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근대문학의 관련양상 신론
김윤식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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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교수는 우리나라 근대문학을 연구한 학자다. 특히 비평분야에서는 매우 많은 저서들을 냈다. 엄청나게 많은 자료들을 찾아 정리해낸 노고를 인정받아야 하는 학자다.

 

그는 근대문학에서 일본과 우리나라의 관련양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그에 대한 책을 여러 권 냈다.

 

이 책도 그 중의 하나인데...

 

근대문학을 우선 국민국가가 건설되어 있어야 하고,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야 하며, 반제 반봉건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근대문학 초창기에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바람에 이 분야에서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한다.

 

작가들이 일본을 의식 안할 수가 없게 된 것이고, 자연스레 일본문학과 우리나라 문학이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임화의 "이식문학론"을 들고서 비판도 하고 있지만,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상 근대문학이라는 형식을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음은 명백하다.

 

제도나 형식을 받아들이되 내용을 우리나라 것으로 채워나가려는 노력을 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나라 근대문학이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일본을 통하여 근대문학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일본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거나, 일본이 아니었으면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역사가 한참 뒤쳐졌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나라 역시 근대문학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을텐데, 그 넘어감이 순탄하지 않게 된 것이 일제의 식민지배였으리라.

 

이 책에서는 많은 내용이 있지만, 일본과 우리나라 문인들의 교류라던가, 식민지 시대 문학의 언어로 인해 겪게 되는 일들에 대한 고찰이 주를 이루고 있다.

 

조선어로 글을 쓰지 못하는 현실도 있었고, 김동인 같은 경우는 일본어로 구상하고 조선어로 옮기려는 고충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임화의 경우는 일본 시인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쓰기도 하니, 근대 문학에서 일본과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우리 문학이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를 고찰하는 것이 학자들의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김윤식 교수와 같은 사람들의 연구에 힘입어 지금은 상당히 많이 진척이 되었겠지만.

 

교과서에서 배웠던 지식과는 좀 다른 면이 있다. 일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근대문학, 또는 근대문학자들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연구하는 전문적인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책이기는 하지만,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 근대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원형이 여기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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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헌책방에 갔다. 언제나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나를 떠난 인연들과 새로이 나를 만난 인연들.

 

그런 인연들이 언제나 또다른 인연을 만들기 위해 있는 곳. 헌책방.

 

요즘은 헌책방 찾기가 많이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아직 곳곳에 헌책방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아마도 지구를 살리는 몇 가지 대상들 중에 도서관도 있지만, 헌책방도 도서관 못지 않게 기여를 하리라.

 

책을 소장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와 책이 순환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은 곳, 그곳이 바로 헌책방 아니던가.

 

참으로 많은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늘 하던 식으로 시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책들을 살핀다.

 

동네 서점이든, 인터넷 서점이든 시집을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집은 점점 뒤로 밀려나 아주 유명한 시인들의 시집이 아니면 서점에서 제 자리를 잡고 인연을 기다리기가 힘들다.

 

누군가의 손을 거쳐, 누군가의 마음에 담겨 있다가 새로운 사람의 손에, 새로운 사람의 마음에 담기기 위해 가지런히 꽂혀 있는 시집들.

 

시집을 고를 때 여러 시집을 펼쳐보아 마음에 드는 시가 있거나, 또는 제목이 마음에 들거나, 그렇지 않으면 시인이 친숙하거나, 또는 출판사가 믿음직스러울 때 그 시집을 손에 들게 되는데...

 

이형기의 이번 시집은 이형기란 시인 이름만으로 고르게 된 시집이다.

 

제목이 "그해 겨울의 눈"

 

오래되어서 이제는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일테고... 이형기 시인은 아마도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시인이기에 너무도 유명하다고 할 수 있고.

 

시인들은 평생에 걸작을 단 한 편만 써도 좋다고 하던데... 이형기 시인은 자신이 걸작이라고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낙화"란 시로 이미 전국민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니...

 

시인으로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시집에서는 올 여름, 이 계절에 맞는 시를 발견했다. 그래, 이것이 바로 꽃이다. 꽃을 보고, '낙화'를 노래한 시인에게서 이번에는 절정을 맞아 자신을 터뜨리는 꽃에 대한 시를 발견한 기쁨.

 

무더운 여름... 이 시 좋다.

 

 

 

얼마전 어느 곳에 갔을 때 나무에 새빨갛게 달려 있는 꽃들... 아, 배롱나무꽃이구나! 목백일홍이구나! 이제 정말 여름이구나 했었는데...

 

그 꽃에 대한 감상으로 이 시는 제격이다.

 

백일홍(百日紅)

 

지리산 산허리가 무너져 내린

그 해 여름

녹음은 징기스칸의 군대처럼

마을을 덮쳤다.

 

대낮에도 하늘을 가린 그들의 위압에

돌담은 주저앉고

지붕은 납작하게 엎드린 오후 세 시

팔월은 우중충한 웅덩이처럼

숨을 죽였다.

 

그리하여 여름은 두엄으로썩고

썩은 여름의 진액을 빨아들인

땅은 취했다.

더운 입김을 내뿜었다.

 

그러자 갑자기 나무 한 그루

온몸을 폭탄처럼 터뜨리고

꽃을 피웠다.

백일홍이었다.

 

이형기 시선, 그해 겨울의 눈. 고려원. 1988년 3판. 203쪽.

 

어떤가... 여름.. 그 여름에 자신의 꽃을 활짝 피운 목백일홍.. 배롱나무꽃.. 좋지 않은가.

 

덥다. 그 더움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도 있음을... 이 시를 통해 느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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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리더십 - 고금에 통하는 혜안으로 세상을 읽다 (국보 76호 난중일기부록 서간첩 수록)
노승석 지음 / 도서출판 여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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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장군으로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그를 장군으로만 기억하면 전쟁 연구에서나 필요한 인물로 국한시키게 된다.

 

전란에 휩싸인 나라, 이 만큼 정치력을 필요로 하는 때가 어디 있는가? 여기에 책임질 자리에 있던 사람은 제 한 몸의 안위를 위해서 외국으로 도망갈 생각이나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진정 위기를 극복할 리더십이 필요했으리라.

 

그리고 그러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전란은, 위기는 극복이 된다.

 

임진왜란이라는 우리나라 최대 비극을 그나마 극복하게 한 사람이 바로 이순신이다. 만약 바다에서까지 일본군에게 제압당했더라면 임진왜란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바닷길을 이순신이 막아주었기에 일본군의 보급이나 이동이 원활해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우리나라 육군이 시간을 벌 수 있었으며,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싸움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리더십이라는 말을 정치력이라는 말로 바꾸면 이순신의 정치력은 지금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배워야 할 기본 요소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그의 "난중일기"를 토대로 하고 있으며, 이순신이 자신의 리더십을 어디에서 따왔는지를 중국의 여러 자료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공자, 강태공, 제갈량,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정(당태종 때의 장군이다)과 황석공(초한지라고 알고 있는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유방의 참모였던 장량의 스승이라고 한다)의 글을 인용하고, 이를 이순신이 어떻게 자신의 리더십에 적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아마도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또 어떤 단체를 거느리고자 하는 사람이면 이 책을 꼭 읽을 필요가 있으리라. 적어도 남 앞에 서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자세를 지니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리더십이라고 해서 뭐 특별나게 다른 것은 없다. 성인(聖人)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이순신의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으로 유교에서 말하는 5가지 원칙을 들고 있다. 이 다섯 가지 원칙은 굳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사랍답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기본 자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진정한 리더십은 바로 사람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된다. 특별하게 지도자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무엇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살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레 리더십이 따라온다는 얘기다. 물론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는 여기에 과담한 결단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다섯 가지는 "인의예지신"이다.

 

유교의 기본이념인 "인"에서 시작한다. '인'은 곧 사랑이니, 이 사랑은 부모에 대한 사랑인 '효'에서 시작하여 주변인으로 점점 넓혀져 나아가야 한다. 하여 '효'에서 시작하여 '충'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 '충'은 임금에 대한 충이 아니라, 백성에 대한 충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바로 백성이기 때문이다.

 

난중일기에 보면 이순신의 효와 충이 절절하게 나온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어머님에 대해서 지극한 효심을 지녔는지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효가 임금에게 또 백성에게 나아가니, 그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효는 자기 부모만 잘 모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 부모를 모시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정성을 다한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자연스레 "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소위 의리라고 하는 것. 옳음을 위해 자신의 전존재를 거는 것. 그렇게 의를 지키기 위해서 '예'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이순신이 얼마나 예를 중시했는지를 그의 글들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인,의,예'와 더불어 '지'가 있어야 한다. 무식하지만 착하고 부지런한 지도자. 좋을 것 같지만, 아랫사람에게 폐만 끼치는 지도자다.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 '지'는 필수능력이다. 남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여 지도자는 한시도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이순신은 전쟁 중에서 글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글을 계속 쓴다는 얘기는 자신을 성찰한다는 얘기다. 잠시라도 틈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성찰한다는 것, 그것은 계속 공부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바로 '지'다.

 

이러한 지에 더하여 '신'이 있어야 한다. 믿음... 그것이 없으면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 적어도 지도자가 한 말은 반드시 실행이 된다는 믿음을 백성들이 가져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다.

 

지도자가 공수표를 남발해 보라. 아무도 그의 정책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의 정책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하여 진실된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면서 그 정책을 이루기 위한 지혜를 발휘하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리더십, 그것이 바로 이순신 리더십이다.

 

도서관에서 이 제목을 보자마자 꼭 읽어야지 하고 빌려온 책인데... 우연히 영화 "명량"과도 겹치게 되어 이순신에 대해서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의 리더십.

 

사람답게 잘 사는 길을 공부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긴 것...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공자든, 강태공이든, 제갈량이든 그들이 원한 삶이고, 그들이 발휘한 리더십이다.

 

우리나라 정치...지금 어지럽다.

 

정치인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리더십이다. 그렇다면 한 번 이순신을 다시 공부해 보라. 그가 왜 성웅으로 추앙받는지... 어째서 그가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록으로 실린 편지글들과 그 원본 사진도 이 책을 가치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더불어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게 하는 힘도 지니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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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명량"을 보다.

 

 올해 가장 인기 있는 영화가 될 듯하다. 한 시간이나 여유를 두고 영화관에 갔음에도 앞자리의 표를 구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이순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인물 아닌가? 어린 아이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이순신 장군, 또는 세종대왕 아니던가.

 

  그런 그가 백의종군 끝에 겨우 12척이 남은 상태에서 일본 수군과 결전을 벌인 곳, 그곳이 바로 명량(울돌목)이고, 그 유명한 명량해전이다.

 

그는 12척이라고 했는데, 어찌 어찌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배와 맞서 일본 배 31척을 격침했다고 나와 있다. 적어도 내가 읽은 책에서는.

 

배의 숫자가 무에 중요하겠는가. 압도적인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쟁이었음에는 틀림 없다.

 

이를 영화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좀 늦은 감이 있다. 물론 이순신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는 많이 있지만, 이렇게 특정한 한 해전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든 적은 없으니... 지금이라도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명량해전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왜 불편했을까? 역사에서도 영화에서도 이순신은 이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는데, 그래서 발음이 비슷한 명랑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명량"에도 가보았고, 거기에 있던 우수영도 보았고, 직접 그 울돌목이 얼마나 거센지도 눈으로 확인했는데...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적을 섬멸한 이순신의 지략에 감탄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영화는 꼭 그렇지가 않았다. 영화의 두 대사가 맘 속에서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충성(忠)이라는 말. 무에 잘난 임금이라고, 그렇게 아버지를 핍박한 임금에게 왜 충성하느냐고 하는 아들의 질문에 이순신은 답한다. 자신의 본분은 충이라고. 그런데 그 충은 바로 백성을 향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흔히 충성이라고 하면 임금에 대한 충성을 떠올린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순신은 말한다. 충성의 방향은 바로 백성들을 향한 것이라고. 백성들을 향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이 대사가 마음을 울렸다. 충이라는 말이 마음에 중심을 잡는다는 말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의리'란 얘기다. 그런데 그 '의리'가 누구를 위한 의리인가?

 

당연히 임금이라고 생각하고 보았던 기대를 백성이라는 말로 확 깨버린다. 그렇다. 양반들, 사대부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충성을 해야 할 대상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지배층이 아니라,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들어준 백성들이다.

 

영화의 대사는 이것을 환기시켜준다. 하여 명량(울돌목)이 있는 진도가 떠올랐고, 진도 부근에서 일어났던 대참사가 마음에서 다시 밖으로 나왔으며, 최근에 어떤 국회의원이 농성중인 희생자 가족들에게 했다는 말, '노숙자'같다는 말이 떠올랐고, 그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을 하는가? 그의 충성 대상은 누구인가? 하는 생각. 적어도 국민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 이런 젠장...

 

두 번째 대사는 승리한 뒤 아들이 다시 그렇게 될 줄 알았느냐는 질문에 "천행이지"라고 이순신이 말한 대답. 아들은 회오리가 천행이냐고 묻는데, 이순신은 "백성들이 자신을 구해준 것이 천행"이라고 답한다.

 

천행... 하늘이 내린 행운. 그게 천행이었을까? 그렇게 진심을 다해 백성에게 충성하는 한 장군의 모습을 백성들이 외면하기만 할까? 아들은 백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다고 영화 초반에 말했지만...그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던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장군을 구한다.

 

백성들이 이순신이 탄 대장선을 바다의 회오리 속에서 구해내는 장면은 영화적 상상력이겠지만, 실제로도 이런 백성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순신의 "명량"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적인 사실에 의하면 명량해전에서 12척(혹은 13척)의 배 뒤에 민간인 배들이 도열해서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즉, 이순신이 지닌 배는 달랑 12(또는 13척)척이 아니라 백성들이 지니고 있던 그 배들을 모두 포함한 감히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배들이었던 것이다.

 

백성을 뒤에 엎고 있는 장군을 누가 이길 것인가?

 

마찬가지로 이렇게 국민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고, 그 진심을 국민들이 알아주어 지지해주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가 어떻게 정치에 실패하겠는가? 이런 생각이 영화가 끝나고도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1597년의 이순신은 역사 속의 이순신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 왜 그가 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 단지 지형지물을 이용한 지략의 승리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가서는 "명량"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다.

 

진정한 "명량"의 모습은 백성을 위해서 진심을 다하고, 그 진심이 백성과 통하는 그런 장군의 모습인 것이다. 백성과 하나된 장군... 이것은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인 것이다.

 

2014년으로 바꾸자. 아니, 그 뒤라도 좋다. 어떤 정치인이 성공하는가? 답은 이 "명량"에 있다.

 

영화 "명량"에서의 진도는 지금 "진도"와 겹쳐 있다.  

 

덧글

 

이순신에 관한 많은 책이 있는데... 사실 가지고 있는 책은 거의 없다. 그냥 어떻게 알게 된 내용들 뿐인데...

 

오면서... 자꾸만 이순신의 반대편에 있던(물론 영화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아들의 대사로 등장할 뿐이다) 선조가 생각났다. 그 선조를 통쾌하게 욕하고 있는 책.

 

예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평가하는 왕에 대한 모습과 비슷해서였을까?

 

아니면 적어도 왕에 대해서 이렇게 신랄하게 욕을 할 수 있는 역사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을까.

 

아무튼 논쟁이 되는 책이지만, 백성들이라면 정말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 내용들이 많다.

 

백성을 중심에 두고 판단을 한다면, 이순신과 선조는 대척점에 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인은 어떤 정치인인가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을 보고, 지금 우리의 정치를 생각하다니...

 

백지원, 왕을 참하라(상.하)-백성 편에서 본 조선왕조실록. 진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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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교육 - 미래의 학교를 디자인하다
키런 이건 지음, 김회용.곽덕주 옮김 / 학지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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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상상력을 키우는 교육에 대한 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제목의 가운데에 '미래의 학교를 디자인하다'란 말이 들어 있어서 상상력 교육에 관한 책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상상력을 다룬 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교육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고, 교육개혁에 대한 논의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개혁이 성공했다는 나라는 별로 없고.

 

그나마 북유럽쪽이나 유럽쪽의 교육이 좀 나은 편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들 나라에 비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국도 마찬가지일테고, 일본도, 그리고 중국도...

 

하지만 교육개혁을 하는데 어떤 방향으로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다르고, 같은 나라에서도 학자들마다 다르다. 또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백년을 내다보고 개혁해야 하는 교육이 조변석개식으로 그때 그때 땜질 처방에 그친 경우가 많다.

 

몇 십년을 뚝심을 가지고 일관성을 지닌 교육개혁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만 보아도 교육부 장관이 임명되지 못한 지가 꽤 되고 있으니... 어떻게 교육을 개혁하자는 건지...

 

늘 그 나물에 그 밥이듯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교육부 장관이 아닐런지... 차라리 자신이 없으면 단위 학교내에서, 아니면 지역 교육청에서 알아서 교육개혁을 할 수 있도록 가만히나 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나서서 교육개혁을 후퇴시키는 경우도 많았으니...

 

이 책은 교육 개혁에 대한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아니 상상으로 만들어낸 교육개혁의 모습이다. 미래에 이런 식으로 교육이 된다는 그런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유토피아적 공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인류는 교육제도에서 대실패를 경험하게 될테니... 비록 상상 속의 교육개혁이지만, 이것을 현실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지금 우리들의 몫이 아니던가.

 

이 책의 저자는 기존의 교육을 세 가지가 어정쩡하게 결합되어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회화 기능과 학문적 기능, 그리고 발달적 기능인데...

 

사회화에 치중하다 보면 학문적 기능이나 개인 발달을 도외시하게 되고, 개인 발달에 중점을 두게 되면 사회화 쪽이 소홀해지고, 학문적 기능에 중점을 두면 떨어져 나가는 다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이 없고 등등.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교육을 개혁해야 할까? 어정쩡한 세 목표를 다 이루려는 생각을 포기하라고 한다.

 

그냥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전통주의 교육관이나 진보주의 교육관을 모두 비판하고 있으면서 제3의길(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러나 얼마나 실현하기 힘든 말인가)을 택해야 한다고 한다.

 

제3의길을 가기 위해서 교육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하고 있다. 신체적-신화적-낭만적-철학적-반어적 교육으로 말이다.

 

이것들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즉 한 단계 한 단계 순서를 밟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를 건너뛰었을 때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신체적이라는 말은 몸을 움직이는 단계다. 아마도 유아기 때 필요한 교육인데... 우리나라에서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산수를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이 단계를 건너뛴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7세까지는 아이들은 글에서 멀어져 신체활동을 중심으로 놀게 해야 한다. 다양한 몸의 움직임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신화적 단계다. 이 단계에서도 글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다. 이 단계는 구술의 단계다.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단계다. 역시 7-9세 정도까지 이런 단계에서 교육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과 비교해 보라.

 

낭만적 단계는 영웅을 추구하는 단계다. 자신의 현재를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단계, 그래서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단계가 바로 낭만적 단계다. 이 때 학생들은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그를 모방하고자 한다. 그 영웅이 책에나 나올법한 그런 영웅일 필요는 없다.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룬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 자연스럽게 일반화할 수 있는 단계인 철학적 교육으로 나아가고, 마지막 최종단계인 반어적 교육에까지 이르를 수 있다고 한다. 반어는, 다르게 보는, 그런 교육을 말한다고 보면 된다.

 

이 반어에는 반드시 유머가 포함되고, 그래서 이 책에서는 교육에서 유머는 꼭 필요하다고, 아니 아주 중요하다고 하고 있다. 유머가 있다는 얘기는 여유가 있다는 얘기가 여유가 있다는 얘기는 남의 얘기를 받아들일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여 상상 속의 학교에서는 '대화, 웃음, 정서적 참여는 2050년대의 학교교육을 지배했던 상상력 교육의 핵심적 도구였다'(336쪽)고 말하고 있듯이 최첨단 과학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요소들이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2050년의 교육에 대해서 상상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이미지로 딱 그려지지는 않지만 지금의 교육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임은 짐작할 수 있다.

 

오전에는 학문적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직업교육(사회화 교육)을 하기도 하고, 아예 학교가 두 공간으로 분리되어 공부와 사회화가 함께 존재하기도 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학생들은 상상력 교육으로 모든 교육을 받고 있는 그런 시대... 그것이 저자가 꿈꾸는 미래 교육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교육에도 많은 개혁 방법들이 나오고 있기도 하고. 그런 교육개혁에 우선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교육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된다면 교육개혁의 방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교육개혁의 방향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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