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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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욕심-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역사 이래 끊임없이 탐구되어 온 명제 중 하나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은 현실을 살아가는 복잡한 문제에 직면해 인간이 보여주는 감정의 표출에 따른 인간 스스로의 자기고백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목숨을 부지하기조차 힘든 극한의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게 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 귀한 목숨을 대의를 위해 내 놓는 경우도 있다.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렇게 인간의 본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은 현실보다는 가상의 현실을 다루는 문학작품 속에서 보다 실감 있게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가상의 현실이지만 현실의 문제를 현실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기에 문학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상황을 설정하곤 한다.

[딩씨 마을의 꿈]은 바로 그렇게 극한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대 중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옌롄커의 작품으로 중국내에서 출간 즉시 판매와 홍보가 전면 금지되었다고 한다. 작품이 당의 사상과 위상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모두 제약을 받고 있기에 더 주목받는 작가 중 한명이다.

[당씨 마을의 꿈]은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찾지 못하는 중국의 한 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다. 피를 팔아 그 대가로 궁핍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상부의 지시에 전통적인 가치관에 머물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선 듯 나서지 않자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매혈을 강요한다. 한두 명씩 피를 판 대가로 집을 고치고 생활의 변화를 보이자 너도 나도 매혈에 나서고 그 과정에서 많은 마을 사람들이 열병 = 에이즈에 걸리게 된다. 피를 팔았던 사람, 피를 팔지 않았지만 감염된 사람 등 온 마음이 이 열병의 도가니에 뒤숭숭해지고 치료약도 없는 열병에 걸려 발열이 시작되고 이후 한두 명씩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매혈의 우두머리고 지목 받은 아버지의 아들이 마을 사람 누군가에 의해 독살되고 만다. 이 독살된 아이가 화자가 되어 줄거리를 이끌어간다.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몸부림, 열병에 걸린 자와 걸리지 않은 자의 갈등 그들이 벌이는 반목과 갈등 속에 목숨보다 질긴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고 있다. 사람 목숨보다 중한 것이 없다지만 극서도 말일뿐이고 마을 학교에서 집단생활은 그러한 본성이 더 자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쌀을 훔치고, 돈을 훔칠 뿐 아니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핑개지만 친척 간에 불륜도 벌인다. 이런 혼란 속에 할아버지가 있다. 평생 학교에서 생활하며 때론 아이들에게 선생님이기도 했던 할아버지의 합리적인 중재자 역할이 있기에 집단생활이 유지되다. 하지만 아들이 벌린 일로 열병이 번지게 되었다는 원죄를 안고 살아가기에 먹먹한 가슴으로 살아가며 결국 아들을 몽둥이라 죽이기까지 한다.

자자의 독특한 문체가 글맛을 더해가는 것이 있다. 같은 문장의 반복이 그것이다. 쓸슬함은 더 쓸쓸하게 먹먹한 가슴은 더 먹먹하게, 황량함 또한 그렇게 더해간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꿈을 빌어 펼쳐지는 세상은 현실과 큰 차이를 드러낸다. 잃어버린 꿈을 보여주기도 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견을 나타내기도 하기에 한없이 황량한 속에 숨통을 튀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은 읽어가기 힘들 정도로 어둡고, 칙칙하며 인간의 근본정신의 혼돈성을 나타내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악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거칠 것 없이 내 보이고 있다. 그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은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절망으로 이끌어간다. 딱 그만큼의 자리에서 저자의 행보는 멈추고 다음 몫은 온전히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그러기에 독자들은 읽는 동안 내내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위대한 인성,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인성의 가장 후미진 구석에 자리한 욕망과 꺼지지 않고 반짝이는 빛을 쓰고자 했다”는 저자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머뭇거림이 있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인간의 욕심을 바라보는 독자의 가슴은 이미 처절한 아픔을 경험하고 난 이후다.

피를 팔아서라도 누리고 싶었던 행복은 갈등, 번민, 욕심, 죽음으로 텅 비어버린 마을과 함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의문만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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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스미다 - 그대에게 띄우는 50장의 그림엽서
민봄내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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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담은 자기고백 

낯선 여행지를 돌아와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넘칠 때면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그림엽서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엽서에 다 담아내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이 어느새 눈앞에 보이듯 펼쳐지는 환상을 보기도 하고 당시 마음속으로 들어와 든든하게 자리 잡아 이제는 위안이 되는 풍경 속으로 다시 들어가기도 한다. 조그마한 그림엽서지만 그것을 매개로 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기에 소중함은 누려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자주 찾아가는 갤러리, 긴 고뇌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화가들의 그림을 대할 때 빼놓지 않고 챙기는 것이 있다. 화가의 도록이 그것이며 또한 그림을 담은 작은 엽서가 그것이다. 가능하면 그 그림의 주인공 화가의 친필 사인까지 받을 수 있으면 더 좋다. 시간이 지나고 훗날 엽서로 다시 만나는 작가와의 소중한 감정 나눔이 이뤄지는 매개이고 내 마음 다독여준 여운이 있기에 그 역시 소중함으로 남아 있다.

[그림에 스미다]는 이름만큼 낯선 작가 민봄내가 성장통을 겪어오는 동안 자신을 다독여준 그림을 매개로 한 소중한 자기고백이 들어있다. 그대에게 띄우는 50장의 그림엽서라는 부재가 붙어있지만 여기서 그대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다독이는 것처럼 다가온다. 작가의 이력으로만 봐선 심각한 방랑벽이 있는 듯 하고 아직은 가슴속 채워가지 못한 아쉬움이 넘치는 젊음이 보인다. 그래서 민봄내라는 이름이 주는 생경함이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게 다가온다.

인연, 느낌, 모티브, 여행 이렇게 네 가지로 분류된 자자의 자기고백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깊은 자기성찰이 담겨 있다. 애써 구분해 놓았지만 특별히 다른 점이 있어서 라기 보다는 담담하지만 숨 가픈 작가의 자기고백에 쉼표를 찍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자기고백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 성장통, 작가 주변사람들의 따스한 삶,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마음과 특히 부모님에 대한 애뜻한 사랑이 담겨 있다.

[그림에 스미다]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 접하는 작가이거니 흔하지 않은 이름의 생경함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무척이나 고심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도 쉽지 않은 점이 있다. 민련(딱하고 가엾음=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알게 된 뜻이다)이라는 단어를 시작으로 구근, 생심, 연찬 등 곳곳에 보이는 낯선 낱말은 내를 건너기 위해 건너다 만나는 징검다리처럼 감정의 흐름을 멈추게 한다.

자신의 고백에 어울리는 그림에 담긴 엽서는 작가의 자기고백과 묘한 어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때론 억지스러움이 있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엽서에 담아 그대에게 보내는 작가의 마음에 깊은 성찰이 보여 좋다. 또한 책 속에 담겨 있는 그림만 찾아 읽어도 화가의 도록처럼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보여서 책 속의 그림책인 것 같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작가의 마음에 담긴 이 이야기는 결국 주변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저기 자신에 대한 힘겨운 고백처럼 보인다.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애써 살아왔으니 앞으로 다가올 삶 또한 그렇게 애쓰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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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코드 - 너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소통의 공간
신화연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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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전재로 하는 자신을 향한 감정
동양철학의 핵심 사상 중에 치심(恥心)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부끄러움을 아는 것으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자신을 향해 눈을 돌리는 감정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의해 많은 부분 영향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삶이고 또한 그런 환경에 마음 쓰는 동안 정작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고 대부분 살아간다. 그렇게 일상에 묻혀 살더라도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의 내부와 만나는 시간이 있다. 그러한 기회가 되면 외부로만 향하던 마음이 오로지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치심(恥心)이라는 것이다.

옳음, 그름, 좋음, 싫음, 슬픔, 성냄, 두려움, 부끄러움...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정은 홀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 사회규범이나 가치관에 의해 규정될 때 가지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 역시 바로 사회적 인간의 속성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렸다는 말은 그래서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파악해도 될 듯싶다.

너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소통의 공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부끄러움 코드]는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저자 신화연이 현대인들에게서 보이는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고 올바른 소통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혼자 있든 사람들 사이에 있든 얼굴을 붉히게 되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그 부끄러움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일부러 외면하는 현실에 대한 분석을 기초로 부끄러움이 가지는 다양한 기능까지 살펴 그것이 가지는 순기능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1부에서는 부끄러움의 근원에 대해 살핀다.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인간이 가지는 근본 감정에서의 부끄러움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2부는 1부에서 파악한 근거를 토대로 실생활 속에서 부끄러움의 실제를 찾아보고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구체적 예를 들고 있기에 다가가기가 쉽다. 3부는 부끄러움이 가지는 개인과 사회적 기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동서양의 문화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인식의 차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섹스스캔들 사건, 여성의 존재인식에 대한 책 그리고 ‘밀양’과 같은 영화까지 저자가 살피는 사회적 환경은 다양하다. 그 속에 구체적인 사회적 단절의 모습에서 소통으로 나아가는 방법과 내용을 찾아내고 있다.

저자는 부끄러움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우리의 행동이나 경험이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행동이나 경험과 어긋났다는 깨달음에서 온다고 말하고 있다. 즉 개인이 속한 사회의 규범이나 가치관과 자신의 사고와 행동이 충돌했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 상태라는 것이다. 뼈 속까지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기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의 출발을 그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사회적 존재로써 인간이 개인이 느끼는 소중한 감정을 바탕으로 소통되는 공간의 출발을 부끄러움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전재가 의미 있게 될 때 비로소 ‘타인의 감각으로 같이 그 아픔을 견뎌주는 것, 타인의 눈으로 타인의 세계를 같이 겪어주는 것, 거기가 부끄러움이 희망으로 바뀌는 자리’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존재하는 부끄러움의 감정에 솔직한 성찰을 바탕으로 할 때 타인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며 그를 바탕으로 사회가 건전한 문화로 채워질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점차 사라져가는 부끄러운 감정에 대한 인식,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자기모순의 길로 빠져드는 현대인들의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나 스스로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찾아볼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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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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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성장통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
요사이 중, 고등학생들 사이에 일진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폭력서클 일진회의 일진이 아니라 학교와 집에서 모두 포기한 학생을 부르는 별칭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부정적안 것만은 아닌 듯싶다. 주관이 뚜렷하고 스스로 부당한 경우를 당했을 때 물러서지 않고 자신을 변호하며 개중에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 훗날 뭐를 하던 잘 할 것이라고도 하면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가치관을 정립해가는 시기에 학교라는 틀과 입시에 메어 자신의 꿈을 실현할 기반을 잃고 획일화 되어가는 오늘날 청소년들이 그 규정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가차 없는 벌칙에 의해 체벌 받는 현실의 안타까움이 있다. 너희가 무얼 얼마나 알아? 라는 편협 된 사고에 의해 바라보는 청소년이 아닌 현실을 인정해 주고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미국의 청소년들의 당면한 고민을 통해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나 병폐 등 사회분위기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세 번이나 퇴학처분을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다. 영어작문을 빼곤 다 낙제를 한 홀든이 또 한번 퇴학을 당해 뉴욕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겪은 일들을 순차적으로 그려가고 있다.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의 내면을 자기고백 형식을 빌러 그려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수업, 올바르지 못한 선생님, 문제아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겪는다. 주인공 홀든은 자신의 가슴에 가득 담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 환경에 막연하게 동화되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의지에 성공한다. 이 둘 사이의 불균형에 의해 혼란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나이 때 누구나 빠질 수 있는 호기심(대부분 이성, 술, 담배에 대한)을 넘어서 호기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이내 멈추고 만다.

주인공 홀든은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아이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 극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어쩌지 못하는 자기한계를 안다. 홀든이 바라보는 사회의 비이성적인 모습들 중에는 당시 미국이 안고 있는 사회적 모순이 대부분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나 오늘날의 모습과는 조금의 차이성이 있지만 주인공 홀든이 가지는 본질적인 문제는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부모의 질책이 무섭고 당면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먼 탈출을 시도하지만 사랑하는 동생의 강력한 저지에 의해 자신의 현재를 발견하고 현실에 적응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넓은 호밀밭을 뛰어노는 아이들이 굴러 떨어질 때 벼랑 끝에서 붙잡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어 하는 주인공 홀든,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겪게 되는 청소년의 심적 갈등의 해결을 저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라는 결론 맺고 있다. 과연 그 길밖에 해답이 없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의 자연스러운 성장통 이라고 만 본다면 편협한 사고이리라.

칙칙한 술집, 뿌연 담배연기, 술 취한 사람들 이것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주인공이 처한 환경의 대부분이다. 그 속에서 점차 무너져가는 홀든의 심리적 상황이 잘 모사되어 있다. 구체적 상황은 다를지라도 우리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과 크게 다르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학생의 신분으로 눈으로 보고 직접 겪으며 체험하는 현실의 문제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어떠한 사회적 대안이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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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스퀘어 을유세계문학전집 21
헨리 제임스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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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하지만 사랑이 담긴 가족이야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겪게 되는 결혼은 당사자에게는 일생을 건 커다란 사건임에 틀림없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이뤄 삶의 행복을 꾸려가는 것이라고 본다면 두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부터 결혼생활을 가꿔가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빛나는 청춘의 시기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남녀가 만나 서로를 확인하고 결혼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음을 종종 보게 된다.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사회제도가 붕괴되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긴 했지만 결혼이 가문과 가문의 만남이라는 말에 의해서도 확인되는 전통적인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 그래왔다. 

[워싱턴 스퀘어]는 19세기 미국사회에서 벌어졌던 한 가정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사교계에서도 잘나가는 의사 아버지의 딸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조건과는 달리 그저 평범한 성장을 보인다. 아버지의 동생 고모의 보살핌으로 성장한 딸 캐서린은 어느 파티에서 잘나가는 청년 모리스 타운젠드를 만나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결혼 적령기에 있던 캐서린은 어머니의 막대한 유산이라는 흥미로운 조건이 두 사람의 결혼이 제약을 받는다. 

의사 아버지의 시각에 의해 잘나가는 청년 모리스 타운젠드가 캐서린의 유산을 노리는 불손한 의도로 접근하는 것으로 보고 있어 모리스가 가진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한편 고모 페니먼 부인의 행보는 이해하지 못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두 사람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애를 쓰지만 어느 때는 모리스에 대한 일방적인 편들기로 보이는 모습은 캐서린과 고모라는 사이에 벽을 치기도 한다. 한편, 모리스 타운젠드의 행보 또한 어설프기만 하다. 사랑인지 유산에 대한 유혹인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점차 무기력한 모습에 유산을 노린 결혼이라는 쪽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이끌어 가는 것 같은 결말이다. 명확한 파혼 선언도 아니면서 다른 곳으로 떠나 결혼까지 한다. 캐서린과 모리스의 결혼에 결정적으로 반대했던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결국 자신의 유산을 사회에 환원시키고 만다. 

저자가 그려나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미지는 희미한 안개 속에 갇혀 있는 듯싶다. 주인공 캐서린의 전면에 등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리스도 주변에 겉돌기만 하게 그려진다. 그렇더라도 아버지의 딸에 대한 심정은 이해할만한 부분이 많다. 물론 자신의 사회적 지위, 유산 등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 딸 캐서린의 갈등이 한 측면이 착한 딸로 아버지에 대한 의무감에 머물러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표현하지 못함도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20여년의 세월이 흐린 뒤 다시 찾아온 모리스 타운젠드를 바라보는 캐서린의 태도는 자신을 버리고 멀리 달아난 배신에 대해 용서했다고는 하지만 시간의 흐름도 결코 돌리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점은 캐서린이 결혼하지 않은 모습이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개척한 것도 아닌 어정쩡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미국 사람들의 생활상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 [워싱턴 스퀘어]는 극적인 상황이나 긴장감이 보이지 않고 지극히 관조적 경향을 보인다. 의도적인 저자의 글쓰기이라고 봐도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느끼는 이야기 흐름의 극적인 반전이나 긴장감이 없기에 밋밋하다. 인생의 청춘시절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결혼을 둘러싼 주변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를 유추해 보는 시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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