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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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접근 한다
자연의 일부로 살아온 인간의 삶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연현상을 받아드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길흉화복과 자연 현상을 연결시키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식, 혜성, 천둥, 장마나 가뭄, 지진 등에 대처하는 역사의 기록을 통해서 본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가뭄에 국왕이 기우제를 지내고, 자연 이변이 있으면 왕의 몸가짐을 올바로 하는 등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곧 하늘인 자연을 대신하는 소임이라는 왕권에 대한 의식이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이는 자연현상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라고만 치부하기엔 인간의 삶과 그 역사를 이해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기에 시대상황을 비롯하여 사회적 변수를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핼리혜성과 신라의 왕위쟁탈전]은 바로 그러한 자연현상과 권력을 둘러싼 상황을 연결해 동북아 나라들의 힘의 역학관계와 신라의 권력이동에 대해 살피고 있다. 독특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역사적 해석이 흥미롭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국문학적 자료로 알고 있는 혜성가, 도솔가 등이 탄생하게 된 사회 정치적 배경을 핼리혜성의 등장이라는 천문형상과 결부하여 해석하는 저자의 시각은 특출하다.

최근 1985년과 1986년 사이에 나타났던 핼리혜성은 76.03년을 주기로 해서 지구 둘레를 지나가는 혜성을 말한다. 핼리혜성은 이 혜성의 주기성을 밝힌 영국의 천문학자 핼리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한반도를 차지한 삼국 중에서도 가장 힘이 약했던 신라가 왕권을 강화하고 지켜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짧은 시간동안 국왕이 3번이나 바뀌는 등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실마리를 핼리혜성의 등장과 결부해서 보여준다. 어지러운 정치상황,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곤란을 겪는 백성의 민심은 자연스럽게 왕권에 대한 도전 세력이 나타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저자는 민심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수습하기에는 당시 지배적인 종교에 의지하거나 이를 해결하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차원에서 지어지고 불리어진 것이 이런 혜성가나 도솔가 등 향가라고 분석하고 있다.

고대에는 이런 자연현상이나 천문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전문적인 학자들이 있었다. 특히 중국의 천문관측은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였고 여타 동북아 나라들은 그런 중국의 천문역법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신라도 중국에서 들여온 천문도와 천문관측 기술을 배워온 사람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이 천문현상이 관측되어 기록된 고문서를 찾아보면 금방 확인되는 것이다. 

민애왕, 희강왕, 장보고의 죽음의 원흉으로 혜성의 출몰을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당시 사회상황에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 중 일부인 천문현상을 극대화시킨 점이 있다고 본다. 이렇게 극단적인 원인 분석보다는 당시 사회정치적 요인과 천문형상이 결부되어 당시 사람들의 심리상황을 지배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기록은 아주 정직합니다”
본질을 모르면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저자가 말한 역사기록을 해석하는 문헌사학자의 자세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역사기록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역사에 대한 접근은 결국, 이 역사기록을 해석하는 일이 출발일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역사적 기록물을 바탕으로 이 책을 저술했다. 즉, 자연현상에 대한 일반적 추론이 아니라 한 가지 사실을 파악하는데 동북아시아 삼국의 고문서를 살펴 비교분석하는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이 책의 장점으로 생각되는 저자의 해박한 천문지식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의 제시 또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혜성가>나 <도솔가>의 내용이 뭘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부록이나 책 내용에 그 원문을 실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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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삼국지 - 세 황후는 어떻게 근대 동아시아를 호령했는가
신명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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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사 개론서를 만나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한마디로 격변의 시기였다. 내부적으로는 봉건적 절대왕권으로부터 변혁이 필요한 시대적 요구와 외부적으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에 의해 문호를 개방해야 했고 그 진행과정은 새로운 정치제도의 출현과 맞물려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었다. 동북아아시 삼국 조선, 청, 일본은 각기 나라마다 속사정에 의해 변화가 요구되었지만 이를 해결해 가는 과정은 모두 달랐다. 외부 제국주의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일본,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강제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게 되는 청나라 그리고 일본과 청나라의 두 틈바구니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조선이 있다.

이들 삼국은 격동기를 맞이하여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황후가 있었다. 조선의 명성황후 민씨, 청나라의 서태후, 일본의 하루코 황후가 그들이다. 비슷한 시대 황후의 자리에 올라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들이 살아간 삶은 다분히 차이가 나고 있다.

[황후 삼국지 : 세 황후는 어떻게 근대 동아시아를 호령했는가]는 바로 이들 삼국의 황후를 중심으로 다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근대사회가 해체되는 과정, 힘을 앞세운 제국주의 외세의 강압에서 사회의 변화를 이뤄나가는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는 공통점을 중심으로 그들 세 황후의 운명적인 삶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절대왕권에서 황후는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서만 허용되는 상황이다. 어린 왕을 대신해서 수렴청정이 바로 그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왕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막후에 황후의 존재가 드러나게 된다. 근대 격동기를 맞이한 동북아 삼국이 바로 그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렇다고 세 명의 황후들의 개인적인 일생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국 내에서 일어나는 변혁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는 각국의 구체적 상황의 변화와 힘으로 밀어붙이며 개항을 요구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대응모습 그리고 이를 해결해 나가는 내적 요인과 힘의 균형관계를 비롯하여 조선, 청나라, 일본 삼국의 역학관계를 상세하게 살피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세 명의 황후를 중심으로 살피고 있는 것이다.

청나라의 서태후는 노쇠한 왕조의 최후를 떠맡아야 했던 다분히 권력 지향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고독한 어머니이자 무서운 어머니인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실현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조선의 명성황후는 무너져 가는 왕권을 실리려는 몸부림 속에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으나 사후에 빛을 본 사람이다. 일본의 하루코 황후는 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절대군주 천황의 충실한 아내 역할을 한 행복한 삶을 살았다.

저자 신명호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어느 한 가지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삼국의 근대사를 개괄하고 있어 동아시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황후를 모티브로 잡아 삼국의 근대 역사를 살피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할 때 그 근거로 삼는 것은 무엇일까? 소위 사회적 성공으로 일컬어지는 그 사람의 지위나 부, 권력 등에 의해 사람의 살아온 일생을 평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동아 지켜가고자 했던 가치관이 삶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 뿐 아니라 높은 사회적 지위에서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나 동일한 평가 기준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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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
에드워드 베르 지음, 유경찬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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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향한 인간의 몸부림을 보다
인간의 본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말들이 있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사회적 관계는 그 사람의 지위와 긴밀한 결합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표상으로 다른 사람과는 구별되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중에 바로 권력이 있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 보면 종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절대 권력의 모습은 왕권이 유지되었던 시대를 넘어서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우리의 경우도 해방 후 독재 권력에 의한 민주주의의 박탈, 인권의 말소, 대외 외교의 사대주의 등 다양한 모습을 직접 경험한 전력이 있다. 독재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지난한 역사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의 경험은 동남아시를 비롯한 이웃나라나 동구유럽, 남아메라카 등 전 세계적으로 발생해온 인류의 공통된 아픔이자 걸림돌이었다.

[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는 우리와 지리적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 있었던 동구유럽 루마니아의 정치사를 대변하고 있는 절대 권력자 차우셰스쿠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중국의 루이 황제를 담은 ‘마지막 황제’의 저자로 세계사의 굵직한 선을 그었던 현장을 목격하고 담아왔던 에드워드 베르의 작품이다.

이 책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건물 발코니에서 서서 수많은 군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은 뒤 헬리콥터를 타고 부쿠레슈티를 황급하게 떠나는 차우셰스쿠 부부의 모습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단지 절대 권력을 누렸던 한 사람의 부패정치의 이면만을 담는 것에 머물지 않고 루마니아 근현대사를 개괄하며 좌파민족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념이 형성되어가는 과정, 러시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차우셰스쿠 부부가 정치에 등장하는 모습이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담아내고 있다. 

농부의 아들로 정규학력도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한 그들이 어떻게 정치권력을 잡게 되었는지 그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지 절대 권력으로 국민을 억눌렀던 모습은 비슷하다. 또한 정치권력과 부정부패는 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우셰스쿠 부부 역시 그 경우를 벗어나지 않고 같은 과정을 보이며 비슷한 최후를 맞이했다. 

“우리는 루마니아를 다시 세우기 위해 혁명에 가담한 것이 아니다. 해외로 도피하면 살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차우셰스쿠가 사라진 후 국경을 넘었을 뿐이다.”

생각할 여지를 많게하는 말이다. 삶을 영위하기에 급급한 절대권력 치하의 국민들의 모습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우리 정치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민이 바라는 것은 그렇게 거대한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 모습에 가장 가까운 근본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한 자각이 자신과 이웃을 넘어서 나라와 민족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겪었던 정치적 상황과 떨어질 수 없는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이 책은 술술 읽히고 있다. 저자의 섬세한 글 솜씨와 더불어 현장감 있는 내용구성도 한몫하고 있다고 본다. 주변을 둘러싼 이웃나라와의 관계에서 그들 민족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가꿔온 루마니아 국민들이 차우셰스쿠 권력 이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에 따라 루마니아의 미래는 달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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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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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삶이 전하는 깊은 울림
몇몇 알고 지내는 화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할 때면 그림 작업에 몰두한 모습을 가만히 숨죽이고 지켜보곤 한다. 창작활동에 온 정신을 다 쏟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움 그 자체라 부를 만하다. 간혹 그들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작가가 기울이는 노고와 열정을 이미 알기에 이렇다 저렇다 여러 말을 벌려놓는 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서로 마음 열어 상대를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보이고 느끼는 그대로를 열성을 다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렇게 나누는 이야기가 아픈 지적이 되고 때론 화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될지라도 서슴없이 다가간다.

이렇게 사귐을 나누는 몇몇은 오랫동안 그들의 삶과 작품 활동과정 그리고 작가가 지향하는 예술세계를 공유할 수 있어서 어느 사귐보다 깊고 넓은 마음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못내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작가들 사이에 소통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아는 몇몇 화가에 국한되는 문제라면 좋겠지만 지방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는 전반적 분위기가 그렇다면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화가들에게 제안도 했다. 작업, 작품 그리고 지향하는 예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자리를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바로 그러한 내 조그만 소망이 다 담긴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 책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창작활동에 몰두했던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글의 모음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화가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고흐가 감내해야 했던 여러 가지 문제를 간절하게 때론 아픔을 담아 동생과 나눈 편지는 작가의 일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보여 진다. 종이와 물감 살돈도 없어 동생의 지원에 의존 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이 절절하게 묻어나고 있어 읽어가는 동안 가슴 먹먹해지는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고흐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이자 진정한 동지인 동생 테오가 있었다. 혹여 불편함을 가진 형 고흐의 마음이 다치기라도 할까봐 마음 쓰는 모습이 역역하게 드러나 있다. 살아가는 동안 비록 힘든 삶이었고 그림 한 점 팔기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고흐는 행복한 작가였다고 본다. 바로 테오가 있었기에 그렇다. 섬세하고, 솔직하며 그렇기에 답답함마저 느껴지는 두 사람의 마음과 가족들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이 진솔하게 그려져 있어 고흐라는 사람뿐 아니라 그 작품을 한층 더 가깝게 하고 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는 두 형제 사이의 두터운 정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인상파 화가들이나 절친했지만 자신의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된 고갱이 있다. 당시 화단의 흐름이나 화가들 사이의 교류를 비롯하여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기에 더 흥미롭다.

또한 이 책은 고흐가 그림을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적 흐름에 따른 편지를 모았기에 고흐 자신의 예술관이 변해가는 점을 알 수 있으며 화폭에 담긴 고흐의 그림이 있기에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자화상이라는 여러 작품을 통해 고흐가 주목하는 그때그때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다고도 본다. 고흐 자화상만을 한자리에 모아 두고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정말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편지를 읽어가는 동안 고흐의 편지가 주를 이루고 있기에 혼자만의 독백처럼 보이기도 한다. 테오의 답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요구하기에 더 많은 동생 테오의 답장이 함께 있었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고흐와 고갱의 불화나 미술평론가의 지적 등을 살펴봐도 화가들 사이 그들의 예술관에 대한 소통은 여전히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어쩌면 혼자만의 고독과 외로움의 산물일지라도 함께 그 길을 가는 작가들 사이 소통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는 편함이 없다. 그 소통에 작가 고흐, 미술상 테오, 미술애호가 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결코 작품과 괴리된 세계를 담고 있다고는 보지 않기에 보다 적극적인 활용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촛불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꺼지기 직전이라고 했던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불타오르는 창작활동을 보이며 짧은 전 생애를 통틀어 예술혼으로 살다간 고흐, 그와의 만남은 시대를 넘어 삶에 대한 불꽃같은 열정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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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7
서머싯 몸 지음, 안흥규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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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사이의 인간 모형
우연의 연속으로 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굵직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들려오는 소문은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을 하나 둘 조합하여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게 된다. 마치 영화의 스틸사진을 관찰자의 자리에서 무심하게 바라보지만 스틸사진의 연속된 이미지가 모여 영화의 내용을 구성하듯 점점 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형성된 이미지에 의해 한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상을 엮어가는 주변 사람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자신의 삶이 혼자만의 삶이 아니기에 가족, 친구, 동료 등 이러한 인간관계를 벗어난 삶을 구상하기에는 제약조건이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삶의 중요한 전환점에 선 사람들은 심각한 갈등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의 경우 고집스럽게 자기 삶을 정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의 삶은 일상을 소통하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기에 늘 고독과 외로움 등이 동반하는 것이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바로 그렇게 살아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가 이 소설의 모델로 삼았다는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단편적으로 쫒아가며 인간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저자 서머싯 몸은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영국에서 자랐다. 의학을 공부하지만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단편을 비롯하여 희곡, 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작가로서 확고한 지위에 오르게 했던 [달과 6펜스] 이외에 <인간의 굴레>, <과자와 맥주>, <나뭇잎의 하늘거림>, <높은 사람들>, <어느 작가의 노트> 등이 있다.

[달과 6펜스]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런던의 평범한 주식중개인이자 처자가 있으며 40대 남자다. 여름휴가를 다녀 온 어느 날 갑자기 처자를 버리고 파리로 간다. 문인들과의 교제를 일상으로 여기며 살던 부인은 갑작스런 상황에 혼란스러움을 겪게 되지만 남편이 화가의 길을 가기 위한 것이라는 알 수 없는 이유가 더 이해할 수 없었다. 파리로 간 찰스 스트릭랜드 경제적 어려움, 사람들과 소통의 문제 등 온갖 악조건을 만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살아간다.

오직 자신의 열정만으로 주변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찰스 스트릭랜드는 굶주림과 병으로 죽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주인공을 구한 건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더크 스트로브다. 하지만 찰스 스트릭랜드는 그의 부인과 동거하며 더크 스트로브를 배반하게 되고 결국 부인의 자살로 이어지는 파란을 일으키지만 자신의 도덕적 책임마저 부인하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파리를 떠나 방황하던 찰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 섬으로 흘러 들어가 그곳에서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던 중 문둥병에 걸려 삶을 마치게 된다.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따라간다는 흥미로움을 넘어 [달과 6펜스]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독특한 인간 유형을 통해 인간의 근본에 대한 성찰로 이어간다. 냉소적이며 극단적 이기주의로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삶,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고도 게의 치 않는 스트로보로 대표되는 일련의 사람들의 삶이 극과 극으로 대칭되는 구도는 선과 악이라는 인간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선과 악, 이렇게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만 인간관계를 파악한다면 두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지루할 만치 섬세하게 그러지고 있는 점은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방황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는 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상을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 아닌가 싶다. 이 소설의 제목 [달과 6펜스]에 담겨진 본래의 의미가 무엇일까? 결국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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