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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김영사 모던&클래식
존 스타인벡 지음, 안정효 옮김 / 김영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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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를 봐도 미친 듯 싶었다. 형성되어가는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안전과, 이익과, 미래를 위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닥치는 대로 싸웠다. 아메리카인은 땅이 소중한 줄을 알지 못해서, 그 땅을 마구 파헤치고, 약탈하고, 때로는 파괴하기까지 했다... 가족이 이루어지자 그 가족은 다른 모든 가족과 맞섰다. 마을이 이루어지자 그 마을은 다른 모든 마을과 맞섰다.... 불가피한 필요성에 따라 데려온 사람들은, 불안정하고 궁핍하지만 힘센 자들의 새로운 무리를 이루었고, 그들은 저항과 미움의 대상이 되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또다시 새로운 다른 사람들의 무리가 몰려온 다음에야 겨우 이웃이 되었다.(p88).. 그래도 한 세대나 두 세대, 그리고 아무리 오래 걸려도 세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인종 집단은 예외없이 그들의 복수성 複數性, pluribus을 상실하지 않은 채 한 덩어리 속으로 흡수되었다.(p89)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中


 존 스타인벡 (John Ernst Steinbeck, 1902 ~ 1968)은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America and Americans>에서 미국의 기원을 이주자와 이전 거주자들의 대립으로부터 찾는다. 1492년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 ~ 1506)년 산타마리아호(La Santa Maria와 3척의 배를 타고 중남미로 건너갔을 때부터, 1620년 메이플라워호(Mayflower)가 청교도 개척자들을 싣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갈 때부터 대립은 시작되었다. 


[사진] 메이플라워호(출처 : https://www.britannica.com/topic/Mayflower-ship)


 여러 가지 보편적인 특성이 많지만, 그것들은 상반되는 특성들 때문에 서로 상쇄한다. 아메리카인들은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숨을 쉬고 힘을 발휘하지만, 우리들이 스스로 엮어낸 신화에 대한 열정적인 믿음만큼 모순이 심한 측면은 또 없다.(p116)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中


 그렇지만, 미국은 이러한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집단과 갈등을 조화롭게 해결하는 대신 새로운 이주자 또는 적에 대항하여 단결하는 방편을 택한다. 성조기(星條旗, Stars and Stripes)의 깃발 아래 현재의 모든 문제는 수면 아래로 끌어내려지고, 눈앞의 문제만이 중요한 사회가 된 것이다.


 아메리카인들이 한 민족으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직면한, 가장 중대하다고까지는 못하더라도 아주 심각한 문제를, 내가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회피했거나, 적어도 뒤로 미루어왔다는 생각이 든다.(p265)... 인간은 독립적인 개성이 강하면서도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사람이 우글거리는 도시와 집단 주택의 소음과 불편 속으로 떼를 지어 다니며, 사람이 우글거리는 도시와 집단 주택의 소음과 불편 속으로 떼를 지어 몰려든다.(p267)... 우리는 홀로 있기가 두렵고, 같이 있기도 두렵다. 우리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뿌리가 깊고, 필연적이고, 제멋대로 날뛰는 그 무엇 때문이다.(p268)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中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부유해진 미국이 과거로부터 쌓여온 모순을 해결하기는 더 어려웠다. 그리고, 스타인벡은 이러한 풍요로운 미국에서 오히려 미래없는 사회 모습을 발견했다. 풍요로움이 가져온 공허함. 이것이 스타인벡이 발견한 미국의 문제점이다.


 모두가 평등하고, 평범하고, 민주적이고, 대부분이 신교도이고, 물질주의적이고, 속되게 하나같이 잘 먹고 잘 살아가던 19세기에 돈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부유해지자, 우리들이 한때 거부하고 몰아냈던 화려함과, 치장과, 의식과, 멋진 명칭과, 풍채와, 예절에 대한 깊은 갈망이 머리를 들었으리라. 그런 갈망이 존재했으므로 우리들은 그것을 해결하려고 했다.(p184)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中


 나는 국가를 파괴하는 요인으로 안락함과, 풍요와 안정을 열거했다. 거기에서 권태롭고 짜증스러운 냉소주의가 자라나며, 그런 냉소주의로 인해서 현존하는 세계와 현재의 나 자신에 대한 반발이 무기력한 자기만족 속에 잠겨버린다.(p285)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中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에서 스타인벡은 대립과 갈등으로부터 시작한 사회가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계속 미루다가 20세기의 풍요로움 속에서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속한 미국사회의 모습을 결코 밝게 보고 있지 않다. 그런 면에서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비극이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이 지난 세기와 21세기 초반에 거친 세계패권국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비극이기도 하다. 구대륙에서 꿈과 희망을 잃고 신세계로 떠난 이들이 이룬 것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 아닌, 전쟁의 제국이었다는 사실은 인류 모두에게 아픔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의무도 없고, 충족시킬 목적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믿는다. 인류에게는 최초의 목적이 우호적이지 못했던 자연계에서 끊임없이 생존하려는 것이었다... 우리의 필요성은 충족시키기가 불가능할 만큼 컸다. 우리의 꿈은 너무나 터무니가 없어서, 그 실현성은 천국에서나 찾아야 했다.(p278)... 우리는 절대로 길을 잃지는 않았다. 과거의 길들이 끝났으며, 우리는 아직 미래로 향하는 길을 찾아내지 못했다.(p284)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中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을 통해 우리는 스타인벡의 뛰어난 통찰과 함께 그가 지적한 문제들이 지금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확일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좌절감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스타인벡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이 아무도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찾는 시작점이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리뷰의 마지막은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의 전체 내용을 요약하되, 청교도 이주로 시작된 미국에 맞게 해당 성경 구절로 끝내려 한다. 해당 구절들은 대립으로 시작한 기원과 신생국에서 세계 패권국으로까지의 성장, 그리고 물질문명의 종착점에서 미국 지성인들이 던지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구절들이라 생각한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루카 12 : 51 ~ 53) 中


 처음에는 보잘것없겠지만 나중에는 훌륭하게 될 것일세.(욥 8 : 7) 中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코헬 1: 2 ~ 4)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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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3-20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교도 정신으로 시작한 나라
가 새로운 시기에 접어 들어서는
기득권 탐욕의 나라로 시대적
전환을 맞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3-20 09:05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이제는 탐욕의 제국이 되버린 미국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 박해받거나 본국에서 밀려난 이들이 피해의식을 가지고 세운 나라이기에 태생적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기억의 장소 4 - 프랑스들 2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 번역총서 서양편 290
피에르 노라 외 지음, 김인중.유희수 외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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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우파 개념의 역할을 평가하는 기준은 더 이상 그 유인 능력이나 배치 능력이 아니다. 그 개념은 이제 대립요소들로 구성된 한 우주를 표상해야 할 새로운 소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립요소들이 과거보다 덜 격렬하게 표현된다고 해서 그 대립요소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p111)... 이들의 대립관계는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록 좌파와 우파가 중간지점에서 서로 화해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회의 대립관계를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으로 형상화하게 될 것이다.(p112) - 우파와 좌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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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 식민지지배와 기억의 투쟁, 제2판 34곳 삭제판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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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을 묻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식민지주의와 국가와 가부장제의 강제성을 무엇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구조의 실천과 유지에 가담한 이들의 강제성도 함께 추궁되어야 한다.(p26)... 하지만 위안부들의 불행을 만든 주체가 일본군뿐 아니라 그녀들을 보낸 사람이나 학대한 사림들이기도 한 이상, 그런 그들의 죄나 범죄를 묻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p27)...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민족 요인보다도 먼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p33)...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의 식민지화와 식민지로 이식된 공창 제도가 있었고, 중간매개자들은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존재였다.(p34)

「제국의 위안부」에서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제국주의 문제만이 아닌 가부장제와 경제문제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위안부에 대한 인식이 전체를 바라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렇지만, 위안부 사건을 ‘국가에 의한 폭력‘ 아닌 새로운 틀 - 가부장제, 가난 - 로 바라봤다는 저자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게 힘든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분명 피해자였지만, 그러면서도 ‘일본 제국‘안에서 ‘두 번째 일본인‘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식민지인의 모순이었다.(p90)

전쟁터에서 강간의 대상이 된 ‘적의 여자‘와 위안부는 군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였다. 가족과 떨어져 전방에 나가 있는 군인들을 ‘부인‘처럼 신체적•정신적으로 위무하고 사기를 북돋는 역할, 그것이 위안부의 원래 역할이었다.(p57)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조선의 위안부는 제국의 2등 민족으로 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의 동반자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위안부의 모습은 실제가 아니며, 위안부들과 일본군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좋았음을 일본군 생존자의 말을 통해 뒷받침한다.

증언한 ‘위안부‘들의 대부분이 십대에 강간당하거나 위안부 생활을 시작해야 했으니 일본군이 ‘어린 소녀까지도‘ 상대했다는 것은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녀 위안부‘가 위안부의 평균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보는 일은 중요하다.(p51)

눈앞에 주어진 ‘거짓 애국‘과 ‘위안‘에 몰두하는 것은 그녀들에겐 하나의 선택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일본군과의 연애나 결혼이 가능했던 것은 그런 딜레마를 안을 것을 포기한 이들의 선택이었다고 보아야 한다.(p62)

저자는 ‘무자비한 일본군‘의 모습은 왜곡되었으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오히려 이들을 일본인에게 팔아 넘긴 ‘조선인‘과 ‘식민 조선 사회‘에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책임을 줄이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가.
책 전반부에 미담(?)으로 가득한 일본군과 위안부 이야기는 둘째로 하더라도, 저자는 위안부 문제에서 남성(가부장제) 책임을 지적하면서도 거의 일본군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피해자 이야기는 이미 정형화되었다고 판단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해자 입장만 강조된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가부장제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기에 저자의 주장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힘들다.

˝면장을 맡게 된 게 불운˝이라기보다는 한국이 병합된 것이 불운이었다. 2000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면장‘이건 ‘읍장‘이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구조적으로 국가정책에 대한 ‘협력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p41)

위안부 강제 동원과 관련하여 국가에 의한 강압이 있었다는 저자의 말은 위안부 문제에 있어 부동의 ‘제1원인‘이 일제에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일제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문제에 대해 다른 원인을 들고 나오는 태도는 세대, 젠더 이슈로 본질을 가리려는 현대 정치권과 언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사 문제는 사건의 당사자들이 살아있는 오늘날의 문제이며,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들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분야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신중하지 못했다 여겨진다. 피해자들이 한 목소리로 당대의 사건을 증언하는데, 객관적이고 과학적, 실증적 접근이라는 방식으로 이를 부인하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다.

‘모든 백조가 하얗다‘는 명제를 깨뜨리는 것은 한 마리의 검은 백조면 충분하다. 여기에 대부분의 백조가 하얗기 때문에 위의 명제가 완전히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는 말은 과 같은 ‘일제의 책임 물타기‘는 논리적이지 않다.

또한, 저자의 말처럼 ‘자발적인 위안부‘가 평균적인 모습이라면,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은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에도 맞지 않는다. ‘자발적인 집단‘과 ‘피해자 집단‘의 기대수명이 다를 요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났을 때 생존자가 발생할 확률은 거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인 위안부 생존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소수라는 반증이 아닐까. 소수의 피해자 집단에서 주로 위안부 생존자의 증언이 나온다는 측면에서도 저자의 주장은 과학적이지 않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제국의 위안부」는 저자의 doxa가 강한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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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5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25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19-09-22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아줌마 최근에 보니 이영훈 옹호하는 글 쓰고, 정규재 TV에도 나오며, 수많은 수꼴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전 이 인간이 이영훈이나 류석춘보다 더 악질적이라 봅니다. 딱 이렇게 비유하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이성을 이용하여 중립인 척 하면서, 대뇌는 엄청나게 우측으로 가 있는 철면피. 과도한 민족주의는 당연히 잘못됏지만, 박유하는 탈역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그 정체를 모르는 자칭 진보주의자들 은근 많네요.ㅠㅡㅠ

겨울호랑이 2019-09-22 20:4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사실 뉴라이트 식민사관을 가진 이들이 이영훈 교수뿐이겠습니까.. 연세대 류석춘 교수 역시 며칠전 망언을 한 것을 보면 이 시대의 지식인 모두가 양심을 갖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5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경미 옮김 / 책세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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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혼이 존재하는 한 오로지 어머니 쪽의 혈통만이 입증되며, 따라서 오로지 모계만이 인정된다. 이것은 실제로 모든 야만 종족에, 그리고 미개의 낮은 단계에 속하는 종족의 경우에 그랬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바로 바호펜의 두 번째 위대한 업적이다(p68)

남편은 식량을 조달하고 그에 필요한 노동 수단을 만들었고, 이에 대한 소유권은 그에게 있었다. 이혼을 하게 되면, 아내가 가재도구를 보유하듯 남편은 이 노동 수단을 차지했다. 당시 사회 관습에서 남편은 새로운 식량의 원천인 가축을 소유했고, 후에는 새로운 노덩 수단인 노예의 소유자가 되었다... 부가 일단 가족의 사적 재산으로 급속히 늘자 대우혼과 모권적 씨족에 기초한 사회는 강한 타격을 입었다(p87)

가족 내에서 남편은 부르주아고, 아내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대표한다. 그런데 산업 세계에서는 자본가 계급의 모든 법률적인 특권이 제거되고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트 두 계급이 법률적으로 완전히 동등해진 후에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트를 억누르는 경제적 억압의 특성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난다... 남편과 아내가 법적으로 온전히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될 때 비로소 현대 가족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지배가 가지는 특성, 그리고 부부의 진정한 사회적 평등을 수립할 필요성과 방법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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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7-21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독서를 하고 계십니다. 저도 한때 책세상 문고의 팬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7-21 15:50   좋아요 0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책세상 책과 지만지 책들은 문고본으로 고전을 접할 수 있어 틉틉이 읽을 수 있어 좋은 시리즈라 생각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보내세요!^^:)

cyrus 2019-07-22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3쪽에 있는 엥겔스의 주장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발전하지 못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어요. 사회주의자들은 여성해방보다는 계급 철폐를 가장 시급한 문제로 봤으니까요.

겨울호랑이 2019-07-22 09: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마르크스, 엥겔스가 제기한 문제는 당대 현실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이니만큼 후대 사상가 입장에서 한계가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여겨집니다.^^:)
 
범죄의 책 - 인간의 심리와 악의 본질을 꿰뚫는 범죄의 실체 세상의 모든 지식 6
샤나 호건 외 지음, 김성훈 외 옮김 / 지식갤러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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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허구인 형사소설과 범죄 드라마, 영화로부터 타블로이드지, 신문, TV 뉴스에 등장하는 중독성 살인까지 온갖 범죄에 왜 그토록 매혹되는 것일까?

나는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한 가지 정답이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많은 경우를 설명하는 답은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답은 우리의 유전자가 생존에 힘쓰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변하지 않을 인간 본성의 한 가지 측면이 있다.(p9) - 서문- 중

「범죄의 책」은 왜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특히 무덥고 습한 여름 오싹한 공포는 아니지만, 사건 기록을 통해 전쟁과 더불어 수많은 범죄가 우리와 함께 해왔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브리핑된 여러 사건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범죄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분석은 부족하여 다소 아쉽다. 분량의 제한때문이겠지만, 사건에 대해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범죄인의 개인 특성 뿐 아니라 당시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한 독자 개인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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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2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2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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