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개리 버지 지음, 이선숙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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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벌어진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이자 정당이기도 한!)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납치/살해 사건으로 시작된 전쟁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명백히 해당 전쟁은 하마스의 만행으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긴 하지만, 이스라엘측의 반격/보복의 수준은 선을 넘은 것도 사실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은 흔히 처벌의 상한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현대 이스라엘은 눈에는 생명으로, 이에는 가족의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그리고 사실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문제가 깔려있는데,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과정에서 불거졌던 여러 사고와 사건들이 그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팔레스타인은 패전한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영국의 몫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약 30여 년 후 벌어진 두 번째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힘이 빠진 영국은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오랜 조상의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기에는 추축국인 나치 독일이 벌인 만행이 큰 영향을 끼쳤다. 사실 그 사건은 비단 독일인들만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었고, 거의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던 반유대주의가 악마의 탈을 쓰고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뿐이었다. 이에 도덕적 부채감을 가진 유럽의 열강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의 땅에 나라를 세우겠다는 주장을 반쯤은 포기한 채로 두고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우겠다고 주장한 그 땅이 비어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비록 (오스만, 영국으로 이어지는 오랜 식민지 상태로) 독립국가가 따로 만들어져 있지는 않았으나, 그 땅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아랍계 주민들은 졸지에 자신들의 땅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물론 초기에는 기꺼이 돈을 받고 땅을 파는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스라엘 정부는 점차 영토 확보를 위한 강경한 정책들을 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는 오늘날 하마스가 저질렀던 잔혹한 테러 못지않은, 때로는 그보다 더 큰 규모와 잔혹성을 띤 작전들(테러들)도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그게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일들이니, 하마스 측의 항변도 영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책은 현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질렀던 수많은 파괴행위들에 관한 내용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이게 장과 부의 구분 없이 계속 반복되니 책의 구성 면에 있어서는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쩌면 또 그 만큼 이스라엘 측의 만행이 정신없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책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문제와 관련된 신학적 검토와 현실적인 대안들, 그리고 현실적이면서 좀 더 평화적인 해결책의 모색까지, 이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담아내려고 애섰다.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인상적인 내용 중 하나는 특정한 (왜곡된) 신학을 바탕으로 현대 이스라엘의 만행을 옹호하는 일부 기독교계 인사들이다. 여기에는 최근까지도 극우 행보로 유명한 여러 인사들의 이름이 그대로 올라와 있다.(하나같이 온갖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팔레스타인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주신 땅이라는 (오직 구약의 문자적 인용에 기초한) 신학적 주장은, 그 본문의 배경과 역사적 수용방식, 그리고 신약에서 이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설명이다. 저자는 이 주장에 담겨 있는 신학적인 비판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데 곱씹어 볼 만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저자의 또 다른 책 “예수와 땅의 신학”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설명되는 듯하다.(찾아 봐야겠다)



조만간 이 책을 가지고 천천히 책읽기 영상 시리즈를 만들어 볼 계획이다. 충분히 이야기 할 만한 내용도 많고, 관점 역시 균형잡혀 있는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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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스 더 리치 - 기후위기 시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나
틸 켈러호프.요르겐 랜더스 지음, 고은주 옮김, 강수돌 감수 / 이상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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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바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그렇게 마련된 재원을 가지고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사용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책은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말하려고 하는 건데, 하나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 문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기후문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묵직한 주제를 다루기에, 책이 너무 작고 얇다는 점이다. 때문에 책 초반에 기후문제에 관한 내용이 잠시 언급되고는 이내 부의 불평등 문제, 그리고 부유세 도입의 당위와 그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한 반박으로 나머지 부분이 채워져 있다. 결과적으로 기후문제는 부유세를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이유로서만 잠깐 제안되는 느낌.


이건 이중의 의미로 조금은 실망스러운데, 하나는 모든 문제의 기반에 기후문제가 있다는 식의 기후환원주의의 오류를 강화할 수 있다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돈만 있으면 기후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실 책에서 기후 문제가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지, 기후에 영향을 끼치는지(예를 들면 1%의 부유층이 온실가스의 17%를 배출한다는 식의)를 지적하면서 그들에게 부유세를 걷어 기후문제 해결에 투입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를 이끌어 내는데, 사실 이런 식의 통계는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제프 베이조스가 11분 동안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오는데 3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했다고(로켓의 연료 연소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을 추산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면서, 이는 하위계층 10억 명이 평생 배출하는 양과 같다고 조금은 선동적으로 설명하지만, 뭐 사실 그런 식이라면 전 세계의 관광수요의 항공기 운영을 당장에 금지시키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부자에게 세금을 걷는다고 그들이 덜 발생시키지도 않을 것이고.



또, 책은 부유세에 대한 저항을 가볍게 생각하는데, 일부 부자들이 자신들이 세금을 내는 것을 기꺼이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 그 한 이유로 제시된다. 즉 부자라고 해서 모두 세금을 피해 달아나는 건 아니라는 논리다. 하지만 최근 아주 적은 부유세를 도입했다가 대규모 국외이탈을 초래했던 프랑스의 예를 보면 문제가 생각만큼 감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의 호의에 의지해서 제도를 설계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사회주의라는 아름다운 이상이 어떻게 처절하게 실패했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던가.


물론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세금 제도에 관해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그 “국제적 공조”라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기는 할까? 국제정치라는 건 사실 눈치게임과 비슷해서, 다들 자국의 이익부터 챙기려고 기회만 볼 뿐이 아니던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략에도 누구 하나 직접 군대를 파견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위 선진국들이 부유세를 합의해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세금도피처 기능을 하는 국가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고, 그런 국가에 특정한 세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국제적인 압박과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하는 점도 우리는 물어야 할 것 같다.





전 세계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완전히 고착화되었고, 이 새로운 계급구조는 혈통으로(상속과 복잡한 계급 내 혼맥으로) 이어어지기에 향후에도 쉽게 달라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부유세 같은 공격적인 명칭의 세금으로 간단히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역시 돈이 든다. 그런데 그 돈은 기후에 악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벌어진다는 점이 딜레마다. 전반적인 경제규모의 축소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 역시 해결이 난망해 보일 뿐이다. 관련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건, 우리는 어쩌면 마지막을 코앞에 두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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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 그러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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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전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으로 전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었던 피케티의 근간이다. 그 사이에도 열 권 가까운 책들이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오랜만에 피케티의 책을 손에 들어 본다. “21세기 자본”에서 상속 등으로 형성된 금융 자본(사실상의 지대)의 수익률이 임금소득보다 월등히 높은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이번 책에서는 (제목처럼) 평등이라는 가치가 인류 역사에 어떤 식으로 등장해 퍼져나갔는지를 (생각보다는 짧지 않게) 정리해 낸다.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인류의 노력으로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좌파답게, “인류의 진보는 기정사실이며, 평등을 향한 여정은 승산 있는 싸움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이 늘 장밋빛이거나 레드 카펫이 깔려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류는 평등을 향해 다양한 장치들과 규칙을 만들었고, 실제로 교육과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평등이 확대되어 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논지이다.





물론 이 과정은 앞서도 말했듯 매끄럽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노예제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노예가 아니라!) 노예의 소유주들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했다. 또, 식민지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식민 본국은 막대한 빚을 과거의 식민지들에게 안겼다. 결과적으로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식민지는 독립했지만(평등의 증가), 여전히 불평등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이런 불평등을 강화하는 장치들이 공고화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여론을 형성하는 각종 미디어와 싱크탱크들은 독점화 된 부와 권력을 평등하게 이전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막을 힘과 의지가 충만하다. 그들 대부분이 이미 부와 권력을 손에 준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저자의 단골 레퍼토리인 누진세 제도의 강화, 세금 도피처들을 돌며 희희낙락하는 탈세범들을 제제하기 위한 국제적인 세금 부과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면 경제성장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반론에 관해서 저자는 역사적 데이터를 가지고 오는데, 미국의 예를 보면 1870년부터 2020년까지, 오히려 누진세를 강화했을 때 경제성장률이 높았다는 것. 사회적 불평등을 일정 수준 이하로 만드는 것은 전반적인 사회적, 경제적 성과를 내는 데 영향이 있다는 말이다.





다만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런 목소리가 과연 언제쯤 힘을 얻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결과물을 내서 반대자들까지 설득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국가에 의한 생산 수단의 소유와 중앙집권화된 계획 체제라는 특징을 지니는 사회주의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전 세계적 범위의 초국가적 세금을 도입하는 것만큼 “중앙집권적이고 계획적인” 체제가 또 있을까.(저자도 자신의 주장과 비슷한 제안을 하는 프리오의 주장에 대해 “극단적인 중앙 집권 국가나 다름 없”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226)


책 후반에는 교육의 평등, 남녀 간의 임금격차와 사회적 평등, 종교에 대한 대우 등등 사회 전반적인 평등에 관한 조금은 짧은 주장들이 담겨 있는데, 이 역시 문제의 지적은 확실했으나, 실질적인 해결책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단적으로, 교육의 평등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걸 공교육의 차원에서 구현해 낼 방법은 있을까? 얼치기 평등주의적 교육이론에 따라, 모든 아이들에게 (애초의 학업성취도와 상관없이) 똑같은 수준의 교육(이 경우 상대적으로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학생에게 맞출 수밖에 없다)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평등한 것일까?



물론 이 책에서 제시된 평등의 요구는 분명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의의 감각에 어울리는 일들이다. 하지만 평등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릴 때, 자칫 그 또한 우리를 옭아매는 사상적 밧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평등은 목적이 아니라 문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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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기원 - 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 아포리아 4
폴 블룸 지음, 최재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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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하는 질문은 인류의 지성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물어왔던 질문이다. 철학과 종교에서는 이 질문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는데, 쉽게 합의를 이루지는 못했다. 오늘날에는 좀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에 접근하려는 시도들도 있다. 이른바 뇌과학의 영향으로, 선악과 같은 도덕, 윤리의식을 뇌의 기능으로(그러니까 순수하게 물리적인 효과로) 치환하려는 태도다. 그러나 이 역시 모든 질문에 합리적인 대답은 아니기도 하다.


이 책은 영유아들의 행동을 연구하면서 인간이 선과 악을 언제부터 구분하게 되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한다. 사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실험 변수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한계(비윤리적이니까)를 지니는데, 저자는 그런 변수가 최소한으로 생기는 영유아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실험을 꾸밈으로써 이 문제를 피해가 보려고 시도한다.


물론 여기에도 어려움은 있는데, 말을 할 줄 모르는 아기들의 의사를 어떻게 파악할 것이냐는 점이다. 이 부분은 아아들의 표정과 눈동자의 움직임 등을 분석하는 최신 기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아이들이 선호하는 선택지에 더 오랜 시간 눈길이 머문다는 것. 이게 절대적으로 맞는 추측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실험이고, 저자의 결론도 명쾌하다. 아기들은 생후 1년이 되기 이전에 이미, 가장 단순한 형태의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구분할 줄 알고, 대다수가 선한 행위 쪽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실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 가운데는 그렇게 단순하게 선악을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것들도 잔뜩 있기에, 아기들의 행동에서 발견된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해석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실험 결과는 책에서 묻는 “도덕은 타고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소위 진화심리학의 상투적인 표현(어떤 것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생존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존재론과 정의론의 기괴한 융합)을 사용해 가며, 어떻게든 (입증되지도, 관찰된 적도 없는) 과거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며 이어져 온 진화적 생존 적응설을 꺼내지만, 애초에 그런 설명을 할 거라면 굳이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필요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연구의 방법론은 신박하긴 했지만, 선악이 무엇인지를 묻기에 아기들은 그리 적합한 스승이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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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를 속여라! 다크패턴 - 기만적 UX/UI의 유혹을 피해 고객 신뢰를 얻는 윤리적 디자인으로 가는 길
나카노 유키 지음, 장건희 옮김 / 책만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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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많이 보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그 중에서도 마케팅을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온갖 기법들이 사용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다가 사그라지는 판이다. 그 때문인지 이른바 “다크 패턴”을 통해서 사람들을 교묘하게 속여 묶어두려는 행태도 적지 않다.


이 책은 바로 그 다크 패턴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이런 내용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약관에 깨알 같은 글씨로 고객에게 불리한 조항이 삽입되어 있는 경우. 책에는 심지어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담은 국민투표에서, 찬성 쪽이 훨씬 큰 동그라미로, 반대 쪽은 작은 동그라미 안에 표기하도록 되어 있었고, 질문에는 추가적으로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히틀러의 나치당에 투표하겠느냐는 내용까지 포함되기도 했다는 일화도 보인다.



왼쪽의 큰 원이 합병 찬성 칸, 오른쪽은 반대 칸



책에 다루고 있는 건 주로 온라인 페이지 속 다크 패턴들이다. 거부를 어렵게 만드는 (종종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UI 구조 설계부터, 이용자의 심리를 조종하려는 문구들(예컨대 눈물을 흘리는 이미지와 함께 탈퇴를 계속 하겠느냐고 묻는), 디폴트 값을 비용을 더 지불하도록 설정해 놓는 것 등등. 하나하나가 우리가 익숙하게 만나는 것들이다.


결국 기업들에서 이런 식의 행보를 하는 건, 그게 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크 패턴을 적용시키는 경우 일시적으로 매출이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곧 이용자들의 격렬한 항의를 직면하게 되고, 이로 인해 고객대응서비스 비용이 높아지고, 잠재적 충성 고객이 될 수 있는 이용자들이 대거 빠져나가기도 한다니 정말로 이익이 되는 건지는 고민해 봐야 할 일이다. 이용자 쪽에서도 이런 패턴들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아 둔다면, 유사한 상황에서 물질적, 시간적 낭비를 줄일 수 있으니 한 번쯤 읽어 볼만하다.


사실 정도(正道)경영이란, 고객이 지불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 주면서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다. 눈속임을 통해서 잠깐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엔 지속적인 사업을 할 수 없게 될 테니까. 특히나 오늘날처럼 기업에 관한 평판이나 정보가 큰 폭으로 공개되어 있는 상황에서, 또 대부분 다른 선택지까지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고. 하지만 어느 시대나 쉽게, 그리고 빨리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사기꾼 심보는 사라지지 않으니...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왜 기업들이 이런 다크 패턴을 사용하게 되는지 원인을 분석하는 내용이 잠시 실린다. 주된 원인은 기업의 성장 지표를 잘못된 방식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것. 결국 경영의 기본이 안 됐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뭐든 기초가 안 된 상태에서 높이 쌓으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법.





페이크 영상까지 만들어 가면서 사람들을 속이는 사람들까지 나오는, 사기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크 패턴 정도는 애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피해는 애교가 아니니 한 번 공부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또 한 편으로 다크 패턴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분석에 기초해서 만드는 것인지라, 그 안에 담긴 심리적 패턴들, 행동들을 연구하는 건 (속이는 방식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좋은 마케팅 방식을 개발하는 데 사용해 볼 수도 있겠다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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