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는 기왕의 고려 궁을 경복궁 담장 바깥에 방치했다. 그러다 보니 호랑이가 출몰하는 일도 생기곤 했다. 그뒤 1426년 제14대 왕 세종이 그 빈터에 서현정, 취로정, 관저정, 충순당과 같은 누각을 세우고서 상림원이라는 후원으로 조성했다. 고려의 궁궐을 놀이터로 바꾼 것이다. (71)



장지연이 살던 1921년 이전까지 삼청동은 도시의 계곡이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뒤 도시를 훼손하면서부터 삼청도에 살림집이 들어앉기 시작했고 1929년에는 이곳 삼청동 계곡을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경성부가 임야 약 165천 제곱미터 (오만평)에 순환도로, 산책도로와 정자, 의자와 목욕장을 시설해 19343월에 공원으로 개장했다. 그 이후로 해방 뒤에도, 지금까지도 그 모습 그대로다. (97)



열고 닫히는 것이 이렇게 번복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물론 닫혀 있다고 늘 닫히기만 했던 것도 아니다. 폐쇄되었던 동안에도 창의문 옆으로 길은 나 있었고 또한 19868월 자하문터널이 뚫리고 보니 창의문은 그나마 문이라는 의미마저 찾을 일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123)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신종은 요즘말로 하면 그의 구세주였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은 생존을 위해 제후국을 자처하며 황제국 명나라를 모셔야했다. 이로써 두 나라는 이른바 형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형님 신종이 일본 침략으로 위기를 맞은 아우 선조를 위해 구원병을 파견했으니 구세주가 아니고 뭐라 할까. 구세주에게는 그에 걸맞는 예우가 뒤따라야 했다. 당시 조선의 전시작전권은 명나라 군대 총사령관 이여송이 통째로 장악했다. 1593년 살아 있는 이여송을 기리는 사당인 생사당이 들어섰고 1602년에는 동대문 밖 숭인동에 전쟁의 신으로 떠받들던 관우를 모시는 동묘도 세웠다. 이런 일은 낯설리가 않다. 한국전쟁 이후 1957년 맥아더 장군 동상이 들어선 이래 1959년 콜터 장군 동상, 1960년 밴프리트 장군 동상을 세운 것과 똑 같은 풍경이다. (190)



안중식이 궁궐을 그리던 1915년의 경복궁은 폐허였다. 조선을 강점한 일본 제국이 그 많던 건물을 숱하게 파괴하고 근정전과 경회루를 비롯해 기껏해야 십여 채만을 남겨두고 있던 때였다. 그럼에도 안중식의 <백악춘효도>를 보면 화폭 하단 양쪽에 해태부터 위로 광화문이 아름답고 담장 너머 무성한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근정전을 비롯해 온갖 전각 지붕들은 생생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그 뒤로 나무와 구름이 숲을 이루어 궁궐의 기운이 충만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백악산이 조선의 진산으로 위용을 드러낸 채 뾰족한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있는데 상단의 하늘 또한 넓게 면적을 주어 끝이 없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1915년 당시의 실제 풍경을 그린 게 아니라 일제가 파괴하기 이전 대한제국 시절의 아름다움을 추억한 상상화다. (205)



겸재 정선은 실제로 1713년 무렵 관직에 나가 마흔한 살이던 1716년 음직(특별채용)으로 종6품 관상감 천문학 겸 교수로 임명되었고 그뒤 조지서, 사헌부를 거쳐 하양현감을 역임한 뒤 1729년 의금부 종5품의 도사로 발령이 났다. 의금부 도사는 관리의 감찰과 규탄을 수행하느 직책이었으니 오늘날로 말하면 검찰관이었다. 돌아가며 매일 당직을 하는데 당직하는 동안 죄수를 가두고 체포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정선 역시 당직하는 날 사건이 생기면 죄인을 체포, 구금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쉰넷의 저명한 화가 정선이 당직도사 임무를 수행할 때면 호령을 하며 위엄 있는 모습을 갖추었을 텐데 그 장면이 궁금하다. (222-4)



명나라 황제를 제사 지내는 꿈을 꾼 인물은 우암 송시열이었다. 송시열이 세상을 떠난 뒤 17041월 그 제자들이 충청도 속리산 화양동 계곡에 제단을 설치한 뒤 명나라의 마지막 두 황제 신위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스승의 뜻을 받들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이다. 민간에서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숙종은 그해 12월 궁궐에 황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냈다. 망해서 사라진 명나라 황제의 제사를 조선이 지낸 것이다. 민간의 일이었을 적에는 소박했으나 국가의 일이 되자 명분과 실리가 교차하는 매우 중대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현존하는 중원 대륙의 주인 청나라는 명나라를 멸망시킨 나라였으므로 심각한 사안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창덕궁에서도 가장 깊이 숨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곳에 감춰놓았다. 두려움이 장소를 은밀하게 했다.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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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attach as much importance as you do, I dare say, to the notion of right and wrong. I have read Lolita, as you requested. It is a good book, and therefore you should try to sell it to the inhabitants of Hardborough. They won't understand it, but that is all to the good. Understanding makes the mind la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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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7-22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_ 만일에 뭔가를 또 하게 된다면 퓨어하게 서점만 하게 될 거 같아요_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유부만두 2020-07-22 20:39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서점을 열고 결국 닫는 이야기에요;;; 슬픈 결말이지만 수연님은 공감할 부분이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라로 2020-07-23 0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봤는데, 넘 좋았어요!! 오래되어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로리타(롤리타)를 서점에 처음 전시(?)하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유부만두 2020-07-23 08:58   좋아요 0 | URL
전 예고 영상과 클립만 봤어요. 한국에선 볼 수가 없어서 안타깝네요.
주인공 플로렌스가 책에서보다 훨씬 젊은 배우가 나오고 그 늙은 아저씨랑 더 가까워 지는 것 같던데 서점에 그 책 진열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어요. ^^
 

"이 문제가 해결되면 어떻게 되죠?"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파악할 수 있지."

그 정도는 나도 상상할 수 있다. 어떤 문제는 똑같을 것이다. 최종 목적지가 있고 거기에 낙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117)


좋은 경험이 되었다는 말로 사람은 뭐든지 긍정해버리는데, 인간은 경험하기 위해서 태어났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단지 경험하면 되는 걸까?

경험을 쌓는 것으로 인간은 차츰 훌륭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173)


이 왕도가 의미하는 것은, 걷기 쉬운 지름길이 아니라 용자가 걸어야 할 깨끗하고 옳은 정도를 말한다. 학문에는 왕도밖에 없다. 생각할수록 인간의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그런 자세를 표현하는 말이다. (238-9)


산을 넘을 때마다 만족하지만 냉정히 관찰하면 열심히 산을 만드는 자신이 보인다. 어릴 때 공원 모래밭에서 놀았던, 그것과 같다. 터널을 파고 싶어서 산을 먼저 만든다. 하지만 그 산을 자신이 만들었다는 의식은 없다. 산이 있네, 어쩌지? 터널을 팔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마치 신이 자신에게 준 시련 처럼 먼저 산을 만드는 것이다.

도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부 자신이 만든 산이 아닐까, 연구자는 매일 무엇을 생각할까? 어려운 것,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 것은 연구의 후반, 즉 산을 내려올 때 하는 일이다. 

연구자가 가장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문제다. 자신만이 풀 수 있는, 멋진 문제를 늘 찾고 있다. 불가사의한 것은 없을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없을까, 하는 연구주제를 정하기 까지가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산에 비유하자면 여기까지가 오르막이 된다. 결국 산을 오르면서 산을 만드는 것이다. 미끄럼틀의 계단을 뛰어 오르듯이 그 후에 기다리는 상쾌함을 위해서 일단 높이 오르고 싶다, 길고 빠르게 미끄러지고 싶다, 그런 꿈을 안고 점점 산을 높이 만들어 그곳에 오른다. (3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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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근대 한국사진 중
인상적인 어린이들 (이지만 조상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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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은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다. 아픈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비명을 지르고 싶어져서, 그러나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성격은 아니어서 머리를 통째로 다른 세계에 담가야만 했다. 끝없이 읽는 것은 난정이 찾은 자기보호법이었다. 
우윤이 낫고 나서도 읽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우윤의 병이 재발할까봐, 혹은 다른 나쁜 일들이 딸을 덮칠까봐 긴장을 놓지 못했다. 언제나 뭔가를 쥐어뜯고, 따지고, 몰아붙이고, 먼저 공격하고 싶었다. 대신 책을 읽는 걸 택했다. 소파에 길게 누워 닥치는 대로 읽어가며,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키웠다. 죽을 뻔했다 살아난 아이의 머리카락 아래부터 발갉 사이까지 매일 샅샅이 검사하고 싶은 걸 참기 위해 아이가 아닌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낙관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만한 게 없었다. (23)


쓰는 게 뭐 대단한 것 같지? 그건 웬만큼 뻔뻔한 인간이면 다 할 수 있어. 뻔뻔한 것들이 세상에 잔뜩 내놓은 허섭쓰레기들 사이에서 길을 찾고 진짜 읽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 거야. (166)


온 가족이 모여 있을 때 입을 벌리고 있으면 공기 중에 가득한 단어들이 시리얼처럼 씹힐 것 같았다. 말들을 소화해 내려면 버거웠고, 긴 가족 여행은 확실히 지쳤다. 물속에 내내 잠겨 있는 쪽이 나았다.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에서 더 나아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169)


어른들은 기대보다 현저히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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