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스커넥트 - 자본주의는 어떻게 인터넷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로버트 맥체스니 지음, 전규찬 옮김 / 삼천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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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스커넥트」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도구로서 인터넷을 조망한다. 동시에 저자는 인터넷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코로나19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있는 우리는 또한 ‘양날의 검‘인 인터넷의 사용을 통해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빛이 있으면 어둠있듯 포스의 어두운 면에 마음이 끌린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 시대의 ‘디지털 커넥트‘를 기대하며, 소통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알려준 4.16 세월호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분들께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함께 느낀다...

새로운 정치경제를 수립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널리즘을 펼치고 문화를생산하며 인터넷 접근을 마련하고 지역의 풀뿌리 조직들을 지원할 비영리 - 비정부 기구를 구성하는 일이다. 공동체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 인터넷 미디어센터에서부터 문화센터, 스포츠 리그, 커뮤니티  ISP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한 일들이다.(p398)

인터넷이 바로 이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결정적 국면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은 좀 더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고 경제에 대한 자율 정부의 지배력을 확장시키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경제와 탈집중화된 조직들의 자율 경영을 훨씬 더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제대로 된 공적 투자와 함께, 인터넷은 지금껏 상상했던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저널리즘과 공적 영역을 마련해 줄 수 있다. 디지털기술은 사람들을 훨씬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사회 변화에 참여시킬 정치운동의 결정적 부분이 될 수 있다.(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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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절대 권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장 보댕(Jean Bodin, 1529 ~ 1596)의 「국가에 관한 6권의 책 Les Six Livres De La Republique」의 모든 내용이 오늘날 현실에 맞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구절은 21대 국회의원 본선거날 새겨볼만하다. 국가의 주인에게 주어지는 최고권력인 주권. 우리가 주권을 행사하는 얼마 안되는 날을 맞아 많은 나라의 주인들이 투표에 참여하길 바라본다. 많은 이가 내린 결정이라면, 설사 내가 원치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기에...

ps. 국회의원이 주권자가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의원의 국민소환제‘는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주권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국가의 권력이다. 주권을 라틴 사람들은 majestatem,  이탈리아 사람들은 segnoria라고 불렀으며, 개별인들뿐 아니라 국가의 일을 담당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한 권력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주권을 라무트 쉐바트, 즉 명령하는 가장 큰 권력이라고 부른다.(p245)

시민 가운데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을 매년 뽑아 반대 세력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종류의 소환도 없이, 업무를 수행하고 전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한다면, 이 사람들은 주권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신 이외에는 자신들보다 더 힘이 센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절대적인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이 사람들은 일정 시간 동안 부여받은 권력의 수탁자일 뿐이므로, 주권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제한된 시간 동안 절대적인 권력을 갖는 한 명이나 여러 명 의 대리관들을 뽑아도 주민들은 주권을 빼앗기지 않는다. 더더욱 주민이 원하면 미리 정해진 시간에 관계없이 권력은 되찾을 수 있다. 권력을 받은 사람은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직무에 책임을 지면서 오직 명령하는 권력을 부여한 사람에게만 의무를 가진다.(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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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권자들의 득표수를 계산해 의석수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로 선거제도의 기능이다. 이제 선거제도를 정의해보자. 선거제도는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p24) <선거제도의 이해> 中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되는 첫 투표인 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도 끝나고 본투표일을 며칠 앞둔 지금 뒤늦은 감이 있지만, 선거제를 정리하는 페이퍼를 통해 선거제도를 정리해본다. <선거제도의 이해 Electoral Systems: A Comparative Introduction>에서는 선거제도를 '대표'의 두 개념을 기준으로 '비례제'와 '반비례제' 선거제도를 구분한다.


 선거제도가 낳을 수 있는 결과(output)를 기준으로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 즉, 득표수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기준으로, '비례적(proportional)' 결과와 '비(非) 비례적(non-proportional)'를 낳는 선거체제로 분류하는 것이다. 비례적 선거제도의 핵심은 각 정당의 의석수를 자신들이 얻은 득표수에 가능한 한 근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대로 비(非)비례적 선거제도에서는 한 정당이 다른 정당보다 더 많은 표를 확실히 얻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강력하고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p25) <선거제도의 이해> 中


 대표(representation)라는 용어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대표의 '축소판(microcosm)' 개념과 '주인 - 대리인(principal-agent)'개념이다. 전자는 비례대표제 옹호론자들, 그리고 후자는 비(非)비례적 선거제도 옹호론자들과 관련 있다.... 대표의 축소판 개념은 의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중시한다. 그러나 주인 - 대리인 개념이 중시하는 것은 의회가 어떤 '결정'을 하는가이다. 주인 - 대리인 개념에 의하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한다... 두 관점 모두 전적으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서로 양립할 수는 없다.(p33) <선거제도의 이해> 中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선출하게 된다. 21대 선거에서 지역구 의원의 경우 '소선거구' 하에서 '1인 선출 상대 다수제'의 방식으로 선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합의된 점은 선거구 크기(district magnitude)가 선거 결과의 비례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거제도의 유형화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선거구 크기에 기초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p27) <선거제도의 이해> 中


 1인 선출 상대다수제(single-member plurality : SMP)의 미덕은 단순함(simplicity)에 있다. 후보는 당선되기 위해서는 '최다 표(plurality of vote)'를 얻어야 한다. 당선되기 위해서는 과반수 혹은 절대다수 표를 획득할 필요가 없으며, 다른 어느 후보의 득표수보다 적어도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으면 된다.(p38)... 상대다수제는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정부를 탄생시키며, 그만큼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낳는다고 주장된다... 상대다수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선거구의 대표성이다.(p39) <선거제도의 이해> 中


 소선거구에서 1인을 선출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우 철저한 반(反)비례성 선출방식이다. 다수의 후보가 지원할 경우 사표(死票)는 그만큼 증가하게 되고, 소수의 열성지지자들만으로도 당선이 가능하기에, 조직력에서 우위에 있는 정당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우리나라에서 지역구 선거는 대표성과 안정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치뤄진다.


 기본적으로 선거구 크기가 클수록 선거 결과의 비례성은 더 높아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법칙이 비례대표제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다수제나 절대다수제에서는 실제로 이 관계가 역으로 나타난다. 즉, 한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의원 수가 많아질수록 비례성은 낮아진다.(p41) <선거제도의 이해> 中


  이 제도의 단점은 단순함이 공정함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제도의 단순성은 군소 정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 안전하게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선거구라는 덫에 걸려 있는 유권자들에게 공정성의 훼손을 의미할 수 있다.(p51) <선거제도의 이해> 中


 그렇다면,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하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하여 다수의 대표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유권자의 표의 비율이 거의 누락없이 의석 수로 전환되기에 비례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반면, 대표성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비례성을 극대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선거구로 만드는 것이다. 한 국가를 작은 선거구로 쪼개기 시작하면 비(非)비례적 요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모든 비례적 선거제도에서 기본적인 규칙은 다음과 같다. 즉, 선거구 크기가 클수록(한 선거구에서 선출하는 대표의 수가 많을수록) 비례성이 높아진다.(p126)... 전국을 하나의 단위로 선출한 대표가 갖는 문제점은 유권자와 대표의 접촉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특정 선거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의원의 지리적 위치는 도시 지역, 인구가 많은 지역에 집중되어 있을 위험성이 있다. 이로 인해 인구의 많은 부분은 대표되지 못하게 된다.(p127) <선거제도의 이해> 中


 비례대표제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후보자 공천권을 갖는 지도부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 때문에, 지역구에서 거대정당에게 밀리는 소수정당의 지도부에게 이 방법은 매력적인 투표방식이다. 때문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갖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비례대표제 방식이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선거 공학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선거제도라는 사실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이 제도는 분명히 정당 지도부에게 상당한 정도의 통제력을 부여한다. 특히 폐쇄형에서와 같이, 유권자가 어떤 정치인이 당선되는지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경우, 그리고 선거구 크기가 커서 유권자가 후보 개개인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경우에 그렇다.(p149) <선거제도의 이해> 中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방식에도 단점이 있다. 개별 유권자들은 누가 자신을 대표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정당이 명부를 작성하며, 유권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당이 제시한 명부를 고르는 일뿐이다. 유권자는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당 내 후보 선정 과정에 개입하는 방법 외에는, 명부에서의 후보 순위에 대해서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p134) <선거제도의 이해> 中


 현실에서는 상대다수제가 갖는 대표성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대표성, 공정성의 장점을 살린 혼합형 선거제도가 널리 채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53석의 지역구 대표와 47석의 비례대표제를 혼용하는 혼합형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이번 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의석수 배분방식에서는 기존과는 달리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제도가 되었다.


 혼합형 선거제도는 이상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 제도는 1인 선출 상대다수제와 비례대표제의 성격을 하나의 제도 안에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p153) <선거제도의 이해> 中


 47석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중 17석을 기존의 방식으로 선출하되, 30석에 해당하는 비례대표는 연동형의 방식으로 선출한다는 것으로 이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모델로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도입한 제도는 의석수가 30석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독일 제도와 차이가 있다.


 독일 선거제도의 기본적 취지는 선거 결과의 비례성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정당의 경우 선거구 선거에서는 유리할 수 있으나, 최종 결과에서도 그 같은 혜택을 누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독일에서의 3단계 계산 원칙은, 한 정당이 정당 투표 득표율로 배분받은 의석 총수에서 그 정당이 획득한 선거구 의석 총수를 빼는(subtract) 것이다. 독일 선거제도를 때로 '추가의석(additional member)' 선거제도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차감을 통해 각 정당이 얻게 될 초과 의석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p164)... 전체 의석 배분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은 선거구 투표가 아니라 정당 투표다.(p170) <선거제도의 이해> 中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간단히 정리하면 1) 정당은 자신이 획득한 지지율만큼 의석을 확보할 수 있되, 2) 자신이 얻은 지역구 의석을 반납하지 않는다. 즉, 비례성을 포기 하지 않는 방식이기에, 독일 선거에서는 의석수가 결정되지 않게 된다.


 [독일] 한 정당이 얻는 의석수 = Max(의석 총수* 정당투표 지지율, 정당 획득 선거구 의석수)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갖는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제도. 때문에, 의석수를 늘리려는 소수정당의 욕심에서 무리하게 연동형 요소를 도입한 이번 선거제도를 통해 지역구의 게리맨더링이 아닌, 제도의 게리맨더링을 발견한다.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은 교활한 전략으로 비(非)비례적 제도에서 주로 활용되는 것이다. 특정 정당이 의석수를 늘리려는 목적으로 선거구 경계를 다시 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달성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특정 정당 지지자들은 작은 부분으로 분산시켜 여러 선거구에서 소수 집단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상대 정당이 대정당이어서 이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 그 정당이 차지할 수 있는 의석을 최소화하도록 선거구를 설계하는 것이다.(p316) <선거제도의 이해> 中


 비례제가 극단주의 정치인과 정당에게는 더 유리한 제도라는 점은 틀림없다.(p343)...  비례대표제에 대한 마지막 비판은 비례대표제가 너무 복잡해서 유권자들이 혼란스러워할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다.(p345) <선거제도의 이해> 中   


 아쉬운 점이 많았던 미진한 선거 개혁이었고 부족함이 있는 제도지만, 본선거를 몇 일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100% 표시한다면 이를 왜곡할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를 바라며 선거제도 관련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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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4-14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시의적절하고
탁월하게 책의 세계로 인도해주시는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4-14 18:25   좋아요 1 | URL
과찬이십니다, 페넬로페님. 즐거운 휴일 저녁 보내세요!^^:)

북다이제스터 2020-04-14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개인적 관심사는 자본주의=민주주의 관계입니다. ^^
내일 좋은(?) 투표하세요. ^^

겨울호랑이 2020-04-14 20:19   좋아요 1 | URL
^^:) 쉽지 않은 주제네요. 저는 사전투표를 해서 내일은 선거중계를 볼 예정입니다. 북다이제스터님 내일 좋은 소식을 기다려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4-14 20:27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아직 이런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한 책을 찾지 못했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를 그토록 미워하고 저주한 이유를 아주 조금 이해할 듯 합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형식보다 자본주의라는 본질을 더 우려했던 같습니다.ㅠㅠ 자본주의를 바꾸기 위해 민주주의부터 손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래서 제 소원은 무척 요원한 것 같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0-04-14 20:41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 깊이 통찰하시겠습니다만, 플라톤의 경우 민주정에 대한 개인 원한도 무시못하리라 여겨집니다. 스승 소크라테스와 친척 크리티아스를 민주정으로 잃었기에 좋은 감정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생각됩니다. 자본주의와의 관계는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ㅠㅠ
 
2050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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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개별 허리케인, 개별 폭염, 개별 기근, 개별 전쟁 등 구지적인 재해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립된 단서 같은 게 아니다. 지구온난화는 가해자라기보다 공모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기후 속에서 살아가면서 온갖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변화된 기후가 다시 또 모든 인간과 인간의 활동을 둘러싸고 있다.(p41)... 뜨거운 지구에서는 가장 빈곤한 국가들이 더 많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호주를 제외하고는 GDP가 낮은 국가들이 가장 극심한 기온 상승을 겪게 된다. 정작 남반구 국가들 대다수는 지금까지 지구의 대기를 그리 많이 오염시키지 않았는데도 그런 결과를 맞이한다.(p47)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2050 거주불능 지구 The Uninhabitable Earth: Life After Warming>의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David Wallace-Wells)는 탄소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단순한 기후변화에 그치지 않고 기후재난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이는 기온상승으로 인한 폭염과 해수면 상승, 가뭄과 산불 등의 증가는 사회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고 먼저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이끈다는 매우 비관적인 내용의 시나리오다. <2050 거주불능 지구>는 다른 기후변화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12가지 기후재난으로 설명하는데, <탈출기 Exodus>에서 모세(Moses, BC 1393 ~ BC 1273)가 파라오에게 예언한 10가지 재앙을 연상시키는 시나리오는 신앙심 깊은 미국인들에게 종말처럼 다가간다. 이는 다른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많은 책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2050 거주불능 지구>는 다른 책들과는 조금 다른 입장에서 기후변화를 바라본다. 기후변화문제에 대해 결론중심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다소 독특한데, 이러한 독특함은 다른 책들과 차이를 가져온다.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나는 인류가 계속 이전처럼 살아갈 수만 있다면 ‘자연‘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상당 부분 잃는다 하더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인류가 결코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p64)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저자는 환경주의자 입장에서 기후변화를 바라보지 않는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입장에서 기후변화를 바라보기에 기후재난으로 가는 이러한 시나리오에 대해 인류 정체의 공동책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다음 세대 후손에게, 마법 같은 혁신을 일으킬 기술자에게, 당장의 폭리에 집중하는 정치인에게 미루고 있다. 설령 강압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이 책에 ‘우리‘라는 단어가 강박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p331)<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저자는 기후재난에 대한 책임을 우리 모두에게 돌리는 한편,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미국 책임론에 대해 변론한다. 지구온난화가 산업화 이후 일어난 추세라는 일반의 설명에 대해 최근의 탄소배출량 현황을 근거로 서구와 미국 대신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책임을 부각시키며, 이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함을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은 지구온난화가 산업혁명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쌓였다가 이제야 갚을 때가 된 도덕적/경제적 부채와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기 중에 배출된 탄소 중 절반 이상은 불과 지난 30년 사이에 배출됐다.(p17)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유명한 파리기후협약에서 기온 2도 상승을 최소한의 요구 조건으로 설정해 전 세계 국가의 동참을 요구한 것도 불과 2016년에 일어난 일이었다.(p76)... 트럼프의 협약 탈퇴 결정 역시 실리적인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트럼프의 실수가 궁극적으로 생산적인 결과를 불러일으켰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기후변화 문제에서 주도권 잡기를 포기하자 중국의 시진핑에게 훨씬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기회와 유인이 주어졌다.(p77)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기후변화 문제에서는 확실히 중국이 거의 모든 패를 쥐고 있다. 온 세상이 존속과 번영을 위해 안정적인 기후를 필요로 하는 이상, 이미 탄소배출량 증가세가 멈췄으며 머지않아 줄어들기 시작할 미국과 유럽의 탄소배출량 궤적보다는 개발도상국의 탄소배출량궤적이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p293)<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이와 함께 저자는 개인단위에서의 변화는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 소비에서의 작은 변화는 자기 만족에 불과하며, 정치적인 행동만이 현재의 재난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기후변화의 고통을 감지하기 시작한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듯이 문제의 원인으로 개인의 무책임을 탓하는 것은 일종의 연막 술책에 가깝다. 우리는 개인의 소비 행위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소비 행위가 한편으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며 또 한편으로는 미덕을 과시할 수 있는 아주 현대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개인의 소비 선택은 거의 늘 사소한 요인에 불과하며 오히려 더 중요한 요인을 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p140)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선택적 소비와 웰니스 추구는 둘 다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 이런 태도의 근원에는 신자유주의 정신에 의해 다시금 보장된 기본적인 약속이 깔려 있다. 바로 소비자가 정치적 참여 행위 대신 소비 행위를 통해 정치적인 성향은 물론 미덕까지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있다는 약속이다.(p284)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세상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두드러지게 배출하는 상위 10퍼센트가 탄소배출량을 유럽연합 평균 수준으로만 낮춰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은 35퍼센트나 떨어진다. 개인이 식단을 바꾸는 정도로는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정책을 바꾼다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유기농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진정으로 염원하는 목표가 기후를 구제하는 일이라면 투표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정치는 도덕적 증폭기와 같기 때문이다.(p282)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예언된 12가지 재난 중 가장 큰 재난은 ‘시스템의 붕괴‘일 것이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기후재난을 불러왔고, 이를 해결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면서도, 결코 신자유주의가 이로 인해 붕괴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기후 리바이어던>의 내용을 토대로 설명한다.

기후변화는 두 가지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첫째로는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발생하며 그로 인해 일부 지역에 숨 쉴 틈조차 없는 영구적인 불경기가 닥칠 것이다. 둘째로는 전 세계적으로나 특정 정치조직 내에서나 부유한 자보다 가난한 자가 훨씬 심각한 피해를 입음으로써 이미 터무니없는 수준인 소득 불평등이 점점 노골적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나타날 것이다.(p250)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신자유주의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실패했다면 다음 후계자는 무엇이 등장할까?(p288)... 바로 신자유주의다. 정확히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신자유주의다.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오로지 자본의 흐름에만 관심이 있는 세계 상태가 도달할 것이다. 강박에 사로잡힌 신자유주의는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피해와 퇴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겠지만 권위에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을 것이다. 이런 존재가 바로 ‘기후 리바이어던 Climate Leviathan‘이다.(p289)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요약하면,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저자는 현재까지 지구온난화 현상을 바탕으로 12가지 재난과 함께 암울한 디스토피아(dystopia)를 제시한다. 저자의 글에 따르면 이러한 미래에서 우리가 벗어날 길은 거의 없어 보인다. 조금 정도를 약화시키거나 시기를 늦추는 정도일뿐. 더욱 처참한 것은 이러한 미래의 끝에 현재의 불평등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신자유주의질서가 더욱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에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먼저, 현재 상황이 위기이니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구 유럽이 산업화를 통해 근대화를 이루었고,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제국주의 팽창의 결과로 20세기 신생 독립국들은 다시는 짓밟히지 않기 위해 산업화의 길을 선택했다. 이들 중 절대 다수가 아직도 개발도상국인 상태에서 전 인류에게 이러한 방향으로 가도록 이정표를 제시한 서구문명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탄소배출량이 절대 다수인 중국(94억 6,700만 t)과 인도(22억 7,700만 t)을 근거로 미국(51억 1,800만 t)의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을 내세워 문제 해결에 중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함을 강조하지만, 저자는 이들 국가들의 산업발전 정도와 인구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최근 한 시기에 절대치만 비교한다.(사진) 제조업을 개발도상국으로 아웃소싱(outsourcing)하여 상대적으로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글로벌 공급 체인을 구축한 현 체제에서 3.3억의 미국이 13.9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과 13.5억이 인구를 가진 인도에게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것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다. 1인당 탄소배출량이 압도적인 미국은 뒤로 물러서도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미국 예외주의‘에 불과하다.

세상에 초강대국이 미국 하나였던 시절에는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세계의 움직임을 저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7년에 미국은 세계 탄소배출량의 15퍼세트만을 차지하며 미국 국경을 넘어서면 기후부인주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지구온난화의 책임을 오로지 미국 공화당이나 공화당의 뒤를 봐주는 석유 회사에게만 돌리는 것은 미국 중심주의적인 생각에 가깝다(p226)... 화석연료 사용에 기업이 미치는 영향은 실재한다. 하지만 타성에 젖어 단기적인 이익을 좇고 기호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전 세계 노동자 및 소비자의 태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p227) <2050 거주 불능 지구> 中

또한, 개인의 소비생활 변화가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저자의 말 속에서 개인의 작은 변화로는 탄소배출의 결과인 12재난 시나리오를 피할 수 없다라는 운명론적인 자세를 발견하게 된다. 이와 함께 소비 대신 생산을 강조함으로써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에 책임을 돌리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2050 거주불능 지구>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큰 위험에 처해 있는 현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저자의 입장처럼 공동책임만을 강조하는 태도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는 기후재난의 끝을 ‘신자유주의 질서의 공고화‘로 바라보는데, 신자유주의에서 강조하는 자유시장주의의 무한경쟁의 결과로 빚어진 기후재난에 대해 왜 사회주의/공산주의 방식의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가. 우리는 책임을 배급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다. 시장의 규칙인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 기후 재난이라는 현실에서도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질서에 맞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역사적으로 더 많은 수익을 거둔 국가에서 보다 책임있는 비전과 부담을 선언했을 때 그때가 탈(脫)기후재난(Exodus)의 원년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속담처럼 우리의 작은 행동변화가 투표와 같은 정치 행동과 함께 이루어졌을 때가 바로 < 대학 大學>의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며 <2050 거주불능 지구>의 리뷰를 갈무리한다.

ps. 환경문제의 심각성은 코로나 19 재난 이후 선진국으로 제조업이 회귀한 후에 판단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향후 선진국의 제조업이 활성화되는 시기에 환경 문제가 수면 아래로 내려앉는다면, 기후변화 문제는 정치적 이슈라는 반증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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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0-04-12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구 온난화, 돌이키기엔 이젠 늦었겠죠? ㅠㅠ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 이걸 고민해야겠죠?

겨울호랑이 2020-04-12 23:32   좋아요 0 | URL
지구온난화라는 문제가 수 십년동안 쌓였던 문제이니민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우리의 작은 실천부터 이루어져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민주정 및 과두정과 병행해(para) 이른바 '혼합정'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그것이 구성되어야 하는지를 말해보자.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들 간의 구분을 파악해야만 하고, 그런 다음에 이것들 각각으로부터 징표(sumbolon)를 취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조합해야만 하기 (suntheteon) 때문이다....내가 의미하는 바는, 이를테면 관직자를 추첨으로 선출하는 것은 민주정적이지만, 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것은 과두정적으로 생각된다(dokein)는 것이다. 또 재산 평가 기준에 따라 선출하지 않는 것은 민주정적이지만, 재산 평가 기준에 따라 선출하는 것은 과두정적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각각으로부터 하나의 것을 취하는 것은, 즉 과두정으로부터는 관직자를 선출하는 것을 치하고, 민주정으로부터는 재산 평가 기준에 따르지 않고 관직자를 선출하는 것을 취하는 것은 귀족정과 '혼합정'의 특징인 것이다.(제4권 1294a30 ~ 1294b 14) <정치학 Politika>,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5 ~ BC 323) 中


 수많은 자료들은 추첨을 민주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소개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추첨이 바로 민주주의적 선출 방법으로 묘사된 반면, 선거는 다소 과두정치나 귀족주의적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약 민주적 제도와 과두적 제도를 종합한다면 한쪽만의 특징을 가진 정체보다 더 나은 헌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p45)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선거는 민주적인가 The Principles of Representative Government>에서 버나드 마넹(Bernard Manin, 1951 ~ )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인 선거 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 제도인가? 저자는 고대 아테네에서는 선거가 아닌 추첨에 의해 행정관이 지명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상당수의 주요 권력을 민회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특정한 기능은 선출된 행정관이 수행했다. 그러나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민회가 수행하지 않은 대부분의 업무가 추첨을 통해 선발된 시민들에게 위임되었다는 것이다.(p23)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추첨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고대 아테네에서의 추첨은 운(運)에만 의존한 제도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후보자의 자가검열과 함께 심사단의 심사를 통과한 동등한 자격을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추첨이기에 무자격자가 추첨에 뽑힐 가능성은 낮았다. 반면, 선발은 운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은 추첨 후 사회갈등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좋은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


 아테네의 추첨 제도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점은, 행정관으로 선출되기를 원하는 사람의 이름만이 추첨 기계 kleroteria에 넣어졌다는 사실이다. 30세 이상의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추첨이 행해진 것이 아니라, 후보로 지원한 사람에 한해서만 추첨이 이루어졌다.(p28)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추첨의 두 가지 성격은 민주정에서 필수적이다. 추첨은 행정관으로 선발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주지도 또 불명예를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운에 따라 자신도 공평하게 선발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추첨은 뽑힌 사람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방지한다.(p98)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이에 반해 선거는 추첨제에서는 없는 두 가지 단점을 갖는다. 하나는 후보의 교체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선거로 인한 분열(사회 갈등)이다. 선거는 정기적으로 행해지지만, 이것이 반드시 대표자의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같은 후보가 계속 대표로 선임될 수 있으며, 선거과정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사회 균열을 낳게 된다는 점에서 최선의 제도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제도가 민주주의제도로 인식된 것은 대의제(代議制)의 도입 결과다. 복잡해진 사회구조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은 이러한 결정의 배경이 된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교체의 원칙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이 근본적인 원칙이 추첨에 의한 선발을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만들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언젠가는 관직에 올라가기 때문에, 관직에 진출하는 순서는 운에 맡겨졌을 것이다. (p49)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선거는 언제나 유권자들 사이의 분할과 변별(differentiation)이라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한편, 선거의 목적은 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반드시 분리하는 것이다. 게다가, 개인들은 적수가 있고, 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를 인식할 때, 보다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화합하게 된다. 따라서 후보는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적을 정의해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차별성도 제시해야 한다.(p269)... 하나의 균열이 지속적인 동시에 특별히 두드러진 사회에서, 정치인들은 선거 이전에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균열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지식에 기초해서 차별적인 원칙들을 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치인이 제시하는 선택의 항목은 이미 존재하는 균열을 대체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정당 민주주의의 핵심적 역학이다.(p270)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근대사회의 변화에 따라 도입된 선거제도는 같은 시기 발달하게 된 자본주의의 영향으로 '경제력'이 당락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가 되었고, 이는 조직화된 정당(政黨)을 탄생시키게 된다. 또한, 의회 내에서의 목소리가 아닌 의회 바깥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대중매체의 등장은 선거에서의 균열을 메우기도 때로는 더 크게 벌리기도 하면서 현대 선거제도의 복잡성을 증대시켰다.


  대중정당이 대의 정부를 지배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 정부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은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새로운 유형의 엘리트가 등장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대표의 두드러진 특성은 더 이상 지역적 지위와 사회적 유명세가 아니라 행동주의와 조직 기술이었다. 투표자는 이를 근거로 대표를 선출하지 않지만, 정당이 내세운 후보에게 투표함으로써, 유권자는 이러한 범주가 사용되는 것에 동의하고 인준하는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는 활동가와 정당 관료의 통치인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투표한다. 이것은 선거 결과의 안정성이라는 두드러진 현상에 의해 증명된다.(p255)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대중매체는 특정한 개인적 특성에 유리하다. 즉 성공적인 후보들은 지역 명사가 아니라, 대중매체를 통한 의사소통 기술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미디어적 인물 media figure"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대의 정부의 원칙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선택된 엘리트 유형의 변화이다. 의사소통에 능숙한 새로운 엘리트들이 정치활동가와 정당 관료를 대체했다. 청중 민주주의(audience democracy)는 이른바 미디어 전문가의 통치인 것이다.(p267)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저자 버나드 마넹은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통해 선거가 민주주의 제도라 알고 있는 우리의 상식에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가 과연 민의를 대표하는 제도인가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비판한다.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는 선거가 시민(demos)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는 다른 엘리트를 선출하는 제도임을 냉철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점에서 선거는 민주적인 제도라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선거의 비(非)민주적인 면을 보완할 요소(선거비용 규제, 재임 방지 등)등을 통해 민주적으로 실행될 수 있음도 함께 밝힌다.


 선거의 두 가지 측면(귀족주의적인 측면과 민주주의적인 측면) 모두 객관적 진실이고, 둘 다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은 똑같이 사실일 뿐만 아니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여러 요소들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물인 혼합 정체와는 달리, 인민에 의한 선거는 그 구성 부문들로 분리될 수 없는 단일한 과정이다. 그 두 가지 속성은 너무나 단단하게 짜여져 있어서 서로 분리될 수 없다.(p195) <선거는 민주적인가> 中


[그림] 카이사르 암살(출처 : https://www.pinterest.pt/pin/552746554238535254/)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는 '시민의 무리(Demos, 민중)'가 '국가 지배권(Kratos)'을 갖는 체제를 가리킨다. '민(民)'이 나라의 주권과 정치권력의 '주인(主)'이 된다는 '민주(民主)'의 이념을 담는다는 뜻에서 '민주주의(democracy)'로 옮겨진다(p9).... '공화(共和)'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 뿌리를 둔다. 국가와 권력은 모두 인민(populus)에게 속하는 '공공의(publica)의 것'이며 특정 집단이나 계층, 지도자들이 사유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최고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특정 계급에게만 주어져 있었지만, 평민 계층을 대표하는 호민관에 의해 견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로마 공화정은 왕정과는 다른 민주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p11) <두 정치 연설가의 생애> 中  


  우리는 민주정(民主政)과 공화정(共和政)을 자연스럽게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역사는 원로원 중심의 로마 공화정이 결코 민주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리스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BC 384 ~ BC 322)가 지키려 했던 정체가 로마의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공화정과 다름을 우리는 알게 된다. 우리의 가치는 이들의 가치와도 다르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위해  브루투스(Marcus Junius Brutus, Quintus Servilius Caepio Brutus, BC 85 ~ BC 42)가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 BC 100 ~ BC 44)를 죽이면서 지키려고 했던, 시라쿠사의 디온(Dion)이 독재자 디오니시오스 2세(Dionysius 2nd of Syracuse)를 추방하면서 지키려고 했던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선거를 통해 체제를 유지한다. 이는 우리가 현재의 제도 안에서 가장 적극적인 의사표현이 선거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우리는 세부적으로 우리의 혼합정체 - 서로 다른 가치가 만난 '민주 공화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선거제도'. 민주 공화제라는 혼합 정체 - 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균형잡고 잘 나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제도와 법을 고쳐 나가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우리의 의사표현이 이루어지는 제도인 '선거'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선거제도의 이해 Electoral Systems: A Comparative Introduction>의 리뷰 편으로 미루도록 하고, 페이퍼를 이만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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