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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디서오셨어요
권주은 지음 / 도시사역연구소 / 2022년 4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하철에서도, 그냥 동네를 걸어갈 때도 외국인들의 모습이 드물지 않다. 하지만 교회에서 그런 외국인들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아직 적은 것 같다. 비율적으로는 비슷한 수가 나와야 할 텐데, 실제론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 입국해 있는 외국인들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 수가 높은 걸까, 아니면 교회가 그들에게 충분히 안심이 되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일까.
아, 또 한 가지의 가능성이 남아있긴 하다. 국내에 있는 외국인 기독교 신자들은 그들만의 예배 처소를 따로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이른바 외국인교회, 혹은 국제교회인데, 이 책의 저자가 사역하고 있는 곳이 바로 구미의 다문화교회다. 이 책은 그런 그가 이 땅을 찾아온 외국인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겪었던 일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그가 사역하고 있는 교회는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교회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은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은, 이 땅이 돈을 벌기 위해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유학생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의 등장인물들은 그렇다) 도리어 급한 수술비를 준비하기 위해 저자와 아내는 집에 팔 수 있는 물건이 없나 뒤지던 중 교회 임대보증금을 내놓기로 결심한다.
남는 것 없이, 아니 가진 것을 다 쏟아 부어 가며 사역을 하는 모습이 퍽 안 돼 보였는지, 주변의 선배 목회자는 그에게 채찍과 당근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묘한(?) 조언을 해 주기도 한다(여기에 좀 더 깊은 의미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충고로서는 한심한 수준이다). 더구나 저자 부부 역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는 입장이니 돈이 필요한 데가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저자가 사역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럽다는 느낌을 받는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진정한 교제를 나누며, 복음을 실천하는 모습이야말로, 사역자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이런 저자의 사역 나눔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좀 아프다. 코로나를 핑계로 외국인 노동사들을 사실상 회사 기숙사에 감금하다시피 하는 사장이나, 외국인이니(아마도 백인인 서양인이 아니었으니) 다짜고짜 무례한 말투로(우리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겠지) 검사부터 받고 오라고 소리치는 의사처럼, 나름 배우거나 사리분별은 할 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저자가 만난 한 중국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사님은 제가 한국에 4년 넘게 있으며 처음으로 먼저 인사해 주고 말 걸어준 한국인이에요. 그리고 제 핸드폰에 단 한 명뿐인 한국인 친구입니다.” 가슴이 찡했다. 그가 4년 동안 이 땅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힘든 일을 하면서 버텨오는 동안 이 땅의 누구도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는 것은 좀 부끄럽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를 얼마나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법률적 지위를 부여할지는 국가의 주권에 속한 내용이다. 모든 외국인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이 나라에 와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해주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지 않던가. 또 그 일 대부분은 내국인이 잘 하려 들지 않는, 힘들고 상대적인 보수도 적은 것들이라, 이들이 없으면 관련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게 되는 지경인데도 말이다.
그런 이들을 우리 곁에 찾아와 잠시 머무는 방문자로, 손님으로 대하라는 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일까. 아니, 최소한 동료인간으로 대해달라는 것 말이다. 특히나 ‘나그네에 대한 호의’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기록하고 있는 성경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조금은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교회가 이 부분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확신은 들지 않는다.
책 후반부에 저자가 제기하는 한 가지 의문이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한국교회 어디서도 이주민 장로나 권사를 볼 수 없다는 말. 하긴 뭐 아직 (내국인) 여성에게 장로 직분을 주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교단도 적지 않으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인터넷상에는 중국인이나 베트남 사람들을 향한 혐오와 조롱이 가득하다. 남을 조롱해야만 자의식을 세울 수 있는 하찮고 저열한 의식이 한 시대를 가득 채우게 되면, 그런 사회는 반드시 위기를 맞는다. 부디 한국 교회가 최소한 사회가 나아가는 것만큼은, 아니 그것보다는 조금 더 앞서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