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한국 베스트 단편소설
김동인 외 지음 / 책만드는집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다시 읽고 싶은 한국 베스트 단편소설

 

 

아마도 중학교 때 읽었을 것이다.

친구네 집에서 한국 단편소설전집을 샀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달려가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추억의 한국 단편소설…….

 

다시 읽고 싶어서 얼마 전에는 한국단편소설집, 고전소설집을 사 두기도 했는데……다른 책들에 밀려서 아직은 책꽂이에 꽂힌 신세다.

 

 

<다시 읽고 싶은 한국 베스트 단편소설>

이 책에는 모두 13편이 들어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 레터,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 김유정의 봄 봄, 동백꽃,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이상의 날개, 김동인의 감자, 배따라기,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최서해의 탈출기,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헐~

다 읽은 내용이건만 13편의 단편소설들이 추억 속에 가물거릴 뿐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세월의 흔적이겠지.

가장 끌리는 대로 김동인의 감자와 배따라기를 먼저 읽었다.

 

 

<감자>

주인공 복녀는 원래는 가난한 농가에서 예절을 알고 자라던 처녀였다. 하지만 가난이 죄인지라 팔십 원에 20년 연상의 홀아비에게 팔려가게 되면서 그녀의 인생도 추락하게 된다. 늙은 남편은 극도의 게으름이 취미인 사람이라 가진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복녀를 산 팔십 원이 마지막 남은 그의 재산이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남편의 게으름은 더해만 가고.... 결국 밥벌이에 나서는 복녀.

 

그녀는 거지가 되어 구걸하기도 하고, 송충이 잡는 잡역을 하며 악착같이 밥벌이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좀 더 쉽게 돈 버는 일에 눈 뜨게 된다. 실컷 놀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재미를 알면서 그녀의 도덕관과 인생관도 변해간다.

 

잠깐 몸을 내주고 유쾌하고 쉽게 돈 버는 것을 삶의 비결이라 터득한 그녀는 점점 대담해져 간다.

빈민굴 여인들이 일하러 가는 감자밭에서 소작인인 왕 서방을 알게 된 것이다. 매일 몸을 주고 그 대가로 받은 돈으로 빈민굴의 부자소리를 들을 즈음에……

 

왕 서방이 돈 백 원으로 처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복녀의 살길을 막는 그 혼례를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그녀는 낫으로 왕 서방을 위협하다가 되레 자신이 죽게 된다.

이후에 왕 서방과 복녀 남편은 뒷거래로 사건을 매듭짓게 되고…….

결국 복녀가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사의 진단과 더불어 남편의 손에는 지폐들이 쥐어지고......

 

가난이 일상이었던 시절, 배고픔이 당연했던 시절이기에 복녀의 죽음이 애달프다.

살아남기 위해 불륜과 합의했던 복녀의 삶이 옳지는 않지만 그 상황을 이용하는 남자들의 몰염치와 이기심에 분노하게 된다.

 

 

예전에는 어떤 감정으로 읽었을까.

어린 마음에 그냥 분노 정도 했을까.

대부분의 단편소설 속에는 주로 가난과 남녀상열지사, 불륜과 부패, 나라 잃은 설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으니 새롭다. 작가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느껴지기에 시대를 초월한 친밀감이 생긴다.

김동리의 <을화>, <무녀도>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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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의 쿠데타 단비청소년 문학 5
나나이 고즈에 지음, 김영희 옮김 / 단비청소년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남고 리듬체조부가 힙합부가 된다면?! [5일간의 쿠데타]

 

 

 

 

 

십대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고 싶은 것은 모든 아이들의 로망이겠지. 특히 남자 고교생이라면 좀 더 폼나는 클럽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싶을 것이고.....

 

 

세이난 실업고교의 강점은 전교생이 클럽에 가입해 있고 특별히 운동부가 강한다는 점이다. 운동부가 활성화된 학교이기에 전교생이 하나의 운동부나 클럽에 소속하도록 하고 있다.

인기가 있는 운동부가 있으면 인기가 없는 운동부도 있는 법.....

 

관악부, 치어리더부, 수영부, 야구부나 농구부는 인기가 있지만 남자 신체조부는 인기가 없다. 다리부분이 없고 아래위가 붙은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남자 리듬체조가 여학생들에게서 징그럽다느니, 재수 없다느니, 촌스럽다느니 하는 모욕을 당하곤 한다.

물론 여자 신체조부는 단연 꽃이다.

 

하기 싫은 신체조를 하느냐, 인기 있고 신나는 힙합을 하느냐 를 고민하는 중에 3학년 캡틴이 빠져 버린다. 캡틴은 전국대회인 인터하이에 출전하느라 담당 선생님, 매니저와 함께 전국대회로 가 버렸다. 절호의 기회다.

여유가 생긴 5일 간에 신체조부 남자아이들은 쿠데타를 벌인다.

 

 

1학년 기요미야의 힙합 보급으로 모두들 들떠있고 이사장의 조카인 고는 신체조부를 힙합부로 변경승인을 받아내는데 앞장선다.

음악을 들으면서 친구들과 눈을 맞추며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다니!

그동안 신체부에선 음악도 없이 규정에 따른 안무를 정확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딱딱하던 동작에서 부드러운 동작을 하고 있으니 새롭고 즐거운 아이들.

이들은 어떤 굴레도 없고 음악까지 있는 춤 동작에 점점 매료되어간다.

비트를 들으며 브레이크, 백텀블링을 하면서 자신들의 진가를 발휘하며 즐거워한다.

 

세상만사란 늘 행복하기가 어려운가 보다.

3학년인 캡틴 하야바시가 전국대회 우승을 해버리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TV타큐프로그램인 <진심론>에서는 인터 하이를 집중취재 하다가 세이난 실업고교의 신체조부로 관심을 돌려 집중취재 한다.

힙합부로 바꾸어 신나는 활동을 기대했던 이들은 다시 급조해서 신체조부로 촬영에 임하게 되고.......

캡틴이 없던 5일간의 쿠데타는 과연 성공일까.

 

 

재미있는 일, 이왕이면 폼 나는 일을 좋아하는 십대들의 귀여운 쿠데타가 웃음을 준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 남들의 멸시까지 받는 일이라면 누구나 반발할 것이다. 자신의 취향과 의견이 분명한 십대들이기에 취미활동 만큼은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청소년 소설이다.

 

 

 

*한우리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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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폴리스맨 - 자살자들의 도시
벤 H. 윈터스 지음, 곽성혜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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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에드거 상 수상작! [라스트 폴리스맨]

 

 

천문학적 명칭이 2011GV1이라는 소행성 마이아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수십 년간 발견된 우주 물체 중 가장 큰 규모의 천체다.

2011GV1은 매우 특이한 고타원 궤도라서 75년 만에 한 번씩만 지구에서 보일 만큼 가까워지는데, 75년 전에는 소행성을 발견하고 추적하는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이라서 몰랐던 존재였다. 이 거대한 천체의 지름이 4.5~7km 로 추정되면서부터 지구와의 충돌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더니 이제는 충돌 가능성 100%. 10월 3일. 아마도 이날이 지구의 종말일 거라고 예고되자 도시는 온통 아수라장이 된다.

 

무중력 상태 같은 혼돈의 뉴햄프셔 콩코드.

소행성처럼 꾸미고 출근하는 자, 버킷 리스트를 들고 마지막 소원을 이루려고 떠나는 자, 불안함에 목매어 자살하는 자,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려고 사표 내는 자들로 가정도 직장도 엉망이다. 석유가 끊기자 도로엔 버려진 차들로 가득하고, 휴대폰도, 전기도 먹통일 때가 많아진다. 종말을 코앞에 둔 사람들은 혼란과 충격에 빠져들고 무기력해진다.

 

 

주인공 헨리 팔라스는 얼마 전에 승진한 형사다.

그는 콩코드 경찰서 범죄수사과 성인 범죄 팀 소속으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일이었기에.

 

어느 날 메리맥 생명보험회사에 다니는 36살 백인 피터 젤이라는 남자가 패스트푸드점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된다. 모두가 자살이라고 단정 짓지만 팔라스는 자살로 보기에 석연찮은 점들이 많다고 여긴다.

허접하고 허름한 복장의 사내 목에 걸린 벨트는 ‘B&R' 라고 새겨진 근사한 이탈리아제 검정 가죽 벨트였으니까. 가난한 남자가 자살할 목적으로 고급 벨트를 마련하다니……. 어울리지 않게…….

 

조사를 해보니 피터는 타고난 보험 계리사였지만 친구들도 없고 다른 궁리도 할 줄 모르던 사람이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친구도 없는 그의 죽음에는 자살할 이유는 많지만 살해당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자살이 흔한 도시에서 새로운 자살자가 나왔다는 것은 전혀 새롭지가 않다는 듯 모두들 외면하지만 팔라스는 책임감을 갖고 직무에 성실히 임한다.

 

자살일까. 의문사일까.

해결되는 살인 사건은 대개 사건 발생 이후 48시간 이내에 해결된다는 원칙이 이번에도 해당될까.

단서는 오른쪽 뺨 위쪽에 나있는 노란 멍 자국, 지갑과 열쇠는 있는데 휴대전화는 없다는 점, 유서도 없다는 점인데…….

사람들은 종말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며 울부짖지만 팔라스의 관심은 살인사건에 대한 것뿐이다.

그에게는 자신 앞에 주어진 일에 충실 하는 게 지구의 종말보다 더 소중한 거라고 믿는다.

수사를 계속할수록 타살의 증거보다는 자살의 정황만 늘어나고 사건에 회의를 가지려는 순간 죽은 피터의 주변 인물들과 얽혀들게 된다.

자살로 교묘하게 위장된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지구 종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기에 불안과 비탄과 광기와 무기력이 난무하다. 그 혼란의 와중에 호기심과 정의감으로 꽉 찬 명석하고 예리한 형사의 활약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지구의 종말을 앞둔 사람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총 3편의 시리즈물이기에 다음 편이 기대가 된다.

2013년 에드거 상 수상작이다.

 

지구에 종말이 온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 스피노자처럼 사과나무를 심지는 않을 것 같고, 지구 종말에 대한 생방송 뉴스를 보고 있을까. 아니면.....

생각하기 싫은 미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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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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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찾아 헤매보셨나요? [제7일]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앞으로 가는 것에만 몰두해 살다보니 뒤를 돌아보는 것이 미흡했구나 싶다.

죽음 가까이 가보지 않아서 실감을 못하는 걸까.

죽음 뒤에 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늘 죽음의 열차를 타고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7일간의 여행을 할 수 있다면 내가 가보고 싶은 시절은 언제일까.

 

 

<제7일>

이 책은 <인생>,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로 유명한 위화의 작품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작가만의 글의 깊이, 일상을 비트는 유머, 시대를 통찰하며 흔들어대는 위트, 서민들의 생각과 생활을 들여다보는 섬세함까지 갖췄다. 작가 특유의 향이 나는 소설이다. 특유의 중국 허브 향이다.

 

첫째 날은 주인공 앙페이가 화장터인 빈의관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무언가가 무너지면서 얼굴이 엉망인 채로 매몰된 그의 죽음 앞에 화장터로 오라는 쪽지와 독촉하는 휴대폰 벨소리. 저승사자가 없고 현대적이다.

 

화장터에 가보니 거기서도 빈부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소파에 앉은 사람과 플라스틱에 앉은 사람, 화려한 수의를 입은 사람과 수수한 수의를 입은 사람, 비싼 유골함을 준비한 사람과 싼 유골함을 준비한 사람, 묘가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양페이는 염도 않고 단장도 하지 않았고 수의가 아닌 잠옷 차림이다. 그에겐 유골함은 켜녕 묘지조차 없음을 알고 씁쓸히 빈의관을 떠난다.

 

양페이는 자신이 왜 죽었고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낯익은 거리를 배회한다.

복잡하게 얽혔을 자신의 기억을 풀어내려면 삶의 마지막 장면인 자신의 기억의 끝부분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흐릿한 도시의 광경 속에는 강제 폭력 철거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가정교사 자리를 구해 첫 수업을 가는 자신의 모습도 보이고, 강제 철거로 붕괴된 집터 위에 덩그러니 앉아서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도 보인다.

 

양페이는 기차가 낳은 아이였다.

만삭의 어머니가 외할머니 댁을 가다가 달리는 기차에서 아이를 낳았고 아이는 곧 철로 위에 떨어져서 젊은 철로원이 아이를 받아서 키우게 된다. 그렇게 양페이는 양부인 진뱌오를 만나게 되고 친 부모와는 생이별을 하게 된다. 결혼도 마다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정성을 다하면 키우는 양부는 나중에 자신이 불치의 병을 앓게 되자 아들에게 부담을 지우기 싫어서 집을 떠나게 된다.

 

 

리칭이라는 예쁘고 능력 있는 아내와 결혼했지만 결혼은 양페이의 몫이 아니었을까.

착하고 성실하고 믿음직하지만 야망이 없는 남자와 능력 있는 예쁘고 야심 많은 여자와의 결혼은 짧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6개월 전 부터 두 사람이 헤어질 거라는 예감이 점점 강하게 들어 왔기에 그들의 이혼은 순조로웠다.

-우리 이혼해요.

-그래.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나는 영원히 당신을 사랑해. (본문에서)

 

 

 

아내가 떠나고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마저 떠나자 양페이는 자신을 길러준 양부를 찾아 헤매다 아버지와 함께 갔던 음식점에서 신문을 통해 갑부가 된 아내의 자살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식당 주방의 가스폭발로 자신도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신문을 보다가 죽은 남자. 황망한 죽음이지만 사실 죽음은 예고가 없는 법이다.

 

죽어서야 사랑하는 양부를 다시 만나게 되고, 아내 리칭도 다시 만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떨어질 수는 없나 보다.

 

창세기의 7일이 안식일인 것처럼 여기서도 제 7일은 안식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고서야 편안하게 화장터로 향하는 주인공을 보며 마음이 짠해진다.

 

죽음 후 7일간의 여정이라기에 어둡고 칙칙할 줄만 알았는데 그 속에는 인정도 있고, 풋풋한 사랑도 있고, 의리, 동정, 인심이 곳곳에서 흘러넘친다. 중국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색다름도 있다.

 

 

발전이라는 명목하게 짓밟힌 서민들의 터전의 붕괴, 산업화 도시화에 밀린 인간성 소멸의 현장,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 빈부의 차가 죽어서도 구역을 상황이 그대로 현재진행형인 소설이다.

 

짧은 듯 긴 인생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콕~ 잘도 끄집어내는 작가의 예리함, 서민적인 따뜻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권력과 사랑과 황금에 눈 먼 현대 중국인들의 심리와 세태를 잘도 표현한 소설이다. 위화만의 향이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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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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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미발표 작품들^^ [노란집]

 

 

마흔이 넘어 글쓰기 시작해서 매순간 순간을 글로 표현해 왔던 작가 박완서. 2000년 초반부터 아치울 노란집에서 쓰신 글 중에서 미발표된 글들을 모아 펴낸 책이 <노란집>이라고 한다.

 

분명히 소리도 아닌 것이 냄새도 아닌 것이 불러낸 것 같은데 밖은 텅 비어 있었다. 겨우내 방 속 깊이 들어오던 햇빛이 창호지 문밖으로 밀려나면서 툇마루에서 맹렬히 꼼지락대고 있을 뿐, 스멀스멀 살갗을 간질이던 기척은 바로 저거였구나. 봄기운이었다. -'속삭임'에서

 

봄이 오는 기척을 이리도 간지럽게 ,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지금은 가을이건만 다시 봄볕이 진동하는 듯 희망과 화사함을 느끼게 된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봄이어선지 봄 이야기엔 늘 솔깃해진다. 겨울나무 티를 못 벗은 나무 가지 끝에 노니는 봄볕의 재롱, 땅 속 미물들의 기척에 균열을 일으키는 대지에 대한 표현들이 그대로 자연과의 교감을 이루게 한다. 그리고 노부부의 동문서답에 다리 역할을 한 봄기운의 소통능력에 대한 찬사도 유머러스하다.

 

요즘 애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더러 들리는데, 심심할 시간이 없는데 어떻게 학교성적과 무관한 책을 읽을 수가 있겠는가. 그건 괜히 한 번 해보는 걱정일 뿐 어른의 진심도 아니다. 아이들은 심심할 시간은 켜녕 한숨 돌릴 새도 없니 돌아가는 팽이와 다름없다. -'심심하면 왜 안 되나' 에서

 

허걱~ 가슴이 찔린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시간도 주지 않으면서 책 읽어라, 꿈을 꾸라, 생각 좀 하고 살아라는 건 또 다른 속박이고 굴레고 잔소리일 뿐인 것 맞다. 아이들이 심심해하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 나도 심심하고 싶다. 바쁘게 사는 게 습관화 되었고 중독이 된 듯하다. 쉬고 있으면 무엇이 잘 못된 것만 같고 불안한 우리들이다. 심심한 시간은 창조력의 원천, 상상력의 뿌리, 충전의 쉼터임을 알면서도 참으로 그리하기가 어렵다. 시간을 쪼개 사는 것에 어지간히 중독된 모양이다.

 

바람소리, 봄기운, 잎새의 떨림, 땅의 꿈틀거림... 그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사랑으로 담아내는 것을 보며 참 따뜻한 사람이 구나를 느낀다.

 

따뜻한 온기를 담은 시골풍경이 정겹고, 티격태격하는 노부부의 일상도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아이들에게 심심할 시간을 주라는 말씀도 가슴에 새겨야겠다.

 

 

책을 읽다 보니 선생님의 미소만큼이나 정갈하고 시원한 글이다. 산길의 옹달샘처럼 나그네들의 갈증을 해소해준다. 편안하고 조용히 주변을 돌아보라는 엄마의 말씀 같다. 하늘 한번 쳐다보고 땅 한번 내려다보고 살라는 어른의 말씀이다. 그렇게 잔잔히 물결쳐와 가슴에 파고든다. 선생님을 더욱 그리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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