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0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강연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흥미로운
내용이 기대되어 읽게 된 책이 바로 『열한 번의 생물학 여행』이다. 이 책은 영국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경연을 기념하는 두 번째 책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 첫 번째 책인『열세 번의 시공간 여행』도 읽어보고 싶어졌을 정도이다.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에 의해 1835년에 창시된 이 강연은 유명한 강연자들이 실제 방송
스튜디오에서 자신들만의 주제로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강연을 한 것으로 유명한데 1996년부터는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온라인 상으로 볼
수도 있다니 찾아보고 싶다.
이
책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총 11편의 강연이 수록되어 있는데 가장 먼저 1911년에 피터 차머스 미첼이 <동물의 어린
시절>이란 주제로 한 강연으로 실제 강연장에 살아있는 동물을 가져와 보여주었다는 점이 놀랍다.
사실 동물이란 것이 인간의 마음대로 움직여주는 것이 아니니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었을테니 말이다.
차머스 미첼은 어린 시절이 전혀 없는 동물, 새끼가 부모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 새끼들이 어른과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 동물로 분류를 했는데 이에 따라 각각에 해당하는 아메바 같은 단세포 동물, 사람을 비롯해 포유류 새끼들, 마지막으로 해양
무척추동물들을 예로 들어서 설명했다.
또한 새끼들의 경우 생태계에서 살아남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약해서 포식자의 먹이가 되기
쉽기에)을 이야기하면서 만약 이 반대로 번식이 쉽다면 결국 개체수가 조절되지 않아 아무리 번식 속도가 느린 동물이라 하더라도 어느 순간 지구는
그 동물의 개체수로 뒤덮일거라니 생태계는 신비롭기 그지없다.
이에 들었던 생각은 어쩌면 지구상의 동물들이 번식과 생존을 하는데 있어서 진짜 위협요소가 되는 것은
천적이나 다른 상위 포식자가 아니라 인간이(또는 인간이 초래한 환경오염과 파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11개의 강의 중에는
이렇게 환경 파괴를 우려하는 강연자가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행동해야 함을 강조한 이가 있었는데 바로 <희귀한 동물과 야생 동물의
멸종> 편에 나오는 줄리언 헉슬리다.
그는 인간이 생물계(어쩌면 전체 자연 또는 생태계나 나아가 지구 전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하는데 섬을 비롯해 외딴 곳에 사는 희귀한 동물(파로 제도에서 기묘한 생쥐 와 카르비 해의 세인트빈센트 섬에서 앵무새를
가져 옴)들을 강연장에 직접 가져와 보여주기도 한다.
이어서 강연 끝자락에 무려 80년 전의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물들과 이들에
대한 보전의 시급성을 언급하고 있는데 “어떤 종이 한번 사라지면 그것은 영영 사라지고 맙니다.(p.74)”라고 말한 부분은 지금 우리가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말임을 생각하면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얼마나 줄리언 헉슬리의 말을 귀담아 들었는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줄리언 헉슬리와 함께 같은 주장을 펼친 이는 비교적 최근의 강연에 나오는 2004년의 로이드 펙인데
그는 <지구의 끝: 남극의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서 생물이 전혀 살지 못할것 같은 남극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생물종들을 직접 가져와 보여주기도 하고 또 자신이 남극을 가서 촬영한 영상들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역시나 강연의
말미에 남극의 얼음이 녹고 있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강연 이후 13년이 지났을 때 만난 펙은 열일곱 번의 남극을 방문하는 동안 남극의
빙하가 얼마나 많이 녹았는지(그리고 지금도 녹고 있는가)에 대한 실제 그가 직면한 상황을 들려주는데 이러다간 지구의 여러 나라 중 저지대 도시는
물에 잠겨 수천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그의 말이 곧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싶어 무서워지기도 했다.
책으로만 읽어도 강연은 참 재미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초대해 이런 강연을
해마다 펼친다는 것이 놀랍기도 한데 만약 실제로 그 강연장에서 듣는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싶어진다.
다양한 근거 자료를 보여주고 때로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강연장에 데려오기도 하고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화면으로 보여주니 말이다. 게다가 청중으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하되 정보 전달면에서도 부족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최고 강연자들의
강연을 만날 수 있는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