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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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은 <모스크바의 신사>, <링컨 하이웨이> 등을 쓴 미국 작가 에이모 토울스가 2011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이다. <모스크바의 신사>, <링컨 하이웨이>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소설도 좋았다. (세 권 다 좋지만 개인적인 순위는 링컨 하이웨이>모스크바의 신사>우아한 연인 순) 


소설은 1966년 한 중년 여성이 남편과 함께 뉴욕의 사진전을 둘러보다가 한 사진 속 남자에게 시선이 고정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중년 여성의 이름은 케이티, 남자의 이름은 팅커 그레이다. 케이티는 오랜만에 팅커의 얼굴을 보면서 젊은 시절의 일들을 떠올린다. 1937년 뉴욕. 자수성가하겠다는 꿈을 품고 혈혈단신 뉴욕에 온 케이티는 낮에는 타자수로 일하고 밤에는 여성 전용 기숙사에서 만난 친구 이브와 뉴욕의 거리를 누비며 놀러 다닌다. 


젊고 예쁘지만 가난하고 인맥이 없는 케이티와 이브 앞에 어느 날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맥도 훌륭한 은행가 팅커가 나타난다. 세 사람은 이야기가 잘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서 논다. 케이티는 상류층 신사처럼 매너도 좋고 교양도 갖춘 팅커에게 호감을 느끼고, 팅커 또한 케이티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해 케이티와 이브, 팅커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그로 인해 각각의 인생도 달라진다. 


배경이 미국 뉴욕이고 시대적으로도 가까워서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이 소설을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나 또한 비슷하다고 느꼈다. 특히 개츠비와 팅커의 캐릭터가 상당히 닮았고, 화자가 개츠비 또는 팅커를 동경했지만 나중에 그 감정이 바뀌는 것도 유사하다. 두 작품 모두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 또는 허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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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편혜영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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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초기에 전염병을 다룬 책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딘 쿤츠의 <어둠의 눈>,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이 그랬다. 이 책들을 다 읽어본 건 아니지만, 얼마 전에 읽은 편혜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재와 빨강> 속 팬데믹 상황이 실제로 내가 경험한 팬데믹 상황과 가장 비슷했다. 작가가 이 소설을 발표한 건 2010년이고, 소설을 구상하고 쓸 당시만 해도 실제로 전염병이 일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데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썼을까. 대단하다. (참고로 내가 읽은 건 2010년에 출간된 초판이 아닌 2023년에 출간된 리마스터판이다.) 


제약회사에서 약품개발원으로 재직 중인 '나'는 파견근무를 발령받고 C국에 있는 본사로 떠난다. 출국과 동시에 감기에 걸린 '나'는 때마침 발생한 전염병과 증상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공항에 격리된다. 이를 시작으로 '나'에게 계속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소로 가려고 하니 택시 기사가 그 동네는 위험하다며 가까이 가기를 거부한다. 본사 담당자인 '몰'은 출근 일자가 미뤄졌으니 숙소에 있으라는데, 숙소 상태가 엉망이다. 심지어 트렁크를 도난 당하고, 트렁크에 있던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까지 잃어버리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된다. 


본국에서의 '나'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아내가 자신의 동창과 바람을 피면서 결혼 생활은 끝이 났고,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서 직장 생활의 즐거움도 사라졌다. 도망치는 기분으로 C국에 왔다가 모종의 사건으로 진짜 도망자가 되는 '나'를 보면서, 어쩌면 내가 지금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일상도 막상 벗어나면 아쉽고 그리운 소중한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또한 지난 3년 간 팬데믹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체득한 교훈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통찰력(예지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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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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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추천사는 무려 박완서 선생님이 쓰셨는데 그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왜 이런 어려운 일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을까." 박완서 선생님도 어렵다고 인정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수 작가로서는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일. 그것은 '민생단 사건'이다. 민생단 사건은 1932년 동만주에서 벌어진 한인들 간의 대학살이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김연수 작가는 등단 이전부터 이 사건에 관심이 많았는데, 같은 민족이고 같은 이념과 사상을 가지고 항일 운동에 나선 사람들이 왜 어쩌다 서로 죽이는 참극을 일으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고 한다. 


소설은 고등공업학교 출신의 만철(남만주철도회사) 측량기사 김해연이 용정으로 파견을 오면서 시작된다. 식민지 출신이지만 만철 직원이기 때문에 일본인 버금가는 지위를 누리는 김해연은 일본인 군인 나카지마로부터 사랑을 해보라는 조언을 들은 지 얼마 후 이정희와 사랑에 빠진다. 용정 출신이지만 이화여전에서 음악을 전공한 신여성 이정희에게 첫눈에 반한 김해연은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고 애쓰지만 첫사랑이라서 쉽지 않다. 그런 김해연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전해지고, 그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뀐다. 


소설 자체만 보면 (일본군 앞잡이나 다름없는) 만철 직원에서 항일 운동가로 변신한 김해연이라는 남자의 인생 역정을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이념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서로 의심하고 끝내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된 과정과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결국 다들 어느 나라 사람,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이기 이전에 사랑과 질투, 동경과 증오 같은 감정을 느끼는 인간이고, 그러한 인간성(인간의 성질)이 이들의 운명을 결정한 것 아닐까 싶다. 복잡한 역사적 사건을 평범한 개인(들)의 이야기로 풀어낸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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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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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가 200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고, 이상과 이상의 아내 김향안(변동림), 구인회 문인들에 대한 지식을 알게 모르게 쌓아서 그런지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몰입도 잘 되고 내용도 이해가 잘 되었다. (이래서 위대한 작가들이 소설을 여러 번 재독하라고 하나보다.) 


김연수 작가는 이상의 소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 '연'에서 자신의 필명을 따왔을 정도로 이상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실린 작가의 말에 등단할 때부터 이상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상의 강렬하고 찬란했던 생애 중에서도 김연수를 사로잡은 것은 임종, 정확히는 임종 직후다. 


1910년생인 이상은 1937년 4월 17일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임종 직후 이상의 가족과 친구 등이 이상의 데드마스크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다. 김연수 작가는 이를 이상의 여동생 김옥희가 "오빠의 데드마스크는 동경대학 부속병원 유학생들이 떠놓은 것을 어떤 친구가 국내로 가져와 어머니께까지 보인 일이 있다는데 지금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어 아쉽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한 말로 알게 되었다. <꾿빠이, 이상>은 바로 이 데드마스크의 존재 혹은 소재에 관한 논쟁으로 시작된다. 


소설은 총 세 장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장 '데드마스크'에서 출판전문 잡지사의 기자인 김연화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사라진 이상의 데드마스크를 자신이 가지고 있으며, 이상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공개할 예정이니 취재를 하러 오라는 서혁수라는 남자의 전화다. 두 번째 장 '잃어버린 꽃'에서 서혁수의 형이자 아마추어 이상 연구자인 서혁민은 이상이 마지막 눈을 감은 도쿄대학 부속병원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이상이 남긴 시를 모방해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라는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세 번째 장 '새'에서 재미 교포 출신의 이상 연구자 피터 주는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발견된 '오감도 시 제16호 실화'의 진위 여부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다. 


첫 번째 장에서 김연화는 데드마스크뿐 아니라 이상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임을 알게 된다. 이상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렸고, 평론가들 중에도 이상에 대해 '천재'라고 칭송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국 시의 아류', '미친놈의 개수작'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선총독부 건축기사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가난한 문인의 삶을 택한 것, 본명인 '김해경' 대신 아직도 그 의미와 유래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이상'이라는 필명을 사용한 것 등도 이상을 따라다니는 아우라 또는 미스터리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이상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이상을 믿는 사람에게 이상은 작품뿐 아니라 자신의 삶과 죽음까지도 신비화한 불세출의 예술가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지 이상뿐일까. 객관적 사실이 부재하는 상황일 때 믿음이나 취향, 습관이나 경험, 심지어는 기분이나 느낌 같은 주관적 판단에 의해 대상을 평가하는 일은 허다하다. 그러한 평가를 잘 이용하면 성공하고, 이용하지 못하면 실패하는 것이 예술가의 삶일 테고...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한 남자가 스스로 만든 '이상'이라는 '마스크'로 원했던 관심과 인정을 받았지만 만족하지 못했고, '마스크 아래 인간' 김해경의 삶과 균형을 맞추지도 못해 끝내 죽음으로 향해간 이야기, 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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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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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캐럴라인 냅의 마지막 책이다. 예전에 한 번 읽었는데, 몇 달 전 팟캐스트 <정희진의 공부>를 듣다가 정희진 선생님이 이 책을 언급하신 걸 듣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재구매했다. 그동안 거식증을 비롯한 식이장애에 대한 관심이 늘기도 했고, 소식좌 유행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듣기도 해서 그런지,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보다는 훨씬 책이 잘 읽히고 머리에 남는 내용이 많았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은 <욕구들>이지만 원제는 <Appetites>이다. 이 책이 거식증을 비롯한 식이장애에 관한 내용임을 감안할 때 원제가 더 바람직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식욕이 곧 성욕, 애착, 인정욕, 명예욕, 만족감 등과 연결된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임을 감안하면 한국어판 제목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일단 캐럴라인 냅이 거식증 당사자다. 저자의 키가 162cm인데, 하도 안 먹어서 몸무게가 37kg까지 내려간 적도 있다. 당연히 체력도 떨어지고 생리도 안 했다. 온종일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났다. 거식증을 고치려다 술 중독에 빠지기도 했다(이 이야기는 저자의 다른 책 <드링킹>에 썼다). 저자는 2002년 마흔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거식증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아니겠지만 간접적으로 저자의 건강과 수명에 악영향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저자는 자신을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유독 식이장애에 시달리는 이유를 문화, 사회, 역사적인 차원에서 고찰한다. 식이장애는 여성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남성 중심 사회가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억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다. 여성도 인간이므로 다양한 크기와 종류의 욕망을 가지는데, 사회는 오로지 남성만 욕망의 주체로 인정하고 여성은 욕망의 대상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여성은 자신의 몸을 관리하거나(가꾸거나) 방기하는(망치는) 방식으로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다. 


식이장애가 여성이 통제욕을 자기 자신의 몸에 발산한 결과라는 사실은, 역으로 여성에게는 자기 자신의 몸밖에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허락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학력이 높거나 낮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여성이라면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혐오하며, 고치거나 바꾸거나 숨겨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며, 이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각종 문제를 겪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성의 몸은 페미니즘이 가장 덜 건드린 미개척지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어쩌면 최후의 미개척지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383쪽) 저자는 여성이 태어나고 자라는 가정과 여성이 사회화되는 학교에서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몸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방법을 배운다고 지적한다. 저자 자신이 여학교에 다닐 때는 자유롭게 먹고 편하게 움직였는데, 남녀 공학에 다니면서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고백이 의미심장하다. 


쌍둥이 언니의 출산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때 처음으로 여성의 몸이 남성을 먹이거나 남성에게 먹히는 대상이 아닌,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하나의 인간을 만들어내는 인류의 기원임을 실감했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인류의 기원인 여성의 몸을 육성하고 지원하기는커녕 억압하고 통제하니, 출생률이 줄고 인구 절벽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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