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재정학 - 펀드매니저에서 목회자로 이끈 돈을 말하다
구영민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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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참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세상에서 완전히 초탈한 도인이거나,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바보거나. 심지어 예수님도 돈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 사도들 가운데는 돈을 맡아 관리하는 관리인이 지정되어 있었고(요 13:29), 그분이 따로 돈을 벌지 않으시고도 가나안 전역을 여행하며 가르치실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여성들이 그분이 쓸 것을 후원했기 때문(눅 8:3)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돈을 벌고 쓰는 과정에서 비그리스도인들과는 좀 다른 기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그저 열심히 돈을 벌고 헌금을 잘 하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가르쳐 온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돈에 관해서 배울 수 있는 곳은 “세상”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돈의 영역을 세상에 내어준 꼴이 되어버렸다.


다행이 근래에는 이 부분에 관한 신앙적 조명을 더해주는 책들이 종종 보인다. 이 책도 그 중 하나다. 전직 펀드매니저였던 저자가(현재는 목사) 돈과 신앙의 관계를 밝히고, 건강한 재정관리 방법에 관한 조언을 듬뿍 담아서 썼다.




사실 책 초반은 조금은 일반적인 검토를 담고 있다. 돈이 가지고 있는 우상적 성격과 여기에 빠졌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파괴적 결과들에 관한 내용이다. 물론 충분히 좋은 내용이지만, 꼭 이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통찰은 아니다.


이 책의 진가는 후반부에 있다. 펀드매니저라는 경력을 반영하듯 크리스천 개인의 가계와 경제 영역에 있어서 지혜로운 재정 사용법에 관한 실제적인 내용들이 많이 보인다. 크리스천은 재정과 관련해 “특별관리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소비 지수”를 통해 지출 규모를 가늠하고, (아마도 저자의 전공인듯한?) 행동경제학 이론을 통해 돈과 관련된 우리의 심리적 함정을 인지하도록 돕는다.


마지막 4장에서는 노동수익과 자본수익의 성격과 각각을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바른 투자 방식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항목에 따라 가계의 지출 비용을 조절하고, 나아가 헌금과 공공선을 위한 재정 운용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내용도 그렇고 방법도 매우 실제적이다.





이런 책들이 좀 더 많이 나온다면, 한국 교회의 바른 재정 이해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목사가 강단에서 설교로 할 수 있는 내용은 주제 면에서나 내용의 수준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느 분야처럼 비전문가의 조언은 구멍도 많고, 오해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성경에는 구원을 얻기에 충분한 진리가 충분히 담긴 책이지만, 우리의 경제적 인식과 재정사용에 관한 내용은 일반은총의 영역 안에서 경제를 제대로 공부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더욱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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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 말씀이 실제가 되는 교회론
이재학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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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참 많다. 서울 시내 밤 풍경을 보면 여기저기 내건 빨간 십자가들을 정말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 그런 모습을 보며 경관 공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교회가 이 땅에서 불신과 기피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제는 교회가 교회답지 않다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시작된 교회는, 태생적으로 희생과 섬김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어느 샌가 교회는 다툼의 자리, 권력과 재물을 쌓는 곳, 규모로 자랑하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교회가 그런 곳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교회의 특별함이 무엇인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 좋은 교회를 찾는 사람들의 수요는 늘 보인다. 물론 ‘좋은 교회’를 구분하는 기준이 제각각이라, 누군가는 시설이 잘 갖춰지고 안락하게 예배할 수 있는 자리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는 교회다운 교회, 교회의 본질에 충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공동체를 찾는 이들이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경기도 오산에서 맨 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한 작은 교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늘땅교회”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이 탐구하고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한 목사의 기도로 개척된 교회다.


가족 같은 교회를 지향하고, 매 주일을 축제처럼 즐거워하려고 애쓴다. 담임목회자의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는 부교역자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그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특별히 다음 세대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데, 무엇보다 담임목사 자신이 아이들과 직접 어울리는 데 시간을 많이 낸다.





책에는 저자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의 이야기들과 함께, 교회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아울러 반복적으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본질에 대한 고민은 처음에만 할 것이 아니고,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라는 것이 간사해서 안정되고 이제 됐다 싶으면 선명했던 처음 목표가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물론 저자에게도 그런 식의 변화가 전혀 없었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품고 목회를 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슨 대형 교회가 아니라도, 본질을 충분히 살려가는 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더 가까운 모습이기에, 이쪽이 좀 더 유리할 지도 모르겠다.


하늘땅교회의 앞으로 모습이 기대된다. 이 교회는 또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변화되어 나갈까? 그 과정에서 한국 교회에 좋은 작은 교회 모델을 제시해 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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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변증법 - 김교신과 한국 개신교 한국 개신교 사상사 1
양현혜 지음 / 홍성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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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우치무라 간조와 그 제자였던 김교신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해 온 저자가, 한국교회 초기 활동했던 김교신의 글을 모아 주제별로 엮은 3부작을 냈다. “신앙의 변증법”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첫 번째 책은 신앙과 회심, 복종, 이성이라는 네 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책은 구성은 각 주제에 대한 김교신의 글을 일부 옮긴 후, 저자의 간략한 설명, 그리고 그 주제와 관련된 비슷한 시기 다른 이들의 글들을 몇 개 함께 싣거나(1~3장의 경우). 추가적인 정보를 담았다(4장의 경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1장을 읽다 보면, 저자가 왜 김교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 장에는 김교신 이외에 윤치호와 박인덕이라는 두 명의 인물의 글이 추가로 실려 있는데, 이 두 사람은 모두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나 친일파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기독교를 일종의 제국주의적 구도 아래서, 미개한 조선을 구원해 낼 수 있는 힘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에 반해 김교신 기독교를 어떤 것을 얻어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영원성의 세계를 바라보며 사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는 것.


2장에서는 유교적 수신(修身)의 이념을 그대로 기독교로 옮겨왔던 당시 많은 사람들(특히 책에서는 최병헌이라는 인물을 인용한다)과 달리, 김교신은 자기수양의 방식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일종의 ‘단절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 집중한다. 즉 저자는 김교신을 한국기독교 수용사에서 바른 수용의 모델로 묘사한다. 다만 김교신의 글 전체를 읽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매우 짧게 (선별적으로) 인용된 글만을 두고 독자가 평가를 내리기에는 무리인 부분이다. 추가적인 공부를 통해서 좀 더 알아가야 할 부분.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이성을 다루는 4장이었다. 김교신은 한국 기독교 수용사에서 성령의 강한 사역을 인정하면서도 “금후 40년은 이성의 시대”라고 단언한다. 신앙에 있어서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인데, 당시 지나친 열광주의적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김교신은 그들을 “성신 열병환자”라고 부른다)을 보며 비판적인 관점을 갖게 된 듯하다.


이 부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부분다. 분명 이성 또한 하나님이 주신 능력 가운데 하나일 텐데, 물론 때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신앙에 있어서 이성적인 탐구를 백안시하는 시선이 여전히 남아있다. 또, 꼭 이성을 비판하지 않더라도 과도한 신비주의적 사고를 강조하는 것 역시 같은 결과를 낳을 뿐이고.






다만 책 자체가 김교신의 사상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게 구성되어 있다. 물론 1권만 읽었을 뿐이지만 나머지 책들도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한다면, 책 전체의 1/10도 김교신의 글을 직접 담고 있지 않은 상황은, 김교신의 단편적인 생각들만 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대신 저자의 해석과 설명이 주가 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좀 길다는 느낌도 들고.


또, 김교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언급되는 인물들에 대한 평이 조금은 박하지 않아 싶기도 하다. 당시가 조선의 기독교 수용기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신학적 이해의 부족함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교신이라는 인물과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그가 가진 신앙의 핵심을 정리한다는 취지는 좋다. 시간이 흘러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예배당을 몇 개씩 보유하게 된 오늘날 한국 교회지만, 외적인 성장은 이미 정체된 지 오래고, 사회적인 평판까지도 바닥에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런 초기의 좀 더 순수하고 단순한 신앙이 필요한 때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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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하는 여성입니다 - 직장인, 아내, 엄마로 살아가는 여성, 그 삶과 소명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조안나 마이어 지음, 고동일 옮김 / 디모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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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꽤 인상적이어서 손에 들었다. “나는 일하는 여성입니다.” 단지 일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책은 그 일하는 여성의 소명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 소명이라는 주제를 다룬 좋은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은 그 가운데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소명을 연결시켜보려는 조금은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일의 영역에서도 남성들이 일반적인 우위를 가지고 왔기에(특히 이런 경향은 산업화 이후 심해졌다), 여성으로서 이런 판 안에 들어가서 직업적 성취와 소명에 대한 부응을 이루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편견들은 여전히 남아 있고, 특별히 보수적인 기독교계 안에서도 다양한 차별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저자의 작업은 두 가지 트랙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성경 안에서 일하는 여성의 위치와 역할, 그리고 따라야 할 기준을 찾는 것과, 일반적인 직업적 영역 가운데서 여성들이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체적으로 책은 이 목표를 향해 잘 진행된다. 우선 저자는 일반적인 신학적 고찰을 통해서,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협력하여 일하는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리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성에게(물론 남성에게도) 소명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세 가지 기준점을 제시한다.(소명은 구체적이라기 보다는 보편적이고,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이며,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태도와 거리가 멀다) 또 자신의 소명을 향해 나아가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조언들도 덧붙여진다.


책의 2부에는 일하는 여성들을 향한 격려가 담겨 있다. 남성에 비해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역량에 대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인상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나 같은 남성은 이 부분에 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3부와 4부는 본격적으로 직장 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소명에 부응하는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는지에 관한 조언과 요령이 주된 내용이다. 많은 경우 비단 여성들만이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조언들이다.





작지만 알차게 내용을 채웠다는 느낌을 준다. 소명에 관한 책들이 요 몇 년 새에 좀 더 자주 보이는 이유는 내가 이 쪽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시대가 이런 책들을 더 필요로 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이런 괜찮은 책들이 많이 나와서 대화의 물꼬를 열어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밥그릇 뺏기나, 성별 갈등으로 해설되어서는 안 되는, 좀 더 거룩하고 중요한 문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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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웬의 시대, 존 오웬의 신학 - 인생을 이끌어가는 그리스도인의 비전
크로포드 그리븐 지음, 서학량 옮김 / 다함(도서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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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청교도 저자인 존 오웬의 생애를 다룬 책이 나왔다. 표지부터 상당히 감각적으로 나와서 마음에 든다. 원서 표지는 어떤가 하고 찾아봤는데, 페이퍼백 형태로 나온 책은 번역책과 거의 같은데, 주인공 인물의 얼굴이 좀 더 클로즈업되어 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말 책 쪽의 느낌이 좀 더 좋은 듯.



책은 존 오웬의 생애를 네 개로 나누어서(유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 각 시기와 관련된 그의 신학적 통찰을 아울러 설명하는 구성을 가진다. 딱 제목이 잘 맞아 떨어진다. 다만 이 책에서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그의 신학에 관한 설명보다 적다.


애초에 그 당시 사람들은 개인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자료 자체가 적었던 것이 크다. 때문에 그의 유년기에 관한 직접적인 설명은 딱 한 문장으로 그치고, 대신 그가 부모로서, 또 교회의 지도자로서 유년기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생각했는지에 관한 설명이 그 자리를 채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오웬이 활동하던 시기는 잉글랜드 내전이 벌어지던 시대였다. 잉글랜드와 북부의 스코틀랜드, 서쪽의 아일랜드 사이에도 충돌이 있었고, 무엇보다 잉글랜드 내부에서는 크롬웰이 이끄는 공화파와 왕당파 사이의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청교도들의 상황은 좀 복잡했다. 영국 왕실은 종교개혁 시대에 훗날 “성공회”라고 불리게 되는 영국의 독자적인 국교회를 만들었는데, 신학적으로는 가톨릭과 대륙의 종교개혁파 사이의 중도적 입장을 채택했다. 당연히 이는 좀 더 선명한 개혁사상을 관철시키고자 했던 청교도들의 불만을 샀고, 결국 그들은 비국교파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국교회를 통해 국왕의 교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고 했던 왕실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당연히 그런 왕실을 무너뜨리는 세력과 청교도는 밀착하게 된다. 크롬웰 개인의 신앙 성향과도 맞아떨어졌고.


문제는 크롬웰이 주도한 공화파 정권이 길게 유지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크롬웰이 죽고 나자 그의 아들이 후계자가 되었지만, 그는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를 지니지 못했고, 결국 권력은 복귀한 왕실로 넘어간다. 청교도들에게는 시련의 시작이다. 책에는 오웬의 만년에 발생한 충격적인 보복들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오웬의 동료들은 산 채로 내장이 꺼내진 후, 사지를 잘라 효수하는 형벌을 받았다.


오웬 자신은 친분이 있는 (왕당파) 귀족들의 도움으로 이런 운명을 피해갈 수 있었지만, 당연히 이런 사건들은 그의 사상과 신학에도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종말론과 섭리에 관한 내용들은 현실의 고민들과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살짝 아쉬운 부분은 이런 정치적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알려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오웬의 생애를 중심으로 구성되다 보니, 직접적으로 그가 겪지 않은 일들의 경우는 설명이 없다보니, 저간의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급격한 변화를 이해하는 데 좀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관련 내용은 구름책방 채널에 “종교개혁 연대기 시리즈”에 영상으로 올라와 있으니 참고하자.)


그리고 그의 생애의 각 시기에 신학을 연결시키려다 보니, 하나의 주제에 관한 신학적 사유가 특정한 시기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이 또 살짝 걸린다. 그러다 보니 앞서 언급한 유년기에 관한 내용처럼, 실제 오웬이 그 시기에 가졌던 생각이 아닌, 그 시기에 관한 오웬의 생각이 섞여 나오는데, 신학을 종합적으로 정리한다는 측면에서는 좋지만 애초에 생애와 연결지어보자는 구성은 살짝 약화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오웬의 삶과 신학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보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그의 책들을 단편적으로 접했을 때는 꽤나 꼬장꼬장한 느낌이었는데, 시대적 배경과 함께 읽으니 그의 약하고 섬세한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중요한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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