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가 생각하기에,

마음 맞는 친구 혹은 자기와 비슷한

사회적·경제적 지위에 있는 귀족 커뮤니티를

발견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천국은 온갖 부류의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므로

우리 또한 그날을 준비하면서 함께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신자는 각자 자기의 교구 교회에 출석을 해야지,

그것을 대신할 예배 공동체를 찾아다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라일 도싯, 『C. S. 루이스의 영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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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삶을 비관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


김화수, 『나는 고양이쌤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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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남겨두고 가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루이스는 삶의 마지막에 접어들면서 이런 신념을 갖게 된다.


- 데빈 브라운, 『C. S. 루이스의 생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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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얕은 이념으로 시작한 기후주의가

프리든의 의미로 두터운 이념,

전체론적 이념이 되려는 야망을 품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 가지 이유는 기후주의가 과학이 제시하는

세계에 대한 일련의 인식론적 주장에 뿌리를 두며,

따라서 전 세계의 보편적 동의를 요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두터운 이념은 반대를 묵살하고 완전한 충성을 요구한다.

기후주의 이념은 기후 변화를 저지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고귀한 정치적 도전이며,

그 외 모든 것은 이 한 가지 목표에 복종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마이크 흄, 『기후 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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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순수하게 이성으로만 증명하지 않는다.

그의 방식은 훨신 더 흥미롭다.

루이스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주장을 앞세우지 않는 대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내면의 경험이

기독교 세계관에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보라고 말한다.

변증가 루이스의 비범한 재능은

인간의 일반 경험에 대해 설명하는 여러 이론들,

특히 그가 한때 열렬히 신봉한 무신론보다

기독교 세계관이 더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능력에 있다.


- 알리스터 맥그래스, 『C. S. 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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