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을 채워라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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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식히기 위해 늘 찾는 작가가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 주인공. 이번에도 동네 도서관에 가서 가볍게 그의 책을 빌려왔다(아니 빌려온 줄 알았다). 작가가 이번에도 꽤 흥미로운 주제를 물었구만 하는 생각으로 책을 덮고 나서 리뷰를 쓰려고 봤는데, 엇?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데?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 이름이 다르다. 이렇게 ‘히’와 ‘게’로 나를 혼동시킨 건가 싶지만... 뭐 김성훈이라고 분명히 썼는데 내 이름으로 착각하는 건 전적으로 읽은 사람의 잘못이다.


작가의 이름이 히가시노 게이고든, 히라노 게이치로든 중요한 건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 이름도 제대로 몰랐으니) 당연히 정보가 전혀 없이 펴든 소설은 매우 일상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은 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다. 그런데 의사와의 대화가 좀 이상하다. 그리고 작가는 단도직입적으로 첫 수를 찔러 들어온다. 주인공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다. 그것도 3년 만에.





자 이렇게 되면 소설의 장르가 또 궁금해진다. 이건 미스터리, 혹은 호러인가? 하지만 안심하자. 전혀 그런 분위기로는 흘러가지 않는다. 물론 죽을 당시의 기억이 없었던 주인공은, 자신이 자살한 것 같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극구 부정하면서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를 나름 추적해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소설의 좀 더 중요한 무대는 주인공 데쓰오의 집이다. 지난 3년 동안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온 아내 지카와의 관계.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주인공을 키워온 어머니, 그리고 지카와 그녀의 부모님(주인공의 장인 장모) 사이의 관계까지. 그러니까 작가는 죽음이라는 것이 그 당사자 주변의 여러 관계들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카는 남편의 죽음(자살)이 자신 때문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마음속에 큰 돌처럼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일찍 남편을 잃은 데쓰오의 어머니는 또 다시 아들마저 잃고서 (티를 내지는 않지만) 큰 충격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며느리인 지카와의 관계를 삐걱거리게 만들었고. 사람은 살아서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인 것 같다.


전국(아니 전 세계)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그들이 모여서 협력단체를 만들고, 당연히 그들을 의심스럽게 보고 나아가 혐오하는 이들까지 출현하면서 잠시 장르가 사회물로 가나 싶었지만, 작가는 다시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한다. 적어도 외부적인 위협은 그리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자신의 죽음의 진실과, 그의 정신을 계속해서 헤집는 경비원 사에키(그의 말은 글로 읽는 데도 구역질이 날 정도다)와의 만남, 그리고 마지막에 갑자기 나타난 또 다른 반전.





결말부의 시간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갑자기 살아난 사람들은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한다. 죽음이라는 건 우리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무엇인 것이다.


이제까지 자신의 죽음에 관해 누군가의 탓을 하려고(원인을 찾으려고) 애썼던 테츠오는 비로소 자신이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를 진심으로 후회한다. 다시 살아와 보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더욱 실감했달까. 우리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뒤늦은 후회를 반복하는 것 같다.


기발한 소재를 재로 삼아 우리의 (평범해 보이는) 삶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괜찮은 작품을 써냈다. 이 작가도 기억해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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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서 듣는 음악
하태우 지음 / 워크룸프레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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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특이했다.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이라. 이 책은 작가가 감상한 여러 음악 앨범들 중에 좋아했던 것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음악 에세이다. 그런데 작가가 세 살 때부터 근육병 진단을 받은 장애인이라는 점이 조금은 다른 점이랄까. 하지만 뭐 음악을 감상하는 데 신체의 장애가 (청각 장애가 아니라면) 뭐 그리 특별히 다를까.


물론 오랜 시간 장애를 안고 살아온다는 건, 자연히 사람의 사고와 심성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일 것이다.(당연히 그 영향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고) 그리고 이런 부분이 특정한 음악을 감상하는 데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걸까?





책에 언급된 노래들은 대부분 밴드의 곡들이다. 헤비메탈도 있고, 락도 있었던 것 같고. 물론 조금은 잔잔한 장르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관심이 있는 장르는 아니다(덕분에 소개된 앨범 대부분은 모르는 곡들이었다). 일단 귀를 시끄럽게 만드는 노래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니까.


대신 노래를 들을 때는 가사에 자주 집중하는데, 또 이 점은 작가와 어느 정도 비슷하기도 하다. 책에 실린 몇몇 노래들에는 관심이 좀 생겨서 유튜브로 찾아보기도 했다. 나중에 한 번 제대로 들어봐야지.


책은 각 앨범마다 대부분 두 페이지가 할당되어 있는데, 왼쪽 페이지에는 그 앨범의 표지가, 오른쪽에는 그에 대한 작가의 설명과 감상이 담겨 있다. 한참을 페이지를 넘기다가, 요새는 앨범 이미지를 다들 이렇게 유화 느낌으로 만드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앞서도 말했던, 유튜브로 찾아본 앨범 사진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이거 다들 사진으로 된 원화를 유화 느낌으로 바꾼 거구나. 여기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까.





모든 글은 결국 그것을 쓴 사람의 일부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제목부터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는 이 책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음악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일부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에 관한 생각도 아울러 묻어난다. 그런 부분들은 조금은 무거운 느낌이다.


억지로 밝은 척은 아니다. 그냥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남긴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나처럼 좋아하는 곡이 거의 없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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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걷는사람 에세이 7
김봄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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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달에는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를 다룬 책을 읽었으니, 이번 달에는 균형을 맞춰보자(?)는 심산으로 이 책을 골라봤다. 제목이 뭔가 말랑말랑하지만, 아무튼 ‘좌파’라는 단어가 들어가니까.


그런데 책은 예상과 달리 본격적인 정치철학 책도, 그렇다고 정치판 인근에서 살아온 사람의 경험이 담긴 것도 아니다. 물론 책 말미에 작가가 당시 매력을 느꼈던 이낙연이라는 정치인(그 시절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물론 그 후의 갈지자 행보로 실망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에 관한 한 두 개의 에피소드가 나오긴 하지만, 주되 내용이라고 하기엔 주변적 소재일 뿐이다.





책은 작가가 “손 여사”라고 부르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다. 5남매의 셋째로 태어난 저자는 유일하게 결혼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그게 어머니를 비롯한 부모님의 큰 걱정을 사고 있다(나도 충분히 어떤 느낌인지 안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시고, 요 근래에는 이상한 유튜브 채널에 빠져서 정치적인 편향성을 강하게 띠기도 하는 듯하다.


반면 딸 쪽인 작가 역시 딱히 사상적으로 투철한 “좌파”는 아닌 것 같다. 이명박 시절 대학을 다니던 작가는 강제적인 학과 통폐합을 경험하면서 권위적 행정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부당한 대우(성추행을 포함한)로 인해 이런 경향이 좀 더 강해진 듯하다.


당연히 정치적인 주제로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책에도 몇 번인가 등장하는 정치적 대화는 금세 끊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끊어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어쩌면 책은 우리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가정에서 경험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의외로 가까운 관계에서도 좀처럼 진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작가의 경우는 그 정도는 아닌 듯.





책 제목에 나오는 “좌파 고양이”란, 고양이가 좌파라는 말이 아니라 좌파인 딸이 키우는 고양이는 맡아줄 수 없다는, 조금은 심술이 섞인 어머니의 말에서 나온 표현이다. 결혼도 안 한 딸이 갑자기 한 달간 프랑스를 다녀와야 하니 고양이 좀 맡아 돌봐달라고 하니 하는 말이다. (이 또한 어떤 감정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실 전체를 이끌어 가는 내용은 아니지만, 제목은 잘 붙였다. 덕분에 내가 손에 들게 되었으니까. 정치적 성향이 조금은 다른 엄마와 딸이 투덕거리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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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몽
김승은.김희진 지음 / 베드로서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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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과 신학을 전공한 엄마(김희진)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딸(김승은)이 같은 영화를 보고 각자의 소감과 분석을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원래는 블로그에 적었던 글이라고 하는데, 그 때 항목이 이 책의 제목인 “영상이몽”이었다고 한다. 같은 영상에 대한 다른 꿈(해석)이라는 의미였을까.


모두 스물여섯 편의 영화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꽤 많다.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 관련 책들이 십수 개 정도의 영화를 담지 않던가. 여기에 각각의 영화마다 두 사람이 쓴 글도 빽빽하게 여러 페이지여서 전체적인 볼륨은 좀 더 커 보인다.


각 장마다 한 편의 영화를 두고 두 사람이 순서를 오고가며 각자가 요약한 줄거리와 분석을 싣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똑같은 영화의 줄거리를 매번 두 번씩 반복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든다. 물론 같은 영화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니 줄거리 요약도 약간 다를 수 있지만, 차라리 두 사람이 함께 줄거리를 요약하고(한 사람이 쓰고 다른 사람이 덧붙이던가 하는 식으로) 각자의 느낌만 남겼더라면 어땠을까.





영화평 부분도 각자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실은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서로 대화가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런 것들을 다 반영하려면, 애초에 블로그에 써서 모았던 글을 엮는 것보다 훨씬 더 품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예상은 되지만.


신학을 전공한 엄마 쪽은 확실히 신학적인 해석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딸 쪽은 조금 더 개인적인 평에(그리고 사회적인 분석 쪽에) 가까워 보인다. 둘 다 영화의 미학적인 부분은 딱히 다루지 않고, 주제 면에 집중하는 공통점이 있다.



책에 실린 스물여섯 편의 영화들 중에 절반을 조금 넘은 영화들을 이미 본 것 같다. 요새는 한 달에 한 편 보기도 어려워졌지만, 한창 때는 1년에 거의 100편씩 보기도 했었으니까. 이런 책은 역시 아는 영화가 나와야 좀 더 재미가 있다.


내가 봤던 기억과 책에 실린 평가 사이에 공통점과 차이점들을 찾아보면서 읽으면 좀 더 흥미가 있을 것이다. 아직 못 봤던 좋은 영화들을 발견해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보는 또 하나의 유익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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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데스다
안동혁 지음 / 미션앤컬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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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딱 10년 후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직을 두고 공개 방송 오디션이 펼쳐진다. 흥미로운 설정이다. 참가자들은 서바이벌 게임 형태의 미션들을 수행하면서 다음 단계로 진출하기 위한 일종의 대결을 펼치고, 그 과정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서 송출된다. 우리 눈에 익숙한 형식의 전개가 조금은 흥미롭게 펼쳐지지만, 그 과정에서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교회란 무엇인지, 목사란 어떤 사람인지 하는 본질에 관한 질문이다.


부제로 붙어 있는 ‘The Pastor Game’이라는 명칭은 몇 년 전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드라마 속에서 사람들은 말 그대로 탈락할 때마다 죽어나가면서 수 백 억의 상금을 위해 미션을 수행해 나간다. 목사가 되는 일이 어디 그와 비슷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지간한 규모의 교회에서 담임목사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특전(?)들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1회성 상금보다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불나방처럼 그런 보상에 뛰어드는 비정상적 목회자들도 수두룩한 게 사실이고.





다만 소설은 그런 문제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오디션에 참가한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미션에 대처해 가는 방식을 따라갈 뿐이다. 이 과정에서 특별히 억지스러운 빌런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이 부분은 이 작품의 약점과도 관련이 되어 있는데, 전반적으로 주인공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에 관한 개인서사가 부족하고, 때문에 인물들이 좀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이건 다른 말로 하면, 주인공 이야기에 집중하는 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책 곳곳에 오늘날 교회에 관한 작가의 인식이 묻어 나온다. 내부와 외부인들의 기대와 신뢰를 진작 잃고, 최대종교의 위치를 내어주고 곧 소수종교의 길을 가게 될 것 같은 상황, 말 그대로 최하 수준의 기대치를 찍는다.


그런데 어쩌면 바로 거기에서 다시 교회가 일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기본으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이다.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았따면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오늘날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물론 그게 단순히 2천 년 전 교회가 하던 일을 문자적으로 반복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책의 볼륨이 작은데다가 내용도 재미가 있어서 금세 다 읽어버리게 된다. 물론 이제 막 첫 책을 쓴 작가인지라, 설정상의 아쉬움이라든지 하는 부분들이 눈에 몇몇 보이긴 한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주제의식에,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손에 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기독교 안에서도 좋은 소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이런 책들도 괜찮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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