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문인기행 - 글로써 벗을 모으다
이문구 지음 / 에르디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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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문구 하면 "우리동네", "관촌수필"이 떠오른다.  

또한 그의 유려한 문장이 떠오르고, 도대체 사전 없이는 읽기 힘들었던 낱말들이 떠오른다.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말들을 이리도 잘 썼던 작가가 있을까 싶을 만큼 그는 우리말을 참 다채롭게도 썼다. 그것도 순우리말들을. 그렇다고 그가 한자에 약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의 글에 나타나는 한자말들이 들어간 문장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 여기 있소'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만났던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썼다. 예전에 쓴 글들을 그의 사후 다시 모아 발간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문구는 문학단체에 꽤 오랫동안 몸담고 있었기에 그는 문학인들 중에서도 마당발에 속한다. 그런 그가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썼으니..  

비록 그는 잡문이라고 말하지만 그 글들은 지금 우리들에게는 소중한 한 편 한 편의 글이 되고 있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 그 사람'하는 작가들도 있고, 이런 작가도 있었나 하는 작가도 있지만, 당대에 이문구가 자신의 기준으로 좋은 작가, 훌륭한 작가라고 이야기를 할만한 작가들임에는 틀림없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는 21명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마지막에 실린 서정주에 대한 글을 빼놓고는 (서정주에 대한 글은 미당 사후, 추도문 형식으로 쓴 글이다. 앞 부분에 실린 다른 문인들에 대한 글과 비교하면 분량부터가 상당한 차이가 난다) 대부분 문인들의 일생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또 그와 얽힌 이야기를 싣고 있다.  

60-70년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작가의 길을 놓지 않고 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우리가 읽는 시나 소설이 그냥 글자로 놓인 하나의 물건이 아니라, 그들 삶의 전부가 녹아 있는 그 사람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동리, 신경림, 고은, 한승원, 염재만, 박용래, 송기숙, 조태일, 임강빈, 강순식, 황석영, 박상륭, 김주영, 조선작, 박용수, 이정환, 이호철, 윤흥길, 박태순, 성기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정주. 

이 작가들이 이문구가 만난 많은 작가들 중에 이 책에 나오는 작가들이다. 한 번쯤 들어봄직한 작가가 많지 않은가. 적어도 학교교육을 받은 사람 중에는 이들 중 많은 작가들의 이름에 낯익어 할 것이다. 

이런 낯익은 작가들에 관한 이야기, 우리들은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던가. 작가들의 속살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을 수가 있다. 이문구 특유의 문체까지 가세하니, 읽는 재미가 배가 된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문학동네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독자가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 문학에 관심이 없어도 상관이 없다. 예전 사람들의 일화를 읽는 재미로 읽으면 되니까. 하지만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읽으면 좋다. 재미도 있고, 나름 얻을 것도 있고, 생각할거리도 많으니 말이다. 

특히 문학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자연스레 배우고 익히게 될테니 말이다. 

 

덧말 1

149쪽 조태일 편에서 구자운, 김관식, 방봉우, 천상병, 신경림 등이 나오는데, 방봉우는 박봉우가 아닌지 싶다. 박봉우는 알아도 방봉우는 모르는데.... 

 

덧말 2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나온 책과 겹치는 인물이 많다는 점이다. 이미 이문구 전집에도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호철도 문단 이야기를 책으로 썼으니...더불어 이호철의 "문단골 사람들"도 읽으면 좋다.  

이와 함께 1930년대 문인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고 싶으면 조용만의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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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치유학
김하리 지음 / 스타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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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짧다. 그래서 울림이 있다. 음악회장에 가서 가슴을 팡팡 울리는 음악을 듣는 것만큼이나 시는 마음을 울리게 한다. 시의 울림이 내 마음의 울림과 일치할 때 그 때 그 울림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시는 짧다. 그래서 어렵다.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남을 되돌아보며 남과 함께 하는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시는 짧다. 그래서 쉽다. 어렵기도 쉽기도 한 존재가 시이다. 짧기에 오랜 시간 읽을 필요가 없다. 집중된 순간, 시를 읽고, 마음에 들어오는 시를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서 시는 쉽다. 남이 뭐라하건 상관이 없다. 시는 내 마음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서 시는 또 쉽다. 그냥 시는 누가 썼든, 누가 읽었든 내가 읽는 순간, 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시는 내 것이 된다. 바로 나 자신이 된다. 

나와 시의 공명(共鳴)! 이 순간 나는 온전한 존재가 된다. 내가 겪어왔던 과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괴롭히는 아직 오지 않은 것들로부터 시는 나를 멀어지게 해주고, 나를 나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나를 나로 받아들일 때 그 때 치유가 일어난다. 

이 책 "시 치유학"은 치유학 일반에 관한 이론에서부터, 문학치료, 그 중에서 시 치료를 이야기하고 있다. 시 치유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김하리의 책이다. 자신이 쓴 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으며, 때로 법정 스님의 글과 다른 사람의 글들이 나온다. 

자신이 시를 통해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해 왔는지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있고, 자신이 생각했던 부분들을 이야기로 풀어가기도 한다. 

내용은 어렵지 않고, 특히 김하리 본인의 시는 어렵지 않고, 절실한 감정이 잘 드러나고 있어, 감정이입을 하기도 쉬워 읽어가면서 공감하는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시와 멀어진 세상이라고 하는데, 아니다. 아직은 시와 멀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시를 아직도 가까이 하고 있다. 물론 마음에 와닿지 않고, 이성, 지성만을 자극하는 시도 있지만, 본연적으로 시는 마음을 자극한다.  

시는 마음에 와 닿는다. 직정적인 표현이든, 상징적인 표현이든 시는 마음에 울림을 주고, 이 울림을 가질 때 우리의 마음은 치유가 된다. 

그 사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정리한 책이 바로 이 "시 치유학"이다.  

세상이 힘들더라도, '인생이란 가장 슬픈 날, 가장 행복하게 웃는 용기를 배우는 것(97)'이라는 말 처럼 우리 스스로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평온함을 얻는데, 이 '평온함은 먹물이 한지에 스며들 듯 서서히 스며들어 가야 한다(106쪽)'고 한다. 

이렇듯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게 해주는 존재, 우리 삶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로 시는 우리 곁에 늘 존재한다.  

시를 가까이 하자. 그리고 우리 마음에 시를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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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치료학의 정립을 위한 시론적 연구 - 문학과 역사에 치유의 길을 묻다 인문치료총서 4
김호연.유강하 지음,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강원대학교출판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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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문치료학을 정립하기 위한 시론적 성격을 띤 책이다. 한 번에 죽 책을 쓰기 위해 글을 쓰지 않고, 이곳 저곳에 발표했던 글들을 책의 성격에 맞게 다시 편집한 책이다. 

인문치료학은 말 그대로 인문학으로 치료를 하는 학문을 뜻한다. 인문치료학, 생소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나라나 서양이나 예전부터 몸이 안 좋을 때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함께 시행한 방법이다.  

이 중에 대표적인 것이 명상이라고 할 수 있고, 글을 통해서, 책을 통해서, 말을 통해서, 음악을 통해서 치료를 한 경우도 많다. 이들이 다 인문치료에 들어간다. 

이 책은 그래서 서론 부분에서 의술의 신이라고 불리는 아스클레피오스부터 시작한다. 이를 추종한 아스클레페이온에서는 약물치료와 인문치료가 병행했다는 사실에서 인문치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1부에서는 역사와 문학의 관계를 세 작품을 통해서 논증하고 있다. 역사가 사실을 천착한다면 문학은 사실에서 발생하는 의미를 추구한다는, 그래서 문학과 역사는 상호보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는데, 측천무후와 이민자의 문제를 다룬 여인무사, 그리고 수용소의 생존을 다룬 이것이 인간인가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읽는 재미도 있고, 그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이다. 

2부는 리-텔링이라고, 신화를, 설화를 새롭게 말하기다. 이 새롭게 말하기를 통해서 자신과 사회의 의미를 깨달아가게 된다고 한다. 역시 맹강녀곡장성이라는 이야기를 "눈물"이라는 작품으로 바꿔 쓴 이야기와 여인무사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뮬란을 대상으로 논증하고 있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히고, 인문학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결론에서는 고전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자신이 한 수업내용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여기서는 저널치료의 기법을 도입하는데, 저널치료 중에서 인물 묘사, 보내지 않는 편지, 자유로운 글쓰기를 선보이고, 이것들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기르고 역지사지의 사고를 확장시켜주며, 긍정적인 자아상을 확립하는데 도움을 준다(199쪽)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경시부터 시작하여 인문학이 우리 삶에 필수적이라는 주장으로 넘어온 지는 좀 되었다. 희망의 인문학, 행복한 인문학 등 많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책으로 출판되기도 하였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공부함으로써 희망을 찾게 된 과정이 책에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인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즉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인문학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인문학을 접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담식으로 때론 자랑스럽게 말하던 월,화,수,목,금,금,금 

이 말이 부끄러운 말로, 해서는 안될 말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 사회가 되었을 때 인문학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 세계 최장 학습 시간, 빨리빨리의 나라, 철야작업이 예사인 나라에서 인문학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뿐이다. 

그래서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회구조를 이야기해야 한다. 적어도 책을 읽고 그 책을 되새김질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이런 점이 이 책에는 나타나 있지 않아 좀 아쉽다.

희망의 인문학, 행복한 인문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들을 보라. 재소자, 노숙자 등 이 사회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늘에 있는 사람들도 인문학을 공부하고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생각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환경을 보아야 한다. 그들은 시간이 있다. 적어도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인문학 치료의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전 학습을 하고 있다. 대학생들도 역시 시간이 있다. 혹,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파서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이들에게도 역시 시간이 있다. 무언가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여유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생계를 위하여 바쁘게 살아가는 일반 노동자들이 얼마나 시간이 있을지...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보라.  

그에게 과연 인문학, 아니, 자신의 삶에 대해서 성찰할 시간이 있을까. 그냥 기계처럼 그 자리에서 정신없이, 무의식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그들에게 인문학을 할 시간을 확보해주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인문학치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노력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빨리빨리에서 벗어나 좀 게을러져야겠다. 

게으르다는 말이 무엇하면 느림이라고 하자. 느림이 문화가 되면 무언가 생각하게 되고, 이 때부터 삶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고민들이 인문학과 만나면 많은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와질 수 있게 된다. 

인문치료를 주장하는 이 책들은 인문학이 어떻게 사람의 정신, 또는 몸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가를이야기하고 있다. 좋은 말이고, 필요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유가 있는 사회를 먼저 주장해야 한다.  

결국, 역사와 문학이 별개가 아니듯이, 사회와 문학은 별개일 수 없고, 인문치료는 이런 사회와는 동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인문학자와 사회학자, 시민운동가. 정치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생기게 된다. 

우리 모두 인문학이 우리 삶에 가까이 오는 사회를 꿈꾸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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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대학생들이 던진 33가지 질문에 답하기
엄경희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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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신동엽의 산문시1였다. 

그의 시에는 탄광의 광부들도 하이데거, 장자, 러셀의 책을 읽으며, 정치인의 이름은 몰라도 극작가는 알고 있으며, 대통령이 자전거를 타고 시인의 집에 놀러간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인지, 신동엽이 꿈꾸던 세상, 그런 세상이 온다면 평화로운, 그리고 풍성한 삶이 영위되는 사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지은이는 왜 시가 어려울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네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시는 어려움을 본질로 하고 있지만, 이 어려움이 곧 시읽기의 즐거움임을 알게 교육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학교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시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지은이는 대학 강의 경험을 통해 질문을 32개로 정리해서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에 대해서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이야기식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의 질문은 32개인데, 왜 시가 어려운가를 추가하면 33개의 질문이 된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우리가 시를 읽으면서, 또는 배우면서 느끼거나 생각했던 문제들이다. 이에 대한 지은이의 답변은 매우 친절하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고, 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더구나 이 책의 장점은 각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거기에 해당하는 시를 예로 들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어가면 자연스레 최소한 32편의 시를 읽게 된다. 더 많은 시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최소 32편의 시를 읽으면 시에 흥미가 없던 사람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시가 한둘쯤은 나오게 마련이고, 그렇다면 이 책은 그 자체로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예로 들고 있는 시들의 출처를 명확히 밝혀두었기에 시집을 사서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주고 있으니 시에 대한 책으로 이 책만큼 일반인들에 다가가기 쉬운 책은 별로 없다고 본다. 

또 다른 장점은 각 질문의 끝에 사유의 끈이라는 또 다른 글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 사유의 끈은 시를 설명한 부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시와 이런 책이 무슨 상관이 있어 할 수도 있는데, 책의 앞부분에서 지은이가 '생각과 호기심과 지식 욕구를 자극하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한다고 했듯이 이런 책들은 시를 좀더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무슨 책을 읽을까? 좋은 책 없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32권이 넘는 책을 읽는이의 눈 앞에 펼쳐놓는 이 책은 이 부분으로도 많은 도움을 준다. 

이렇게 사유의 끈에 소개된 책들과 많은 시들을 읽으면 우리도 신동엽의 산문시1에 나와 있는 사람들처럼 풍부한 감성과 지성을 소유하고 살지 않을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고, 정치인보다는 예술인들을 더 대우하는, 대통령과 시인이 대등한, 아니 대통령이 시인의 집을 방문하는 그런 사회라면... 

시는 감성을 풍부하게 하고, 이해하기 위해 지성을 단련시킨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바로 시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공감하는 능력, 그것은 사회를 좀더 좋은 쪽으로 가게 한다. 공감은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비폭력, 평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남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신동엽의 시에 나와 있는 그런 사회일테고, 그런 사회가 바로 민주공화국 아닐까... 

비약을 해서 이야기하면... 플라톤은 자신의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했는데, 반대로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공화국에서는 시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해야 한다.  

시가 마냥 어렵다고 느낀 사람, 학교 다닐 때 시험을 위해서 시를 배웠지, 그 이후엔 시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한 번 이 책을 읽어보자. 시는 어렵지만, 그냥 어려워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어렵기에 더한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라는 사실, 그리고 시는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또 다른 나인 남을 위해서 함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산문시1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의 삼등대합실 매표소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건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83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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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일상, 시 교육 내일을 여는 지식 어문 22
강주현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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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들을 읽어야 한다. 내 삶에서 먼 시들이 아닌, 내 삶에서 가까운 시들을. 

그 시들을 읽었을 때 나는 더 쉽게 감동을 받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시들을 구해서 읽으려는 노력도 하고, 이런 노력들이 쌓이다보면 자연스레 나에게서 먼 시들도 읽으려 한다. 

이 단계까지 나아가야 시교육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시들을 멀게 하지 않았던가. 

먼 조선시대, 고려시대, 신라시대 시들부터 일제시대 시들이 대다수를 이루는 국어교육에서 우리는 시 하면 어려운 것, 내 삶과는 동떨어진 그 무엇으로 인식하게끔 배워오지 않았던가. 

시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동원되던 엄청난 배경지식들... 그 지식들에 대한 이해도 힘든데, 그것을 바탕으로 시를 이해해야 했으니, 시를 배우는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극소수의 학생들은 시 배우기를 즐거워했겠지만. 

내 삶과 멀어질수록 이해하기는 더욱 힘들어지니, 시를 내 삶과 관계있는 것부터 배운다면 시도 참 재미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단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는 도시화가 80%이상 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엄청난 개발 등으로 거의 모든 마을이 도시로 바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도시의 삶을 다룬 시들이 교과서에 실려야 하고, 또 아이들에게 교육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마음에 와 닿는다. 

도시의 삶을 다룬 시들을 읽고, 그 시에 나타난 삶, 생각들을 자신의 삶, 생각들과 비교한다면 시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바로 내 삶을 구성하는 일부분임을 학생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역시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예로 든, 가장 많은 빈도를 차지하는 김기택의 '벽'이나 '사무원' 같은 시는 학생들도 쉽게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런 시들을 많이 발견해내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교사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등학교 교사인 저자가 수업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시를 더 가깝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잘 드러낸 책이고, 저자의 석사논문을 책으로 엮어 냈다는 만큼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책이다. 다만 이런 책들은 독자가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교육에 종사하는, 또는 시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낯설게 보는, 다양한 방법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이런 시는 단지 재미없다고,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시를 배워야만 한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계에서 시라는 많이도 느린 작품을 읽고 배우는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창의성도 나오고,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다.  

이렇게 시로 가는 길에 우선 쉬운 포장을 해주는 작품들, 자신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들에 대한 교육으로부터 더 깊고 넓은 시교육으로 갈 수 있다. 이 책은 그걸 말해주고 있다.

===  덧말 ===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전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많은 석사, 박사 학위논문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그냥 교수들의 연구실에, 또 대학도서관 서가에만 있을까? 얼마나 읽힐까? 정말로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읽히지 않지 않을까? 이 책만 해도 시에 대한 교육을 다룬 논문임에도 도서관에만 있었다면 얼마나 알려졌을까? 

그런데 석사, 박사 논문을 이렇게 책으로만 내야 하나? 책으로 낸다는 것은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과연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읽으라는 의미일텐데, 이미 전공분야를 공부하는 대학생, 대학원생이라면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며 될테고, 그렇담 독자는 겨우 이 분야의 교사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학위논문들을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으로 보내주지 않는가? 학위 논문 쓰는 사람이 이 비용까지 부담하는 것이 힘들다면(당연히 힘들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필요하다) 교과부, 교육청에서 논문 보조 수당이라는 예산을 확보해서 각급 학교 도서관에 보내주면 학위를 쓰는 사람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현직 교사들은 최근에 나온 관련분야 논문들을 참조해서 교육활동을 할 수 있어서 좋지 않나. 

이렇게 되면 학위논문을 쓴 사람도 좋고, 현직 교사들도 좋고, 이런 공부를 한 교사들에게 배우는 학생들도 좋고, 여러가지로 다 좋지 않은가. 엉뚱한데 쓰이는 돈들을 이런 데에 쓰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산타령,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몰아대는 지금 현실에서 꿈같은 소리이겠지만...... 무엇이 꼭 필요한 일이고, 무엇이 포퓰리즘인지 구분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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