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인주(人主)의 일인데 만약에 그 청을 들어 준다면 이는 사사로운 은혜를 파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를 준엄하게 끊어서 은혜를 황상에게 돌리려는 것이다. 만약에 채용하지 않을 사람같으면 이미 그 바라는 것을 잃었는데 또 좋은 말조차 하지 않으면 원망을 받는 길이다."

황제가 조보에게 유시(諭示)하여 말하였다.
"경은 자리가 높은 것을 가지고 스스로 방종하지 말고 권력이 무겁다고 스스로 교만하지 말며 다만 상을주고 벌을 주는데 삼가 [사사롭게] 아끼고 미워하는 것을 중지한다면 군사와 국가의 일이 어찌 다스려지지 않을까 걱정하겠소!"

처음으로 세 번 쟁기를 밀자 유사(司)가 예(禮)가 끝났다고 상주하였는데 황제가 말하였다. "짐의 뜻은 농사를 권고하는데 있는 것이어서 1천 무(飮)를 끝까지 할 수 없음을 한스러워 하는데 어찌 단지 세 번 미는 것으로 제한하는가!" 밭 갈기를 하면서 수십 걸음을 갔는데, 시중드는 신하들이 굳게 청하여서 마침내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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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업은 책을 읽을 줄 몰랐지만 충성스럽고 용감하며 지모를 갖고 있어서 공격하여 싸우는 것을 연습하면서 사졸들과 고락을 함께 하였다. 대주(代州)의 북쪽은 고생스럽고 추워서 사람들이 대부분 담요를 걸쳤지만 양업은 다만 솜옷을 끼고 노천(露人)에 앉아서 군사적인 일을 처리하였는데, 옆에 불을 지피지 않았으니 거의 얼어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러나 양업은 기쁜 것처럼 하면서 추운 기색이 없었다.

신(臣)들이 자못 더불어 논의하는 것을 들었는데, 모두 말하기를 하남의 백성들은 변방에 사는백성들과 같지 않고 평소에 농사와 잠업(業)을 익혔지 전투는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담아서 묶어 모으려니 혹은 사람들의 마음이 동요되어 이어서 도피하여 도적이 되면 다시 반드시 잘라 없애야 한다고 염려합니다. 하물며 땅을 기름지게 하여야 할 때를 당하여 다시 농사짓는 업무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신은 일찍이 주현(州縣)에서 직책을 거쳐 왔기에 거칠지만 이로움과 병통을 알며 편성된 백성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많으며 춘잠(春蠶, 봄철의 누에치기)이 이루어지면 단지 부조((뼈)를 충당하는 대비가 되며 만삼(蠶, 여름의 누에치기)은 이익은 박(簿)하지만 비로소 1년을 마치는 밑천에 됩니다. 지금 만약에 그 뒤에 도모할 것을 금지한다면 반드시 연(緣)을 이용하는 폐단이 생기고 어지럽고 혼란함이 뚜렷할 것인데 백성들은 얼마나 한가하게 편안하겠습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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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군주(君主)와 신하(臣下)가 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잘 다스리고 사물을 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수행(修行)이다. 양 무제(梁武帝, 464~549)는 자기 몸을 버려서 절의 가노(家奴)가 되었다니 이는 정말로 커다렇게 현혹된 것이다.

"상벌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는 이에 세상을 어거하는 재갈과 굴레인데, 상과 벌을 다스리는 사람이 진실로 상을 주고 벌을 주는 것이 지극히 공평하면 태평시절을 이루지 않는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바야흐로 지극한 말을 듣기를 갈망하는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바야흐로 절실하게 직간(直(諫)하기를 기다리는 바가 되었고, 허물을 이끌어내어 스스로 경계하시며 덕을 닦아서 두루 새롭게 하려고하십니다.
신은 책임이 가까이하는 신하에게 있으며 성스러우신 분에게 있지 아니하고, 죄는 간관에게 있고 폐하에게있지 아니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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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처음으로 세워진 다음으로는 평상적인 제도를 갖추어 유지하고 3년에 한 번 사면하는데, 이른바 그 어짊이 하늘 같다고 하는 것이 요·순(堯舜)의 도입니다. 유비(劉備, 161~223)는 조그만 한 지방에 있었으니 마음을 쓰는 것에서 스승으로 삼아 본받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죄인들이 경사(京師)에 이르는데 청컨대 깨끗하고 강한 관리를 골라서 생각하여 묻게 하시고 만약에 분명하게 덮어 씌워 억울함을 당하였다고 한다면 그것을 헤아려서 본주(本州)의 관리를 벌(罰)하고, 단시 해당하는 사람만 보내게 하고 가속(屬)들은 별도로 조정의 지의(旨意)를 기다리도록 하십시오."

"형옥(獄)의 처리가 번거롭거나 간단한 것은 바로 치도(治道)가 신장(張)되거나 해이(解)하게 되는 근본입니다. 우공(公)이 그늘에서 쌓은 덕(德)은 자손이라면 흥왕(興)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하물며 육합(六合, 온 천지)처럼 넓은 속에서 옥사를 처리하면서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할 수 있다면 어찌 복이 만세에 흘러 내려가지 않겠습니까!

제왕(王)이라는 사람은 비록 무공(武功)을 가지고 평정을 하지만 끝내는 반드시 문덕(文德)을 사용하여 치세(治世)에 이른다. 짐은 매번 조회에서 물러나서는 책 보기를 그만 두지 아니하며 속으로 전 시대의 성공과 실패를 짐작(酌)해 보고 이를 시행하며 덜어내고 덧붙이기를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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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일(6일)에 요(遼)의 야율사가 원병을 가지고 도착하여 고량(高梁河)에서 싸웠는데, 송의 군사가 이를 치자 야율사는 패배하여 달아났다. 마침 초저녁에 야율휴격이 샛길에서부터 말을 달려 도착하였는데 사람마다 두 개의 횃불을 가지고 있어서 송의 군사는 그들의 많고 적음을 추측하지 못하여 두려운 기색을 가졌다.

요주(遼)는 한광사에게 화가 나서 다섯 가지 죄를 헤아리면 말하였다. "무리들을 어기고 깊이 들어 간 것이 첫 번째요. 행군하는 대오를 가지런히 하지 않은 것이두 번째이며, 군사를 버리고 쥐처럼 숨은 것이 세 번째이고, 정탐하고 망보는 것에서 기회를 잃은 것이 네 번째이며, 기고(旗鼓)를 내버린 것이 다섯 번째이다." 바로 그를 주살하게 하였다. 황후가 힘써 구원하여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폐하께서 통수(帥)를 이어받으시니 해내에서 합하여 중흥(興)의 정치를 바라고 있는데 10여 년 동안에 정벌이 아직 끝나지 않고 상처가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으니, 바로 마땅히 두려움을 가지고 닦으며 살펴서 영원한 도모를 품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듣건대 마음내키는 대로 수렵을 하시는 것이 지난날보다 심하다하니 만약에 함궐하는 걱정거리가 생긴다면 후회하여도 장치 어찌 따라잡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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