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마셜 호지슨 지음, 이은정 옮김 / 사계절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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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슨이 세계사를 보는 틀은 무엇인가?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란, 인간의 문자화된 사회의 역사는 아시아와 그 주변(외곽)의 역사여야 하고 유럽은 그 이야기의 전개 속에서 특권적 역할을 갖지 않았다는 명제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호지슨을 매료시킨 것은 인류 전체의 이야기를 편향적이고 서구적이며 자기 정당화를 하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호지슨에게 전 세계에서의 문화적인 혹은 그 밖의 기술과 발견의 지속적인 습득은 모든 곳에서 향후 발전 가능성의 변화를 누진적으로 이끌어냈다는 매우 기본적인 개념이었다.(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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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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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의 눈으로 세계사를 보면 어떨까? 이슬람 세계는 스스로를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를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의 다른 판본이라고. 같은 목표를 향해 발전해가긴 하지만 효과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p30)... 무슬림 전통의 후계자들인 우리는 역사의 의미를 승리가 아닌 패배에서 찾도록 강요당해왔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화'의 개념을 역사의 흐름에 맞게 수정하거나, 아니면 그 역사의 흐름과 싸워서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화'의 개념에 맞추느냐다.(p31)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타밈 안사리(Tamim Ansary, 1948 ~ )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Destiny Distrupted>는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시간(Time)적으로는 예수(Jesus Christ, BC 4(?) ~ AD 30 )의 죽음을 기준으로, 공간(Space)적으로는 영국 그리니치(Greenwich meridian)의 본초 자오선(本初子午線, prime meridian)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우리에게 헤지라(Hijra, AD 622)를 시간의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akkah Al Mukarrammah)를 공간의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의 세계관은 낯설다. 


 이런 우리에게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이슬람 종교를 믿는 이들의 관점에서는 역사가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알기 쉽게 잘 보여준다.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이야기하듯 풀어준다. 단순한 사실 설명뿐 아니라 그 사건이 이슬람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제시하기에 어렵지 않게 독자들의 궁금함을 풀어가게 된다.


[사진] Muhammad goes to Hegira(출처 : https://www.freedomsystem.org/muhammad-goes-to-hegira-622/)


 히즈라는 무슬림 역사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사건으로 이슬람에서 '움마'라고 부르는 무슬림 공동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히즈라 이전에 무함마드는 개별 추종자들의 설교자였다. 히즈라 이후에 무함마드는 법 제정을 하고 정치 방향을 제시하며 사회 지도를 담당하는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히즈라는 '단절'을 뜻한다.(p68)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아부 바크르와 우마르가 분명하게 표현한 주류 교리에서는 무함마드가 신의 사도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령들을 엄밀하게 전달했다고 말한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위대하며 유일무이한 것이다. 쿠란을 전달한다라는 역할 이외에 무함마드의 종교적인 중요성은 순전히 순나(무함마드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보여준 모범)에만 있으며 이는 신의 은혜 안에 살기를 원한다면 모든 이가 따라야 한다. 이러한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나중에 수니파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수니파는 오늘날 무슬림 공동체 안에서 10분의 9를 차지한다(p137)...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아파는 그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천국에 걸맞는 사람이 될수가 없다고 느꼈다. 지령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아파는 영혼을 구원하는 은총으로 다른 무슬림들을 씻길 수 있는 선택받은 몇 명을 통해서 신이 여전히 세상에 직접적인 지시를 내려준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이처럼 위안을 주는 사람들을 '이맘'이라고 불렀다.(p138)... 알리 지지자들은 칼리프 지위를 차지하려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알리에게서 보았다. 그들은 알리를 '이맘'이라고 불렀다.(p136)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현재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시아파와 그 외 지역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에 대해 많은 이들이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4대 칼리프인 알리를 추종하느냐에 따라 이들을 나눈다는 사실 정도가 우리의 일반적 상식이라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는 조금 더 자세히 알려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리스도교의 개신교와 수니파가 통하는 바가 있으며,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敎會 ecclesia)를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천주교와 시아파의 교리가 통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처럼 이슬람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한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리고,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는 지난 역사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해석을 보여준다. 빠른 시기에 이루어진 이슬람의 확장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았고, 자발적인 개종(改宗)에 의한 것이라는 해설과 성전(聖戰)을 의미하는 '지하드(jihad)'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슬람의 시각도 잘 보여준다. 


 정복은 빠르게 이어졌지만 정복과 개종은 여전히 따로 이루어졌다. '칼에 의한 개종'은 없었다. 무슬림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쥐었지만 정복민한테 무슬림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슬림 군대가 지나간 곳이라면 어디서든 문화 전파가 뒤따랐다.(p104)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고무적인 사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정의로운 공동체 건설이었다. 공동체가 살아 있게 하려면 싸워야 했는데, 움마와, 움마가 전개하는 사회 프로젝트에는 화해할 수 없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드는 결코 '성전(聖戰)'이나 '폭력(暴力)'을 의미한 적이 없다. 지하드는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의미인 사회 정의 운동이라는 은유를 함축하고 있다. 투쟁은 공명정대한 목적을 위한 투쟁일 때 고귀하며, 만일 그 목적을 위해 '무장 투쟁'이 필요하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 목적을 위해 정당화된다.(p77)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그렇지만, 이 책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단점은 장점과도 맞닿아있다. 마치, 할아버지가 화롯가에 둘러앉아 동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듯 풀어가는 쉬운 설명은 독자들을 끌어당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자 스스로 몰입되어 흥분하는 어조가 느껴진다.


 잠시 상상해봐라. 무슬림 세력이 이슬람의 한창 전성기에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했더라면, 바그다드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이 아바스 왕조의 수도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물길에 걸치고 서서, 에게 해와 지중해로 언제든 해군을 파견할 수 있는 항구들을 모조리 차지하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더 나아가서는 스페인과 프랑스 해안, 그리고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대서양 해안선을 따라 영국과 스칸디나비아까지 항해했더라면, 게다가 육지전에서 이미 증명된 막강한 전투력까지 합세했다면, 유럽 전체가 이슬람 제국에 흡수되었을지도 모른다.(p289)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우리의 영토가 광대했을 것이라는 가정과 다름없는 저자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역시 객관적인 역사책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한다. 사실, 역사(歷史)가 객관적일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중심의 사관에 의해 이 책이 씌여졌음을 느낀 후에는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사실 자체가 틀리기도 한다. 레판토 해전이 1571년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키프로스의 파마구스타(Famagusta)가 오스만에 함락된 것은 그 직전인 1570년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레판토 해전 이후 오스만의 부활을 강조하고 싶어서인지, 사실 확인이 안 되어서인지 이들의 관계를 역전시켜 놓고 있으니 이는 비판할 지점이다.


[그림] The Battle of Lepant(출처 : http://www.ncregister.com/blog/kschiffer/the-pope-the-rosary-and-the-battle-of-lepanto)


 역사가들은 두 차례의 중대한 군사적 패배로 오스만 왕가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보지만, 그 당시 오스만 튀르크는 두 번 모두 그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첫 번째는 1571년의 레판토 전투였다... 그때 이후로 6개월 안에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동부를 탈환했으며 키프로스 섬을 정복했고 시실리를 공략했다.(p355)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결론적으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새로운 역사관,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장점과 함께 이슬람 중심에서 감정이 듬뿍 담긴 역사 입문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구(西區) 편향의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가 '기계적인 보편성'이 아닌 '진정한 보편성'을 얻기 위해서는 비판적으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으로 생각된다. 이스람의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은 이후 마셜 호지슨(Marshall G.S. Hodgson, 1922 ~ 1968)의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Rethinking World History : Essays on Europe, Islam and World History>로 나아갈 것을 권하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18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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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9-07-28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니파 시아파 구분을, 권력 투쟁 중의 분열 정도로 알고 있던 제가 부끄럽네요. 추천해주신 마셜 호지슨 책부터 읽어야 할까봐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7-28 12:39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이슬람에 대해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기에 조그만 메모수첩님께서 부끄러워 하실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더 알아가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 응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8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역사학이란 저자 나름대로 정당성 원리란 측면에서 쓴 책이라고 본다면 정말 잘 쓴 재미있는 책 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7-28 18:49   좋아요 1 | URL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역사란 사실의 나열이 아닌 해석이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주관의 한계 또한 독자들은 염두에 두고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8 18:5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역사학을 주관의 한계를 피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7-28 21:24   좋아요 1 | URL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신만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고,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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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하나는 유럽 국가들이 재편을 맡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왕조, 국가, 정치시스템만 구축해놓고 그것들이 지속될 수 있는 대책 마련에는 소홀한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1914 ~ 1922년 사이 영국과 연합국이 취한 조치는 유럽의 중동문제만 종식시켰을 뿐, 중동의 중동문제는 오히려 새로 불거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p863) <현대 중동의 탄생> 中


 데이비드 프롬킨(David Fromkin, 1932 ~ )는 <현대 중동의 탄생 A place to end all peace>에서 1차 세계대전 전후 오스만 투르크를 둘러싼 유럽 열강의 갈등이 현대 중동 문제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14년 당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막 끝냈던 영국과 러시아는 오스만 투르크를 중립지대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당시 영국은 여러 면에서 중동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시켜야할 필요가 분명하게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국 이해관계는 현재 중동 문제의 뿌리가 된다. 현대 중동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를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획득한 식민지 중에서도 전설로 가득찬 동방에 대해 가장 큰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의기양양함에는 뜻밖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고 인도를 손에 넣어 승리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좋았으나, 수송로와 병참선이 지나치게 멀어져 여러 곳에서 끊길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중동의 토착 정권들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유럽 국가들의 이런 팽창을 막으려고 했다. 중동을 지배할 의도는 없었으나 유럽의 경쟁국들이 그 지역을 지배하는 것 또한 결단코 막으려고 했다.(p51)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전략적 관점으로 봐도 중동은 케이프타운에서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로 연결되는 노선의 끊어진 부분을 이어줌으로써,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에 걸친 영국제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곳이었다.(p464) <현대 중동의 탄생> 中


 그렇지만, 당시 영국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방대한 영토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은 그대로였지만, 주변 상황은 달라지고 있었다. 신흥 강국 독일의 급부상, 철도의 발달로 인한 육상 전력의 중요성 증대 등은 오랜 제국 영국에게 위협요소로 다가왔고, 영국은 이러한 위기를 중동에 대한 직접지배력의 확대를 통해 극복하려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제물이 되어야만 했다.

 

  1871년 1월 18일부로 공식 출범한 독일제국(제2제국)이 그로부터 몇십 년 뒤에는 러시아를 누르고 영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최대 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세계정치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의 산업이 쇠퇴한 것도 정세 변화의 일부 요인으로 작용했다. 영국은 화학과 공작기계처럼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도 독일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군사적 요인도 정세 변화에 한몫했다. 철도의 발달로 해군이 힘을 못쓰게 되어 육군과 해군의 전략적 균형이 바뀐 탓이다.(p57)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식민지 수립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달랐지만 중동의 오스만제국이 언젠가는 와해될 것이고, 그러면 유럽 국가들이 거기서 떨어질 떡고물을 얻게 되리라는 점에서는 양측의 견해가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의 하나가 되었다.(p59) <현대 중동의 탄생> 中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동맹국으로 참가한 오스만제국은 당시 매우 허약해진 상태였다. 제국 내의 인종/언어 문제는 발전을 가로막았고, 한때 16세기에 빈을 포위하며 오스트리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국의 위엄은 20세기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 크림전쟁(Guerre de Crimee, 1853 ~ 1856)을 통해 오스만 제국의 허약한 모습을 알고 있었던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손쉬운 상대로 본 것도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오스만제국은 지리멸렬했다. 지배자들의 인종도 제각각이었다. 언어는 튀르크어를 사용했지만, 지배자 대부분이 발칸과 여타 지역 기독교 노예의 후손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고, 많은 경우 서로에 대한 애착도 크지 않았다. 이렇듯 오스만제국은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사람들이 모자이크를 이룬 다민족, 다언어 제국이었다. 그나마 접착제 구실을 한 것이 종교였다. 오스만제국은 튀르크족의 나라라기보다는 무슬림 나라에 가까운 신정국가였다.(p62)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사진] 갈리폴리 전투(출처 :https://warfarehistorynetwork.com/daily/military-history/what-events-led-to-the-battle-of-gallipoli/)

 

 그렇지만, 승리를 자신했던 영국은 1차 대전에서 다르다넬스 작전(갈리폴리 전투)을 실패하며 대(對)오스만 전선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데 실패하고 말고 영국 역시 과거와 달라진 제국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이후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었지만, 영국제국의 운명은 매우 불투명했고,  중동 문제에 직접적인 개입이 어려워진 시점에서 승전국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 했다. 그 중 하나가 오스만 제국 해체를 위한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였다.


  영국 경제는 1920 ~ 1921년 사이에 붕괴했다. 물가가 폭락하고, 수출도 둔화되고, 폐업하는 회사가 속출하고, 온 나라가 전례가 없을 정도의 대규모 실업과 씨름을 벌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정치인들도 국내외에서 벌여놓은 각종 사업을 시행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는 외교정책의 모험을 감행했고, 국내에서도 사회적 평화를 얻기 위한 사업을 벌였다.(p590) <현대 중동의 탄생> 中

  

 1918년 1월 8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제안한 '평화 14개 조항'이었다... 윌슨은 오스만제국과 미국이 교전 중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에 관련된 내용도 12조에 포함시켰다. 이런 내용이다. "12조. 현재의 오스만제국 중 튀르크인들이 차지하는 영토의 주권은 확실히 보장되어야 하며, 튀르크 지배를 받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확실한 생활의 안전과 방해받지 않는 자율적 발전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에 앞서 작성된 초안에는 터키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내용이 명기돼 있었다.(p399)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이같은 분위기에서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인 시온주의(Zionism) 는 보다 활성화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을 자극시키는 이러한 움직임을 당시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지하였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현대 중동 문제의 가장 커다란 씨를 뿌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민족주의가 정치적 악폐를 근절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되었던 만큼 누군가는 유대인 문제에 대한 답으로 민족주의를 제시할만도 했다.(p421)... 연합국이 팔레스타인에 가진 유대인의 열망을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시온주의 운동은 유대인 국가의 보호국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경우 시온주의 운동이 영국을 보호국으로 택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p452)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영국 외무부는 미국의 유대인 사회와, 특히 러시아의 유대인 사회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영국정부는 계속해서 러시아 유대인들이 러시아 정부가 연합국 진영에 계속 남아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러시아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영국 외무부는 더욱더 유대인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혔다.(p456) <현대 중동의 탄생> 中


  1921년 6월 처칠은 하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랍인들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부를 확대하고 그곳의 자원을 개발하는 정도의 유대인만 정착시키고, 그 이상의 유대인 정착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p782)... 1922년 7월 22일에는 국제연맹이, 영국이 요르단 강 서안에 밸푸어선언을 실행하도록 명시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안을 최종 승인했다.(p792) <현대 중동의 탄생> 中


 <현대 중동의 탄생>은 1922년 이루어진 연합국간의 협정이 현대 중동의 모습을 결정짓는다고 지적한다. 석유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부각되지 않은 시기에 중동은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되고 말았다.


 1922년의 타결은 단일한 법령, 조약, 혹은 문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중동문제가 대개는 그해에 성립된 법령, 조약, 문서들로 정리되어 붙게된 명칭이다.(p857)... 중동에서의 러시아 문제도, 정치적 국경은 러시아가 터키,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과 체결한 조약들 및 어느 정도는 영국과 맺은 교역 협정으로 1921년부터 모습을 드러냈고, 오스만제국의 술탄제가 종식되고 터키 민족국가가 창설된 것 또한 1922년 대국민의회 투표에서 만들어진 결과였으며... 중동의 영국 세력권에 적용될 법령과 조약도 대부분 1922년에 확정되었다.(p858)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중동 분규가 특별했던 것은, 1922년 초 영국과 프랑스가 합의한 내용에 따라 그 즉시 모습을 드러냈거나 혹은 종국에는 모습을 드러내게 될 나라들의 규모와 경계는 물론이고 그 나라들의 존립권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더욱 본질적 문제가 내포돼 있다는 점이다. 그곳이 지금까지도 국가의 생존을 위해 빈번히 투쟁을 벌이는 세계적 분쟁지역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쿠르드족의 정치적 미래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정치적 운명과 같이 독특하고 해결 불가능한 사안들의 저변에, 중동에 이식된 유럽의 현대적 정치시스템이 중동이라는 생소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 문제가 내재돼 있는 까닭이다.(p864) <현대 중동의 탄생> 中


 또한 저자는 본문에서 이러한 지정학적 문제 외에도 외부에서 이식된 현대 정치 시스템의 문제가 중동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랜 무슬림의 전통 지배 체제를 부정하고 강제로 서구의 시스템을 강요는 중동의 또다른 분열요소가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2010년 '아랍의 봄'을 통해 뒷받침 된다.



[사진] 아랍의 봄(출처 : https://www.history.com/topics/middle-east/arab-spring)


 <현대 중동의 탄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의 수많은 국가가 만들어진 이유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툼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책에 서술된 중동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유대 - 아랍 민족의 갈등과 수니 - 시아 파의 종교 반목을 활용하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 이들이 시리아 내전 등으로 발생한 중동 - 아프리카 난민 문제에 인도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세기 자신들이 뿌려놓은 갈등의 씨앗을 생각한다면, 이들 지역에 대한 난민 수용은 단순한 인도주의 차원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아랍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해 직접 책임 있는 일부 유럽 국가들과 우리 나라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100년전 독립의 희망으로 봤던 민족자결주의가 사실은 영국 패권 유지와 오스만 제국의 해체를 위한 이론 근거였음을 <현대 중동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족자결주의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고, 많은 희생을 불러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중동의 불행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 중동의 탄생>은 제법 두껍다. 그러지만, 본문만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지만, 내용은 깊지 않아 현대 중동 문제와 기원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중동 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은 한 번정도 읽기를 권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PS. 난민 문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해야한다는 개인의 생각은 여전하지만, 유럽은 몇 명 받아들였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조금 받아들였는가하는 단순한 수치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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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6 15: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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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6 16: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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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5-1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지역을 중동이라고 해야 할 지, 서남아시아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문화적인 면이 우리 나라와는 많이 다른 지역이라서 책으로만 알게 된 것들은 어쩐지 많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겨울호랑이님,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졌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9-05-17 18:21   좋아요 0 | URL
^^:) 우리 입장에서는 서남아시아가 유럽 입장에서는 중동이 될 것 같네요. 날이 많이 흐린 초여름날씨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좋은 주말 되세요. ^^:)
 
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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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하나는 (1922년의 타결을 통해) 유럽 국가들이 재편을 맡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왕조, 국가, 정치시스템만 구축해 놓고 그것들이 지속될 수 있는 대책 마련에는 소홀한 탓이었다.(p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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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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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즈볼스키 백작과 영국 대사 아서 니콜슨(Arthur Nicolson) 경 사이에 역사적인 영러 협상이 극비리에 체결되었다. 티베트와 관련하여 두 나라는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철도, 도로, 광산, 전신의 양보를 얻으려 하지 않으며, 대표를 보내지 않고 종주국인 청나라는 통해서만 라싸와 이야기를 한다는 데 합의했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이 영국의 세력권 안에 있으며, 자신들의 세력권 밖에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양국은 페르시아의 독립을 존중하고 다른 나라들이 그곳에서 자유롭게 교역을 하도록 약속하면서도, 가운데 중립 지대를 두고 두 세력권으로 분할하기로 합의했다.(p656) <그레이트 게임> 中


 <그레이트 게임 The Great Game>은 19세기초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과 러시아간 일어난 충돌을 배경으로 한다. 1907년 최종 협상에서 논의된 지역이 티베트,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이란)라는 사실 속에서 우리는 이들 두 제국의 대결이 주로 중앙아시아에서 집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러시아의 전략


  이미 18세기 시베리아로 진출하고 청나라와 네르친스크 조약(1689)을 체결하며 동진(東進)을 완료한 러시아는 풍부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영국과 같은 진정한 세계 제국(帝國)이 되기 위해서는 소비 시장(市場)이 필요했다. 서쪽으로는 스웨덴, 폴란드 등 유럽국가와 마주하고, 동으로는 청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가 내려갈 수 있는 곳은 남쪽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남쪽에는 팽창하는 러시아를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영국이 있었다.


 러시아의 국내 시장은 너무 작고 가난해서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반면 경쟁자인 영국은 더 고급스러운 기계를 사용해 유럽과 아메리카 양쪽에 싼값으로 물건을 공급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신의 문간인 중앙아시아에 잠재력이 큰 거대한 시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 시장은 워낙 외졌기 때문에 경쟁자와 마주치지 않았다. 영국이 중앙아시아에 들어오는 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막아야 했다.(p145) <그레이트 게임> 中


 히바를 손에 넣게 되면 러시아는 엄청난 부를 안겨주는 인도 무역의 영국 독점을 끝낼 수 있었다. 히바를 손에 쥐면 "인도의 교역을 포함한 아시아의 모든 교역"이 히바를 거쳐 카스피 해로 가고 거기서 다시 볼가 강을 거쳐 러시아와 유럽 시장으로 가능 경로로 재조정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영국의 인도 통치도 크게 흔들릴 것이고, 결국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p126) <그레이트 게임> 中


 중앙아시아와 유럽권 러시아를 연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카스피 해 동쪽 연안에 항구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람과 물자는 볼가 강을 따라 이동하다가 카스피 해를 가로질러 이 항구에 이를 수 있었다. 캅카스(코카서스)의 러시아 주둔지에서 그 항구까지 배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히바를 정복하고 골치 아픈 투르크멘 사람들을 진압하면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코칸트에 이르는 철도를 사막에 놓을 수 있었다.(p407) <그레이트 게임> 中



[그림] 우즈베키스탄 도시 히바와 중앙아시아(출처 : 구글지도)


2. 영국의 전략


 18세기 표트르 대제(Pyotr Velikiy, 1682 ~ 1725)이래 뒤늦게 유럽으로 편입한 러시아와 달리 19세기 이미 세계 최대 제국으로 자리잡은 영국은 이미 충분한 해외식민지(시장)를 가지고 있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면, 그것은 인도(India)때문이었다.


 메이오 경은 인도를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은 전진 정책이나 군사적 모험이 아니라, 경비가 소홀할 수밖에 없는 광대한 국경 지대 둘레를 영국에 우호적인 완충 국가들로 사슬처럼 둘러싸는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가장 중요한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p431) <그레이트 게임> 中


 새로운 시장 확보를 위해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의 확보를 노리는 러시아, 대영제국의 한 축인 인도를 지키기 위한 영국의 대결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리는 1세기 동안 벌어진 두 제국의 충돌은 주로 아프가니스탄(Afganistan)을 중심으로 발생하게 된다.


 3. 두 제국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실패


[그림] 제1차 영-아프간 전쟁(출처 : https://about-history.com/first-anglo-afghan-war-1839-1842-part-the-great-game/)


 영국과 러시아, 여기에 페르시아까지 가세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침공을 했지만, 많은 사상자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은 침략을 허용하지 않았고, 영국과 러시아는 2차례에 걸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심각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레이트 게임은 이후에도 약 50년에 걸쳐 계속되는데, 이는 두 제국이 거둔 다른 지역에서의 승리때문이었다. 동지중해에서의 영국 승리와 시베리아 지역에서의 러시아 승리는 각자에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아픈 기억을 지우는 작은 위로가 되었다.


 페르시아는 앞서 보았듯이 자신들이 한때 소유했던 동부 지방을 되찾으려 했다.(p227)...  러시아의 침식에 맞서 아프가니스탄에 인도를 보호해줄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기는 커녕 영국군이 겪은 사상최악의 참사로 꼽을 만한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교도 야만인 무리에 불과한 존재들이 집에서 만든 무기로 무장을 하고 지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군대를 궤멸시켰다. 이것은 영국의 자존과 위엄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일이었다.(p352) <그레이트 게임> 中


 이제 아프가니스탄 국격합동위원회가 일을 시작했다. 위원회는 여러 번 의견이 충돌하여 시간을 질질 끌다가 마침내 1887년 여름에 동부를 제외한 국경의 모든 부분에 합의하는 의정서에 조인했다. 어쨌든 전쟁은 피했다.(p547)... 그러나 동쪽으로 더 나아간 파미르 고원에서는 국경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제 그레이트 게임의 초점은 이 황량한 지역, 오늘날에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에 맞추어졌다.(p548) <그레이트 게임> 中


4. 영국의 승리 : 크림전쟁


 간호사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 ~ 1910)이 활약한 것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크림전쟁(Guerre de Crimee,1853 ~ 1856)을 통해 영국은 오스만 투르크를 노리던 러시아의 야심을 분쇄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영국은 이집트 - 시리아 - 이라크 - 인도로 이어지는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 여기에 수에즈 운하 주식 매입, 해저 케이블 매설, 키프로스 지배(1878) 등을 통해 동지중해의 지배권을 확보하면서 영국은 지브롤터에서 인도에 이르는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다.


 1854년 9월 영국과 프랑스는 흑해에 있는 러시아의 중요한 해군 요새 세바스토폴을 포위했다. 이 요새를 차지해 파괴하는 것이 터키의 독립 유지에 긴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 349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양쪽에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p371)... 승전국들의 주요한 목적은 러시아가 근동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패전국들은 흑해 지역과 관련하여 가혹한 조항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흑해와 그 연안에 전함을 띄우지도 못하고, 해군 기지를 비롯한 기타 요새를 건설하지도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또 다뉴브 강 어귀, 그리고 그들이 점령했던 터키의 도시 바툼과 카르스와 더불어 발칸 북부 영통를 내주었으며, 술탄의 영토에 사는 기독교인을 종교적으로 보호할 권리를 포기했다.(p372) <그레이트 게임> 中


5. 러시아의 승리 : 극동지역


 반면, 러시아는 아이훈 조약(愛琿條約, 1858) 등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를 확보하면서 극동지역에서 남하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같은 시기 영국은 인도에서 세포이 항쟁(Sepoy Mutiny, 1857 ~ 1858)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기에,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로 진출할 기회를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시베리아 주둔군이 그 전 3~4년동안 청나라를 제압하며 얻어낸 영토였다. 그동안 러시아 지휘관들은 영국이 인도처럼 중국도 손에 넣을까 봐 걱정이 되어 한편으로는 아무르 강을 따라 동진했고, 또 한편으로는 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하여 태평양 연안으로 남진했다... 러시아는 거의 아무런 희생 없이 청나라 영토 가운데 약 100만 제곱킬로미터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영토는 영국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p384) <그레이트 게임> 中


 육군의 젊은 장교들도 대부분 아시아에서의 전진 정책을 지지했으며, 그곳에서 영국의 의도를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사실 밀류틴이 근본적으로 재조직하고 있던 육군 전체가 극동에서 거둔 성공을 발판으로 새로운 정복을 갈망했다. 크림에서 당한 패배의 기억을 씻어낼 기회를 노리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p388)... 다른 문제들에서 벗어난 알렉산드르는 영국보다 먼저 중앙아시아에 진입해야 한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그나티예프는 영국이 아프가니스탄과 러시아, 페르시아, 중국과 잇따라 큰 대가를 치르며 전쟁을 벌였고 인도에서 유혈 봉기까지 일어났기 때문에 소극적인 태도로 바뀌어 분쟁에 더 얽히는 것을 피하는 징후들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p389)... 바야흐로 중앙아시아를 향한 러시아의 대남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p392) <그레이트 게임> 中

 

 그렇지만,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과 러시아는 다시 한 번 처참한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서 이들 제국의 중앙아시아 전략은 커뮤니케이션 수단 확보로 전환되었다. 군대와 포를 나를 수 있는 철도를 중앙아시아에 건설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는 동시에 제국 유지를 위한 SOC를 확보하려는 영국간의 첩보전이 그레이트 게임의 후반부를 장식하게 된다.


 트란스카스피아 철도는 이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 인도를 향해 전진하던 러시아군은 아주 먼 거리와 악몽 같은 땅을 가로질러 병력, 포, 다른 중장비를 대량 운송해야 한다는 거의 대책 없는 과제에 부딪혔다. 그러나 사마르칸트와 타슈켄트를 잇는 마지막 300킬로미터 거리의 철도가 완공되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무려 10만 병력을 페르시아나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집결시킬 수 있었다.(p564) <그레이트 게임> 中


 6. 그리고 엔드 게임(End Game)


 지지부진했던 1세기에 걸친 영국-러시아의 대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러일전쟁(1904 ~ 1905)이었다. 시베리아 진출로 얻은 자신감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급부상한 러시아였기에 극동 지역에서 신흥국 일본에게 당한 패배는 충격적이었다. 여기에, 대한해협에서 발트 함대를 잃으면서 군사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게 된 러시아는 결국 1907년 영러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그레이트 게임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러시아가 극동에서 군사력과 해군 기지를 강화하는 것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 지역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가 가차 없이 조선으로 침투하는 데 긴장했다. 이렇게 되면 일본과도 거리가 매우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1904년 2월 8일 일본은 예고 없이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물은 포트아서에 있는 러시아의 커다란 해군 기지였다. 러일전쟁이 시작된 것이다.(p642)... 일본은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마지막 전진 행동을 막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티베트는 자신의 땅에서 영국을 막지 못했다.(p652) <그레이트 게임> 中


 <그레이트 게임>은 <중국의 서진> 이후의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갈등과 대립을 그리고 있다. 19세기 세계의 1/4을 지배하면서 점차 해가 지고 있던 노제국 영국과 새롭게 떠오른 신흥국 러시아의 대립은 중앙아시아에서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다 결국 러일전쟁 이후 러시아의 몰락으로 마무리 되었다는 것이 그레이트 게임의 시작과 종결이다. 


 그레이트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중국의 서진>때와는 달라진 제국(帝國)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시대의 제국이 영토를 점령하고 병합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던 영토 중심의 제국 모습이었다면, 그레이트 게임에서 제국이 중점을 둔 것은 교통, 통신 수단, 자본을 통한 지배였다. 이는 지난 시대의 제국이 면(面)의 지배라면, 제국주의 시대의 지배는 선(線)의 지배라는 점으로도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제국들의 지배 형태 변화를 우리는 <그레이트 게임>에서 일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나가면 우리는 제국주의 일본의 패배원인 또한 여기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무렵 영국이 취한 두 가지 조치 덕분에 인도에서 영국의 힘이 크게  강화되었다. 하나는 극도의 비밀을 유지하며 이집트의 총독으로부터 새로 개통한 수에즈 운하의 주식 40퍼센트를 매입한 것이다. 이 수로 덕분에 영국과 인도 사이의 해로가 약 7,000킬로미터 줄었다... 인도와 영국 사이의 연락선에 이루어진 두 번째 중요한 개선은 1870년의 직통 해저 케이블 설치였다. 오 년 전에 육상 전신선을 완공하기는 했지만 테헤란을 거쳤기 때문에 전시에는 간섭이나 절단에 취약했다. 새로운 해저 케이블은 그보다 훨씬 나았다(p458)... 새로운 통신이 시작되면서 화이트홀은 인도 일을 그 전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p459) <그레이트 게임> 中


 19세기에 이미 제국의 지배형태가 커뮤니케이션에 기반한 지배로 변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팽창은 영토 중심의 침략활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변화된 제국의 패러다임을 충분히인식하지 못했기에 , 일본은 초기 무력침공으로 자신의 세력을 뻗쳐 나간 것은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중일전쟁(中日戰爭)에서 일본군은 광대한 중국의 영토를 침략했지만, 일본의 지배는 철도, 도로를 중심으로 한 선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길게 늘어선 선들은 결국 끊어지고, 고립되어 자멸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그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제국( 출처 : 위키백과)


 과거 산업화 시대의 지배가 선(線)에 의한 지배라면, 21세기 제국의 지배형태는 '문화(文化 culture)'라는 점(點)의 형태로 다시 변화했다. 그런 면에서 문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제국주의(문화 제국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이를 잘 활용하고있는 미국이 현재까지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반면, 이러한 미국에 대항해 SOC를 기반으로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새롭게 G2로 도약하는 중국의 모습안에서 지난 20세기 제국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너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어쨌든 비록 1세기 전의 이야기지만, 지금 세계정세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그레이트 게임'의 시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역사적 의미는 적지 않다 생각한다.


 다만, 책 <그레이트 게임>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두 제국의 갈등을 그리면서도, 전체적인 그림보다는 첩보전에 활약한 개인의 모습에 초점을 두었기에 첩보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점이 전체적인 조망을 제시한 <중국의 서진>보다는 아쉬웠다. 물론,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도 분명 있겠지만. 책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을 느끼며 길었던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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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9-03-28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대로 첩보 부문을 빼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일 것 같습니다.
최근 근대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전후 사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고,
작년에 대강 훓었던 러시아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이고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3-28 11:31   좋아요 2 | URL
우향님께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2019-03-28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8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8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28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