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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반 사우마의 서방견문록 - 쿠빌라이 칸의 특사, 중국인 최초로 유럽을 여행하다
모리스 로사비 지음, 권용철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1년 8월
평점 :
12세기와 13세기는 십자군의 시대였다. 1095년 시작된 첫 십자군의 발걸음은 13세기까지 약 200년 동안 이어졌다. 서아시아에서 수립된 강력한 이슬람 왕조들이 유럽으로 밀고 들어오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과 반발심, 그리고 종교적 열정으로 시작된 이 일련의 전쟁들은 유럽과 서아시아의 정치, 경제적 지형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13세기 말엽이 되면, 더 이상 ‘성지’, 즉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에서의 이슬람 세력의 우세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때문에 문제에 부딪힌 두 세력이 있었는데, 한 쪽은 성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명분을 포기할 수 없었던 서쪽의 기독교 국가들이었고, 다른 한 쪽은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동쪽의 몽골계 국가인 일 칸국이었다.
일찍이 칭기즈칸의 손자였던 훌라구는 당시 서아시아를 지배하던 아바스 왕조를 정벌하고 그곳에 일 칸국을 세웠다. 하지만 13세기 후반이 되면 더 이상 서쪽으로의 확장이 실패하고 있었는데, 그 주요 원인이 이집트를 기반으로 했던 이슬람 왕조인 맘루크 왕조 때문이었다. 일 칸국의 군주들은 서방의 기독교 세력과 손을 잡고 동서에서 맘루크 왕조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이 외교적 협상을 위해 특별한 인물을 특사로 파견한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랍반 사우마’였다.
사우마는 일찌감치 칭기즈칸의 몽골족과 연합한 웅구트족 출신이었다. 웅그트족은 일찌감치 동방교회(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선교로 기독교인이 되어 있었고, 사우마는 그런 유력한 웅그트족 출신 가문에서 태어났다. 자녀가 세속적인 성공의 길을 걷기를 바랐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사우마는 기독교 신앙에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했고, 결국 수도사가 된다.
얼마 후 마르코스라는 이름의 또 다른 웅그트족 소년이 사우마의 수도생활에 합류하는데, 마르코스는 자신의 선배이자 스승인 사우마에게 서쪽에 있는 성지를 방문하자는 의사를 피력한다. 결국 그렇게 두 사람은 기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동방교회의 중심지인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갖은 고생 끝에 마침내 몽골족이 지배하고 있는 일 칸국에 도착한 그들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상황을 마주한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동방교회는 몽골족 지배자들에게 배려를 받고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과 그 인근이 온통 무슬림들이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견제세력으로 기독교인들과의 제휴를 선택했던 것.
이곳에 머무는 동안, 당시 동방교회의 총대주교가 세상을 떠났고, 사우마와 함께 온 마르코스가 새로운 총대주교 야발라하로 즉위한다. 그리고 일 칸국 통치자의 요청에 따라 사우마는 서방의 기독교 세력과의 연합을 위한 사절로 파견이 된다. 로마에 도착해 추기경들과 만남을 갖고(마침 교황이 세상을 떠난 상황이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왕을 만나 맘루크 왕조에 대한 협공 제안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새로 선출된 교황과의 면담도 진행한다.
사우마의 여행기는 단순히 동서 세계(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만남이라는 의의만 있는 건 아니다. 비슷한 사건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물론 사우마의 이야기는 그 방향이 반대라는 점에서 독특한 면이 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유럽의 기독교 세계와 아시아의 몽골세력이 연합에 관한 논의를 시도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결국에는 그 연합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협력도 가능한 법이다. 물론 국제 정세에서는 자국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법이라서,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만.
종교적인 측면에서도 사우마의 유럽 방문은 의의가 있는데, 우선은 431년 열렸던 에페소스 공의회 이후로 분열되었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톨릭과 정교회가 아직 완전히 분리되기 전이었다)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서방의 교회와는 달리 독자적인 발전을 해 온 동방교회가 서방교회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는 면도 기억해 둘 만한 부분이다.
동방의 몽골계 유목민족 출신의 인물이 동방교회의 총대주교가 되고, 또 특사의 자격으로 교황과 서유럽의 왕들을 만나고, 일정 가운데 직접 성찬을 주관하면서 예배의 교류까지 이루었다는 점은 교회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가톨릭의 경우 지난 2013년에야 비유럽계 출신의 교황이 나올 정도로 유럽 중심의 권력구조를 유지해 왔었으니까.
특히 사우마와 교황의 만남에서 교회의 일치, 혹은 대화와 연합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시종일관 자신의 신학적, 교회 내 권위를 강조하며 상대를 가르치고 무릎 꿇리려고만 했던 당시 교황의 태도는 어지간히 권력에 취해있는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좀 다른 모습일까.
사우마가 남긴 기록을 따라가면서 그의 여정을 정리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저자의 코멘트가 있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도움말 정도였고, 원래 남아 있던 글의 흐름을 해칠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말을 더하지는 않았다. 좋은 참고문헌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