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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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쯤이었나, 갑자기 여기저기서 “삼체”라는 이름이 뜨기 시작했었다. 중국 작각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꽤 유행했었나 보다. 언젠가 한 번 원작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 이제야 손에 든다. 그것도 본편이 아니고 일종의 프리퀄인 이 작품부터. 원래는 본편을 들어가려고 했는데 검색해 보니 또 "삼체 0"라는 게 나오지 않던가. 작가도 같고, “삼체”가 나오기 전에 썼으면서, 후에 나오는 여러 설정들과 인물들도 나온다기에 이 책을 먼저 손에 들었다.



이야기는 한 소년의 생일파티로 시작된다. 열네 개의 초가 꽂힌 케이크를 앞에 두고, 부모님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때, 갑자기 나타난 농구공 크기의 빛 덩어리가 소년의 부모를 단번에 하얀 재로 만들었다. 구상섬전(공 모양의 번개)였다. 그 날 이후 소년이 평생 동안 매달리게 될 연구의 주제가 정해졌다.


통상 번개는 순간적으로 내리치지만, 소설 속 구상섬전은 그 특성이 전혀 다르다. 마치 비누거품처럼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어떤 것을 통과해서 특정한 것만 태워버리기도 한다.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전혀 태우지 않은 채 몸만 재가 되거나, 전자기기의 칩만 태워버릴 수도 있다. 가끔 미스터리 채널에서 볼 수 있는 “배니싱”이나 “자연발화” 같은 사건들이 떠오르기도 하는 특성.


소설은 이 모든 과정을 소년(천이)을 1인칭 주인공이자 관찰자 삼아 진행한다. 원래 그의 목표는 어린시절 목격했던 구상섬전이라는 특이한 현상의 과학적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아름다운 여군 장교 린윈을 만나면서 연구의 방향은 크게 바뀐다. 린윈은 신기술을 이용한 무기개발에 광적으로 몰두하고 있었고, 자연히 구상섬전 역시 무기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좀처럼 실마리는 풀리지 않았고, 그들보다 앞서 이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섰던 이들의 실패담만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천재 물리학자인 딩이가 합류하면서 마침내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나아가 그것을 응용한 무기화에도 성공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는데...


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에 가까웠던 린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무기의 위력을 증명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충돌과 희생이 발생한다. 더구나 얼마 후 일어난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에서 이 무기는 기대했던 것과 같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프로젝트가 폐기되나 싶었지만, 결국 작품 말미에 이 연구는 조금은 어이없는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는 데 큰 공헌을 한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나 구상섬전이라는 독특한 현상이다. 작가는 이 소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현대과학의 최대 발견들 중 하나인 양자역학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실제로 구상점전이라는 현상이 양자역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사실 양자역학은 우리들의 상식적인 생각을 벗어나는 결과를 말할 때가 잦은데, 이걸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서 실감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또 가공할 만한 무기를 만들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윤리적인 고민을 던져주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무기를 만드는 데 광적인 집착을 하는 린윈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무기를 완성하고 그 효과를 입증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핵발전소 테러 사건에서 린윈은 그 안의 어린 아이들이 인질로 잡혀있는데도, 모든 생체조직을 파괴할 수 있는 구상섬전 무기를 거리낌 없이 발포한다. 더 큰 위기를 막기 위해서라는 지극히 실용주의적 판단이었지만, 한편으로 자신이 만든 무기의 효과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작품 말미에 린윈이 과거 어머니가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 벌어진 전쟁(1979년) 과정에서 사망한 기억 때문에 그런 집착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사실 이 전쟁 자체도 중국이 일으킨 것이고 침략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것인지라, 개인사적으로는 비극이지만 3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의 딸이 왜 그렇게 화가 난 건지, 그 분노를 애국주의로 포장하는 과정이 좀 어색하긴 하다.


작품 전반에 걸쳐서 평생을 바쳐 한 가지를 탐구하는 태도에 대한 칭송이 관통한다. 삶의 목적을 잃고 그저 하루하루를 사는 것에 비해서 단연 매력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린윈의 모습을 보면 그 방향이 무엇인지 또한 생의 열정 못지 않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간만에 침대에 누워서까지 “어슴푸레”를 켜고 읽었던 재미있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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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2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체는 아시아 작가의 SF소설로는 최초로 휴고상을 탄 작품이지요.중국인 류츠신의 작품인 삼체는 그래선지 미국 넷플릭스와 중국엥서 시차를 두고 드라마화 되었습니다.그런데 두 작품의 차이는 소설 첫 머리에 있었던 문화 대혁명을 드라마에서 그렸나 안그렸나의 차이인데 중국에서 만든 드라마에는 문화 대혁명의 모습이 완전히 빠진것에 반해서 넷플릭스는 원전에 있는 문화 대혁명을 그대로 그려서 중국에서 큰 반발이 있었지요.
사실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모택동의 문화 대혁명은 일종의 금기어에 가깝기 때문에 역사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데 소설 첫머리에 문화 대혁명이 나왔음에도 작가가 여태까지 무사한 것은 작가 류츠신이 중국 공산당 고위층과 친분이 두텁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절망노트
우타노 쇼고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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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중학교 학생인 숀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반에서 잘 나가는 학생이자 친구들이나 담임선생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고레나가 일당의 괴롭힘은 교묘해서, 다른 사람들은 그저 숀이 그들 무리의 일원으로 함께 노는 것으로만 보인다.


어떻게 해도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숀은 자신의 일기장에 절망스러운 심경을 차곡차곡 적기 시작한다. 소설은 숀의 일기장을 읽어가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그의 아버지와 생계를 위해 퇴근 후에도 사장의 가정부 노릇까지 해야 하는 엄마의 무신경함, 그리고 무능한 담임까지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숀은 웬 돌을 하나 가져와서는(‘오이네프기프트’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공물을 바치며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을 죽여 달라고 빌기 시작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로 고레나가가 죽어버렸다! 또 다른 일당인 안도도, 숀을 의심하며 추궁해 온 동급생 고우다도, 그리고 끝내 담임인 구노까지. 과연 이 연쇄 사망은 돌덩이에게 빈 덕분일까?





작품을 읽으면서 다양한 감정이 오고 간다. 처음에는 당연히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학생들과 이를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는 주변의 어른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또 어느 정도 읽다 보면 그런 상황에 순응하면서 본인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서 일기장에 주변 사람들만 저주하는 주인공 숀에 대한 짜증이 몰려온다. 본격적으로 숀의 주변 인물들이 죽기 시작하면서는 과연 이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커진다. 하나의 작품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역시 저자의 필력이다.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사회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또 기묘한 사망이 잇달아 벌어지고 범인을 추적해 간다는 면에서는 스릴러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 돌덩이 신까지 등장하니 때때로 미스터리 장르가 살짝 묻어있기도 하고.


물론 이야기의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인(신비적인 요소가 개입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성격이었지만, 또 이야기 전체를 두고 보면 약간 구성이 헐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 경찰이 아무리 어설프다고 해도 이 정도의 정교하지 않은 트릭을 간파하지 못할까? 물론 작가가 만들어 낸 세계에서 경찰들의 영향력과 능력은 많이 축소되어 있긴 하지만.



결말의 반전 요소까지 포함해서 전체를 두고 보면 꽤 재미있게 읽었다. 대중 소설에서 드러나는 일본인 작가들의 필력은 확실히 인정할 만하다. 또, 결말부에서 변주를 주긴 했으나, 작품 초반에 꽤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서술되는 학교폭력에 관한 묘사들은, 점점 흉포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청소년 범죄와도 연결 지어서 읽어볼 만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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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2-31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란가방님의 리뷰를 보니 재미있을 것 같네요.일본은 추리소설의 역사가 길어서 웬만하 작가의 작품이라면 대부분 평타이상의 수준은 되는 것 같습니다.일본 추리소설의 주요 소재중 하나가 바로 학교폭력인데 워낙 괴롭힘이 많고 그와 관련된 사건도 많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학폭문제도 심각해서 언젠가는 한국 추리소설의 소재로 자주 학푝문제가 등장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노란가방 2025-12-31 12:57   좋아요 0 | URL
이미 슬슬 등장하고 있지 않나 싶네요. 문학도 결국 현실을 따라가기 마련이니까요.
학폭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도 안 옵니다. ㅠ
 
투명 회전 독서대 - 책 읽는 찰리브라운과 스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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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핀 머리에 볼헤드를 달아둔 괴팍한 디자인. 책 고정이 전혀 될 수 없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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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없으면 슬프긴 하겠다 (연애편지 에디션)
가희 지음 / 부크럼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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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떻게 해서 구입까지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아마 중고도서를 구입하면서 배송비 무료 기준을 채우려고 이것저것 담다가 들어갔나 보다. 강렬한 핫핑크의 표지에 “답장이 없으면 슬프긴 하겠다”는 제목까지. 평소라면 손에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책이지만,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만나는 책도 있는 법이다.


책은 이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주제에 관한 무슨 특별한 철학적 고찰을 담은 건 아니고, 저자 후기를 보니 처음엔 그냥 SNS에 올리던 글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 책으로까지 엮여 나왔다고 한다. 글의 분량이나 구성도 SNS에 맞게 길지 않다. 책을 열면 왼쪽에는 메신저창 형태의 말풍선 속 메시지가, 오른쪽엔 그에 관한 짧은 설명글이 덧붙여 있는 형태다.





모든 이별들엔 비슷한 면이 있나 보다. 그러니 이런 글에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겠지만. 이 나이 먹도록 연애 경험 몇 번이 없을 리 없고, 그때의 감정과 기분을 떠올려 보면 책 속의 몇몇 문장들과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이제는 그저 그 시절만 겪을 수 있는 불안과 설렘과 떨림 같은 것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지만.


그 시절,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을 듯한 책. 당시에는 가장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다 살게 되어 있더라. 이별로 아파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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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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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웃나라인 잉글랜드의 식민지로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많은 착취를 당했지만,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다. 물론 이 과정은 평화롭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20세기 중후반까지도 치열한 무장투쟁이 벌어졌다. 이 소설은 그런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소설이 시작됐을 때부터 이미 나라는 권위주의적 정부가 집권을 한 채, 국민들을 통제하는 여러 법률을 만들어 놓은 상황이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인공 아일리시의 남편은 교원노조 부위원장으로서 이런 사태에 대한 항의를 위한 시위에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시간이 갈수록 정부의 억압은 점차 수위를 높여간다.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가던 주인공에게 닥친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어떻게든 남편이 돌아오기 전까지 가족을 처음 그대로 붙들고자 하던 그녀의 노력은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이제 겨우 중학교를 졸업할 나이였던 맏아들은 징집영장을 피해서 반군에 들어갔고, 둘째 아들은 공습 파편에 맞아 병원에 입원했다가 정부군에게 끌려가 죽은 채로 돌아온다. 딸아이는 엄마와 제대로 대화를 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고, 막내는 아직 우유를 먹여야 하는 어린 아이다.





작가는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아이일리시가 조금씩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서술이 철저하게 아일리시 개인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에 독자도 아일리시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아일리시의 생각을 따라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정보의 결핍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어렵게 만들고, 닥쳐오는 사건들에 대처하는 데 급급하게 만든다.


여기에 책 전체에 마침표와 쉼표를 제외한 다른 문장부호들이 사용되지 않고, 심지어 줄 바꿈마저 매우 적게 사용된다. 대화라고 해서 따로 줄 바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마치 영화로 치면 롱 테이크로 장면을 연속해서 촬영하는 것처럼, 긴박감과 함께 시각적 압박감을 준다. 페이지 전체를 여백 없이 꽉 채우고 있는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사방이 꽉 막힌 주인공의 상황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권위주의 정부의 독재적 지도자, 그로 인한 격렬한 폭력이 동반된 충돌과 그 피해를 정면으로 뒤집어쓰는 (곧 난민이 될 운명의) 평범한 시민들이라는 작품 속 이미지는 저자가 시리아 난민들을 보고 떠올린 것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우리는 더 많은 곳에서 비슷한 모습을 보고 있다.


사실 이런 소재라면 좀 더 정치적인 메시지나 분석이 담길 만도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저자는 철저하게 아일리시라는 개인의 눈으로 사태를 서술한다. 만약 좀 더 직설적으로 정치적 비평을 가했다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피해자 중심으로 서술함으로써 사태의 잔혹성, 정치적인 문제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더 생생하게 묘사해 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신에게 아부하는 간들에 둘러싸여서 입맛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입을 틀어막고, 정치적 반대파와의 대화를 거부한 채, 종래에는 상대를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며 군대를 동원해 쿠데타까지 획책했던 윤석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 참혹한 모습은 어쩌면 윤석열이 바랐을 미래였을 지도 모르겠다(직접 그 끝까지 그리지는 못했을 지라도―생각이 참 부족한 인사였으니까―그가 그렸던, 그리려고 시도했던 미래와는 비슷할 것이다). 최근에는 트럼프가 그와 비슷한 짓을 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도 하다.


작품 속 사건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후에는 어떻게 그 문제가 결말에 이르렀는지 퍽 궁금하다. 권위주의적 독재정부를 출현시킨 것도 시민들의 의사(투표)를 통해서였을까.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는 어떻게 끝났을까. 그리고 누군가는 제대로 책임을 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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