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략의 귀재 - 나는 속지 않고 적을 속이고 이기는 전략전술
이송 지음 / 팬덤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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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로 중국인의 속내를 들어다 보다
천자의 나라, 세상의 중심이라고 자처하는 중국은 한동안 세계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듯 보였다. 그러한 중국이 급속도로 빠른 성장을 보이며 당당하게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이는 현재의 모습이며 앞으로 그 위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상을 못할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이 이토록 놀라운 저력을 보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엄청나게 큰 땅, 그보다 더 커 보이는 인구 때문만은 아니리라.

세계를 두 개의 축으로 구분하던 냉전의 논리가 무너지며 물리적 거리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는 나라가 중국이다. 역사 이래 중국과 관계를 무시하고는 우리를 설명하지 못하는 역사 속에서의 위치뿐 아니라 이미 우리나라와의 최대 교역국이며 중요한 시장이 된 중국에 대한 이해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동양의 한자문화권이라는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차이를 보이는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앞날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본다. 그것이 동북공정을 비롯한 중국과의 현안을 풀어갈 실마리가 아닐까 한다.

[지략의 귀재]는 중국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적 기조를 살피는 책이다. 손자병법, 삼십육계 등을 통해 중국인들의 근저에 흐르는 사상적 흐름을 찾아보고 현대 중국과의 교류에서 미리 살피는 준비를 하자는 취지이다. 최고의 전략서로 꼽히는 손자병법과 대인관계의 교범이라 부를 삼십육계의 내용을 중심으로 중국 옛 문헌과 현실의 경험을 비교, 분석하고 교훈을 얻고자 함을 밝히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 계략 편으로 제갈량도 속이는 계략의 36계를 이야기한다. 1계 만천과해(瞞天過海) 하늘을 속여서 바다를 건너라 부터 시작하여 10계 소리장도(笑裏藏刀) 칼을 숨기고 웃음을 보여라, 23계 원교근공(遠交近攻) 먼 곳과는 친교하고 가까운 곳은 공격하라 등으로 36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2부 책략 편으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책략의 내용을 말하고 있다. 1책 막수유(莫須有) 아마 그럴 것이다, 15책 초요당편(招搖撞騙) 사방에다 허풍떨고 사기 쳐라 23책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잡고나면 개는 삶아 먹어라 29책 황작재후(黃雀在后) 뒤에서 노려라 등 총 36책으로 1편과 2편은 모두 어떻게 하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선은 이겨야 한다는 말이다.

3부는 지혜 미래를 설계하는 지혜의 내용을 담고 있다. 1혜로 독립자주(獨立自主) 홀로서고 스스로 주인이 되자 3혜 취장보단(取長補短)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자 6혜 자아추소(自我推銷) 자기 자신을 홍보하자 15혜 욕취선여(欲取先與) 가지고 싶으면 먼저 남에게 주어라 31혜 차제발휘(借題發揮) 기회가 오면 자기 생각을 펼쳐라 등 43혜를 담고 있다. 3부 지혜는 1, 2부의 근간이 되는 내용으로 보인다. 싸워서 무조건 이기려면 먼저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을 것이다.

고사성어를 통해 현대 중국인들이 사상적 기조를 살펴는 의미에서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그 고사성어의 뜻과 유래를 포함하여 문헌상 나타나는 사례를 찾아 소개하고 있는데 옛 문헌 속의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내용의 중복이 많다. 나온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는 말이다. 다소 지루해지는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30여 년간 중국시장 개척과 조사업무를 담당했던 코트라 다렌 비즈니스 센터장으로 중국인과의 관계에서 겪었던 실제경험을 바탕으로 그 내용의 핵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만큼 현실감이 묻어난다. 이는 좋은 의미로 말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32계, 32책, 43혜는 모두 속이든 빼앗든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를 이여야 한다는 명제가 기본을 이루고 있다. 그래야만 자신은 속지 않고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으며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현대 중국의 발전 근저에는 이러한 사상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비교 분석한다. 그 기준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볼 때 중국은 글자 하나하나에 뜻이 담긴 표의문자를 쓰기에 의미를 함축적으로 빠르게 전달 할 수 있는데 반해 글자 여러 글자가 모여 뜻을 이루는 표음문자를 쓰는 우리나라가 감정적이고 의미 전달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인은 계산적이며 수리적이어서 감정적인 우리나라 사람이 대응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중국 만리장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고 한다. 그것은 의심의 장벽, 존심의 장벽, 전략의 장벽이라고 보며 중국인들은 수없이 전쟁을 치러온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의심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고, 자기들의 역사, 문화, 언어 등에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해 겉모습만으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고 또한 한국인이 가지지 못하는 전략이라는 장벽이 있다고 한다.

다년간의 중국인들과의 실무접촉을 통해 얻은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 중국인들과의 교류에서 중국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는 동의한다.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상대방을 이해하였을 때 그 관계는 깊어질 것이라는 의미에서도 저자의 말에 공감을 표한다. 하지만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이기기 위한 관계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너무 한쪽 시각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국가와 국가,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전쟁을 치루는 것 같은 삭막한 세상이라고 하지만 모든 관계를 이것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판단한다면 세상살이가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발견된 오자 : 과거 제왕와 왕자 → 과거 제왕과 왕자(203페이지), 31계 → 31혜(33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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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타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강영안 옮김 / 문예출판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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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바라보기
현대를 표현하는 말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자유와 다양성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상대를 인정한다는 의미지만 내면에는 상대방을 내 속에 끌어들이고 있음을 전재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전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자유주의 국가의 선두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이 아시아를 비롯하여 아랍권 중동의 나라에 행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집단이나 국가 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존재한다. 권력이나 경제력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해 행해지는 온갖 부조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는 철학적 방향성과 내용을 제시하는 사상가로 엠마누엘 레비나스가 있다.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라투아니아 출신 프랑스 철학자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구학계에서 유명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리투아니아에서 출생 우크라이나에서 성장했으며 프랑스로 유학했다. 초기 후설과 하이데거의 사상적 기조를 이어왔지만 이후 입장을 바꿔 타자성의 철학이라는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주요 저서로는 존재에서 존재로, 시간과 타자, 타인의 인간주의, 존재와 다른 것 또는 존재사건 저편 등이 있다.

[시간과 타자]는 자신의 존재인식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것인가가 중심주제이다. 자신을 홀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있다. 즉 자신을 둘러싼 주변 요소를 어떻게 위치 지우고 이해할 것이며 자신과의 관계 설정을 할 것인가이다. 고독, 시간, 홀로서기 노동, 고통과 죽음, 타자 등 이러한 것들과 자신의 존재 사이의 관계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피고 있다. 각 존재들과의 관계성을 중심에 두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파악한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홀로 아버지가 될 수 없으며 아들이 있을 때 비로소 존재가 가능해 지는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즉 타자란, 나의 존재를 위협하는 침입자가 아닌 내면의 닫힌 세계에서 밖으로의 초월을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이라는 것이다. 상호 적대적이 아니라 보완하고 소통하는 존재로써 타자를 파악하고 있다.

이 책 [시간과 타자]는 레비나스의 중요 저서 중 레비나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텍스트라고는 하지만 문장을 읽어가기가 대단히 어렵고 난해하다. 레비나스의 사상에 이해가 미천하며 저자를 처음 접하는 독자로써 부담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윤리의식의 부재, 폭력과 전쟁이 난무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올바로 이해하고 상호 인정하는 공존이 요구되는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삼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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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 - 옛 책 속을 거닐며 미래를 여행하다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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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책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는 즐거움
역사 속 인물을 찾아 탐구하는 여행길에 서면 선조들의 놀라운 업적이 늘 반갑다. 열악한사회적 환경과 기술문명의 미흡에도 불구하고 어쩜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심마저 일어난다. 특히 조선시대 성리학이 학문의 주류로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고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비교적 학문의 접근에 자유스러웠던 양반들의 무시와 때론 천대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학문에 대한 열정은 더욱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사회 정치적 분위기에 묻혀 점점 잊혀져가고 있음을 알게 될 때마다 마음 한구석 무거움이 있다. 선조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문화유산을 현대 사람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바라봐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때 이종호 교수의 [과학 한국을 이끈 역사 속 명저]는 의미심장한 출판물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2003년 우리 역사에서 과학기술의 업적과 활동이 뛰어난 인물을 기리기 위해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업적을 밝혀 놓은 책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뽑은 8가지 저작을 중심으로 또 다른 명저를 추가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가 뽑은 저작으로는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유일한 기록이며 세계 4대 여행기로 꼽히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열하일기), 세계적인 천문학의 과학적 보고인 이순지의 칠정산(의산문답), 세계 최초 온실에 대한 기록과 서민들의 식생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농작물의 재배 방법과 음식조리법까지 담고 있는 전순의의 산가요록(음식디미방 ․ 규합총서), 세계 3대 중국 시행기라 평가받고 있으며 조선 선비의 자긍심을 보인 최부의 표해록(문순득의 표해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허준의 동의보감(향약집성방 ․ 의방유취), 우리나라 해양생물학의 신기원을 연 정약전의 자산어보(우해이어보), 우리나라 최초 문화백가사전인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오주연문장전산고), 조선시대 최고, 최대의 목판본 전국 지도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등 8가지의 뛰어난 업적을 담은 저작물들이다.

괄호 안의 제목들은 이 책에서 또 다른 명저로 함께 설명되어진 비슷한 성격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저작물들이다. 주요 8가지 저작물에 결코 뒤지지 않을 가치를 지닌 저작물들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책(의산문답, 우해이어보, 오주연문장전산고 등)들을 중심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이 책들 간의 상호관계성까지 살피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저자인 이규경은 정조 때 사람 이덕무의 손자로 대동여지도의 김정호, 지구전도의 최한기 등 조선후기 실학자들과의 교류를 살펴봄으로써 당시 시대정신을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재목의 저작들도 있지만 익숙하지 않아 이런 저작물과 사람이 있었나 싶은 것들도 있다. 저자는 각각의 저작물에 대해 저작물이 담고 있는 구체적 내용을 본문까지 참고해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당시 어떤 배경으로 저작물이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시대상황과 국제적인 가치까지 살피며 나아가 오늘날에도 충분한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 세계 권력의 중심이 서양으로 재편되며 동양의 뛰어난 문화유산이 상대적으로 저급한 문화와 과학기술로 평가되어 온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점차 동양문화의 우수성이 밝혀지며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살피듯 세계 어느 나라 누구보다 뛰어난 문화유산을 가진 민족이지만 그를 대하는 태도가 그것들이 가진 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요즘 들어 다양한 분야에서 문화유산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그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산이 가지는 가치와 의의를 현대의 눈으로 다시보기 시작했다. 저자와 같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 싶어 심심한 응원이나마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옛 책속에서 찾아낸 선조들의 열정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의 미래를 희망으로 가꿔갈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자 : 284페이지 정양전은 1814년 → 정약전은 18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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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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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닮고, 산에 기대어 살다간 고산자 김정호
방외지사(方外之士)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테두리 안이나 제도권을 벗어나 한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사람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종종 자신의 삶에서 숙명처럼 여기며 그 일에 매달려 평생토록 몸과 마을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든 평생 꿈꾸어온 것을 이룬 한마디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렇게 한 분야에서 이치를 통달하게 되면 자신이 매진해온 그 분야 뿐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순리를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살아온 어느 시대에나 그런 사람들은 있었다. 누가 알아주던 그렇지 않던지 간에 묵묵히 어려움을 극복하며 뜻한 바를 이뤄간 사람들 말이다. 학창시절 역사를 배우며 접했던 사람들 중 늘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 중 지도에 미친 김정호라는 사람이 있다. 출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기록을 발견하기 어려운 사람이면서도 대동여지도라는 걸출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사람이다. 진정한 방외지사가 아닐까 싶다. 숙명처럼 떨치지 못한 지도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삶을 오롯이 복원하여 오늘에 되살려 내는 작가의 작품을 만난다. [고산자]라는 박범신의 작품이다.

[고산자]는 저가 박범신이 [통찰력이 뛰어난 인문학자였고, 조국을 깊이 사랑했던 산인(山人)이었으며, 집념이 강한 예술가였다]라고 평가한 김정호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홍경례의 난 등 사회적으로 어지러웠던 조선말기 아버지의 실종을 밝혀 달라고 산벗나무 꽃피던 어느 봄날 관아의 높다란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매달리던 한 소년이 고향을 등지고 전국을 떠돌며 삶을 이어가 결국에 자신의 소망을 이뤘지만 그게 다 부질없음을 알고 사랑하는 피붙인 딸과 조용히 사라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어버지의 죽음, 부패한 권력, 외세의 침입, 천주교라는 낯선 사상의 도입, 실사구시 학문의 대두, 벗의 사귐과 그들의 죽음을 선고하는 만장 등 이는 고산자 김정호가 살았던 시대, 그가 직면한 현실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매개를 이용하여 발 딛고 살아가는 산천의 주인이 백성임을 알고 백성들의 삶의 시작과 끝이 되는 산천을 온전히 담아내 백성들 품으로 돌려주고자 했던 김정호의 마음을 읽어간다. 한 사람의 삶을 외롭고(孤), 높으며(高), 옛산을 담고자 하는 마음(古)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가 또라젓, 화각, 금량관, 고산자 그리고 대동여지전도로 표현한 만장을 든 김정호을 통해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뭘까? [바람이...... 가는 길을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길을 내 몸 안에 지도로 세겨넣을까 하이. 오랜...... 옛산이 되고 나면 그 길이 보일걸세. 허헛, 내 처음부터 그리고 싶었던 지도가 사실 그것이었네](본문 347 페이지) 아마도 이 구절에 담고 싶었을 한 방외지사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등장하는 또 한사람인 해강 최한기, 양반신분이면서 중인 김정호와 벗이고, 실사구시 학문의 뜻을 이루고자 했던 시대정신을 담은 지식인이다. 대단한 장서가이며 앞선 시대를 살았던 간서치 이덕무와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책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의 교류엔 무엇이 우선인지 알게하는 사람들이다. 의외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조선시대 지금처럼 과학기기가 발전한 것도 아닌 그 시대에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실측지도를 만들 수 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한 생각은 대동여지도 뿐 아니라 과학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세종 때의 그 많은 과학기기들 역시 마찬가지의 의문을 가지게 한다. 천문관측도구, 시계, 측우기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업적들을 오늘의 과학문명의 잣대로 살펴봐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의 업적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할 것이다.

고산자를 읽는 동안 탄탄한 문장을 쫒아가는 마음이 성급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느긋한 마음도 아니다. 먹먹해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려 한동안 손을 놓게 만들지만 금세 다시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바람과 시간이 가는 길을 내 몸 안에 그리고 싶었을 고산자를 생각하며 눈길을 먼 산으로 돌려본다. 
한 작가의 노력의 결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여실히 알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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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의 입학식 - 조선의 국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키워드 한국문화 4
김문식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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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속에 담은 뜻 - 제왕으로 가는 길, 입학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한다. 100년 앞을 내다보고 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말이리라. 하지만 오늘날 교육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은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목소리를 높인지도 오래되었다. 오늘 당장의 결과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아쉽다.

나는 우리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유, 무형의 문화유산과 더불어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기록물 역시 늘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역사의 중심엔 권력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권력을 둘러싼 다툼과 그에 얽힌 이야기 중 단연코 왕권과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절대왕권의 나라에서 왕은 어떻게 만들어 지며 왕에서 왕으로 이어지는 권력은 어떻게 준비되는지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제왕학, 하늘을 대신해서 백성의 안위를 살피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어가는 왕이 되기 위한 출발 바로 그것이다.

[왕세자의 입학식]은 그런 왕위의 계승자가 왕으로써 갖춰야 할 소양을 쌓는 출발점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선시대 국립교육기관인 성균관에 왕세자들이 입학하는 입학례를 중심으로 제왕교육이 이뤄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왕세자입학도첩(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을 통해 상세하게 살피고 있다.

우선 왕세자의 입학식 풍경을 살피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홉 살 어린나이 효명세자는 엄격한 절차에 의거하여 궁궐을 나서는 순간부터 공자의 문묘에 술을 올려 신고하고 박사를 앞에 꿇어앉아 소학을 문답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오는 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조선의 예법과 절차에 관하여 기록한 책 [국조오례의]에 의거해서 차기 왕으로 내정된 왕세자의 품위에 맞는 격식과 내용을 겸비한 행해지는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다.

저자는 입학식이 전 과정이 담긴 왕세자입학도첩의 각 그림들을 상세히 관찰하고 왕세자의 구채적인 행보와 참여하는 사람 그리고 그에 담긴 의미와 뒷이야기까지를 이야기 한다. 유교를 중심으로 한 조선에서 최고 가치는 유학의 가르침이었다. 그에 따라 유학을 가르치는 중심 성균관의 위상이 어느 때 보다 높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입학식에 환관이 어린 왕세자를 보필하기 위해 참석하는 것도 막을 정도였다. 이는 당연하게 공자의 유학의 근간인 부자, 군신, 장유의 예를 지켜는 명분이며 조선을 유지하고 지탱해온 근간에 대한 출발로 보았다고 평가한다.

차기 왕위를 이어갈 왕세자에 대한 교육은 일찍부터 시작한다. 시강원이 설치되고 원로대신을 스승으로 모셔 왕이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을 배운다. 하루 종일 강의와 학습으로 이어지는 일상에 매월 두 차례 치러지는 회강에선 임금을 비롯하여 시강원 사부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배운 교육의 결과를 평가받기도 했다.

[왕세자의 입학식]을 통해 저자는 왕세자의 입학식 풍경 뿐 아니라 입학례가 치러지는 전후 과정을 살펴 왕세자의 입학례가 가지는 의미를 더 자세하게 밝힌다. 입학례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왕이 선물을 준다거나 별시를 통해 관리를 선발하고 범죄자들을 사면하는 등 전 국가적으로 왕세자의 입학례를 통해 온 나라가 축하하고 기뻐하는 모습과 왕의 나라에서 후계자의 성장이 가지는 의미를 밝히고 있다. 또한 왕들의 왕세자에 대한 부모의 애뜻한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에선 시대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모마음의 따스함을 알 수 있다.

왕세자의 입학식이라고 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입학식 장면과 그에 얽힌 이야기가 중심이다. 형식에 치우친 면이 아쉽다는 말이다. 성균관 입학례에 박사와 대면하는 교육에서 언급되는 소학과 대학이 다뤄지긴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교육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더 상세하게 언급되었다면 왕세자의 제왕학에 대한 이해를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역사책이나 드라마에서 평생 학문을 연구한 학자들보다 더 깊이 있는 내용으로 원로대신들과 학문과 정책을 나누는 왕들의 모습에서 어떻게 공부했기에 이럴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세종이나 영조, 정조를 비롯한 왕들의 모습은 그들 한 사람의 노력뿐 아니라 학문을 중요시 여기는 조선의 제왕학이 있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보게 된다.

스승 앞에선 책상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까다로운 격식이 요구되는 입학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학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왕이 갖춰야 할 성군의 기본 소양과 자질에 대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삼국시대, 고려, 조선으로 이어져오며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오랜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근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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