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73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완구 옮김 / 책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생명은 야생과 일치한다. 가장 활동적인 것은 가장 야생적인 것이다. 아직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았지만 그 존재는 인간을 기운 나게 만든다. 끊임없이 서둘러 나아갔고 결코 노동을 그치지 않았던 사람, 즉 빠르게 성장했고 생명을 끝없이 요구했던 사람은 항상 자신이 새로운 지역이나 야생 자연 속에서 생명의 원료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는 원시 산림수의 포복성 줄기 위를 타고 넘을 것이다. 나에게 희망과 미래는 잔디밭이나 경작된 벌판, 즉 시내와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상되지 않고 흔들리는 습지에 있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산책> , p34/172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는 <산책 walking>에서 야생(wild)과 생명(life)을 말한다. 가공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원재료에서 그는 새로움을 발견하고,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한다. 소로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생활에서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소로는 기꺼이 콩코드 월든 호수에서의 삶을 선택한다. 이 시기에 탄생한 <월든>이 불후의 명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고자 했던 그의 사상과 삶이 접점을 가졌기 때문이고, ‘야생=생명‘을 말하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있는 울림으로 퍼져나간다.

이렇게 모든 자연적인 산물들에는 그것들의 최고 가치를 나타내는 휘발성의 공기 같은 무형의 성질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속되게 될 수도 없으며 사거나 팔 수도 없다. 이제까지 어떤 인간도 어떤 과일의 완벽한 맛을 향유하지 못했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야생사과> , p86/172

<산책>은 <월든>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대한 예찬이 담긴 짧은 에세이다. 그렇지만, 이 짧은 에세이 안에서 <월든>을 읽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소로의 자연관(自然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과연 자연을 사랑했을까? 그리고 그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면 인생의 사과, 세계의 사과를 맛있게 먹으며 즐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건강한 야외의 식욕을 가져야 하는가?... 이와 같이 들판에 어울리는 사유가 있고 집에 어울리는 사유가 있다. 나는 야생 사과처럼 산책가를 위한 양식이 되는 나의 사유를 가지고 싶다. 그런데 그것을 집에서 맛본다면 맛이 있으리라고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야생사과> , p106/172

소로는 다른 에세이 <야생사과>에서는 사과의 맛을 즐기기 위해 야외의 식욕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맛있는 자신만의 사유를 갖고 싶어 자연에 있고 싶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가 말하는 ‘자연‘의 소중함은 자신에게 신선함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결국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의 도구에 불과하는 것이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4원인설의 방식으로 해석하자면, 자신과 인간을 목적인(目的因)로 하는 새로움을 주는 작용인(作用因)으로서의 자연을 그는 사랑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우리의 이해력도 우리의 평원처럼 광범위해지고 포괄적이게 될 것이고, 우리의 지성도 우리의 천둥과 번개 그리고 우리의 강이나 산, 숲과 같이 전반에 걸쳐 더욱 대규모가 될 것이며 우리의 마음도 폭과 깊이 그리고 웅대함에 있어서 우리의 내해와 대등하게 될 것이다. 아마 여행자들에게는 우리의 얼굴에 있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차분하게 하는 어떤 것,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그 어떤 것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가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겠으며 아메리카는 어떤 이유로 발견되었겠는가?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산책> , p30/172

만약 그렇다면, 소로가 사랑한 자연은 낭만주의적인 숭고미(崇高美)의 대상을 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날 것‘이 주는 경이와 위대함이 자신과 인류의 사상과 영감이 원천이 되는 한 자연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어린왕자>에서 사막여우가 말한 사랑 - 서로를 길들이는 것-과 소로의 자연사랑은 분명 결이 다를 것이다. 소로에게 자연은 길들여지지 않았을 때 오히려 가치를 갖는 것일테니까. 서로 길들이며 닮아가면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는 영감은 한계생산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Returns)에 따라 감소할 것이기에 최적의 상태는 인간(문명)과 자연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닐까. 마치 DMZ의 남북 4km의 길이에 보존된 자연을 수색대원이 간간이 수색, 매복하면서 느끼는 원시의 힘을 소로는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역사를 실현하고 예술과 문학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인류의 발자국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동쪽으로 간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진취적인 기상과 모험심을 가지고 미래로 발을 들여놓듯이 서쪽으로 간다. 대서양은 우리가 그 통로 위에서 구세계Old World14)와 그 제도를 잊을 기회가 있었던 레테의 강이다. 만일 우리가 이번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지옥의 강Styx가에 도착하기 전에 아마도 인류에게 남겨진 기회가 한 번 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세 배나 더 넓은 태평양이라는 레테의 강에 있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산책> , p26/172

과거 서부 개척시기 북미원주민(인디언)들을 보호구역으로 몰아넣고 결국 그들의 공동체를 파멸로 이끌었던 역사에서 보듯 이러한 격리 상태가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해석된 소로의 자연관은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물론, 소로가 자연파괴를 원했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생각도 소로의 사상 전반을 통해 다시 검증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미 소로 전문가들은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그의 사상을 정리했을 것이지만, 아직 공부가 미진한 관계로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부분은 개인적인 숙제로 남겨놓고 <산책 외>에 대한 리뷰를 갈무리한다...

우리가 자랑했던 소위 지식이라는 것의 대부분이 우리에게서 실제적인 무지의 장점을 빼앗아 가는, 그저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는 자부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위 지식이란 종종 우리의 적극적인 무지이고, 무지란 소극적인 지식이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산책> , p46/172

야생 사과에 대한 나의 경험에서 볼 때, 나는 문명인이 거부하는 많은 종류의 음식을 미개인이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미개인은 야외에서 사는 인간의 미각을 가지고 있다. 야생 과일을 음미하는 것은 미개의 또는 야생적인 미각을 가지는 것이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야생사과> , p104/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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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1-09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1-09 20:4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날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아요. 저녁시간 따뜻하게 보내세요! ^^:)

이하라 2022-11-09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11-09 20:50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

모나리자 2022-11-09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22-11-09 20:50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

거리의화가 2022-11-09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상 축하드려요*^^*
소로의 자연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데 덕분에 저도 체크해갑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9 20:52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월든>과 <시민의 불복종>에 담긴 소로 사상이 짧은 글 안에 담겨 있는 좋은 독서시간이었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11-09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9 21:00   좋아요 0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 풍요로운 한 주 되세요! ^^:)

마루☆ 2022-11-09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에 뽑히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겨울호랑이님의 감동이 고스란히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9 22:49   좋아요 1 | URL
마루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

강나루 2022-11-10 0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서정을 축하드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1-10 07:45   좋아요 1 | URL
강나루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그는 그저 믿을 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최선의 행복은 툰더텐트론크 남작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제2의 행복은 퀴네공드 양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제3의 행복은 그녀를 매일 볼 수 있는 것이고, 제4의 행복은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철학자인 팡글로스 선생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퀴네공드는 과학적 호기심이 많았기 때문에 숨죽이고 실험을 지켜보았다. 여러 번 반복된 실험을 관찰한 덕택에 그녀는 박사의 충족 이유(充足 理由)와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동요되었다. 그녀 자신도 팡글로스처럼 학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녀 자신은 캉디드의 충족 이유가 될 수 있고, 캉디드 또한 그녀의 충족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팡글로스는 형이상학적, 신학적 우주론을 강의하였다. 그는 다음 같은 사실을 멋지게 증명해 보였다. 즉 원인 없는 결과란 없으며, 우리의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며, 남작 각하의 성은 이 세계의 성 중에서 가장 멋진 성이며, 남작 부인은 가장 좋은 남작 부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이란 가장 좋은 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례로 코는 안경을 얹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씁니다. 다리는 양말을 신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양말을 신습니다. 돌은 원래 성을 짓는 석재로 쓰이기 위해 생성되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지요. 모든 것은 최선의 결과를 향한 필연적 과정으로 얽혀 있습니다. 저는 필연적으로 퀴네공드 양의 집에서 쫓겨나야 했고, 몽둥이찜질을 당해야 했으며, 또 돈을 벌 때까지 구걸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필연입니다.」

이 말에 팡글로스는 한결 더 공손하게 대답했다.
「각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인간의 타락과 저주는 최선의 세계에 필연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자 포리가 말했다.
「그럼 선생은 자유 의지를 믿지 않으시는 겁니까?」 「외람된 말씀이오나 자유 의지는 절대적 필연과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유로운 것은 그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의지란…….」

팡글로스가 여기까지 얘기하였을 때 포리는 〈포르토〉인지 〈오포르토〉인지 하는 포도주를 따르고 있는 호위무사에게 고갯짓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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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수지 흑자와 1994~1998년에 발생한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것을 스스로 막아내겠다는 의지 때문에 이런 신흥시장국가들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정리해 사용할 수 있는 준비 자산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자산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장단기 채권이었다.

신흥시장국가들의 투자자는 먼저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들였고 그다음에는 GSE에서 발행한 기관 채권을 사들였다. 그러자 다른 기관 투자가들은 그 밖의 다른 대안을 찾기도 했는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바로 금융공학이었다. 예컨대 연금기금과 생명보험사, 그리고 수익 좋은 기업들이 쌓아놓은 막대한 액수의 현금을 관리하는 전문 관리자나 개인 갑부들이 안전자산을 찾고 있을 때 나타난 AAA등급의 증권은 파생상품의 합성 방법을 알고 있는 미국의 모기지 기관들이 만들어낸 상품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일어났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호황이 금융위기로까지 이어진 것은 증권화와 관련해서 내세운 논리와는 다르게 수천억 개에 달하는 민간 발행 MBS가 금융시스템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모기지 상품 판매자와 모기지 상품을 증권으로 만들었던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에 그대로 쌓여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컨트리와이드와 같은 신흥 모기지 업체들에 예금자들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실제로 충분한 예치금을 확보하지 못한 리먼브라더스는 결국 다른 곳에 모인 현금을 빌려다가 자금을 조달했으며 다른 신규 사업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했다. 이것이 금융위기의 핵심에 자리하던 진짜로 치명적인 작동 구조였다. 화폐시장에 모였던 현금이 대차대조표에 다량의 MBS를 보유할 수 있는 자금으로 융통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종의 먹이사슬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은 간단했다. 모기지 채무는 더욱 늘어갈 것이며, 상품의 질이 떨어질수록 수익은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른바 독립 사건 확률의 마법(the magic of independent probabilities)에 따라, 분할과 통합 과정을 되풀이하는 대출상품의 품질이 떨어질수록 효과는 더 극적이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아시아와 미국의 경우 돈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갔고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금융시스템 안에서는 자금이 양방향으로 흘러 미국으로 유입되기도 또 유출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시장 중심의 은행 업무 모델의 논리다.

바젤 II도 이론적으로는 8퍼센트의 자기자본비율 유지를 요구했지만 일단 거대 은행들은 자체적인 위험가중치 모형을 적용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규모의 대차대조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젤 I이 적용될 경우 모기지 자산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되었으며 필요 자본 계산을 위한 위험가중치는 오직 50퍼센트가 적용되었다. 바젤 II는 부동산 호황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런 규제들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기지 자산의 "자본가중치(capital weight)"를 35퍼센트로 줄여서 고수익의 MBS 보유를 훨씬 더 매력적인 사업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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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은 독일의 탈원전 정책이 마침표를 찍는 해였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2011년, 메르켈 정부는 숙고끝에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결정했다. 세계가 주목한 이 계획은 단계적으로 큰 차질 없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여론이 흔들렸다. 지난 8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분의 3이 원전 수명 연장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슈피겔>은 "옥토버페스트와 함께 독일정체성의 일부였던 반핵 운동이 잠잠해지고 있다"라고 썼다.
여기서 환기할 것이 있다. 독일 에너지 위기의 본질이 ‘러시아산 가스 위기‘라는 점이다. 가스의 단기적 대체재로 원전이 대두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의 일부여론처럼 이를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정책의 실패로 규정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 P14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를 당초 65%에서 80%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계획도 발표했다. 현재발전 비중의 두 배 가까운 목표치다. ‘기후 총리‘로 불리던 메르켈 시절보다 더 급진적인 정책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에도 목표는 하향되지 않았다. 지난 4월에는 이른바 ‘부활절 패키지‘를 통해 풍력·태양광 발전시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더욱 높이기로 했다. 특히 연방정부는 2032년까지 전체 국토의2%를 풍력발전단지로 만들기로 하고,
각 주정부에 이를 할당했다. 지방분권 시스템을 갖춘 독일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강력한 조치다. - P15

한국에선 재생에너지가 원전보다 비싸다고여겨진다. 독일에서는 어떻게 재생에너지가지금처럼 싸졌을까.
재생에너지 확대가 장기적으로 소비자의 전기료를 올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기술 발전으로 지금은 매우 저렴하게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태양광,
풍력 등 자원이 풍부한 곳에서는 kWh당2유로센트 이하로도 전기를 생산할 수있다. 건설 기간이 오래 걸리는 신규 원전에 비해 월등히 저렴하다. 천연가스,
석탄 같은 화석연료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따라 이미 경제성을 상실했다.  - P17

현 정부는 삼성과 정반대 방향을 걷고 있다. 원전 확대와 재생에너지 축소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을 두고 "5년간 바보 같은 짓을 했다"라고 표현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8월30일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윤석열 정부의 방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번 계획에서는 2030년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을 32.8%로 끌어올리고재생에너지는 21.5%로 낮췄다. - P19

그러나 농촌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작물을 바꾸는 게 쉽지 않다.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농촌에서는 밭농사보다 논농사가 낫기 때문이다. 농림부에서 발표한
‘농업기계 보유 현황‘ 통계에 따르면2020년 벼농사 기계화율은 98.6%에 달하는 데 비해 밭농사 기계화율은 61.9%에 불과하다. 게다가 농민 입장에서는 품종을 넘어 작물 자체를 바꾸기로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써오던 비료나농기계 같은 밑천은 물론이고 재배법이나 병충해 예방법 등 자신이 오랜 시간을들여 축적해온 노하우까지 모두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농가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마저 안정적이지 못하다.  - P31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의는 단순하지 않다. 쌀값 폭락에 대한 대책을 넘어서, 다가오는 식량 위기 시대에대한민국 사회가 주식을 안정적으로 수급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비용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한 국가가 해외에 의존하지 않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로 흔히 언급되는 식량자급률은 1999년 54.2%에서2019년 45.8%로 하락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중쌀 자급률은92.1%로 유일하게 국내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이다. - P32

전문가들은 미국 마약단속국(DEA)같은 제3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데에 입을 모은다. 수사권 조정 이후 마약 수사Q 현장은 검찰과 경찰의 실적 경쟁으로 유지되고 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법조계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검경이) 서로정보 공유를 안 한다. 수사 협조자를 활용한 검거 작전 도중인데 이 사실을 모르는다른 기관에서 협조자를 검거하는 경우도 있다. 단일한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 이 새로운 컨트롤타워의 덕목은 ‘단일함‘만이 아니다. 검찰이 수사를 총괄하던 때로 회귀하자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안이다. 여타 수사 당국의 견제를 받고 예방과 치료까지 담당하는 새로운 기구를뜻한다. - P35

비오르크 교수는 스웨덴이 집단면역을 추구했다는 인식은 오해라고 말했다.
"스웨덴 전략의 핵심은 강제적인 지침이아니라 권고와 권유를 중심에 둔다는 것이었다. 봉쇄처럼 강제성을 띤 극단적 방식은 단기간에는 효과를 보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역 당국은 ‘코로나 증세가 있으면 집에 머물러주세요‘ ‘70세 이상 고령층은 코로나19 고위험군이니 사회활동을 줄여주세요‘ 같은 권고 사항을 지속적으로 알렸고 시민들의 자발성을 기대했다. 성공한 면도, 실패한 면도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신뢰에기반을 둔 전략이었다."
팬데믹 1년 차였던 2020년 유럽 평균보다 나빴던 스웨덴의 코로나19 방역 지표는 2021년을 지나 개선되었다.  - P47

자녀돌봄휴가(VAB)‘ 제도가 있다고들었다. 코로나19에 걸려서 아이가 학교에가지 못하면 부모도 출근하지 않는다고하던데.
그 제도는 1970년대부터 운영되었다.
50년 가까이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스웨덴에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아이가 기침을 하거나 감기나 독감증세를 보이면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이가 등교하지 않는 동안 부모도 집에 머물면서 아이를 돌본다. 그 기간에는 자녀돌봄휴가를 통해서 정부로부터 임금이 보장된다.(원 임금의 80% 수준). - P53

2010년대의 히잡 반대 시위는 이벤트적이고, 다소 상징적·소극적 성격이었다.
반면 이번 지나의 죽음이 촉발한 히잡 반대 시위는 차원이 달라졌다. 스스로 머리를 싹둑싹둑 잘라내는 ‘단발 투쟁‘, 히잡불태우기 등 좀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며, 거칠고 직설적이다. 무엇보다 과거의히잡 반대 활동가들이 ‘셀럽화‘하면서 대중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면, 이번 히잡 반대 시위는 셀럽과 소영웅주의 대신거칠게 분노한 대중운동으로 나아가고있다. 거리에는 히잡을 두른 여성들도 대거 동참 중인데, 국가가 개인의 신체와 표현 수단을 통제하고 처벌하는 제도를 거부하는 대의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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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 리 스몰린이 들려주는 물리학 혁명의 최전선 사이언스 마스터스 13
리 스몰린 지음, 김낙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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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중력은 그 이론적, 실험적 난점들 때문에 많은 학자들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끈이론, 고리, 고리 양자 중력 이론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아직 어떤 이론도 완벽한 이론적 체계와 실험적 검증이라는 두 가지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지 못한 상태이다. 끈 이론과 고리 양자 중력은 비록 그 착안점은 완전히 다르지만 홀로그래피 원리, 시공간의 거품 등과 같은 흥미로운 공통 예측이 속속 등자하고 있음을 저자는 강ㅈ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힌트를 바탕으로 양쪽의 장점만을 취합한 궁극의 양자 중력 이론을 완성하는 것이 가까운 장래에 가능할 것인가? _ 리 스몰린,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 , p9

리 스몰린(Lee Smolin, 1955 ~ )은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Three roads to quantum gravity >에서 끈이론과 고리 양자 중력 이론 그리고 이들을 통합한 또다른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브라이언 그린, 미치오 가쿠, 리사 랜들 등이 주장하는 끈이론과 리 스몰린, 카를로 로벨리 등이 주장하는 고리 양자 중력 이론 등 양자 중력 이론의 계보에 익숙하지 못한 일반인들에게 이들 이론의 차이점과 접점을 알려준다는 것이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다.

입자에 전급함에 따라 장의 세기가 무한대에 접근한다. 이것은 현대 물리학의 방정식에서 나타나는 많은 무한대 값들을 설명해준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 두 가지 방식 모두 양자 중력 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 가지는 공간이 연속적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으로, 이 경우에는 입자에 임의의 거리까지 가까이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른 방법은 이중성의 가설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가설을 이용해 입자를 끈으로 대체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어던 것이 실제로 점인지 작은 고리인지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방법이 유용할 수도 있다. _ 리 스몰린,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 p212

오늘날 고리 양자 중력 이론이라고 부르는 것이 탄생했다. 간단한 결과 하나는 양자 기하학은 진정으로 불연속적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은 초전도체 안의 자기장과 마찬가지로 불연속적인 역선이라는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중력장을 고리로 설명하자, 임의의 곡면의 넓이는 간단한 단위의 불연속적인 배수로 판명되었다. _ 리 스몰린,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 p242

리 스몰린은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본문에서 끈 이론과 고리 양자 중력 이론이 '동일한 방정식을 해석하는 다른 방법' 뿐임을 말한다. 거칠게 요약하면, '입자'와 '장'의 관계에서 시공간의 불연속적인 면에 초점을 맟췄을 때 고리 양자 중력이론이 되는 반면, 연속적인 시공간에서 매우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진 전자와 광자의 운동에 초점을 맞추면 끈 이론이 된다. 서로 다른 면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이들은 완전히 다른 이론으로 보여지지만, 사실 이들은 같은 방정식을 공유하는 형제들이다. 때문에, 이들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보완이 가능하여, 이를 통해 보다 완전한 양자 중력 이론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이 책에서 말하는 마지막 세 번째 길이자, 저자의 희망이다.

이중성의 가설(hypothesis of duality)은 19세기 중반 이후 물리학을 괴롭혀 온 논제, 즉 우주는 입자와 장이라는 두 가지 다른 것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여겨진다는 이슈를 정면에서 다룬다. 이 이슈에서 이중성의 가설이 필연적으로 사용되어야만 하는 이유는, 19세기에 이미 알려졌듯이, 전하를 띤 입자들이 직접 상호 작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입자들은 전기장과 자기장을 매개로 상호 작용한다. 이것은 여러 가지 관측 사실로 뒷받침되는데 입자 사이의 정보 전달이 유한한 속도로 이루어지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 경우는 정보가 장의 파동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_ 리 스몰린,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 p211

그렇지만,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이 출판된지 20년이 지났지만,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끈 이론과 양자 중력 이론의 주장을 입증하는 것도, 이들을 통합한 진일보한 이론이 나오지 못했다. 그것은 양자의 세계를 인위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한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우리가 양자의 세계를 제대로 표현할 사고와 언어를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런지. 어쩌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초끈 이론과 고리 양자 중력 이론 모두가 틀린 이론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을 읽으며 이러한 이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은 이들 이론이 우리의 수준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최선(最善)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뉴턴의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처럼, 무리한 가정이라고 할 지라도 이러한 제약조건 속에서 한 걸음씩 나갈 때, 우리는 제약조건을 넘어선 궁극의 진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때가 되면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에 의해 새로운 언어와 이론이 현상을 더 잘 설명해 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저자 리 스몰린을 비록한 이론물리학자들이 수십 년간 벽과 부딪히는 듯한 힘든 싸움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이런 예상을 마지막으로 글을 갈무리한다...

과학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우리의 능력이 닿는 한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직관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처럼 시험으로는 측정하기 어려운 특성을 요구한다. 아인슈타인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듯이, 뉴턴의 생각은 사실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절대 공간과 시간은 그 당시 물리학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으며, 이것을 이해한 것이 아마도 뉴턴의 가장 위대한 업적일 것이다. _ 리 스몰린,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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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0-17 09: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직 불완전하지만 초끈이론이 끈이론의 특이성을 설명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읽을때는 아하! 하다가 설명하려고 하면 모르겠는 미시세계;;!
잘 읽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2-10-17 09:53   좋아요 3 | URL
네, 같은 고리 양자 중력 이론가인 카를로 로벨리는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에서 끈이론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로벨리와 스몰린의 학문적 견해 차이의 일부는 끈이론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있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과연 얼마만큼 끈이론의 가정과 이론전개를 긍정하는가는 그들의 논문을 통해 봐야겠습니다만, 그러지 못해서 추측으로 넘겨 봅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