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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평점 :
원래도 이탈리아 문학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것 같은데 20세기의 이탈리아 문학가는 더욱이 날섳게 느껴진다. '20세기 이탈리아 미래파 환상문학의 수작'이라 평가받는 알도 팔라체스키의 작품, 『연기 인간』이 그러한데 작가도 작품도 모두 나에게 처음 같다. 그래서 봤더니 실제로 이 작가는 한국 독자들에게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경우라고 한다.
흔치 않은 이탈리아 작가, 특히나 환상문학이라는 장르는 SF 장르 못지 않게 작품의 경계성을 뛰어넘는 픽션 중에서도 완전히 비현실로 넘어가지 않고 교묘하게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그 경계선에 있는 경우가 많아 흥미를 자아내는 장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이 갔던 것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연기 인간』을 선보였던 알도 팔라체스키는 이후 여러 차례의 개정판을 거치게 되는데 작가 자신에게도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인만큼 이 시대의 이탈리아 문학이 생소하신 분들은 이왕이면 이런 평가의 작가가 쓴, 작가 스스로도 높이 평가가는 작품을 만나보는것도 좋을것 같다.
온몸이 연기로 이루어졌기에 어떻게 지극히 단순하게 그 외양 그대로를 묘사하고 있는 인간인 연기 인간.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고 그가 생겨나게 된 일종의 모태라고 해야 할지, 생명의 탄생지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를 태어나게 한 것이 페나, 레테, 라마라는 세 명의 노부인이 피웠던 불에서라고 하니 여러모로 신기하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존재를 창조해낸 그 노부인의 이름을 따서 페렐라가 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창조주가 자신의 창조물에게 이름을 붙인 셈인데 일단 페렐라가 인간 세상에 나오게된 경위부터가 환상 문학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만약 세상에 이토록 기묘한 존재가 나타난다면 예나 지금이나 궁금하지 않을까? 존재하지 않던 기이한 존재의 등장이 때로는 두려움을 몰고 오기도 하지만 그 저변에는 분명 호기심과 궁금증이 존재할 것이다. 결국 그는 존재의 신비로움과 행동과 말투의 특이성으로 인해 왕의 초대를 받기에 이른다.
기막힌 부분은 이후 그가 왕의 초대를 받아서 왕궁으로 간 뒤 정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의외로 그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무려 왕으로부터... 게다가 왕은 그에게 새로운 법전을 만드는 일까지 맡기는데 이쯤되면 도대체 뭘 믿고 이런 중차대한 일한 시키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인데 아니나 다를까 페렐라가 이런 대접을 받다보니 놀랍게도 그와 같이 되려는 사람까지 생겨난다. 애초에 태생부터가 다른데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다고 페렐라처럼 연기가 나올 수 있는가 말이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특히나 소위 사회의 지배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페렐라에게 우호적이고 높이 평가하고 중요한 직책까지 맡기지만 정작 작가는 연기 인간이라는 특수한 탄생에서 시작된 페렐라의 신체적 특징이나 말투 등을 통해서 오히려 그의 가벼움을 통해 세상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 기막힌 반전이라면 반전인 작품이다.
알도 팔라체스키는 어떻게 이런 존재를 탄생시킬 수 있었을까? 그것도 20대 중반의 나이(책이 처음 출간된 나이가 26살이라고 하니 놀랍다)에 말이다. 게다가 사람들로부터 높이 평가받는 페렐라가 어떻게 보면 전혀 변하지 않은 원래 그 모습 그대로일 뿐인데, 또 그의 특성상 연기 인간이라는 것이 어디에도 갇힐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성을 마주하게 되는 어느 순간 대중이 순식간에 돌변하여 그를 향했던 우호적인 시선이 바뀌는 모습 또한 한편으로는 알도 팔라체스키로서는 지극히 의도된 풍자의 한 단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마냥 쉽다고는 할 수 없는 작품이나 의외로 철학적인 면모가 돋보이면서도 은근히 재미있는 풍자와 비판이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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