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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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공감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사랑으로 그것들을 대한다. 그런 태도가 시에 나타난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그냥 지나쳤던 것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 또 무시했던 것들, 애써 숨기려했던 것들을 시를 통해 받아들이는 과정이 바로 시를 읽는 과정일 것이다.

 

이번 김선우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딱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읽어가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런 따스함. 시가 주는 은혜인지도 모른다.

 

이런 따스함을 넘어 이 시집의 제목이 된 시에서 공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대로 올수록 남들과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오로지 경쟁 경쟁(하다못해 공기업조차도 성과제로 운영을 하면서 경쟁체제를 구축하고, 또 공기업을 민영화-민영화가 아니라 사영화가 맞는 언어다-하겠다고 한다)하여 다른 이에게 공감하기보다는 다른 이를 눌러야지만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가 팽배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남들과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14년 초판 12쇄. 45쪽

 

사람들이 죽어가도, 굶어가도 내 일이 아니니 관심이 없다는, 국민이 힘들어 하는데,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는 지도자... 공감능력의 부족.

 

이 시에서 이렇게 공감하는 마음이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굳이 크로포트킨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는 경쟁보다는 협동이 더 주요했고, 상대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더 인정을 받아왔으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공감하는 능력이 이 시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와 관련짓는다면 정부에서 발표한 쌀 수입 관세율을 513%로 했다고 하는데, 농민들이 바라는 것은 쌀 수입 전면 반대 아니던가.

 

관세율을 높여서 우리나라 쌀 가격보다 외국의 수입쌀 가격이 한참 비싸면 우리나라 쌀을 살 것이라고 하는데, 협상이란, 그리고 관세율이란 지속적으로 내려가기가 쉽기 때문에 결국 우리나라 쌀 농사는 힘들어지게 되고 식량주권이라는 말은 무색해지리라.

 

농민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정치인들, 관료들. 그들은 높은 관세율로 자신들이 해야할 일을 다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쌀 수입이 되는 것 역시 우리들의 생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시, '깨끗한 식사'

 

                                        깨끗한 식사

 

  어떤 이는 눈망울 있는 것들 차마 먹을 수 없어 채식주의자 되었다는데 내 접시 위의 풀들 깊고 말간 천 개의 눈망울로 빤히 나를 쳐다보기 일쑤, 이 고요한 사냥감들에도 핏물 자박거리고 꿈틀거리며 욕망하던 뒤안 있으니 내 앉은 접시나 그들 앉은 접시나 매일반. 천년 전이나 만년 전이나 생식을 할 때나 화식을 할 때나 육식이나 채식이나 매일반.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인데, 일테면 만년 전의 내 할아버지가 알락꼬리암사슴의 목을 돌도끼로 내려치기 전, 두렵고 고마운 마음으로 올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고 (시장에도 없고) 내 할머니들이 돌칼로 어린 죽순 밑동을 끊어내는 순간, 고맙고 미안해하던 마음의 떨림이 없고 (상품과 화폐만 있고) 사뭇 괴로운 포즈만 남았다는 것.

 

  내 몸에 무언가 공급하기 위해 나 아닌 것의 숨을 끊을 때 머리 가죽부터 한 터럭 뿌리까지 남김없이 고맙게, 두렵게 잡숫는 법을 잃었으니 이제 참으로 두려운 것은 내 올라앉은 육중한 접시가 언제쯤 깨끗하게 비워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 도대체 이 무거운, 토막 난 몸을 끌고 어디까지!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사, 2014년 초판 12쇄. 20-21쪽 

 

먹을 것에도 이렇게 공감을 한다면 그래서 그 고마움을 자신의 생활에서 실천한다면 우리가 굳이 식량주권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식량주권 문제는 해결될 터.

 

이런 사람이 외국에서 오는 식량을 먹을 리가 없고, 자기 몸의 일부가 되는 음식들을 함부로 대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역시 공감의 문제다.

 

이런 공감의 절정은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에 대한 공감이다. 아직도 수요집회가 계속되고 있고, 일본 정권의 수장이라는 사람은 헛소리만 찍찍해대고 있으며, 우리나라 지도자 역시 이 문제를 외교로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도 수요집회는 계속되고 있는 이 비극적 현실.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되어가는데... 꽃다는 십대의 나이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온 할머니들이 이제는 저승길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니.

 

너무도 한심한 공감능력의 부족이다. 이런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가 '열네 살 무자(舞子)'라는 시에서 절절하게 펼쳐진다.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기에 더 마음이 아프다.

 

(시가 너무 길기에 인용은 생략한다. 이 시집 64쪽에서 74쪽에 걸쳐서 표현되어 있다) 

 

이런 일이 '세월호'에서도 일어날까 두렵기도 하고, 정말 조금이라도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람들의 공감능력 없음에 화가 나기도 한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가 어떤 것인지 파악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세 편의 시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공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시를 통해서 공감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갖추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멀리 여행을 갈 때 시집을 한두 권 들고 갔으면 좋겠다. 특히 외교 관계로 해외순방을 자주 하는 나으리들. 인문학, 인문학 하는데, 자칭 어렵다고 하는 인문학 책들도 좋지만 시집을 몇 권 들고 가면서 비행기 안에서 찬찬히 읽어보시는게 어떠실지.

 

이 김선우 시집... 찬찬히 읽으면 마음 속에서 '공감' 하는 마음이 막 생겨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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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싶은 집은 -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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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공간이다. 과거에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죽었다. 지금은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다는 말이 맞는 시대이긴 하지만 병원 역시 집의 한 형태이니 우리들은 집을 떠나 살 수 없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서 자고 있지 않은가. 이것 역시 일종의 집이다.

 

그런데 이런 집에 대해서 우리는 자기가 도대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을까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미 주어진 집 중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들어갈 뿐이다.

 

그 집에는 내 노력이 들어가 있지 않다. 물론 집 안을 꾸미는 일에는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고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채울 뿐이니 논외로 하자.

 

그냥 살 뿐이다. 어떤 이는 교통이 편하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평수가 넓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주변 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교육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곳에 들어가 살다가 다시 떠난다.

 

집은 나의 일부가 아니라 그냥 스쳐지나가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집은 자신이었다. 집은 바로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큰 자신 속에 자신의 몸을 들이는 공간, 집과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하여 집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집에 얽힌 이야기. 이야기와 더불어 집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함께 해왔다.

 

이런 집을 갖고 싶다는 소망. 주어진 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집을 짓고 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국어 선생이 건축가를 만나 서로 이야기하면서 만들어간 집 이야기.

 

이것이 바로 이 책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다.

 

국어선생 송승훈이 장현이라는 곳에 땅을 구입하여 자신이 살 집을 짓고자 이일훈이라는 건축가를 찾아간다. 건축가는 주택을 짓는 일이 손은 많이 가나 이익은 남지 않는 일이라 망설이지만 건축을 의뢰한 국어선생을 보고 집을 설계하기로 한다.

 

대신 메일로 집에 대한 생각을 주고 받으며 집에 대한 상을 만들어가기로 한다.

 

이 책은 집을 짓기까지 건축주인 국어선생과 건축가가 주고 받은 메일을 모아 놓았고, 간간히 집에 대한 사진을 넣었다.

 

하나의 집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책이고, 건축을 의뢰한 사람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가려는 건축가의 모습을 알 수 있고, 그리고 추상적으로 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것이 건축가와 대화하면서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잡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집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책인데...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집을 짓고 싶다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집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집의 이름을 '잔서완석루'라고 지었다고 한다. 화려하지 않고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들인 집이 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결국 집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고, 사람과 더불어 함께 늙어가는 것이 집이니... 집 이름도 좋다.

 

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집에 살 사람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국어선생답게, 아니 국어선생 중에서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인 집주인을 위해 서재를 집의 가장 끝에 두어 서재까지 가는 동안 집 곳곳에 주인의 손길과 눈길이 머물게 설계하는 모습... 그리고 책길이라는 개념을 두어 서재까지 가는 길에 책을 볼 수 있는, 산책길이 아닌 책길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집은 결국 사람과 함께 갈 수밖에 없음을 이 책은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집에 살게 된 국어선생은 나중에 이런 말을 한다. '시멘트로 한옥을 지었다'(316쪽)고.

 

전통을 잇는 건축방법에 세 가지가 있다고 국어선생은 분류하고 있는데(물론 이는 건축학적 분류가 아니라 국어선생다운 분류다) 하나는 형태를 계승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재료를 계승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공간을 계승하는 것인데...

 

자신은 한옥의 공간을 계승했다고. 그래서 시멘트로 지은 한옥에서 산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집에 대한 사랑. 건축주와 건축가의 신뢰와 소통. 이것이 결국 그 장소에 어울리면서 그 사람에 딱 맞는 집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이 집은 국어선생이 살아가면서 함께 늙어갈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러운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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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겨레 신문 첫면에 난 기사의 제목

 

"침묵 깨고 강공…박대통령 '세월호법' 걷어찼다"(2014년 9월 17일자)

 

대통령의 면담을 요청하고, 여당과 야당이 제대로 정치를 이끌어가지 못하니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삼권분립이라지만 아직은 제왕적 권한을 지니고 있는 대통령이 나선다면 문제 해결에 한 발 다가설 것이란 생각에 대통령의 나서주기를 바라던 유족들의 바람이 어제 장고 끝에내린 대통령의 결단(?)으로 끝나버렸다.

 

대통령은 자신이 나서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하면서 세월호에 대한 대통령의 결단을 거절했다

 

이 거절을 한겨레 신문에서는 걷어찼다고 표현했는데, 언제든지 자신을 만나러 오면 만나주겠다는 대통령의 약속도,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던 대통령의 말도 어제 이 말 속에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통령의 권한이 큰데, 삼권분립이라고 하지만 국무총리부터, 대법원장, 국회의장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 없는 지경인데...

 

지금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세월호이고, 이 세월호 문제가 도대체 삼권분립 체계 안에서, 또 현 사법체계 안에서 해결이 안되고 있기에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대통령이 이번에 과감하게 결단을 내 버렸다.

 

"그것은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 누가 관여하지? 해경은 일종의 경찰인데, 그 해경이 문제의 핵심에 있는데, 또 여러 가지 의혹을 사고 있는 집단들이 힘있다고 하는 집단인데... 현재의 사법체계 안에서 잘 해결이 되지 않을 거라는 의심을 받는 것 자체가 이미 현 사법체계가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의 반증인데...

 

대통령마저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교육부에서는 이렇게 한단다.

 

역시 한겨레 신문 2014년 9월 7일자 첫 면의 기사다.

 

'세월호 리본달기' 금지령 내린 교육부

     점심 단식·공동수업도 불허

 

교사는 추모해도 안된단다. 교사가 추모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란다. 세월호 가지고 특별법 만들어 달라고 동조 단식을 하는 것도 정치적 행위이고, 세월호에 관하여 공동수업을 하는 것도 정치적 행위다.

 

이것이 정치적 행위 맞다. 한나 아렌트의 말에 의하면 인간은 모두 정치적 동물이다. 우리가 공동 생활을 하는 한 정치적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문에서 또는 교육부에서 말하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또는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런 정치 행위는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세월호에 관한 것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또는 정부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닌,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것이다.

 

자기 자식들이 또는 자기 지인들이 수장당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아야 했던 그 심정을, 그 한을 풀어달라는 것이고, 그 한이 풀려야 함에 동조하는 말,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닐까?

 

적어도 지도자라면, 정치가라면, 리더라면 그런 행동을 오히려 장려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옳음을 위해서는 법과 원칙에 얽매이지 않을 것... 이것 아닌가.

 

원칙은 아름답지만 원칙에만 매달리면 추하게 됨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리더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 때 읽으면 좋을 책.

 

케샤반 나이르, 간디 리더십. 씨앗을뿌리는사람.1999년

 

예전에 정치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한 책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성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간디에게 배우는 책.

 

 

김종철 선생은 요즘은 '정치가 계급'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치를 하는 사람이 '정치가 계급'이 아닌 진정한 정치가가 되려면 간디 리더십에 관한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실천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 책도 읽으면 좋다.

 

"위대한 영혼의 스승이 보낸 63통의 편지" 지식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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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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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건축과를 나오지 않은 건축가.

 

독학으로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확립한 건축가.

 

건축계의 게릴라로 불리는 사람. 안도 다다오.

 

그가 자신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한 이 책은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자신의 사무실로부터 시작한다.

 

건축사무소인데 1층 중앙현관에 사장의 사무실이 있고, 해외 업무를 제외한 개인적인 전화나 메일은 쓸 수 없으며, 어디에서 일하던 사장의 눈에 띄게 사무실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는. 그런데 문제는 사원들만 사장의 눈에 띄는 것이 아니라 사장 역시 사원들의 눈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

 

그렇게 자신있게 자신의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안도 다다오. 이 책은 이 장면에서 시작한다. 과연 독학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이룬 사람다운 고집이 느껴지는 사무실 구조다.

 

이런 그였기에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낌없이 투자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사무소에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포트폴리오니 면접이니 하는 것들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무실에서 함께 일해보고 그래도 하겠다고 하면 채용하는 식으로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다.

 

그의 말을 보자.

 

 학생은 자신의 미래를 키우기 위하여 오로지 자기 하나만을 위하여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면, 먼저 사회에 진출한 우리는 그 의욕에 부응하여 기회와 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미래를 짊어질 학생을 사회의 재산으로 보호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26쪽

 

이런 자세를 지니고 있기에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 사장과 사원이 1대1의 관계를 맺고 일을 하는 사무소. 자기의 뜻대로 일을 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게 하는 교육. 이것이 그가 하고 있는 교육이다.

 

이런 교육을 하고, 자신의 사무소를 운영하기까지의 과정과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어떤 건축을 해왔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건축관을 결정한 것은 그가 어렸을 때 동네의 목공소에 다니면서 들었던 목수 아저씨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목공소의 목수는 "나무에도 성격이 있단다. 좋은 것이 더 잘 드러나도록 다뤄줘야 해."하며 10년을 하루같이 나무를 깎았다. 45쪽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자연과 사람들의 삶이 잘 드러나게 하는 것, 그래서 건축은 도시의 일부이자 사람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건축은 바로 그 장소에 꼭 필요한 건축이 된다. 안도 다다오는 이런 건축관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장소가 아니면 안 되는 건축, 건축을 통하여 그 장소의 기억을 계승하는 것을 내 작업의 보편적 주제로 생각하고 있다. 372쪽

 

따라서 이런 건축이 있는 도시는 바로 인간 삶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세계의 대표적 도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도시에 흐르는 '풍성한 시간'이다.

- 122쪽

 

역사가 있는 건축. 이야기가 있는 건축. 그리고 삶이 있는 건축. 이런 건축을 하는 건축가의 자세로 그는 '건축가라면 자기가 관여한 건축이 서 있는 한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234쪽)고 한다.

 

자기가 관여한 건축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관여한 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유지 보수를 해줌으로써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건축적 신념은 개인주택에서 공공건축으로 넘어간다. 왜냐하면 건축은 결국 공공성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공건축에서 지녀야 할 공공정신. 이는 환경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되고, 사람들의 삶과도 관련이 된다. 그렇기 위애서는 이런 정신과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한다.

 

 자유롭고 공평한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개인의 자아를 넘어선 공공정신이다. ... 뭇 사람들의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문화를 창조하고 키워가는 것은 어느 시대나 개인의 강력하고 격렬한 열정이다. 254쪽

 

결국 그는 개인주택에서 공공건축으로, 여기에 종교건축으로, 또 해외건축까지 진출하여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있다. 단지 건축계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좋은 건축, 그 장소에 필요한 건축,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건축을 목표로 한 것이다.

 

어떤 인맥도 학맥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건축계에서 살아남은 그는

 

 "현실 사회에서 자기 이상을 진지하게 추구하려고 하면 반드시 사회에 충돌하게 되어 있다. 십중팔구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며 연전연패의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래도 계속 도전하는 것이 건축가의 삶이다.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계속 달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환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 가능성을 믿는 강인한 마음과 인내력이야말로 건축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다." 404쪽 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여 우리네 인생에서는 건축가의 이러한 자질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건축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건축이 아닌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었다고. 자신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왔다고. 여러분들도 이런 자세로 살아가라고.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 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늘'을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418쪽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일본 건축가였는데, 그의 자서전 비슷한 이 책을 읽으며 건축의 세계가 너무도 매력있음을, 그리고 우리 삶에 너무도 중요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가는 미래를 현재에 가져와 보여주는 사람. 바로 현재에서 미래를 보고 과거와 연결하여 과거, 현재, 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실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사람이다.

 

역사와 자연과 사람과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건축. 그런 건축을 할 때 겪게 되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인정하면서 꾸준히 쉬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건축가.

 

그런 사람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많은 건축물들의 사진과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건축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도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가 만들어낸 건축물을 사진으로 보는  눈의 호사. 즐거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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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 자서전 - 인류의 품격있는 진보를 꿈꾸었던 아나키스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유곤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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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

 

아마도 아나키스트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인기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나키스트 하면 대표적으로 그를 떠올리기 때문이고, 그의 저서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상호부조론은 적자생존에 대항하는 이론으로써, 또 인간의 본성을 밝히는 이론으로써, 그래서 사람들은 경쟁보다는 협동할 때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알려주는 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많이 읽히고 있다.

 

아나키즘 그러면 테러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도 '아나키스트'라는 영화가 이들을 테러를 하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들은 테러보다는 협동, 자율, 자치를 기반으로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여 아나키즘은 평화의 이론이고, 자유의 이론이며, 협동의 이론이고, 자치의 이론이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배제하는 것이지 모든 권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권력을 위에서 내려오는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 하면서 자연스레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이 배제하는 권력은 자유와 자치, 협동을 억압하는 권력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말하는 권력은 권위 정도로 해석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말과 행동에서 자연스레 권위가 나오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자유 자유 하지만 함께 사는 곳에서는 자기의 자유와 남들의 자유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협동하기 위해서 자율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줄일 필요가 있고, 이를 잘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권위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무리 권력이나 권위를 부정한다고 해도 모든 권력, 모든 권위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은 함께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나키즘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리게 한다. 이기적 유전자. 정말로 이기적인 유전자는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음을 과학적으로 밝혀준 책이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아나키즘도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함께 하는 협동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자유라는 말보다는 자율이라는 말을 사용하고는 있지만, 개인의 자유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이루고, 이들이 자치를 하면서 상호협동을 해나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아나키즘이 꿈꾸는 사회고, 크로포트킨이 바라던 사회였을 것이다.

 

크로포트킨 개인의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인 내용보다는 당시 러시아의 상황과 민중들의 삶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더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급박한 혁명 전야. 전제군주의 독재정치. 그리고 그에 편승하는 귀족, 지식인들의 농간. 여기에 핍박받는 민중들의 삶. 그런 삶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모습. 그럼에도 민중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모습.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 추진해가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안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있다는 것.

 

크로포트킨은 어려서부터 이를 체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농노들과도 인간적으로 지냈으며, 근위부대에 들어가 우수한 성적으로 궁정에서만 지낼 수 있음에도 시베리아로 지원해 떠나고, 그곳에서 지리를 탐사해 나중에 훌륭한 지리학자가 되며, 단지 지리학자로 머물지 않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혁명의 자리에 자신을 내던지게 되니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군대시절, 감옥과 혁명운동에 투신해서 지내기까지의 삶 속에서 그가 만나고 보게 되는 러시아 혁명 상황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그리고 곳곳에 들어있는 그의 신념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느껴지고 있으니... 목적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의 태도라든지, 감옥생활의 경험으로 느낀 감옥제도의 문제점 등은 지금도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아나키즘... 우리나라에서는 다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풀뿌리 민주주의와 더불어 생기고 있는데, 그러한 아나키즘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나키스트적인 자세인지... 아니, 어떻게 살아야 정말 사람답게 살았다고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자서전이다.

 

책의 표지에 세계 5대 자서전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그만큼 한 사람의 생애 뿐만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알 수 있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지표를 제시해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삐딱한 덧글

 

세계 5대 자서전? 참 사람들 이름 붙이기 좋아한다. 뭐가 5대 자서전이야 하고 찾아보니,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루소의 "고백록" 괴테의 "시와 진실" 안데르센의 "내 생애 이야기" 그리고 이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이란다. 예전에는 "한 혁명가의 초상"이라고 나왔다고 하니, 아마도 이름을 "한 혁명가의 초상"으로 하는 것이 옳겠다.

 

내가 좀 삐딱해서 그런지 이들이 모두 유럽 사람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계에 위인들이 많고, 또 좋은 자서전도 많은데 꼭 이렇게 세계 5대 자서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책을 광고해도 남들이 세계에서 5번째 안에 드는 좋은 자서전이라고 해도 크로포트킨의 생애를 생각하면 이런 이름을 붙여 책 겉표지에 홍보하는 것을 그가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백범일지"와 같은 자서전이 있고, 인도에는 "나의 진리 실험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간디 자서전이 있지 않은가. 또 내가 모르는 훌륭한 사람들의 자서전이 얼마나 많은데...

 

이왕이면 동서양을 아울러서 선정을 하던지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님 크로포트킨을 생각해서 이런 광고 문구는 빼던지...

 

참, 나도 삐딱하다.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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