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우연한 시선 - 최영미의 서양미술 감상
최영미 지음 / 돌베개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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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예술가이었던 시대에서, 특정한 누군가만이 예술가가 되는 시대.

 

이것을 발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들에겐 예술에서 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모두가 예술가이었던 시대, 예술가는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는데,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지닌 사람이 예술가라는 특정한 직업군으로 등장한 이후...

 

그들의 자긍심이 클수록 사람들은 예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멀어진 예술을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오게 하는 사람들, 그들 역시 예술가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시인들은 특히나 예민한 감수성으로 다른 예술을 느낀다.

 

그 느낌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쓴다.

 

글로 자신의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

 

잔잔한 호수에 물결이 퍼져 나가듯, 시인이 들려주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들 마음 속에 파문을 남긴다.

 

하나의 물결을 이룬다. 그 물결이 바로 우리를 다시 예술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이 책은 시인인 저자가 우연히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그림에 대해서 글을 쓴 결과물을 모은 책이다.

 

이미 많이 보았던 작품들도 있지만, 시인만이 느끼고 이야기해주는 그림도 있어서 어렵지 않게, 그러나 색다르게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림을 보면서 시인의 글을 읽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고, 또 그림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점도 깨달을 수 있고...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보아야 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냥, 그렇게... 글과 그림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화가의 우연한 시선이 우리의 시선과 마주칠 때, 우리의 마음에서는 불꽃이 일기도 하니, 예술에 대한 불꽃은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느껴 보시길...

 

바로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감수성이 실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감수성은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우리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건 무엇보다도 감수성의 문제이며,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는 결코 진정으로 느낄 수 없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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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 - 지치지 않는 독서교육을 꿈꾸는 보통 교사들의 새로운 교실이야기 배우는 사람, 교사
경기도중등독서교육연구회 지음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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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교육, 요즘은 읽기 교육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책이라면 종이로 만든 책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전자책도 나와있으니, 책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라지고 있고, 어떤 도서관에서는 "사람책" 읽기라고 해서 특정한 사람을 모셔다 그 사람에게 질문하고 이야기 듣는 시간도 마련하고 있으니...

 

글을 읽는다는 의미의 독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읽는다는 의미로 읽기 교육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단 생각을 한다.

 

그런데 과연 읽기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을까? 학교에서 학생들은 주로 교과서나 읽지 다른 책은 읽지 않는다.

 

학교 도서관에 있는 그 많은 책들, 그 좋은 책들이 서가에서 먼지만 뒤집어 쓴 채 한 해에 단 한 번도 학생의 손길을 느껴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독서 교육을하겠다고, 읽기 교육을 제대로 하겠다고 나선 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지치지 않고' 하는 읽기 교육을 하겠단다.

 

"지치지 않음"

 

교사가 가장 먼저 지녀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무언가를 제대로 읽어내는 시간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읽기의 경험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신뢰와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신뢰와 기다림 속에서 지치지 않아야 읽기 교육은 성공한다.

 

그러니 이들이 목표로 삼은 "지치지 않기"는 제대로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 이들은 정규 수업 시간에 읽기 교육을 하자고 한다.

 

정규 수업이 아닌 특별히 따로 시간을 내는 수업은 십중팔구 교사들을 지치게 해서 지속적이지 않게 된다.

 

하여 지치지 않고 읽기 교육하기의 첫 번째 원칙은 정규수업시간에 하기다. 교과서가 만능이 아니고 또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이 때에, 교과서를 잘 재구성하고, 시간을 내서 정규 수업 시간에 읽기 교육을 한다면 교사가 시간 부담을 덜 가지게 되고, 수업 부담도 덜 느끼게 된다.

 

두 번째는 너무 많은 욕심을 내지 말 것이다. 책을 많이 읽히겠다는 일념으로 이것저것 좋다는 책은 다 읽히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

 

한 해에 몇 권만 제대로 읽혀도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하여 이들 교사들은 집중적으로 몇 권의 책을 모둠별로 읽히고, 또는 개인별로 읽히고, 그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발표하고 자기의 삶과 연계시키는 방향을 모색한다.

 

그렇게 읽기 교육을 해왔다. 그 결과 학생들은 시나브로 변해갔으며, 읽기의 즐거움, 또는 읽기의 효과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책하고는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체육 교과에서도 읽기 교육을 시도했고, 그 시도가 나름 성과를 거두었다는 이 책의 사례를 보면, 역시 읽기는 우리네 삶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 번째는 조금 잔인하다 싶기도 하지만 평가와 연관짓는 일이다. 학생들이 책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서는  평가를 배제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 현실에서 평가와 함께 가지 못하는 읽기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학생들은 참으로 바쁘다. 힘들다. 이들에게는 동기가 없는 수업은 자는 시간, 쉬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평가와 연계해야 한다.

 

대신 평가는 기존의 얄팍한 지식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삶과 관련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에서는 대부분 평가들은 글쓰기와 발표로 이루어졌다. 글쓰기는 읽기를 다시 한 번 정리하는 효과가 있으며, 발표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함께 나누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읽기 교육을 시도한 교사들. 이들때문에 어쩌면 우리나라 교육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가능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 교사들, 자신들이 학교에서, 그것도 아주 다양한 학교에서 해왔던 읽기 교육의 사례들을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한다. 자신들의 활동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읽기 교육이 그래도 그들을 교사로 있게 함을 이 책을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다.

 

"지치지 않고 독서 교육 하기"

 

이것이 진정한 독서 교육, 읽기 교육이다.  너무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하는 읽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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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시인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25
일과시 동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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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시 동인 시집"이다. 이 시집이 9집이다. 아홉 번을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집을 냈다. 끊이지 않고 20년에 걸쳐 시집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아니, 고맙다.

 

이들은 노동자다. 노동자 시인이다. 시인 노동자다. 어떤 말이 어울릴지 몰라도 일과 시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이들에게는 일이 곧 시이고, 시가 곧 일이다. 시가 곧 삶이다.

 

삶을 떠난 시들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 삶을 시로 표현해 내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일과 시 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시를 많이 읽지는 못했다. 기껏 가지고 있는 시집이라고 해야 이번이 두 권째.

 

그래도 계속 읽고 싶어진다.

 

포스트 모던시대,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운동이 약화되고, 노동자 의식도 더불어 약해졌지만, 그래도 노동자들은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시로 표현한 이러한 시집은 아직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번 시집에 실린 시인들을 보자. (가나다 순이다. 시집도 이렇게 가나다 순으로 실었다.)

 

김명환, 김용만, 김해자, 김해화, 문동만, 서정홍, 손상렬, 송경동, 이한주, 조태진 

 

민주노동 지도부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 직접 총투표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언론에서는 잘 다뤄주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인데, 언론노조가 있을텐데도 관심 밖이다. 그만큼 노동운동은 이제 우리의 관심에서 많이 멀어져 가고 있다.

 

이런 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를 더 편하게 해야 한다고, 우리나라는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기가 어려워서 노동유연성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런 말을 해도 어영부영 넘어가는 나라다.

 

그만큼 삶은 피폐해졌고, 비정규직이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에 바빠 다른 사람들의 삶에는 눈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하여 노동시라는 말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리는 이 때, 그래도 노동과 시가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 일과 시 동인들이 이런 시집을 낸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는 일에서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우리네 삶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일인데, 이런 일이 비정규직을 없애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자신들의 삶을 계획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런데도 벌써 우리는 노동에서 멀어져 가고 있으니...

 

이 시집에서 맘 속으로 파고 들어온 시.

 

   돋보기

 

결국은 돋보기를 썼다

안 보이는 게

불편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외면하는

내가 미워서

 

볼 만큼 보고

쓸 만큼 썼으므로

세상에 눈 감으면

편할 줄 알았다

 

나이를 먹는 거보다

더 슬픈 건

상처받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일과시 동인, 못난 시인, 실천문학사, 2014년. <김명환, 돋보기 전문>.27쪽

 

나이를 먹어가면서 정말로 슬퍼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사랑을 하지 않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일에서 거리를 두고 눈 감아 버리는, 그래서 그냥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어차피 안돼 하면서 지레 포기하고,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하면서 무슨 도인인양 달관한 듯한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포기해 버리는 그런 삶. 그것이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일테다.

 

무언가를 도전하지 않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그런 나이. 그것은 아니다. 이들이 펴낸 동인 시집 중에 "아직은 저항의 나이"라는 시집이 있다.

 

저항을 하지 못하는 나이는 없다. 그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포기한 것이다. 스스로 늙어버린 것이다. 자신이 상처받기 싫어서.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일과 시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그들이 시집을 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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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빅뱅 - 자연과학의 눈으로 교육을 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도서
이철국 지음 / 민들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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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의 눈으로 교육을 보다'라고 하는 책인데, 빅뱅이라는 말이 우주의 탄생을 알리는 말이고, 천문학계에서 쓰는 용어이니 교육을 자연과학의 눈으로 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앞표지에는 또 이런 멋있는(?) 구절이 적혀 있다.

 

'이제, 어린왕자의 심미적인 별과 천문학자의 핵융합하는 별이 만나야 한다'

 

별은 곧 교육이다. 그러니 교육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함께 만나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교육이 (특히 대안교육은 더) 인문학 쪽에 치우쳐 있다는 반성과 함께 자연과학적 지식이 교육에 들어와야지만 온전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긴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문과와 이과로 나뉘고, 문과에서는 과학 쪽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과학과는 영원한 이별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벌써 반쪽은 십대 후반에 과학 공부와 관련이 없어지고, 또 이과라고 해도 과학 공부가 진정한 과학 공부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대답을 하기 힘든 지경이니, 또 다른 반쪽인 이과에서도 과학은 멀어진, 안드로메다 성운에 해당하는 그런 공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새가 한 쪽 날개로는 날 수 없듯이 교육 역시 한 쪽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 교육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함께 추구하는 과정이기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함께 가야만 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요즘은 "빅 히스토리"라고 하여 과학과 역사, 문학, 철학이 하나로 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융합, 융합 하는 요즘 자연과학을 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주장하고 있는 이 책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자연과학의 이론을 주저리주저리 나열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주 탄생, 생명 탄생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질문이 철학적 질문, 종교적 질문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질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원핵 세포들에게는 죽음이 없었는데, 진핵 세포들로 진화하면서 함께 모여 죽을 수 있게 된 상태가 바로 우리 생명체들이 탄생한 순간이고, 이런 탄생은 죽음과 함께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데...(239-245쪽 참조)

 

가장 종교적이고 철학적일 것 같은 죽음에 관한 질문 마저도 자연과학으로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교육에서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함께 가야 함은 당연한 일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확신하게 된다.

 

대안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지은이가 자신의 교육 경험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인지를 말해가는 가운데, 각 장마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끼워넣고 있다. 끼워넣고 있다기 보다는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작은 제목들이 있는데 그 중에 마음에 와 닿은 제목.

 

모든 아닌 세상에 딱 한 명이다  

빛과 같은 아이들-역자역학에 따른 교육관

우주와 생명에 대한 이해는 나를 이해하는 지름길

초신성같은 대안교육

 

이런 제목들만 보아도 교육이 과학과 떨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별들이 모두 자신들만의 별이듯이, 아이들 역시 자신들만일 수밖에 없음을... 과학을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고 있으며, 불확정성의 원리를 들어 아이들을 바라보게 하고, 결국 우주와 생명에 대한 이해가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길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지구를 만들어낸 것은 결국 초신성의 폭발로 인한 결과이니, 우리 교육이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역시 대안교육의 역할이라고, 이렇게 과학과 교육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 하면 어렵다고, 지겹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는데, 이 점에서는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데, 그게 아니다. 우리가 과학에 대해서 잘못된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그런 관점을 깨야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는 듯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함께 교육에 들어올 때 바람직한 교육이 된다고 하는데... 문,이과를 통합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겠다는 지금 정부의 정책이 방향은 옳을지 모르는데, 그 방향으로 올바르게 가기 위해서는 이런 책, 참고해야만 한다.

 

교사들이 읽으면 참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 책이다.

 

과학 쪽의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기도 하고... 지식의 편향은 결국 사고의 편향을 낳으니, 나도 다양한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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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 반전과 평화의 미술
박홍규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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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우리 인간의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에서 미술은 특히 우리의 눈을 통해 마음을 울린다는 점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와 함꼐 한 예술인데...

 

오죽했으면 선사시대에도 동굴에다 그림을 그려 넣었거나, 자신들의 무덤 속에 그림을 그려 넣었겠는가. 그만큼 미술은 삶과 죽음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술이었다.

 

그렇게 삶과 동떨어질 수 없는 미술이 현대에 인간들이 겪은아니 인류가 겪은 전쟁에 대해서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으리라 추측을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최초의 전쟁 기록으로 남아 있는 기원전 1496년 이래 35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전쟁이 없었던 해는 불과 244년에 불과하고, 나머지 3250여 년은 인간이 흘린 피로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7쪽) 

 

고 하고 있으니, 전쟁은 우리와 늘 함께 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잠시 잊을 수는 있었겠지만 결코 헤어지지는 못하는 존재처럼 말이다.

 

꼭 죽음과 삶처럼 전쟁과 평화도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의 역사가 이렇게 이루어졌다고 해서 전쟁이 인간의 삶에서 필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전쟁이 없는 역사를 꿈꾸어야 하고, 또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전쟁은 나쁘다. 어떤 전쟁도 찬양되거나 기념되거나 추억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전쟁에 대해서도 합리화나 정당화나 역사화는 있을 수 없다. 모든 전쟁은 악이다. 죄악이다. 전쟁은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전쟁의 본질은 잔인함이다. 전쟁은 오직 파괴이다. 아니 인간을 개처럼 죽게 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파멸의 심연이다. (277쪽)

 

전쟁이 시작되면 지옥의 문이 열린다. 아무리 전쟁이 정당하더라도 그것은 부당한 평화보다 못하다. 어떤 전쟁도 정당할 수 없고, 어떤 평화도 부당할 수 없다. (278쪽)

 

이렇게 이 책의 지은이는 말하고 있다. 인간의 문명이 점점 발달해 오면서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기는 커녕 대량 살상의 위험, 멸망의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는 이 때 전쟁에 대해서, 어떤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지은이의 말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전쟁으로 우리네 삶은 얼마나 피폐해지고 있는가.

 

이런 전쟁에 그림으로 맞선 화가들이 있으니, 그것은 아마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전쟁에 맞선 평화의 움직임이 만들어졌듯이, 전쟁을 찬양하는 화가들에 맞서 평화를 주장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있었으리라. 

 

근대 초 자크 칼로의 전쟁 판화를 비롯하여 스페인시민전쟁의 [게르니카]에 이르기까지, 반전과 평화의 미술은 한 장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전통을 형성했다. (8쪽)

 

이렇게 반전, 평화 미술은 인간의 역사에서 당당하게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미술들이 많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소개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 책은 그 동안 우리에게 그다지 자주 소개되지 못한 반전과 평화의 미술을 소개하기 위해 씌오졌다. 그런 작품들은 전쟁의 역사만큼 길고 전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만큼 그 폭도 넓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미술을 통해 전쟁의 비극에 대해, 평화의 소중함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8쪽)

 

그래서 지은이는 세계 미술사를 통해 반전과 평화를 담은 그림을 그린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의 절절한 바람을 담아 소개하는 화가들과 그들의 그림이 울림을 준다. 우리네 세상이 평화로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함께 바라게 된다.

 

반전 평화 미술은 진정한 사실주의, 진실한 민중예술, 참된 민주예술이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만이 진실이다. 그 진실에 어긋나는 모든 가식이나 허위를 고발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자 반전 평화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279쪽) 

 

그러한 반전 평화 미술은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평화롭지 않은 세상이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지를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기에 이런 그림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다.

 

결국 화가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만의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예술가란 사회를 벗어날 수 없음을, 그래서 우리의 삶을 더욱 평화롭고 풍요롭게 하는 화가들이 진정한 화가임을 이 책은 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에 순수-참여 논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순수란 말인가?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이 순수라면 그것은 가장 정치적인, 불의에 종사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진정한 순수란 불의한 현실을 거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순수고, 그러한 순수는 참여일 수밖에 없는데, 순수-참여 논쟁이 왜 일어난단 말인가.

 

하여 이 책은 이러한 순수-참여 논쟁을 배제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를 추구하는 그림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자크 칼로로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베트남 전쟁을 다룬 화가들까지 다양한 화가들과 그림을 다루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그림은 한 권의 책이 될 필요가 있다고 하여 빼고 있는데, 우리나라만을 다룬 그림도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반전 평화 미술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현대가 아직도 전쟁의 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되어 슬프기도 하지만... 언젠가 이런 반전 평화 미술이 역사의 한 장으로 물러나길 기대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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