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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워낙에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좋아해서 유럽 여행을 가게 된다면, 또는 어딘가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긴다면, 또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가정을 생각해봐도 남미의 어느 나라는 없었던것 같다. 그건 아마도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대한 기대보다도 불안정한 경제 상황이나 그보다 더 심각하게 와닿는 치안 상태 때문일 것이다.
종종 뉴스를 통해 듣는 남미의 소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TV 속 남미 여러 나라의 모습을 소개하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멋지거나 신기해도 역시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섣불리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나라나 주술적인 면모는 고대부터 존재했고 현재도 소위 미신이라 불리는 부분은 없어지지 않은게 사실인데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보면 지금까지의 상황들이 그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내 상상이나 우려에만 속한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며 동시에 정말 이 정도인가 싶은 궁금증도 들게 한다.
책 속에는 총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의 작가인 마리아나 엔리케스 (Mariana Enriquez)는 아르헨티나 태생의 소설가인 동시에 언론인으로 이미 그녀는 전작들을 통해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표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는 첫 작품에서부터 아르헨티나의 어두운 사회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데 약물 중독자, 그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과 아이들, 특히 고스란히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과 그 아이 중 한명과의 인연을 통해 그 아이를 돕지 못한 여주인공의 후회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자신은 그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기에 그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안다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게 한 작품이다.
또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시절과 연관된 한 호텔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연쇄살인 이야기, 그리고 여전히 곳곳에 등장하는 약물 중독 이야기나 경찰의 부패, 범죄로부터 무방비한 사람들의 모습들은 정말 현재의 아르헨티나의 모습인가 싶은 의문과 함께 이야기 곳곳에서 묻어나는 암울하고도 절망적인 분위기가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에 대한 역사를 궁금하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이야기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소중하게 대우받지 못한 채 오히려 그들로부터 가학적인 폭력을 당하는 가운데 그 여성들이 '불타는 여성들'이라는 조직을 통해 그들의 폭력에 항거하는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다.
폭력, 절도, 약물중독, 인신매매, 살인, 부패 경찰 등등....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드러나는 사회 문제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오히려 그 어떤 미스터리 스릴러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던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