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의 안경 - 곤충이라는 작고 오묘한 세계
성영은 지음 / 홍성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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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르의 “곤충기”라는 책은 읽어보지는 못했더라도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게다. 사실 나도 딱 그 정도였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곤충을 관찰한 기록을 책으로 엮었다 정도. 이번에 손에 든 책 제목에 실린 “파브르”가 바로 그 파브르다. 저자는 그의 곤충기에 나오는 다양한 곤충들의 식생 중 일부를 옮기면서 생명의 신비라는 주제에 집중한다.


사실 책을 손에 들기 전에는 그냥 곤충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을 줄 알았다. 물론 곤충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저자는 그 사이에 파브르의 자연(과 곤충이라는 생명)에 대해 보여주는 경이라는 태도, 관찰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귀납적 연구 방식과 함께, 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겸손히 인정할 줄 아는 지적인 겸손,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 신앙(그는 가톨릭 신자였다)에 대해 아울러 덧붙인다.


요컨대 단순히 파브르의 곤충기를 요약해 놓은 게 아니라, 제목처럼 파브르의 관점(안경)을 또한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저자의 기독교 신앙도 함께 배어든다. 과학자로서의 정체성과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나름의 안정된 지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책의 전반적인 문체가 친절하다. 단순히 경어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이라든지, 사이사이 저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모양이 꽤 부드럽다. 마치 학창시절 교실에서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는 느낌이랄까.


책에 담긴 전반적인 내용은 곤충의 경우 저학년부터 중고등학생까지 재미있기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앞서 언급한 파브르의 관점이라든지, 저자가 설명하는 기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 같은 부분은 청소년들과도 교회나 가정에서 이야기 주제로 삼아 읽고 대화를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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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1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파브르 곤충기는 저자의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고 합니다.왜냐하면 전문적인 곤충학자도 아니고 교사생활을 하면서 몇십년에 걸쳐 관찰한 곤충에 대한 연구중 상당수가 현대에선 큰 학문적 평가를 못 받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신종 말벌이라고 자신의 부인과 자녀의 이르믈 딴 벌들이 실은 이미 기존에 있었던 종이라는 것 등이죠.
실제 파브르의 곤충기는 일본과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데 그 이유는 일본에서 히트를 치고 그 이후 그 중역본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파브르 곤충기는 저자가 80대 노년에 완성한 책으로 뛰어난 스토리텔러로서의 저자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노란가방 2025-04-18 19:1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은 곤충기를 읽어 보셨나요?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한 권쯤 읽어볼까(어린이용 편집 말고) 생각해 보았네요.
 
창조자의 정신 (양장) IVP 모던 클래식스 2
도로시 L. 세이어스 지음, 강주헌 옮김 / IVP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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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도로시 세이어즈는 옥스퍼드에서 최초로 학위를 받은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사회는 극심한 인력부족에 시달렸고, 대학에서도 그때까지 허용하지 않았던 여성에 대한 학위 수여를 결정하게 된 것이라는 사정이 있었다. 물론 세이어즈는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고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는데, 당시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 중 한 명이 바로 C. S.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이후에도 제자이자 동료로서 세이어즈의 오랜 교류를 한다.


세이어즈는 활발한 사회활동을 했다. 출판사 편집자이기도 했고,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다 주목받는 건 작가로서의 그녀의 업적이다. 양차 대전 전후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추리소설계에서도 나름 유명한 인물이었고(체스터턴도 브라운 신부 시리즈로 유명세를 얻은 걸 보면 확실히 그 시절 추리소설이 인기이긴 했나 보다. 루이스는?), 나중에는 희곡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유독 그녀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잘 담아 녹여낸 작품들을 썼기 때문이다. 드러내 놓고 기독교 교리를 옹호하기 보다는 문학 작품 속에 그 내용을 녹여내는 방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창조자의 정신”은 꽤 이례적인 책이었던 듯하다. 이제까지의 작품 활동과 달리 이번에는 기독교 교리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책을 썼다는 반응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머리말에서 작가는 극구 그런 관점을 거부하면서, 자신이 책을 쓴 것은 자신의 종교적 견해를 드러내며 기독교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기독교가 진술하고 있는 교리들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다고 강조한다. 이런 주석 작업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사실의 진술과 개인적인 감정 표현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작가가 여기에서 시도한 작업은 요컨대 기독교 신앙은 그저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에 관한 이해라고 보는 자유주의적 견해를 반박하면서, 정통 교리(특히 삼위일체에 관한)가 일상 언어를 통해서도 충분히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이 작업을 저자의 직업이기도 한 작가와의 유비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떠올릴 때 그와 비슷한 현실 세계 속 무엇과 비교하면서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비슷한 것이 바로 창조적인 예술가들의 작업(주로 시인이나 작가 같은)이라는 것이다. 창조라는 작업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인데, 예술가들이 하는 일(특히 시인과 작가들이)이 바로 그런 일이라는 의미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책 제목인 “창조자의 정신”은 하나님과 예술가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다.


책 전반에 걸쳐서 삼위 하나님의 본질과 사역을 예술가에 비견해 설명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이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비록 삼위일체가 우리의 논리로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그 존재 양식과 기능하는 과정은 충분히 일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다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범신론으로 설명하려는 오류에 관해서 “창조적 정신이 작품들을 하나씩 생산해 내지만 창조적 정친이 곧 작품 하나하나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작가와 그가 쓴 책이 곧 동일한 것은 아님을 보여주며 빠져나간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속성을 예술가의 작업으로 빗댄 부분이 인상적이다. 창조와 예술 사이의 공통점에 관해서는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발견되는데, 나니아의 세계는 아슬란의 노래로 창조되는 장면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정말로 좋아했는데, 세이어즈는 이 부분을 이 책에서 좀 더 설명적으로, 하지만 그러면서도 문학적으로 잘 그려낸다.


확실히 루이스가 인정했던 작가다운 글솜씨인데다,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루이스의 향기도 살짝 묻어 나와서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20세기 초중반 영국에선 루이스와 톨킨과 체스터턴과 세이어즈도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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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대에 선 그리스도 - 우리의 판단을 뒤흔드는 복음에 관하여 로완 윌리엄스 선집 (비아)
로완 윌리엄스 지음, 민경찬.손승우 옮김 / 비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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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 안에 담겨 있는 예수님의 재판에 관한 기록들에 관한 긴 주석이다. 아니, 주석보다는 일종의 탈굼이라고 해야 하나. 탈굼은 원래 유대 랍비들이 구약 성경의 내용에 길게 해설을 붙여둔 글을 말하는데, 이 책은 그 본문이 신약 복음서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또 주석과는 다른 게, 주석은 주로 학문적인 연구와 비평을 하는 데 반해 이 책의 경우 그런 종류의 접근을 하지는 않는다. 굉장히 자유롭게 다양한 글을 인용하면서(꽤 자주 문학 작품을 언급하기도 한다) 본문에 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돕는다.





네 권의 복음서에서 공통적인 장면을 각각 한 개의 장으로 구성을 했으니, 자연스럽게 각 복음서에 실린 서술의 차이점에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마가복음에서는 침묵으로 초월의 세계를 바라보는 모습을, 마태복음에서는 참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전문지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누가복음에서는 배제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는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서의 선택을 요구하는 내용을 읽어 낸다.


다섯 번째 장에서는 심판의 한 결과인 순교에 관한 내용을, 여섯 번째 장에서는 심판대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대답의 내용에 관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전반적으로 딱 제목에 나온 것처럼 심판 행위 자체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그리스도에 관해 무엇을 드러내 주는지, 또 그 본문들이 우리가 어떤 존재임을 가리키는지를 설명하는 책.


개인적으로는 고난주간을 앞두고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책일까 하면서 폈지만, 그런 내용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자는 심판의 과정과 결과로 일어난 고난과 나아가 부활이 중요함을 언급하면서도 여기에서 그 부분에 집중하지는 않는다.





로완 윌리엄스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읽어가는 맛이 있는 글이다. 성경 본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신앙생활로 연결시키는 능력은 탁월하다. 다만 이번 책에서 아쉬운 점은 복음서의 공통 본문의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에서 생각보다 본문 자체에 천착하는 부분이 약했다는 부분이다. 저자가 각각의 복음서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그리스도의 재판을 다룬 각 복음서의 서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이 부분은 각 복음서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인데, 저자가 각각의 복음서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얼마든지 다른 복음서와도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복음서를 그저 빌려 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드는 정도. 물론 그 내용이 전혀 엉뚱한 건 아니지만.


C. S. 루이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서 쓴 책 “헤아려 본 슬픔”에서 “오직 극심한 고통만이 진실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한다. 극심한 고통은 카드로 만든 우리의 집을 허물어 진짜를 드러낸다는 의미다. 그리스도가 서셨던 심판대는 그분에게 임해 있는 심오한 진리를 드러냈고, 나아가 우리에 관한 진리 또한 드러낸다. 이런 면에서 저자가 선택한 주제는 꽤 의미가 있었다고 봐야 할 터. 조금은 현학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긴 해서 살짝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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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감각 - 경외, 기쁨, 진리, 희망의 회복을 위하여 비아 시선들
돈 샐리어스 지음, 이광희 옮김 / 비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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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인 오늘 전국의, 아니 전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해진 자리에서 예배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슬픈 예상이지만) 아마도 그중 상당수는 큰 감흥 없이 (하지만 나름의 정성을 다해) 예배 시간에 참석했을 것이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떠났을 것이다. 물론 그들도 한 때는 예배에 관한 어떤 종류의 기대감 비슷한 것을 가졌었을 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기대를 접은 상태일 것이다.


그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그들이 수십, 수백 번 참여했던 예배에서 가끔씩 느껴지는 감정적 고양 이외의 다른 것들이 느껴지지 않은지 너무 오래된 것뿐이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예배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된 (어쩌면 처음부터 배우지 못한) 것뿐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이 작은 책은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만나고, 경험해야 하는 네 가지의 단순하면서도 시원적인 주제들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건 경외와 기쁨, 진실함과 희망이다. 저자는 우리가 예배할 때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이미 예배에 관한 중요한 감을 잊어버린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각각의 주제들에 관해 짧지만 좀 더 깊은 분석을 담고 있다. 문장들이 마치 로완 윌리엄스의 글을 읽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들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것이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식이다.





우리의 예배에서 경외가, 기쁨이, 진실함과 희망이 사라진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이 책을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며 되새겨 볼만하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 보다는 그저 예배의 구성에 더 신경을 쓰고 있고, 기쁨보다는 의무감과 피곤함이 먼저라면, 남들 앞에서 나를 가리기에 급급한 시간이라면, 하늘의 소망보다 그저 한 주의 안도감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예배가 정말로 이렇게 초라해져있다면, 서둘러 책장을 넘겨보자. 분명 좋은 처방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나 그래서 이런 것들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한가 하는 구체적인 사례들과 지침들일 텐데, 생각해 보면 애초에 다양한 전통과 형식을 가진 수많은 그리스도교 전통들 가운데서 어느 한 가지 방식이 공통적으로 유효할 리 없다. 중요한 건 바른 방향을 기억하고 그곳을 향해 나가가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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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칼뱅주의 - 풍성한 신학으로의 초대
코리 브록.나다니엘 수탄토 지음, 송동민 옮김 / 다함(도서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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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받고는 엄청나게 두꺼워 보였는데, 사실 종이가 아주 얇은 게 아니어서 정작 본문은 600페이지 정도 밖에 안 됐다. 그래서 그랬는데, 반쯤은 속독으로 읽었지만 책장이 꽤 빨리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었다. 외형만 보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는 책이라는 거.


책은 신칼뱅주의를 정립한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을 각 항목별로 정리하는 내용이다. 주요 내용은 3장부터 9장까지의 일곱 개 장에 담겨 있고, 여기에는 성경관에 기초해 창조(재창조), 타락, 일반은총, 교회 같은 주제들이 차근차근 소개된다.


2장은 칼뱅주의와 신칼뱅주의 사이의 차이점, 관계에 관한 내용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장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 둘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으나, 일부 상황의 변화에 따른 강조점의 차이가 있다고 분석한다. 그 중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역시 일반은총에 대한 강조일 듯.





신칼뱅주의는 역시나 전포괄적인 신학을 정립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 말은 특별히 성경관에서 잘 드러나는데, 카이퍼는 학문세계에서 성경의 권위를 대단히 강조하면서, 성경이야말로 모든 지식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물론 이 말은 우리의 모든 지식을 성경에서 이끌어 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경이 모든 지식의 근본 체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내용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잘 드러나는데, 신칼뱅주의는 성경을 “일종의 누룩처럼 다른 학문들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부분이다. 여전히 각각의 학문 영역은 상대적인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그리고 이 독립성에서는 일반은총이라는 신칼뱅주의의 중요한 신학적 강조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사실 이런 종류의 방대한 정리는 한 번 읽고 말 것이 아니고, 관련된 주제가 나올 때마다 한 번씩 찾아봐야 할 그런 책이다. 언젠가 한 번은 칼뱅주의에 관한 내용들을 정리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도 긴요하게 사용될 듯.


두 명의 저자들은 이 주제를 충실하게 잘 정리해 두었고, 학자답게 인용구도 정확하게 표시가 되어 있는데다가, 편집도 직접 인용 부분은 좌우로 단을 안쪽으로 넣어서(폰트도 달리 해서) 확실히 구분이 된다. 이런 종류의 책에 잘 어울리는 방식이다.


신학이 확실히 관심이 떨어지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바른 신학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목적 없는 항해를 떠난 배처럼 이리저리 헤매기만 할 뿐이다. 신앙생활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이런 책도 비단 신학자나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좀 더 넓게 유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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