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기본소득 구상은 대한민국 산업의 비약적인 자동화에서 출발한다. 가령 2020년 대한민국 사회의 산업 로봇 보급률은 노동자 1만 명 당 932대에 달했다. 단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보급률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주류로 통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은 '창조적 파괴'(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 과정이 또 다른 분야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고, 따라서 대한민국 사회가 큰 피해 없이 구조적 변화를 이룰 것이라고 낙관한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는 이런 낙관론을 믿지 않는다. 기본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디지털 혁명은 위험하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권력의 문턱에 선 이재명의 보편소득>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월호에서는 한국 대선과 관련한 기사가 이례적으로 2편이 실려있다. 높아진 우리나라의 위상 때문인지, 한국판에 한정된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사에서는 대선 이슈를 부동산과 기본소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데, 다른 페이퍼에서 부동산은 이미 다룬 만큼, 이번 페이퍼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기사에서는 기본소득을 대선의 주요 이슈로 보고 있지만, 실상 한국 정치의 현장에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한물 건너간 주제로 보인다. 당초 기본소득 등 여러 현안들이 주요 정치쟁점이 되리라는 일반의 전망과는 달리 뜻밖의 스캔들이 대선정국의 주요 이슈로 차례로 등장하면서, 정책과 관련한 논의는 발붙일 여지가 없었던 것도 한 이유겠지만, 그런 문제가 없었더라도 기본소득 문제는 이념만큼이나 극명하게 찬반이 갈리는 부분이라 논의되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무엇이고 어떤 점이 찬반의 논점이 되는가.


 

기본소득이란 개인에게 적용되며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정기적인 현금 소득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제도와 조건부 최저소득 제도 사이의 차이점이 또 하나 있으니,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당을 받을 이들이 일을 해야 한다거나 노동시장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하는 의무가 전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에는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다(obligatioin-free)"라고 말할 것이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41/629


 가장 저명한 기본소득 옹호자 필리페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 1951 ~ )는 기본소득을 자동화로 인해 생겨날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설명한다. 자동화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이들에 대한 최저 생계비 보장(대략 1인당 GDP의 25% 수준)은 실업, 교육, 저출산 고령화 등 현대사회의 쌓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파이레스의 설명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에서 무조건적 기본소득과 기존의 조건부 최저소득 제도 같은 공공부조 제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양쪽 모두 빈곤 문제를 해소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권력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 목적은 그저 빈곤의 참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다 함께 해방시키는 데 있다. 이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권력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기본소득은 단지 궁핍한 이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동경할 만한 세상 그리고 그렇게 바뀐 세상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것이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28/629


 개인에게 적용되며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아무런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 정기적인 현금 소득. 그것이 기본소득이다. 이러한 기본소득이 비판받은 지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가장 큰 우려가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조달과 노동동기 부여 감소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파레이스는 이 점에 대해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조달은 소득세(소비세)와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자금이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기존의 사회보장제도가 기본소득제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기존의 소득보장제도(4대 보험 등)의 재원이 기본소득재원으로 전환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이는 어떻게 제도를 설계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문제이지만, 이러한 부분에 있어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잘 발달된 조세 시스템과 잘 발달된 복지제도를 모두 갖춘 나라에서 기본소득의 재원을 조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인 소득세다... 기본소득의 많은 부분이 두 가지 방법으로 '자체적 재원 조달'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하게 되면 모든 낮은수준의 사회적 (부조 혹은 보험) 수당들을 대체할 뿐만 아니라 모든 높은 수준의 사회적 수당의 아랫부분도 대체하게 될 것이다. 또한 모든 가구의 최저소득 구간에서의 세금 면제도 기본소득으로 대체될 것이며, 그 밖에 수많은 다른 세금 지출들, 예를 들어 어린이집 서비스나 사적 연금에 대한 지출도 기본소득으로 대체될 것이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312/629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순비용이 한계 세율의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놓는가 하는 것이다. 노동의 동기부여가 줄어드는 것은 기본소득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핵심적인 위협이며, 이는 재산 조사 최저소득 제도에서 보편적 소득 제도로 이동할 때 항상 나타날 수밖에 없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313/629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재원이 기본소득제도로 전환된다고 했을 때, 얼마만큼의 재원이 어떤 식으로 전환될 것인가를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문제는 분명 쉽지 않은 문제다. 어떤 제도를 제안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겠지만, 이것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로 구체화하는 것보다는 쉬운 문제일 것이다.


 무상복지는 '공짜'도 아니고 '시혜'도 아니다. 시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시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는 헌법상의 기본 권리이고 복지 확대는 헌법으로 규정한 정부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무상복지처럼 기본소득도 세금내는 국민이 기본권과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의 몫'을 받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득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의 삶을 비약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_ 다니엘 라벤토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p14/460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를 공동 번역하는 등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져왔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팽팽한 찬반 여론은 그에게 별로 우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반대자에게는 포퓰리즘이자 불안정한 정책으로, 찬성자에게는 부족한 복지로 보여지는 기본소득 정책. 그래서, 현재 추진중인 기본소득금액은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이 무색하리만큼 적은 금액(2020년 기준 GDP 31,489$의 25%는 약 940만원에 해당, 년간 지급예정액은 1인당 100만원)이 지급되었을 때, '퍼주기'와 '생색내기'라는 양쪽의 비판을 받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후보의 추산에 따르면, 모든 국민에게 연간 100만 원을 지급해도 재정지출은 4%밖에 늘지 않는다. 조세제도를 통해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는 “조세혜택을 줄이는 한편, 탄소세·환경세·자산세·인공지능세 등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가 언급한 재원조달 방안 중 일부가 그의 공약에서 자취를 감췄다.. 최교수는 “청년층의 관심은, 이재명 후보 개인 보다는 기본소득을 향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이재명 후보에게 주어진 도전과제 중 하나다. 그에게는 보수세력에 맞서기에 충분한 청년표를 결집해야 하는 난제가 주어졌다. 오늘날 청년층은 복지정책 보다 안티페미니즘이나 정권 교체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보수세력 쪽을 더욱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권력의 문턱에 선 이재명의 보편소득>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와는 달리 기본소득은 현 대선 상황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이와는 별도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분명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제도 역시 문제나 개선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答)임은 분명하다. 매년 정기적으로 치뤄지는 선거에서 유권자의 마음에 드는 개발공약은 난무하지만,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 - 저출산 고령화, 구조적 실업 등 장기과제 - 에 대한 고민은 애써 감춰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에서 무조건적 기본소득과 기존의 조건부 최저소득 제도 같은 공공부조 제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양쪽 모두 빈곤 문제를 해소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권력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 목적은 그저 빈곤의 참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다 함께 해방시키는 데 있다. 이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권력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기본소득은 단지 궁핍한 이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동경할 만한 세상 그리고 그렇게 바뀐 세상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것이다. _ 필리페 판 파레이스 외, <21세기 기본소득> , p2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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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2-16 1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꽤 오래전부터 기본소득에 호의적인 유권자로서, 이번 대선이 (설령 기본소득이 가진 급진적인 관점 때문에 정책 대결에서 패하더라도) 은근 그런 논쟁의 장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던 것 같은 데. 참 아쉽네요. 아직 사람들은 미래보다 과거를 놓고 다투기를 좋아하는 걸까요. 차라리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안 후보가 더 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이번 대선 쏘쎄드...! 이재명 기본소득 돌아와~
아. 그래서 이 글이 좀 반가웠습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22-02-16 20:09   좋아요 3 | URL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은 세대별, 소득별로 크게 갈리는 민감한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19:51의 싸움이 될 양당제 체제 하에서는 반가운 이슈가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듯 합니다. 다만, 정치권이 기본소득에 대한 2030 세대의 기본적인 정서를 생각한다면,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급진적인 기본소득 정책은 기존의 사회보장체제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기에 개인소득에 대해 조금은 회의적인 편입니다. 다만, 실업, 양육, 교육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별 다른 방안이 없는 현 상황에서 그나마 대안이 기본소득인 것도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때문에, 기본소득에 대한 긍정적 논의 뿐 아니라 부족한 부분에 대한 논의도 이뤄진다면, 보다 건설적인 대안이 제시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공쟝쟝님의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2-02-17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본소득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면서
도, 지적해 주신 대로 기존의 사회보
장 제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
도 수긍이 되네요...

결국 삶이란 쉽지 않은가 봅니다.

겨울호랑이 2022-02-17 11:23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꼐서 말씀하신 부분처럼 기본소득제도의 급진적 성격을 고려한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받아들여지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각종 연금을 수십 년동안 붓고 머지 않아 연금수급을 받을 퇴직을 앞둔 분들의 경우 기본소득제도는 국가의 폭력일 수 있을 것이며, 당장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들에게 기본소득제도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의 기본소득에 대한 입장은 이들 사이 어딘엔가 위치하겠지요... 사실, 과거 무상급식 문제만 보더라도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을 생각한다면,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시작조차 될 수 없는 현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손해를 감수하지 않고 더 많이 가져가려는 태도로 대안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이, 장기과제 해결의 적정 시점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참 쉽지 않습니다....

그레이스 2022-02-17 1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회적저항의 밑바닥에 무엇이 깔려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을 사회안전망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올바름과 선의지는 멈출 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2-17 12:52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의 말씀처럼 기본소득이 매우 혁신적이고, 현재 당면한 문제에 많은 답을 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와 관련된 문제 또한 있는 것도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기본소득의 규모에 따라 재원조달의 방식이 달라지겠습니만, 기본소득의 재원은 크게 소득(소비)세와 기존 사회보장제도 재원으로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4대보장제도 중 연금수급자의 경우, 기존 납부 연금액에 대한 보상방식과 함께 공적 연금의 소득재분배적 성격에 따라 차등납부액에 대한 보상도 고민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칫 이중과세적 성격을 띨 수 있을 듯 합니다. 의료보험의 경우 희귀병으로 고생하는 저소득층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의료보험을 통해 정부지원으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계층에게 이러한 지원은 절대적일 것입니다. 고용보험의 경우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은 마찰적 실업을 겪는 동안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고, 구조적 조정을 위한 재교육기관 역시 규모 축소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결국, 공적 복지 비용을 개인복지비용으로 대체하고, 이를 직접 개인에게 지급하는 것이 기본소득이라 했을 때, 예외적인 경우에 대한 고민이 분명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정 금액의 소득 금액만 지급되고, 4대 보험이 폐지된다면 이를 받아들일 유권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이와 함께(어쩌면 이보다 더 클 수 있는) 연금과 사회보장공단의 공적 기금 운영 금액이 자본시장에 미칠 영향도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사회적 혼란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이상이 제가 거칠게나마 생각해본 대략적인 기본소득제도 도입이 미칠 영향입니다만, 실제의 파금력과 영향력은 이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기득권의 저항이라고 보기에는 변화 정도가 크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레이스 2022-02-17 13:18   좋아요 2 | URL
^^
기득권의 저항으로 단정지어서 본 것은 아니구요;;;
불안이죠,,, 그 불안의 근원에는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있을거구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2-17 13:36   좋아요 2 | URL
^^:) 맞습니다. 사회적저항이라는 부문에 대해 기득권저항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레이스님이 아니라 제 글이지요... 개인적으로 2016년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을 때 관심을 가지고 관련 내용을 찾아봤었습니다. 이후 기본소득 관련에 대한 책들이 여럿 나왔습니다만, 기본소득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와 일차적 재원에 관한 내용이 다수라 아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국가적으로 시행된 사례가 없기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기본소득제도 도입 시 기존제도의 수혜자에 대한 고민, 국가의 최저복지 제도 등에 대한 논의가 보다 깊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기본소득은 단지 급박한 현실 문제들의 통증을 완화해주는 반짝 아이디어 같은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회를 지탱해주는 중심 기둥이다. 누구에게나 일과 일 이외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꽃 피울 만큼의 진정한 자유가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이런 자유로운 사회는 기본소득을 기둥으로 해서 만들어진다. 이는 과거의 성취를 지켜내거나 지구적 시장의 독재에 저항하는 정도를 훌쩍 넘어서서 과거의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근본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위기를 기회로, 체념을 결심으로,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모종의 비전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그러한 비전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이 제도에서 결정적 핵심은 ‘무조건적’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이 무조건적이라는 형용사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 되어야만 한다. 기존 제도들 중에도 이미 ‘무조건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있지만, 이는 그 형용사의 약한 의미에서만 그러할 때가 많다

우리의 주장은 이렇다. 앞에서 정의했듯이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에서 무조건적 기본소득과 기존의 조건부 최저소득 제도 같은 공공부조 제도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 빈곤 문제를 해소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권력 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 목적은 그저 빈곤의 참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다 함께 해방시키는 데 있다. 기본소득은 단지 궁핍한 이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동경할 만한 세상 그리고 그렇게 바뀐 세상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인 것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앞에서 설명했던 세 가지 무조건성(개인에게 지급한다, 보편적으로 지급한다,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는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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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작품(오징어 게임)에서  집중한 것은,  간결한  게임에서 오는 재미와 인물들의 의상이나  공간의  현란한 색상의 배치였다. 그리고 관객들은 정확히 이 지점을 관통하며 작품을 즐겼다. 그들은 작품에 등장한 게임을 직접 해보기 위해 게임의 룰을 찾고 달고나를 만들었으며, 작품 속 등장인물과 동일한 의상을 입고 즐거워했다. 이것이 오징어게임을 둘러싼 현상이었고, 인기의 실체였다. 그렇다면 이 유례없는 인기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 작품이 유희로 소비되기에  매우 유용한, 그러니까 남녀노소, 인종과 문화를 가리지 않고 특별한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배치했으며, 그것이 관객에게 마치 작품 내부에 속하는 것 같은 희열을 주기 적합했다는 결론일 것이다. 이 작품은 서사적 해석을 넘어 유희로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매우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었다고 말이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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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5 0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놀이들이라 추억소환정도였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저런 유희로서 작품을 즐긴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겠군요.

겨울호랑이 2022-01-25 08:26   좋아요 0 | URL
^^:) 오징어게임 속의 게임을 즐기던 세대에게 그것은 게임이자 생활이었고, 자신의 삶의 일부이기에 그것을 객관화하기 어려움을 스스로 느낍니다. 반면, 그것을 처음 접하는 세대와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문화로 비춰지겠지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해당 기사는 이런 문화에 대한 비평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같은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봐달라는 기사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되어 밑줄을 긋게 되었습니다.
 

겔너가 대체로 유럽과 이슬람 세계를 대상으로 민족주의의 본질을 구명(究明)했다면, 스미스는 유럽과 이슬람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민족/민족주의 문제를 넓게 그리고 깊이 파고들어간 인물이라고 비교해서 말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사람은 최근의 민족주의 연구의 진정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양자의 근본적인 입장은 서로 다르지만, 겔너가 없었다면 스미스가 없었을 것이고, 또 스미스가 없었다면 겔너의 위상이 지금보다 낮아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겔너에게 민족주의는 근대 산업사회의 문화이다. 즉 서구에서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성공한 근대화가 마치 해일과도 같이 전 지구를 불균등하게 휩쓰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민족주의이고, 그 민족주의의 핵심 내용은 근대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언어문화(linguistic culture)로 설명된다. 겔너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이전에는 저급문화들(low cultures)이 주민의 다수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주민 전체의 삶을 차지하고 있던 사회에 고급문화(a high culture)를 전반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가 주선하고 국가교육기관이 감독하는 이디엄(Idiom, 언어)의 확산, 즉 상당히 정확한 관료제적·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조건에 맞게 기호 체계화된 이디엄의 전반적인 확산을 의미한다. 그것은, 극소집단들에 의해 지역적으로 그리고 특이하게 재생산된 민속문화들(folk cultures)에 의해 지탱되던 지역집단들의 이전의 복잡한 구조 대신에, 무엇보다도 이런 종류의 공유된 문화에 의해 하나가 된, 서로 대체 가능한 원자화된 개인들로 구성된 익명의 비인격적 사회의 수립이다. 그것이 바로 실제로(really)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스미스에게 민족주의는 "근대적 이데올로기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고 장기지속적인 이데올로기"이고, 그것은 "하나의 특유한 공동체를 위한 프로그램을 문화집단들에 대한 더 보편적인 비전과 결합시킨다."3) 즉 과거에 전통과 종교가 해오던 구원(salvation)의 길 가운데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길을 추구하는 것이 근대 이데올로기들이고 그 근대적 이데올로기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장기지속적인 것이 민족주의이다. 요컨대 스미스에게 민족주의는 과거에 전통과 종교가 해오던 일을 근대사회에서 하는 대행자로서,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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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외부 자연 상태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인 ‘생명의 욕구’, 즉 끝없이 만족을 갈구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인 경향이 사회 내부에서 자유롭게 발휘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는 그 사회를 파괴하는 확실한 동인이 된다.

사회적 진보가 진행될수록 그 구성원들과 동료들의 관계는 가까워지며,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과 고통의 중요성은 커진다. 우리는 자신의 공감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인간 사회 전체의 기본적인 결속력을 형성해 주는 이 감성은 결국 우리가 양심이라고 부르는 한 사회의 조직적인 공감 또는 개인적으로 체화되는 공감으로 진화하게 된다. 나는 그 진화 과정에 윤리(적) 과정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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