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싶지 않은 마음 - 탈진실 시대 무지의 전략들
레나타 살레츨 지음, 정영목 옮김 / 후마니타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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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이나 제노사이드가 있었던 지역에서, 또는 이민자에 대한 편견에 작용하는 무지는 많은 경우 선택과 의지에 의한 것이다.처리하기 힘들정도로 너무나 많은 정보가 들어오거나, 새로운 정보나 아직은 대응할 능력이 없는 정보를 대할 때 무지로 반응한다. 모두 공감되나 평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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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싫다가 먼저였던 것 같다. 그리고 문학 읽기 권태기가 왔다. 계속 비슷한 주제에 도달하게 되는 소설에 식상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다. 그려지는 일상과 대화들은 빠른 속도로 훑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이 잦아졌다. 결말을 알 것 같은 전개와 혹은 중요한 메시지임에도 작가의 의도가 미리 읽혀지는 머리 부분에서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갈등을 하곤 했다. 나름대로 내린 처방은 문학이 아닌 난이도 있는 책 읽기와 두꺼운 책 함께 낭독하기였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움베르토 에코의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다. 사이즈도 크고 페이지도 많지만, 읽지 않고 모셔두기엔 너무 비싼 책이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어둠이 내리는 길을 걸어서 만나기로 한 카페를 향했다. 마음이 설렜다. 달리기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지나 천변 길을 걸어서 카페에 도착했다. 다행히 카페는 한산했다. 창가 테이블이 자리를 잡고 짊어지고 간 무거운 책을 꺼냈다. 함께 읽기로 한 독우(讀友)를 기다리며 이 두꺼운 책을 3권까지 무사히 읽을 수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걱정보다는 기대, 드디어 읽게 되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사람이 없는 조용한 카페에서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우리는 서론부터 읽어나갔다. 번갈아가며 조용한 목소리로 빠르게 읽다가 중요한 문장에서는 속도를 줄이며 줄을 치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만나면, “이 문장 이해되세요?” 하고 다시 새겨 읽고, 서로 설명을 덧붙였다.(길지 않게) 한 사람이 읽고 있는 듯이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너무 좋은데!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한 독서 친구여서 그런가? 이전에 함께 낭독으로 읽었던 경험도 있어서 서로에게 갖고 있는 믿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잡담 없이 계속 읽어가며 나는 이 부분 재밌네요.”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독우의 책에 대한 조용한 열정과 성실함 때문에 완독의 전망이 높아진다. 불가피한 일 때문에 빠질 걸 예상하고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만나서 읽기로 했다. 돌아오면서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즐기면서 하자고 생각했다. 이제 해가 길어지고 오고 가는 길이 조금 더 밝을 것이다.

 

그렇게 1장의 반 분량을 읽고 이번 주 다시 이어서 읽게 되었다. 아직은 그리 어려운 철학 용어들이 등장하진 않지만,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본질을 탐구했던 고대 과학과 철학에 대해 잘 전달하는 에코의 문장도 우리가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그의 접근도 신선하고 흥미를 끈다. 그렇게 특이하지 않음에도 그의 글에는 관심을 끄는 새로움이 담겨있다.

 

그는 아르케(arche), 아페이론(apeiron), 그리스어(mythos)에 담겨 있는 신화(myth)의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현대의 철학자들의 해석도 간략하고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서론 부분에서 가장 눈길을 끈 내용은 인간이 경이로움을 경험하면서 이에 대한 반응으로 철학을 시작했다(8p)”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인간은 경이로움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경배를 하거나, 질문을 한다. 경이로움에 대한 과학이나 철학적 반응은 질문이다. 고대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질문들은 과학이 답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고, 이어지는 질문들은 철학의 영역에 해당한다. 철학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생각의 훈련이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와 시칠리아 아프리카 북부, 이오니아 지역의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지도를 보며, 그동안 읽어왔던 서양 고전 독서가 이 책을 쉽게 읽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두꺼운 책의 1장 부분이 수학의 정석』 「집합이 될지도 모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 용어들이 멈추게 할지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모르는 것은 놓고 갈 예정이다. 내일 만나서 읽을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진다. 준비도 예습도 없이 책만 지고 가서 반가운 친구와 앉아서 읽다가 올 생각을 하니 그 만남이 기대된다.

 

또 다른 모임에서도 낭독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생 남자아이 둘과 헤로도토스 역사를 낭독하고 있다. 읽고 설명해주고 지도나 역사와 인물설명을 해야 해서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지만 덕분에 나는 세 번째 읽고 있고, 눈으로 읽고 정리할 때와 달리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을 발견한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는 미술 모임에서 한 주에 한 장씩 요약 발표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그 모임 회원과 한 번쯤 읽었던 몇 사람이 낭독만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져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독서가 기대했던 것 보다 큰 효과가 있어서, 처음 읽었던 때와 달리, 시대별 정리가 되고, 보이지 않던 그림이 보이고, 또 곰브리치의 작은 오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과 관람했던 전시들을 통해 얻은 지식과 보는 눈이 생겼음을 스스로 느낀다. 격려가 되는 독서다.

 

바르트의 책(영도의 글쓰기)이 잘 읽혀지는 것을 보니, 이 처방이 맞나 보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주문하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1장 부분만 읽었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오래 전에 읽고 참고했고, 거기에서 멈췄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만 읽고 만다고 어디에선가 읽고 공감되서 웃었었다. 이번 기회에 읽어버려야지 했는데, 눈에 보이는 대로 꺼내놓다 보니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버렸다. 이번엔 성공하길말과 사물 강의를 사야할까? 생각 중이다.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할 소설이 있긴 하다왜 권태기가 왔을까글쓰기도 식상하고……생각하는 틀이 고정되어 있고 깊어지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그래서 아무래도 지금은 이 책들을 읽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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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4-28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권이 겹치네요..ㅎㅎ
서양미술사는 저하고 판본이 똑같고...<시각예술의 의미>는 2주 전에 구매했습니다..ㅎㅎ지각의 현상학과 말과 사물은 엔날부터 있던 책인데..ㅎㅎ에코가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도 썼군요! 에코의 전집이 있는데, 저 책은 없습니다. 사후에 출간된 책인 듯합니다..어쨌든 소설이 읽기 싫은 때가 있죠. 그레이스 님은 어려운 책을 읽으시는군요! 저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봅니다..ㅎㅎ

그레이스 2026-04-28 09:37   좋아요 0 | URL
야무님은 철학과 미학에 있어서는 선배님이신듯요^^
파노프스키가 잘 읽혀서 신기했어요.
처음에 읽을땐 조금 힘들었거든요.
<도상해석학 연구> 읽고 이 책들은 읽다가 말았어요.^^

그렇게혜윰 2026-04-28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서로 다른 판본으로 친구랑 번갈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재밌었던 경험이에요. 어려운 글일수록 소리내어 읽으면 좋을 것 같은데 독우가 있다니 참 부럽습니다! 전 요즘 도통 어려운 책은....뇌휴식기인가봐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6-04-28 17:57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읽어보니,,, 좋더라구요...^^ 귀한 벗이죠~~감사합니다.
그렇게혜윰님도 화이팅입니다.~^^

이소 2026-04-30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우라니. 오늘에야 듣게 되는. 새로운 세상 이야기. 부럽네요.

그레이스 2026-04-30 20:23   좋아요 0 | URL
오래된 독서 모임과 친구가 있어서 넘 감사합니다 ~♡
 
연매장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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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는 길에 버려진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흙으로 덮고 장사지내기 위해 목숨을 건다. 고대의 비극이나 서사시에서는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희생을 치르고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아킬레우스에게 고개를 숙인다. 성경에는 먼 거리를 밤새도록 달려가 사울의 시신을 찾아왔다는 기브아 사람들 이야기도 있다. 그들은 왜 목숨을 걸고 시신을 구했을까? 인간의 육체와 죽음 그리고 사후(死後)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육체를 썩고 분해되어 기본적인 물질로 환원되는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히 사후세계나 부활과 관련된 특별한 신앙이 없더라도, 생전에 함께 하고 사랑했던 존재의 틀(혹은 그릇)을 안타깝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아끼던 물건이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쉽게 함부로 버리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의 육신이지 않은가.

 

평생을 기억상실인 채로 살았던 딩즈타오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연매장은 안돼!”라고 외친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도 연매장되기 싫어!”라는 말을 반복한다. 연매장이란 시신을 관에 담거나 시신을 감싸는 어떤 것도 없이 매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학살, 혹은 예를 갖출만한 여력이 없는 극단적 상황을 내포한다. 학살은 시체들을 묻고, 시간은 그들을 발굴한다.

 

1950년대 초 중국 공산당은 지주(地主) 계급의 토지를 무상 몰수하여 빈농에게 분배하는 대규모 토지 재분배 정책인 토지개혁을 한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지주가 학살되거나 숙청되었다. 딩즈타오는 이때 가족과 재산을 다 잃고 혼자 살아남아서 강에서 구조된 여성이다. 그녀의 아들 칭린은 아버지의 일기, 기억을 잃은 어머니의 분절된 말들, 직장상사인 류샤오찬의 아버지 류진위안의 기억을 통해 그들의 인연과 그들이 겪은 시대적 아픔을 알게 되고, 어머니가 상실한 기억의 진실과 고통의 근원 가까이에 다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처럼 그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지 않고 덮어두려 한다.

 

칭린은 알기 싫은 일을 알려 하지 않는 것도 강함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이 진실의 모든 것을 연매장 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게 진실의 모든 것이라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432p)”

 

그 진실을 추적해 쓰는 것은 칭린의 친구 룽중륭이 한다. 칭린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지만, 룽중륭은 싼즈탕 지역과 그 장원과 사건을 추적해서 쓴다. 칭린은 어머니의 과거와 고통의 진실이 매장된 채로 모든 것이 풍화되기를 바랐지만, 룽중륭은 역사는 진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망각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선택해. 우리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야.(444p)”라고 말한다. 칭린은 냉소하며 생각한다. 진실이 어떻게 언어와 글로 표현될 수 있겠느냐고, 세상의 어떤 일도 진정한 진실을 가질 수 없다고.

 

작가가 이 시대 토지개혁과 관련된 개인적 경험을 듣고 연매장이라는 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 단어는 시대적 비참을 품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도 수많은 연매장이 있고, 진실이 묻혀 있는 평토장 무덤들이 있다. 이 땅에는 여전히 감자를 먹지 못하는 많은 순이 삼촌들이 있고, 멸치도 못 먹는 유가족들이 있다. 자신의 손으로 묻은 가족들과 죄의식을 기억의 심연에 매장한 딩쯔타오처럼 침묵으로 아픔을 묻고 침묵하도록 강요받았던 사람들이 있다.


칭린이 진실을 밝히길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차라리 알려하지 않는 것이 강함의 표현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나? 칭린과 룽중륭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칭린의 태도에 나는 조금 의아했다. 알지 않으려 하는 게 강함의 표현이라고? 자라면서 알고 있던 부모의 정체가 다르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흔드는 것일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감춘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아픔을 느끼지만 그는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중국인들이 문화혁명과 같은 부조리한 역사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같은 태도를 본다. 과거의 역사를 대하는 그런 방식이 경직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유물론적이고 실용적이 그들 나름의 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칭린에게서는 진실을 완벽히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패배의식도 엿보인다. 그러나 진실에 연루되어 있는 칭린보다는 자유로운 룽중륭은 연구자와 작가로서 탐사를 계속한다. 작가는 칭린을 이해하는 듯 쓰고 있지만, 사실 그의 태도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룽중륭을 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비중이 적은 제3자로서의 룽중륭은 작가 자신이라고 짐작된다. 룽중륭의 등장은 기록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작가 자신에게 확인시키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호메로스나 그리스 비극, 특히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다보면 사람들의 주검에 대한 예()는 시대, 지역, 문화마다 조금씩 상이하나, 그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사회에서 화장은 선호하는 장례방식은 아니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시대의 변화와 문화에 따라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도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훼손되고 함부로 매장된 육체는 경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경악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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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6-04-23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그런 내용이었군요. 어쩌면 어느 시대에나 통할 수 있는 이야기겠네요. 결국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외면은 자기기만일 수도 있지만 들추면 닥칠 혼란, 공포와 두려움에 대한 자기방어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도 이념에 의해 많은 이들이 강요당하여 학살당한 이들이 있고 묻혀 있는 진실들이 많죠.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리뷰 감사합니다. 언젠가 읽어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6-04-23 10:26   좋아요 0 | URL
4.3과 5.18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가족의 유해를 찾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들도 그렇구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6.25나 일제강점기 양민학살 사건 등,,, 우리에게도 있는 같은 사건들이 계속 생각나네요.
감사합니다. 거리의 화가님은 역사를 많이 아시니까 깊은 독서가 되시리라 생각되네요.
 
영도의 글쓰기
롤랑 바르트 지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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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그, 스띨, 에크리뛰르, 작가가 말하는 언어, 문체, 글쓰기의 정의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 외부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작가의 문체가 완성되도록 하는것, 그것이 영도의 글쓰기다. 발자크, 졸라, 플로베르의 글을 비판적으로 읽게되고, 까뮈의 문체를 다시 발견하게 되는 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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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4-01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을만 한가요? 롤랑바르트 번역본들은 전부 읽을 수 없는 수준이던데요...저두 3권 있었는데 읽다가 전부 버렸어요..^^;;

그레이스 2026-04-02 09:19   좋아요 0 | URL
가끔 Gemini한테 의미를 물어봐야하긴 했어요.
스띨과 에크리튀르를 조금 혼용해서 번역해서...
위에 저 언어, 문체, 글쓰기 만 이해하면 그때부턴 읽을만해요.
바르트 책 중에서 그래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예요.
비평에세이도 좋았구요.

yamoo 2026-04-02 09:37   좋아요 1 | URL
헛! 그런 번역본이 있단 말이죠? 저도 한 번 보겠습니다. 서점에서 몇 페이지 읽어보고 일을만한 번역이라면 구매해야 겠어요. 경험상 열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서뤼..^^;;
 

이오니아 반란의 주동자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라스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을 이오니아에 있는 도시들과 사모스나 키프로스 같은 섬들과 스파르타나 아테네에 까지 확산시킨다. 아리스타고라스의 배후에는 페르시아로 끌려간 밀레토스의 참주 히스티아이오스가 있었다. 히스티아이오스는 밀레토스를 공격해온 다레이오스에게 일찌감치 항복하고 그의 수하에 들어가 페르시아에 봉사하고 있었다. 그는 밀레토스를 다시 차지하고자 자신을 대리하고 있는 사위 아리스타고라스에게 페르시아에 항거하라고 비밀리에 메시지를 전한다. 이 메시지를 받기 전 아리스타고라스는 페르시아에 공적을 세우고자 군대를 동원해 낙소스를 공격했다. 낙소스 원정은 실패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만을 입었다. 아리스타고라스는 다레이오스에게 받을 문책이 두려워 오히려 페르시아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스파르타와 아테네에 원병을 요청하고,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오니아 지역 도시들을 선동했다. 각 도시국가들은 셈법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전쟁에 참전했다. 이것이 Ionian revolt, 헤로도토스가 말하는 이오니아 반란이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연구하며 이오니아와 아프리카 흑해주변 도시 등의 역사와 문화, 인종 등을 조사하고 직접 다니며 탐사했다. 그러면서 마라톤 전쟁 직전에 일어난 이오니아 지역 헬라스 도시들의 페르시아에 대한 전쟁에 주목한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서술해간다. 이 이오니아 전쟁을 통해 많은 도시들의 시민들이 희생됐다. 나름의 전쟁을 일으킬만한 이유들과 열망들이 있기도 했다. 노예 상태로 이주한 민족들과 혈육이 몰살당한 사람들의 분노와 복수심 등.

 

주목할 만한 것은 지도자들의 욕망과 무책임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빼앗긴 권력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들의 복수심과 불안감을 이용한다. 페르시아가 시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노예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거짓을 전파하며 선동한다. 아리스타고라스는 이오니아의 많은 도시들이 다 일어난 것처럼 호도하여 다른 도시들의 참전하게 한다. 그리고 패색이 짙어지자 도주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5~6) 헤로도토스는 이 역사를 기록하며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들에 집중한다. 지도자들의 욕망에 의해 전쟁에 끌려 나온 시민들과 노예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전쟁의 승패가 기울면 지도자들은 항복과 결사 항전을 고민하고, 협정을 맺기도 하지만, 합의에 이르는 마지막까지 이익을 앞에 놓고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싸운다. 그 와중 협상과 지체와 결렬과 재개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의 희생을 키우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 고대 국가들은 전쟁 중 서로가 적이 되기도, 연합군을 이루기도, 중재자로서 개입하기도 한다. 구원(舊怨)을 따라 혹은 이익을 따라 합종연횡을 일삼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대에 일어난 전쟁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결론으로 가는 과정이 현대 전쟁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 에서는 휴전시간 15분을 앞두고 지휘관의 자존심 때문에 신병들을 적의 참호로 보내 육탄전을 벌이는 비인도적 장면이 있다. 종전 협정 내용이 독일에 수치스러운 것이었기에 지도자는 프랑스군을 그대로 보낼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한다. 적의 참호에서 끔찍한 육탄전을 벌이던 파울 보이머는 칼에 찔리고,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휴전 나팔이 울리고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진다. 그 소리를 들으며 파울은 죽는다. 전쟁의 허망함을 전하려는 극적 연출 장면이다. 그리고 지도층의 몇 사람의 공로 의식이나 욕심에 의해 많은 생명이 부질없이 죽어가는 전쟁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한다.

 

원작을 각색한 이 영화는 2023년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에서 많은 부분 수상을 했다. 영화는 아름다운 풍경과 전장의 잔인함을 대비시킨다. 인물들의 대화는 때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굶주린 병사들의 열악한 식사와 후방에 있는 고관들의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식사 장면을 대비시킨다. 조국을 위해 참전하는 십대 청년들의 낭만과 첫 전투의 공포와 참혹함이 급격하게 대립한다. 그들의 패기와 열정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절망으로 변해버린다. 나 역시 저들이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돌아간다 한들 희망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참담한 풍경이 반복되면서 나도 모르게 남아 있는 러닝 타임을 확인했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빗발치는 총탄과 화염 방사기 앞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을 달리는 그들의 둔한 몸짓이 나를 숨막히게 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이 비참한 시간을 버티고 있는 그들의 심정이 화면 건너편으로 전해졌다.

 

학교 교사, 탄광의 광부, 은행원, 양계장 주인, 시골 지주, 도시 중간계급, 노동자, 농민 등 그들이 격렬한 전화(戰火)의 한복판에서 계속 참호를 지키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무인지대 언저리 저 냉혹한 죽음이 다스리는 그 자투리 땅에서 그들을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일까?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나와 공격에 나서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버티게 했을까?”(봄의 제전289p)

 

원작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작가의 체험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상상된다. 그가 16살 때 전쟁이 났고, 2년 뒤 191611월에 사범학교를 다니던 중 징집되었고, 1917년 플랑드르에서 처음으로 최전선의 전투를 경험했다고 한다.(봄의 제전467p)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는 영화의 대비적 이미지 보다는 화자인 파울의 마음에 집중한다. 그의 심상에 떠오르는 문장들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잔인하고 허무하다. 17살인 파울과 그의 동기들 7명은 전선으로 보내져 흩어져 배치되고 죽음을 경험한다. 파울은 자신들이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파울은 우리는 길을 잃은 것 같다고 고백한다. 학생이 아닌 전우들은 구두 수선공, 농부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는 똑같이 총탄, 장갑차, 화염방사기, 화학전 독가스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다. 1918년 종전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파울은 끝나지 않는 전쟁에 조바심 낸다. 그 초조함과 실망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1918년 여름 불타 버린 전쟁터 위로 부는 희망의 바람, 초조함과 실망의 미칠 것 같은 열병, 두렵기 짝이 없는 죽음의 공포, 이해할 수 없는 물음. ? 왜 전쟁이 끝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끝난다는 소문이 솔솔 나도는가?”(11)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더욱 전쟁에 나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여전히 어쩌면 더 많은 죽음들을 경험한다. 희망과 실망을 반복하는 파울 보이머에게서 우울과 당혹감을 엿보게 된다. 반면 그의 눈에 비친 나무들, 빨간 마가목 열매는 아름답기만 해서 처절하고 더욱 허무하다.

 

하지만 1918년 여름에 출정은 계속되고 죽음도 그치지 않는다. 비록 초라한 모습이긴 하지만 이곳 생활이 지금처럼 우리에게 간절히 여겨진 적은 없었다. 우리의 숙소 주변 초원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꽃, 풀줄기에 달라붙은 매끈매끈한 닥정벌레, 어스름하고 서늘한 방 안에 스며드는 따스한 저녁노을, 해 질 녘의 신비스러운 검은 나무들, 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흐르는 물, 꿈들과 오랜 수면-, 이런 생활, 생활, 생활!”(서부 전선 이상 없다11)

 

그리고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고 작가는 쓰고 있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로 마치며,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는 파울의 몸을 조명한다.

 

종전 소식을 기다리는 전쟁 지역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대피 사이렌과 폭탄 터지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도시의 밤이 당분간 조용하려나? 죽음의 공포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국가의 권력자들은 수많은 셈법과 경우의 수를 따져 이익이 되는 조항들을 매일 갱신하고 있다. 이 전쟁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도 나름의 예측과 전망을 통해 종전의 때를 점치고 있다.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하고 그 시간이 언제 올지 불안한 가운데 어디선가 적막을 깨는 폭격 소리에 실망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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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1 1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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