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대학생들이 던진 33가지 질문에 답하기
엄경희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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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신동엽의 산문시1였다. 

그의 시에는 탄광의 광부들도 하이데거, 장자, 러셀의 책을 읽으며, 정치인의 이름은 몰라도 극작가는 알고 있으며, 대통령이 자전거를 타고 시인의 집에 놀러간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인지, 신동엽이 꿈꾸던 세상, 그런 세상이 온다면 평화로운, 그리고 풍성한 삶이 영위되는 사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지은이는 왜 시가 어려울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네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시는 어려움을 본질로 하고 있지만, 이 어려움이 곧 시읽기의 즐거움임을 알게 교육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학교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시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지은이는 대학 강의 경험을 통해 질문을 32개로 정리해서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에 대해서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이야기식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질문은 32개인데, 왜 시가 어려운가를 추가하면 33개의 질문이 된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우리가 시를 읽으면서, 또는 배우면서 느끼거나 생각했던 문제들이다. 이에 대한 지은이의 답변은 매우 친절하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고, 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더구나 이 책의 장점은 각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거기에 해당하는 시를 예로 들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어가면 자연스레 최소한 32편의 시를 읽게 된다. 더 많은 시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최소 32편의 시를 읽으면 시에 흥미가 없던 사람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가 한둘쯤은 나오게 마련이고,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자체로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예로 들고 있는 시들의 출처를 명확히 밝혀두었기에 시집을 사서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주고 있으니 시에 대한 책으로 이 책만큼 일반인들에 다가가기 쉬운 책은 별로 없다고 본다. 

또 다른 장점은 각 질문의 끝에 사유의 끈이라는 또 다른 글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 사유의 끈은 시를 설명한 부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시와 이런 책이 무슨 상관이 있어 할 수도 있는데, 책의 앞부분에서 지은이가 '생각과 호기심과 지식 욕구를 자극하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고 했듯이 이런 책들은 시를 좀더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무슨 책을 읽을까? 좋은 책 없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32권이 넘는 책을 읽는이의 눈 앞에 펼쳐놓는 이 책은 이 부분으로도 많은 도움을 준다. 

이렇게 사유의 끈에 소개된 책들과 많은 시들을 읽으면 우리도 신동엽의 산문시1에 나와 있는 사람들처럼 풍부한 감성과 지성을 소유하고 살지 않을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정치인보다는 예술인들을 더 대우하는, 대통령과 시인이 대등한, 아니 대통령이 시인의 집을 방문하는 그런 사회라면... 

시는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이해하기 위해 지성을 단련시킨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바로 시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공감하는 능력, 그것은 사회를 좀더 좋은 쪽으로 가게 한다. 공감은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비폭력, 평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남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신동엽의 시에 나와 있는 그런 사회일테고, 그런 사회가 바로 민주공화국 아닐까... 

비약을 해서 이야기하면... 플라톤은 자신의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는데, 반대로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공화국에서는 시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  

시가 마냥 어렵다고 느낀 사람, 학교 다닐 때 시험을 위해서 시를 배웠지, 그 이후엔 시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 번 이 책을 읽어보자. 시는 어렵지만, 그냥 어려워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어렵기에 더한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라는 사실, 그리고 시는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나인 남을 위해서 함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산문시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의 삼등대합실 매표소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건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8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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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일상, 시 교육 내일을 여는 지식 어문 22
강주현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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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들을 읽어야 한다. 내 삶에서 먼 시들이 아닌, 내 삶에서 가까운 시들을. 

그 시들을 읽었을 때 나는 더 쉽게 감동을 받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시들을 구해서 읽으려는 노력도 하고, 이런 노력들이 쌓이다보면 자연스레 나에게서 먼 시들도 읽으려 한다. 

이 단계까지 나아가야 시교육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시들을 멀게 하지 않았던가. 

먼 조선시대, 고려시대, 신라시대 시들부터 일제시대 시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국어교육에서 우리는 시 하면 어려운 것, 내 삶과는 동떨어진 그 무엇으로 인식하게끔 배워오지 않았던가. 

시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동원되던 엄청난 배경지식들... 그 지식들에 대한 이해도 힘든데, 그것을 바탕으로 시를 이해해야 했으니, 시를 배우는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극소수의 학생들은 시 배우기를 즐거워했겠지만. 

내 삶과 멀어질수록 이해하기는 더욱 힘들어지니, 시를 내 삶과 관계있는 것부터 배운다면 시도 참 재미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단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는 도시화가 80%이상 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엄청난 개발 등으로 거의 모든 마을이 도시로 바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도시의 삶을 다룬 시들이 교과서에 실려야 하고, 또 아이들에게 교육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마음에 와 닿는다. 

도시의 삶을 다룬 시들을 읽고, 그 시에 나타난 삶, 생각들을 자신의 삶, 생각들과 비교한다면 시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바로 내 삶을 구성하는 일부분임을 학생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역시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예로 든,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김기택의 '벽'이나 '사무원' 같은 시는 학생들도 쉽게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런 시들을 많이 발견해내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교사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수업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시를 더 가깝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잘 드러낸 책이고, 저자의 석사논문을 책으로 엮어 냈다는 만큼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책이다. 다만 이런 책들은 독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교육에 종사하는, 또는 시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낯설게 보는, 다양한 방법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이런 시는 단지 재미없다고,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시를 배워야만 한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계에서 시라는 많이도 느린 작품을 읽고 배우는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창의성도 나오고,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다.  

이렇게 시로 가는 길에 우선 쉬운 포장을 해주는 작품들, 자신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들에 대한 교육으로부터 더 깊고 넓은 시교육으로 갈 수 있다. 이 책은 그걸 말해주고 있다.

===  덧말 ===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전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많은 석사, 박사 학위논문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그냥 교수들의 연구실에, 또 대학도서관 서가에만 있을까? 얼마나 읽힐까? 정말로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읽히지 않지 않을까? 이 책만 해도 시에 대한 교육을 다룬 논문임에도 도서관에만 있었다면 얼마나 알려졌을까? 

그런데 석사, 박사 논문을 이렇게 책으로만 내야 하나? 책으로 낸다는 것은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과연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읽으라는 의미일텐데, 이미 전공분야를 공부하는 대학생, 대학원생이라면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며 될테고, 그렇담 독자는 겨우 이 분야의 교사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학위논문들을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으로 보내주지 않는가? 학위 논문 쓰는 사람이 이 비용까지 부담하는 것이 힘들다면(당연히 힘들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교과부, 교육청에서 논문 보조 수당이라는 예산을 확보해서 각급 학교 도서관에 보내주면 학위를 쓰는 사람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현직 교사들은 최근에 나온 관련분야 논문들을 참조해서 교육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지 않나. 

이렇게 되면 학위논문을 쓴 사람도 좋고, 현직 교사들도 좋고, 이런 공부를 한 교사들에게 배우는 학생들도 좋고, 여러가지로 다 좋지 않은가. 엉뚱한데 쓰이는 돈들을 이런 데에 쓰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산타령,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몰아대는 지금 현실에서 꿈같은 소리이겠지만...... 무엇이 꼭 필요한 일이고, 무엇이 포퓰리즘인지 구분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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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에게
김규동 지음 / 창비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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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동 시인의 이 시집을 읽으면서 이선관 시인의 시가 생각이 났다. 

만일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 - 이선관

여보야 

이불 같이 덮자 

춥다 

만일 통일이 온다면 

따뜻한 솜이불처럼  

왔으면 좋겠다

남북관계가 많이 어려워진 지금, 한 때 이산가족 찾기부터 남북 교류까지 활달한 남북간의 소통은 통일에 대한 기대를 크게 했었는데.. 그 동안 많은 사건이 생기면서 통일에 대한 기대는 많이 멀어져 가고 있다. 

만일 통일이 온다면 이선관 시인의 이 시처럼 따뜻한 솜이불처럼, 우리 모두를 따스하게 감싸주면서 다가왔으면 좋겠는데... 

"느릅나무에게"란 시집에는 시인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드러난 시가 많다. 이 열망이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시인이 살았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리고 헤어진 동생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그리움을 받아주는 느릅나무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집을 읽으면 우리는 통일이 되어야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따스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이 시집에는 통일에 대한 갈망을 노래한 시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시들도 있다. 특히 강남역에서 밀려난 노인들 이야기, 맘이 아프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시인의 시선이 따뜻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시집을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진다.  

또한 이 시집에는 우리나라 현대시사의 중요한 시인들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시집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한국현대시사의 주요시인들을 알게 되는 부가적인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 특히 김규동 시인과 가까이 지냈던 김수영, 박인환, 그리고 박봉우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 말고도 우리 현대시사를 수놓았던 쟁쟁한 시인들이 시 속에 등장하니, 시를 통한 시인이야기도 재미있게 읽힌다. 

김규동 시인의 이 시집은 어렵지 않게 읽힌다. 그가 처음에 모더니즘시로 출발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게 사실적이다. 담담하게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풀어놓은 시들이 이 시집에 실려 있다. 하긴 이 시집의 발문을 보면 한 300편 중에서 83편을 추려 펴낸 시집이라고 하니, 독자들에게 잘 다가올 수밖에 없을 듯하다. 

점점 통일은 우리에게서 멀어져 가고, 시인은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그리고 더불어 아직도 따스한 손길이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 사회에 많다는 현실에서 이 시집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그것은 이 시집이 제 역할을 다한 것이리라. 

시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는 통일에 대한 열망을 노래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시집은 시인이 온몸으로  노래한 시들의 합창이다.  

열정만을 앞세운 합창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전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그러한 합창이다. 아주 듣기에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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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동으로 - 신동문 전집 시 솔시선(솔의 시인) 2
신동문 지음 / 솔출판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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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인이라면 자신만의 시집을 갖고 싶지 않을까. 

명색이 시로 업을 삼은 사람치고 시집 한 권 지니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살아서 시집을 내지 못한 시인을 안타까워 하고, 그 시인을 위해 유고시집을 내주지 않는가. 

우리 시사(詩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육사, 동주의 시집도 살아생전에 나오지 못하고, 사후에 지인이나, 동생에 의해서 발간되지 않았던가. 하다못해 신동문과 친했던 천상병만 해도 그가 행방불명 되었을 때, 친구들이 그의 유고시집 "새"를 발간하는 일도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신동문은 시집을 딱 한 권 내고 더 이상 시집을 내지 않았다. 그에 대한 다른 글을 읽어보면 시집을 내자는 제의도 있었다는데, 그는 쓰레기를 양산하기 싫다고 내지 않았다고도 하는데... 

그만큼 자신이 낸 처음 시집에는 애착이 있다는 얘기도 되고, 또 기존에 발표한 시들에도 불만은 있을지 모르나 발표를 했다는 자체에 어느 정도 자부심과 애착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 "내 노동으로"는 신동문이 발표한 시들을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 수록한 그의 전집이다. 전집이 보통 시인들의 시집 한 권 분량밖에 안된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시집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시집을 읽을 때 기억에 남는 시, 마음을 울리는 시 하나만 있어도 시집을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는데, 마음에 들어와 나가지 않는 시, 이렇게 세상을 볼 수도 있구나,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시, 이런 시들을 발견했을 때, 비로소 시집을 산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 즐거움이 다음에 시집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신동문의 시전집에서는 너무도 잘 알려진 '아, 신화(神話)같이 다비데군(群)들' 말고도 여러 시들이 내 맘에 들어왔다. 이 시인은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과거의 현실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 시들이었다. 

그 중의 하나를 들면 '연령'이란 시다.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지 생각하기보다, 그냥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나 역시 나이 먹어가고 있단 얘기인가. 그렇다면 나이를 의식하는 사람에게 이 시는 마음에 들어올 수 있단 얘기가 되는데... 

어느 날 들녘에서 청자빛 새금파리 같은 것이 석양에 반짝 빛나는 걸 봤다. 

하루는 여자의 두발 같은 것이 쓰레기통가에 버려진 걸 봤다. 

어제는 길 가다 말고 무심코 엉엉 통곡하는 시늉을 해보고 웃었다. 

오늘은 아침 양치질 때 칫솔에 묻은 피를 보며 노후의 독신을 공상해봤다. 

내일은 그 오래 못 만난 우울한 친구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신동문, 연령 전문  

이 시 외에도 통렬하게 박정희 정권을 풍자하고 있는 '모작조감도'(다들 모작오감도라고 해야 이상의 시를 모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시인은 모작조감도라고 했다고 한다. 오자인지, 아니면 이조차도 이상의 시를 패러디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세상과의 불화을 이야기하고 있는 '의족' 그리고 노동을 하고 살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내 노동으로' '산문 또는 생산' '바둑과 홍경래' 등이 있다. 

무엇보다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읽을 수 있는 시로 '절망을 커피처럼'이 있다.  

절망을 커피처럼 / 절망을 아침 차례 진한 커피처럼 / 아침부터 마시면 / 빈 창자 갓갓이 / 메마른 가슴 구석까지 / 절망은 커피처럼 스미고 / 가벼운 미열과 함께 / 나는 흥분한다.  

-절망을 커피처럼 부분

 절망이 내 온몸 구석구석 혈관을 타고 스며드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이처럼 이 시집에는 지금의 우리 마음에 다가오는 시들이 꽤 있다. 이런 시들로 인하여 이 시는 문학사적인 가치뿐이 아니라, 내 맘을 위로해주고 풍성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런 점으로 하여 신동문은 단지 과거의 시인이 아니라, 현재에도 읽혀야 하는 시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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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의 불교적 해석과 문학치료교육
이강옥 지음 / 소명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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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구운몽을 배울 땐 인생은 허무하다고 결국 현실에 너무 상심하지 말고 지내라고 그것이 이 소설의 주제라고 배웠는데... 

자식 하나 잃고, 남편 잃고, 남은 자식은 유배생활을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자 하루만에 썼다는 이야기도 있는 이 소설은, 양소유를 중심으로 읽으면 양반들의 꿈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 펼쳐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양소유가 황제를 제외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고, 그가 그 자리에 오르자 그는 극심한 회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참선을 하고, 결국 다시 성진으로 깨어나게 되는데... 이 부분을 가지고, 인생무상, 또는 현실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항상, 기억이란 자신조차도 속이는 경우가 많으니, 구운몽을 불교적으로 해석한다는 이 책의 제목이 흥미를 끌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처음과 끝부분은 분명 불교의 교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육관도사나 성진이나 다 불교의 도를 닦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데, 결국 성진으로 시작해서 성진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불교적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명도 들은 기억이 나서이다. 

불교와 유교와 도교(선교)가 섞여 있는 작품이라고 그냥 뭉뚱그려서 기억을 하는데, 이번에 이강옥이 쓴 이 책을 읽으니, 구운몽은 유교나 선교보다는 불교의식이 더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부는 불교적 해석으로 구운몽을 다루고 있으며, 2부는 문학치료의 대상으로 구운몽을 다루고 있다. 두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 종교나 문학이 이미 치료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면 이 두분은 각각 따로따로 발표가 되었겠지만 한 책에 묶여 있다고 해서 이질적인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1부에서 불교적 해석에 공감을 하면 2부 문학치료 이론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신선했던 점은 제목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점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구운몽이라는 제목에 대한 해석이 있었지만, 이 책에서는 이들을 종합해서, 불교와 관련지어서 해석을 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제목에는 작가의 주제나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이 잘 드러나 있는데, 우리는 그냥 구운몽을 아홉개 구름의 꿈, 또는 아홉 사람의 꿈이라고만 해석하고 말지 않았던가. 이 책에선 구운몽을 '아홉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아홉 개의 구름이 꿈임을 성찰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 구운몽은 우리의 생각이 이루어짐을 알려주기도 하고, 또한 양소유의 활동이 단지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성진의 깨달음을 이루는 한 요소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즉 우리의 현실을 가까이에서, 또는 멀리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 저자는 살활론(殺活論)이라고 하여, 살활자재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양극단을 벗어나 그 각각에 들어있는 중도를 내면화하는 것이라고 하여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구운몽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등학생 수준에서는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한 번 소설을 깊이 있게 읽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참조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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