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맛
최유안 지음 / 민음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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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안 작가의 <백 오피스>를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작가의 다른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어 구입했다. <백 오피스>가 일하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책도 일하는 여성들에 관한 내용이겠구나 하는 짐작은 했는데, <백 오피스>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만족도도 훨씬 더 컸다. 최유안 작가의 책이 현재 소설집 1권, 장편소설 1권이 나와 있는데(앤솔로지는 세 권 정도 더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 첫 번째는 여성들의 일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난민 구호 활동을 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도 하고, 경찰 임용 시험해 합격해 지방에 있는 파출소로 발령받기도 하고, 기업 컨설팅을 하거나 학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하는 여성들의 애환을 보여준 점이 좋았다. 


두 번째는 일하는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는 단순히 업무에 관한 것이나 인사고과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회사 여직원의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 몇 년 만에 어렵게 임신이 되었는데 회사에 알려지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 온 팀장과 내 부하 직원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있는 듯할 때에는...? 


위에 언급한 사례들 말고도 훨씬 더 인상적인 이야기도 있는데,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가 그렇다. 난민 구호 활동에 관한 논문을 쓰는 '나'는 조사를 위해 레스보스 섬에 갔다가 우연히 한 남매와 알고 지내게 된다. '나'는 활동가이자 연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남매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얼마 후 선배 활동가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고 연구자로서 이들의 사례를 자신의 논문을 완성하는 데 이용한다. 


좁게는 난민 구호 활동 같은 선행이 일이나 연구의 대상이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넓게는 어떤 사람이 일을 하면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하는 의무, 달성해야 하는 목표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돌이켜보면 <백 오피스>도 일하는 여성들이 공적인 역할과 사적인 자아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에 실린 <집 짓는 사람>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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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생활자의 책장 -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올 문장들
김다은 지음 / 나무의철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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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생활자의 책장>(이하 '혼밥')은 오랫동안 꾸준히 듣고 있는 책 팟캐스트들 중 하나다. 진행자 김다은 님(구 CBS 라디오 PD, 현 시사인 기자)과 관심사나 성향이 비슷하기도 하고(인권, 동물권, 채식 등등) 게스트 분들도 좋고 코너들도 재미있어서, 새 에피소드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업데이트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다소 뜸하지만, 아쉬울 때는 예전 회차를 다시 듣는다) 기쁜 마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2016년 첫 방송 이후 4년 만인 2019년에 출간된 책 <혼밥생활자의 책장>도 오래 전에 구입해 여러 번 읽었다. 이 책은 혼밥에서 소개한 책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개 키우고 산 좋아하는 직장인이었던 저자가 느닷없이 혼밥을 시작한 계기, 소개할 책을 고르는 기준, 방송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책에 대한 감상, 책과 라디오 같은 아날로그 미디어에 대한 생각 등이 나와 있어서, 혼밥을 오랫동안 즐겨들은 애청자인데도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많다. 


다시 읽고 싶어진 책, 팟캐스트를 들을 때는 못 읽었지만 이제라도 읽고 싶어진 책도 많다.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는 저자가 혼밥에서 소개한 책 중에 가장 좋았다고 강추하니 꼭 읽어봐야겠고, <필경사 바틀비>와 <모비딕>도 시간을 들여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2019년 이전에 다룬 책들 위주라서 2019년 이후에 혼밥에서 다룬 책들에 관한 책도 나왔으면 좋겠다(하지만 작가님이 너무 바빠서 안 될 거야 아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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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의 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허하나 옮김 / 폭스코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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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빛의 현관>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의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오랜 기자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경찰이나 정부, 법원 등 공적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 모두 경찰서, 법원, 관청, 방송국, 신문사 같은 공공기관 또는 언론사가 배경이고, 등장 인물도 경찰, 분쟁 조정위원, 비서, 프리랜서 작가, 기자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미스터리 단편집인 만큼 각각의 단편에 살인이나 자살 방조, 해킹 같은 범죄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범죄 자체보다는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범죄를 의도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 범죄와 연루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다. 대표적인 예가 <오전 다섯 시의 침입자>이다. 현경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중년의 경찰이 어느 날 현경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한 것을 발견한다. 접속자 수가 적기는 해도 윗선에서 알면 불호령이 떨어질 터. 주인공 경찰은 윗선이 알기 전에 자기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조용한 집>도 비슷하다. 지방신문 편집부에서 일하는 전직 취재 기자가 어느 날 실수로 오보를 낸다. 가뜩이나 회사 분위기가 안 좋은데 자신이 오보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심한 문책을 당할 게 분명하다. 걱정이 된 주인공 기자는 남들이 알기 전에 바로 잡으려다가 뜻밖에도 살인 사건에 연루되고 만다. 표제작 <교도관의 눈>에는 형사를 꿈꾸며 경찰이 되었으나 교도관으로 재직한 인물이 나오는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퇴근 후 혼자서 형사 놀이를 하다가 진짜 범죄를 맞닥뜨리는 전개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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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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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뒤늦게 영화 <영웅>을 보고 안중근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그 전까지 나는 안중근을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독립 운동가로만 알았는데, <영웅>에서 보니 그는 독립 운동가인 동시에 독실한 천주교인이었고 한 집안의 맏아들이었다. 특히 천주교인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을 살해하고 십계명(살인하지 말라)을 어긴다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거사 직전까지 상당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안중근에 대한 책을 읽고 싶어져서 찾다가 이 책이 떠올라서 읽어보았다. 


<영웅>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안중근이 독립운동가로서의 역할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한 것으로 그린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영웅>의 안중근은 독립운동가로서 이토를 살해할지 아니면 기독교인으로서 십계명을 지킬지를 두고 내적인 갈등을 하는 반면, <하얼빈>의 안중근은 독립운동가로서 일본 정부+조선 왕실과 대립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천주교 사제들과 갈등하는 식으로 외적인 갈등을 치른다. 


즉, 이 소설에서 안중근은 일본 정부와 대립하는 동시에 1) 일본 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조선 왕실과 대립하고 2)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고 하지만 사실상 일본 정부와 결탁한 천주교 사제들과 대립한다. 일본 정부는 그렇다 쳐도 조선 왕실과 천주교 사제들은 그들의 백성이자 신도인 안중근을 마땅히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을 버린다(갈등하다 버리는 것도 아니고 안중근의 행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로 버린다). 


<영웅>을 봤을 때는 안중근의 내적인 갈등에 흥미를 느꼈는데, <하얼빈>을 읽으니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에 대해 당시 조선 왕실과 천주교 사제들(을 포함한 다른 종교인들)이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지 궁금하다. 친일파 하면 보통 이완용을 비롯한, 한일강제병합 전후에 매국 행위를 하고 이를 통해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본 사람들을 떠올리는데, 이 소설을 읽으니 그들 외에도 다양한 부류의 친일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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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총총 시리즈
황선우.김혼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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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가의 왕복서간을 책으로 엮은 '총총문고' 시리즈를 좋아한다. 처음엔 편지글이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었는데, 이 시리즈를 꾸준히 따라 읽다 보니 편지 쓰는 사람들의 관계나 각자의 캐릭터에 따라서 글의 느낌이 아주 달랐다(대표적인 예가 이슬아x남궁인 편). 그래서 작년에 황선우x김혼비 편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글 잘 쓰는 건 당연하고, 두 분 모두 단어나 문장을 맛깔나고 재치 있게 쓰는 분들이라서 (읽으면서) 엄청 웃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랬다. 


특히 김혼비 작가님은 시트콤 급의 일상을 사는 분 같았다. 현금 없이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사 먹은 이야기도 그랬고,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기 싫은데 양보하고 싶을 때(무슨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책을 읽어 보면 안다) 쓰는 테크닉에 관한 이야기도 그랬고, 친구와 경칩맞이 개구리 뛰기 한 이야기도 그랬다. 황선우 작가님 에피소드도 재미있는 게 많았는데 여둘톡 애청자라서 아주 새로운 느낌은 없었다. 그러나 전국노래자랑이나 망탁클(망원 탁구 클럽), 논어 이야기처럼 방송에서 언급했지만 차마 다 풀지 못한 이야기를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 편지 교환을 시작할 때 작가님들은 서로를 웃게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셨고, 실제로 웃기는 이야기가 많지만, 반대로 울리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김혼비 작가님이 쓰신 당근마켓 거래 이야기의 결말을 읽고 한동안 얼떨떨했다. 작가님처럼 나도 당연히 사기 사건인 줄 알고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이야기를 읽었기에 충격이 컸다. 이야기의 전개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과 비슷한데,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은 허구이지만 책의 이야기는 실제라는 게 더 아프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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