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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바나나처럼 껍질은 버리고 과육만 얻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양파처럼 껍질과 과육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 자체를 온전히 섭취해야 한다.

신화적 언어는 ‘외피’나 ‘껍데기’일지 몰라도,

그 신화적 언어가 주는 적절한 비유와 직관적 통찰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들 때도 많다.

예수님이 즐겨 사용했던 비유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고뇌와 일상의 성찰이 그 신화적 표상에 깃들어 있다.

그래서 불트만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 학자들은

신화적 표현은 미신의 언어도 아니고,

벗겨 내어 폐기 처분할 대상은 더더욱 아니라고 지적하였다.

그 지적에 따르면 신화적 껍질을 벗겨 내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다.


- 주원준, 『구약성경과 신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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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자가 된다는 것은 도를 닦는 일이다.

화를 내면 이해도 못하는 치사한 사람이 되고,

화를 내지 않으면 기다리게 해도 되는 호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관계는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좋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


- 이소호,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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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전도서 및 서간문 형식의 일부 신약 성경에만 ‘서’자가 붙어 있습니다.

특히 신약의 서신서는 편지 문학이기에

그것을 표시하기 위해 ‘서’(書)를 붙인 것입니다.

룻기, 욥기, 잠언, 아가는 ‘기’, ‘언’, ‘가’라고 장르가 이미 표현된 말이므로

‘서’자를 넣을 필요가 없습니다.

‘룻기, 욥기, 잠언, 아가’라고 원래대로 부르면 됩니다.


- 이복규, 『교회에서 쓰는 말 바로잡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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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말기에 병원에서 기계호흡장치를 달고

인공영양을 받으며 최대한 버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마치 현대 사회 죽음의 통과의례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이는 엄밀히 삶의 연장이 아닌 죽음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병원임종의 가장 큰 문제는

죽음이 인간적인 마무리가 아니라

하나의 의학적 사건으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 박중철,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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