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저자는 애 책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 방식-전기(傳記)와 소설의 결합-을 실험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전기의 주인공들은 대개 저명하거나 악명 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쓴 전기작가와는 서로 일면식도 없을 뿐더러(대개의 경우가..) 대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도식화해버리는 전통적인 전기 집필의 규범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기를 써보려고 도전한 작품이다.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등 저자는 그동안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주로 써왔다. 저자가 평범한 한 젊은 여성의 전기를 써보겠노라고 결심했을 때 그 결심은 사랑에서 왔다. 글 내용에서 여자친구의 가혹한 비난과 함께 실연을 경험한 주인공은 어느 파티에 갔다가 한 여성과 만난다. 멀리서 일별하고 나서 그렇고 그런 뻔한 여자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다가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편견을 확인하고 그녀에 대한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이다. 등장인물들은 작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물론 여전히 살아 있다. 한 젊은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공개하고 그 공개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공감대를 형성한 독자들은 작가와 주인공들과의 성공적인 피드백의 결과로 우리는 위트 넘치고 사려 깊은 한 젊은 여인의 전기와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소설 한 편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제목인 "Kiss & Tell"은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보통 사람, 한 여성의 40여년 일대기를 전기의 형태로 저술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다 읽고나서도 나는 저자가 책에 왜 이라는 제목을 달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은 주인공 '이사벨'의 입을 통해 쓰여진 일대기와 작가와 이사벨과의 구체적인 대화와 관계, 그리고 앞의 두 가지를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하고 철학과 이성으로 분석하는 세 가지 구성으로 엮어진다. 전기는 한 사람을 깊이 있는 장르이다. 이 소설은 이사벨이라는 한 젊은 여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읽어낸다. 이사벨이라는 텍스트를 읽어가는 저자는 그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따지고 분석하려 든다. 그러나 이사벨은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완벽히 설명될 수도 없고 온전히 이해되기도 힘든 살아 있는 인간, 젊은 여자다. 결국 저자가 사랑했던 건 이사벨이라는 텍스트였지 울고 웃고 슬퍼하고 아파하는 살아 있는 인간 이사벨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사벨의 주장처럼 한 사람의 삶은 당사자도 왜 그러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전 세계 50억명 가까운 사람들 중에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러한 인간들이 군데군데 모여 집단을 이루고 서로 이야기하고 돕고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이 지구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말은 선입관을 가지고 누군가를 규정짓고 판정을 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애기와 같다. 그리고 그런 특징이 인간을 인간답게,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각각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이해하기 이전에 상대방을 '인정'하고 시작할 수는 없을까??
 
"친밀해지는 것은 유혹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친밀함을 보인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비호의적인 판단-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혹이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 또는 가장 매혹적인 정장차림을 보여주는 것 속에서 발견된다면, 친밀함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습 또는 가장 절 멋진 발톱 속에서 발견된다."(157쪽)

 

[ 2010년 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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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심 - 상 - 파리의 조선 궁녀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고를 때 적지 않게 고민했다.
그 이유는 이 소설도 전에 읽었던 작가의 백탑파 시리즈-방각본 살인사건, 열하문의 비밀, 열하광인-처럼 상,하 2권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출판사의 욕심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프랑스로 ’팩션 기행’을 떠나면서 <중앙일보>에 연재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본 것도 원인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상술’의 주체가 출판사이지 작가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책을 구입했다.
그리고 어떤 이유와 과정으로 <중앙일보>에 기행문을 연재했는지 구체적인 내막을 모르기 때문에 그 건은 보류하리라 마음먹었다.
’소설가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구입한 후, 먼저 읽지 않고 여자후배에게 먼저 읽기를 권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친구는 소설의 다 읽지 않았고 상,중,하권 중 중권까지 읽다가 덮었다고 한다.
그 후배는 역사학과 출신이기에 역사의식에 대한 자신의 고민이 많았던 친구다.
글도 곧 잘쓰는 친구인데 무엇이 그 친구에게 독서를 중단시켰는지는 내가 모두 읽은 후에 물어봐야 하겠지...
 
작가의 소설은 ’치밀한 고증’이 특징이다.(물론, 다른 소설가들이 고증을 무시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한반도 근현대사에서 큰 갈림길이 되었던 조선 후기 ~ 말기에 대한 작가의 글이 여전히 궁금했다.
이 소설 역시 작가가 고증을 위해 나름 노력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작가는 下권에 자신이 파리와 마르세이유, 탕헤르에서 리심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과정을 설명한다.)
 
리심(梨心)은 19세기 말 개화기 조선의 실존 인물로 프랑스 외교관과 사랑에 빠졌던 궁중 무희다. 초대 그리고 3대 프랑스 공사를 지낸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그녀의 연인이다. 리심은 1893년 5월 빅토르 콜랭을 따라 조선 여성 최초로 프랑스에 발을 디뎠다. 1894년 10월 플랑시가 모로코 대사로 부임하면서 역시 최초로 아프리카 땅을 밟은 조선 여성이 되었다. 1896년 플랑시를 따라 귀국한 후 궁중 무희로 복직했으나 금조각을 삼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리심에 대한 기록은 2대 프랑스 공사였던 프랑뎅의 회고록 『한국에서(En Cor?e)』을 통해 전한다. 프랑뎅에 따르면 리심은 “유럽인의 눈으로 봐도 정말 아름다웠고”, “폭넓은 정신과 예술적 자질”을 지닌 재색을 겸비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저자 김탁환이 리심에 대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소설을 쓰기 2년 전 우연히 프랑뎅의 회고록 <한국에서(En Cor?e)>를 읽다가 “리심은 자신이 관찰한 놀라운 서양 문물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기록해 두었는데, 나는 언젠가 그 기록들을 꼭 출판하려고 다짐하고 있다.”라는 대목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이 문장에서 착상을 얻은 저자는 리심이 기록해 두었으나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가상의 여행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처음 예상한대로 이 소설이 단순한 ’애정소설’은 아니다. 궁중 무희와 외국 외교관과의 애절한 Love Story가 담겨있기는 하지만, 역시나 작가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고민도 담겨있다. 그리고 역사와 인간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120년이 지난 21세기 한반도에 여전히 비슷한 상태로 남아있지 않나 싶다.

 

-------[ 중권 ] -------

이 소설은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는 나아갈 진(진) : 궁녀로서의 삶, 과거의 아픈 기억, 고종과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과의 만남으로 인해 조선을 떠나는 운명이 나타난다.
두번째는 흐를 류(류) : 빅토르 콜랭을 따라 일본, 프랑스, 모로코 탕헤르, 사하라 사막, 마르세이유를 여행하며 다양한 서구 문화와 사람들과의 관계 겪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번째는 돌아올 회(회) : 조선의 외교관으로 돌아온 빅토르 콜랭을 따라 돌아오지만 고종과 빅토르 콜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다시 궁중의 무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고종 황제 즉위식 특별 공연에서 자신의 마지막 춤을 추고 이승에서 사라진다.

<상권> 주인공 리심의 어머니 월선은 "야소교(천주교)"에 빠져 신부와 함께 리심을 버리고 도망간다. 그 때문에 리심은 관가에 잡혀서 혹독한 관기 생활을 시작한다. 어머니를 닮아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추던 리심은 어떤 관리의 추천을 받아 궁궐에 약방 기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궁에 들어가서도 의술을 익히고, 춤을 익힌다. 또한 밤에는 상궁(’큰아줌마’)의 도움으로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을 읽으며 나름대로는 세상을 배워 간다. 그러다가 중간에 큰아줌마와 김옥균이 궁궐에 난입하는 사건(갑신정변)이 발생한다. 리심은 사건에 연루되어 죄인으로 조사받다가 중전(명성황후)가 살려준다. 중전의 발을 씻기고 중궁전 앞마당에 온종일 서있는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다시는 춤과 노래, 의술, 서책을 가까이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리심은 밤에 몰래 장악원에서 춤을 익혀서, 사람들로 하여금 귀신이 살고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중전은 리심이 춤을 익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던 중, 왕실에서 외교관들을 모두 불러 놓고 베푼 축하연에서 리심은 선모(춤꾼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프랑스 공사인 빅토르 드 플랑시는 리심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원래 선모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발목을 삐어 리심에게 자리를 내어준 영은이나, 함께 춤을 추었던 지월, 빅토르, 그리고 고종 모두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만, 정작 리심의 입장에서는 어떤 행동을 어떤 의도로 했는 지,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는 리심이 한 일이 진짜인지, 그들의 편견에서부터 온 것인지 아무것도 해명이 되지 않는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리심은 어린 소녀에서 아가씨가 되어가고 있다. 

<중권> 리심이 외교관인 빅토르를 따라 세계를 물 흐르듯 돌아다니는 내용이 나온다. 본문에서도 외교관은 "흐를 류"자와 닮아있다고 빅토르가 말하는 구절이 있다. 두번째 권에서는 리심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일이 벌어진다. 빅토르 콜랭은 일본을 거쳐 파리로 돌아간다. 일본에서 리심은 김옥균을 만난다. 빅토르는 파리로 돌아가는 뱃길에서 지병이 악화되어 파리에 도착해서도 몇 개월간 병원에 입원한다. 리심은 파리에서 ’파리지엔’으로서 삶을 하나씩 배우고 적응한다. 그러던 중 동양인을 증오하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여 유산하면서 우울한 삶이 된다. 파리에 도착한지 1년 후 빅토르는 모로코 탕헤르에 파견가게 되고 리심을 빅토르를 따라 탕헤르에서 새로운 세계와 사람들을 만난다. 리심은 사하라사막을 구경하고 싶어 빅토르를 졸라 사하라사막을 건너기 시작하지만 서양인을 거부하는 베두인들에게 약탈당하고 사막폭풍을 맞아 외톨이가 된다. 리심이 착한 사막의 베두인들에게 구출되고 그들에게서 깨달음을 얻을 때 빅토르는 프랑스군과 함께 닥쳐와 리심을 도운 베두인들을 모두 살해한다.

<하권> 리심은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공화주의자가 되어 빅토르와 함께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다. 조선은 중전이 시해당하고(을미사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고 있는 상황(아관파천)이었다. 그 와중에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고 있고, 각국 외교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 리심은 조선에서도 프랑스에서 입던 복식으로 생활한다. 리심은 이제 조선여자도 아니고 프랑스여자도 아니다. 어디에서도 환영받거나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그냥 "리심"일 뿐이다. 사랑은 믿을 수 없고, 서로가 양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서로간의 교류일 뿐이었다. 리심은 빅토르에게 일순간 실망했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고종은 프랑스의 도움을 빌어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싶어한다. 거기에 과격한 홍종우까지 가세했다. 그러나 빅토르는 그들에게 쉽게 힘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한 나라의 외교관이라는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프랑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리심은 다시 궁중으로 잡혀가 춤을 익히고,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마련한 축하연에서 다시한 번 빅토르와 고종 앞에 선모로 선 자리에서 자살한다.

<프랑스 외교관 프랑댕 (Frandin)의 회고록에 남아있는 동료 외교관(플랑시를 칭함)과 궁중 무희의 사랑에 대한 기록>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890년대 초기의 일이다. 당시 서울 주재 프랑스 공사관의 대리공사 (Charge d’affaires ? Collin de Placy)가 왕궁 소속의 어느 무희(danseuse)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것이 한국 여인과 서양인 사이의 최초의 사랑이 아니었던가 짐작된다.
이들은 함께 프랑스로 와서 결혼한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무희가 프랑스에 왔다 간 최초의 한국여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왕궁에 예속된 무희들 가운데 인물이 빼어나게 예쁜 무희가 있었다. 서양인의 눈으로 보아도 두말 할 여지가 없는 미인이었다.
어느 젊은 프랑스 대리공사(‘콜랭 드 플랑시’를 일컬음)가 ? 그 분이 아직도 살아 있으므로 이름을 밝힐 수 없다 ? 이 젊은 여인의 우아하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었다. 대리공사가 고종 황제(이희)에게 이 여인을 요구하자 황제는 너그럽게도 그녀를 (선물로) 하사했다. 무희는 근본이 노비 출신이므로 저항없이 새 주인을 따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유럽으로 돌아가게 된 대리공사는 날이 가면 갈수록 이 젊은 한국 여인의 지적인 우수성에 끌리게 되었다. 그녀와 떨어질 수 없게 되자 그녀를 프랑스에 데려가기로 했다.
그들이 한국을 떠나기 전, 나(저자, 프랑댕)는 대리공사의 집에서 문제의 그 무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 고유의 옷을 입은 미녀를 보고 나도 감탄해 마지 않았다.

프랑스 공사가 한국을 떠나는 날, 작별 인사를 할 때 그녀가 우아한 빠리지엔느 같은 의상을 차려입은 것을 보고 놀라,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불안한 예감마저 들었다. 법썩 가운데서도 ‘Li Tsin ? Fleur d’ame’ 이라 (‘리화심, 李花心’ 또는 ‘리심, 李心’ 을 표기한 것) 이름한 이 무희의 깊고 맑은 눈 만은 반짝였고, 그녀의 개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동료이자 친구인 외교관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나는 그녀와 결혼하겠습니다. 당신은 리심의 마음이 얼마나 고운지 모르실 겁니다. 한국에서는 여신이 될 만한 미인이며, 프랑스에서는 천사와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유럽에 도착하자, 그는(플랑시 공사) 약속대로 ‘노비’와 결혼하였고, 그의 아내가 된 리심에게 각종 개인 교수를 대어 주었으며 지도교수들은 모두 이 한국 여인의 적응 능력과 예술적인 본능을 인정했다. 천재적인 이 여인은 프랑스의 관습, 카톨릭 교리에 감탄하였으며, 아름다운 서구 언어에도 곧 친숙해 졌다. 그녀는 보고 느낀 것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썩 잘 썼는데, 언젠가는 그녀가 쓴 것을 발표할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지나친 지적 감수성 때문인지, 오래지 않아 리심은 날마다 접촉하는 유럽 여인에 비해 신체적인 열등감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심에 잠겼다. 남편의 부드러운 사랑에도 불구하고 날로 수척해 갔다. 아무리 떨쳐 버리려 해도 우수(brumes, 근심)가 동양의 뜨거운 태양에 거슬린 그녀의 이마를 덮고 떠나지 않았다.
가련한 작은 한국여인은 하도 야위어서 소파에 깊이 앉아있는 것을 보면, 우스개 말로, 원숭이에게 여자 옷을 입힌 것과 같이 보일 정도였다. 폐병으로 기침을 하기 전, 리심이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할 때, 리듬있는 그녀의 이야기에 우리는 귀를 기우려 황홀하게 듣곤했다. 리심은 멋진 말을 골라 장면을 묘사하면서 색채를 가미했다.

여러 달이 흘렀다. 휴가가 끝나 대리공사는 부인을 혼자 집에 두게 되었으며, 부인을 위해 한국식 안방을 꾸몄다. 그 후, 어느 날, 대리 공사는 다시 서울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 사실이 궁녀출신의 그의 부인에게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리라는 것을 예견하지 못하고, 짐을 꾸려 그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다.

서울에는 리심의 적이 있었는데, 어느 고관이었다. 아무리 숨어있다 해도 그녀가 서울에 돌아왔다는 사실은 곧 알려지게 되었다.
외국인과 결혼했다 하여 노비의 신분을 면하는 것이 아니었다. 왕 자신이 한 여인의 신분을 해방시켜 주고 싶어도 못하는 사회였다. 전 주인이 리심을 데려간 것이다. 그녀는 저항해 보지도 않고 되는대로 자신을 내맡겼다. 왕립 무희단(college)에도 강제 편입되어 다시 궁중무희로 옛 직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인권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고 서양문화를 접했던 리심은 사슬에 매인 육신에 다시 멍이 들기 전에 금 조각(feuille d’or)을 삼키고 자살하고 말았다.
나(저자, 프랑댕)는 ‘야만인들’ 가운데 방황한 이 여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을 이길 수가 없었다. 먼 후세의 개화한 한국 사회에 살아야 될 이 여인이, 신의 의지로, 너무 일찍 조선에 태어났던 것이다.
 

-----[ 하권 ] --------

저자의 역사소설, 팩션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이 소설 역시 기록으로만 보아서는 아마도 리심이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 가본 여성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여 전개한다.
갑신정변-갑오개혁-을미사변-아관파천으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역동적인 근대사 와중에 살았던 리심이었기에 저자는 절묘하게 그 시대적인 격변 속에 리심이 자리잡게 하여 소설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궁녀 -> 파리 공사관의 아내(?) -> 궁녀로 이어지는 그녀의 인생은 천당과 지옥을 오고갔다.
조선시대 궁녀는 ’관비’, 말 그대로 관의 노비일 뿐이며 왕의 소유물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종은 프랑스 공사에게 궁녀를 선물로 ’하사’했고 다시 필요할 때가 되어 선물을 돌려받았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궁중 무희로 돌아간 리심은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기록으로만 남아있던 그 사실을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일본, 청나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열강과 외교적인 협상을 위해 리심을 이용한 것으로 줄거리를 전개한다.
 
물론 조선왕조시대, 전근대적인 사회체제에서 서구 문화를 받아들였을 때 그녀는 수많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사대부 집안의 여인들마저 유교문화 속에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하던 시대...
여성으로, 그것도 궁중의 노비라는 처지를 벗어나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의 문화에서 받았을 충격...
각종 행사와 무도회, 거리의 모습, 에펠탑과 대극장, 상점과 식당 등...
1년 이상 프랑스에 머물르고 나름대로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를 익힌 상태에서 리심은 자의식과 자존감을 키웠을 것이고 다시 지옥같던 궁중무희로 돌아갔을 때에는 이미 과거의 리심이 아닌 상태...
그런 상황에서 리심에게는 그다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리심을 통해 19세기 말 조선 말 근대여성들의 희망과 절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나마 당시 수 많은 조선의 여성들에 비해 리심은 잠시나마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조금 소설적 요소로 인정하기에 어려운 부분은 몇 가지...
먼저, 리심이 갑신정변에 연루된다는 설정...
상궁이었던 ’큰아줌마’가 리심을 어머니처럼 돌봐주었다 하여 갑신정변과 같은 큰 거사에 리심을 끌여들였다는 설정도 그렇고 갑신정변에 연루된 리심을 중전이 살려둔다는 설정도 약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둘째는 김옥균과 관련된 일화들..
일본에서 김옥균과 마주치던 상황을 왜 설정했는지 조금 의아하다.
셋째는 고종이 리심과 잠자리했다는 설정...
당시 고종은 조선의 왕이었기에 굳이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리심은 궁녀이기 때문에 리심이 파리에서 돌아왔을 때 다시 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공화주의자로서의 리심의 설정...
20년 가까이 조선에서 궁녀로 살았던 리심이 1년 넘게 서구의 책을 읽고 토론한다 하여 공화주의를 이해하고 공화주의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 2010년 6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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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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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버스, 배, 비행기, 기차, 전철에서부터 마차, 인력거, 자전거와 같이 인류가 만들어낸 '이동 수단'은 종류가 많다. 마차나 인력거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동수단도 있고 고속철도와 같이 새로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 물론,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과 같이 수 억년 전부터 자신의 몸으로 이동해 왔다.
인간에게 '발' 이외의 이동수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자동차를 주차장에 버려두고 일상생활에서 '걷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 '악센트'를 운전하기 시작한 것이 1999년 11월이니 약 10년 간 자동차가 주요 이동수단이었 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10년 간 자동차를 이용한 일상생활과 업무진행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았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기름값, 자동차세, 보험료, 주차료, 과태료 등 '걷기' 및 대중교통과 비교도 되지 않을 뿐더러 출퇴근 시간에 그다지 빠르지 않았고 교통사고 위험성에 늘 긴장해야 했으며, 운동부족과 스스로 나태함이 늘어만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2000년에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이동할 때 조금 '편했던 것'과 1년에 몇 차례 긴급하게 이동하거나 무거운 짐을 나를 때에는 도움을 받았다.
 
자동차는 내가 어떤 태도와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나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한 때 사업을 벌였을 때는 자동차의 '배기량'에 따라 회사의 이미지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기도 했고 심지어 몇 개월간 기사를 두기도 했다. 미팅을 하거나 식사약속을 할 때 주차가 가능하거나 발레파킹이 되는 곳을 찾게 되면서 그 대가로 비싼 음식점과 호텔 커피숍에서 돈을 낭비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야근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막히는 도로가 싫어서 일부러 자정을 넘겨서 퇴근하여 스스로 교통사고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걷기'를 이동의 주요 수단으로 결심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이 사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우선, 생각보다 걸어다니는 것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서울시의 대중교통은 무척 편리했고 밤 늦은 시간까지 운영되어 있었다. 대중교통은 여름엔 냉방, 겨울에는 난방이 잘 이루어졌고 환승시스템도 좋았다.
걷게 되면서 기초적인 운동량이 받춰주었다. 평일 하루에 짧게는 30분, 길면 1시간이 넘게 걷게 되었고 주말에는 2~3시간씩 걷기도 한다. 걸어 다니니까 좋은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 책은 제목대로 '걷기'를 찬양하기 위해 쓴 것이다. 즉, 몸을 이용한 운동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걷기'를 다각도에서 예찬한 산문집이다. 저자는 '걷기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이야기한 책이라면 그게 여행서든 인문서든, 소설이든 죄다 인용하고 끌어다 댄다. '걷기'를 통해 본 독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불행해진 것은 속도전의 광풍에 휘말려 이 '걷기의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첫 걸음, 시간의 왕국, 몸, 짐, 혼자서 아니면 여럿이?, 상처, 잠, 침묵, 노래부르기... 이런 소제목만 보아도 걷는 즐거움이 얼마나 다양한 지 알 수 있다. 저자는 혼자서 걷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래를 부르거나, 가만히 서서 쇼윈도를 바라보아도 '왜?'라고 묻는 사람도 없고, 사색에 빠지기에도 너무 좋다는 것...
그리고 저자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과 숲 속에서 걷는 것 뿐 아니라 '도시에서 걷기'에 대한 즐거움과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기처럼 걷기를 즐긴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 중에는 헨리 데이빗 소로, 키에르 케고르,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세갈렌, 피에르 쌍소, 랭보, 니체, 스티븐슨, 그리고 일본 하이쿠 시인 바쇼 등이 있다. 이들은 여행을 즐겼으며, 걷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랑했다.
키에르 케고르는 "나는 걸으면서 내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좆아 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라고 어느 편지에서 썼다.
니체는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 몫을 하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루소에게 있어 걷기는 고독한 것이며, 자유의 경험, 관찰과 몽상의 무한한 원천, 뜻하지 않는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가득찬 길을 행복하게 즐기는 행위였다.
그들은 운동 차원에서의 '걷기'를 말한 게 아니다. 이들에게 '걷기'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방편으로서의 걷기, 현대의 속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걷기, 몸이 베푸는 혜택으로서의 걷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고 생명의 예찬이며 동시에 인식의 예찬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몸'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기존에 펴낸 저서만 보더라도 [몸과 사회], [몸과 현대성의 인류학], [위험의 열정], [살아있는 몸], [고통의 인류학], [몸의 사회학], [몸이여 안녕] 등 '몸'과 관련한 것들이 많다.
 
 
이 책은 법정스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셈이다. 스님의 저서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추천한 50권 중에서 15번 째로 읽은 것이다. 법정스님은 스님의 저서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이 책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즘에 와서 사람들은 자동차에 너무 의존하면서 직립보행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 ... 자동차로 인해 행동반경은 넓어졌지만 내 다리로 땅을 딛고 걸을 때의 그 든든함과 중심 집합이 소멸되어 가는 듯 싶다. ...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당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끊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 자연 속에는 미묘한 자력이 있어 우리가 무심히 거기에 몸을 맡기면 그 자력이 올바른 길을 인도해 준다고 옛 수행자들은 믿었다.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사람만이 그 오묘한 자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
 
 

나는 걷기 시작하면서 나의 '걷기'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다만, 저자가 '걷기'라는 수단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가져야 하는 것들을 설득력있게 들려주는 바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사실 어제 밤에는 모처럼 친구와 함께 15km 이상을 함께 걸었다. 추석 연휴 내내 '이유없이 구속되어 보이지 않던 보름달'이 어제 밤에는 구름 사이로 석방되어 나왔다. 안양천 뚝방길을 걸으니 강아지풀과 코스모스가 한창이었고 은은하게 달빛을 세례받은 듯한 풀과 꽃과 작은 길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달 빛 속에 친구와 나란히 걸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니 그 사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이런 것이 '걷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걷고 싶다...^^
 
[ 2011년 9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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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주변의 여러사람들을 보면 ’밥벌이’에 대해 생각나게끔 하는 경우가 있다.
하루하루의 삶이 ’노동의 신성함’ 또는 ’전문성’과 더불어 ’밥벌이’란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노동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를 넘어서 21세기 노동에 대한 인식은 ’인간다움’보다 ’지겨움’ 쪽이 더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역으로 노동이 ’밥벌이’로서만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직접 논밭에서 농산물을 재배해야만이 ’인간다운 노동’이고 ’소외되지 않는 노동’일까?
처음 책 제목에 이끌려 인터파크에서 주문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 밥벌이의 지겨움 >이 나를 ’혹’했던 것보다는 다소 다른, 저자의 에세이가 주로 담겨있었다. 약간의 서운함...??
 
이 책은 저자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느꼈던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잔잔한 소회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에세이’다.
그리고 그 소회는 독자들에게 저자가 나이들어 감에 따라 과거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다시금 보여지고 느껴지는 생각과 느낌을 담담하게 전해진다.
"하류의 강은 늙은 강이다. 큰 강의 하구 쪽은 흐려진 시간과 닿아있고 그 강은 느리게 흘러서 순하게 소멸한다. 흐르는 강물 옆에 살면서 여생의 시간이 저와 같기를 바란다."
"늙으니까 두 가지 운명이 확실히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벼락치듯 눈에 들어오고 봄이 가고 또 밤이 오듯이 자연현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 보인다."
"노는 아이들의 몸놀림과 지껄임은 늘 나를 기쁘게 하는데, 혼자서 바라보는 자의 기쁨은 쓸쓸하였다."
"빛이 성긴 저녁, 사물의 안쪽은 드러나는데, 그때 대낮의 빛들은 모두 하늘로 불러 올라가 한강 어귀의 노을로 퍼진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빛과 노릉과 쥐와 새에게로 건너가지 못하고 마루에 주저앉아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
 
21세기 첨단 산업시대에도 저자는 ’아나로그’적인 삶을 즐기고 추구한다. 아나로그만이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므로...
아직도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고 지우개로 수정,편집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느낀다.
목수들의 손놀림에서 창조와 예술성을 발견하고 걷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서 땅(대지)와 직접 맞닿아 있음으로 해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밥을 먹기 위하여 밥벌이를 하는 것인데, 밥벌이에 얽매여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삶...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제네바 협정에 대한 비판적 인식, 현대사회에서 인의예지에 대한 새로운 입장, 히딩크 열풍의 교훈, 국수주의 유감, 수몰민 할머니의 남은 삶... 
저자의 삶과 문학에 대한 자세와 접근법은 독특하다.
저자는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하다가 다시 사회부 경찰 출입기자를 자처하여 다시 한겨레에 입사한 경력이 있다. ’글을 쓰다 보니 관념과 추상의 세계에 너무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학계에서 저자의 문체는 ’칼로 조각’하는 것 같다는 표현이 많다고 한다. 
’숨막힌다’라는 반론도 있고... 하지만, 나는 저자의 소설을 읽을 때 그다지 그런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다만, 간결하게 끊어지는 저자의 문체가 나름 다가오는 느낌도 있고 저자의 글은 ’그렇다’라고 인정하고 읽을 뿐이다.

’아나로그적인 삶’...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은 나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이 책에 대해 유감이 있다.
몇 번을 생각해보아도 이 책은 저자의 지겨운 '밥벌이'를 위해 그동안 신문 및 인터넷 등에 실린 글을 묶어서 출판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요즘 이런 책들이 서점가에서 자주 보인다.
한국 문학계, 소설계를 이끌어온 몇몇 50~60대 대가들이 벌써 창의성이 메마르고 사람들의 삶과 사회변화의 모습에서 멀어진 것일까??
 

[ 2010년 6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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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홀로 깨어 - 최치원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7
최치원 지음, 김수영 엮음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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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시계의 물방을 아직 떨어지건만 / 은하수는 벌써 기울었네.
    어렴풋이 산천은 점점 변해 가고 / 갖가지 물상이 열리려 하네.
    높고 낮은 희미한 경치가 눈에 보이며 / 구름 사이 궁전을 알아보겠네.
    이곳저곳 수레들 일제히 움직이니 / 길 위에 먼지가 이네.
    저 하늘 끝에 먼동이 트고 /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네.
    새벽별은 먼 숲 나무끝에 반짝이고 / 묵은 안개는 넓은 교외의 빛깔 감추네.
    화정(華亭)의 바람 속에 / 끼룩끼룩 우는 학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며
    파협(巴峽) 달 밝은 밤에 / 멀리서 들려오던 원숭이 울음소리 이미 그쳤네.
    주막집 푸른 깃발 어슴푸레 보이고 / 닭 울음소리 아스라한 마을의 초가에서 들리네.
    희미하게 보이는 단청 기와집에 / 새 둥지 텅 비었고 제비는 들보에서 지저귀네.
    군영(軍營) 안에서 조두(?斗) 소리 그치자 / 계전(桂殿) 곁에서 벼슬아치들 옷매무새 고치네.
    변방의 성에서 기르는 말 자주 울어 대고 / 너른 모래밭 아득하기만 하네.
    멀리 보이는 강에 외로운 돛단배 사라지고 / 오래된 강 언덕엔 잡초가 무성하네.
    어부의 피리 소리 청아하고 / 쑥 덤불은 이슬에 담뿍 젖었네.
    온 산에 푸른 기운 높고 낮게 깔려 있고 / 사방 들에 안개가 깊고 옅게 펼쳐 있네.
    뉘 집의 푸른 난간이런가 / 꾀꼬리 지저귀건만 비단 장막 아직도 드리워 있네.
    화려한 몇몇 집은 / 사람들 깨어났으련만 발이 아직 안 걷혔네.
    밤이 세상을 에워쌌다가 / 천지가 밝아 오네.
    천 리 밖까지 푸르고 아득하며 / 온 사방이 희미하네.
    요수()에 붉은 노을 그림자 뜨고 / 이따금 들리는 종소리 자금성(紫禁城)의 소리를 전하는 듯.
    임 그리는 아낙이 자는 깊은 방의 / 비단 창도 점점 밝아지네.
    시름에 겨운 이가 누운 옛집의 / 어둔 창도 밝아 오네.
    잠깐 사이 새벽 빛이 조금 뚜렷해지더니 / 새벽 햇살이 빛을 발하려 하네.
    줄지은 기러기 떼 남쪽으로 날아가고 / 한 조각 달은 서편으로 기우네.
    장사차 홀로 나선 사람 일어났으나 / 여관 문은 아직도 닫혀 있네.
    외로운 성에 주둔하는 백전(百戰)의 용사들에게 / 호가(胡?) 소리는 아직 그치지 않네.
    다듬이 소리 쓸쓸하고 / 수풀 그림자 성그네.
    사방의 귀뚜라미 소리 끊어지고 / 먼 언덕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렸네.
    단청 화려한 집에는 / 푸른 눈썹 그린 미인이 있고
    잔치 끝난 누각에는 / 붉은 촛불만 속절없이 깜박이네.
    상쾌한 새벽이 되니 / 내 영혼 푸른 하늘처럼 맑아라.
    온 세상에 밝은 해 비치자 / 어둠이 바위 골짜기로 사라지네.
    천 개의 문과 만 개의 창이 비로소 열리고 / 넓은 천지가 활짝 펼쳐지누나. 」
 
"새벽". 동트는 모습을 그려낸 최치원의 시(詩)의 전문이다. 물론, 최치원의 원문이 아니라 역자의 번역문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이 시는 깊은 어둠이 사라지고 해가 동해바다 끝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갖가지 천태만상을 통해 비유하고 있다. 역자는 이 시를 최치원의 시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로 꼽는다. 
하늘 속 별빛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은하수가 기울어지는' 것으로, 동이 터오는 모습을 마치 담혀있던 '만물'이 열리고 숨어있던 '구름 사이 궁전'이 나타나는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새벽이 열리면서 온 세상이 밝아지는 모습을 표현하면서 '임 그리는 아낙이 자고있는 깊은 방의 비단 창문이 밝아'오고 '시름에 겨운 이가 누운 옛집의 어두웠던 창이 밝아'오면서 마치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른 새벽은 '장사차 올로 나선 사람이 일어났지만 여관 문이 아직 닫혀' 있고 외로운 성에 주둔하는 군인들에게 호가 소리가 그치지 않은' 것을 통해 새로운 날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을 노래하기도 한다. 결국 환하게 밝은 하늘과 햇빛은 '어둠을 바위 골짜기'로 몰아내고 천 개의 문과 만 개의 창이 열리면서 사람들의 활기찬 하루가 시작됨을 애기하고 천지가 환하게 밝아옴을 '활짝 펼쳐지는' 것으로 비유한다. 그 밖에도 최치원은 새벽이 우리 주변의 모든 자연과 생활에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시 구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한글로 옮겨놓은 최치원의 시는 옛 인물과 고사(古事)를 제외하면 현대시로 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을 역자가 적절하게 수정, 편집하면 아마 현대 시인들이 놀랄지도 모른다. 그 만큼 최치원의 시는 탁월하고 1200년 가까이 지난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감동받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원문을 보면 우리 같은 일반 독자들은 최치원의 원래 시를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역자는 뛰어난 실력으로 이를 한글로 번역해 냈다. 나는 원문이 훌륭한 것인지 아니면 역자의 번역과 한글 표현이 뛰어난 것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한글로 번역해 낸 역자가 그토록 원문을 칭찬하니 나는 신라시대 한자로 쓰여진 원문의 뛰어난 표현과 구성을 알아보고 이를 한글로 다시 옮긴 역자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되었든 내가 읽고 있는 것은 역자가 재구성해 낸 것이므로... 
 
최근에 읽은 [열하일기]에 수록되어 있는 조선 정조 때 박지원 선생의 시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보며(叢石亭觀日出)"와 최치원 선생의 시를 비교해보니 시대의 차이일지, 연륜의 차이일지 아무튼 색 다른 맛이 있다. 최치원 선생은 담담하게 자연과 일상의 모습을 통해 일출의 모습을 그려냈는데, 박지원 선생은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일출을 표현하고 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은 한국문학사의 맨 앞에 자리한 위대한 문학가라 한다. 시(詩)와 문(文)에 모두 능한 대작가이자, 유ㆍ불ㆍ선에 두루 통달했던 신라 말기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이 책의 제목 ‘새벽에 홀로 깨어’는 한국문학의 비조이면서, 역사적 격변기에 홀로 스러져간 외로운 존재인 최치원의 면모를 함축한 말이다. 
 
내 기억에도 몇몇 임금을 제외하고 신라시대 인물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최치원이다. 그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친숙한 신라 시대의 문학가, 행정가라 할 수 있다. 열 두 살이란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 7년 만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한 일이라던가, ‘황소의 난’을 일으킨 황소에게 격문을 써 보내 그를 두려움에 떨게 한 일, 또 귀국 후 말년에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여 종적을 알 수 없게 된 일 등은 비교적 잘 알려진 일화들이다. 또한 나는 아무리 애를 써봐도 기억나지 않지만,「비 오는 가을밤」(秋夜雨中)이나 「가야산 독서당에 적다」(題伽倻山讀書堂)와 같은 최치원의 한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어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보았을 것이라고 한다.
역자는 앞서 거론한 작품들이 최치원의 한시 중 주목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최치원의 작품 세계는 흔히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심오하며 다채롭다고 말한다.
(최치원은 884년 음력 10월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했다. 885년 시독 겸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수병부시랑(守兵部侍郞) 지서서감(知瑞書監)이 되었으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外職)을 자청, 태산(太山 : 지금의 전북태인)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時務) 10여 조()를 상소해서 아찬이 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인하여 그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亂世)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최치원은 부산 동백섬 일대의 경관에 반하여 자신의 호 '해운'을 따서 그 지역 지명을 해운대라고 붙였다고 한다. 최치원이 직접 새겼다는 '海雲臺' 석각도 동백섬 절벽 한켠에 남아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치원의 동상과 시비가 동백섬 언덕에 생겼으며, 해운대구와 최치원이 벼슬을 하며 토황소격문을 지었던 양저우시구는 자매결연을 맺게 됐다.)
 
최치원의 저서로는 중국에 있을 때 쓴 글을 엮은 책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이 전하며, 후인이 편찬한 책으로 「사산비명」(四山碑銘)과 「고운선생문집」(孤雲先生文集)이 있다. 또 「수이전」(殊異傳)의 일부 작품들이 현재 다른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지은 저서로는《금체시》,계원필경》,《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잡시부》,《중산복궤집》,《오언칠언금체시》,왕연대력(帝王年代曆)》,《부석존자존》,《법장화상전》,석이성전》,쌍녀분전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상 최치원의 작품들, 특히 산문 작품은 한문학 전공자들도 어려워하는 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최치원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이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와 문을 골고루 엮어 우리말로 쉽게 풀이한 선집은 여태 나온 바 없다. 최치원이 한국문학사의 맨 앞에 우뚝 서 있는 대문학가임을 생각할 때, 실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최치원의 시와 문을 함께 뽑아 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첫 시도라고 한다.

책은 6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의 제목은 1부 '새벽에 홀로 깨어', 2부 '비 오는 가을 밤', 3부 '은거를 꿈꾸며', 4부 '밭 갈고 김매는 마음으로', 5부 '신라의 위대한 고승', 6부 '참 이상한 이야기'이다. 
1부 ~ 3부 : 최치원의 시 가운데 수작들을 ‘새벽에 홀로 깨어’ ‘비 오는 가을밤’ ‘은거를 꿈꾸며’ 등 세 가지 제목 아래 뽑아 놓았다. 매 작품마다 간단한 해설을 붙여 시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4부 : 최치원 산문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열 편의 작품들을 뽑아 놓았다. 「역적 황소에게 보낸 격문」과 같은 명문(名文)을 보다 쉽고 유려한 우리말로 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동북공정’이, 중국 측의 명백한 역사 왜곡임을 밝혀 주는 이른 시기의 중요한 사료들도 뽑아 놓았다.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발해와 신라, 중국 간의 미묘한 외교관계와 신라의 입장에서 발해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알 수 있는 문서도 들어있다.
5부 :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의 하나로,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세 작품을 뽑아 놓았다. 이 세 작품은 최치원이 왕명을 받고 신라의 위대한 고승의 사적을 기리기 위해 쓴 비명(碑銘)으로, 최치원 문장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다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난해하여 일반 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못해 왔다. 이 책에서는 세 작품 각각에서 중요하고 감동적이며 재미있는 부분만을 발췌하여, 자세한 주석과 함께 쉬운 우리말로 번역, 소개하였다.
6부 :「수이전」(殊異傳)의 열 작품을 실었다. 「수이전」은 신라 시대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가 최치원의 붓을 만나 탄생될 수 있었던 소중한 작품들이다. 특히 「호랑이 여인」은 한국 고전소설사의 첫머리에 놓이는 단편 소설로, 최치원의 소설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책은 출판사 돌베개가 내 놓은 <우리 고전 100선>의 7번째 작품이다. 돌베개는 간행사에서 '우리 고전' 시리즈를 새롭게 준비한 이유를 "세계화에 대한 문화적 방면에서의 주체적 대응"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전세계에 몰아치는 '세계화'가 단지 '자본'의 문제 뿐 아니라 '문화'와 '정신'의 부분에서도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인가가 우리의 생존이 걸린 사활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단순화, 획일화, 상품화를 강요하면서 생물 다양성이 파괴하는 것처럼 문화다양성 역시 위협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인,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은 인권, 즉 인간권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고전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관심의 확대가 절실히 요망된다"고 주장한다.
출판사는 그동안 '고전'이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던 '따분함'과 '재미없음'이라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현대 한국인이 부담 없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품격과 아름다움과 깊이'를 갖춘 우리 고전을 발간하는 것을 <우리 고전 100선>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우리의 고전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최치원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힘들었다. 나는 신라가 실제로 크게 의존했던 당나라 등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문외한이고 최치원의 사상적 기반인 유교, 도교, 불교에 대해서도 교과서적인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과 지난 번 읽은 박제가의 [발해고], 그리고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앞으로 수 년, 수 십 년 동안 우리 고전을 더듬더듬 익혀야 하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 2011년 9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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