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퍼핏 쇼' 인형극인데 범죄의 형식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고 소설 전체를 설계한 소설가와 그 핵심 인물을 뜻한다. (이 말이 어쩌면 스포일러 일 수 있겠네;;;) 


'사건'을 일으켜서 징계 겸 자숙의 시간을 갖는 중년의 수사관 워싱턴 포. 뭐한 김에 쉬어간다고 그는 고대의 돌기둥 혹은 고인돌이 늘어선 시골 마을에 농장을 사서 틀어박혔다. 외롭고 조용하게 반려견과 살아가려고 맘 먹었는데 포의 반려견 이름은 에드거.

다시 돌아오라는 특별수사본부의 때이른 연락을 받는데 여기엔 일련의 범죄, 화형식을 치르듯 고대 돌기둥에 묶여 죽은 희생자들과, 아니면 범인과 그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있었다. 포는 수사관으로 컴백하고 천재적 분석가 틸리 브래드쇼와 팀을 이루게 된다. 틸리는 20대 여성으로 사회성보다는 숫자와 패턴, 컴퓨터에 더 능통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은 더럽고 추잡한 이십여 년 전의 범죄와 지금의 범죄, 혹은 화형식을 연결짓게 된다. 그런데 ... 누군가 그들을 이끌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누구냐, 넌?! 

우영우를 떠올리게 하는 틸리와 처음엔 삐걱거리지만 포와 틸리는 곧 서로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사이가 된다. 중년의 노련한 수사관과 젊은 천재 해커의 조함 <밀레니엄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포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예의를 지키는 정상인이다. 쿨병 걸린 말로보다도 제정신이고 술을 마시는 장면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의 예리함은 반박자 늦게, 하지말 확실하게 빛난다. 무엇보다 그의 정의감과 분노는 유혹적인 여자들이 아닌 다른 곳에, 그러니까 나쁜 놈들을 향한다. 이 <퍼핏 쇼>가 포 형사 시리즈의 첫 이야기라고 하니 앞으로 그와 틸리가 얼마나 더 멋진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주위 여성에게 껄떡대지 않는 남주에 더해서 비굴하지 않게 할말 제대로 하면서 쓸데 없는 존댓말은 뺀 여자 인물들을 만들어 준 번역도 마음에 들었다. 

1/3쯤 읽었을 때 어떤 악당인지 감을 잡았는데 과하지 않게 작가는 핵심을 조금씩 틀면서 소설 마지막 까지 집중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마지막 문단과 문장을 모두 꼭꼭 씹어 읽었다. (쿠키 영상 처럼 번역후기도 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코끝에 휘발유 냄새가 스치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는데, 그건 아마 일찍 찾아온 모기 때문에 틀어 놓은 훈증기 탓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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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책의 전반부 <그리스 편>을 다 읽었다. 일리아스 덕후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에서 시작한 책과 지식을 향한 탐욕과 믿음 이야기가 아주 생생하게 그려진다. 갈대 파피루스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희망, 때론 저주들이 펼쳐진다. 책과 사람의 서로 죽이고 살리는 애증사랄까. 


사람들은 책을 열망하고 두려워하기도하고 목숨을 바쳐 만들고 지키다가 태우기도 했다. 1부 마무리 즈음, 갑자기 저자는 가장 나쁜 것은 '침묵'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어린 시절 당했던 학교 폭력의 경험, 그 침묵의 경험이 자신이 어둠이었노라고 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노라고. 멈칫, 하면서 나의 어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숨고르기. 침묵과 망각에 맞서는 책 쓰기와 읽기.   


이 책은 단순한 책과 지식의 문화사가 아니다. 저 먼 옛날 그리스에서 (아니 그 이전에) 시작한 갈대 두루마리가 어떻게 지금의 나와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그리스와 이집트, 페르시아의 책들, 두루마리나 태블릿, 양피지, 종이책들은 중세와 19세기 그리고 현대의 책 혹은 영화, 스마트폰이나 전자책과 연결된다. 갈대가 그냥 갈대가 아니고 리드미컬하게 여러 방향으로 펼쳐지며 몇 천년과 영원을 넘나들며 나를 끌고 다닌다. 그 속에서 내가 느끼는 현기증은 시간의 역주행 탓이 아니라 책에 대한 내 진심 때문이다. (흥분되고 막 그럼) 그래서 한 호흡에 빨리 읽지는 못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는 <로마 편>이다. 폭력적인 원시 강간범 로마의 시작이 보이고 그들이 그리스 문화를 차용하고 덮어 쓰는 모습이 이어진다. 저자 이레네 바예호의 글을 따라가면서 나는 밑줄을 긋고, 알라딘 장바구니에는 책을 더 담고, 뜨거운 마음을 진정 시키느라 돋보기를 벗어 닦는다. 아, 나 진짜 책 사랑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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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5-08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읽어봐야겠네요. 저는 왜 시집이라 생각했을까요?

유부만두 2023-05-09 08:31   좋아요 0 | URL
제목과 표지 분위기가 시집과도 어울려요. ^^
책의 역사로도 읽을 수 있는데 과거와 현재의 지분이 엇비슷해서 꽤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진리의 발견> 생각도 많이 나요. 추천합니다. 블랑카님께서도 좋아하실 거에요.

라로 2023-05-08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가 봐요! 땡투는 그대에게!!

유부만두 2023-05-09 08: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 책 전자책도 있어요.

단발머리 2023-05-08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절한 책사랑 부심이 페이퍼를 넘어 전해지네요. 저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유부만두 2023-05-09 08:32   좋아요 0 | URL
단발님의 책사랑을 보여주세요! (이미 넘치도록 알고 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고대와 현대 책들 영화들 주워담느라 아 바빠요, 바빠!
 

십여 년 외교관 경력을 뒤로하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는 저자는 현 일본의 차분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부럽다고 2017년 한 책소개 방송에서 말했다. 하지만 이 책은 17-19세기 중반의 다이내믹한 에도 시대의 경제적 변화와 개혁이야말로 일본이 근대 역사의 “우등생”이 된 배경임을 보여준다.
에도 막부 260년 정치적 평화 시기(.. 다른 일본사 책 보니까 아니네.. 하긴 어느 나라가 260년 동안 내란 등의 갈등이 없겠나)의 일본 경제 사회 문화사를 풍부한 사진 그림과 함께 재미있게 만날 수 있다. 미야베 미유키 에도 시리즈를 떠올리면서 조닌과 상인, 화폐와 참근교대제 부분을 읽었다. 바로 이 시기가 메이지 유신을 위한 오랜 빌드업이었던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부분을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학교에서 잘 배울 수 없었던 건 세계사 수업의 동양사 17세기 이후는 기말고사 전에 급하게 정리하기 때문이리라. 일부러 무시하거나 외면한 게 아니라.
맺음말에서 역사 의식과 ‘억울’에 관련된 국민(성) 차이, 제국주의 열강의 외교 체결 ‘사정’, 일본의 역사교육에 대한 저자의 너그러운 의견 등은 정리되지 않은 저자의 갑갑한 마음의 반영으로 보인다. 일본은 남탓 안하고 자신을 바꾸어서 해냈다, 로 읽혀서 과연?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나의 오독인가. 게다가 저자의 이력 만큼이나 색다른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 많아 읽으면서 여러번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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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헤테로 백남의 뜨겁고 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새드 엔딩인) 브로맨스 이야기. 터프 으리남 탐정 말로가 그의 찐사랑, 영국 출신 우아 매력남(기혼) 레녹스와 다른 세 명의 죽음과 그 진실을 파헤친다. 과연 레녹스는 누구였던가? 아아, 그는 갔지만 키다리 말로는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네버 세이 굿바이! 처절하게 고뇌하는 말로. 이 마흔 후반의 뜨거운 나성 탐정의 품을 향해 800만불 자산의 미녀, 초인기 베셀 작가 부부(둘다)는 달려든다. (거의) 모든 중년 남자들의 변치않는 꿈과 망상을 담은 일천구백오십삼년작 판타지 로맨스, 하루키 상의 영원한 롤모델을 직접 만나보세욥. 손에는 김릿 한 잔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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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4-14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모르긴 해도 작품보다 유부만두 님 페이퍼가 더 재미날 듯합니다. ^^
마지막에 한 마디 보태셨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개봉박두!˝ ㅋㅋㅋ

유부만두 2023-04-14 23:58   좋아요 1 | URL
ㅎㅎ 이미 1973년에 영화 나왔어요. 엘리엇 굴드(바바라 스트라이젠드 전남편)이 약간 까불대는 말로를 연기했지요. 심지어 이 말로는 고양이도 키우고 옆집엔 요가하는 히피 여인들이 사는 설정이 추가됐어요. 깡패 부하3 쯤으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대사 없이 덩치로 어색하게 나오고요. 결말을 꽤 많이 바꿨는데 그건 그대로 재밌더군요. 하지만 소설의 애틋한 브로맨스는 덜 두드러지지만요. 뭣보다 소설은 하루키의 원본을 만난 기분이고요. 어느 나른한 여름날 저녁에 술한잔 하시면서 읽으시면 멋진 판타지를 경험하실듯 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 이제 기묘한 이야기를 듣는 청자는 오치카의 사촌 동생 도미지로다. 세 가지 이야기가 실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자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올랐다. 화재를 막는 북과 수호신 이야기에는 일본 특유의 정서가 보였다. 당고 노점상의 비참한 어머니와 네 남매 이야기는 어떤가. 더해서 아랑의 전설과 비슷한 이야기도 있다. 간절한 염원은 현실을 바꿀 수 있지만 진실을 덮거나 뒤집는 건 말 몇 마디이다. 


어둡고 비밀스러운 이야기, 마음 속에 무겁게 담아두었던 여러 이야기를 심리 상담사 처럼 들어주면 그 청자에게 '업'이 쌓인다는 악몽 혹은 경고로 이번 책은 마무리된다. 듣고 '버린다'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함부로 타인의 경험과 고뇌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이 책도 마찬가지니 쉽게 훌렁 읽고 박한 별점을 주지 말아라, 일까?


표지의 긴 목의 귀신은 분하고 원통한 혼령이다. 귀신은 눈에 흰자가 많고 검은자는 작게 금처럼 나있다고 한다. 더불어 냉기를 뿜으며 천장에 매달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당신을 내려다 볼 것이다. (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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