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의 망치질이 모든 것을 깨부수던 근대에는 다시 한 번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 인간이 그분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묻었다면,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정말로 활동하기는 하는지, 그리고 활동한다고 해도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물었다. 욥기는 다시 한 번 난해하고, 불가해한 책으로, 인간은 신의 눈치를 보거나 호의를 기대하지 말고 이성과 자유를 지닌 존재로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재정의된 시기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욥기는 조각조각 찢긴다. 이른바 성서비평의 영향력으로 특별히 구약성경은 최소 서넛에서 때로 수십 명의 저자들이 쓴 책으로, 아니 그냥 그런 문서들을 얼기설기 긁어모은 스크랩북 정도로 평가 절하된다. 무신론의 시대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욥기를 읽어냈고, 이제 욥기는 우정의 실패를, 나아가 하나님의 실패를 묘사하는 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또 매우 실용적으로 욥기를 읽어내는 사람들도 있고.
한 권의 책에 관한 방대한 해석사를 읽는 것은 (그 책에 애정을 갖고 있기만 하다면) 꽤나 흥분되는 일이다. 책은 이 역사를 종으로 횡단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작 욥기의 내용에 관한 상세한 분석 같은 건 부족했다는(물론 대략적인 뉘앙스은 언급되지만) 점. 물론 그건 책의 방향성에 관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