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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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는 1942년 시골에서 태어나 오빠와 남동생이 학업을 계속하고 대신 어머니의 어머니의 요구대로 논과 밭에서 일을 하셨다.(그렇게 가난한 집안이 아니었음에도...)
그나마 어려서 글이라도 배우려고 다닌 초등학교는 2학년 때 발생한 한국전쟁과 그 여파로 한글을 깨우치는 정도에서 그치고 말았다.
어머니는 21살 때, 부모들의 중매로 한국전쟁 때 익산으로 피난 내려와 정착한 아버지를 만나 그냥 그렇게 결혼했고 결혼 한 그 해에 누나를 임신했다.
한 해를 걸러 내가 태어났을 때까지 아버지는 변변한 직업 없이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차장을 하다가 패싸움을 하거나 건달처럼 행사하면서 제대로 생활비를 가져오지 못했다.
급기야 어머니는 강보에 쌓인 나를 방에 내팽겨치고 외가집으로 도망갔고 아버지는 외가집으로 찾아와 빌고나서 어머니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또 얼마 안되어 아버지는 과거의 행태가 다시 도졌고 급기야 어머니는 당시 수색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고 할아버지의 지엄한 명령으로 아버지는 수색으로 호출이 되어 몇 달을 할아버지 밑에서 밭일을 하게 된다.
그 사이 어머니는 가지고 있던 몇 푼의 돈으로 리어카를 구입해서 시내 여기저기서 소규모 생필품이나 호떡,순대,떡복이를 팔기 시작했다.
그 리어카 장사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오랜기간 동안 아버지는 직업다운 직업을 가진 적이 없이 어머니의 리어카 행상을 돕다가 놀고 놀다가 돕는 것을 반복하였다.
결국 나는 어머니가 행상을 하여 푼돈을 벌어 모은 돈으로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 입학금까지 다닐 수 있었고 내가 대학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오신 어머니는 서울에서도 리어카, 우유배달, 식당 주방 등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버셨다. 내가 졸업하여 제대로 생활비를 벌고 생활비를 보태드릴 때까지...
누나는 큰아들이자 공부를 조금 잘하던 학생이었던 나로 인하여 대학 시험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서울에 올라와 직장을 다니다가 결혼을 했다.
남동생은 누나와 형에 대한 부모의 집중 양육에 개인적인 성격에 따른 보살핌이 부족하여 외톨이같은 인생을 살아왔고 자잘한 사고와 사건이 연속된 가운데 지금은 40대 초반의 나이에 제대로된 연애 한 번 하지 못하고 홀몸으로 막노동을 전전하며 부모와 기거한다.
그나마 서울에 올라온 후 아버지가 10여년 가까이 직업을 가지게 되어 생활비에 보탬이 되었고 1993년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후 3년 동안 부모님과 나, 동생까지 전가족이 매달 번 돈을 모아 대출없이 어머니는 꿈에도 그리던 아파트를 장만하시게 되었다.
2002년 이후 어머니는 생업전선에서 은퇴하셨고 지금은 나와 누나, 동생이 매달 보내드리는 생활비로 노년을 즐기신다.
어머니는 공부에 한이 많으신 분이기에 구민회관의 각종 교육, 노래교실, 한자교실, 한글교실에 이어 영어교실을 다니셨고 올해부터는 컴퓨터를 배우시기 시작했다.
거의 반평생을 걸어다니시면서 돈을 벌기 위해 고생하셨기에 어머니는 손가락, 손목, 발목, 무릎, 허리 등 언제나 관절이 불편하여 고생하신다.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싶으신 그 분은 10년 전부터 수영, 요가, 자전거를 이용해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소식을 하신다.
다행한 것은 아버지가 서울 올라오신 이후 자신 나름대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력했고 외도를 하시지는 않았으며, 술을 입에도 대지 않으셨다는 것...
아버지는 30대 시절 시작한 낚시가 취미가 되어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도 주말이면 낚시대를 매만지면 함께 낚시갈 친구분들이 당신을 태우러 오는 것을 기다리신다.
그리고 낚시갈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자전거 운동을 하시고 소식에 식이요법까지 병행하신다.
늘 내가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하지만, 늘 감사한 마음으로 대하실 수 밖에 없는 분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이 소설이 시작되는 문장이다.
과연 소설 속 주인공들은 엄마를 잃어버린 것이 ’일주일’이지만,
엄마를 잊어버린 것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생각했을까?
 
이 소설은 굳이 지하철에서 잃어버리지 않더라도 한국 현대사의 상당히 많은 가족들이 겪고 있는 불행하고도 안타까운 가족사를 보여준다.
직업이 불안정하고 가족생계에 무책임한 가장, 사랑없는 결혼생활에 무책임한 남편에다가 자식들의 생계와 학업까지 감당하는 어머니, 장남과 아들에 대한 편애, 가정의 곤궁과 아들의 학업 때문에 밀려난 딸들의 수난,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헌신, 서울의 험한 경쟁구도 속에서 지쳐가는 아들과 딸들, 올챙이적 생각을 하지 못하고 부모의 헌신과 사랑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자식들, 부모는 ?어가고 밥벌이에 얽매이면서 자신들의 자식들을 돌보기 시작하고...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과 경기도에 사는 40~50대는 전체적인 소설 속의 가족사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40~50대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만큼 이 소설은 우리 어머니들 세대의 한과 헌신을 이야기하고 있고 우리들 세대의 현실과 처신을 말해준다.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아득한 나마저도 소설을 읽는 중간에 울컥하는 마음과 뜨거운 눈시울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가 더 늙기 전에, 우리가 더 잊어버리기 전에 무언가 느끼고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한 순간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고 나면
무언가 살아오면서 텅 비어있던 느낌과 잃었던 그 무엇을 되찾고,
앞으로의 자신감과 안정감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조금 드라이하게 말하면,
인간이 다른 포유류, 영장류보다 진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러한 감정과 의식일 것이다.
그것을 잊어버리거나 버리는 인간은 인류 전체의 돌연변이이고
그러한 돌연변이는 자연선택에 의하여 제거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크게 흠잡을 데라고는 없었는데,
소설 끝에 모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읽으면서 무지 짜증이 났다.
왜 그렇게 자신이 똑똑하고 잘난체 하기 위하여 어려운 용어들을 써대는지...ㅉㅉㅉ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사전을 찾아 설명을 써넣기도 힘들다...)
- 소설의 견고성, 견고성 : 굳고 단단한 성질.
- 소설의 층위(??), 층위 : 어떤 유(類)의 언어 요소가 전체 언어 구조에서 차지하는 위치. 음(音)에서 문장에 이르기까지 ...
- 통절한 시간, 통절한 :
- 가족적 인륜성 :
- 이기적인 전유(專有) : 혼자 독차지하여 가짐.
- 사실감과 핍진성 : 문학 작품에서, 텍스트에 대해 신뢰할 만 하고 개연성이 있다고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정도
핍진(逼眞)하다 : 실물과 아주 비슷하다.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다.
재물이나 정력 따위가 모두 없어지다.  (乏盡)
- 세계의 구체 : 사물이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도록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춤. 전체를 구비함.
- 평명(平明) : 해가 뜨는 시각. 또는 해가 돋아 밝아질 때.
- 필사(筆寫) : 베끼어 씀. 
 
[ 2010년 8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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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는 덫을 놓지 않는다
시드니 셀던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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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책은 2006년경에 구입했다고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책의 제목에 약간 끌리기도 했고 인터넷에서 저자의 명성을 언듯 읽은 기억이 나서 깊은 고민 없이 책을 구입했다.
책의 제목은 과거 배우였던 오드리 헵번의 <어두워질 때까지>를 연상시키기도 했고 약간 미스테리나 스릴러쪽이라고 짐작했다.
저자는 자신의 글솜씨를 발휘하여 스토리와 반전을 구성했다.
소설의 스토리 구조와 주인공들의 캐릭터, 암시와 반전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안정적으로 펼쳐지고 있기는 한데, 소설의 맛을 더할 수 있는 좀 더 깊은 이야기 구조와 캐릭터, 배경 장면들이 아쉽다.
 
출판사 소개문에는 스릴러의 성격을 위해 각 장면간에 반전을 끌어내고 세계 주요 도시의 배경을 보여주며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꾸미기 위해 노력했다고 평한다.
그렇지만, 소설이라기 보다 시나리오 같은 느낌이 든다.
소설 속 중간중간에 디테일한 상황이나 현장묘사가 부족한 곳이 보이고 앞뒤 연관관계가 부족한 채 건너뛰는 대목도 거슬린다.
저자는 영화와 뮤지컬, 드라마에 두루 경험과 재능을 인정받았고 21세기 문화가 점점 ’독립’보다는 ’퓨전’으로 통합되는 것이 분위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실체는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소재로 한 소설...
이미 21세기 이전에도 날씨를 컨트롤하려는 움직임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니 명망있는 저자가 소설에 도전하고 싶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소설에서와 같이 20세기 후반부터 인류를 긴장시키는 기후변화가 미국이나 여러 강대국 또는 다국적기업의 ’음모’일 수 있다는 생각이 존재하는 상황이니 그 것도 원천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름 독자들에게 경고를 보내려는 저자의 의도가 보인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조작이나 환경문제에 대해 저자가 많은 공부를 한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막연하게 기후조작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려는 음모가 아니라 조금 더 과학적인 소재와 사실들을 도입하여 독자들에게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으면 저자의 작가로서의 정신과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부수적으로 좀 더 높은 판매부수를 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리고, 한글 제목도, 영문 제목도 소설의 소재나 전체 내용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줄거리>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여러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한 여자가 시내 한복판에서 사라진 뒤 자신의 욕실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미국 덴버에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소형 비행기가 산에 부딪혀 폭파하고, 맨해튼의 이스트 강에서는 한 남자가 익사한 채 발견된다.
처음에는 모든 사건들이 단순한 사고로 보였으나,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네 명의 희생자가 세계에서 가장 큰 싱크탱크인 킹즐리 인터네셔널 그룹(KIG)과 연관되었음이 밝혀진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두 여인 ’켈리 해리’스와 ’다이앤 스티븐스’는 KIG의 태너 킹즐리 회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은 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뉴욕에 온다.
 뉴욕에 온 두 미망인은 태너 킹즐리 회장으로부터 시원한 답변 대신에 누군가각 두 여인의 남편을 의도적으로 살해한 것 같다는 얘기를 듣는다.
또한 남편이 죽기 전에 그녀들에게 증거가 될 만한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질문을 집요하게 받는다.
평화롭게 지내던 그녀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사건들로 괴로워하던 그녀들에게 설상가상으로 누군지 모르는 남자들로부터 죽음의 위협까지 받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진 켈리와 다이앤은 서로 의지하면서 누가 왜 그녀들을 죽이려고 하는지 그리고 자신들의 남편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죽었는지를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해된 사람들은 모두 KIG의 극비 프로젝트인 ’프리마 ’팀의 연구원들이거나 연구원으로 영입이 시도된 사람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날씨를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만일 그 연구결과가 나쁜의도로 쓰이게 된다면 전 세계를 어떤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결국 이들은 모두 이러한 사실을 환경담당 의회 상원의원인 폴린 메리 반루벤 의원에게 폭로하고 사전에 그런 거대한 음모를 막아 보려고 워싱턴으로 향하던 중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태너 킹즐리 회장과 폴린 메리 반 루벤 의원의 합작품이었다.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철저히 제거해 나가면서 야망을 채워나가던 태너 킹즐리와 폴린 반 루벤은 성공을 눈앞에 둔 듯했다.
하지만, 뜻밖에 자신들이 완전히 바보로 여긴 태너 킹즐리의 형인 앤드류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된다.(실제 KIG를 설립하고 자금을 모으고 연구개발을 진행한 인물....)
과학기술을 이용해 세계를 구원할 목적으로 프리마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으나 탐욕에 눈이 먼 자신의 동생의 손에 철저히 농락당했던 앤드류 킹즐리는 마지막 순간에 결국 인류를 구하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다 

[ 2010년 8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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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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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 달여만에 소설을 집어들었다. 직전에 읽은 [발해고]와 이 책은 [한미 FTA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를 읽으면서 무거워진 머리와 부글부글 끓는 가슴을 식히기 위해 읽었다.(그런데 유득공의 [발해고]는 머리와 가슴을 식혀주기는 커녕 한숨만 나오게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가공된 환경에서 가공인물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니 그래도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하고 추리하는 기분을 들게해 주었다.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도시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도시에 실명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눈이 먼 자들을 모아 정신병동에 가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먼 자들 사이에서 실명하지 않은 단 한 명, 의사 부인은 인간을 두 종류로 구분하여 바라본다. 생존을 위해 남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동물적 본능이 살아 있는 인간과 서로를 보살피고 헌신하며 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의 참모습이 그것이다.
소설의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을 탄생한 동명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2008년 개봉,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마크 러팔로, 줄리안 무어 출연)는 원작의 숨 막힐 듯 한 감정과 깊이 있는 스토리를 스크린으로 옮기기에는 역부족 이였다는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깊은 관심과 2008 시체스영화제의 수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다.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사라마구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의 섬뜩하고 추악한 본질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 * 주제 사마라구는 누구인가? ----------------------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 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여든여섯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은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고 있다. ----------------
 
<줄거리> 
한 도시에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안 보이는 `실명` 전염병이 퍼진다. 첫번째 희생자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차를 운전하던 사람. 그는 안과 의사에게 가봤지만, 의사 역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였고, 그날 밤 ’실명병’을 고민하던 그 자신도 그만 눈이 멀어버린다.
이 전염병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 정부 당국은 눈먼 자들을 모아 이전에 정신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에 강제로 수용해 놓고 무장한 군인들에게 감시할 것을 명령하며, 탈출하려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고 말한다. 수용소 내부에서는 눈먼 자들 사이에 식량 약탈, 강간 등 온갖 범죄가 만연한다. 화재가 발생해 불길에 휩싸인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수용소 밖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수용소 밖 역시 썩은 시체와 쓰레기로 가득한 폐허가 되었고, 공기는 역겨운 냄새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실명병’이 발병한 이래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만에 도시와 국가 전체로 확산되어 말 그대로 ’눈 먼 자들의 도시(국가)’가 되어버렸다.
이 악몽의 유일한 목격자는 수용소로 가야 하는 남편(안과 의사)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눈이 먼 것처럼 위장했던 의사의 아내. 그녀는 황량한 도시로 탈출하기까지 자신과 함께 수용소에 맨 처음 들어갔던 눈먼 사람들을 인도한다. 남편, 맨 처음 눈먼 남자와 그의 아내, 검은 안대를 한 노인,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엄마 없는 소년 등 이름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 눈먼 사람들의 무리를 안내하고 보호한다. 그녀는 폭력이 난무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를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며, 희생과 헌신을 한다. 눈먼 사람들이 서로간에 진정한 인간미를 느끼며 타인과 자신을 위해 사는 법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드디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이 작품은 문장 부호가 무시된 채 격류가 흐르는 듯한 문체로 쓰였다. 그래서 처음 몇 쪽은 읽기가 다소 생소하다. 역자는 <해설>에서 "사마라구의 작품에는 담론간의 일치나 담론의 내적 긴장이 중시되고 있으며, 문장부호를 생략하며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 그의 작품이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며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그런 문체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역사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사회에서 잃어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업을 통해 삶과 세계로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새로운 문학 언어의 추구와 함께, 조국 포르투칼의 희박해져 가는 역사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 나아가 이성에 치우쳐 윤리의식을 상실한 현대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국의 문학가들에게서 부족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과 권뤼에 대한 개인의 외로운 싸움이나 윤리관이 파괴된 사회 체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눈이 멀었다’라는 것은 단순히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는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는 물질적 소유에 눈이 멀었을 뿐 아니라 그 소유를 위해 우리의 인간성조차 쉽게 말살하는 장님이기에 눈을 비벼 눈곱을 뗀 후 세상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현대사회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남들이 ?아가는 발자욱만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눈 먼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찬 도시는 결국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된 것이다. 책 속에는 실명과 침묵을 통해 무책임한 윤리 의식과 붕괴된 가치관, 그리고 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암시해주고 있는데 실제 같은 시대에,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폭행하고 찾취하는 우리의 모습은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비극이다.
그리고 처음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는 집단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가 의지하며 도와가는 인간 관계의 회복은 살아 있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눈 먼 사람들이 서로 돕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보이지 않는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지 보여줌으로써 현대사회의 인간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연대 의식’은 인간성이 말살된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진정한 휴머니즘이자 인간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인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빌어 저자는 현대사회의 시민들이 멀쩡한 눈을 가지고서 ’눈 먼 자들’이 되지않기 위해 어떻게 마음먹고 살아야 하는지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로마를 공화정 체제에서 제국으로 만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사회에서도 카이사르의 말은 여전히 적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이 알고 살아온 경험 속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몰입하여 객관적인 사실과 현실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가공된 정보, 주입된 사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방송언론매체의 홍보에 길들여져 스스로 분석하고 찾아보고 판단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p.419)"
 
또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실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의사의 말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p.416)"을 통해 저자는 거대한 권력과 불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일반사람들이 스스로 뭉치고 조직을 만들어 서로를 위하고 도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눈 먼 자들’로 가득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 십년, 수 백년 전 우리의 부모세대나 선조들보다 못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혼자서, 몇몇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 책 속의 문장
- 눈이 먼 남자의 차를 훔친 남자는 처음에 돕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단지 관용과 이타심이라는 감정을 따랐을 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두 감정은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좋은 두 가지 특질이며, 이 남자보다도 훨씬 고질적인 범죄자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p.29)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볼 권리가 없다.(p.98)
 
-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p.180)
 
- 그들이 처음 요구했을 때 당연히 저항했어야 하는 건데, 그걸 못한 거야. 물론이예요. 우리는 두려웠고, 두려움이 늘 지혜로운 조언자 노릇을 하는 건 아니죠.(p.272)
 
- 그녀는 생각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상황의 힘과 특성이 사람의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p.319)
 
-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p.354)  

 
[ 2011년 7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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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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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5권의 부제는 ’로마세계의 종언’이다.

15권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병사하고 아들들이 즉위한 서기 395년부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까지의 81년간을 다룬다.
이 기간 동안 로마제국에는 테오도시우스의 자손 8명이 황제로 군림했고 가장 큰 특징은 15권이 시작되자마자 동,서로 통치구역을 담당하던 방식에서 제국 자체가 동,서로 분리된 것이다.
분리된 서로마 제국은 이민족으로부터 끊임없이 이탈리아 반도와 로마를 침탈당하게 되고 수도마저 로마에서 라벤나로 옮긴 후 더 이상 황제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멸망한다.
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었으니 당연히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이 어떻게 되든 동로마 제국의 안위에만 급급한 상태였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로마 제국의 멸망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과 동로마 제국이 마지막으로 멸망한 서기 1453년년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작가는 도시국가에서 시작된 로마제국의 경우 로마를 더 이상 로마인 이외의 이민족이 통치하지 않게 된 때, 로마와 이탈리아 반도에 로마시민으로서 황제가 다스리지 않게 된 서기 476년을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판단한다.
실제 동로마 제국은 19세기부터 ’동로마 제국’이라는 명칭보다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명칭이 잘 사용된다고 한다.
당시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의 황제나 관료들은 스스로를 ’로마제국(Imperium Romanum)’라고 불렀으며 ’문명 세계 모두를 지배하는 대제국’이며 ’하느림에 의한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되는, 지상의 마지막 제국’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동로마제국은 대부분 그리스인들이었으며, 서기 610년에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바꾼 시점을 동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로마제국은 이미 ’왕권신수설’과 ’카톨릭’이 정치와 사회,문화 전반을 지배했기 때문에 더 이상 ’로마’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라 ’로마’를 ’로마’로 규정지을 수 있는 많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로마제국에는 사라져 버렸으니까...




아무튼, 로마제국의 마지막을 간략하게 더듬으면
395년 서로마제국 황제에 호노리우스, 동로마제국 황제에 아르카디우스 즉위. 동서분할.
          알라리크를 수령으로 하는 서고트족이 발칸 지방에 침입하여 총사령관 스틸리코가 이끄는 로마군이 맞서 싸움.
          동로마제국은 군대를 철수시킴.
397년 서로마제국 영토인 아프리카 담당사령관 길도가 동로마제국 황제에게 충성을 선언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식량 수출을 금지.
398년 길도의 친동생 마스케절이 반란군을 토벌하러 파견. 길도는 항복하고 살해됨.
401년 도나우강 북쪽의 야만족이 라이티아 속주에 침입. 알라리크가 서고트족을 이끌고 이탈리아 북부를 침공
402년 스틸리코 장군이 알라리크와 전투에서 승리.
404년 서로마 제국 황제의 거점이 밀라노에서 라벤나로 옮겨감.
405년 라다가이소가 이끄는 동고트족 포함한 야만족이 서로마제국 영토에 침입
406년 스틸리코 노예 징병법 성립. 이탈리아 중부에서 스틸리코 장군이 야만족에게 승리.
          게르만계 야만족이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에 침입
407년 콘스탄티누스 3세를 자칭하는 병사가 브리타니아 주둔군을 이끌고 갈리아에 진입.
408년 스틸리코 장군이 게르만계 야만족 및 반란군 진압을 위해 서고트족장 알라리크와 동맹 교섭.
          호노리우스 황제가 서고트족과 동맹을 불신하여 스틸리코 장군을 반역죄로 처형.
          알라리크가 이탈리아로 쳐들어와 로마 봉쇄. 원로원이 많은 금품을 지급하고 봉쇄 풀림.
          동로마제국 황제 아르카디우스 사망.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가 즉위. 어머니 에우독시아가 섭정 실시
410년 또 다시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이 로마를 포위 공격하여 시내에 침입. 닷새 동안 ’로마 겁탈’
          호노리우스 황제 속주 방위 포기



415년 서고트족장이 연이어 사망, 살해된 후 갈리아 서부를 서고트 정착지로 결정

423년 호노리우스 황제 사망.
425년 발렌티아누스 3세 황제로 즉위. 어머니 갈라 플라키디아가 섭정 실시
427년 북아프리카 사령과 보니파키우스가 명령을 거부하고 반달족에 지원 요청함.
          겐세리크의 반달족 전체가 에스파냐에서 북아프리카로 이주. 보니피키우스는 이탈리아로 달아남.
432년 갈리아 담당사령관 아이티우스가 북이탈리아에서 보니피키우스에 승리.
439년 카르타고가 반달족에 함락되어 북아프리카 전역이 반달족의 지배를 받음.
442년 서로마제국과 반달족이 강화를 맺어 반달족이 북아프리카 영유가 공식 인정
450년 동로마 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 사망. 원로원 의원 마르키아누스가 황제로 즉위.
451년 아틸라의 훈족이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로 침입.
          아이티우스 장군이 서고트족 등 게르만족과 연합하여 아틸라의 훈족과 전투에서 승리.
452년 아틸라의 훈족이 북이탈리아를 기습 침입, 약탈
455년 발렌티아누스 3세가 군열병식 중 살해됨.
          원로원이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를 후임 황제로 선출
          북아프리카 겐세리크의 반달족이 이탈리아에 상륙하여 오스티아 점령 후 ’로마 겁탈’
          막시무스 황제 살해됨.
456년 갈리아에서 황제에 옹립된 아비투사가 이탈리아에 들어가다가 살해됨.
457년 야만족 군인 마요리아누스가 황제로 선출
          동로마 제국의 마르키아누스 황제가 사망. 군인 출신 레오가 황제로 선출
461년 마요리아누스 황제가 살해되고 세베루스가 후임 황제로 선출
465년 세베루스 황제 사망. 안테미우스가 황제로 즉위
468년 동,서로마 제국이 연합하여 북아프리카 반달족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였으나 겐세리크의 전술에 넘어가 로마군이 카르타고에서 궤멸됨.
          레오 황제가 겐세리크와 강화 맺음.
472년 궁정관료 리키메르가 올리브리우스를 황제에 앉힘.
          안테미우스 군대가 올리브리우스, 기키메르 연합군과 로마 시내에서 전투하여 승리.
          올리브리우스 암살.
474년 동로마제국이 율리우스 네포스를 서로마제국 황제로 지명
475년 재상 오레스테스가 네포스를 ?아내고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에 오름
476년 야만족 출신 장군 오도아케르가 반기를 들고 제위에 복귀한 네포스 황제의 군대에 승리.
         오레스테스는 살해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는 퇴위당함.
         오도아케르가 이탈리아 왕을 자칭.
   이로써 서로마 제국 멸망.



 
그 뒤에 오도아케르는 17년 동안 이탈리아 왕으로 군림하고 오도아케르와 전투에서 승리한 동고트의 테오도리크가 493년부터 526년 죽을 때까지 33년간 이탈리아 왕으로 군림.
동로마제국은 518년 유스티누스가 황제로 즉위하고 527년부터 외조카 유스티니아누스가 황제로 즉위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즉위한 해부터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기 시작.
536년에 동로마제국은 사령관 벨리사리우스 군대에 힘입어 아틸리아 반도를 장악.
이후 벨리사리우스 군대는 여러번 고트족, 반달족, 랑고바르디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의 후임인 나르세스도 고트족과 다른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함.
568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벨리사리우스 장군과 나르세스 장군이 연이어 사망하고  랑고바르디족이 남하하여 이탈리아 반도를 제패.
예언자 무하마드가 613년 포교를 시작하여 이슬람군이 636년 시리아, 642년 이지비트, 650년 소아시에까지 장악.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에 함락되어 동로마제국이 멸망.





젊었던 시절인 1985년 가을인가 겨울 무렵....
소설가 조정래씨가 <태백산맥> 1,2,3권을 처음 출간했다.
그 때 나는 신림사거리에 있는 ’백두서점(맞나?)’ 안에 앉아서 내리 3권을 읽었다.
그리고 조정래씨는 1986년에 4,5권을 1987년에 6,7,8권을 1988년에 9,10권을 차례로 출간했고 나는 책이 신림동 서점에서 발견할 때마다 그 서점에 앉아서 다 읽었다.
그 자리에서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못 견딜 것 같았으니까...
작가 시오노 나나미씨는 1992년에 <로마인 이야기> 1권을 내면서 2006년까지 해마다 한 권씩 발표하겠다고 공언하였고 그것을 지킨 셈이다.
조정래씨는 소설을 쓰기 위해 미리 수 년간 자료를 구하고 발로 대상지를 찾아다닌 후 소설을 시작하는 스타일이고 시오노씨는 매년 준비해서 1권씩 발간하는 스타일인 셈이다.
시오노씨가 발간한 <로마인이야기>는 2000년 전의 자료와 현장, 과거 역사가들의 글들을 참고하여 약간의 소설적 재미를 덧붙인 ’인문서’이고 조정래씨가 발간한 <태백산맥>은 30~40년 전의 역사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소설의 주인공을 끌어내고 글을 구성하였기에 글쓰기에 투입한 노력과 내공을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조정래씨는 일간신문에 매일 연재하고 나서 묶어서 출간했으니 1년에 한 번 ’짠’하고 책을 출간하는 시오노씨보다 더 ’내공’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내 맘 속의 ’반일감정’으로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쩝...
 
<로마인이야기>에 대한 인터넷의 서평 중에는 ’제국주의적 시각’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본이 20세기 초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제국주의의 만행을 저지른 것을 교묘하게, 또는 의도는 없었지만 일본인으로서 아주 자연스럽게 책 속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읽는 가운데서도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 의도한 것을 인정해주고 싶다.
작가는 <로마인 이야기> 1권의 서문에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투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인데,
왜 그들만이 그토록 번영할 수 있었을까?"라고 시작한다.
 
로마가 처음 건국한 기원전 753년을 동아시아 시대와 비교하면 춘추시대의 시작이 기원전 771년 경이었고 한반도의 경우 <삼국사기>에 의하면 ’마한’이 시작된 시기가 기원전 2세기 경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지역과 한반도의 역사를 로마와 비교해보는 것도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처음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왕국’으로만 일관했던 동아시아와 왕정-공화정-제정-제국으로 이어지다가 멸망한 후 중세시대를 거쳐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시민혁명을 거친 서구를 알아가는 것도...
어차피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생존과 번영을 위해 노력해 오면서 유전자에 그 과정과 결과를 입력해 놓았다.
최근 2000년 동안 서양과 동양의 역사적인 전개과정이 21세기의 동,서의 다른 민족성, 문화, 언어, 사상을 형성해 왔으니 그 과정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공통점과 차이점, 장점과 단점 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기원 전에 카이사르가 말했다.
"보이는 것만, 보고싶은 것만 보는 사람과 그 이면을 보는 사람"에 대해...
  

[ 2010년 10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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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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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의 부제는 ’그리스도의 승리’이다.

14권은 콘스탄티누스의 아들 콘스탄티우스가 황제로 즉위한 서기 337년부터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가 사망한 서기 397년까지의 60년간을 다룬다.
이 기간 동안 안토니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에 기독교를 정착,확산시키는데 성공하였고 부분적으로 몇몇 황제들이 이를 막아보려 했으나 이미 로마제국의 시스템은 완벽하게 붕괴되었기 때문에 기독교 로마 전역에 말기 암처럼 자리잡았다.
 
결국 서기 388년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다.
하지만, 이미 그 시기에 로마제국은 사실상 더 이상 기원전 8세기부터 이어온 ’로마’가 아니었다.
’로마’가 ’로마’일 수 밖에 없었던 시스템, 원로원, 사업체계, 문화, 로마군, 시민권, 외교, 치안, 자치도시, 속주민, 인프라, 다신교 등은 사라졌으니까...


 
콘스탄티누스는 황제의 권력을 ’신격화’할 목적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것으로 보인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후 죽으면서 아들 3명과 조카들에게 로마 제국을 5개로 나누어 ’몫’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의 생각과 달리 역시 유일신 체계에서는 ’신격화할 황제’는 한 명이어야 했다.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는 숙부와 황제인 사촌 달마티우스와 한니발리누스를 궁정에서 살해하였고 맏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는 3년 뒤 막내 콘스탄스와 내전에서 피살, 막내 콘스탄스는 13년 뒤 로마군 내부의 마그넨티우스 반란으로 피살되었다.
콘스탄티우스는 마그넨티우스와의 내전에서 승리하였으나 로마식 전쟁을 모르는 이들은 그나마 얼마 남지 않았던 휘하의 장병 수 만명을 그 내전으로 잃게되고 로마군대는 결정적으로 취약해졌다.

그리고 사촌이었던 갈루스는 17년 뒤 콘스탄티우스에게 처형당한다.


 
로마제국이 더 이상 ’로마’가 아니도록 마지막 쐐기를 박은 황제는 콘스탄티누스와 콘스탄티우스 부자(父子)였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하고 로마제국의 황제 명의의 재산을 기독교 교회에 기증했다.
기독교 사제들에게 공무를 면제시켜주고 인두세까지 면세시켜주었다.
콘스탄티우스는 면세받던 기독교 관계자의 범위를 사제에서 교회의 고용인이나 농장 등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확대하였다.
그리고 성직자가 되면 사유재산을 소유하도록 허용했다.
이로써 콘스탄티우스는 로마제국 내부의 귀족, 부자와 기사계급들에게 재산을 지키고 늘릴 수 있는 ’구원’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성직자가 되어야 함을...
콘스탄티우스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로마의 전래 종교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우선 로마 전래의 신들에게 바치는 공식제의와 기타 산 제물을 바치는 것을 금지하였고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법률을 공포한다.
그리고 신전을 폐쇄한다. 이 신전은 로마의 신전 뿐 아니라 시리아의 태양신전과 이집트의 이시스 신전도 폐쇄한다.
신전을 건축 자재로 재활용하는 것을 허가한다. ’재활용’은 ’파괴’보다 치사한 잔머리...
 
기독교를 열심히 부흥했던 콘스탄티우스는 제국 통치는 엉망이었다.
황궁에서는 궁정관료들의 중상과 비방에 따른 희생이 일상적인 행사가 되어 적지 않은 수의 유능한 장교들이 황제 암살음모를 뒤집어쓰고 처형되었다.
콘스탄티우스는 후임 장교인사에도 실력보다 궁정관료나 환관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로마군대와 실력있는 행정가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페르시아와 치른 메소포타미아 전쟁에서 대패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페르시아에서 패한 콘스탄티우스는 부제 율리아누스가 오랜 기간 갈리아와 도나우강 전선의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키워놓은 로마군을 빼앗으려 했으나 로마군대의 반발로 무산된다.
율리아누스의 갈리아 군단은 콘스탄티우스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율리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고 내전이 시작된다.
다행하게도 콘스탄티우스는 내전을 준비하다가 병으로 쓰러지고 서기 361년에 죽었다.
 
이렇게 콘스탄티누스와 콘스탄티우스 부자가 기독교를 우대하였으나 공식적으로 종교를 인정받고 로마제국의 상대한 재산을 기증받은 데다가 성직자의 면세와 사유재산을 통하여 엄청난 부를 취득,확보한 기독교도들은 ’삼위일체’이나 ’경전의 해석’으로 첨예한 내부 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기독교에서는 ’이교’에 대한 우위를 확실히 해놓았으니 기독교 내부의 ’이단’을 처리할 차례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단’은 ’이교’보다 더 잔인하고 철저했다.
 
서기 361년에 황제로 즉위한 율리아누스는 궁정을 구조조정하고 종교정책을 ’밀라노 칙령’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그래서 후대의 기독교도들에게 율리아누스는 ’배교자’로 불리운다. 그런데 원래 기독교가 아니었다는데 웬 ’배교자’??)
로마군대를 부분적으로라도 다시 일으켜 세우고 갈리아 지역에 감세법을 실시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했다.
그리고 콘스탄티우스가 실패한 페르시아 원정을 개시한다.
하지만, 원정에 실패하고 철수하는 도중에 경호대원에게 살해당한다.
작가는 율리아누스가 일찍 죽지않고 오랫동안 로마제국을 통치했다면 로마제국의 마지막 역사가 다르게 쓰여졌을 것이라 아쉬워한다.
하지만 율리아누스가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이미 로마 제국의 운명은 다하지 않았을까?


 
율리아누스의 후임인 요비아누스가 재임기간 7개월 동안 한 일은 페르시아와 강화를 맺고 율리아누스가 시행한 법률과 정책을 무효화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그 뒤에 즉위한 황제는 발렌티아누스와 발렌스 형제...
야만족인 게르만족 출신의 발렌티아누스는 즉위 후 10년 동안을 새로운 야만족인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픽트족, 스코트족, 앵글로족, 색슨족, 고트족, 훈족, 사막민족과 전쟁으로 보낸다.
서기 375년 발렌티아누스가 병사하고 발렌스와 발렌스의 아들들인 발렌티아누스 2세와 그라티아누스가 맡는다.
하지만 3년 후 고트족과 치른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참패하고 발렌스는 살해된다.
그리고 그라티아누스에 의하여 테오도시우스가 동방 황제에 임명된다.
서기 380년 그라티아누스가 브리타니아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령관 막시무스의 공격을 받고 살해된다.
이 때부터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실질적으로 제국 전역을 통치한다.
발렌티아누스 2세는 서기 392년 데살로니카에서 군대 폭동 중 살해된다.
’배교자’를 응징한 것일까?
 

테오도시우스는 ’반이교’와 ’반이단’ 노선으로 직행한다.
기독교 이외의 공식 제의 뿐 아니라 사적인 제의도 금지한다.
제단 앞에 등불을 켜 놓는 것, 향을 피우는 것, 벽면을 꽃장식으로 장식하는 것, 신이나 조상에게 술을 바치는 것도 금지한다.
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사교’로 규정하여 탄압한다.
카톨릭 이외의 기독교 종파는 ’이단’으로 규정하여 탄압한다.
서기 388년 테오도시우스는 원로원을 협박하여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법률을 통과시킨다.
서기 393년에는 올림피아 경기대회를 완전히 폐지한다.
테오도시우스는 이 것 밖에는 한 일이 없다.


 
작가는 상당히 지면을 할애하여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암브로시우스는 서기 330년에 로마에서 명문 집안 출신으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수도장관까지 자리에 올랐다.
그는 43세에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주 아이밀리아의 장관을 맡았다.
그의 관할도시인 밀라노에서 기독교도간 파벌싸움 - 아리우스파와 삼위일체파 - 이 물리적인 실력 행사를 동반한 항쟁으로 발전했다.
장관인 그가 이 분쟁을 중재하는 가운데 삼위일체파가 암브로시우스가 마음에 들어 신도집회를 통해 그를 주교로 선출했다.
그는 주교 자리를 제공받자마자 기독교로 개종한다.
그는 주교관을 머리에 쓴 직후에 자신의 재산을 기독교회에 기부하겠다고 공표한다.
그는 운이 좋았다. 밀라노는 동방과 서방 황제들이 서로 협의하거나 이동할 때 반드시 거쳐가는 코스였던 것이다.
그는 주어진 운에 자신의 수완을 발휘하여 크라티아누스 황제와 테오도시우스 황제와 가까운 관계를 만들었다.
야만족 족장과 교섭할 때, 동료 황제의 특사로, 반란을 일으킨 군단장을 설득할 때 황제들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그러다가 테오도시우스의 실책을 빌미로 황제에게 교회에게 참회하도록 요구하여 성공한다.
이로써 콘스탄티누스가 생각한 ’신격화된 황제’는 ’유일신 아래의 황제’로 격하되기 시작한다.

13권의 부제인 ’그리스도의 승리’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과연 기독교가 애기하는 그리스도가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원했을까?
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중세 1,000년을 가져온 기독교도들이 하늘나라에 갔을 때, 과연 유일신만을 믿었다고, 죽기 전에 참회했다고 천당으로 보냈을까?
내 생각에 기독교의 하느님과 그리스도는 그들을 모두 지옥으로 보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의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말짱 도루묵이니까...^^

 
 
[ 2010년 10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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