를 겪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많은 국민들이 그랬겠지만 나 역시 한동안 일상 생활을 제대로 영위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삼풍 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 대구 지하철 사고 같은 인재(人災)가 다시 반복되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어렸고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고가 수습되고 온 나라가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나 도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텔레비전 화면 너머로 건물과 다리가 무너지고, 유치원 캠프와 어두운 지하철 안에서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다시 한번 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 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심리 상담가 안 안설렝 슈창베르제와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가 쓴 <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는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책에서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부터 실연, 해고, 부도, 퇴직, 병, 사고 등 다양한 모습의 이별과 상실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애도하지 못하고 슬픔의 무게를 안고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제대로 애도하지 못하고 넘어간 감정은 나중에 상당한 트라우마가 되며, 개인의 심리 상태뿐 아니라 대인관계, 세상과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치 내가 어린 시절에 간접적으로 경험한 대형 사고들을 서른이 가까운 지금 되새김질하며 괴로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애도할 것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하고 넘어갈 경우 사람은 이중의 타격을 입는다. 가장 먼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몸이다. "정신적 고통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날 때, 다시 말해서 몸이 말을 하고 때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소리칠 때, 몸이 충격이나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고 애정 어린 격려를 받지 못할 때, 우리가 '말'로 내뱉지 못한 것은 '병'이라는 형태로 표현된다."(p.31)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몸에 생채기를 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아픈 신체 부위에 직접 말을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네(몸)가 어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 괜찮아 질 것이다" 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다. 딱히 아픈 곳이 없어도 평소에 명상을 하거나 긍정적인 말, 힘이 나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몸의 병도 위험하지만 마음의 병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책에는 8년 동안 아홉 번의 유산을 겪고 괴로워했던 클레르라는 여인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유산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임신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과 남편의 무관심이 그녀를 무척이나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마음의 병은 어떻게 치료하는 것이 좋을까? 저자는 적극적으로 대면하라고 권한다. 클레르는 유산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대학에 들어가 유산을 한 경험이 있는 여자들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그녀는 임상 심리학 박사 학위와 함께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임신과 출산이라는 기적을 만났다. 애도 작업을 통해 마음의 짐을 덜어낸 것이 그녀의 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임신과 출산을 가능케 한 것이다. 


이제까지 애도라는 것은 가까운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나 필요하고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애도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상실과 이별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으며 무조건 도망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면함으로써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세월호 사고로 인해 유가족을 비롯해 많은 국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완전히 잊어서도, 잊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을 애도함은 물론 국민들 스스로가 현재 느끼고 있는 슬픔과 분노에도 언젠가는 애도를 해야할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이 언제쯤일지 지금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부디 이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국민들 스스로가 충분히 애도하고 적극적으로 치유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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