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사회학 - 콩트에서 푸코까지, 정말 알고 싶은 사회학 이야기
랠프 페브르 외 지음, 이가람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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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이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스무 살의 사회학]

 

 

 

 

 

 

 

스무 살 그 풋풋하던 시절에 들은 사회학 개론을 다시 듣는 기분으로 읽은 책이다. 사회학을 소설처럼 엮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새롭다.

얼마 전에 읽은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도 심리학을 소설처럼 엮어서 참신했는데 소설형태의 개론서들이 유행인 걸까. 아무튼 상당히 창의적이고 친절한 책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사회학 개론 시간이면 첫 시간에 나올 법한 질문이다.

 

사회학을 좋아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제대로 수업을 이해했었는지, 나름대로 발전시키고 확장시키는 과정들을 해 봤었는지 의문스럽다.

 

한국의 교육이 토론중심이 아니기에 대학에서의 질문과 답변들이 상당히 생소했던 느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대답하기를 쑥스러워 했고 질문하기를 어려워했던 그 시절의 수업.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지만 아직도 주입식 교육이 많지 않을까.

 

 

 

 

 

책에 나오는 알람의 메일에서 보듯이 과제로 평가받고 시험으로 평가받던 우리들의 지식수준은 얼마나 얄팍했던가. 개념들이 실제와 들어맞는지, 그 사상가들이 그런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나 했던가. 사회학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이지는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다.

 

 

 

 

 

 

이 책에는 사회학을 전공하는 밀라라는 여학생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사회학을 왜 공부하는지, 사회학이 실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며 , 사회학 이론들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대화형식으로 풀어 나간다. 단순히 이론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대화, 토론형식이다.

딱~ ! 유태인들의 토론을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여러 사회학적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이 공부했던 이론가들의 이론을 연결시키고 확장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이론이 현실세계 즉, 일상과 동 떨어진 것이 아님을 느껴간다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뒤르켐, 촘스키, 파슨스, 콩트, 쿨, 베버, 푸코, 마르크스, 엥겔스 등 많은 사상가들과 그들의 이론들을 삶에 어떻게 적용하고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질문들이 가득하다.

 

 

 

사회학이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사람들을 대하는 더 나은 방법과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게 할 방법이 사회학에 존재할까.

우리가 정말 다른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떤 현상을 설명할 뿐 아니라 그 가치를 판단하는데도 도움을 주는 이론은 현실이 기존 상태에 머물지 않게 합니다. 이론가는 현실을 정당화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사람이어야 해요.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은 이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거군요. 저는 무엇이 세상을 바꾸었는지를 찾는 것이 이론이라고 생각했는데요. (p.47)

 

 

 

 

 

이 책에서는 소설처럼 읽든, 자료로 활용하든, 독자들의 취향 따라 관심 가는 사상가와 주제, 개념을 골라 보면서 사회학 공부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했으며, 17장에는 참고 문헌들을 찾기 쉽도록 더 읽을 것들을 정리해 놓았다.

 

 

 

 

-콩트는 왜 사회를 사회학을 연구 대상으로 삼으려고 했나요?

-콩트는 사회를 개인의 산물로 볼 것이 아니라 개인을 사회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형성하는 사회를 이해해야 합니다. (73-74쪽)―본문 중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마지막 부분에 사회학자와의 질문거리들을 정리해 놓아서 이해를 돕고 있다. 정말 친절한 사회학 개론서이다.

 

 

 

이 책을 정리해 보면 사회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지만 '어떤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행동방식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학이란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그 시절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사회학에 대한 향수와 관심을 다시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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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박희주 지음 / 책마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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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와 함께 한 사랑과 추억들....[내 마음 속의 느티나무]

 

 

 

9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을 읽으니 제목만큼이나 잔잔한 여운을 준다.

바람소리 물소리 들리는 고즈넉한 시골풍경을 떠올리게도 하고, 어릴 적 추억의 학교 길을 그려보게도 하고, 이웃집의 소소한 일상들을 상상해 보게도 하는 친근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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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마음을 더욱 끄는 건 마지막에 나오는 <내 마음 속의 느티나무>다.

느티나무.

 

예전에는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마을의 수호신 같이 우뚝 솟은 존재였다. 휘휘 늘어진 가지마다 무성한 잎들이 반짝이는 한여름이면 뜨거운 햇볕을 가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곳이었다. 어머니 품 속 같던 편안함으로 동네놀이터, 동네사랑방의 역할을 든든히 했던 느티나무. 그 아래에서 모든 만남이 이뤄졌고 모든 마을 문제가 논의 되었으며 모든 마을사람이 모이던 곳이었다.

 

 

우등생인 이찬이는 학교에서 제일 예쁜 미숙이를 좋아한다. 같은 동네, 같은 나이, 같은 학년, 같은 반이면서도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던 어느 날 둘은 이찬이가 길가의 밭에서 따 준 단수수대를 먹으며 친해진다. 간식이 귀하던 시절이었기에 자연에서 얻은 열매가 제일 좋은 간식이었다. 앵두만한 파리똥(보리수 열매)을 먹자며 지름길인 산길로 가서 흰 점이 야리야리한 빨간 파리똥 열매를 맛있게 먹게 된다. 그러다 작은 동굴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추억을 쌓게 된다. 그 이후로 둘은 더욱 가까워지나 진학을 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삼십년의 세월이 흘러 대학교수가 되어 고국을 찾고, 고향을 찾은 이찬.

그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마을의 느티나무 두 그루는 베어지고 그곳에는 도로가 나고 옆에는 새로운 정자가 들어서 있다. 어린 시절의 풋 사랑이었던 미숙이는 교통사고로 숨진 남편을 먼저 보내고 고향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 환대해 주는 고향 사람들, 고향을 떠난 사람들과 고향에 남은 사람들.....

 

베어진 느티나무만큼이나 마을도 변했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한 시간 동안이나 걸어가던 등교 길은 10분 만에 차로 달릴 수 있고, 수수밭 자리에도 넓은 도로가 나고, 오십호 하던 마을이 열다섯 채 남짓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고향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박사논문을 마치느라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한 이찬은 그제야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것은 느티나무와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은 느티나무도 없고 아버지도 계시지 않는다. 자신도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느티나무 같은 아버지가.

 

아버진 너나 너그 성이 높은 사람이 되길 원치 않는다. 사람의 도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면 그만이다. 사람의 도리를 지킬 줄 알면서 큰 사람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만 말이다. 단 한 가지 너도 커서 장가를 가고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 애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애비로서 버팀목이 되어줘야 한다는 거다. 뙤약볕이 내리쬘 때 저 정자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마을사람들을 쉴 수 있게 한 것처럼 너도 그늘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네 새끼들의 그늘, 나아가서는 너보다 못한 사람들의 그늘 말이다.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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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느티나무와 아버지의 든든함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한 듯하다. 베어진 느티나무만큼이나 아버지의 부재는 씁쓸하고 마음을 허전하게 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존재들은 다 든든한 느티나무 같은 추억을 갖고 있지 않을까.

 

 

태어나고 자란 곳의 느티나무. 나에겐 그런 느티나무는 없지만 지금도 부모님들이 느티나무처럼 든든히 버티고 계신다. 그 느티나무들이 오랜 세월을 건강히 잘 지냈으면 좋겠다.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해보는 시간, 어릴 적 추억을 곱씹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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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추리 - 강철인간 나나세
시로다이라 쿄 지음, 박춘상 옮김 / 디앤씨북스(D&CBooks)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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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을 허구추리로 해결하는 신선함이!! - 허구 추리 강철인간 나나세

 

 

 

만화 같은 미스터리 소설이다. 요괴, 귀신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무섭기 보다는 귀엽고 깜찍하고 발칙하다. 으스스한 분위기 보다는 기발하고 톡톡 튀는 분위기다. 일본에서 제 12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는 시로다이라 쿄. 그가 '절원의 템페스트', '스파이럴 얼라이브' 등의 애니메이션의 원작자라고 하는데 만화는 잘 보지 않기에 처음 듣는 이름이다. 만화가의 특징을 살려 목차를 만화로 그렸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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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도, 병원에도, 강에도 산에도 요괴, 유령, 마물이 숨어있고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 있고, 나무에도 풀에도 숨어 있지만 대부분은 해를 끼치지 않고 존재한다는 설정이다.

 

일안일족一眼一足

비를 맞으며 잠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와나가. 150센티미터도 채 못 되는 키에 40킬로그램도 나가지 않는 자그마한 체구. 크림색 베레모를 쓰고 언제나 우아하게 빨간 지팡이를 짚으며 세상 고민 따윈 모른다는 듯 재잘거리는 특징이 있다.

그녀는 열한 살 때 2주 동안 유괴를 당한다. 요괴들에게 유괴되고, 지능이 떨어진 그들을 대변해 주는 지혜의 신이 되는 조건으로 그녀는 풀려난다. 단 일안일족이 되어. 한쪽 눈과 다리가 없는 일안일족은 지혜의 신이 되기 위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의안과 의족으로 완벽히 변신했지만 그래도 모자와 지팡이가 필요했던 이와나가. 베레모와 빨간 지팡이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다.

그녀는 병원에서 만난 쿠로를 2년간 짝사랑해오다 최근 애인과 이별한 쿠로에게 구애를 한다. 그녀는 기회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성미가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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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와나가가 좋아하는 남자인 쿠로.

요괴마저 그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왜 일까.

옛날부터 인어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한다는 전설이 있다.

스물한 살 때 할머니의 속임으로 자기도 모르게 요괴 둘, 즉 쿠단과 인어고기를 소고기나 생선회 쯤으로 알고 맛있게 먹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요괴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존재,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된다.

그가 요괴마저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키는 이별을 통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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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의 전 애인 사키. 현재 경찰관이다. 도시전설이 실체로 다가 오고 있음을 알고 의무감을 갖고 요괴를 잡고자 한다.

강철인간 나나세.

나나세 카린은 연예계 아이돌이었지만 악의적 루머로 인해 피해 다니다가 결국엔 철골에 맞아 처참하게 죽게 된다. 타살인지 자살인지도 모른 채. 그리고 그녀는 귀신이 되어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도시전설이 된다. 얼굴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아이돌 시절의 의상인 검은 미니드레스를 입고 왕 가슴을 드러낸 채 기다란 철골을 휘두르며 그녀가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소문이 난 것이다. 그리고 강철인간 나나세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단지 꾸며낸 이야기였죠. 하지만 이름과 형태를 얻은 허구는 수천, 수만, 수십만이나 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뿌리를 박고 여러 사람들을 오가면서 점점 피와 살을 붙여나가, 결국 실체를 얻게 되죠. 바로 사람의 상상력이 괴물을 낳은 겁니다. (본문 중에서)

 

하나의 사실에 아주 사소한 계기로 정체모를 무엇인가가 끼어들게 되고 어떤 힘도 실체도 없으면서 발 없는 소문이 천 리 만 리를 가게 되면 결국 힘을 얻고 실체도 얻는다는 도시괴담. 거기에 이름까지 붙기 시작하면 더욱 강력해 지는 힘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 그 소화하기 어려운 이야기에 더 강력한 허구를 만들어 전파하자는 이와자가 일당들...

인터넷을 통한 허구에 대항하여 또 다른 강력한 허구를 만들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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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허구에 허구추리로 맞선다는 설정이 정말 이색적이고 기발하다. 사람의 상상력이 만든 존재는 상상력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진다는 데 단서를 두고 더욱 압도적인 허구를 소문내어 요괴를 물리친다는 설정이 논리적이기까지 하다.

 

인터넷괴담, 연예인들의 인터넷 소문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대되고 실체처럼 키워지는지를 잘 보여준 소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쉽게 비틀어지고, 망가지고, 혼란스러울 수 있는지를 잘 반영한 소설이다. 인터넷이 생기면서 소문의 망령이 키워진다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이제 전설은 산에서, 바다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세상이다. 조심스럽다.

 

불안정하고 혼란스런 세상이기에 도시전설은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있는 도시괴담은 무엇일까.

괴기소설, 호러소설인데도 추리소설, 연애소설 같은 느낌이 많아서 궁금해 하며, 신기해 하며,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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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게르트루트 - 문예 세계문학선 067 문예 세계문학선 67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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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음악가의 열정, 사랑, 고독의 노래 - 게르트루트

 

 

헤르만 헤세의 글들을 좋아해서 학창시절부터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게르트루트>는 처음 읽는다. 처음 접하는 제목이 사람이름인 듯해서 자전적 성장소설일까 싶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니다.

<데미안>, <수레바퀴아래서>, <크눌프 삶> 등은 자전소설의 경향이 짙은데 반해 <게르트루트>는 소설다운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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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글을 읽다 보면 문장들이 별처럼 빛나게 쏟아지고 꽃향기처럼 흩날리며 공간을 가득 매운 듯해서 좀체 눈을 뗄 수가 없는데, 이 소설은 그 정도가 더하다고 할까. 헤세의 표현력에 감탄하며 음미하며 읽다보니 정독을 하게 된다. 속독을 하기엔 너무 아까운 문장들이다. 밑줄 쫙~ 치느라 읽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지나치게 행불행을 따지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불행한 시절이라 해도 그것을 내버리기란 갖가지 즐거웠던 시절을 내버리기보다 더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감수하고 좋은 일도 궂은일도 충분히 맛보고 나서, 외적인 운명과 함께 우연이 아닌 내적인 본래의 운명을 획득하는 것이 인간생활의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내 생애는 가난하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외적인 운명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이 신의 뜻대로 내려져 지나버렸다 하더라도, 내적인 운명은 나 자신이 만들었으므로 달든 쓰든 당연히 내 것이며 거기에 대해서는 나 혼자서 책임을 지려고 한다. (본문 중에서)

 

 

주인공 쿤은 소년시절에 여자 친구가 무모한 썰매를 타자고 하는 바람에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오다 한 쪽 다리를 다치게 되면서 인생이 달라진다. 그 짧고 경솔한 썰매타기로 청춘의 쾌락과 어리석음에 대한 보상을 치르게 되고, 절름거리는 다리로 보통 사람처럼 걸을 수도, 뛸 수도, 춤 출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활발한 성격이 점차 소심해져 간다. 그러다 고독과 씨름하면서 음악에서 구원을 찾게 된다.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작곡을 하면서 깊은 위안을 받게 된다. 가곡을 만들고 아리아를 만들고 오페라를 만들면서 생활에 활력이 생기게 되고 차츰 명성을 얻어 간다.

 

 

음악은 거침없이 흐르고, 이제는 보이지도 않고 보려고도 안 한 게르트루트를 향해 황금의 길로 나를 데리고 갔다. 마치 아침 나그네가 누가 요구하지 않아도 주저 없이 이른 아침의 연한 하늘색과 더 맑은 초원의 반짝임에 몸을 맡기듯이, 나는 음악과 호흡과 사상과 심장의 고동을 그녀에게 바쳤다. 아울러 기쁜 마음이 들고 음이 넘쳐흐르면서 놀라운 행복감이 나를 드높였다. 별안간 사랑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본문 중에서)

 

 

드디어 사랑을 찾은 쿤은 용기를 내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게루트루트에게 고백하려는 찰나에 가장 친한 친구인 무오트가 둘 사이에 끼어들게 된다. 결국 무오트는 게르트루트와 결혼하게 된다. 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며 희생을 모르는 무오트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게르트루트와 결혼을 하다니... 바람기 많고 폭력적인 그를 게르트루트가 사랑을 하다니.....

상심한 마음에 자살을 결심하지만 '부친위독 속래요망 모' 라는 전보를 받게 된다. 부친의 사망과 모친의 뒷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마음의 상처를 극복해 간다.

그리고 쿤은 어릴 적 꿈처럼 오페라작곡자로 점점 이름을 날리게 되고 무오트는 여전히 가수로서의 명성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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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친한 친구와 한 여인을 둘러싼 삼각관계라는 흔하디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헤세 특유의 문장력에 끌려 감동하며 읽게 된다.

음악적인 표현들, 심리묘사가 너무나 아름답다.

온 우주에 하모니로 가득 채워져 있는 듯, 박자와 리듬이 숨결 속에 흘러 다니는 듯, 선율들이 춤을 추며 마음에서 솟아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읽으면서 독일인이 된 듯, 독일마을에 사는 듯 한 느낌으로 읽었다.

필사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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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클림트의 그림에도 게르트루트에 대한 그림이 있다.

클림트가 <게르트루트>를 읽고 아름다운 <게르트루트 뢰브의 초상>을 그렸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쾌락과 고통은 한 순간에 바뀔 수 있는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고통스럽기도 하고 감미롭기도 하고 ...그 속에서 창조력은 활활 불타오르게 되는 것 처럼. 그리고 모든 고통은 자신의 의지로 극복한 자에게만 회복이라는 선물을 준다는 것도 생각하게 된다.

 

** 한우리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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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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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한 오늘을 사는 흠집투성이들 - 파과

 

 

<피그말리온 아이들>을 통해 구병모 작가를 처음 알았다. 그러다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게 되었고 오늘 <파과>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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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果는 흠집난 과일이다.

냉장고 속에 넣어 두고 있는 줄 도 모르다가 어느 날 청소하다 보면 물러 문드러진 복숭아처럼. 무관심 중에 내버려졌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웃의 상실된 부분에 대한 상처다.

 

 

첫 부분의 내용들이 너무 무서워, 너무 소름 끼쳐서, 너무 끔찍해서 밤에는 결코 읽을 수 없었던 이야기다.

이런 생도 있을까, 이런 사람들도 있을까.

이해되지 않은 소설 속 이야기였지만 작가의 글 솜씨에 이끌려 읽다 보니 어느새 클라이맥스다.

너무 불쌍해서, 너무 슬퍼서 마지막엔 먹먹한 가슴으로 책을 덮고 마는 이야기다.

 

 

금요일 밤 전철에 올라 탄 65세의 노부인 조각 .

아이보리 면 모자에 꽃무늬 티셔츠와 카키색 바람막이 점퍼 차림의 그저 평범한 할머니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갈색 보스턴백에서 성경을 꺼내 루페로 성경을 읽는 교양 있는 연장자의 전형일 뿐이다.

잠시 후 열차가 멈춰서면서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중에 50대의 건장한 남자가 일수 가방을 품에 안은 채로 퍽 쓰러지게 되고 공익요원과 역무원이 몰려온다. 그러는 혼란 중에 그녀는 화장실에 가서 루페 속에 감춰진 비수의 독을 닦고 있다.

그녀는 누구 일까.

왜 그런 일을 하게 된 걸까.

이제는 기억력도 가물가물하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은 나이일 텐데 젊은이들보다 빠르고 민첩하게 살인 청부업을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녀는 방역업체의 원년멤버로서 대모라고 불리는 현역이다. 마약이나 도박처럼 방역도 중독성이 있는지 45년간 사람 죽이는 걸 업으로 살아온 여자다.

 

어릴 적 낳아 준 부모는 가난을 이유로 조각을 당숙 집에 식모로 보냈다. 결혼하는 당숙 집 언니의 귀금속을 잘못 건드렸다가 당숙 집을 쫓겨나게 되면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하는 업소로 오게 되고 자신을 겁탈하려는 외국인을 찔러 죽이게 된다. 그녀의 솜씨를 눈 여겨 본 조와 류가 그녀를 거두면서 시작되는 청부업자 생활.

 

사회의 벌레들을 없앤다는 방역업에 종사하면서 그 일을 시킨 고위층이나 유지들이 누군지, 그들이 얼마나 더 벌레 같고 쓰레기 같은지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방역 대상의 대부분이 기족이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남은 가족에 대한 생각도 연민도 가져 본 적이 없던 그녀다.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아이가 해외 입양 브로커의 손에 넘어 갔을 때도 생물학적 어미로서의 죄의식이나 슬픔 또는 그리움은 사치였다. 그러니 타인의 눈 속에 든 공허감을 보며 공감이니 연민이니 하는 건 새삼스러운 얘기다.

 

 

같은 방역업체의 투우는 아들 뻘이다.

어렸을 적에, 자신의 아버지가 집에서 칼 맞아 쓰러져 있고 엿새간 가사를 맡아서 자신에게 알약을 갈아주던 도우미가 창문으로 탈출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왜 그랬을까. 왜 아버지를 죽여야 했을까.

방역업체를 찾아 아버지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녀의 정체가 뭔지를 찾고자 방역업체에 들어온 투우,

그는 특전사 출신이라는데 책도 많이 읽고 인물도 말끔하지만 엄마뻘인 조각에 대해서 말끝마다 시비다. 사실 방역업체 직원 끼리 안면을 트고 지내진 않는다. 일의 특성 상 철저한 개인 플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는 늘 조각에게 시비를 건다.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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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이 50대 남자의 방역을 하던 중 심하게 다쳐서 거래 병원의 장박사에게 갔던 날이다.

흐릿한 시야에 강이 장으로 보이는 바람에 강 박사의 치료를 받게 된다.

칼에 맞은 등을 치료해주는 젊은 강 박사의 눈길에서 그녀는 무엇을 느꼈을까. 서로 비밀로 하자고 했는데도 불안함에 뒷조사를 해서 강박사 부모가 하는 시장 귀퉁이의 과일 노점을 기웃거리게 된다.

과일 노점에서 노부부가 손녀와 지내는 것을 보며 새삼스럽게 부러운 시선으로 일상의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45년의 세월동안 금기시 되었던 일상의 즐거움을 부러워하며 주인 할머니와 수다를 떨기도 하며 과일을 사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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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은 누가 왜 이것을 원하는지 묻지 않는다. 단지 구제해야 할 해충이나 소탕해야 할 쥐새끼처럼 설명도, 동정도, 계산도 필요치 않다. 의뢰인이 고위 공직자일수록, 방역대상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입장을 가진 자일수록 '왜'는 언제나 누락된 채 업자에게 전달된다. 그의 죽음으로써 누가 무슨 이득을 얻게 되는지, 그의 죽음이 창출하는 이윤을 방역업자는 계산하지 않는다.

 

 

삶들은 자기가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꼭 남더러 갈 곳을 끈질기게 묻더라.

......

희미해지던 양치식물의 냄새가 사라지고 그녀는 투우의 눈을 감긴 다음, 역시 무심코 중얼거린다.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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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상실과 마모의 생을 살았다는 조각과 투우의 과거는 너무나 어둡고 칙칙하다. 양지바른 곳의 삶, 세로토닌이 상승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인간이 된 듯한 삶은 언감생심이다. 남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나 자신의 기쁨에 대한 권리도 모르는 연체동물 같은 하루다. 이런 삶이 있을 수 있을까. 너무 극단이 아닐까.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그런 삶이 없길 바라고 바래본다.

작가의 이야기는 늘 사회적 문제의식을 깔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혀 과하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느낌들이 신선하다 싶었는데, 이번 작품은 충격적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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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주연의 영화 <더 테러 라이브>를 보고 와서일까.

사회에 대한 분노, 개인에 대한 분노가 무의식에 깔릴 때의 폭발력을 보며 끔찍함을 생각한다. 상실이 습관화되면 일상적인 의미들이 사라지고 파괴적이 된다는 건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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