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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김정희의 지혜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수선화 피는 봄날 추사 김정희를 만나다
마당한 쪽에 수선화가 한창이다. 꽃을 좋아하는 마음에 씨를 뿌리긴 했지만 수많은 꽃들 중 수선화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한사람 때문이다. 조선 후기를 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그 사람이다. 추사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사를 거론을 책을 보면서 추사 김정희가 수선화를 특별히 좋아하고 제주도 유배당시 머물던 곳에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수선화를 찾아보았고 또 구하기까지 해서 지금 내 집에 꽤 많은 수선화가 있다. 당시로써는 귀한 꽃이었던 수선화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이 땅에 뿌리내리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은 이유가 뭘까?
어쩜 나의 추사 김정희에 대한 호기심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권문세도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나타내며 이른 시기에 출새가도를 걸었던 김정희는 당시 사대부들이 관심을 가졌던 시, 서, 화에 금석문까지 자신이 가진 장점을 한껏 발휘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세상 넓은 줄 모르며 그 자신을 뽐냈다. 그런 그가 인생 말년에 나락으로 떨어져 두 번에 걸친 유배를 가야했다. 유배길을 그에게 무엇을 말해줄까? 그토록 당당했던 사람이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을 받을 처지로 전락한 그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추사 김정희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심도 깊은 연구가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추사 김정희에 갖는 관심사는 그가 이뤄냈던 학문적 업적도 물론 이겠지만 당시 그의 삶에서 보여준 지식인의 삶의 자세와 태도에 있지 않을까 싶다. 몇해 전 푸른역사에서 발간한 이상국의 ‘추사에 미치다’와 같은 책들은 그동안 추사 김정희를 다뤘던 시각을 달리하며 김정희의 삶을 조망한 것이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발간한 설흔의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역시 비슷한 시각으로 김정희의 삶과 사상에 접근하고 있는 책으로 보인다.
제주도로 유배가 아버지 추사 김정희가 자신을 닮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형식의 이 책은 김정희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그가 관심 가졌던 다양한 분야뿐 아니라 특히 그가 지향한 삶의 자세와 가치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롭게 추사 김정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설흔이라는 저자의 살상력의 무한함이 돋보이는 글 속에서 평소 김정희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잘 알려진 겉모양의 김정희가아니라 자신이 처한 조건에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유추해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나이되, 내가 아니었다. 내가 곧 가문이었고, 가문이 곧 나였다. 그것이 바로 나라는 사물이 있어야 할 제대로 된 위치였다.’ 이 말에 담긴 김정희의 속내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시 권문세도가의 촉망받는 아들로 태어나 자신보다는 가문이 더 크게 보였을 무게감이 이해될만하다. 이 책을 이런 부분뿐 아니라 저자의 상상력은 그와 인연을 맺었던 당시 사람들을 불러와 김정희가 추구했던 삶의 바탕에 무엇이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아닌가도 싶다. 세한도에 담았다던 이상적을 비롯한 중국의 스승과 벗들 박제가, 정약용, 권돈인, 김유근, 조인영 그리고 초의와 소치에 이르기까지 당야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텅한 김정희의 속내를 보여줌으로써 김정희가 김정희이겠끔 만드는 매력적인 점이다.
또한, 저자의 바람대로 인생이라는 천리 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삶의 지침이 될 만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이며 심도 깊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내용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혹독한 관리의 손을 기억하라, 사물의 위치를 올바로 기억하라, 아랫목이 그리우면 문부터 찾아서 열어라, 맹렬과 진심으로 요구하라,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 등 다섯 가지 가르침이 김정희가 살던 그 시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대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지침으로 삼아도 충분히 좋을 것들로 세겨 둘 만 하다고 본다.
관리의 차가운 손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감춰진 따스한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이 책은 수선화가 한창인 봄날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봄바람처럼 훈훈한 기운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