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비실록 - 숨겨진 절반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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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그들도 인간이었다

드라마 청담동 엘리스에서 주인공은 상류사회를 집입을 꿈꾼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현실에서 마지막 선택으로 청담동 진입을 생각하는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내지는 못하지만 그런 마음이 이해는 간다. 한 때 신데렐라 콤플렉스가 화두로 등장한 적이 있고 그런 현상은 여전히 유효하기에 청담동 엘리스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야기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지만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드라마는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나 구조적 모순을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신분상승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현대사회의 일만은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에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이 사는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있었다. 다만, 그 대상이 되는 현실의 모습이 다를 뿐이지만. 우리 역사에서도 있었다. 남성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최고의 지위는 왕이었고 당연히 여자에겐 왕비였을 것이다. 물론 그때 왕비를 꿈꿨던 여성은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로 나뉜다. 사대부의 집안이나 왕 측근에서 왕이 볼 수 있었던 사람들로 한정된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왕비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숨겨진 절반의 역사 ‘조선왕비실록’에서 저자 신명호는 우리들의 그런 관심사를 풀어 놓고 있다. 이 책에서는 왕비가 어떤 과정을 통해 선택받고 궁궐에 들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표적인 왕비를 중심으로 살핀다. 조선왕은 1대 태조로부터 28대 순종에 이른다. 왕마다 왕비가 있었고 때론 한 명이 아니었기에 많은 왕비들을 다 살필 수 없어 굵직한 사건에 연루된 왕비를 중심으로 그녀들의 삶을 살피고 있다. 태조의 신덕왕후 강씨, 태종의 원경왕후 민씨, 세조의 정희왕후 윤씨, 덕종의 인수대비 한씨, 선조의 인목왕후 김씨, 장조의 혜경궁 홍씨, 고종의 명성황후 민씨가 그들이다.

 

이들은 한 결 같이 역사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관심은 왕의 나라에서 왕의 여자로 살았다는 것에 대한 관심이 대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런 시각은 왕비를 이해하는데 한 측면만을 고려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왕비를 바라보는 우리의 제한적 시각이라는 현실이 때론 역사를 왜곡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바로 이런 편견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으며 역사를 바로 보는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주고 있다.

왕비들은 왕의 인생 동반자로 왕의 여자임이 기본이지만 때론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또한 왕의 어머니로 권력의 정점에서 한 시대를 좌지우지한 사람도 있었다. 왕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정적이나 애정의 상대방들을 죽음으로 몰기도 했으며, 자신을 낳아준 가문과 집안을 위해 지아비를 버린 경우까지 있었다. 무엇이 최고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은 사람들이 다수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왕비의 출생과 가문을 살피고 있다. 조선의 나라는 사대부 남자들의 나라였기에 그 남자들을 이어주는 가문 역시 중요했다. 이를 바로 보지 못할 경우 왕비의 성장과 이후 정치적 사건에 대한 왕비들의 행위를 이해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또한 궁궐 안에서 왕비의 삶이 그리 순탄하지 않은 사회적 관계 속에 노출되어 있음도 확인한다. 왕비이기에 당연히 왕과의 관계가 중요하듯 그 왕을 낳은 왕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왕 주변의 수많은 여인들과의 관계가 있다. 이런 복잡한 관계를 풀어가야 하는 것이 왕비들의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드라마 청담동 엘리스에서 주인공 역시 우여곡절을 겪는다. 가식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자신을 청담동에 입성시켜줄 사람들에게 줄을 만든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갈등하며 무엇이 청담동으로 들어가는 길인지 고민한다. 드라마 청담동 엘리스의 주인공은 어쩜 우리시대 왕비의 다름 아닐까? 조선을 살았던 왕비들 역시 그들이 꿈꿨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했다. 이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어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교훈을 찾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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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 날
리루이 지음, 배도임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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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문화의 충돌이 파괴하는 인간성

침탈의 근현대를 겪은 나라들이 겪는 대부분의 현상은 고유의 문화를 만들어왔던 나라들의 사람들에게 대단한 혼란을 안겨주었다. 특히, 사양의 제국주의가 날로 그 맹위를 떨치던 19세기의 아시아는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강한 물리력을 기반으로 한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문명이나 종교의 탈을 쓰고 아시아의 나라들을 침략해 수천 년 이어온 문화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데 앞장선 것이다. 이러한 혼란은 나라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중국을 비롯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양상으로 벌어진 것이다. 조선 정조 왕 이후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시작된 인간성에 대한 파괴는 어쩌면 문화의 충돌이 가져온 어쩔 수 없는 역사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종교라는 외피를 쓰고 자국의 이해요구를 관철시켜왔던 침략의 역사는 십자군전쟁처럼 종교의 이념을 넘어선 현실의 이해요구와 직결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오며 침략과 때론 문화적 강요를 서슴치 않았던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00년의 의화단 사건 전 후 근대 중국이 세계와 맞닥뜨리는 과정은 그야말로 광적이며 중화사상에 빠져있었던 중국에게는 굴욕적인 시기였다. 문학은 이런 시대적 경험을 놓치지 않고 무대로 끌어 들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각을 달리하는 두 부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민족적 시각에서 외래문화를 바라보는 것과 이와는 반대로 외래문화에 보다 적극적인 수용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의 관점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곳과 살아갈 곳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서구 중심담론이나 그 문예이론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 중국인과 중국어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라고 여기고 중국 문학의 토속성과 전통성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작가 리루이의 ‘장마딩의 여덟째 날’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리루이의 ‘장마딩의 여덟째 날’은 1900 전후 시기 의화단 사건이 일어나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류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외래종교외 토속신앙이 충돌하고 동화될 때 신성함과 뒤엉키게 되는 폭력, 그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의 욕망’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선교를 위해 가톨릭의 주교와 이를 따라온 수사는 중국에 온 이들은 하늘바윗골이라는 고장에서 강한 토속신앙의 저항에 부딪힌다.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주교는 무리수를 두게 되고 이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하여 사람이 죽게 된다. 장마딩은 젊은 수사의 중국이름이다. 종교적 맹목성이 불러온 파장은 그에 한 장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의 파괴에까지 이르게 된다.

 

문화적 충돌이라는 상황에서 피할 수 없이 겪게 되는 인간들의 혼란이 인간들의 삶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맹목적인 종교의 횡포, 정체성에 대한 도전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혼란과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파국 등 이런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인간은 어떤 미래를 기대해야 하는 걸까? 한과 슬픔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미래는 무엇일까? 작가 리루이는 여자 주인공을 나무대아를 타고 강을 따라 흘러 보내고 있다. 불안한 나무대아와 어디로 갈지 모른 강에 홀로선 인간의 모습은 ‘나의 세계는 여덟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다’라는 장마딩의 묘지명의 그것과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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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날개옷
현정원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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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기에 더 강한 매력인 수필

언젠가는 나도 글을 쓸 것이다. 무슨 거창한 글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저 내가 세상과 만나며 느끼는 그때그때의 감정을 담은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산문, 에세이 그런 거 말이다. 아직은 때가 아님을 내 스스로 알고 있기에 선 듯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주변에 이런 나의 생각에 부채질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렇게 글쓰기를 부채질 하는 사람들로는 내 옆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가 있고 몇몇 벗들도 거든다. 하지만, 이런 거듬은 다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정작 내 안에서 나를 그 길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이유가 글쓰기를 미루고 있는 결정적일 것이다.

 

이와는 다른 또 한 부류가 있다. 이미 글을 쓰고 독자들과 만나는 문학인들이다. 물론 이들을 직접만나서 듣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이 발표한 글을 읽으며 공감할 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일어나는 그런 경우다. 그 선두에 조선시대 청장관 이덕무가 있다.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고 부르면서 책을 통해 얻은 세상과의 만남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한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현란하게 꾸미지 않고 솔직한 글이 가지는 매력을 알게 한 사람이어서 감히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기도 했다. 현대 문인으로 또 한사람 있다.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로 만나 도종환이다.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운 말로 어떻게 이렇게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글을 쓰는지 도무지 상상을 할 수 없었다. 여러 권의 책을 사서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한 책이다. 그 감동을 나누고 싶어서 말이다.

 

수필집 ‘엄마의 날개옷’은 에세이스트의 발간한 현정원의 첫 번째 책이다. 여성으로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아오는 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자잘한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이다. 여성이기에 가능했을 다양한 경험이 살아 숨 쉬는 글 속에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 세상을 달관하듯 보는 여유가 느껴진다. 고통이나 상처 없는 삶은 없겠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지혜로 세상은 그리 힘들지 만은 않다고도 느껴지는 글들이다.

 

특히, 두 아들이 태어난 과정에서 겪었을 심적인 동요와 불안,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오는 동안의 갈등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는 이 이야기들에서 그 모든 것이 심한 고통으로 상처를 남겼으리라 여겨지는데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어 저자의 살아온 과정을 그려볼 수 있으며 마음의 넓이를 짐작하게 한다. 여성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글들이다.

 

‘엄마의 날개옷’의 부록처럼 붙어 있는 에세이스트 발행인 김종안의 작가론에서 김종안은 문학의 기능으로 글쓴이에게 치유적 기능을 이야기하면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마음에 무엇인가가 쌓여 도무지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 글을 쓰고 싶어지는 것 말이다. 글은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통해 그 사람의 지난 삶의 깊이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담담한 듯 보이면서도 솔직한 속내를 담고 있는 이야기들 속에 저자의 삶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인다. 어떻게 살아왔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볼 기회를 맞이하기도 할 것이다. 수필이 갖는 최고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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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과 함께하는 세상 여행 - 한옥연구가가 들려주는 문화 이야기
이상현 지음 / 채륜서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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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은 사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나는 한옥에 산다. 무슨 거창한 집에 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은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로서는 살기에 좋은 공간에서 산다는 이야기다. 태어난 곳은 아니고 지난해 시골에 조그마한 한옥을 구입하고 이사했다. 물론 대도시에 집은 그대로 있고 주생활이 공간은 아직도 대도시 그곳이지만 주말이나 틈만 나면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나무기둥, 마루, 툇마루, 조금은 넓은 마당 그리고 서재까지 있어 그야말로 혼자 즐기는 공간이다.

 

이런 나를 두고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린다. 자기도 시골로 가고 싶은데 언제 갈지 모르겠다고 하며 부러워하는 부류와 불편한데 시골은 무슨 시골이라고 하는 부류다. 그것도 이사한 곳이 한옥이라고 하면 이 반응은 더 증폭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옥은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몸이 불편하고 조금 더 움직여야 하는 것을 감내하면 마음은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 넉넉한 마음이 한옥을 선택하게 만든 주요한 이유이니 나로서는 몸이 조금 불편한 것은 그리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이곳의 한옥을 구입하기 전까지 인근 마을을 수 도 없이 돌아다니며 새로 생기고 있는 한옥마을들을 둘러 봤다. 새로 지은 한옥들은 하나같이 그곳에 살 사람의 기운을 압도할 만큼 큰 덩치를 자랑했다. 무슨 궁궐의 전각마냥 덩치 큰 집에서 주인인 사람이 왜소해 보이며 위축된다면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마음 편안하게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시대 양반대가집도 이처럼 사람을 누룰 정도의 모양새는 아닌데 말이다. 또한 모양은 한옥이면서 실내는 도시의 아파트를 그대로 옮겨온 구조 또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집이 조금은 낡았더라도 내가 그 집으로 들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말 그대로 살림집 한옥이 좋다. 4계절을 살아보니 더 정감이 가는 것이 한옥에서 사는 것이다.

 

이상현의 책 ‘한옥과 함께 하는 세상여행’은 그런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집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 중에서 기본이 되는 의식주(衣食住) 중에 주(住)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이것만으로 한정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집은 문화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한옥을 중심으로 우리들의 문화를 살핀다는 시각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한옥을 바라볼 때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집의 영향력에 대해 살피고 있는 것이다.

 

‘한옥과 함께 하는 세상여행’은 한옥이라는 집, 즉 건축물인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집의 구성요소나 건축 재료에 중심 시각을 두고 한옥의 이야기를 살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과 수 천 년을 함께해온 주거공간으로 이 속에 담고 있는 삶의 가치와 그 가치를 담보하는 집으로써의 한옥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옥 이야기에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 빗살무늬 토기와 중국 역사를 함께 이야기 한다.

 

저자의 시각이 한옥이라고 해서 구시대적인 시각에 매어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차 벨로스터에서 읽는 한옥의 디자인’이라는 부분에서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소통과 통합’이라는 화두를 한옥과 연결시켜 보여주고 있다. 가장 현대사회적인 것이 디자인이고 이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이 창의성이라고 볼 때 한옥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들의 창조적인 사고방식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확인하고 있다.

 

한옥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오는 동안의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담보된 건축물이다. 사람이 사는 곳의 지형이나 날씨와 생활 방식에 대해 집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개방된 마당, 시원한 대청, 따뜻한 구들처럼 자연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해요구가 반영된 집이 한옥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옥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통해 완성된 집이라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인의 정서가 곧 한옥의 정서이고, 한옥이 품은 문화가 곧 한국인의 문화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사람들의 주거형태는 변할 것이다. 하지만, 수 천 년의 우리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한옥의 기본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주거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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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문화를 품다 - 벽을 허무는 소통의 매개체 맥주와 함께 하는 세계 문화 견문록
무라카미 미쓰루 지음, 이현정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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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도 가깝지도 않지만 늘 함께하는 술

나에게 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평소 술과 친하지는 않지만 술 문화에는 마음을 열어두고 있던 나에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술은 하나의 장벽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제약이니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어느 날 자주 만나던 지인에게 ‘술 한 잔’ 하자고 제의했다. 그 사람은 옳거니 오늘은 마음껏 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술자리에 나왔지만 그야말로 한 잔에 그치는 나를 두고 다시는 같이 술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 후 그 사람과 우연이라도 술자리에 동석하게 되면 그 사람이 나에게 술잔을 건네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여전히 술과 나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 때는 술 마시는 양을 늘려 보고자 애를 쓴 때도 있지만 그것 역시 허사였기에 이젠 더 이상 술과 씨름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된 후 가장 아쉬운 점이 사람들과 소통의 자리가 줄어든 것이다. 술과 일상 그리고 그 일상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술 문화는 그렇게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간혹 그 한잔이 생각날 땐 혼자서 한잔씩 하곤 한다. 그렇게 술이 주는 순기능은 사람들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고 이는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리라 생각된다.

 

사람이 살아온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의식주와 관련된 무엇 하나 사람들의 일상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문화와 떨어질 수 없다. 어느 것을 선택해서 그와 관련된 역사를 찾아본다면 모두가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술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술만큼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술이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소주’와 ‘맥주’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맥주, 문화를 품다’는 그런 술중에서 맥주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의 역사와 맥주의 상관관계를 찾아가는 책이다. 약관의 나이에 일본의 대표적인 맥주회사인 산토리에 입사하고 이후 맥주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이미 ‘맥주전래’와 같은 책을 펴냈던 저자 ‘무라카미 미쓰루’는 이 책에 맥주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술의 역사를 거슬러 가면 5천 년 전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까지 올라간다. 술과 사람들의 인연이 그토록 깊다는 말일 것이다. 이후 식량재배 기술이 늘고 또 자연 속에서 발효되는 곡식을 살피는 과정에서 맥주에 대한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이 술을 만들고 이 술이 종교와 결합되며 전쟁이나 민족의 대이동에 의해 전 세계로 펴지게 되는 과정을 찾아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으로 맥주의 역사를 찾아본다. 특히, 이는 맥주의 본고장이라고 하는 유럽에서 맥주의 변천사는 곧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한다는 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 속에서 흥미로운 점 몇 가지를 발견한다. 종교의 본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도원과 맥주의 관계 그리고 2000년대 말에 와서 중국의 맥주회사 세곳이 세계 10대 맥주회사에 올랐다는 점이다. 또한 이제 갖 100여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맥주가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이제는 술이라고 할 때 소주와 맥주로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로 발전해온 과정도 흥미롭다.

 

술과 친하지도 않고 그다지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이 책은 그리 가깝게 다가오지 않지만 맥주를 주테마로 살피는 인류의 역사는 흥미롭다. 술을 팔아 재정을 확보하면서도 때론 금주령으로 단속하고 건강에 해롭다고 절재를 요구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술이지만 그래도 술은 각박한 사람들의 삶에 쉼과 여유를 주는 훌륭한 매개자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맥주와 인류의 공존은 아마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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