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지지자들은 여전히 1990년대와 월스트리트, 그리고 기술업계의 호황을 자축하고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 임금은 생산성을 따라잡지 못했다. 해밀턴프로젝트와 관련된 엘리트 지도층 인사들 입장에서 보면 비난의 대상은 분명했다. 미국의 교육기관들은 젊은 세대에게 세상을 앞장서 헤쳐나가자면 꼭 필요한 교육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을 세계화의 물결 속으로 이끈 건 다름 아닌 클린턴 행정부였다. 1995년 11월, 미국은 중국에게 새롭게 창설된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에 가입할 것을 권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자 미국은 인권 문제와 법치, 그리고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중국 공산당과의 대립을 포기한다. 그 대신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이른바 글로벌리스트들은 상업적 통합이라는 강력하고도 비정한 힘이 언젠가 때가 되면 중국을 세계 질서의 "이해당사자"로 만들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중국의 국가외환관리국(國家外換管理局)에서는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처를 찾고 있었는데, 안전한 자산관리를 위한 이들의 선택은 바로 미국 장기국채와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유가증권이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연준이 단기금리를 인상했지만 장기채권시장에서의 금리가 이를 따라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장기채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채권의 가격은 올라가고 그에 따른 수익은 줄어들었던 것이다.

미국의 많은 교역 대상국은 달러화에 대한 자국 환율을 고정함으로써 달러화의 약세를 막았고 그 바람에 미국의 경쟁력은 바라던 만큼 회복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조치는 동시에 달러화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막아 제대로 된 금리 인상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현상이 공황상태를 불러온 은행 파산, 그리고 전 세계의 신용경색과 함께 어떻게 금융위기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는지 설명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부동산은 단순히 재산을 구성하는 가장 크고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융자를 위한 가장 중요한 형태의 담보물이라는 사실이다. 경기순환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하는 동시에 주택 가격 동향을 금융위기와 결부한 건 다름 아닌 모기지 관련 채무였다

고정금리의 장기 모기지를 통해 집을 마련한 사람들에게 브레턴우즈 시대 이후 있었던 인플레이션은 뜻밖의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금리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 이들이 지고 있던 채무의 실제 가치는 점점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자금을 빌려준 은행들의 경우는 반대로 재앙에 가까운 상황들이 이어졌다

미국의 모기지 관련 대출자들은 기존의 대출금을 일찍 상환하고 낮은 금리로 갈아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렇게 되면 대출자들은 전체 상환 비용을 줄여나갈 수 있는 데다가 또 대출자나 채무자 중에는 채권자들에 비해 더 높은 소비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통해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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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대출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모기지 관련 계약은 대단히 편향된 제도일 수 있었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모기지 차입자들에게 직접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들로부터 위험을 바깥으로 분산하고 모기지 상품을 다양한 단계의 이익과 위험을 제공할 수 있는 증권으로 바꿔 투자자들을 끌어모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리고 이 방식은 실제로도 효과를 거두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저축과 대출의 사업 모델과 비교하면 이런 증권화는 위험을 분산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위험이 분산되었다는 이유로 제일 처음 진행되는 대출 업무를 주의 깊게 심사해야 한다는 것을 자칫 망각하게 한 것은 아닐까? 자금조달 부문과 상품의 발행을 분리함으로써 이 새로운 제도는 대출 과정을 주의 깊게 감시해야 할 이유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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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漢 왕조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설치했던 낙랑군을 근대적 시각에 입각해 식민지로 규정하고, 이를 타율성론他律性論의 정립 차원에서 적극 활용하였던 것은 바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었다. 2,000여 년 전 중국왕조의 일시적인 영역 확장이 우리 ‘민족’의 기원을 부정하고 한국사의 시초를 식민지로 만든다는 발상은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유사역사학자들의 행태는 학문과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전체주의로 몰아갈 위험이 크다. 우리 사회의 ‘건전한 지성’을 유지하고 국가권력과 쇼비니스트chauvinist들의 결탁을 통한 역사왜곡 사태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민들 각자의 보다 성숙한 역사인식과 경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요컨대 탈실증주의는 과학이 지식을 얻는 특권적 방식이 아니며, 그저 서구 문화의 창조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비판이론,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해체주의를 비롯해 수많은 ‘주의’가 이 시기 동안 발생하게 되었다.

종교를 이유로 과학에 반대하는 창조론자들을 강력히 비난한 굴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이유로 과학에 반대했다. 덧붙이자면 굴드가 비판한 창조론자들은 여전히 과학계에서 진화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이라며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굴드의 공격을 언급하곤 한다.

정치적 의제를 알리는 데 관심이 있는 급진적 좌파들이 학계로 진출하면서 학문의 가치가 의심받기 시작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급진적 좌파들이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지닌 학자들하고만 연대하며 예술과 인문학이 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후 급진적 좌파는 사회과학 분야에도 발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특히 과학적 방법론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분야를 공략했다. 철학, 정치학, 사회학, 심지어 심리학과 인류학까지 전쟁터가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주관성을 강조한 결과, 급진적 좌파들에 의해 기이한 주장들이 제안되었다. 그 예로 서구 문명이 아프리카에서 훔쳐온 것이라는 아프리카 중심주의,39 수많은 반증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생태학적으로 조화롭고, 이웃과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는 주장,40 인도-유럽 문명 이전에 여성들이 이끄는 평화로운 페미니스트 신이교neopagan 문명이 존재했다는 주장41을 들 수 있다.

쿤은 패러다임이란 공약불가능incommensurable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전의 패러다임을 대체한다고 믿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뉴턴의 이론이 틀렸다고 인정할 때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쿤이 하버드대학교에서 뉴턴의 운동법칙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놀라운 주장이다.2 사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지 대체한 것이 아니다.

귀납-연역적 추론과 반대로, 가설-연역적 추론은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 원인에 대한 가설을 세운다. 우리는 가설과 초기 조건을 바탕으로 전제를 세우고 이로부터 특정한 의미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방법으로 연역된 내용에는 새로운 예측도 있을 수 있다. 창의적 과학에서 가설-연역적 추론은 상상력과 비판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탐구의 대화다. 가설을 수립하는 데 상상력이 동원된다 해서 이 과정이 비논리적illogical인 것은 아니다. 대신 ‘논리적 과정이 아닌 방식non-logical’으로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가설이 수립되고 나면 이 가설은 비판의 칼날 아래 놓인다.9

아직 완전히 이해된 것은 아니지만 DNA 내에 단백질 정보를 담지 못한 부분에 그 열쇠가 있는 것 같다. DNA의 거의 90% 가까이는 단백질 만드는 것과 상관없는 염기서열이다. 중심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부분은 있으나 마나 한 부분이다. 아마도 교차돌연변이에나 쓸모 있는 쓰레기장 같은 거다. 그래서 정크 DNAjunk DNA라 부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부분이 DNA에서 발현의 결정에 관여한다.

생명은 자신을 복제한다.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DNA에 저장해두고 이것을 복제한다. 복제의 전 과정은 물리적이다. DNA로부터 자신을 만드는 과정 또한 물리적이다. 과정에 참여하는 개별 원자와 분자들은 열운동을 할 뿐이다. 모든 과정은 양자역학에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생명이 왜 자신을 복제하려고 하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생명은 왜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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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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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법... 어려울 거라는 예감이 드는 이름이에요. 지금은 ‘엄격한 작곡 기법이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음과 음이 어울리려면 그 간격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정리한 법칙이에요. 어렵다기보다는 따져야 할 게 많다고 할까요? 대위법에 따라 선율을 만든다는 건 마치 1 더하기 1의 답을 구하는 것처럼 분명한 문제입니다. 맞는 답이 있고 틀린 답이 있죠. _ 민은기,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p241

바흐를 주제로 한 <난처한 클래식 3>을 본 것은 바흐의 음악에서 표현되는 대위법과 평균율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대위법을 주제로 한 강의나 전문서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기에 찾아든 교양서적이 <난처한 클래식 3 : 바흐>. 본문에서는 바흐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각 시대를 구분하고,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을 소개하며, QR코드를 통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예전에 읽었던 롤랑 마뉘엘의 <음악의 기쁨>을 더 시각적, 청각적 도구를 활용해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느낌을 받는다.

<난처한 클래식 3 : 바흐>에서 내가 궁금한 부분에 대한 설명은 일반인이 음악감상에 지장이 없을 정도에서 살짝 들어간 정도라 아쉽게도 느껴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해가 된다. 대위법과 관련한 전문서적을 펼쳐보고 바로 덮은 경험이 있기에, 일반독자들이 클래식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난이도 조절을 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 아쉬운 부분은 다른 책에서 찾아 봐야겠지만.

점차 음악가들 사이에서 그냥 한 옥타브를 똑같이 열두 부분으로 쪼개어 음을 정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게 바로 평균율이에요. 평균율의 요점은 다른 음정들의 순수성은 포기하고 ˝옥타브의 순수성만 완벽하게 지키자˝는 겁니다. 도는 1, 한 옥타브 높은 도는 1/2로 놓고 그 사이에 있는 음들은 정확하게 똑같은 비율로 높아지게 만들면 조를 옮길 때 문제가 없으니까요. _ 민은기,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p352

<난처한 클래식 3>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래 구절이다. 책, 음악, 미술 그 어떤 것이든 우리가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그 무엇이 있다면, 그리고 그 무엇을 ‘실체‘라 했을 때, 나는 그 실체를 알기보다는 그 실체를 잘 나타내려는 노력과 노력의 결과물인 지식을 쫓아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이다. 바흐 음악 자체보다 ‘대위법‘과 ‘평균율‘이라는 수학적 질서에 대한 궁금증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바흐 음악에 대한 사랑이 있었을까 하는.

사실 우리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비발디의 <봄>에서 어떤 부분이 새소리를 묘사했다는 지식 같은 게 아닙니다. 당연히 그런 지식이 음악에 흥미를 갖게 하고 핵심에 빠르게 다가가도록 도움을 줄 수 있지요. 하지만 <봄>이라는 곡의 근본적인 가치가 새소리를 잘 묘사하는 데에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새소리를 듣고 싶으면 새소리를 들으면 되고, 시를 감상하고 싶으면 시를 읽으면 되겠죠. 물론 음악으로 시나 새소리를 모방하는 걸 듣는 재미가 없다는 이야긴 아니에요. 저는 이 곡이 시 없이도 사람들에게 환희와 즐거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만큼 사랑받고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고 싶은 건 바로 음악의 그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_ 민은기,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p241

<난처한 클래식> 시리즈를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제시된 문장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순정률의 틀에서 벗어나 평균율의 지평선을 연 바흐지만(참, 지평선이 아니라 지평이었지) 하프시코드의 틀에서 벗어나 피아노의 세계를 열지 못했던 한계를 보면서 우리가 갖는 인간적인 한계를 다시 느끼게 된다.

프리드리히 2세는 바흐와도 친분이 있었던 악기 제작자 질버만이 만든 피아노 포르테를 몇 대 소장하고 있었는데요, 먼 길을 온 바흐에게 그 피아노포르테의 소리가 괜찮은지 한번 쳐보라고 했대요. 이때 바흐가 피아노포르테를 쳐보고 ˝이 정도 음량으로는 하프시코드랑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없습니다˝라고 얘기하죠. 피아노의 역사에서 꼭 등장하는 에피소드입니다. _ 민은기,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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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14 0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기타 치던 친구가
피아노 전공한 친구에게
대위법 배웠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음악하는 이들도 공부를 해
야 하는구나 싶었답니다.

겨울호랑이 2022-10-15 14:40   좋아요 4 | URL
서양학문의 어느 분야이든 조금만 깊이 들어가다 보면 수학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참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예전에(지금도 그렇지만) 수학, 영어 비중이 그렇게 높았구나 싶습니다.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요했고, 전공을 깊이 있게 파기 위해서는 수학을 안 할 수 없는.... 그런 면에서 유럽 문명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어, 수학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논리학 서론.철학백과 서론 고전의세계 리커버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김소영 옮김 / 책세상 / 2020년 7월
평점 :
품절


순수 학문은 사상이 또한 못지않게 사태 자체인 한에서 사상을 지니고 있으며, 사태 그 자체가 또한 못지않게 순수 사상인 한에서 사태 자체를 포함한다. 학문으로서의 진리는 스스로를 전개하는 순수한 자기 의식이며, 자기라는 형태를 지닌다. 따라서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것 das an und fur sich Seiende은 의식된 개념이지만 [사실은] 개념 그 자체가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_ 게오르크 빌헴름 프리드리히 헤겔, <논리학 서론, 철학백과 서론> , p34/174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의 <논리학 서론, 철학백과 서론 Wissenxchaft der Logik-Einleitung>을 통해서 우리는 헤겔의 논리학에 대한 인식을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다. 헤겔은 서문을 통해서 논리학이 단순히 질료가 결여된 형식이 아니라, 질료와 형식을 다함께 포함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이 객관적인 사유가 순수 학문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순수 학문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며 현실적이고 참된 인식을 위한 진료가 결여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순수 학문의 내용은 오로지 절대적으로 참된 것, 또, 여전히 질료라는 용어를 사용하길 원한다면 참된 질료인 것이다... 따라서 논리학은 순수 이성의 체계, 순수 사상의 왕국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왕국은 아무런 외피도 걸치지 않은 채 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진리다. 이 때문에 우리는, 논리학의 내용이 자연과 유한한 정신을 창조하기에 앞서 자신의 영원한 본질 속에 있는 것으로서의 신의 서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_ 게오르크 빌헴름 프리드리히 헤겔, <논리학 서론, 철학백과 서론> , p34/174

분명 논리학은 우선 우리가 알고 있고 통찰하는 어떤 것으로써 습득되지만, 아쉽게도 처음에는 그 폭과 깊이, 폭넓은 의미가 빠져 있다. 다른 학문들을 더 깊이 알게 된 후에야 비로소 논리[학]적인 것은 주관의 정신에게서 단지 추상적 보편자가 아니라 특수자들의 풍부함을 포괄하고 있는 보편자로 고양된다. _ 게오르크 빌헴름 프리드리히 헤겔, <논리학 서론, 철학백과 서론> , p44/174

질료와 형식을 다함께 갖는 즉자대자(Anundfuersich)로서의 논리학은 처음에는 분명 작은 밀알과도 같이 단순한 추상적인 형식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즉자대자로서 자신에 내재한 부정성으로 인해 변증법적으로, 경험으로 부터 얻어지는 특수성을 아우르는 보편성으로의 고양이 이루어지는 전개과정이 논리학에서 펼쳐질 것이다. 개념 자체에 내재한 모순율에 의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자기 부정은 즉자 Ansich- 대자 Fuersich -즉자대자 Anundfuersich 라는 운동을 일으키고 추상적인 보편적 형식으로부터 경험이 제공하는 특수성있는 질료가 담긴 보다 높은 상태로의 고양이 <논리학>에서 펼쳐질 것으로 생각된다.

헤겔의 <소 小논리학>과 <대 大 논리학>을 읽으려면 아직 바깥 해자를 더 메워야겠지만, 한걸음씩 나가보자...

개념이 스스로를 계속 이끌어 나아가도록 하는 것은 앞서 언급된 개념 자체에 내재된 부정성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변증법적 계기를 구성한다. _ 게오르크 빌헴름 프리드리히 헤겔, <논리학 서론, 철학백과 서론> , p42/174

철학의 욕구는 다음과 같이 더 자세하게 규정될 수 있다. 즉 정신은 느끼고 직관할 때에는 감각적인 것을, 상상할 때에는 상 Bilder을, 무엇인가를 원할 때에는 목적을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또한 자신의 현존재와 대상이 갖는 위와 같은 형식들과 대립해 있거나 단순히 구별되어 있으면서, 자신의 최고의 내면성인 사유를 만족시키고 또 그 사유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신은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자기 자신에 이른다. 왜냐하면 정신의 원리, 곧 정신의 순수한 자아를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사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는 가운데 사유가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일이 생긴다. _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빌헬름 헤겔, <논리학 서론, 철학백과 서론> , p68/174

사유가 지닌 이 맨 처음의 추상적인 보편성을 고려한다면, 철학은 경험에 힘입어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정확하고 근본적인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 경험과학은 보편적인 규정과 유, 법칙 등을 발견하기에, 현상의 개별성들을 지각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고함으로써 철학의 소재를 제공해왔다. 경험과학들은 위에서 말한 특수자로서의 내용이 철학에 받아들여질 수 있게끔 미리 준비해둔다. _ 게오르크 빌헴름 프리드리히 헤겔, <논리학 서론, 철학백과 서론> , p7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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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어떤 동물도 현존하는 다른 동물에서 진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대신 현존 동물들은 지질학적 역사의 (원리적으로는 식별 가능한) 특정 순간에 살았던 공통조상을 갖는다.

추세선이 보여주는 경향은 명확하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종교는 쇠퇴하고 비종교인의 수가 늘고 있다. 침묵의 세대Silent Generation(1928~1945년 출생)는 11퍼센트,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 출생)는 17퍼센트, X 세대(1965~1980년 출생)는 23퍼센트, 전기 밀레니얼 세대(1981~1989년 출생)는 34퍼센트, 후기 밀레니얼 세대(1990~1996년 출생)는 36퍼센트로 감소 폭은 깊고도 넓다.

하느님이 글을 통해 인간에게 직접 뜻을 전했다는 믿음이 약해지는 현상은 개인과 사회의 책임을 중시하게 된 분위기를 반영하는 또 하나의 지표다. 더 나은 세상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도덕을 실천하는 일은 기도와 간청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 또한 우리는 하늘의 천국이 아닌 지구 위에서 천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기독교에 열정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종교가 허황되다는 확신을 가져서가 아니다. 단지 종교가 그들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교에 무관심해졌을 뿐이다." 이런 현상을 일컫는 단어가 바로 ‘무관심apathy’과 ‘유신론theism’을 합성한 ‘유신론에 대한 무관심apatheism’이다.

장기적 추세는 역시 종교와 멀어지고 세속화로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이런 추세가 계속되어 지금껏 삶의 의미를 제시하던 전통적인 토대가 완전히 사라지면, 우리는 앞으로 그것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한동안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사역사학은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놓은 닫힌 논리 구조 속에 있다. ‘우리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오래되어야 하고, 공간적으로 거대해야 한다. 세계인들이 우러러볼 정도로 위대한 역사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역사는 식민사학이요, 매국사학이 된다.’ 이렇게 유사역사학은 건조하게 사실 관계를 따져야 할 역사 연구에 이데올로기적 당위와 윤리성을 뿌려 섞어버린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연구가 불가능하다.
학문의 목적은 객관적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지, 쇼비니즘적 욕망과 환상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라는 공산주의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에 대한 강한 충성심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이 강한 충성심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대한 국가가 있어야 그에 대한 강한 충성심이 따라오는 것이다. 유사역사를 만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교육에 있다. 세계사적 흐름에 따라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의 가족사를 보듯이 한국사를 살피면서 아프게 느껴지는 역사적 순간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축적하게 된다.

뜻밖에도 이렇게 한국사를 위조하고 비하하려는 근본적인 원인은 일제강점기의 식민사학에 그 뿌리가 있다. 일제의 식민사관은 식민지 조선을 열등하고 무능한 존재로 격하시켰다. 우승열패의 세계에서 조선은 열등했기 때문에 우등한 일제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해방 후에도 조선은 열등한 나라라는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열등하지 않았다면 식민지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단순명쾌한 논리가 있었다. 조선은 무려 500년을 존속한 나라임에도 말기의 혼란과 무능을 전 조선에 뒤집어 씌워도 무방했다. 이런 시각을 가장 잘 보여준 사람은 60~70년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였다

박정희에게 한국사는 "남에게 밀리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온 역사"이고 "세계에서도 드물 만큼 소아병적이고 추잡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모든 악의 창고 같은 우리의 역사는 차라리 불살라버려야 옳은 것"이었다. 박정희의 역사관은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었다. 타율성론, 당파론, 만선사관(지리적 결정론)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외피는 민족주의를 표방했다.

역사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새로운 해석에 의해서 과거의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게끔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유사역사가들은 대수롭지 않은 변화라고 빈정거리거나 무시한다.

역사가들은 이런 복잡성을 이해하고 있다. 그 덕분에 역사가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쉽게 단정하지 못하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애매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반면에 유사역사가들은 딱 잘라서 단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단 한 가지 증거만 가져오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창조론자들은 "진화의 증거가 되는 화석 하나만 가져와라."라고 말하고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는 "유대인이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증거 하나만 대보라."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런 방법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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