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사셨네 - 폴 트립 부활 복음 묵상
폴 트립 지음, 전의우 옮김 / 아바서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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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었던 책(톰 라이트의 사순절과 부활절)과 비슷한 구성의 책이다. 때가 때인 만큼 이런 종류의 책이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이 저자인 폴 트립이 쓴 책을 읽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 다른 점. (다만 읽어봐야겠다고 킵 해둔 책들 가운데 하나가 이 저자였다)


책은 저자가 앞서 썼던 다른 책(『일상복음』이라는 책이라는데, 국내에 번역된 책은 현재 찾을 수 없는 것 같다)에서 부활과 관련된 30개의 항목을 뽑아서 엮었다. 총 30일 동안 매일 읽을 성경과 그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함께 붙어 있는데, 흥미로운 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부활과 관련된 복음서의 내용만이 아니라, 창세기를 비롯한 오경과 역사서 일부, 선지서 등 구약 본문이 전체 내용 중에 2/3 정도를 차지한다는 것.





이런 구성은 저자의 성경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저자는 성경을 개별적인 이야기를 담은 모음집이 아닌 “하나의 웅장한 구속 계획 이야기”(90)이자,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수님(62)이라고 고백하는 보수적인(그리고 나와도 일치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보면 성경 전체에서 부활의 전조와 예표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성경관뿐 아니라 저자의 글에서도 보수적 신학에서 나오는 안정감과 경건함이 묻어나온다. 작은 책인데다가 각 항목마다 세 페이지 남짓의 짧은 묵상이지만, 하루 동안 마음에 담아두고 반복해서 되새기기에 충분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원제인 “일상복음(Everyday Gospel)”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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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의 사순절과 부활절 - 광야에서 영광으로
톰 라이트 지음, 전의우 옮김 / 야다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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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의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어느 정도 저자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내 머릿속에서 톰 라이트는 로완 윌리엄스와 비슷한 느낌의 저자인데(둘 다 성공회 주교라는 공통점이), 로완 윌리엄스는 확실히 교회 주교관에서, 공예배를 위한 말과 글을 쓴다는 느낌이라면, 톰 라이트의 경우 학교의 개인 연구실에서 조금 더 넓은 주제로 글을 쓰는 것 같다는 인상. 그리고 윌리엄스 쪽이 좀 더 글이 어렵다.


다만 이 책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딱 교회에서 매일의 간략한 예배를 위한 설교문이라는 느낌이다. 사순절이라고 불리는, 부활절 이전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간의 날들마다 (그리고 부활절 이후 한 주간을 더해 모두 47일간의 묵상이 담겨 있다) 성경 한 구절과 함께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 놓은 구성이다. 대부분은 복음서에서 뽑아 낸 본문들이고, 꼭 그 사순절 시점에 해당하는 본문들은 아니다(그러기엔 해당 본문이 적으니까).





일단 구성 자체가 교회에서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는 느낌이다. 새벽기도회에서 나누어도 좋고, 교인들이 함께 날마다 읽으면서 묵상하고 나누는 데도 유용할 것 같다. 각 장마다 말미에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을 실은 것도 이런 방식의 읽기를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톰 라이트의 유려한 문체와 본문에 대한 안정적인 해석과 설명은 책장을 천천히 넘기게 만든다.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교리적인 설명이 아닌, 우리를 복음서 속 상황으로 능숙하게 이끌어 들어간다.


주님의 부활을 고대하면서, 그분의 공생애를 묵상해 보는 건 교회의 오랜 전통이기도 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런 책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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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
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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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 가서 신간 코너를 봤더니 유전자와 관련된 몇 권이 함께 꽂혀 있었다. 가장 먼저 뽑아 본 건 외국 저자의 책이었던 것 같은데, 철지난 유전자 결정론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내용으로 보여 바로 다시 집어넣었고, 그 옆에 있던 이 책을 펴봤다.


유전자와 관련된 어느 정도의 과학적인 정보와 함께, 역사적으로 이 주제와 관련해 오해되어 왔던 내용들도 아울러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훑어보던 중 읽게 된 몇 개의 문장들 가운데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을 까는 게 있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유전자와 관련해 가장 먼저 소개되는 건 인종과 관련된 내용이다. 오랜 시간 인류의 상당수는 흑인을 인간의 범주에 넣지 않았고, 인간에 포함된다고 인정하더라도 백인에 비해 열등한 존재라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다.(이런 착각은 여전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백인들에 의해 착취당해온 동양인들, 특히 우리나라의 몇몇 덜 떨어진 온라인 커뮤니티 중독자들에게서도 거의 그대로 발견된다.)


몇 년 전 악명 높은 인종차별 테러단체인 KKK단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백인”이, 알고보니 조상들 가운데 흑인이 섞여 있었다는 걸 알고 자괴감에 빠졌다는 해외뉴스를 본 적이 있다. 물론 현재 드러난 모습만 보면 완전한 백인처럼 보이지만, 유전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래도 나름의 논리로(중요한 건 백인의 “정신”이다!) 정신승리를 시도하던 것 같긴 하지만, 그건 자기의 오류를 인정할 최소한의 정직함과 용기가 없는 겁쟁이의 마지막 반항 비슷한 것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주류 과학계의 설명에 따르면, 인류는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출현해서 점차 세계 곳곳으로 퍼졌고, 다분히 환경적인 영향을 강하게 받으면서 피부색이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애초에 피부색을 결정짓는 유전적 요인도 어느 한 가지가 아니었다. 피부색에 따라 인종을 결정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은 것이, 어떻게 인간의 피부색이 백인, 황인, 흑인으로 말끔하게 구별될 수 있을까? 그러데이션처럼 셀 수 없이 다양한 색깔을 고작 몇 개의 이름으로 나누려는 시도 자체가 참 오만한 것이었다.





이 외에도 희귀병과 돌연변이(여기에서는 합스부르크가문의 특유의 주걱턱이 언급된다), 온순함과 사나움, 바보와 우생학, 범죄 유전자, 동성애, 암,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비판적 검토 등이 이어진다.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주제들이고,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조금 다른 지식들도 등장한다.


저자는 뭐만 있으면 죄다 유전자 탓(비만 유전자니, 범죄 유전자니, 천재 유전자니)을 하는 유전자 결정론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자주 지적하는데, 사람에게 발현되는 가장 단순한 형질인 키만 해도, 관련된 유전자가 얼마나 많은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어느 한 가지 유전자가 특정한 형질을 결정하는 경우는 멘델의 완두콩만 갖는 특별한 케이스였다고도 덧붙인다.


우생학과 관련해서는 당장 나치의 잔혹한 인종청소가 떠오르지만, 그보다 20년 먼저 이미 미국에서 관련 법률이 일찌감치 시행되어 왔고, 여기에는 당시 이례적으로 좌파와 우파 정치인들 모두가 지지를 보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물론, 진보적 여성 운동가인 마거릿 생어도 지지자 명단에 있었고, 심지어 듀 보이스 같은 흑인 인권운동가도 우생학을 반겼다고 한다. 다만 이 사태는, 그 당시에는 그것이 “과학”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그 법률의 결과로 미국 정부가 저지른 만행은, 이른바 강제 단종법에 따라 저능아 출산이 3대에 걸쳐 이루어졌다면 강제로 불임시술을 해버리는 (심지어 법원에서도 이를 허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제 불임시술을 받은 사람이 공식 통계로만 16,000명이었다는데, 그 시절 트럼프 같은 미치광이가 대통령이었다면 이 수치는 가볍게 열 배는 더 넘겼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도구를 어떻게든 사용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은 온갖 것을 때려박으려고 할 것이고, 가위를 들고 있는 아이는 집안 곳곳의 물건을 자르려고 한다. 과학자들이 과학이라는 도구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인간이 그렇게 과학으로만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인가 하는 질문은, 과학을 뛰어 넘는 물음이다. 유전자라는 매력적인 도구를 알게 되고, 조작과 편집할 수 있는 기술까지 습득하게 된 인류이지만, 오직 유전자의 조합으로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단정적으로 말하려 했던 리처드 도킨스가 자기모순(무목적성을 띠는 유전자의 작동방식을 목적론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에 빠졌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전자의 발견은 많은 것들을 설명하게 만들지만, 다른 모든 과학적 발견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이게 다 유전자 때문”이라는 나이브한 설명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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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드리는 기도, 숨 쉬는 모든 순간 - 불안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집중하며, 영을 새롭게 하라
제니퍼 터커 지음, 전의우 옮김 / 아바서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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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숨을 불어넣으셨다고 기록한다(창 2:7). 그 호흡을 통해서 비로소 사람은 흙뭉치에서 생명으로 바뀔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한 번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셨고(요 20:22), 제자들은 성령을 받게 되었다.


성경에서 숨, 호흡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자율신경계에 의해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호흡이긴 하지만, 물에 빠졌다든지 하는 급박한 상황이 되면 숨을 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숨을 쉬어야만 살 수 있다.


그런데 특별한 방식으로 호흡을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그리도 몸에도!) 안정감을 주고, 특별한 집중을 하도록 만들어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출산 과정의 산모는 통증을 줄여주고, 안정감을 갖는데 도움이 되는 라마즈 호흡법이라는 것을 하도록 교육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적절한 호흡법은 우리의 기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실 기독교 전통 가운데는 이런 호흡이 단순히 육체적 생명유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던 이들이 있었다. 다분히 이지적 신학 탐구에 집중하는 서방교회 전통을 따르는 우리는 이런 것들을 낯설게 느끼겠지만,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보는 정교회 전통 가운데서 호흡은 확실히 좀 다른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은 호흡과 기도를 조합시키는 흥미로운 시도를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말씀”, 즉 특정한 성구를 뽑아서 그 짧은 성구를 반복하는 방식의 기도를 제안하는데, 이 때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들숨과 날숨에 성구를 얹어서 하는 독특한 방식을 소개한다. 책에는 80여 개의 기도 주제(관련 성구)가 소개되어 있는데, 페이지의 좌측에는 기도의 상황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 우측에는 들숨과 날숨에 담을 성구가 짧게(대개는 한두 문장으로) 배열되어 있다.


다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런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 염려가 되었던 것인지, 책머리의 몇 페이지를 이 책에 담긴 이른바 “호흡 기도”라는 것이 단순한 명상이나 뉴에이지적 무엇과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요컨대 저자가 소개하는 건, 우리의 호흡을 기초로, 잘 선택된 성경구절을 반복적으로 읽고 묵상함으로써, 하나님께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자는 것.





꽤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기도에 관한 책을 읽거나 가르칠 때 자주 빠지는 함정 가운데 하나는, 기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가르쳐 주면 기도를 하게 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실제로 기도란 이론도 이론이지만 아주 짧고, 사소하고, 작은 것부터 하나님께 아뢰며 그분을 의지해 나가는 경험의 축적으로 배워가는 것이니까.


여기 나오는 기도는 쉽고, 꽤나 효과적이다.(다만 특성상 대표기도 자리에는 쓰기 힘들 것이다) 실제로 책을 읽다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것만으로도 기도의 문이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은 말을 하려고 애쓰느라 정작 제대로 기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꼭 여기 발췌해 둔 성경구절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많은 성구를 가지고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기도법을 소개받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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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신학 - 당신의 소명을 재구성하라
폴 스티븐스 지음, 박일귀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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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바탕의 표지에 흐릿하게 처리된 두 남녀가 팔짝을 끼고 있는 뒷모습이 박혀 있다. 왠지 등이 살짝 굽어 있는 듯한 느낌으로 보아(그리고 제목으로 보아) 두 사람은 노인 부부가 아닐까 짐작된다. 그리고 여기에 붙어 있는 제목, 나이듦의 신학. “나이듦”이라는 한글 표현이 왠지 귓전에 계속 울리는 듯하다.


다만 여기에 “신학”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찾아보니 원제는 “Aging Matters”이다. 그냥 나이듦이라는 문제, 나이듦이라는 현상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텐데 “문제”나 “현상” 같은 단어가 우리말로는 좀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는 듯도 해서 고민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책이 신학적인 내용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중심은 하나님보다는 노화를 경험하는 우리들에 대한 조언 쪽이라 신학이라는 말이 최선일까 싶었던 건데, 나름의 고민의 결과물인 듯. 그리고 먼저 나왔던 같은 저자의 책 “일의 신학”(원제는 Work Matters)과 연속성을 준다는 의미도 있지 않았을까.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인생 후반기’에도 여전히 소명이 필요하며, 소명을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고, 2부에서는 나이듦에 관한 성경적 검토(영적 의미, 악덕과 미덕)를, 3부에서는 이제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관한 실제적인 조언들이 담겨 있다.


책 초반 저자는 은퇴라는 개념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나 처음 등장했다고 언급하면서, 인류는 대개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일을 그만두었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즉, 일정 나이가 되면 일에서 물러나 연금을 받으며 이제껏 미뤄두었던 여행이나 다니며 편하게 산다는 이미지가 현대의 발명품이라는 것이다.(그리고 다른 많은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다분히 상업적 동기가 끼어있는 것 같다.)


대신 저자는 우리가 은퇴 이후에도 계속해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일은 젊은 시절 했던 것과는 형태도, 목적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우리가 받은 소명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요새는 경제적인 이유로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여기에는 신학적 이유도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 유명한 목사가 은퇴한지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설교를 하고, 매년 1억이 넘는 사례비를 받으면서도, 그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하는 아들이 개척을 해야겠으니 개척자금으로 40억을 요구했다는 뉴스가 교계에 떠들썩하다.


개인적으로 그분의 책을 읽어보거나 설교를 찾아 들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서 훌륭한 목회자라는 칭찬이 있었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말년이 참 추레해질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어디 이 분만 문제였을까. 유명하지 않아서 눈에만 안 띄었다 뿐이지, 여기저기 분별력이 흐려진 늙은 목사들이 많다. 얼마 전엔 탤런트 출신으로 뒤늦게 목사가 되었다는 어떤 양반이 극우집회에 나가 막말을 쏟아내는 영상도 돌아다니는 걸 봤다. 그 벌을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그러는 걸까.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좋은 ‘어른’이 없는 사회가 안타깝다는 것이다. 책에는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꼭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나이는 먹었지만 성화도, 지혜로움도 얻지 못한 늙은이들이 곳곳에 박혀서, 잠언에 나오는 거머리처럼 족한 줄을 모르며 한없이 주변의 양분을 빨아들이고 있는(잠 30:15) 세상이다.





나이는 그저 숨만 쉬고 있어도 먹을 수 있지만, “어른”이 되는 건 다른 모든 일들처럼 분명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노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특별히 우리 안에 있는 악덕들을 제거하기 위해 애쓰면서 미덕에 물을 주어야 한다. 우리는 평생 그래야 한다.


우리의 앞날을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의 죽음이 그것을 끝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고작 60년, 70년만 사는 존재인 것처럼 나이를 먹어가며 배움을 그치고, 아무 소망 없는 사람처럼 소비적으로 시간을 낭비하기만 할까.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좋은 늙음을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중년이 되었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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