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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평전 2 (양장)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신서 32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완당평전2>에서는 제주도 유배시절 중반기부터 1856년 김정희가 사망할 때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완당평전2>의 주제는 '추사체(秋史體)'다. 우리가 '추사체'라고 부르는 그의 독특한 서체(書體)와 그 성립 시기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여 '추사'가 죽기 3일전 작성했다고 하는 '봉은사 판전'에 이르기까지 책 전반에서 다룬다.



[그림1] 김정희, <학위유종> (출처 : http://blog.daum.net/naondal/10867040)


'완당의 글씨가 괴(怪)하다는 말을 듣는 이유를 이 글씨에서 남김없이 알아볼 수 있다... "학문은 유학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뜻의 <학위유종>은 고급 냉금지에 고급 먹으로 쓴 회심의 일필이다. 그 괴이함은 가히 극치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씨는 획법(劃法)과 자법(字法)에서 나무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p571)


인생 초반기에 중국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직접 원본(原本)을 봤던 김정희였다. 그런 그였기에 자부심이 매우 컸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작품에 대해 논쟁이 벌어질 때면 매번  '내가 직접 원본을 보니까 말이지~'하는 말로 다른 의견을 눌렀다고 한다. (<완당평전1>참조) 오늘날 해외 유학파 학자들이 자신의 의견에 권위를 부여할 때 사용하는 말과 같이 그의 말은 그에게 승리와 함께 많은 적(適)을 안겨다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는 그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성립시기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추사체'는 이러한 자기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이후 잠시 여유로운 시절을 갖지만(강상(江上)시절),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1년 남짓의 시기 동안이지만, 이 시기에 추사는 진흥왕 순수비 중 '황초령비'를 원위치 시키는 등의 여러 활동을 이어간다. 저자는 이 시기의 김정희를 서술하면서 그가 원래 강한 민족의식과 북방의식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완당은 청나라 학자들과의 깊은 교유 때문에 국제적 감각의 지식인, 심지어는 사대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있던 지식인으로 흔히 인식되고 있다. 나 또한 한동안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실제로 그는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고 우리 민족의 대륙적 기상과 북방적 기질을 사뭇 동경해온 분이었다.'(p638)


이 글을 읽으면 저자는 김정희가 처음부터 강한 민족을 가지고 잇었던 것처럼 인식함을 알 수 있다. 내가 추사 김정희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지는 않았기에 직접적으로 반론하기는 어렵지만,  김정희의 글씨가 '제주도 유배' 이후 기름기를 뺀 독창적인 '추사체'로 발전한 것처럼, 김정희가 원래 강한 민족의식을 가졌다기보다 그의 민족의식 역시 당시 외지(外地)였던 함경도 북청에서 강하게 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홍준 교수가 김정희의 민족 의식과 관련하여 제시한 시(詩)가 북청 유배 시절에 지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와 '북청 유배'는 글씨로는 청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완당(阮堂)'에서 독창적인 세체를 가진'추사(秋史)'로 나가는 계기가, 사상적으로는 '소중화(小中華)사상'에서 벗어나 '조선(朝鮮)'을 강하게 인식하게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림2] 봉은사 판전 (출처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 봉은사 경판전을 위해 쓴 완당의 이 현판은 결국 그의 절필이 되었다. 이 판전을 쓴 지 완당은 3일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p761)


<완당 평전>1,2를 읽고 난 뒤 김정희의 일생을 통해 마치 '연어의 회귀'를 생각하게 된다.


더 큰 세상을 동경하고 큰 세상에서 함께 하기를 꿈꿨던 김정희. 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긴 것은 완원, 옹방강 등 당대 국제적인 학자들과의 교류보다 그에게는 쓰라렸던 유배 생활을 통해 얻은 '추사체' 였다. 고난을 이겨내고 얻어낸 추사체와 김정희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민물고기로 태어나 대양(大洋)에서 일생을 지낸 후 자신의 산란지로 찾아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연어의 인생'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죽음의 여행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 연어에게는 '새 생명'이라면, 김정희에게는 '추사체'가 아니었을까.




[그림2] 연어의 회귀( 출처 : SBS뉴스) 


<완당평전>을 통해 우리는 조선 말을 살아갔던 국제적인 석학(碩學)의 모습과 함께 우리 삶에 고난(苦難)이 반드시 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 뼈마디가 부러질 듯한 고통을 주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를 궁핍보다 더한 공핍의 상태로 만들며,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도록 어지럽히시니,이것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 타고난 작고 못난 성정을 인내로 담금질하게 함으로써 그가 수행할 수 없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그 역량을 키워주려 함이다.


孟子曰,

天將降大任於是人也인댄

必先苦其心志하며 勞其筋骨하며

餓其體膚하며 空乏其身하야

行拂亂其所爲하나니

所以動心忍性하야

曾益其所不能이니라。



ps. <완당평전3>은 에서는 김정희의 편지와 전시회 출품작 등을 수록하여 앞서 평전 1,2와는 또 다른 성격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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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18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완당평전 1 (양장)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신서 31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완당(阮堂)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 1786 ~ 1856)의 또 다른 호(號)다. 이 중에서 '완(阮)'은 청(淸)나라 완원(阮元 ; 1764 ~ 1849)으로부터 받은 호이며, 중년기까지 '완당'이라는 호를 '추사'보다 더 즐겨 사용할 정도로 그들과 많은 교류를 쌓았다. 그는 당대 청나라 문인들과 많은 교류를 통해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지식인이었고, <완당평전1>에서는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해외 유학파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갑작스럽게 몰락한 완당(阮堂)의 모습이 그려진다.

 

<완당평전1>에서는 김정희의 생애 중 출생(1786)에서 제주도 유배 초기인 1844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김정희는 경주 김씨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가 12촌 대고모이며, 증조할아버지 김한신(金漢藎 ; 1720 ~ 1758)이 영조의 둘째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할 정도로 명문가였기에 남부럽지 않게 공부할 여건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집안 배경으로 그는 1809년 마침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임명된 아버지 김노경(金魯敬)를 따라 연경으로 가게 된다. 약 2개월동안 연경(燕京)에서 머물면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완원, 옹방강(翁方綱 ; 1733 ~ 1818)과 같은 당대 문인들을 알게 되면서 쌓은 네트워크(network)는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지만, 지나친 자부심은 동시에 많은 적(敵)도 함께 만들게 되었다.

 

<완당평전1> 중반부에서는 이처럼 기고만장한 김정희의 모습이 그려진다. 저자인 유홍준 교수는 김정희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김정희의 자부심은 실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중국을 동경하는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에 물든 김정희의 모습이 불편함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특히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 1705 ~ 1777)의 글을 비판하였는데, 그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북비남첩론에 입각하여 북파를 지향하는 완당으로서는 남파에 뿌리를 둔 원교를 비판할 수밖에 없었으며, 원교의 시각이 조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해, 국제적 시각에서 글씨를 논하고 예술을 펼치고 있던 완당이 보기에 못마땅했던 것이다.(p324)'

 

당대 강대국이었던 청(淸)나라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안목을 높였기에, 우리나라에서 발전한 문화를 얕보는 그의 사대(事大)사상은 지금도 우리사회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저자는 <완당평전1>에서는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을 쓴 원교 이광사의 글과 '무량수각' 현판을 쓴 완당 김정희 글을 비교하면서 독자들에게 김정희를 평가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림]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 (출처 : http://blog.daum.net/seokkim21/84)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 : 원교 이광사가 신지도에 유배되어 있을 때 써준 그의 대표적인 현판 글씨로 유려한 필획의 멋과 힘있는 운필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러나 완당은 글씨에 속기가 있다고 생각하여 초의에게 떼어내게 했다. (p338)

 

 

[그림] 대둔사 <무량수각> 현판 (출처 : http://blog.daum.net/seokkim21/84)

 

대둔사 <무량수각> 현판 : 대둔사 대웅보전 오른쪽에 있는 선방 건물로, 이 현판은 완당이 제주도로 유배가면서 써 준것이다. 예서체에 멋을 한껏 넣었는데 획이 대단히 기름지고 윤기가 난다. (p339)

 

글을 잘 볼 줄 모르지만, 이 두 글은 서로 다른 멋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서로 다른 미(美)를 갖춘 두 글에 대해 쉽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김정희는 자신은 당대 선진국인 청나라에서도 인정받았기에 당대 최고라는 자부심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고 이는 극단적인 '원교' 비판으로 이어졌다. <완당평전1>에서는 이러한 김정희의 모습을 글과 그림을 통해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통해 지금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문화사대주의(文化事大主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김정희의 모습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바로 '제주도 유배'시기였다.

<완당평전1>에서는 제주도 유배 초기 김정희가 겪은 어려움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있다. 그가 이 어려움을 통해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잘 나타난 그림이 유명한 <세한도(歲寒圖) ; 1844)>다.

 

[그림] 세한도( 출처 : http://blog.daum.net/yjm88/17954437)

 

<세한도>는 제주도 유배중에도 지속적으로 책을 보내주었던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과 자신의 뜻을 담아 보낸 그림이다. 이 그림과 함께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松柏)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자신의 뜻을 담아 이상적에게 보냈다.'(p395)

 

<세한도>에 담긴 글을 통해서 '제주도 유배'는 김정희에게 '서리가 내리는' 충격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서리는 김정희가 청(淸)의 깊은 영향을 받은 인간 '완당(阮堂)'에서 독자적인 '추사(秋史)'로 변모하게 한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다산과 완당의 귀양살이를 비교하면서 다산은 귀양살이를 통해 현실을 발견했는데 완당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고 한다. 그러나 완당은 귀양살이에서 자아를 재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p332)'

 


[그림] 추사체 (출처 : http://blog.daum.net/yjm88/17954437)

 

'추사체는 대단히 개성적인 글씨다. 일반적인 아름다움, 평범하고 교과서적인 미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추사의 글씨에서 차라리 괴이함과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p12)

 

<완당평전1>에서는 인간 김정희의 삶과 함께 시기별 글과 그림등을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 삶의 평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시기별로 변모하는 작품 해설은 예술가로서 김정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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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14 1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완당 평전》을 읽어보지 않지만, 별점 세 개를 주고 싶습니다. 김정희 평전을 유 교수가 최초로 썼다는 점, 그리고 방대한 분량을 정리한 노력을 높히 평가받아야 하지만, 문제점은 책의 오류가 많습니다. 김정희가 그린 것인지 확실치 않은 그림을 김정희 작품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평전의 오류를 지적한 분이 박철상 씨입니다.

유 교수가 세 권짜리 평전을 절판시켰고, 한 권으로 정리한 개정판을 펴냈습니다.

유 교수가 개정판을 사모님께 보여드렸답니다. 사모님의 한줄평(?)이 압권입니다.

˝이렇게 줄일 거면 왜 세 권짜리로 펴냈수?˝

*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432611

정보의 양이 많다고 해서 그 책이 잘 썼다거나 내용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1-14 20:1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주말을 맞아 본가에 머물면서「완당평전」1,2권이 있어 읽고있습니다. ㅋ 어쩐지 절판서적이 되었더군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cyrus님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yureka01 2017-01-15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700년대와 1800년대 초기에 많은 학자들이 유럽을 갔었더라면 또 어땠을까요..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1-15 07:26   좋아요 0 | URL
^^: 어려운 가정입니다만 만일 그럴 수 있었다면, 일본보다 앞서 서구화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묘심화 지음 / 찬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한때 탤런트 김수미씨의빙의 치료로 유명했던 묘심화 스님.

우리나라 여성지도자로 박근혜를 지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별내용은 없지만 책을 읽고 스님께 여쭙고 싶은 질문이 떠오른다.

박근혜라는 인물을 만났을 때 별다른 느낌은 못 받으셨는지에 대한 질문을.

만일 별다른 느낌 못 받으셨으면 빙의에 대한 스님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답을, 만일 아셨지만 그럼에도 이런 책을 내셨다고 하신다면 존경받는 종교인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답을 드리고 싶다.

시절이 어수선하니 요즘 내 눈에는 영양가없는 책만 들어오는 것 같다. (그나저나 이렇게 박근혜 관련 서적을 읽다보니 북플에서 ‘박근혜 1번째 마니아‘가 될 것 같아 다소 걱정이 된다...)

ps. 이 글은 묘심화 스님 개인 저서에 대한 평가이며, 결코 신심있는 불자분에 대한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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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4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998년도인가요..대구 달성군에서 출마할때부터..상당히 않좋더니만,,결국 오늘날까지 왔더군요...네 낚인겁니다..

겨울호랑이 2016-11-14 21:28   좋아요 2 | URL
유레카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진정한 위기는 1997년 IMF가 아니라, 같은 해 이루어진 박근혜의 정계진출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五車書 2016-11-14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군요. 거의 충성 맹세나 다름 없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

겨울호랑이 2016-11-15 04:04   좋아요 2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만 듣다보면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할 거 같아요..

NamGiKim 2018-04-11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스님은 ㅂㅅㅁ 아닌가요? 때극기 집회 나가서 ˝박근혜 석방˝과 같은 소리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죠. 촛불혁명시기 매주 촛불집회 나가며 이런 땡중들과 개독들 볼때마다 진심으로 패주고 싶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4-11 22:49   좋아요 1 | URL
묘심화 스님의 최근 행보를 보면 다소 극우 성향이 보여집니다. 저 역시 극우 성향이 잘 이해되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여러 생각을 가진 이들이 사는 곳이니 받아들여야하는 현실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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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중국일기>와 얼마전 종영(2016년 6월)된 TV '차이나는 도올'에도 소개되어 최근 일반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아리랑>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 장지락)의 독립투쟁기이자 평전이다.


<아리랑>에 그려진 김산의 삶은 여러면에서 윌리엄 듀이커가 쓴 <호치민 평전>과 비교가 된다. 김산과 호치민 모두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들이었고, 두 사람 모두 제국의 심장부에 들어가 유학 생활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투쟁노선으로 공산주의를 선택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끈은 아마도 1927년 2월 결성된 '동방피압박민족연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중국, 인도, 타이완, 베트남이 연합하여 제국주의에 항쟁하는 연합체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알고 지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인물이 만나는 지점이 '동방피압박민족연합'이다.


이후, 두 독립운동가의 결말은 달랐다. 김산은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중국 공산당에 의해 스파이로 몰려 처형되었으나, 호치민은 베트남 해방 후 프랑스와 미국을 차례로 격퇴하며, 독립국가의 주석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된다. 


그렇지만, 내게 실패한 혁명가와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혁명가의 일생이 주는 감동의 크기는 전자(前者)가 후자(後者)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역사에 대한 몰입의 차이'과 '작품에 투영된 주인공 내면의 투영도'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생소한 베트남 독립운동사보다는 우리 현대사가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여기에 <호치민 평전>은 저자인 윌리엄 듀이커가 객관적인 자료를 이용해서 '호치민'의 뒤를 쫓고 있지만, 미국인인 저자의 시점에서 그려지기 때문에 호치민의 심경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아리랑>에서는 주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아리랑> 속에서 인간 '김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리랑>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페이지 수도 <호치민 평전>의 절반인 500페이지밖에 안되서 읽는 부담을 줄여준다.)


<아리랑>의 매력은 이러한 김산의 인간적인 모습이 작품에 반영되었다는 사실 외에 역사적 사실의 영향에 대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지식인인 김산의 시각에서 그려진 역사적 사건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준다. 대표적인 사례로 2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1919년 3.1운동 : 소련에 대한 기대


'3.1운동의 본질은 1907년에 시작되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점차 축척되어 온 민족운동의 표출이었다. 이 운동의 가장 커다란 추진력은 반일저항운동의 활동적인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국경 너머 만주에서의 조선민족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망명한 구한말 병사와 사관들에 의해 지도되었다.' (p100)


민족자결주의의 이상속에서 평화적으로 시도된 3.1운동은 재판할 경우 무죄가 될 것을 우려한 일본경찰에 의해 학살되는 참상으로 끝나게 되었다. 처음 '영국' 등 문명대국의 이성적 가치에 기대를 걸었던 조선 지식인들은 이러한 현실에 절망하고, 투쟁의 협력자로  새로 성립된 '소련(소비에트 연방)'에 기대를 걸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중에 공산주의자가 많아지게 된 원인이 되었다.


2. 1923년 관동 대지진 : 꾾어진 일본 프롤레타리아와의 연대


'1923년 사건은 큰 방향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일본의 중요한 정치가는 그 배반적인 학살 후에 극동의 어느 민족도 더는 일본이 보이는 거짓 '우호'에 속지 않을 것을 깨달았고, 자기들이 한 짓거리에 당황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사상을 열심히 선전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구호를 열광적으로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 운동이 급진화되었고 소극적인 대일 우호 감정까지도 깨끗이 씻겨버렸다.'(p118)


1920년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 내 일본인'들을 '조선 내 일본인'들과는 달리 계급투쟁의 동료로 생각하던 분위기는 관동 대지진 후 이루어진 '조선인 학살'로 냉각되어 '조-중 항일투쟁'의 분위기가 강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인간 '김산'이 어떻게 투쟁했고, 절망했는지가 그려져 있다. 그의 삶을 지배한 사상은 마지막 '25장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속에 잘 나타나 있다.

(밑줄 긋기)


전체적으로 <아리랑>에는 혁명가로서의 김산의 모습이 강하게 그려지지만, 그가 스스로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하려고 할 때 그의 독립운동가로서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나는 아름답고 맑은 조국의 강들을 떠올렸다. 그곳이라면 즐거이 뛰어들텐데...... 나는 바야흐로 죽음을 앞두고 조국, 그대를 -그대의 아름다운 강과 사랑스런 푸른 산을- 떠올려 보았다. 그대의 자식은 나약하지만 삼천리 강산은 강하다. 우리가 모두 이국땅에서 죽더라도 삼천리 강산만은 살아남으리라... 그대를 위하여,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느라고 내 몸은 망가져버렸다. .. 심지어는 혼마저도 죽어버렸다.'(p393)


인간이 죽음 앞에 직면했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한다.

김산은 죽음의 순간 속에서 조국을 그리워했다. 위의 말 속에서 그의 마음과 삶의 목표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바쳐 독립을 위해 싸워간 독립운동가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리랑>을 읽고 난 후 '일제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 민족에게 닥친 역사적 암흑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겠다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가. 역사의 암흑기에서  고귀한 희생이 빛났던 찬란한 슬픔의 시기가 일제 시대는 아니었을까. 마치 깊은 새벽 밤 속에 빛나는 별들처럼. 그리고, 그들의 빛나는 정신은 어둠이 너무도 깊었기 때문에 더 빛난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p464)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p465)

`우월한 권력에 대항하여 개인적으로 싸우는 것은 쓸데없는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힘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대등한 힘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힘을 동원할 수 없다면 행동을 늦추어야 한다.`(p466)

`도덕적 용기야말로 혁명 윤리의 정수인 것이다. 자기 견해 표현의 자유를 행사를 박탈하려는 자들에게 굴복할 때, 혁명가는 자기의 임무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p467)

`다년간의 마음의 고통과 눈물을 통하여 "오류"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선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류는 인간 발전의 통합적인 일부분이며, 사회변화 과정의 통합적인 일부분인 것이다.`(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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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8-29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이나는도올에서 매력쩌는 김산과 님웨일스와의 만남을 생생하게 묘사하던데 심쿵했습니다.ㅎ 님웨일스의 남편이 애드거스노우란 사실도 배웠구요. 아리랑을 탈고하며 말한 대목이 기억에 남네요
˝현대는 사람들의 정신이 시험받고 있는 시대다. 우리는 백년을 단 하룻만에 파악해야 하고 역사는 뇌세포의 진동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혼란과 공포로 현기증이 일때면 나는 이따금씩 연안의 그 옹색한 방안에서 꾸밈없이 조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던 김산을 생각한다. 그는 환상도 없었지만 냉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패배주의라는 질병을 이겨낸 지식인이었다˝ 늘 노려보고만(?) 있던 책이라 호랭이님의 리뷰가 반가웠어요^^;

겨울호랑이 2016-08-29 11:43   좋아요 1 | URL
^^: `차이나는 도올`에서 김산을 매우 멋있게 묘사했지요. 저도 기억이 나네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아리랑>을 읽으면 그의 멋이 이런 아픔속에서 피었났다는 사실을 더 잘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북프리쿠키님께서는 인상적으로 김산과 님웨일스의 만남을 기억하시네요. 특히, 북프리쿠키님께는 더 의미있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붉은눈 2016-08-29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산과 호치민을 이렇게 비교하며 읽을 수도 있겠군요. 역사의 연결점과 고리들은 실로 그 확장성이 방대한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리뷰를 읽다보니 <호치민 평전>에 이은 숙제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네요. 자살에 앞선 그의 생각 속에서 지금 저는 너무 무심히 쓰고 있는 `조국`과 `국가`의 어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겨울호랑이 2016-08-30 23:07   좋아요 1 | URL
^^: 네. 저는 실패한 혁명가 VS 성공한 혁명가 측면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체 게바라`와 `마오쩌뚱`도 어떤 도식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됩니다. 붉은눈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도 과제를 하나 더 받았네요.^^: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맛있는 점심 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붉은눈님!

cyrus 2016-08-29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밤 사진을 보면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생각났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8-29 13:15   좋아요 0 | URL
네, 윤동주 시인도 암흑기를 살던 분이시지요... 그분에게 `별`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해지네요..^^: cyrus님 감사합니다.

Grace 2016-08-30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은의 만인보를 보는 중인데,
<김성숙>이란 제목의 시에
장지락, 김산, 님웨일즈, 아리랑 등등이 나옵니다.
잘 모르는 부분이라 무심히 읽고 지나쳤는데,
겨울호랑이님의 위의 글을 읽어보니 <김성숙>이란 시가
확연히 이해 되네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6-08-30 22:1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고은님의 <김성숙>이라는 시를 Grace님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꼭 읽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연 2016-10-02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김산_ 이렇게 마주하니 새삼 가슴 뛰는걸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

겨울호랑이 2016-10-02 10: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야나님^^: 야나님께 칭찬을 들으니 저도 가슴이 뜁니다^^: 야나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호치민 평전
윌리엄 J. 듀이커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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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동료들이 그가 죽은 뒤에도 기억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품성, 선량하고 소박한 이미지, 불굴의 낙관주의, 대의에 대한 진지하고 헌신적인 태도였다."(p225)


본문에 나오는 호치민에 대한 그의 동료들 평가다.


어린 시절 반공(反共)교육을 받고 자란 나에게 호치민은 북한의 김일성, 중공의 모택동, 캄보디아의 폴 포트와 더불어 공산주의 시대의 독재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2년 정도 전까지도 이러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었다. 


2004년 정도의 일이었던 것 같다. 성당 후배 중에서 운동권 출신의 똑부러진 후배가 있었다. 평소 에는 다소 맹한 구석도 있지만,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눈을 반짝이며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그런 똑똑한 후배였다. 어느 날인가 이 후배가 무슨 어이없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는 가볍게 이 후배에게 "이런 호치민 같은..." 이라고 농담삼아 말했다. 별 생각없이 던진 농담에 후배는 정색을 하면서 칭찬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호치민에게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 후배의 뜻밖의 반응에 호치민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호치민 평전>은 베트남의 민족 지도자 호치민에 대해 미국인 윌리엄 J. 듀이커가 저술한 평전이다.  베트남전의 적국이었던 미국인의 시점에서 서술된 책이기에 한계점이 있다. 만약, 일본인이 <안중근 평전>을 썼다면 그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한계가 존재한다. 프랑스와 일본, 중국의 베트남 지배 야욕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분석을 하면서, 호치민을 민족해방을 위해 노력하는 투사의 모습이 비춰지는 것에 반해, 미국과의 전쟁 시기 호치민의 모습에는 독재자의 그림자가 나타난다. 또한, 이미  날조된 것으로 알려진 "통킹 만 사건"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설명이 없이 넘어가는 등 저자의 미국인으로서의 한계가 나타난다.  이러한 편향된 저자의 시선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된다.


호치민이 유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고, 프랑스, 소련에 가서 공산주의 사상을 공부하고 이후 반(反)제국주의 투쟁을 했으며, 검소한 생활 등으로 유명한 베트남 지도자라는 사실은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사실을 다시 알고자 950페이지에 달하는 평전을 읽는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나는 평전을 읽으면서 '호치민에게 공산주의는 목적이었을까, 아니면 수단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아마도 이에 대한 답이 그가 '베트남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기도 하리라.


이러한 질문과 관련해서 그가 1922년 프랑스 장관과 나눈 대화가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 삶에서 중요한 것,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동포의 자유입니다. 이제 가도 됩니까?"(p146)


그의 이러한 사상은 당시 공산혁명의 맏형이었던 소비에트 연방 주도하의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3인터내셔널)의 지침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레닌은 당대의 도덕률이 혁명적 행동 규약과 거의 관계가 없고, 실제로 둘 사이에 화해 불가능한 모순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가정했다. 반면 응우옌 아이 쿠옥(호치민)의 행동규범 목록은 전통적인 유교 도덕을 연상시키는 면이 강했다. 검소해야 한다, 다정하면서도 공정해야 한다, 잘못은 단호하게 고쳐야 한다, 신중해야 한다, 배움을 존중해야 한다, 공부하고 관찰해야 한다, 오만과 자만을 피해야 한다, 관대해야 한다."(p224)


호치민은 베트남의 전통사상에 기반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주위에서 코민테른의 지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오해를 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베트남 해방'이라는 목표를 향해 간다. 


"개인적으로 볼 때 그토록 매력있고 성격이 미묘한 사람이 어떻게 글에서는 그렇게 단조롭고 단순한 모습을 보여주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그의 인격과 그가 오랜 세월에 걸쳐 유지한 정치적 영향력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응우옌 아이 쿠옥(호치민)은 다른 많은 마르크스주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청중이 지식인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노동자, 농민, 병사, 사무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지적인 총명함으로 독자에게 감명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대신 그는 단순하지만 생생한 말로 그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세계관과 변화를 성취하는 방식을 공유하고자 했다."(p140)


마오쩌둥과 마찬가지로 그는 폭력 투쟁가보다는 교육을 통해 전사들을 양성하고,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는 그의 노력은  적에게는 '위험한 선동가'로서, 일반 대중에게는 따뜻한 '호 아저씨'의 모습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그는 대중에게만 따뜻하게 대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1945년 베트남을 지배하던 일본의 패망 이후,  호치민은 응오 딘 디엠(훗날 남베트남의 대통령, 고딘 디엠)의 석방을 명령하는 등 공산주의 혁명과 배치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해방 이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p520)


평전에 서술된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호치민에게 공산주의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게 진정한 목적은 '독립'과 '해방'이었다. 호치민에게 식민지를 통해 유지되는 제국주의에 맞서는 길은 식민지 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원조를 해주는 공산주의 세력과의 연대였으리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는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독립투사였고, 민족주의자였다.


사상, 이데올로기보다 조국의 해방을 우선시 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 나라의 독립투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독립투사들이 항일(抗日) 투쟁에서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살고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후대의 사상적 대립의 기준으로 당연히 인정해야할 그들의 공훈이 묻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 호치민이라는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베트남의 역사'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두 나라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분모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오랜 시간 중국(中國)과의 대립, 공통된 유교(儒敎)문화의 영향,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경험, 해방 후 분단되었던 조국 등 공통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반면, 지금도 분단된 우리의 현실과 통일된 베트남은 다른 역사를 가진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는 분단을, 그들에게는 통일을 가져왔을까? 호치민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된 지금 더 많은 생각할 과제를 부여받은 느낌이 든다.


<호치민 평전>은 저자의 편향된 시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왜 호치민이 지금도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胡)아저씨'로 불리는지를 알려주고, 갈수록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베트남'의 역사, 관계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응우옌 아이 쿠옥(호치민)이 보기에 아시아인들은 서구인들이 보기에는 후진적이지만, 현대 사회의 전면적 개혁의 필요성을 서구인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p133)

"자본주의는 식민지를 통해 자신을 부양하고, 여러분과 싸우는데, 여러 동지들은 왜 식민지를 무시합니까?"(p174)

"여러분이 이 작은 그룹 내에서도 단결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조국으로 돌아간 뒤에 어떻게 대중을 단결시켜 식민주의자들과 싸우게 하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나서게 할 수 있겠는가?"(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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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눈 2016-08-08 1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치민이 그 친근한 이미지를 잃지 않은 채 어떻게 베트남 국민들에게 여전히 존경을 받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서평을 읽고 나니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호랑이 2016-08-08 18:52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붉은눈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으시면 호치민과 베트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세요^^

사마천 2016-08-08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긴책 멋진 독서 잘 하셨네요. 베트남 역사는 <베트남과 그 이웃 중국>이라고 서울대 유인선 교수 책이 있습니다.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멀리 사마천 사기의 <남월열전>까지 이어지는 오랜 기간의 중국과의 관계가 다루어져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8-08 21:1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사마천님 베트남 역사책은 찾기 어려웠는데, 이번에도 좋은 책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깊이 있는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 하시고 편한 밤 되세요^^

2016-08-09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9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9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0 0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걀부인 2017-05-14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쓰신 리뷰 덕에 이 책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구매 버튼 누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5-14 22:04   좋아요 1 | URL
달걀부인님 감사합니다^^: 분량은 제법 되지만 마치 베트남 판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을 보는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혁명이 성공했다면 호치민과 같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달걀부인님 즐거운 시간 되세요^^:

NamGiKim 2018-01-02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작년 추석때 이 책을 읽고 호치민을 매우 존경하게 된 사랍입니다. 호치민에 대해 보다 더 알게되니 틈만나면 월남패망이나 보트피플을 외치며 진보인사들을 종북빨갱이 취급하는 인간들이 더더욱 한심해 보이게 됩니다. 앞으로 이런서적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8-01-02 17: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과거 우리가 얼마나 편향된 교육을 받아왔는가를 더 많이 느끼는 요즘입니다. ‘절대선-절대악‘의 대결 프레임 속에 모든 것을 이분법적인 기준으로 선택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하는 문제는 분명히 우리 모두가 인식해야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NamGiKim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NamGiKim 2018-03-27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치민을 굉장히 존경하지만 그도 한계가 있었죠. 하나는 토지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트로츠키주의자 숙청입니다. 토지개혁 과정에서 수십만의 가톨릭 신자들이 월남했고 약5천에서 2만가까이 되는 사람이 죽었죠. 그리고 호치민은 민족주의자와의 연합을 추구하면서 스탈린 시기 소련을 인식해서 였는지는 몰라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을 굉장히 배척했죠. 이 두가지 한계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비판하는것은 삼가야한다 봅니다. 무엇보다 호치민은 토지개혁에서의 실수를 높은 지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한뒤 철저히 자아비판을 했기에 그것부터가 이미 된 인물이라 봅니다. 6개월전 읽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낌 감격이 워낙 크기에 4월에 다시 읽은뒤 서평을 다시써볼까 합니다. 근데 이 호치민 평전 리뷰 올린 놈 중에 공산당 독재를 유지했다는 이유로 독재자 파시스트라 까는 어느 이상한 분이 계시네요.ㅋㅋㅋㅋ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호주석 묘에 참배하는 뉴스기사에 호치민에 대한 댓글을 다니 초록 일베들이 고기에 굶주린 개 처럼 저를 빨갱이로 몰더군요. 진짜 그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베트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된다면 그러지 못할텐데

겨울호랑이 2018-03-27 23:23   좋아요 1 | URL
호치민에 대한 평가는 우리보다 베트남인들이 보다 정확하게 내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국민들에게 ‘호아저씨‘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면서도, 프랑스와 미국을 잇달아 물리친 리더십은 단순히 독재라 말할 수 없는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념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정당한 평가를 내린다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인물의 한계부분은 모든 사람이 유한의 존재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만 역사의 평가를 내린다면 행위를 설명할 수 있는 타당성이 있는가가 되리라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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