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시작한 <드라큘라 1>은 토요일 새벽에 2권으로, 저녁엔 프란시스 코폴라 버전의 영화로 이어졌다. 피비린내가 나는듯도 해서 액막이 삼아 저녁엔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었다.


영화는 드라큘라의 못이룬 사랑, 신에 대한 원망이 주축이다. 미나의 약혼자 조너선은 스트레스로 백발이 되어가지만 자신의 여인에 대해선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다. 운명적 사랑이라잖아.... 드라마 '도깨비' 같이 몇백 년을 기다려온 사랑이래. 뒤러의 자화상과 흡사한 젊은 드라큘라 (개리 올드만, 당시 35세)은 현란한 분장으로 흉물스러운 괴물과 외국인 신사, 옛성주를 넘나들며 연기한다. (처칠 분장이 여기에서 시작했을지도) 1993년 영화에 드라큘라는 런던의 다주택자이며 한 여자만을 향하는 순애보의 주인공이다. 다만, 햇볕을 싫어하고 피를 좀 밝힌다. 





하지만 브램 스토커의 소설은 인간의 이야기다. 드라큘라의 성에 찾아가 갇히고, 여자 귀신들에게 희롱당하다 탈출하고 수녀원에서 치료받는 초짜 변호사 조너선을 비롯해서, 미나의 절친 루시의 삼인방 추종자들, 뇌과학자 반헬싱은 힘과 지혜를 합쳐서 문명사회(런던)에 침략한 야만(외국) 세력을 내쫓는다. 드라큘라는 영국의 부녀자들과 가치를 공격하는 악의 정수이다. 영국 신사들과 네덜란드 의학자는 정의의 '십자군'을 자처하며 드라큘라 박멸, 그 씨앗 혹은 후손의 가능성 하나까지 없애기 위해 투지를 불태운다. 




1권은 상대가 안되는 드라큘라의 강력함, 마력, 재력에 공포를 쌓고 루시는 그 제물이 된다. (영화 속 루시의 붉고 너풀거리는 드레스는 고스트버스터즈의 시고니 위버를 생각나게 하고요) 드라큘라는 막을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나약한 인간과 문명은 속절없이 스러질 뿐이다. 읽다가 너무 무력한 인간과 거대한 공포에 손톱을 깨물 수 밖에. 2권은 조금 정신을 차린 인간들이 드라큘라의 '어린이 같은 두뇌' 운운하며 반격하고 그의 퇴각길 루마니아까지 쫓아간다. 이미 드라큘라와 교감을 한 미나는 이 퇴마사 그룹의 좋은 길안내자와 미끼 역할을 한다. 정신줄 놓지 않고 끝까지 인간임을 잊지 않은 미나, 당당하게 한몫의 인간을 표현하려 애쓰는 미나가 (시대적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인상적이다. 또한 불가해한 존재와 싸우며 한편으론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계속 확인하는 나약한 남자들의 협력도 두드러진다. 


드라큘라 소설책을 제대로 읽은 건 처음인데 얼마전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을 읽고 그 원형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외지인이 들어와서 사람을 홀리고, 쥐떼를 부리고, 여인과 어린이들을 공격하는 장면, 삼인방이 뱀파이어를 도륙하는 장면등은 오마주라고 칭할 만하다. 나는 이 책을 매일 새벽 여섯 시, 병원 침상에서 피를 두세 투브씩 뽑히면서 읽었다. 피는 거의 검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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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 2021-12-18 23: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드라큘라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요. 한번 도전해봐야겠어요.
그런데 어디 아프세요? ㅠㅠ 기운 회복 어서 하시길 바랍니다!

유부만두 2021-12-19 07:32   좋아요 3 | URL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ㅜ ㅜ
퇴원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페르소나님께서도 건강 챙기시길요.

꼬마요정 2021-12-18 23: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드라큘라 영화 중에 이 영화가 제일 좋아요.(번외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랑 트루 블러드 좋아하구요^^) 게리 올드만 너무 멋지지 않나요? 400년이라는 시간의 대양을 건너왔다는 대사가 참 인상 깊었죠. 소설 속에서는 미나가 멋졌구요. 남자의 두뇌를 가진 건 당시로서는 최고의 칭찬이겠죠ㅠㅠ

어디 아프세요?ㅠㅠ 얼른 건강해지실 바랍니다!!!

유부만두 2021-12-19 07:34   좋아요 3 | URL
게리 올드만은 정말 대단한 배우에요. 영화를 혼자 다 끌고가더라고요.
미나와의 사랑 설정은 책과 너무나 달라서 (책에서 미나는 적극적 헌터쪽이니까요) 의아했지만 상대가 게리 올드만이라 수긍이 갔어요. ㅎㅎ
건강 회복중입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 2021-12-18 23: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입원 중 시군요 ㅠㅠ
빠른 쾌유 바랍니다 ^^

유부만두 2021-12-19 07:34   좋아요 2 | URL
퇴원했고요. 아침마다 피 뽑히고 지냈어요. ㅜㅜ

페넬로페 2021-12-19 01: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워낙 드라큘라같은 호러물을 좋아하지 않아 책이나 영화도 거의 접하지 않은데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은 읽고 싶어요~~
유부만두님, 지금은 건강 회복하신건가요?
얼른 쾌차하셔요^^

유부만두 2021-12-19 07:36   좋아요 3 | URL
퇴원 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호러 북 클럽은 매우 살벌한 장면 묘사가 많고요, 클래식인 드라큘라는 공포감 설정에 더 집중했어요. 의외로 재미있어요. 추천합니다. ^^

단발머리 2021-12-19 07: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정도의 피를 보충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나 많이 또 많이 먹어야 할까요? ㅠㅠㅜㅜ
유부만두님 얼른 회복하시기 바래요!!!

유부만두 2021-12-19 07:37   좋아요 2 | URL
열심히 열심히 먹고 있어요. ;;; 다이어트바도 씹어먹어버림요.

새파랑 2021-12-19 11: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몸이 안좋으셨군요 ㅜㅜ 드라큘라를 읽으시면서 피를 뽑으셨다니 왠지 슬픈거 같아요. 빠른 완쾌 바랍니다~!!

유부만두 2021-12-20 07:03   좋아요 3 | URL
슬펐어요. 피 같은 피....
이제 많이 좋아졌습니다. 내년 까지는 병원 갈 일 없어요. 아, 올해도 이젠 열흘 남았군요. ^^

mini74 2021-12-19 12: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 csi시리즈 중 포르피린증 을 다룬 적이 있는데 이 병이 드라큘라와 증상이 비슷해서 드라큘라병? 이라 불린다는 걸 본 적 있어요. 잔인한 것보다 은근하게 두려움을 심는 것, 예전 공포물의 특징이었는데 요즘은 잘 없는 거 같아요 ~

유부만두 2021-12-20 07:05   좋아요 1 | URL
맞아요. 고전 공포물은 두려움 심기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요즘은 살벌하게 늘어놓는 것 같고요. 드라큘라병...영화에서도 피의 성분을 이야기하긴 하는데 이해를 못했;;;

몰리 2021-12-20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아프셨군요. 얼른 쾌차하시기 빕니다!
그리고 올해 남은 열흘의 복도 많이 받으시고 내년 새해 복도 많이 받으세요!

유부만두 2021-12-20 21:16   좋아요 1 | URL
네. 이젠 많이 건강해졌어요. ^^
몰리님께서도 건강과 복, 멋진 책읽기와 책모으기를 기원합니다.
멋진 논문 쓰기도요!

2021-12-25 0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21-12-31 06:19   좋아요 0 | URL
지금은 괜찮아요. ^^
올해 이런 저런 병치레가 많네요. 삼재라고 우기면서, 내년은 낫겠지, 주문을 걸어봅니다. 올해는 정말 많이 힘들어요. 아니, 힘들었어요.
 

원서 제목은 <un Avion sans elle> 그녀 없는 비행기. 제목이 스포인셈. 


1980년 12월 22일, 눈보라에 터키발 파리 행 비행기가 추락,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다. 단 한명, 백일 남짓의 어린 아기만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승객 명단에는 그 또래의 아기는 두 명. 두 유족은 서로의 핏줄임을 주장하고 길고 긴 여론 몰이와 재판을 거쳐 아기는 에밀리 '비트랄'로 성장하게 된다. 축제나 관광지에서 푸드트럭을 하는 서민층의 손녀로. 두 살 위 오빠 마르크와는 매우, 매우 의좋게 너무나 특별한 사이로 성장한다. 거부할 수 없는 사랑. 하지만 또 다른 유족, 이쪽은 (주말 드라마 같이) 거대 기업주이며 귀족 혈통인 '카르빌'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손녀 리즈로즈라고 믿으며 사설탐정 크레듈을 고용해 조사작업을 장장 18년간 펼친다. 여기엔 여섯 살 위의 언니 말비나가 그 세월 동안 뒤틀린 모습으로 동생을 기다려 왔다. 우리의 '그림자 소녀'는 에밀리인가, 리즈로즈인가. 그 와중에 사람들이 하나, 둘, 셋, 넷, 다섯이 살해당한다. 


뮈쏘의 스릴러 같은 로맨스 통속 소설을 두 어 번 시도하다 완독을 못했는데 이번 소설도 비슷한 경고 분위기로 시작했다. 금발에 파란눈 미녀, 다재다능한 여주인공, 낳은정 기른정, 물보다 진한 피, 열길 물속 보다 어지러운 사람 속, 왕가슴 매력에 무릎 꿇는 아자씨, 등 판에 박힌 공식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런 줄거리는 K드라마가 전문인줄 알았는데. 뭐 그럭저럭 읽었다. 아침 밥 차리고 먹고 치우고 읽다가 커피 마시고 조금 더 읽다가, 빨래 널고 이어서 읽다가, 전화로 친구에게 이 소설 욕도 좀 하다가, 사흘 쯤 설렁 설렁 다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정말 우리나라 드라마 본 기분이 든다. (일년 후, 출산, 결혼, 환갑잔치 등으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배경이 프랑스였는데 송혜교 원빈 한효주 등등이 떠오른다. 사랑의 힘!으로 다 이겨낸 여주 남주에게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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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6 21: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뭔가 출생의 비밀부터 막장까지 정말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같은 ㅎㅎ 우리나란 김치로 싸대기를 날리더데요. 프랑스는 마카롱으로 싸대기? ㅎㅎ 책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만두님 글은 재미있어요

책읽는나무 2021-12-16 22:25   좋아요 3 | URL
책보다 만두님의 리뷰가 늘 흥미진진 합니다.
근데 마카롱으로 싸대기라뇨???
안돼요~~마카롱 아까비!!!ㅜㅜ

유부만두 2021-12-18 22:38   좋아요 3 | URL
프랑스는 그냥 총질을 하거나 몸으로 밀어붙이던데요? 책도 뭐 재미는 있어요. 너무 친근한 소재들이라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ㅎㅎ

난티나무 2021-12-17 0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있는데 패스해야 겠군요. 감사합니다!^^

유부만두 2021-12-18 22:38   좋아요 2 | URL
프랑스에선 아주 인기였다는데 글쎄요... 추천하긴 힘들어요. ^^;;

psyche 2021-12-17 04: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밀리의 서재에 있길래 읽어볼까 다운받았는데 가볍게 패스해야겠다 ㅎㅎ

유부만두 2021-12-18 22:39   좋아요 2 | URL
패스! 패스!
 

정치적 올바름이 작품과 작가를 옥죄는 상황에 대한 작가의 토로. 


'끝까지 몰아부치는' 폭력과 성애 장면을 자주 쓰며 극한의 감정과 상황을 소설 속에 녹여내는 작가 마쓰 유메이는 어느날 국가 기관으로 부터 소환장을 받는다. 기르던 고양이가 집을 나간지 며칠, 뒤숭숭한 마음으로 간단한 짐을 챙겨 어느 해변가 기차역에서 낯선 공무원의 차를 타고 '요양원'에 입소한다. 곧 자신의 자유를, 운신의 자유와 글쓰기 및 생각의 자유를 빼앗긴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다. 작가는 과연 이 요양소/수용소/무덤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탈출에 성공한다면 어디로 가야하는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PC한, 체제 순응적인, 좋은 소설은 무얼까. 작가의 입장에서 본, 규율에 몸서리치는 소설은 의외로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예전 소설 보다는 순하고 읽기가 쉽다. 피도 덜 나고 축제를 벌이는 듯한 성폭행 묘사도 없다. 하지만 작가가 더 이상 자유로운 작가가 아닌 상황을 그리고 있으니 최악의 디스토피아이다. 독자 입장에선 ... 음.... 작가가 맘껏 그려내는 '극한'에 대해선 독자 나름대로 호불호를 나름대로 가질 수는 있다고 본다. 독자가 그렇게 멋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는 아니니까... 중요한 건 소설이 만든 그 세계 안에서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하늘에서 생선이 내려도 계속 읽어나갈 수 있다. 대신 인물이 생뚱맞거나 작가가 도드라진 목소리로 독자를 가르치려 들거나, 게으르게 뻔한 이야기를늘어놓는다면 그거야 말로 '아웃'이다. 독자인 나는 새롭게! 재미있게! 홀려주는 작가와 작품을 바란다. 그런 점에선 이 소설은 슴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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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12-15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듣는 작가인데 정말 그가 수용소를 탈출했는지 궁금하네요. 하늘에서 생선이 내려온다고 해도 믿고 읽을 수 있는, 혹은 신뢰할 수 있는 작가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싶어요.
오늘은 안 추워서 좋네요. 좋은 날 되세요^^

유부만두 2021-12-15 11:27   좋아요 1 | URL
오늘은 푸근하네요. 단발머리님께도 푸근한 날이 되길 바랍니다.

이 작가의 전작들은 피칠갑에 인간도축에 극한 장면 연출이 많아요. 하지만 이번 소설은 pc함과 자기검열이 작가와 사상을 규제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어요. 작가의 말을 플어 쓴 이야기 같달까요.
 

서부 카우보이 소설의 대가 애니 프루가 추천한 소설. 


1915년생 작가 토머스 새비지는 거대 양목장의 후계자인 어머니와 거대 소목장 주인인 양아버지 슬하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그 경험을 다분 이 소설(과 다른 소설들)에 녹여냈다. 


때는 1925년, 마흔살의 농장주 (그 당시에도 자산 몇 십만불을 호가했다는) 필과 두살 아래 동생 조지는 아직 미혼이다. 모든 면에서 반대인듯한 두 형제는 그런대로 오랫동안 (이십오 년의 결혼 생활에 비유할 만큼) 잘 지내왔다. 하지만 광활한 대지는 무자비하고, 수십 명의 카우보이들과 함께 수천 두의 소들을 키워 (때때로 잡아 먹고) 기차역이 있는 마을까지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화물열차에 태우는 일은 고되다. 그들 사이에 한 여인 로즈가 사연과  열여섯 살 아들 필립을 데리고 등장한다. 그들을 온몸으로 경멸하는 필. 자동차를 혐오하고, 원주민 인디언을 내쫓은 주제에 이민자들을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하고, 허세와 위선을 혐오하고, 자신은 모든것을 꿰뚫어본다고 믿고, 좋았던 옛시절과 카우보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흐르는 시간과 시대를 거부하는 남자 필. 그는 장갑을 끼지 않는다. 


세세한 풍경 묘사는 책 읽는 내내 바람 냄새를 일으켰고, 각 인물들의 속엣말들은 생생하게 그들 사이의 벽과 갈등을 쌓아놓는다. 소설의 시작 전에 깔려있는 파국의 밑밥 위에 파국으로 시작하고 더 큰, 파국으로 '개의 아가리'를 향해 달려가는 소설. 여기에서 개는 누구인가. 풍경의 개, 인생의 걸림돌인 개, 사악함의 개. ...하지만 어딘가에 목숨 바쳐 충실했고 쓸쓸했던 그 개. 


스포일러를 하지 않겠다. 

두 밧줄, 두 명 (더하기 반)의 아버지, 아버지의 뜻을 이어가는 아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어머니와 아들, 맨 손, 맨 몸, 그리고 맨 정신. 


책을 읽고 곧이어 넷플릭의 영화를 봤다.  책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영화에선 인물들 사연이 많이 생략되어서 책을 읽지 않은 남편은 지루하다는 평을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필이, 그 빌어먹을 개 자식이 더 도드라졌다. 컴버배치의 연기는 꽤 좋았다. 필이 평생 억누르며 감춰왔던 마음, 그 이야기가 몬태나 산맥과 광야에 그리고 그 호수에서 펼쳐졌다. 묘한 표정으로 서 있는 소년 필립이 영화를 마무리하고 나는 돌아와서 애니 프루가 2000년대에 이 책(초판 1967년)을 재발간하며 쓴 '해설' 부분을 읽었다. 다시 몬태나의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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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2-12 0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극장 가서 보려고 찜! 했는데 책부터 읽는 게 역시 좋군요.

유부만두 2021-12-12 09:24   좋아요 2 | URL
전 넷플릭스에서 봤는데 극장개봉도 하는군요.
풍경을 큰 화면으로 보면 더 멋지겠어요.
책을 먼.저. 읽으시길 권합니다.
그 긴장감! 그 속 사정! 은 책을 읽을 때 더 잘 즐기실 수 있어요.

독서괭 2021-12-12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빌어먹을 개자식인 건가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1-12-12 13:29   좋아요 1 | URL
개자식 중 하나지요. ^^

mini74 2021-12-1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가 주인공인줄 알았어요 ㅎㅎ ㅠㅠ 그런 개가 이니군요. 이 책도 넘 제미있겠어요 ~~

유부만두 2021-12-13 06:32   좋아요 1 | URL
긴장감이 장난 아닙니다.
목장에 ‘진짜 개’도 물론 있고요. ^^

psyche 2021-12-14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넷플릭스로 영화만 보려 했는데 책을 읽어야 하는 거야?

유부만두 2021-12-15 07:06   좋아요 0 | URL
책이 훠어어얼씨이인 나아요.

영화에선 엄마의 행동이 잘 설명되지 않거든요.
그리고 주인공 필(컴버배치)의 감정이 과장되기도 하고요.

책은 좀 클래식한 면이 있지만 긴장감 두근두근 .... 재밌어요.

hnine 2021-12-21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이런. 영화를 먼저 보기 시작해버렸네요.

유부만두 2021-12-31 07:09   좋아요 0 | URL
영화 먼저 보셔도 책은 다른 감동을 안겨줄거에요. ^^
 

어렵고 복잡한데 뭐랄까, 좋은데? 했던 앨리스 스미스의 '데어 벗 포 더'를 읽고 나서 여름이 저물고 아, 이제 가을이 오는구나 할 때 챙겨둔 책 <가을>을 입동 다음 날 읽었다. 아침 온도 4도, 첫눈이 내렸다. 


제목이 주는 '가을'의 인상은 소설 속에서 풍성하게 수확을 하지도 않고 회한에 차 있지도 않다. 소설 내내 오가는 삼십 년, 혹은 육십 년의 시간과 세대 차이 동안,독자는 '누가' 말하고 '누가' 보는가에 집중해야만 고꾸라져 넘어지지 않을 수 있다. 여기 혹은 저기, 지금 아니면 그때, 아마도 봄 혹은 여름의 화요일 아니면 수요일에 영국의 소도시에서 삼십대 혹은 열한 살 엘리자베스는 엽집 할아버지와 (그만이 듣고 이해해 주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 책의 첫 챕터는 '데어 벗 포 더' 처럼 급작스럽다. 뺨과 뒷통수를 맞는 기분도 들었다. 해변의 시신, 혹은 정신은 몸/물질의 안에서 또 밖에서 밀려오고 나가는 파도, 해변의 모래알, 햇볕, 주변의 인간들, 너, 나, 독자의 시선에 사인을 보낸다. 자, 잘 봐. 정신 잘 차리라고. 


대니얼 할아버지는 엘리자베스의 열한 살 때 이미 팔십 대의 노인이었다. 작곡도 하고 책과 미술품을 즐기고 (공부하고) 옆집 꼬마에게 건네는 인사는 늘 "잘 있었니? 뭘 읽고 있니?". 뭔가를 읽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추억하고 (싸우며) 해석하고 잊기 위해 (싸우며) 지내는 할아버지, 그런데 그 할아버지도 백하고도 한 살 잡숩고 요양원에 누워계신다. 그를 매주 찾아가 귀에 대고 (읽는 중인 책 이야기도 하고) 가망 없는 미술사 강사직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어디 갈 계획도 없지만 여권 갱신 하면서 자기 자신의 '진짜 아이덴디티'를 증명하려 공무원들과 싸우고) 평생 합이 맞지 않았던 엄마와 일상사의 수다를 나눈다. 잠깐만, 빠지면 섭하니까, 부재하는 아버지와 그에 대한 꿈도 넣어줍시다!? 오케이. 


소설 전체는 오해, 혹은 말장난과 확대되는 중의적 이야기의 밀페유mille feuilles를 쌓는다. 지금 2016년의 브렉시트로 불안하게 분열되고 이민자 혐오를 터뜨리는 영국, 1960년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여성 팝아티스트 (이미지의 이미지로 작업했던) 폴린 포티, 그녀의 타자성, 혹은 박제된 여성성, 2차대전 중 단편적인 프랑스에서의 (아마도 유대인 이송) 기억, 너무 똑똑했던 다섯 살 아래 누이,  더해 엮여서 연극이나 독서로 등장하는 오비드의 '변신', '멋진 신세계', '나귀가죽', '템페스트' 의 제국주의와 인간의 징글 징글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멋들어지게 보인다. 뽐내봅시다, 우리의 독서 경력! 프루스트도 빠지지 않긔.


그러다 독자가 책 제목 '가을'을 잊을 무렵, 툭 튀어나오는 여름 오빠와 가을 누이 노래의 슈퍼마켓 광고영상. 소설 후반부에 급발진하는 주인공의 엄마(의 진짜 모습) 만큼이나 당혹스럽다. 아, 내가 읽은 건 뭘까, 어지럽고 갸우뚱하면서 입맛을 정리하는 박하맛 쵸콜릿을 먹는다. 그래도 <데어 벗 포 더>의 인물 유형들이 재결합하는 것 같기도 해서 조심스레 정리를 해보는데 스스로 골방/나무/늙은 몸/관에 들어가 눈을 감고 회상에 몰입하는 다니앨 옹 부터 열한 살 여자아이와 삼십 대 여성이 이인삼각조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공식이다. 하지만 두 소설이 확연히 다른 것은 두 소설이 출구로 뚫어 놓은 창구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실 그리고 독자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요, 고백할게요. 

잘 모르겠어요. 이 소설은 어려운데, 은근 읽히고, 또 좋더라고요? 어쩌겠어요. 열한 살 (조숙하고 반항적인) 아이가 옆집 팔순 할배와 노닥거리는 건 (토 나올 것 같은 온갖 CSI 영상이 떠올라) 싫었어도, 매 챕터에 나오는 여러 책들, 그림 이야기들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말장난과 툭 툭 튀어 나오는 인생의 격언들이 가슴을 치더라고요. 


나, 앨리스 스미스 좋아요. 이제 겨울 읽을라구요. 아마도 입춘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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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1-10 20: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이 <가을>을 읽어야 할 텐데, 그냥 <겨울>부터 읽을까봐요…;

유부만두 2021-11-10 20:50   좋아요 2 | URL
겨울은 또 얼마나 비슷하게 또 다르게 이야기를 플어놓을까요? 전 이번 책으로 앨리스 스미스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줘서 좋았어요. 말장난과 역사 이야기도 좋았어요.

Falstaff 2021-11-10 20:55   좋아요 3 | URL
제가 소싯적부터 자주 쓴 구절 가운데 이런 게 있습지요.
아무리 추워도 11월까지는 가을이라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다.라고...
ㅋㅋㅋㅋ

Falstaff 2021-11-10 20: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오, 며칠 있다가 읽을 책입니다. ㅎㅎㅎ
앨리 스미스는 <데어 벗 포 더> 미끼로 잠자냥 님의 낚시에 제대로 걸려 계속 읽고 있는데, 아이고, 진짜 괜찮아요!!!

유부만두 2021-11-10 20:48   좋아요 3 | URL
전 ‘데어 벗 포 더’가 더 나았어요. 그래도 앨리스 스미스, 이젠 제 작가입니다. (도장 꽝) 책에 ‘월튼네 사람들’ 이야기도 나오는데 … 팔스타프님, 아시죠? 그 느낌?!

Falstaff 2021-11-10 20:50   좋아요 3 | URL
아이고, <월튼네 사람들> 그게 은제쩍 드라마예요. ㅋㅋㅋㅋ
우짰든 이 앨리 스미스라는 스칸디나비아 혈통으로 보이는 스코틀랜드 레즈 언니의 글은 정말, 정말 마음에 들어요!!

붕붕툐툐 2021-11-10 2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려운데 은근 읽히고 또 좋은 책 너무 궁금해요! 이 가을의 끝을 잡고 읽어보고 싶네용~~

유부만두 2021-11-11 08:26   좋아요 2 | URL
선생님, 가을 다 갔어요~~~ 담주에 수능이에요!

이 책은 좀 어지러운 편이고요 <데어 벗 포 더>가 더 정리된 느낌이에요. 두 소설 다 좋았어요.

붕붕툐툐 2021-11-11 21:59   좋아요 1 | URL
아... 가을 보내줄게요..ㅋㅋㅋㅋㅋㅋㅋ

라로 2021-11-11 0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부만두님께 넘 약하니까…😳

유부만두 2021-11-11 23:01   좋아요 2 | URL
훗, 낚이셨군요, 라로님.

psyche 2021-11-14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더 안 사려고 했는데 <데어 벗 포 더>를 꼭 사야할 것 같은 느낌이...

유부만두 2021-11-17 07:17   좋아요 0 | URL
데어 벗 포 더, 추천합니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확실한 기쁨‘을 안고 가시는 거에요. 근데 언니야, ‘밀크맨‘도 꼭 챙기셔야해요! ^^

2021-11-18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18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