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계급론 - 비과시적 소비의 부상과 새로운 계급의 탄생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 지음, 유강은 옮김 / 오월의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우리의 소비행태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 소비는 단순히 필요에 의해 사용되는 차원을 넘어 ‘지위재’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소비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에 “명품”이라는 말로 잘못 번역되는 “Luxury", 즉 사치품이다. 수백만 원씩 하는 고가의 가방에 물건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운반하는 데 시간을 절약해 주거나 힘이 덜 들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때로 빚까지 지기도 한다(신용카드 할부는 빚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장치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명 그런 종류의 사치품들을 몸에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런 소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인 여유가 있음을 과시하는 중이다. 그런데 세계의 경제적 성장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새롭게 ‘중간계급’이 떠오르게 되었다. 이들이 이전의 상류층이 전유하던 사치품들을 구입할 수 있는 (물론 가벼운 결정은 아니라도) 경제력을 보유하게 되면서, 사치품 그 자체는 예전과 같은 ‘지위’를 나타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여기에서 이 책의 저자가 꼽는 야망계급이 탄생한다. 새로운 시대의 상류층, 즉 “귀족”이 되고 싶었던 그들은 다시 한 번 소비의 형태로 지위를 드러내고자 한다. 물론 여전히 고가의 사치품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보여주려는 이들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좀 더 힙한 방식이 사용된다.


그들이 선택한 새로운 지위재는 엄청나게 비싸거나 화려하지 않다. 물론 보통의 물건들보다 값이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값은 아니다. 대신 그것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 내가 이런 것들을 골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깨어있음을 보여주는 것들을 소비하는 것이다.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서너 배 비싼 유기농 달걀이라든지, 일반 우유 대신 아몬드 우유를 마시고, 아이에게 축구 대신 하키를 가르치고 하는 행위들이 그런 예라는 것.


여기서 책에 아주 흥미로운 문장이 나오는데, “맛대가리 없는 슈퍼마켓 토마토를 먹는 건 정말 ‘멋대가리 없는’ 짓이다. 그러나 똑같이 맛없고 물만 많은 토마토라도 그게 토종 토마토라면 ‘진짜’ 맛이 된다.”




 

사회학 연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종류의 야만계급적 소비의 예를 보여준다. 물론 책에 등장하는 예들은 대개 미국이나 유럽 쪽의 사례들이지만,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얼추 맞아들어 간다. 소위 깨어있다는 티를 내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대표적인 것이 “이념적 채식주의”나 “극단적인 환경주의” 같은 것들이 아닐까도 싶고.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사치품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저자는 “소박해지려면 우선 충분히 부자여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힙한 소비를 위한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소비의 방식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자 한다는 면에서 그들 역시 물질주의적 사고에 여전히 매어있는 셈이다.


저자는 “물건을 아무리 사도 우리가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무엇인가를 구입하는 행위로 자신의 지위와 성취를 과시하려는 태도는, 자신의 꽁지깃털의 화려함으로 암컷을 유혹하고자 하는 수컷 공작새와 그 수준에서 별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이들 야망계급의 욕구는 그들이 겉으로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사회의 정의와 올바른 질서의 해소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면에서 위선적이기도 하다. 그들이 하고 있는 실천이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전혀 선택의 기회조차 없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


물론 대안적 소비라는 게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사치품으로 온몸을 두르는 허영심보다는 분명 나은 면도 있다. 그러나 결국 소수만이 선택할 수 있는 행동으로 사회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애초에 그런 목표도 없이 그저 자신이 깨어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소비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 정도의 의미도 없을 테고.



독특한 개념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다양한 연구조사 결과들과 수치들이 언급되지만, 이 부분의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면 그런 것에 얽매일 필요 없이 전반적인 논지만을 좇아가며 읽어도 충분하다. 어떤 구체적인 주장까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라 살짝 아쉽지만, 뭐 사회학 연구라는 게 현실을 나름의 논리로 잘 분석한다면 그건 또 그대로 의미가 있는 거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제로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제목은 들어봤을 두꺼운 책 중 하나가 『총, 균, 쇠』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책을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새로 쓴 국가 위기 대처 방법에 관한 책이다.


책은 일곱 개의 나라들―핀란드, 일본, 칠레, 인도네시아,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미국―이 역사 속에서 겪었던 위기들과 그것들을 극복해 내는 과정에서 했던 선택과 변화에 관한 내용을 짧게 정리하는 내용이다. 각각의 나라들이 경험했던 위기의 성격은 모두 달랐지만, 저자는 이를 정리하기 위해 국가적 위기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관련된 열두 가지 요인들을 짚고, 이에 따라 각각의 위기들을 분석한다.


저자가 만든 척도는 다음과 같다.


1.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국민적 합의

2.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국가적 책임의 수용

3. 울타리 세우기. 해결해야 할 국가적 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조건

4. 다른 국가의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지원

5. 문제 해결 방법의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국가의 사례

6. 국가 정체성

7. 국가의 위치에 대한 정직한 자기평가

8. 역사적으로 과거에 경험한 국가 위기

9. 국가의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10.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국가의 능력

11. 국가의 핵심 가치

12. 지정학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물론 이 척도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 수는 늘 수도 있고, 더 적게 꼽을 수도 있다. 어떤 식으로 만들던 기준이란 항상 부족한 법이니까. 저자도 이런 부분은 인식하고 있고, 너무 많거나 적은 기준을 만들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해 이렇게 정리했다고 한다. 중요한 건 이런 척도들을 가지고 제대로 실제 문제를 분석하고, 또 그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예측해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일게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사례로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도 꽤나 역동적인 근대사를 경험한 나라인데 말이다. 일본의 강제 병합을 극복해 내고, 6.25라는 내전을 경험하고, 군부 쿠테타와 민주화, 이런 과정들을 통과하며 한 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세계 수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겨우 100여 년 동안 수많은 위기들을 맞이해 나름 극복하고 변화를 해 오지 않았던가.(물론 국민들이 꽤 자주 멍청한 투표를 해서 무능한 대통령들이 주기적으로 출현하기도 하고 있지만)





책에 언급된 여러 나라들의 사례들이 다 재미있었지만, 그 중에서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예가 특히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이 책에서 꼽은 일본의 위기는 1853년 페리호의 입항으로 시작된 강제 개항이었다. 비슷한 시기 아시아 각국에서 이루어진 서구에 의한 개항이 대체로 식민지화를 불러왔음을 생각해 보면, 이 시기 일본은 이 불평등조약을 발판으로 메이지 유신이라고 불리는 근대화에 성공하고, 20세기 초 주변국들을 침략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의 제국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으니 확실히 성공적인 위기 대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앞선 기준들 중 여러 항목에서 성공적인 선택을 했다고 평가한다. 우선 근대화 과정에서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와 미국 등 선진국들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했고(항목 5), 미국 군함에 의한 처절한 패배를 단순히 운이 없음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들의 국력 부족 때문이었다는 냉철한 판단도 했다(항목 7). 또, 개혁에 관한 전반적인 국민적 합의(항목 1)나,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대신 울타리를 세워 선택적인 변화만을 받아들임으로써(항목 3),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면서(항목 6) 변화를 이루어 냈다.


책의 3부에서는 2부에서 언급한 몇 개의 나라들 중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미래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는데, 여기에서 저자는 일본이 가진 장점들을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어둡게 볼 수 있는 요인들도 몇 개 꼽는다. 그 중 하나가 일본 특유의 자연 자원에 대한 남용으로, 이는 지속 가능한 자연 자원 이용을 추구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반하는 태도다.(대표적으로 일본 어민들이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포경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꼽는 것이 인근의 가까운 나라인 한국과 중국 등에 끼친 일제의 만행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또 하나의 문제고. 저자는 간략하게 훑고 넘어가고 있지만, 이런 요인들은 일본이 미래에 크게 발전하기 어려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들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사회학 이론도 100%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나의 이론에는 수많은 가설들과 임의적인 기준 설정 등이 포함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그렇게 세운 이론이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느냐이고, 이 점에서 다이아몬드의 이론은 꽤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책에서 주로 말하고 있는 건 국가 규모의 위기 대처 방식이지만, 비슷한 내용을 기업이라든지, 지자체가 다양한 모임들, 혹은 개인의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와 대응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최근 온갖 물의를 일으켜 주목을 받고 있는 축구협회의 경우 위기에 빠졌다는 자각 자체도 없을뿐더러(항목1) 무엇인가를 할 생각도 없고(항목2), 본보기로 삼을 만한 다른 나라의 협회나 우리나라의 다른 기관들로부터 배울 자세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항목5). 여기에 대한민국 축구행정 전체를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이나 정체성보다는(항목6) 그저 협회를 이용해 개인적인 이득만 취하려는 기생충들만 잔뜩 달라붙어 있으니 향후에도 제대로 운영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열두 가지 항목을 다시 종합해 보자면, 위기에 닥쳤을 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 그저 고집 때문에, 혹은 자존심이나 관성으로 인해 그냥 해 왔던 대로만 밀어 붙이다가 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건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에도, 문화에도 다 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물론 닥치고 새로운 것만 하자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겠지만, 위기라는 높은 변동성을 마주하는 상황에서조차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만 외치고 있다면 그 끝은 뻔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 사회는 당면한 위기를 적절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을까? 자꾸만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4-11-27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저도 한국이 모델에서 빠진것이 좀 이상하네요.한국처럼 식민지를 거치고 전쟁의 포화를 겪고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단기간에 올라선 나라가 없을텐데 말이죠.

노란가방 2024-11-27 21:3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ㅎ
 
한 손에 성경, 한 손에 비즈니스
윌리엄 더글러스.루벤스 테이세이라 지음, 곽수광 옮김 / 차선책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크리스천 창업가들과 교제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늘어나면서,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 기독교 신앙을 배경으로 하는 특성일 수도 있지만, 좋은 경영을 위해서 필요한 자질들 가운데는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주요 덕목들과 겹치는 부분도 많다는 걸 깨달았다. 단기적으로 수익을 높이는 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인 맥락에서는 약탈적 관행으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이 책은 아예 이 부분에 좀 더 집중을 한다. 제목부터가 성경과 비즈니스를 양손에 쥔 사람을 떠올리게 만들지 않던가. 저자들은 본문 내내 성경구절들을 쉴 새 없이 언급하면서 비즈니스에 필요한 자질들에 관해 말한다. 아, 그리고 저자들부터가 조금은 새로운데, 브라질의 연방 판사와 브라질 중앙은행의 애널리스트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브라질 출신 작가의 책은 교육학자 파울로 프레이리 이외에 처음인 듯.





일반 경영학 이론에 기독교 신앙을 더했다고 해서 그 수준이 떨어진다거나 실용성이 부작하다는 오해는 버리자. 대충 좋은 이야기를 써 놓은 책이 아니다. 오히려 앞서도 언급했듯, 유명한 경영이론에 관한 책들이 은근 성경에서 차용해 온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목표와 의미, 그리고 선한 덕목들을 강조하기도 하니까. 단순히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한 차가운 판단만이 이 바닥에서 유효한 것은 아니다.


특히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성경은 잠언인데, 이 부분은 제대로 된 공략인 것 같다. 다른 성경들과 달리 잠언이야말로 우리의 실생활에 좀 더 직접적인 격언들로 가득 차 있는 책이니까. 이 부분을 제대로 정리해서 책으로 엮어도 좋은 기획이겠다 싶은.


다만 이 같은 방식이 잠언 이외의 성경 구절에 적용될 때는 살짝 무리한 느낌도 든다. 잠언이 말하는 대상이야 말 그대로 시장에서 사용되는 지혜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본문들의 경우는 좀 다를 수도 있기 때문. 예를 들면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은사의 사용에 관한 독특한 조언을 담은 비유이지, 우리가 가진 돈을 어떻게 불려야 하는지에 관한 재무적 조언을 하는 게 아니다.


특히 복음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예시들은 그대로 따라하라는 의미가 아닌 경우가 많다. 값진 진주가 묻힌 땅을 사기 위해 자기 재산을 다 팔아야 하는 것도, 추수 때가 되기 전에 가라지를 뽑지 말라는 것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리는 아니다.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하는 건 명백히 큰 위험을 사는 일이니까.





책 전반에 담긴 경영적 조언들, 나아가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다양한 자질들에 관한 교훈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일에 기독교 신앙을 드러내지 말라는 세속적 조언보다는, 우리가 가진 신앙을 좀 더 제대로 드러내자는 이런 움직임이 더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플에서는 단순하게 일합니다
박지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등락이 있긴 하지만 애플이라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주식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기업이다(리뷰를 쓰는 날 기준으로 5일 전 뉴스로 확인). 흔히 줄여서 ‘맥’이라고도 하는 매킨토시라는 이름의 PC,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는 아이팟이라는 이름의 개인 음악재생장치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이 즈음은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과 그 주변기기들을 아우르는 생태계 구축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사실 비슷한 일을 하는 기업은 여럿 있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중국의 샤오미나 오포, 미국의 MS나, 캐나다의 블랙베리, 유럽에는 모토로라도 있고. 그런데 왜 다른 기업들은 애플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할까? 단순히 디자인이나 성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그 기업에는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바로 그런 부분에 관한 이야기다. 다양한 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애플에서도 4년간 신뢰성 부문에서 관리자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애플만의 독특한 기업문화에 관해 분석하는 내용.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선 조직의 구성이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사업부 별로 조직을 하기 마련이다. 휴대폰 사업부, PC 사업부, 웨어러블 기기 사업부 같은 식으로. 하지만 애플은 기증별로 부서를 나눈다. 디자인 부서, 디스플레이 부서 하는 식이다. 그리고 각 부서 안에 각 사업을 담당하는 하위 부서들이 존재한다.


잡스는 기존의 방식은 각각의 사업부 별로 단기적인 실적을 높이는 데 집중하게 되지만, 기능별로 나눌 경우, 하나의 파트에서 일어나는 혁신이 전체 조직의 제품에 빠르게 적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즉, 당장의 돈벌이보다 더 큰 혁신이 우선이라는 것. 자연히 이런 태도는 기업의 운영 방식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 애플에서는 회의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단지 자주 회의를 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회의에서 토의할 내용을 굉장히 신경 써서 준비하고, 어떻게든 제기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이 맡은 파트는 물론 포괄적인 공정 전반에 관한 이해도 필요하고, 서로 다른 파트끼리 치열하게 서로의 미비한 점을 지적하고, 해답을 요구한다.


당연히 애플에서 어설픈 사람, 단지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만 일하는 사람은 버텨내지 못한다. 애플의 가장 중요한 분위기는 완벽주의다. 실제로 이런 부분 때문에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애플에서 1년 일하는 것이 다른 회사에서 몇 년을 일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압박감이 있다는 식의 말들이 많은가 보다. 그럼직 한 내용.


물론 그런 회사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일이기도 할 테고, 이 책의 저자처럼 이후 이직을 할 때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에 앞서 그곳에서 일하는 기간이 자기 계발을 하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이 될 것도 분명하고.





대부분의 일이라는 건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힘을 필요로 한다. 협업이 필수적이라는 말인데, 은근 이 부분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나를 포함해서).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하는 데 시간을 보내거나, 그저 내 고집만 부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수만 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애플 같은 대기업에서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면, 그야말로 회사로서는 엄청난 손실이다. 모두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회사의 문화를 만들고, 일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하는 건 확실히 큰일이다.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한 좋은 통찰들을 여럿 얻을 수 있었던 책이다.(원 페이지로 어떻게 회의에서 발표를 해야 할지 요령을 알려주는 부분은 특히 유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후 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 기후 위기를 둘러싼 종말론적 관점은 어떻게 우리를 집어삼키는가
마이크 흄 지음, 홍우정 옮김 / 풀빛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확실히 ‘기후’는 이 시대를 상징하는 주제어 가운데 하나다. ‘기후 변화’, ‘이상 기후’라는 말이 나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기후 위기’라는 말로 바뀌었고, 이제는 ‘기후 재앙’이라는 표현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파국의 날을 계산하는 카운트다운도 꽤 자주 보인다. 카운트다운 속의 남은 시간은 (당연히) 볼 때 마다 줄어드는데, 종종 그 속도가 급가속되기도 한다.


이른바 기후 종말론이 우리 시대를 덮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기후 문제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생각이 문제인 이유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기후로 돌리고,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후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쓰였다.






오늘날 기후주의는 하나의 사상이 되었다. 모든 문제를 기후의 문제로 환원시키면, 자연히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난 것도, 수많은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것도, 미국에서 큰 산불이 자주 일어나거나, 텍사스의 전력망에 장애가 발생하고, 사람들의 수면이 부족하고, 점점 사나운 게시물을 SNS에 올리고 하는 식의 모든 문제가 다 기후 때문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기후 이상의,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원인들이 배경에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후주의는 이런 복잡한 배경을 단순화하고, 당연히 해결절차 역시 맹목적이 되게 만든다. 예를 들면 탄소배출량을 일정한 수치로 줄이는 것이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식으로. 그 결과 저개발국가의 사람들에 부당한 억압적 조치를 가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오히려 애초의 목표 달성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지구적 규모의 체계는 인간이 모두 살피지 못할 만큼 너무 크기 때문이다.


기후주의는 이제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정도로 거대한 바구니가 되어버렸다. 이제 어떤 문제도 우리는 기후라는 용어를 사용해 치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습을 저자는 흥미롭게도 종교적인 용어들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주의자들은 마치 영지주의자들처럼 자신들만이 세상에 관한 신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이 지식은 과학자라고 불리는 상급 사제들에게서 전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도 언급한 종말론적 수사는 여기에 자연스럽게 딸려 온다.


생각해 보면 당면한 기후재앙을 언급하며 진심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툰베리 같은 캐릭터는, 흔히 시한부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집단 안에서도 발견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툰베리가 “과학의 소리를 들으라”며 절절히 외치는 소리는 조금 흠칫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이 문제는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무슨 이념을 좇듯 무지성 돌격을 하다보면 오히려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은 우리의 미래를 예언하는 도구가 아니다. 과학은 과거의 사례들을 종합해 현재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이고, 그 예측은 옳을 수도 있지만 심각한 오류를 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저자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우선 고려하고, 기후주의의 “시한부주의”를 완화하고 “겸손의 기술”과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 “다원적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기후문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일부가 철석같이 신봉하는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보다 넓은 시야에서 인류가 마주하는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이다.


조금은 모호해 보이는 제안이긴 한데, 우선은 기후주의로 인해 좁아진 시야라는 문제를 치료하려면 조금 멀리서 문제를 바라보는 게 가장 중요하긴 하다. 또, 저자는 단순히 기후주의로부터 멀어지자는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좀 더 가까이서 바라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탄소 발생량을 줄인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고,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살인율이 떨어지고, 우리나라의 출생률이 올라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기후문제에 관련해 꽤 흥미로웠던 책이다.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