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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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n년 넘게 아이돌 팬으로 살았고 주로 남자 아이돌을 덕질했지만 여자 아이돌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S.E.S의 모든 음반을 사모았고, 아직도 핑클의 성유리가 역대 여자아이돌 중에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며, 여자친구, 마마무의 노래는 지금도 즐겨듣고, 아이브, 뉴진스, 르세라핌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래서 조우리 작가의 소설 <라스트 러브>가 여자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무조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성 작가가 쓴 여자 아이돌 이야기는 어떨까, 여성 작가가 쓴 남자 아이돌 이야기와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했고. 


소설은 데뷔 5년차 여자 아이돌 그룹 '제로캐럿'의 멤버 한 명 한 명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제로캐럿은 5년 전 5인조로 데뷔해 3년 차에 지유와 재키가 탈퇴하고 새 멤버 마린이 들어오는 혼란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안정적으로 활동해왔다. 마침내 데뷔 5년 만에 첫 콘서트를 하게 되어 멤버들 모두 기뻐하는데, 사실 이들에게 이 콘서트는 마지막 콘서트이기도 하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많은 나이, 그룹 활동에 대한 의지 저하 등을 이유로 회사가 두 멤버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꿈이기도 했고 청춘을 바친 일이기도 한 아이돌 활동의 끝을 기다리는 멤버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할 수만 있다면 조금만 더 오래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싶은 멤버가 있는가 하면, 자기보다 훨씬 예쁘고 재능 있는 멤버들과의 경쟁에 지친 멤버도 있다. 한 시절을 함께 보낸 멤버들과 곧 헤어진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아픈 멤버가 있는가 하면, 콘서트 직전까지 다른 멤버에 대한 정리되지 않은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는 멤버도 있다. 아마 실제 아이돌 멤버들 역시 이런 마음을 품고 활동을 하고 있거나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라스트 러브>에는 제로캐럿 멤버들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7의 인물이 있다. 바로 제로캐럿의 팬인 팬픽 작가 '파인캐럿'이다. 이 소설은 제로캐럿 멤버들의 이야기와 파인캐럿의 소설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작가는 이를 통해 자신의 스타인 아이돌 그룹 멤버들을 보면서 팬이 꾸는 '꿈'과 그가 살아가는 '현실'을 환상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팬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만 그 안에 다양한 인물 유형이 존재함을 보여줌으로써 팬 문화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조명하는 점도 이 소설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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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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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소설 하면 '좋지만 어렵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어렵지만 좋다'로 바뀌었다. 특히 앞의 네 편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좋았고, 뒤의 두 편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면서 감상을 다듬어갈 생각이다. 


2022 김유정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니니코라치우푼타>는 중위 연령이 61세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근미래가 배경이다. CG 작업이 대세인 영화계에서 드물게 아날로그 방식으로 일하는 특수분장사인 딸과 치매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다. 막연히 상상한 장밋빛 미래와 달리 실제로 도래한 미래는 "재해와 기근과 신종 바이러스의 주기적 출몰이 고착화된 세계에서의 각자도생과, 인류가 더 이상 인류를 이어갈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그 진행에 가속도가 붙은 초고령 사회"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미래 아니고 현재 같다. 


<노커>는 길에서 신원 미상의 인물에게 어깨빵을 당한 딸 다정이 언어 기능을 상실하자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민주의 이야기를 그린다. 비슷한 일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자 정부는 가해자를 찾아서 처벌할 노력을 펼치기는커녕 피해자가 알아서 조심하고 당하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한다. 당연히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나 치고 도망가는 모방 범죄 사건이 늘고, 사람들은 평소에도 겁에 질려 생활하고 피해자가 발생하면 대비하지 못한 그 사람 잘못이라며 탓한다. 이 소설도 허구 아니고 사실 같다. 


표제작 <있을 법한 모든 것>은 플랫폼에 연재될 로맨스 소설을 창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소설가 C를 통해 호텔 키퍼, 매점 점원, 가사도우미 등 '섀도 워크(shadow work)'의 다양한 사례와 발생 가능한 문제 상황 등을 보여준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은 1980년대 '국민학교(초등학교 x)'를 배경으로 한국의 군사문화와 가부장제, 교육 등이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고 그로 인해 어린 소녀들이 어떤 트러블 또는 트라우마를 겪었는지를 예리하게 묘사한다. 가까운 일상에서 다채로운 상상을 펼쳐내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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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 위픽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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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는 구병모의 장편소설 <파과>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파과>는 65세 여성 킬러가 주인공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인해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파쇄>는 주인공 '조각'의 젊은 시절 중에서도 청부 살인을 업으로 삼기 직전 최종 훈련과 시험을 치르는 과정을 그린다. <파과>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저 없이 일을 치르던 조각에게도 생각에서 행동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야단맞는 햇병아리 시절이 있었다니. 몸도 마음도 완벽한 킬러인 조각을 만든 인물 '류'에 대해서도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 


최근에 <사이렌 : 불의 섬>을 봐서 그런가. 조각이 훈련받는 과정을 보면서 <사이렌 : 불의 섬> 출연진 중에서도 군인 팀 생각이 많이 났다. 조각처럼 그분들도 엄청난 무게의 군장을 메고 산에 들어가 훈련을 받은 적이 있겠지. 식량이 넉넉하지 않아서 찐 감자와 군용 저장식으로 끼니를 해결한 적이 있겠지. 힘으로 여자가 남자를 제압하는 것은 어려우니 속도를 높이거나 재빨리 주변에 활용 가능한 무기가 있는지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급소를 치라는 가르침을 받았겠지. (계속 생각나는 것 보니 <사이렌 : 불의 섬> 다시 보기 쿨타임이 찬 것 같다 ㅎㅎ) 


'작가의 말'에도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파과>가 많은 분들의 성원과 지지를 받은 한편, '진정한' 여성 서사가 맞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1) 주인공이 손톱을 칠한다는 것, 2) 어린이를 구조하는 행위가 모성과 닮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 3) 이성을 향해 발생하는 마음 등이었다고. (94-5쪽) 주인공이 손톱을 칠하면 여성 서사가 아닌가. 어린이를 구하면 모성처럼 보여서 여성 서사가 아닌가. 이성을 좋아하면 여성 서사가 아닌가. 이래서 여성 서사가 아니고 저래서 여성 서사가 아니면 '진정한' 여성 서사는 무엇인가.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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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낙서 수집광
윤성근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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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헌책보다 새 책을 선호해 헌책방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찾는 책이 절판되어 불가피하게 중고책을 사야 하는 경우에는 가까운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직접 보고 가장 새 책에 가까워 보이는 헌책만 구입한다. 이런 나와 달리, 세상에는 새 책보다 헌책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래될수록, 종이 색이 누렇게 바래 있을수록, 먼저 읽은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을수록 '오히려 좋아'한다는 이들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 <헌책 낙서 수집광>이다. 


이 책을 쓴 윤성근 작가는 2007년부터 서울 은평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 중인 헌책방 주인이기도 하다. 헌책방 주인의 업무 중 하나는 헌책 매입이다. 매입을 위해 헌책을 살펴보다 보면 별의별 물건과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프랜차이즈 중고서점에서는 뭔가가 끼워져 있거나 흔적이 있는 책을 꺼리지만, 저자의 헌책방에서는 환영한다. 밑줄이 그어진 문장, 귀퉁이에 적힌 낙서, 속지에 끼적여진 일기 등을 보면 이 책을 읽은 사람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15년 넘게 헌책방 직원과 주인으로 일하며 수집한, 누군가의 손글씨가 남아있는 책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가 모은 손글씨 중에는 "가방에 책이 없으면 불안하다", "도대체 주문을 언제 했는데... 이제 오다니" 같은 일상적인 푸념에 가까운 낙서도 있고, "김 OO 부장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인다."처럼 무시무시한 저주도 있다. 80년대에 대학생들이 주고받은 러브레터, 엄마가 자녀에게 말로는 다 못해서 시의 힘을 빌려 적은 인생 이야기도 있다. 


"나는 책이 가장 책다워질 때가 언제냐고 하는 질문을 받으면 읽은 사람의 이야기가 책에 남는 그 순간부터라고 말한다. 헌책에서 찾은 흔적엔 비록 유명인은 아닐지라도 평범해서 더 값진 우리들의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10쪽) 


이 책을 읽은 후인 지금도 나는 여전히 새 책을 선호하고, (평생 소장할 책이 아닌 이상) 책에 밑줄을 긋거나 낙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새 책에는 없는 헌책만이 가진 매력을 알게 되었고, 새 책보다 헌책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주 먼 미래에는 저자처럼 책에서 낙서나 손글씨를 발견했을 때 얼굴을 찌푸리기보다는 책에 얽힌 사연을 이리저리 유추해 보는 책탐정도 될 수 있을까. 그 삶도 꽤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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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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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조앤 디디온의 초상>을 보고 미국 현대사에 관심이 생겼다. 뒤이어 로런 그로프의 소설 <아르카디아>를 읽고 구체적으로 미국의 1970년대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알게 된 이 책의 배경이 1970년대라고 해서 바로 구입했다. 책이 도착하고 나서야 이 책이 무려 872쪽에 달하고 조너슨 프랜즌이 원래 벽돌책으로 유명한 작가라는 걸 알았는데, 하루에 100쪽씩, 총 9일 동안 읽기로 결심했으나 이틀 줄여서 일주일 만에 읽은 건 내용이 무척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어떻게 보면 막장 가족 드라마에 가깝다. 1971년 성탄절을 앞둔 미국 중서부 시카고 교외의 한 마을. 교회의 부목사로 재직 중인 러스와 그의 아내 매리언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다. 독실하고 화목한 중산층 가족으로 보이지만, 이들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문제가 있다. 


러스는 최근 남편을 잃고 교회에 새로 가입한 프랜시스라는 젊은 여자 신도 프랜시스에게 홀딱 반한 상태다.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챈 매리언은 정신 상담을 받으러 다니다가 결혼 전 사귀었던 유부남과의 재회를 상상한다. 장남 클렘은 대학에서 만난 여자 친구의 영향으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심한다. 장녀 베키는 이모에게 상속 받은 거액의 유산으로 대학 진학 전 남자친구와 유럽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운다. 차남 페리는 아버지가 재직 중인 교회의 청소년부인 '크로스로드' 활동에 만족하지 못하고 위험한 일탈을 꿈꾼다. 


이 소설은 붕괴 직전의 가정을 묘사하는 동시에 미국 문화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종교의 영향을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러스는 개신교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메노파 신자였는데, 메노파란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재세례파의 일파로, 퀘이커 교도만큼이나 엄격하고 배타적인 생활을 한다고 한다. 매리언은 가톨릭 신자였는데, 남편의 영향으로 개신교 신자가 된 후에도 천국을 믿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는 등 자기 본위의 신앙 생활을 한다. 클렘은 무신론자에 가깝고, 베키는 사귀는 남자에 따라 교회에 다니거나 말거나 한다. 


그런 이들이 종국에는 (클렘 빼고) 독실한 신자로 복귀하는데, 표면적으로는 페리의 사고가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각자가 경험한 일탈과 실패가 있고, 더 자세히는 실패로 말미암아 깨달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보다는 눈 앞의 상황을 운명이라고 믿고 신에게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에 러스가 "가난할 때는 이런저런 일이 그냥 일어납니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죠. 완전히 주님의 자비에 몸을 내맡기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이 축복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면 주님과 가까워지니까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시 보니 소설의 결말을 예고한 듯하다.) 


이 소설에는 미국 가정의 붕괴와 신앙 공동체의 파멸 외에도 킹 목사 사망과 닉슨 정권의 등장, 히피 문화의 유행, 반전 시위, 페미니즘 물결 등 1970년대 초반을 수놓은 미국의 사회 문제들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되거나 묘사된다. 남자한테 상처를 받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식으로 반응하고 폭식으로 해소(처벌?)하는 매리언, "스무 살 때 베티 프리단과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읽었다면 내 인생 전체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죠."라고 말한 프랜시스, 다양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베키, 로라, 섀런 등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들도 여럿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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