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다 큰 교사가 울고 있어요 - 선생님이 된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
홍지이 지음 / 다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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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간 교사로 일했던 작가가 이제 자신처럼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제자에게 교직에 있으며 경험했던 다양한 일들을 풀어내는, 그리고 자신과 같이 이런 저런 문제와 벽들에 부딪히며 의기소침해 있을 제자를 격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후기를 보니, 실제 제자 모델이 있기도 했지만, 좀 더 확장해서 후배 젊은 교사들 일반에게 보낸다는 느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10여 년이라면 그렇게 교사 생활이 길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교사 정년이 60대 초중반이니까 20대 말, 30대 초반에 교사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면 최소한 수십 년은 하게 될 테니까. 책 가운데는 20대 초반 임용고시를 보기 싫어서 기간제 교사일을 시작했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대학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면, 30대 중반쯤 교사직을 그만두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작가는 이 생활의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 모든 것이 미숙하고, 실수가 많은 시기만을 경험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10여 년을 몇 군데 학교를 거쳤다고도 하니, 어쩌면 신입 교사들의 아픈 부분을 가장 자주, 많이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 듯. 이 책은 딱 그런 이들을 위해 쓰였으니까. 책은 처음 교사를 하는 젊은이들이 겪었던, 그리고 겪을 수도 있는 다양한 아픔들을 따뜻한 문체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이른바 사회에 나오면, 어느 조직에 들어가든 처음에는 실수투성이이고, 혼도 나고 하는 법이다. 그게 교사 같은 공무원 조직이라면 조금 더 경직되어 있을 수 있으니, 젊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모든 것이 어려울 수밖에. 작가 자신도 당시에는 꽤나 반발하고, 화를 삭이고 했던 사건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 당시 상대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는 느낌이다. 모두가 그런 시절을 겪어 왔던 것처럼.


결국은 좋은 사람, 그리고 좋은 어른을 만나는 게 참 중요한 시절이었다는 느낌이다. 불합리한 것들을 요구받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따라야 하는 햇병아리들을 누군가 그늘이 되어 잠시 덮어줄 수 있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작가도 그런 이들을 몇몇 만나기는 했던 것 같은데, 교직을 일찍 떠난 것을 보면 조금은 힘에 버거웠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나도 어느새 기성세대의 일부(변두리 이긴 하지만)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제 조금은 품을 넓혀서 새로 시작하는 이들이 조금은 더 쉽게 첫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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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영성 - 영적 무감각에 빠뜨리는 '바쁨'을 제거하라
존 마크 코머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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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피곤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 때문도 있을 것이고, 일주일에 영상을 10개씩 만들어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있으니 그 또한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번아웃이 아닌가 진지하게 의심할 정도. (물론 거의 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있는 데다가, 제대로 된 운동도 안 하고, 식습관은... 의심되는 원인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문제는 피로가 아니라 주의 산만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잠을 줄여가며 바쁘게 일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종일 유튜브와 함께 살고, 온갖 SNS에 블로그를 관리하고, 책은 책대로 읽고, 리뷰를 쓰고, 종일 온갖 뉴스에 틈틈이 눈과 귀를 기울인다. 요샌 여기저기 나가서 사람들까지 만나고 하다 보니 뭐 하나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것저것을 신경 쓰게 된다. 끊임없이 주의를 여기저기 돌리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줄줄 새고 있었던 것 같다. (당장 이 리뷰만 해도 며칠 째 손에 들고 있으면서 중간에 온갖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젊은 나이에 대형교회 목사가 되어 몇 년 간 교인수가 크게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 모두가 성공의 지표로 여기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시내에 있는 좀 더 작은 규모의 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하루에 여섯 번씩 진행되는 예배와 계속 이어지는 회의들, 거의 매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일들에 지쳤기 때문이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저자는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연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 책이다. 현대 사회가 우리를 얼마나 분주함으로 내모는지를 분석하면서, 그것이 가지고 오는 악영향을 정리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조금은 다른 시간 사용법에 관한 설명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3부에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요령들, 원칙들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이 또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작은 교회라고 해서 지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가용 자원이 적기에 더 많이 뛰어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고, 그것이 바뀌지 않는다면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를 지향하면서 온갖 대형교회의 프로그램들을 도입하려고 발버둥 치게 될 수도 있다. 다시 한 번 중요한 것은 마음, 생각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읽고 듣기는 좋아하지만, 그분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그분과 우리 사이에는 큰 시대적, 공간적, 문화적 간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분이 살아가셨던 방식을 따를 생각이 없다면 우리는 왜 그분의 이야기를 읽는 걸까? 설마 어떤 지식을 아는 것만으로도 구원이 가능하다는 영지주의적 신념이 아니라면 말이다.


사실 교회 전임사역을 그만두고 나오면서, 책을 읽으며 조금은 느리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현실에 하나둘 덧붙이다보니 거의 매달 책에 쫓겨 사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책부터 좀 줄여야 하는 걸까. 하지만 아직 그닥 엄청나게 읽는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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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거장의 재발견, 윌리엄 해즐릿 국내 첫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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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사상가이자 작가였던 윌리엄 해즐릿이 쓴 몇 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다분히 어그로를 끄는 느낌의 책 제목은 첫 번째로 실린 에세이에서 따왔다. 전반적으로 당대 사람들에게서 익숙하게 보이는 악덕들을 날카롭게 포착해서 비꼬거나 비파적으로 서술하는 내용이다.


차례로 혐오, 죽음에 대한 공포, 질투, 신경을 거스르는 태도, 학자들의 무지 등이 작가의 도마 위에 오른다. 이른바 자유사상가로, 생전에도 어지간한 아웃사이더로 살다갔다는 걸 보면 여기 실린 글들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다만 그런 성격 덕분에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성공의 기회를 놓친 면도 있었으니... 뭐 자기 멋에 살다 갔달까.






개인적인 삶의 측면에서 해즐릿은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40대의 나이에 (그것도 유부남이면서) 19살짜리 하숙집 딸에게 반해서 온갖 난리를 벌이다가, 자신의 추태를 직접 책으로까지 펴내는 황당한 짓(이른바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지면 사람은 종종 유치해지는데, 정작 자신에게는 그 모습이 제대로 안 보인다는 게 함정)을 벌인 것.


이 또한 “자유”사상가다운 면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에서 그의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남의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자신의 모습은 제대로 절제하지 못한달까. 여기 실려 있는 글들 또한 비판은 날카로운데, 대안을 제시하거나, 결론적인 논지는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모든 글이 결론적 대안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그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작가가 드러내는 인간의 악덕들은 곱씹어 볼 만하다. 허위의식이라는 건 좀처럼 스스로 깨닫기 어려우니, 이런 거울 같은 글들을 통해서라야 비로소 조금은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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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개리 버지 지음, 이선숙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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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벌어진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이자 정당이기도 한!)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 납치/살해 사건으로 시작된 전쟁은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다. 명백히 해당 전쟁은 하마스의 만행으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긴 하지만, 이스라엘측의 반격/보복의 수준은 선을 넘은 것도 사실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칙은 흔히 처벌의 상한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현대 이스라엘은 눈에는 생명으로, 이에는 가족의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그리고 사실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문제가 깔려있는데,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과정에서 불거졌던 여러 사고와 사건들이 그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던 팔레스타인은 패전한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영국의 몫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약 30여 년 후 벌어진 두 번째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힘이 빠진 영국은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오랜 조상의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여기에는 추축국인 나치 독일이 벌인 만행이 큰 영향을 끼쳤다. 사실 그 사건은 비단 독일인들만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었고, 거의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던 반유대주의가 악마의 탈을 쓰고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뿐이었다. 이에 도덕적 부채감을 가진 유럽의 열강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의 땅에 나라를 세우겠다는 주장을 반쯤은 포기한 채로 두고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우겠다고 주장한 그 땅이 비어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비록 (오스만, 영국으로 이어지는 오랜 식민지 상태로) 독립국가가 따로 만들어져 있지는 않았으나, 그 땅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아랍계 주민들은 졸지에 자신들의 땅을 잃어버리게 된 셈이다.(물론 초기에는 기꺼이 돈을 받고 땅을 파는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스라엘 정부는 점차 영토 확보를 위한 강경한 정책들을 펴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는 오늘날 하마스가 저질렀던 잔혹한 테러 못지않은, 때로는 그보다 더 큰 규모와 잔혹성을 띤 작전들(테러들)도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그게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일들이니, 하마스 측의 항변도 영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책은 현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질렀던 수많은 파괴행위들에 관한 내용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이게 장과 부의 구분 없이 계속 반복되니 책의 구성 면에 있어서는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쩌면 또 그 만큼 이스라엘 측의 만행이 정신없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책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문제와 관련된 신학적 검토와 현실적인 대안들, 그리고 현실적이면서 좀 더 평화적인 해결책의 모색까지, 이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담아내려고 애섰다.


그 중에서도 역시 가장 인상적인 내용 중 하나는 특정한 (왜곡된) 신학을 바탕으로 현대 이스라엘의 만행을 옹호하는 일부 기독교계 인사들이다. 여기에는 최근까지도 극우 행보로 유명한 여러 인사들의 이름이 그대로 올라와 있다.(하나같이 온갖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팔레스타인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주신 땅이라는 (오직 구약의 문자적 인용에 기초한) 신학적 주장은, 그 본문의 배경과 역사적 수용방식, 그리고 신약에서 이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설명이다. 저자는 이 주장에 담겨 있는 신학적인 비판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데 곱씹어 볼 만한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저자의 또 다른 책 “예수와 땅의 신학”에서 좀 더 집중적으로 설명되는 듯하다.(찾아 봐야겠다)



조만간 이 책을 가지고 천천히 책읽기 영상 시리즈를 만들어 볼 계획이다. 충분히 이야기 할 만한 내용도 많고, 관점 역시 균형잡혀 있는 괜찮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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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스 더 리치 - 기후위기 시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나
틸 켈러호프.요르겐 랜더스 지음, 고은주 옮김, 강수돌 감수 / 이상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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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바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그렇게 마련된 재원을 가지고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데 사용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책은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말하려고 하는 건데, 하나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 문제,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기후문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묵직한 주제를 다루기에, 책이 너무 작고 얇다는 점이다. 때문에 책 초반에 기후문제에 관한 내용이 잠시 언급되고는 이내 부의 불평등 문제, 그리고 부유세 도입의 당위와 그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한 반박으로 나머지 부분이 채워져 있다. 결과적으로 기후문제는 부유세를 강조하기 위한 하나의 이유로서만 잠깐 제안되는 느낌.


이건 이중의 의미로 조금은 실망스러운데, 하나는 모든 문제의 기반에 기후문제가 있다는 식의 기후환원주의의 오류를 강화할 수 있다는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돈만 있으면 기후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사실 책에서 기후 문제가 생각보다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지, 기후에 영향을 끼치는지(예를 들면 1%의 부유층이 온실가스의 17%를 배출한다는 식의)를 지적하면서 그들에게 부유세를 걷어 기후문제 해결에 투입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논리를 이끌어 내는데, 사실 이런 식의 통계는 허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제프 베이조스가 11분 동안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오는데 3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했다고(로켓의 연료 연소에서 발생하는 화학반응을 추산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면서, 이는 하위계층 10억 명이 평생 배출하는 양과 같다고 조금은 선동적으로 설명하지만, 뭐 사실 그런 식이라면 전 세계의 관광수요의 항공기 운영을 당장에 금지시키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 부자에게 세금을 걷는다고 그들이 덜 발생시키지도 않을 것이고.



또, 책은 부유세에 대한 저항을 가볍게 생각하는데, 일부 부자들이 자신들이 세금을 내는 것을 기꺼이 요청하고 있다는 것이 그 한 이유로 제시된다. 즉 부자라고 해서 모두 세금을 피해 달아나는 건 아니라는 논리다. 하지만 최근 아주 적은 부유세를 도입했다가 대규모 국외이탈을 초래했던 프랑스의 예를 보면 문제가 생각만큼 감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의 호의에 의지해서 제도를 설계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사회주의라는 아름다운 이상이 어떻게 처절하게 실패했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던가.


물론 이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세금 제도에 관해서 언급하기도 하지만, 그 “국제적 공조”라는 것이 정말로 가능하기는 할까? 국제정치라는 건 사실 눈치게임과 비슷해서, 다들 자국의 이익부터 챙기려고 기회만 볼 뿐이 아니던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략에도 누구 하나 직접 군대를 파견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걸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위 선진국들이 부유세를 합의해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세금도피처 기능을 하는 국가들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고, 그런 국가에 특정한 세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국제적인 압박과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하는 점도 우리는 물어야 할 것 같다.





전 세계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완전히 고착화되었고, 이 새로운 계급구조는 혈통으로(상속과 복잡한 계급 내 혼맥으로) 이어어지기에 향후에도 쉽게 달라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부유세 같은 공격적인 명칭의 세금으로 간단히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역시 돈이 든다. 그런데 그 돈은 기후에 악영향을 끼치는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서 벌어진다는 점이 딜레마다. 전반적인 경제규모의 축소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 역시 해결이 난망해 보일 뿐이다. 관련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건, 우리는 어쩌면 마지막을 코앞에 두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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