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파편들 - 도널드 그레그 회고록
도널드 P. 그레그 지음, 차미례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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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의 < 역사의 파편들 Pot Shards: Fragments of a Life Lived in CIA, the White House, and the Two Koreas >를 읽고 / 2014. ., , 창비

미국 정부에서 퇴직한 후 남북 화해와 동북아시아 평화체제 구성을 위해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는 그레그 전 미국대사의 회고록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궁금했다. 그가 백악관과 CIA에서 주로 근무했다는 것과 특히 그의 재직 중 한국에서 근무한 기간이 제법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베트남과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을 오랫동안 담당했고, 그 개인적으로도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박정희 군사독재체제, 광주항쟁과 87년 6월 항쟁, 남북관계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직간접적으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출판사와 언론은 이 책을 그레그 개인의 역사이자 동시대 미국과 한반도 역사에 대해 진술하는 내용으로 홍보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족을 위주로 한 개인사와 그 가치를 중시하는 저자의 시선이 회고록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즉 개인의 회고록이 핵심인 셈이다.
물론 그는 1973년 미 중앙정보국(CIA) 한국 지국장으로 부임한 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관과 조지 H. W. 부시 부통령 안보보좌관을 거쳐 1989~93년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두차례 김대중 구명에 관여했고, 노태우 정부의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 팀스피릿 한미군사훈련 중단 결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그레그는 이 책에서 미국의 주요 외교현장에서 일한 자신의 회고를 통해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실상을 말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접한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60여년간의 외교경험과 통찰력으로 20세기 후반 베트남전, 이란 콘트라 스캔들, 쿠바 핵위기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그레그는 철저한 미국의 공무원이지만 최소한의 양심과 합리성을 지닌 보수주의자로 보인다. 이런 점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그의 회고와 평가 부분을 읽어보면 느낄 수 있다. 
그는 1962년부터 64년까지 워싱턴에서 베트남 담당부서 책임자로 근무하고, 1970년부터 72년까지 싸이공 외곽의 지역담당관으로 일하면서 베트남전을 몸소 체험한다. 2만명 수준의 소규모 주둔에서 50만명의 미군 전투병이 실전에 배치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부자의 시각에서 왜 미국이 베트남에서 실패했는가를 진솔하게 토로한다. 정책 결정자들의 오만과 편견, 관료적 편의주의, 일방주의적 사고가 정보와 정책 면에서 참담한 실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이해 부족, 베트남 민족해방의 성격에 대한 무지도 날카롭게 짚어낸다. 그레그는 호찌민의 경우와 더불어 미국이 사담 후세인, 김정은에 대해 악마화라는 오류를 범하는 것에 우려를 표한다. 
“우리가 싫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지도자나 집단을 무조적 악마화하려는 경향이 우리를 끊임없이 곤경에 몰아넣는 원인이라는 점이다. (…) 그 결과는 악선전과 선동정치에 의해 커져버린 상호적대감, 관련된 모든 상대에게 돌아가는 피해뿐”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지적은 대다수 한국인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그의 회고를 통해 확인한 것 중 한 가지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김대중 납치사건과 전두환정권의 김대중 사형집행을 막아낸 일화이다. 그는 당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부 지시를 의도적으로 위반하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경호실장 박종규를 찾아가 압박했다고 토로했고, 결과적으로 당시 권력실세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해임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기술했다.
그 이외에도 그가 미국의 정보요원이자 외교관으로 한국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사례는 많다. 1991년 무엇보다 한국에 전진배치됐던 전술핵 철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로버트 리스카시 장군과 더불어 워싱턴을 설득, 1991년 12월 팀스피릿 한미군사훈련을 전격적으로 중단시킨 바 있다. 그 결과 ‘남북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체결되는 등 남북한관계에 중대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뿐만 아니라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한소 수교 등에도 결정적 공헌을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한국인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레그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해 “북한문제는 미 정보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되어온 실패 사례다”, “이념적이고 오도된 접근방식은 그동안 한국과 미국(부시)정부가 합작해서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를 위해 마련했던 뜻깊은 발전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부당하게 중단시켜버렸다”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실패의 근원에는 미국정부가 북한의 지도자를 ‘악마화’하는 데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2009년 공직 퇴임 이후에도 대북관계 개선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최근에 국내 언론들에 소개되었듯이 2009년 여름 김정은이 평양의 공개무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며 한반도의 중대 변화가 임박했음을 알렸을 때, 조지 바이든 부통령에게 김정은을 미국으로 초빙하자고 편지를 썼다가 거절당한다. 하지만 이후에도 그레그는 민간외교를 계속하며 남북 그리고 북미 간의 평화를 구축하는 데 자신이 기여할 바를 찾아가는 중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끝낼 수 있고 또 반드시 끝내야 하는 비극이다. 그것은 서로 계속하고 있는 악마화가 대화로 바뀌고 화해가 이뤄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는 말로 회고록 전체를 마무리한다. 이는 그가 회고록을 펴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것임을 알게 해준다.

사실 이 책을 통해 내가 무척 궁금했던 부분은 얻지 못했다. 내가 궁금했던 부분은 한국전쟁과 박정희의 5.16 군사쿠테타, 한국 중앙정보부 창설에 대한 미국 CIA의 개입, 유신쿠테타에서 미국의 역할, 김재규의 저격과 12.12 군사쿠테타에서 미국의 개입 정도,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었다. 대부분 사건의 경우 그레그는 정책 결정과 집행 체계 선상에서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한미 간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미국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일관할 뿐이다. 
어찌 보면 한 나라의 고위 정부 관료로써 취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취해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 나는 이 책에서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얻지 못했지만 저자에게 특별한 불만은 없다.

한국사회에서는 자신의 이념적 견해에 따라그레그를 ‘책략가', ‘자유주의자’ 또는 ‘친북인사인’라고 평가한다. 이 책의 발문에서 문정인 교수는 그에 대해 세가지 전혀 다른 이미지로 간략하게 정리했다. 
"첫째, 미 CIA 출신으로 미국의 배타적 국익에만 충실했던 외교관 이미지다. 둘째, 한국 민주주의와 대북포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자유주의자 이미지다. 셋째로 북한을 여섯번이나 다녀오고 북한 입장을 옹호, 대변하는 ‘반정부·친북’ 인사 이미지”다.
즉 오랫동안 그와 교유해온 문정인 교수에 따르면 그레그는 보수반동도 아니고 친북인사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 미국을 사랑하고 국익을 중요시하는 애국자이며, 그에게 미국의 국익은 민주주의·인권·평화라는 가치의 신장이다. 그가 한국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애쓴 노력 또한 근대 이래 인류가 지켜온 보편적 가치들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문정인 교수의 평가에 대해 나도 동의한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은 후 자신만의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는 이 책에 대해 "개인의 기억을 중시하면서도 객관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 뛰어난 감성과 유머감각을 겸비한 이야기 솜씨는 흡입력을 더해준다. 무엇보다 과거형에 머무르지 않는 미래지향적인 시선은 여타의 회고록들과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라고 평가한다.
저자가 책 속에서 ‘객관적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나도 인정하지만, 객관적 진실은 개인 한 명의 기억에 의존해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과 박정희의 5.16 군사쿠테타, 한국 중앙정보부 창설에 대한 미국 CIA의 개입, 유신쿠테타에서 미국의 역할, 김재규의 저격과 12.12 군사쿠테타에서 미국의 개입 정도, 광주학살에 대한 미국의 개입 등에 대한 객관적 사실은 미국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국방부, 국무부, CIA의 비밀문서가 어느 정도 말해줄 것이다. 즉 2050년부터 부분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그레그가 ‘미래지향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는 점은 크게 공감한다. 냉전 시대에 미국과 한국, 미국과 조선(북한)이 겪었던 상황은 이제 과거의 역사다. 미래에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남북이 화해와 협력, 통일로 진전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대결과 갈등에 머물지 않고 후손들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미국 역시 남북전쟁을 겪었지만 화해와 협력으로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바로 ‘역사의 교훈’일 것이다.

[ 2015년 11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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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된 해산 의도된 오판 -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변론기
이재화 지음 / 글과생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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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이재화 변호사 저 <기획된 해산, 의도된 재판 :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변론기>를 읽고 / 2015. 03., 296쪽, 글과생각

“나는 1년 동안 이 사건(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변론하면서 가슴으로 많이 울었다. 서글퍼서 울었고 분노해서 울었다. 민주화 운동의 주역들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심판받고 있는 현실이, 전향한 자들이 증인으로 나와 한때의 민주화 운동 동료들을 매도하고 통합진보당 강령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현실이, 1980년대 민주운동 진영이 논의했던 한국사회성격론과 변혁운동론이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처럼 매도당하는 현실이, 민주노동당이 도입한 진보적 민주주의를 북한의 지령에 의한 것이라고 우겨대는 현실이 서글퍼서 울었다.”(11쪽)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의 변호인단에 참여했던 저자의 최종 소감이다.

이 책은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을 변론한 저자가 위헌결정에 가담한 헌법재판관 8명(박한철 소장, 이정미,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조용호, 서기석)의 과오를 역사에 고발하는 책이다. 
저자는 재판과정에 있었던 재판관들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몰역사적 태도, 반공주의에 기초한 사상적 편향성, 편견에 기초한 저급한 발언, 양심 유지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사고, 편파적 재판진행 등 재판관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해 생생하게 기록했다.

저자는 486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대학생 때에는 학생운동으로 감옥에도 갔고, 월간 <말>지 기자도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후, 1990년대 중반 사법시험을 통해 변호사가 되었지만 '민주화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라는 법률가단체의 회원으로 이름만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동안 ‘밥벌이’에 충실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국민들이 이룩했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헌법 개정으로 정착되었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그렇게 진보정치세력이나 사회운동과는 거리를 둔 채, 직업에 충실하고 민주당 등 야당과 호흡했던 그가 어느날 변했다. 민주주의가 급격하게 후퇴하는 역사적인 상황에서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하거나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한 이후, 전 민변 회장이었던 김선수 변호사가 (무료)변호인단 구성을 민변 회원들에게 요청했을 때, 가장 먼저 자발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가 쭈뼛’ 섰다고 한다.
그는 ‘밥벌이’ 변호사 업무를 잠시 중단하고 1년 넘게 정당해산 심판 소송에 전념했고 변호인단의 대변인까지 맡아 최선을 다했다. 민주주의 후퇴를 묵과할 수 없었던 그는 현재 민변의 사법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를 비롯한 변호인단(김선수 단장, 전영식, 김진, 이광철, 이한본, 이재정, 고윤덕, 윤영태, 신윤경, 최용근, 김종보, 천낙붕, 심재환, 하주희, 조지훈, 김유정 변호사 등 17명)은 헌번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과정과 결과에 대해 ‘최악의 재판’이라고 평가했다. “재판진행 측면에서나 결과 측면에서나 누구도 재판을 이처럼 해서는 아니 된다는 최악의 선례가 될 것”(12쪽)이라고 혹평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재판관들의 행태를 역사에 고발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로 했다. “누군가가 재판과정에 있었던 재판관들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몰역사적 태도, 반공주의에 기초한 사상적 편향성, 편견에 기초한 저급한 발언, 양심 유지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헌법적 사고, 편파적 재판진행 등에 대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재판관들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재판관들의 잘못은 사소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이었다.”(12쪽)

제1부 ‘증거 재판이 아닌 사상 검증’에서는 재판과정에 있었던 이야기가 중심이다. 헌법학이나 헌법 이론, 헌법재판소법이나 법치주의, 민주주의와 증거재판주의 등 법학 관련 내용들을 다루기 때문에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평소 헌법과 법치주의에 관심이 있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 충분히 판단해 볼 수 있다. 
주요 내용으로 재판관들이 형사소송 절차가 아닌 민사소송 절차로 진행하기로 결정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재판관들은 왜 사상 초유의 재판을 하면서 허겁지겁 재판을 진행했는지, 정부의 ‘쓰레기’ 같은 증거들을 왜 여과 없이 채택했는지, '숨겨진 목적론'과' 퍼즐 맞추기’ 이론을 받아들인 내막은 무엇이었는지, 재판을 얼마나 편파적으로 진행했는지, 재판이 전향자들의 잔치판이 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실제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한 증인들의 증언을 모두 배척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헌법을 수호한다는 재판관들이 왜 헌법이 금지하는 사상검증 방식의 신문을 묵인하고 조장했는지, 재판관들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왜 증거재판주의를 외면하고 심증재판을 택했는지, 재판관들이 얼마나 저급한 질문을 했는지, 왜 재판관들은 내내 졸기만 했는지 등에 대해 있는 그대로 기술했다.

제2부 ‘헌법재판소 해산결정의 치명적 오류’에서는 해산결정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비판했다. 이 부분 역시 평소 헌법재판과 법치주의에 관심이 있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 충분히 판단해 볼 수 있다. 참고로 헌법재판소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로서 그해 개정 헌법에 다시 등장했다.(1960년 4월 혁명으로 신설되었다가 1961년 박정희 등의 군사쿠테타로 없어졌음)
주요 내용으로 헌법재판소가 내란음모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리지 않고 해산결정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재판관들이 과연 올바른 민주주의관과 헌법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른바 ‘숨은 목적론’과 ‘퍼즐 맞추기론’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가설인지, 다수의견이 내세운 이른바 ‘주도세력’ 논리에는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다수의견이 찾아냈다는 주도세력의 숨은 목적은 ‘원석’인지 '가공품’인지, 정말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다는 증거가 있었는지, 다수의견은 수많은 증거를 무시하면서 왜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황당한 결론을 내렸는지, 다수의견은 왜 스스로가 마련한 기준마저 어겨가면서 주도세력의 진정한 목적을 만들어냈는지,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민중주권주의와 통일문제를 판단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얼마나 허접하고 유치한 것인지, 국회의원 자격상실 결정에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비례성 원칙은 시늉만 낸 것이었는지, 제대로 심사나 한 것인지 등 해산 결정문의 치명적 오류를 분석했다.

대리인단의 비판을 종합해보면, 이 책은 "헌법재판을 이처럼 해서는 아니 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헌법 교과서이자 민주주의 지침서가 된다. 저자는 헌법이론적 관점, 정치적 관점, 민주주의의 관점, 증거재판주의 관점, 헌법의 정신의 관점 등 다양한 각도에서 통합진보당 해산결정문을 세밀하고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다수파의 종북몰이의 광풍과 재판관들의 편견과 싸웠다. 재판관들의 편견과 편파적인 재판진행에 분노했다. 정의는 일시적으로는 패배할 수 있지만 끝내는 이긴다는 신념으로 외롭지만 당당하게 법정투쟁을 했던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심판에 대한 17명 대리인단의 결론은 ‘통합진보당 해산은 기획된 것’이었고, ‘해산결정은 의도된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부당하게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가치와 당원들의 진정성을 옹호해 준다. 
“통합진보당이 추구한 진보적 민주주의, 자주, 민주, 통일의 가치는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10만여 당원들과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한 여정을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이 명백한 오판이었음을 증명할 것이고, 그 오판에 가담한 8명의 재판관들을 심판할 것이다. 소수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의 판단이 옮은 것이었음을 선언할 것이다. 나는 그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15쪽)

따라서 이 책은 역사와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는 우리 사회 다수파의 횡포에 맞선 법률가들의 '헌법 지키기 투쟁기록'이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긴 안목에서 끝내는 민주주의가 이기기 위해, 정의가 이기기 위해 온 몸으로 기록한 '사초(史草)'인 셈이다. 
헌법이 짓밟히고, 법치주의가 조롱당하고,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여 민주주의가 찢긴 역사적 사건 현장에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2013년 11월 ~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에서 정당해산 심판 변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유익할 것이다.
또한 말끝마다 헌법과 법치주의, 상식과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어떻게 헌법과 법치주의 그리고 상식과 정의를 망가뜨렸는지 알게해 줄 것이다.

사실을 잘 모르면서 권력과 정파의 나팔수로 전락한 언론의 이야기에만 의존하는 독자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이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걸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독자들이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져준 과제, 즉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약속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당해산 관련 참고 자료>


2.김이수 재판관 소수 의견 요지 http://thesisaviewtimes.com/bbs/board.php?bo_table=m71&wr_id=421

3.정부가 문제삼은 통합진보당 강령 전문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609906.html

4.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변호인단 김선수 구술변론 전문 http://www.lawissu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396

[인상 깊은 문장]

“법무부의 정당해산 청구서에 첨부된 정부측의 증거는 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급하게 인터넷에 구글링해서 증거를 수집한 흔적이 역력했다. 월간조선, 조선일보, 뉴데일리 등 보수인사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담긴 신문기사와 칼럼, 민주노동당 창당 이전에 있었던 국가보안법 판결문, 민주노동당 시절 개별 당원들에 대한 형사판결문, 편집에 편집을 거친 정체불명의 블로그 글, 각종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법원이 증거능력이 없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이 작성한 수사보고서, 누가 언제 작성했는지 확인이 되지 않는 북한 지령문, 남파간첩과 한총련 활동을 하다가 전향한 인사들이 일방적으로 서술한 책 등이 증거로 제출되었다."(39쪽)

“헌법재판소는 2013년 6월 14일 국회에 ‘헌법재판소법 개정 입법청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 입법청원서는 정당해산심판의 경우 형사소송 절차를 준용하도록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자신이 제출한 위 개정안과 상반된 결정을 한 것이다.”(46쪽)

“(송기춘 교수) 왜 우리가 지금도 북한의 어떤 행위에 의해서 이 국가의 장래가 결정되어야 하나? 북한에서 어떠한 애기를 하건, 우리는 그러한 애기가 헌법적으로 가능한 애기인가 여부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북한과 같은 주장을 하더라도 그것이 헌법적으로 가능한 법위에 있다면 그것은 위헌 여부가 문제될 수 없다.”(60쪽)

“증인 곽인수에 대한 반대신문을 통해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사용한 종속적 신자유주의나 예속적 천민자본주의라는 용어는 북한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다수의견은 결정문에서 ‘피청구인 주도세력은 우리 사회를 외세에 예속된 천민적 자본주의 또는 식민지반자본주의로 보고’라고 판단했다. 질적 차이가 있는 두 가지 개념을 같은 것으로 취급한 것이다. 이는 사회과학적인 기본상식에 반할 뿐만 아니라 명백히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80쪽)

“정부측 대리인은 제2차 분당 당시에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하지 않은 증인에게 통합진보당의 사정을 묻고 있고 증인이 추측성 진술을 하는데 재판관들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고 그것을 듣고만 있었다.”(115쪽)

“증인 이광백은 1991년 원광대 법대 학생회장 출신으로서 민혁당 활동을 하다가 1997년 김영환과 함께 전향한 사람이다. 그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당원으로 가입한 적이 없다. 그런데 정부측 소송대리인은 증인 이광백에게 통합진보당 강령을 제시하면서 강령에 대해 평가해 달라고 했다.(그리고 재판관들은 이를 허용했다.)”(119쪽)

“김영환은 1990년 전향한 후 민혁당 관계자들이나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을 만나지 않았고,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활동도 하지 않았다. 정부측 대리인은 김영환에게 직접 경험한 사실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 그의 경험과는 무관한 통합진보당 인사들에 대한 사상검증을 한 것이다. 재판관들 중 누구도 이를 지적하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재판관들은 오히려 김영환이 증언할 때, 평소에 졸던 모습과는 달리 귀를 쫑긋 세우며 그의 진술을 들었다.”(133쪽)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18차례의 변론기일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양측 대리인들에게도, 증인들에게도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재판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마음속으로 ‘해산’이라는 결론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148쪽)

“헌법재판소가 심판 결정을 이토록 서두르는 이유가 밝혀지는 데는 고작 34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법원은 2015년 1월 22일 내란음모 사건을 선고했다. 지하혁명조직 ‘RO’는 없고, 내란음모는 성립하지 않으며, 내란 실행으로 나아갈 구체적인 위험성도 없었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이다. 헌법재판소 결정 내용과는 다른 결론이다.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리지 못할 특별한 급박한 사정도 서둘러 결정해야 할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도 없었따. 그렇다면 그 이유는,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면 그것과 배치되는 사실을 인정해 위헌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176쪽)

“헌법재판소는 ‘내란음모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을 배척할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고등법원 판결과 달리 내란음모를 인정해 버렸다. 명백히 증거법칙에 위반하여 ‘거짓 사실’을 사실로 인정해 버렸고, 그 ‘거짓 사실’을 헌법재판소 결정의 ‘기둥’으로 삼았다. 이러한 오류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누가 보더라도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 오판’이다.”(184쪽)

“헌법 그 어느 조문에도 분단의 특수성 때문에 이러한 민주주의의 보편원리가 수정되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따라서 분단이라는 특수한 사정은 헌법해석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대한민국을 ‘보편적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 없는 나라’로 선언해 버렸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합리화했던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을 부활시킨 것이다.”(189쪽)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은, 통합진보당의 공식강령은 이른바 허울이나 장식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강령 이외의 자료를 통해 진정한 목적을 찾아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부터 15년 동안 각종 선거에 참여하여 강령에 따른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온 정당을 마치 ‘사기집단’으로 취급했다. 또한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10만 명의 당원과 200만 명의 국민을 거짓 목적에 속아 넘어간 ‘바보’로 취급했다.”(199쪽)

“헌법재판소는 김영환에 의해 민혁당 당원이라고 지목된 자들에게 최소한 소명기회를 줘야 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김영환의 진술을 뒷받침할 다른 증거도 없고, 지목당한 자들이 강력히 이를 부인하고 있음에도 그들에게 최소한의 소명기회도 주지 않은 채, 김영환이 지목한 사람들을 모두 민혁당 당원으로 인정해 버렸다.”(209쪽)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먼저 사용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의 정치학자 허버트 크롤리가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진보적 민주주의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진보적 민주주의를 사용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1945년 4월 11일 의정원 제38회 속기록에 기재되어 있다.”(227쪽)

“헌법재판소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코리아연방제 통일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원 개인적인 발언이나 글을 통해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의 통일방안을 추론했다. 이는 민주노동당 및 통합진보당이 대통령 선거 때 제시한 공약인 ‘코리아연방제 통일방안’에서는 위헌적인 요소를 찾을 수 없었다는 반증이다. 또한 통합진보당 주도세력이 주장한ㄴ 연방제 통일방안이 어떤 점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방안과 같은지에 대해 아무런 논증 없이 막연히 동일하다고 판단했다.”(258쪽)

[ 2015년 11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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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88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지음, 서정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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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Chernyshevksy, Nikolai) 저, 서정록 역 <무엇을 할 것인가? (상,하)>를 읽고 / 2009. 02., 748쪽, 열린책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러시아의 정치사회 소설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1828-1889)의 대표작이다. 소설 작품임에도 저자는 단락마다 독자와 대화하는 것처럼 주인공과 이야기 전개 흐름에 대해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별로 접해보지 않은 색다른 방식이었다.

“나는 자유롭고 싶어요!”
소설은 ‘자유’를 향한 베라 빠블로브나의 당찬 외침과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그녀가 처한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다. 
성년이 되었으나 가난하고 비천한 대저택 관리인의 딸, 19세기 중반 러시아에서 그런 여성에게 허락된 삶이란 자신을 구원해 줄 남자를 기다리거나 하급 노동자가 되는 것뿐이다. 이미 정해진 삶만이 강요되는 곳, 누구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 곳, 베라는 이런 자신의 현실을 ‘지하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지하실’에 ‘사랑’이 넘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바로 이 ‘사랑’이 곧 그녀를 구속하는 지하실의 정체다. 흔히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 불과하다. 
베라의 어머니가 ‘사랑’을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딸에게 강요하고, 부잣집 아들 이반이 오로지 헌신적으로 남편을 보필해줄 여성을 배우자로 찾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순투성이의 관계와 억압상태가 지속되는 한 베라에게 자유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베라는 이 ‘지하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의 모험을 감행한다. 

베라와 사랑에 빠지게 될 두 남자 로뿌호프와 끼르사노프.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이기적 유물론자'들이다. 물론 여기서 ‘이익’과 ‘유물'은 화폐적 척도로 계산되는 무엇이 아니라 존재를 충만하게 하고 삶을 고양시키는 선택을 말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원하는 것들의 ‘무게를 하나씩 달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동정, 연민, 희생으로 점철된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고 괴롭게 한다. 그러니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하여 사랑하고, 일하고, 관계하는 이 이기적 계산법에 따라 베라는 집을 나오고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고자 노력하는 신청년, 로뿌호프와 결혼을 한다.

베라와 로뿌호프의 사랑은 그 자체가 ‘지하실’로부터 탈출하는 일이며, 동시에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아주 파격적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하여 각방을 썼고, 각방에서도 서로의 자유와 독립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들은 ‘중립의 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또한 베라는 자신의 꿈을 살려 가난한 여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봉제공장’을 만든다. 구성원 모두가 공장의 주인이기에 그들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소비조합, 공동주택, 배움터 등의 새로운 관계와 생활들을 조직해 간다. 공장은 이제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의 현장이 아니다. 그곳은 새로운 관계와 실험 속에서 가난한 여성들이 삶을 바꾸고 존재를 충만하게 하는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베라와 로뿌호프는 단지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일련의 행보들이 구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바꾸고 외쳤던 바로 그 혁명의 실천이 된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혁명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이제 사회를 바꾸고, 일상을 바꾸는 것을 넘어 존재의 근본적인 고양을 시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베라와 로뿌호프의 결별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들의 사랑 또한 머무르지 않는다.

19세기 중반 저자가 짜르 치하의 수용소에 투옥되어 있는 동안 집필한 이 소설은 '사회주의 이념을 최초로 구현한 소설’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레닌, 스딸린, 뜨로츠끼 등 20세기 초반 소련의 혁명가들이 읽고 큰 영향을 받은 책으로도 유명하다. 레닌은 자신의 책 제목을 이 책의 제목에서 따와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살벌한 짜르 체제에 의해 옥중에서 감시와 검열이라는 처지에서 저술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체르니셰프스끼는 자신이 당시의 청년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것을 소설 작품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이 책은 1860~70년대 러시아의 ‘인민주의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체르니셰프스끼는 베라와 로뿌호프, 끼르사노프와 라흐메또프(그는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데, 자기의 생활을 포기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면서도 민족과 사회를 위해 사히적 책임을 다하려는 비판적 지식인이다) 등 러시아의 혁명적인 인텔리겐찌야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모델-새로운 도덕적 정열을 지닌 합리적이고 유물적인 인물들-을 제시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인텔리겐찌야의 자기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다른 이들의 삶을 함께 변화시키는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모델인 것이다. 또한 비합리적인 아버지 세대에게 '누구의 죄인가'라는 무력한 비판의식이, 아들 세대에 와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전화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보여 주는 진보와 인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새로운 인민의 출현'에 대한 확신은, 당대 지식인들뿐 아니라 수많은 청년들을 움직이게 했다. 러시아 지식인들을 움직이게 했던 체르이셰프스끼의 진정한 힘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체르니셰프스끼는 1828년 7월 28일 볼가 강 근처의 중부 도시의 한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시절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서 활동하면서 러시아, 프랑스, 독일에서 출판된 많은 사회학 서적을 섭렵했으며 1853년 당대의 급진적 문학잡지인 <동시대인>에 기고하며 문학적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이 잡지를 통해 1860년대의 급진주의적인 젊은 세대들에게 진보주의적 사상과 미래에 다가올 이상적 사회와 인간상, 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현재의 삶의 목표와 실천해야 할 점 등을 설파했다. 
1862년 혁명적 사상을 고취하던 잡지 <동시대인>은 출판 정지를 당하고, 진보적 사상 전파의 선봉에 서 있던 체르니셰프스끼는 체포되어 페트로파블롭스크 형무소에 투옥된다. 1863년 이 감옥 생활 중 그의 대표적인 사회·정치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동시대인>에 연재하게 된 것이다.

체르니셰프스끼는 애초부터 예술적 형상화라든가 <예술을 위한 예술> 같은 것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다. 그는 삶(生)을 능가하는 예술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예술의 기능은 인간의 삶에 내포되어 있는 진실과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도움을 주는 '생의 교과서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인간관을 실천함으로써 사회를 개선시키는 것이었고, 그 실천의 일환이 바로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하기 위한 소설쓰기였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소설로만 읽을 책은 아닌 것이다. 문학적으로는 분명히 빈약하기 짝이 없다고 평가받기도 하는 이 소설이 높은 명성을 누려 온 것도 쟁쟁한 혁명가들의 칭송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출간 당시인 1860년대부터 기존의 문화를 전면적으로 거부코자 햇던 젊은 지식인들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환영을 받았다. 이는 이 책이 당시 러시아 사회의 지적이고 감성적이고 도한 사회적인 요구에 부응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민들의 삶이나 생활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필자는 작품의 주인공 베라와 로뿌호프의 말과 행동이 당시 청년들이나 지식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미쳤는지 느끼기 어렵다. 다만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여러 자료들은 '유럽의 산업화가 가져온 프롤레타리아트의 비참한 모습과 귀족과 소시민들의 이기적이고 부패한 사회’라고 지적하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이 큰 파장을 일으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세기 중반 러시아에 만연한 비참함과 무기력함, 그리고 부정부패와 이기주의는 21세기 한국 사회도 많은 부분 닮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지배층과 기득권 세력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지만, 진보와 개혁을 주창해왔던 많은 인사들과 지식인들이 베라와 로뿌호프 정도의 헌신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번째로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작품 하나만으로도 체르니셰프스끼는 기나긴 복역과 유배 끝에 1889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지금까지도 전세계 청년들과 진보주의자들에게 숭배와 영감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 2015년 9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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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 큰 적공을 위한 전문가 7인 인터뷰
백낙청 외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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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창비 기획팀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 큰 적공을 위한 전문가 7인 인터뷰>를 읽고 / 2015. 05., 351쪽, 창비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와 그 후속 과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한국 사회는 ‘상식을 초월하는 반칙과 사익추구 행위’가 대대적으로 저질러지는 사회다. 낮부끄러움 없이 거짓말을 해대고 공공연히 적반하장을 해도 무방할 만큼 수구 보수의 기득권이 완강한 사회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한국사회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더욱 후퇴한 듯 하다. 재벌 만능과 독재로 상징되는 과거로 회귀하는 와중에 야당과 진보진영의 대응은 대다수 국민들에게 이명박 정부 때보다 희망이나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지난 10년가 한국사회가 왜 이토록 후퇴하고 있는지 그 원인조차 불분명하다. 내노라하는 전문가나 학자들조차 합리적인 이유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사회가 처해 있는 구조적 모순을 밝히고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 도움을 받기 위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보다가 한국의 진보적인 지성인 중의 한 명으로 평가받는 백낙청 교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물론 최근 모 소설가의 ‘베끼기 논란’으로 '창비’와 백 교수의 신뢰와 이미지는 흔들리고 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별개로 한국사회의 원로이자 지성인으로서 백 교수가 바라보는 한반도와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도움받을 만한 것이 있을 것이라 믿어 본다.

백낙청은 서장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에서 2012년 말 대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이후 책임감을 느끼며 한동안 침묵했다고 전한다. 그의 침묵은 세월호 참사의 발생으로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전처럼 살지 않겠다는 공감과 결의만으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말로는 다 바꾸겠다면서 종전처럼 누리고 사는 삶을 전혀 바꿀 뜻이 없는 이들이 사회의 온갖 요처에서 버티고 있는데다가, 그들을 비판하고 심판하자는 야권의 정치인과 지식인도 여전히 ‘세월호 이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일쑤”였다. 그는 2012년처럼 여전히 ‘한국사회에 아직도 시대가 요구하는 큰 전환을 이룩할 적공이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세월호 참사는 "제때에 전환을 이루지 못할 경우 나라가 어떤 혼란과 난경에 빠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대참사”였던 것이다.

그는 ‘대전환’을 위해서는 ‘적공’이 쌓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공(積功)'이란 사전적으로 ‘공력, 공덕을 쌓는다’는 뜻이다. 즉,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토대를 준비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 우리가 ‘한국사회 대전환’의 목표를 위해 해내야 할 실천적 일감들을 마련하고 연마함을 가리킨다. 여기서 말하는 ‘대전환’이란 곧 87년체제를 넘어서 한국사회와 한반도의 총체적 개혁의 새 지평을 여는 전환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가 여러모로 발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의 질곡 속에서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문제들이 도처에 남아 있고, 수구적인 사회 기득권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단기적·중기적·장기적 개혁과제를 제대로 분별하고 배합하여 총체적인 진전을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2년 대선의 목표로 ‘2013년 체제 만들기’를 기획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패배의 이유를 “‘희망 2103’을 향한 적공이 부족했다”고 진단한다. 자신의 2013년 체제론은 “87년 체제가 1961년 이래의 독재정권을 종식시킨 뒤에도 독재시대와 여전히 공유한 '53년 체제(정전협정체제이자 분단체제)'라는 토대를 변화시켜야만 87년 체제가 극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 중요하게 포함되었지만, ‘2013년 체제’를 구호로 채용한 인사들조차 그 점을 간과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그리고 2013년 체제론의 해김 개념에 해당하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정작 2012년 선거에 임박해서는 실종되었음을 스스로 토로하면서 성찰한다.
또한 “시대적 전환에 저항하는 기득권 세력이 힘을 과소평가하는 어리석음을 보였”고,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의 막강한 수구,보수 동맹에 대한 인식이 충분치 못했다”고 평가한다.(18쪽)

백 교수의 ‘2013년 체제론’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분단체제’인 ‘53년 체제’와 분단체제의 하위 개념인 ‘87년 체제’에 대한 개념 설정이다. 
‘87년 체제’가 군사독재를 무너뜨리면서 한국사회에 일정한 개혁을 가져왔지만, 분단체제인 ‘53년 체제’를 근본에서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에(민주정부 수립과 615 공동선언을 통해 좀더 흔들기는 했지만) 참여정부 중반부터 한국사회의 전 분야에서 과거로의 후퇴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87년 체제’는 세계적인 구조나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고려하지 않고 남한의 일정한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백 교수의 ‘87년 체제’는 일반적인 ‘87년 체제’와는 다르다.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에 따르면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그렇지만) 분단되지 않은 나라들과 달리 분단체제라는 중간항의 매개를 거쳐서야 근대세계의 ‘국가간체제’에 참여하는 변칙적인 단위”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분석에 의하면, 대한민국이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양쪽 다 ‘결손국가’다.
그는 4.19 혁명 이전의 대한민국은 불량국가였다. 이승만 정권은 "독재정권으로서도 무능하고 지리멸렬한 정권이었으며, 이 시기의 대한민국 자체가 국가세입의 큰 부분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면서 국가운영도 미국 고문관들의 현장개입에 좌우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26쪽) 따라서 박정희 시대에 들어서야 ‘불량국가'에서 벗어나 결손국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백 교수는 1987년 이후 한국은 어떻게 진단할꺄?  "대한민국의 획기적 개량은 물론 6월 항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결과로 87년 체제라는 한결 나아진 사회가 출범했다. 그러나 이때도 결손국가의 결손상태에 대한 ‘근본적인 수리’는 행해지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이렇게 개량은 되었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체제가 노태우~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제때에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지 못하고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아래 역주행을 거듭하면서 불량국가의 면모가 다시 두드러지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한국사회의 현실을 종합하면 “원래 별로 나라답지 못한 나라를 국민이 피 흘리고 땀 흘려 살 만하게 만들어놨다. 그것이 근년에 와서 도로 망가진 면이 많아졌다. 그래도 아직 더 망가질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26~28쪽)

이와 같은 백 교수의 진단에 나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철저히 진상규명하자는 국민 500만 명의 요구를 ‘종북좌파’로 몰아붙이는 정권과 일부의 행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과 불법행킹을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버티는 정부여당, 대법원의 판결마저 뭉개는 재벌의 행태, 무능과 부정부패의 대명사가 된 정보기관과 국방부, 몰상식과 비열함의 극치를 보이는 언론과 사법부,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려는 일각의 움직임은 그의 ‘분단체제론’과 ‘53년체제론’이 아니고서는 해명이 불가능하다.

백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전에 경고한 3대 위기, 즉 ‘민주주의의 위기, 중산층과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불행히도 적중했”으며, 이에 더하여 ‘4대강살리기사업’에 의해 전대미문의 국토파괴라는 ‘제4의 위기’도 겹쳤다고 진단하며, 각 위기에 대한 자신의 분석과 해결방향을 제시한다.

서장 이후의 본장에는 백낙청이 인터뷰어가 되어 정치, 경제, 교육, 환경, 여성, 노동, 남북관계의 7개 핵심분야 전문과 차례로 만나 나눈 대담을 엮은 것이다. 이 기획의 키워드는 ‘적공’과 ‘전환’이다. 경제편 대담에서 경제학자 정대영의 한국경제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와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맞물리며 민생의 위기가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을 시작으로 정치 편의 정치평론가 박성민의 야권 대권주자들의 대한 흥미로운 대담까지 살펴보며 우리 사회가 이뤄내야 할 적공과 전환은 무엇인지 이들의 인터뷰이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그가 만난 7인의 전문가들의 각자 분야에서 현장에 밀착해 있는 활동가, 연구자들이다. 백낙청은 이들 분야에서 한국사회를 정확히 해석하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지속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대전환의 상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대담집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변혁적 중도주의’이다. 편협한 정파적 프레임을 버리고 참다운 변혁과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변혁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며 이러한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교육 등 각 분야에서 입체적인 적공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적공과 전환이야말로 우리 앞에 놓인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의 기본 덕목”이다.
7인의 전문가로 책에 등장하는 정대형, 이범, 김연철, 김영훈, 안병옥, 조은, 박성민이 특정 분야에서 나름의 적공을 쌓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들 중 백낙청의 ‘분단체제론’과 ‘큰 적공, 큰 전환’론과 교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특히 이범과 박성민은 ‘분단체제론’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책을 덮으면서 “운동의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고 내실있게 적공을 해나가지 않으면 결코 그 뿌리를 건드릴 수 없는 분단체제 아래 우리가 살고 있음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인사가 백낙청”(6쪽)이라는 기획자들의 평가에 동의하게 된다. 그의 진단과 평가와 방향설정에 대해서는 시비가 있을 수 있지만, 그가 제시한 ‘분단체제론’은 한반도와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대전환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백 교수가 이 책을 발간하는 데 사전 공부의 결과라 할 수 있는 <2013년체제 만들기>, <어디가 중도이며 어째서 변혁인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등을 읽어봐야겠다.

7인의 적공는 어디까지일까.

"우선 ‘경제 편’ 대담에서 경제학자 정대영(송현경제연구소장)은 한국경제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민생의 위기가 날로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박근혜정부하의 전셋값 폭등, 수출부가가치 부진, 복지 실종 등의 경제문제를 꼽으며 이를 해결할 방책으로 ‘반값집세’ ‘중소기업 육성방안’ ‘법인세·소득세 구조 개선’ 등을 내놓는다. 장기침체가 예견되는 상황에 맞는 중장기적인 경제정책도 중요하다. 그는 전세계적인 성장 패러다임에 그저 순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를 되물으며 일자리 중심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함을 일깨운다. 또한 기존의 ‘정규직-비정규직’ 대결 프레임이 단지 "조금 나은 서민하고 조금 더 못한 서민 사이의 싸움"일 뿐이므로 좀더 큰 틀에서 구조적 문제해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상층의 재벌이나 전문직, 고위관료에서 공기업 직원, 대기업 정규직, 대기업 비정규직으로 이어지고 또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으로 내려오는 직업에 따르는 신분의 서열구조를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노동자들 간의 싸움으로 국한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평론가 이범(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과의 ‘교육 편’ 대담은 ‘교육문제는 곧 민생문제’라는 범사회적 프레임을 제안하는 대담이다. 이범은 교육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진보진영에서 내세우는 구호에도 통념과 금기의 틀이 있음을 지적하며 초중등 교육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을 통해 협소한 시야를 넓힐 것을 주문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10여년간 대학서열화, 학벌주의 위주로 교육문제를 바라보면서 교사들의 일상적인 직업윤리 실천운동이 사라져버린 탓에 자사고 등 비평준화 학교 난립, 과도한 대입경쟁, 불공정한 내신평가 등 학생과 학부모가 피부로 느끼는 문제에 등한해졌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응하여 이범은 보편적 수강신청제, 수평적 고교선택제, 국립대·사립대 통합선발제 등을 내놓는데, 특히 초중등 교육의 입시경쟁 완화를 위해 제시하는 한국형 A레벨 제도는 입시의 공정성을 높이고 사교육 수요를 줄이는 등의 효과를 지닌 획기적 방안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천안함사건 이후 5·24조치로 냉각 일변도에 처한 남북관계는 어떻게 풀 것인가. ‘남북관계 편’에서 김연철(인제대 통일학부 교수)은 군비증강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남북경제협력을 새롭게 모색하는 방도를 제시하며, 중장기적으로 자주적 외교와 국방 정책의 수립, 두만강 등 접경지역 사업 등 한반도 평화체제 디자인에 대해 논한다. 근래 연이어 터졌던 참혹한 병영사고를 두고 ‘징병제와 모병제’에 관해 벌이는 대화는 국방문제가 우리 청년과 부모 세대 모두의 민생문제임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토론이다. 또한 박근혜정부에서 두드러진 군 출신 인사들의 등장이 민주주의 훼손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또한 이를 어떻게 문민통제 해나갈지를 논하는 부분도 주목을 요한다. 

박근혜정부가 최대 과제로 꼽는 ‘공공개혁’의 당사자인 철도노동조합의 위원장 김영훈의 ‘노동 편’은 현 정부가 이전 정부들에 비해 공공부문에 ‘개혁’의 칼을 들이대며 우선적인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공공부문에 이어 민간부문에 대한 공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낳게 하며 이에 따라 공공·노동 부문이 선제적 개혁안을 내놓고 사회복지와 안전망 확충을 요구하는 것이 운동의 활로임을 역설한다. 2013년 철도민영화 시도에 맞서 전사회적 연대를 이뤄낸 경험을 살려 관성적인 구호 대신 다수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낼 안을 내놓는 대목에서는 새로운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을 기대해보게 된다. 또한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 통합진보당 등 정파문제에 대처했던 에피소드 등 그간 털어놓지 못한 속내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후꾸시마 원전사고와 세월호참사 이후 우리는 ‘돈보다 생명’이라는 구호를 절감하고 있다. ‘환경 편’에서 안병옥(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생명보다 돈’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생태적 전환을 이뤄야 할 시기를 놓치게 되면서 현상유지는커녕 대규모 참극을 불러왔던 사례를 제시하며 ‘월성1호기 재가동 결정’ 등이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를 경고한다. 또한 환경문제의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인 기후문제에서는 "너무 거대한 변화"가 주는 무력감을 떨칠 수 있는 구조적·개인적 해법을 제시한다.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접목, 녹색당의 미래를 논하는 대목은 한반도 분단상황에 입각한 새로운 생태적 비전을 구체화하는 데에 빠질 수 없는 논의다. 두 대담자가 성장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개괄하며 ‘적당한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입장 차이를 조율해가는 대목은 성장과 생태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야 할지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사회학자 조은(동국대 명예교수)과 함께한 ‘여성 편’은 2010년대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처한 예기치 않은 역풍을 다루면서 시작한다. 민주화 이후 여성평등을 위한 노력이 진전되어왔음에도 성폭력·성추행 문제가 끊임없이 이슈화되는데다 근래 들어 IS 가담 청년의 반페미니즘 발언 등 사회적으로 여성에 대한 공격성이 눈에 띌 정도로 강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퍼져나간 ‘출산율이 낮아 국가위기, 이기적 골드미스’라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조은은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는 여성문제를 넘어선 양극화·고용불안정·보육·사교육 문제 해결과 연결지어야 하며 특히 진보진영은 잘못된 생각을 확대재생산하기보다 여성진영과 연대해 대안담론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본인이 참여하는 해고노동자 손해배상가압류 반대모임의 활동을 통해 여성운동과 다른 운동의 연대가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를 차분히 들려준다. 성소수자 문제, 성평등과 남녀조화 문제에 관한 대담자 간의 열띤 공방은 여성문제를 인문학적 차원에서 한층 깊이있게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2017년 대선에서 누가 어떤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는 모두의 관심사다. 현 정부에 대한 실망뿐 아니라 야권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궁금증이다. 정치평론가 박성민(MIN컨설팅 대표)의 ‘정치 편’은 문재인·박원순·안철수·안희정 등 야권의 대권주자들에 대한 분석이 흥미로운 대담이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유권자들이 정치인에 대해 어느정도 영향력을 갖게 되었지만 그에 비해 관료와 사법권력의 힘이 커지고 이를 통제하는 정치권의 힘이 약화되었다는 분석은 87년체제 말기 한국정치의 한 단면을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박성민은 우리 정치평론이 정치인 촌평을 넘어 중장기적 전망을 갖춰야 정치가 다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역설하는데, 이는 백낙청이 쓴 서장 [큰 적공, 큰 전환을 위하여]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즉, 선거승리에 집착해서는 선거조차 이길 수 없으며 시대전환에 역행·저항하는 기득권세력의 거대한 힘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상대의 힘을 파악해야 우리가 ‘중도’의 폭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을지를 가늠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우리의 시야를 이명박·박근혜 비판에서 근대 한국정치사 전반으로, 남한에서 한반도로 넓히는 일이 필수적이다. 이른바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두 대담자 간의 다면적 공감은 한반도 안보이슈 앞에서 ‘당당하게, 턱턱’ 제 입장을 밝힐 수 있는 담대한 정치인의 탄생을 바라는 바람으로 모아진다."

[ 2015년 9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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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글항아리 이슬람 총서 3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배성민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서평]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저, 배성민 역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Islam and Modernity>을 읽고 / 2015.03., 97쪽, 글항아리

2015년 1월 이슬람교 신도들 중 일부 근본주의 테러리스트 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저질러진 ‘샤도부 엡도 테러 사건’이 발생한 후, 프랑스 파리의 대규모 집회에 모습을 나타낸 이스라엘 수상과 영국 총리 등 서방 국가 수반들과 경찰을 환호하는 프랑스 시민들을 목격하면서 지젝은 혼란스러웠다.
“테러집단이 가한 위협은 기적을 이루어내고 말았다. 네타냐후와 올랑드, 라브로프와 캐머런, 그리고 시민과 공권력을 하나로 만든 것이다. 1968년 급진주의자가 낳은 세대를 1968년 급진주의자가 맞섰던 원래의 적과 화해시킨 것이다. 미국의 애국법이 프랑스식으로 실현된 것 같다. 자신을 스스로 감시에 내맡긴 대중이 애국법에 환호하는 꼴이다. 어떻게 하다가 이 지경이 되었나?”(13쪽)

하지만 지젝은 '지금이 바로 생각할 용기를 낼 때’라며 진지한 사고를 요구한다. "우리는 왜 이슬람을 읽어야 하는가?”
"자유주의 좌파는 왜 가짜 좌파인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왜 가짜 근본주의자들인가?”라는 질문들을.

이슬람 근본주의의 성향을 지닌 두 형제 테러리스트가 풍자 주간신문인 샤를리 에브도 사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했다. 총격 끝에 열두 명이 숨졌다. 이 경악스러운 테러는 언뜻 샤를리 에브도에 실린 만평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샤를리 에브도는 이미 여러 번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을 실었고, 그 때문에 폭탄 테러나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 사건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 게재를 중단하지 않았다. 
즉 이 사건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분노가 극단적인 테러로 이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을 풍자하는 만평을 실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만평이 테러나 방화 사건을 불러왔을 때 잠깐 잘 팔렸을 뿐 늘 적자에 시달리던 인기 없는 신문이었다. 그렇다면 질문. 어째서 두 형제는 이런 한물간 신문에 실린 만평에 ‘분노’를 느꼈을까? 진정한 근본주의자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특징들이 그들에게는 유독 보이지 않는다. 진짜 근본주의자에게는 시기도 원한도 없다.”(18쪽)

그는 묻는다. "혹시 테러리스트가 보이는 저 열정은 오히려 그에게 진짜 확신이 없음을 증거하는 게 아닐까? 얼마나 믿음이 연약했기에 풍자 주간지에 실린 한심한 만화를 보고 위협을 느꼈겠는가!" 말하자면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휘두른 폭력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스스로 열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19쪽)이라는 것이다. 

세계 자본이 민족국가의 힘을 잠식하는 방식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개되면서 ‘이슬람국가IS’가 나타났다. 그러나 세계 자본이 가져온 경악과 두려움을 똑같이 일으키는 주체가 IS 체제이기도 하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바로 이 IS 안에서 자신의 극단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사실 ‘근본주의’라는 말은 아랍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용어도 서구권, 특히 영어권에서 붙인 이름이다. 원리주의라고도 일컫는 근본주의가 단지 전통과 교리 준수를 중시하는 것이라면 모든 이슬람 종파가 그러할 것이다. 여기서 근본주의가 가리키는 것은 테러를 단행하는 등 훨씬 과격한 태도다. 그렇다면 이슬람 근본주의는 단지 전근대적이기만 한 걸까?

지젝은 "좌파는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중동에서 좌파의 실패가 근본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IS에 합류하기 위해 비행기 티켓을 끊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프랑스는 9.11 테러 이후 미국처럼 우경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휩싸여 있다. 어째서일까?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자신이 우월하다는 진짜 ‘인종주의’다운 확신이 없었듯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지킬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실제로 내재하는 결함에 대한 반응이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20쪽)라는 것이다.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미 '근대적 언어'로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용은 전통적일지라도 말하는 방식은 근대적이라는 것이다. 가령 IS 지도자인 아부 바르크 알 바그다디의 사진을 보면 멋진 스위스제 시계를 차고 있다. IS는 온라인으로 선전하고 금융거래를 할 만큼 잘 조직되어 있다. 즉 그들은 "근대화를 극구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도착적 근대화를 보여주는 사례”(21쪽)에 가깝다.

하지만 지젝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관점 안에 내재해 있는 모순도 강조한다. 이슬람교도가 신성모독을 대면할 때 침묵하지도, 가만히 있지도 못하듯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진영 역시 자신들의 '자유’가 모독당하면 가만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자는 정치적이고 영적인 모든 권위를 비웃고 풍자한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타인이 겪는 고통과 모욕에 대한 과민한 반응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2011년 프랑스는 이른바 ‘부르카 금지법’을 만들었고, 이에 대해 파키스탄 출생의 한 여성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제소하기에 이르렀지만 유럽인권재판소는 그것이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두 인종이나 두 종교 집단이 함께 살지만 양립할 수 없는 삶의 규칙을 갖고 있을 때, 이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서구에서는 “아동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이유로 서구식 교육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이 ‘관용’을 베푸는 “자유로이 선택하는 주체”, 즉 아미시 공동체나 미국식 교육이냐 혹은 부르카를 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등장하려면 그들은 먼저 자기 뿌리와 전통에서 잘려나가고 특수한 생활세계에서 분리되는, 지극히 험한 폭력을 당해야 한다

그럼에도 원래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는 왜 이슬람을 읽어야 하는가? 우리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역자는 지젝을 비판한다. 역자는 지젝이 "아마도 이 질문을 이슬람교 안에서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고 해석한다. 자유주의의 언어로 이슬람교를 상대하면 상황이 더 나빠지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와 이야기하려면 이슬람교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지젝은 이 질문을 던질 뿐,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는 이슬람교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서로를 이간질한다. 이슬람교 앞에서는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자유주의 앞에서는 이슬람교를 옹호한다.”며 지젝을 비판한다.
역자는 “이슬람교 안에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이 자리를 재규정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세속적 자유주의를 이슬람교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유일신교 안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세속적 자유주의가 공존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훨씬 더 차기 있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세속적 자유주의가 당당하게 유일신교 안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유일신교도 그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테러는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누가 ‘테러’가 무엇인지 규정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비난하는가? 주로 국제 정치경제를 지배 또는 주도하는 서구진영의 개념과 논리이다. 또한 ‘근본주의’나 ‘원리주의’ 그리고 ‘풍자’와 ‘멸시’, ‘자유’와 ‘평등’,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근대적 사상, 도덕 개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슬람교나 중동지역 사람들도 그런 서구진영의 개념이나 세계관, 논리나 도덕을 받아들였을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들만의 고유한 사회문화를 수백, 수천 년 동안 지녀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젝이 이슬람교와 서구의 화해와 대화를 모색하려면 서구적 관점과 개념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젝을 비롯한 서구의 좌파가 오랫동안 동양 및 이슬람과 화해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 그런 기본적인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2015년 8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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